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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文學)의 정조(貞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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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6.4
김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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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文學[문학]의 ‘貞操[정조]
 
 
 

상(上)

 
3
진과 선과 미는 낡은 채로 아즉도 새로와 오즉 협곡을 지난 절벽 저편에 비장돼 잇다. 진정한 혼과 의상의 문학이라면 이는 피와 땀을 주고서만 바꿀수 있는 것인지라 오즉 형극의 길을 거른 뒤에야 그 호흡은 내 입술에 가깝게 된다. 내 화단에 진실로 한 송이 꽃을 피게 하기에도 짧아 두 철의 노고가 필요하거든 백 사람이 앉아 쉴 만한 큰 그늘의 나무이오.
 
4
한가지 月桂[월계]의 조화나 비빔밥 두세 그릇에 문학을 파는 ‘청개고리’도 ‘문학다운 문학’이란 기표 아래서는 저윽이 愚目[우목]을 三瞠[삼당]해 맛당하다. “대중은?”하고 공연한‘논 가는 지아비’를 불러 曾參[증삼]을 셀 지도 모르나 도대체 砂糖[사당]만 먹으랴는 아해의 떼를 받어만 주는 것이 현모의 육아법이 될 수 잇겟는가? 창녀들은 정조문답을 무시한 존재인지라 내노코, 거는 수작에 도로혀 圭角[규각]잇는 인생관이 엿보이기도 한다.
 
5
애초부터 문학은“人造絹[인조견] 열 자와 바꾸기로 햇노라”하면 그 赤裸裸[적나나]가 도로 귀할 것을 하필 ‘예술가’간판을 등에 지고 大道[대도]에서 새우젓장사 비위를 마치는 꼴은 보기에 좀 거부상스런 일이 아니냐?‘부피’가 필요한 것은‘쇠까래’등등 뿐일텐데 뭇거니와 대체 그대의 다변은 무슨 緊切[긴절]이뇨?
 
6
冷却[냉각]한 목사의 한 시간 설교에 咀呪[저주]되어 구원을 그대 작품에 청햇더니, 噫[희]라 공기의 진동은 紙墨[지묵]보다 훨신 가급적인 것이 반갑고나! 꼭 二千張[이천장]을 써야만 되엇든가? 진흙은 암만 쌓 봐도 진주의 빛을 發[발]치 못한다.
 
7
‘水逝矣[수서이]’라 한 某氏[모씨]는 성인이기 전에 훌륭한 문장가엿엇다. 그대 역 創世記[창세기] 일장 속에 天地肇判[천지조판]이 고롯케도 똑똑히 적힌 것을 자랑하는 마당에 落語家[낙어가]를 私淑[사숙]하야 인생의 무엇을 보이랴 함이뇨? 문장은 표현인 동시에 아시니 함축의 小節[소절]은 이미 全樂章[전낙장]의 전모를 髣髴[방불]케 해야 한다. 일전 주고‘댕구알 사탕’하나 사먹는 격의 독자(?) 앞에 문장은 어제도 오늘도 기구한 운명을 통곡하도다.
 
 
 

하(下)

 
9
‘쩌 ― 날리즘’은 제 독자의 利慾[이욕]과 주장이 잇다. 제가 살랴니 자연 무엇이고 꼬여 보는 것이다. 쥐 생각을 햇다면 고양이는 벌서 전에 굶어죽엇슬게 아닌가? 쥐는 쥐 제가 생각을 해야 한다. 총명의 투쟁이다.
 
10
쩌날리즘이 널 꼬일 것은 정한 일이니 이때 너는 쩌날리즘을 유인하는 데서 네 영역이 확대된다. 대중에게 끌려 나려 가는 것을 능사로 하는때, 예술가는 죽었다. 대중을 끄러 올려라. 그때 너는 빛나고 대중은 복을 받는다. 실력이 문제다.
 
11
바람부는 대로 가는 것은 가랑닢일 따름이다. 백 길 느티나무도 가지와 닢이 움즉이지 아니하는 것은 아니나 일즉이 ‘웃 말’것이‘아랫동리’로 移徒[이도]한 적이 드므니라. 왜 뿌리를 못 박고 고놈의 이놈의 저놈의 꼬임에 잘도 속는고. 그래서야 어디 살림차려 볼 날이 오겟나?
 
12
나는 참으로 ‘뚝뚝보’를 고대하는 자다. 상추쌈에 고초장 발라 먹고 六字[육자]백이 잘하는 열과 힘과 誠[성]잇는 작가가 이땅 문학의 사위ㅅ감인 것을 믿는다. 利[이]를 따르는 기회주의는 어느 예술에서나 생명줄의 좀이 된다. 헥터(Hector)는 트로이(Troy)성의 함락을 알면서도 ‘애킬리스’(Ac― hilles)의 창을 달게 받엇다.
 
13
명을 賭[도]하야 시와 소설과 수필의 정조를 직키는 날 문학은 빛나는 나래를 천공에 펴리라.
 
14
풀은 태양에서 공기에서 그리고 땅에서 다른 것을 얻어드림으로 살고 자라나고 한다. 섭취는 생존과 성장의 절대적 조건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거름에 꼬처 하테 썩어 거름이 될 때 풀은 생명을 일는다.
 
15
시대와 환경과 종족은‘테이누’가 언명하기 전부터 운명적이다. 왜 제 소리를 안는가? 왜 제 요구를 內探[내탐]치 안는가? 왜 심장에 귀를 기우리지 못하는가? 영혼의 이식은 移滅[이멸]의 결과를 초래할 따름이다.
 
16
일생을 첫사랑이기는 물론 어럽다. 그러나 적어 충성과 노력이 잇는 곳에 문학은 壽富貴[수부귀] 多男子[다남자]할 것이 아니냐.
 
 
17
(「東亞日報[동아일보]」, 1937년 6월 4일)
【원문】문학(文學)의 정조(貞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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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용(金尙鎔) [저자]
 
  동아 일보(東亞日報) [출처]
 
  1937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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