VS 여러분! 반갑습니다.    [로그인]
키워드 :
한글 
◈ 독서의 성격 ◈
카탈로그   본문  
1957. 9.
계용묵
1
독서의 성격
 
 
2
독서로 자기의 마음을 살찌워 보겠다는 태도에서 독서를 하게 되는 독서는 독서의 첫걸음이다. 말하자면 독서를 위한 기초 지식을 마련하는 예비단계에 있는 독서인 것이다.
 
3
이 단계에 있어서는 무엇이 좋을까, 어떤 책을 보아야 할까, 그 대상이 될 책의 선택이 지극히 어려운 과제로 되어 있게 된다. 그리하여 친지나 혹은 선배에게 문의를 하고 추천을 받으려고 하거나 광고의 설명문에 의존을 하게도 된다.
 
4
그러나 이런 문의나 그 과제에 적절한 해답이 되어질 수는 없다. 이 사람에게 감명을 준 책이라고 그것이 저 사람에게도 감명을 주게 되리라고 단정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5
사람은 각기 저대로 제가 좋아하는 것이 있다. 이러한 감정(感情)에 딴 감정의 유입(流入)은 결코 융합이 되지 않는다. ‘즐거움이 없는 곳에 이익은 따라오지 않는 것이다. 너는 네가 즐거워하는 것을 읽어라.’고 일찍이 셰익스피어도 말한 일이 있지마는, 감정이 통치 않는 감정으로 하등의 감명도 받을 수 없는 책을 억지로 읽게는 되지 못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서적의 추천을 받는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무익한 일일는지도 모른다. 그러면 어떤 방법으로 서적을 택하여야 할 것인가,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자기의 마음은 자기가 가장 잘 아는 것이므로 자기가 택하는 길밖에 바른 길이 없을 것이다.
 
6
그러나 기초를 쌓는 독서의 첫걸음에 있어서는 자기 자신이 택할만한 그 예비 지식이 또한 없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는 가운데 이것저것 난독(亂讀)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이 난독이 또한 그 자신의 욕심을 위한 독서로는 되어질 것이 아니다. 대개의 경우에 있어서 정력의 소비와 시간의 낭비일 것뿐이다. 그리하여 이 예비 단계에 있어서의 독서에서는 책은 책대로 많이 읽으면서도 그만한 수확을 가져오지는 못하게 된다.
 
7
그러나 이것은 하는 도리가 없다. 길을 가면 건강이 지치는 법이다. 이 건강이 희생되었기 때문에 갈 길이 이미 가진 것이다. 그만한 정력의 소비와 시간의 낭비로 난독이 있었기 때문에 그만큼이라도 얻어진 것이 있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 희생은 그만큼이라도 얻어졌다는 그 얻어진 데 가산(加算)이 되는 것이 당연한 것이므로 알고, 그저 다독(多讀)을 할 일이다. 그리하여 다독으로 이 예비 단계를 추어 넘는 수밖에 딴 도리가 없을 것이다.
 
8
이 단계를 접어들기만 하면 그때에는 무엇을 읽어야 할까 하던 서적이 자발적으로 선택이 되게 된다. 그 시간 낭비의 과정에서 자기의 요구 대상이 스스로 알아진 것이다. 그리하여 선택이 되는 이 독서는 지성(知性)의 강력한 명령에 의한 것이므로 침식도 잊게 되는 몰아(沒我)의 경지게 빠지게 된다.
 
9
그러나 이 지성이 살찌고 싶은 강력한 명령은 끊임없이 지속적으로 채찍질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여기서는 또 서적의 정독(精讀)에 소홀하게 되는 폐단이 생기기 쉽다. 그것은 그 책을 읽어 가는 도중에 또 보고 싶은 다른 서적이 나타나게 됨으로써 그것은 보고 싶은 조급한 마음에 이미 보던 그 책에서는 손을 떼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 책을 보아 가는 도중에 또 딴 보고 싶은 책이 나타나게 되어 이미 손에 넣었던 책은 또 손 밖으로 쫓겨나게 된다. 예비 단계를 넘어선 독서에서는 이러한 독서가 자꾸 반복이 된다. 그리하여 서가에는 책이 날마다 늘어 가게 된지만 그 책이 늘어 가느니만치 그만치 풍부한 양식은 실지로 머릿속에 들어와 쌓이게는 안 된다. 심지어는 선택한 책의 그 목차에 눈을 한 번 거치는 것만으로 벌써 그 책에 대한 독서의 목적은 달하게 되는 수도 있다.
 
10
이런 독서는 당연히 피해야 될 것이나 자발적으로 선택을 하게 되는 독서의 연륜(年輪)이 쌓이게 되면 또한 막는 도리가 없다. 이것은 마치 장사꾼이, 이것이 유리할까, 저것이 유리할까 하고 이것저것 집적거리다가 밑천만 들여 놓고 그 밑천을 들인 만큼 그만큼 성공을 못하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11
그러나 성공은 못 했어도 그 들인 밑천이 장래의 성공에 한 좋은 참고가 되듯이 이런 독서에서 희생이 되어 서가를 풍부하게 만든 서적은 장래의 연구에 한 좋은 참고가 될 것이다.
 
12
하기는 서적이라는 게, 그 방대한 페이지가 단지 몇 구절을 말하기 위한 부연인 것임을 알게 될 때에 그 방대한 페이지를 전부 소화하겠다는 욕심이 결국은 만심(蠻心)이 아닐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이 정당한 독서법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13
그러니까 우리는 그 어떤 서적에 손을 대기 시작할 때에 그 한 페이지만을 읽고 만다고 하더라도 그 읽는 페이지에 전 정신을 다할 일이고, 적연필의 사용은 절대로 금할 일이다. 이것처럼 그릇된 독서법은 없다고 본다. 적선을 긋는 의미는 중요한 대목이니까 다시 한 번 더 읽어 볼 욕심과 후일의 참고를 삼겠다는 이중(二重)의 노력을 피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그 적선을 믿고 언제나 용이히 찾아 읽을 수 있으리라는 방심(放心)에서 그 대목을 언제나 헐하게 읽어 버리고 말게 된다. 그리고 나면 다시 읽어 보리라던 그때의 마음은 그때의 마음이었을 뿐, 그 대목에 다시는 눈이 용이히 가게 되지 않는 법이다. 그것은 앞으로 읽을 것이 자꾸만 쌓여 가게 되는데 하가(何暇)에 그것을 들추어 볼 여가가 생기게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책에는 적선 투성이만 되고 그 중요한 대목이 뚜렷하게 자기의 것으로 머릿속에 들어와 편안하게 자리를 못 잡고 어리벙벙하게 떠돌고 있게 될 뿐이다. 그러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인정이 되는 구절이면 적선은 아예 피하고 당장 그 자리에서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머릿속이 완전히 대답을 할 때까지 읽어 둘 일이다. 쇼펜하우어가 ‘사람들은 왜 자기가 읽은 것을 완전히 자기의 것으로 만들지 못하는가 하면 그것은 자기가 생각하기를 게을리 하였던 까닭’이라고 한 말은 독서법에 대한 금언(金言)이 아닐 수 없다.
 
14
그러므로 독서란, 예비 단계에 있어서는 하는 수 없이 다독을 피할 수 없게 되고 그 단계를 넘어선 자발적인 선택의 독서에서는 정독이 요청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예비 단계에 있다고 하더라도 무리로 서적의 추천을 받겠다고 하거나, 예비 단계를 넘어서 자발적인 선택의 능력이 생겼다고 서가만을 풍부하게 만드는 독서는 결국 정당한 독서법은 아니라는 결론에 귀착하게 된다.
 
 
15
〔발표지〕《경향신문》(1957. 9.)
【원문】독서의 성격
▣ 커뮤니티 (참여∙의견)
내메모
여러분의 댓글이 지식지도를 만듭니다. 글쓰기
〔수필〕
▪ 분류 : 근/현대 수필
▪ 최근 3개월 조회수 : 17
- 전체 순위 : 2787 위 (3 등급)
- 분류 순위 : 393 위 / 1835 작품
지식지도 보기
내서재 추천 : 0
▣ 함께 읽은 작품
(최근일주일간)
▣ 참조 지식지도
▣ 기본 정보
◈ 기본
  # 독서의 성격 [제목]
 
  계용묵(桂鎔默) [저자]
 
  1957년 [발표]
 
  수필(隨筆) [분류]
 
◈ 참조
 
  # 독서
 
▣ 참조 정보 (쪽별)
백과 참조
목록 참조
외부 참조

  지식놀이터 :: 원문/전문 > 문학 > 한국문학 > 근/현대 수필 카탈로그   본문   한글 
◈ 독서의 성격 ◈
©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2년 12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