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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벼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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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3.5
최서해
1
물벼락 〔掌篇小說[장편소설]〕
 
 
2
십자교(十字橋)를 건너가려다 눈에 뜨이는 그림자가 있기에 바라보았다. 먼 불빛에 얼굴은 잘 보이지 않으나 미끈한 몸에 얼리는 소복으로 신바닥에 흙이 묻을세라 사뿐사뿐 걸어오는 그림자는 그의 가슴을 간지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여자의 치마폭 여민 팔꿈치를 슬쩍 건드려 보았다. 여자는 돌려다보는 듯 마는 듯 태연히 걸어간다.
 
3
그는 서너 걸음이나 나오다가 다시 돌아다보았다. 서너 걸음이나 나가면 여자도 다시 돌아다본다. 여자의 시선은 어떻게 흔들렸는지? 어두움에 흐려서 보이지 않는 그것이 그에게는 도리어 은근한 맛이 있었다.
 
4
"대서? 대서 볼까?"
 
5
개천을 왼편에 끼고 간동으로 너댓 집이나 지나 올라가던 여자는 또 슬쩍 돌아다본다. 길옆 집 문등 빛에 갸름한 얼굴이 반짝 보였다.
 
6
아까보다 빨리 걸어가던 여자는 컴컴한 골목에 돌아지더니 쓰러져 가는 초가집 대문 안으로 들어간다.
 
7
대문 안에 몸을 숨긴 여자는 문 밖에 대어선 사내를 방긋이 내다보면서 손짓과 몸짓으로 군호를 주는 듯하고 스러져 버렸다. 그는 그것을, ‘잠깐만 기다리세요! 안에 가 보고 나올께……. 누가 알면 큰일납니다.’ 하는 암시로 해석하였다. 그의 몸은 부르르 떨렸다. 붉은 입술, 부드러운 곡선미, 향긋한 살냄새 ─ 벌써부터 그의 머리에 떠오르는 무엇은 초초분분 무르녹아 들어간다. 단꿈에 째릿한 가슴은 엷은 공포에 스르르 흐리기도 하였다.
 
8
‘지금 나오나? 아니다. 저건 문 소리다.’
 
9
그는 피 뛰는 소리에 멍멍한 귀를 기울여서 안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소리를 엿들으려고 하였다. 나온다! 신 소리가 들린다. 일각이 삼추 같은 그의 귀에 가까와오는 여자의 발자취는 그에게 큰 쇼크를 주었다. 부드러운 살 향기가 서리인 이불 속에 온몸이 푸근히 싸이는 것 같았다. 대문이 삐 ─ 꺽 열린다. 그는 성공의 기쁨에 떨리는 가슴을 억제하면서 나오는 그림자를 끌어안을 듯이 거의 본능적으로 팔을 벌렸다.
 
10
"배라먹을 녀석! 버르쟁이를 가르쳐야……."
 
11
빽 쏘는 소리가 도리어 늦다 할이만치 끼얹는 차디찬 물은 폭포와 같이 사내의 전신에 내리질렸다. 몸을 움찔하던 사내는 꿀먹은 벙어리가 되어서 몸을 돌쳐 뛰려다가 건너편 담벼락에 이마가 부딪쳐 펄썩 주저앉자 마자 물벼락이 나오던 대문 안으로부터 세숫대야가 튀어나오면서 그의 뒤통수를 후려 갈기고 땅바닥에 뎅그렁 떵 떨어졌다. 대야 벼락까지 떨어지자 물투성이 된 몸에도 열(熱)이 남았던지 두 눈에서 불이 번쩍 일어났다. 그는 모자가 벗어진 줄도 모르고 발〔足[족]〕아! 나 살려라! 내뛰었다. 천방지방 달음질을 쳤다.
 
12
조용한 골목에 돌아진 그는 비로소 발을 멈추었다. 가슴에서는 맞방망이질을 하고 두 어깨는 급한 물결을 친다. 숨을 돌려 가면서 모든 것은 꿈 같기도 하면서 꿈 아닌 것이 원수 같았다. 벗어진 머리를 만지면서 맑갛게 개인 날에 물투성이 흙투성이 된 꼬락서니를 굽어보니 무어라고 형언할 수 없는 생각에 가슴이 뻐근하였다. 그것은 호소할 데 없는 분이요, 슬픔이다. 제일 집에는 어떻게 가며, 큰길에는 어떻게 나서랴? 똥그란 아내의 눈도 얼찐 보이고 행순 순사의 그림자도 어디로선지 나타나는 듯 하였다.
 
13
‘꿈이나 되었으면.’
 
14
길가의 돌까지 비웃는 듯한 느낌에 으슥한 그늘에 들어서는 그는 혼자 뇌이면서 또 한번 머리를 만지고 의복을 보았다.
 
15
이른 봄밤은 물투성이 된 그에게 겨울밤같이 찼다.
 
16
흥분이 스러진 그는 냉수 벼락 여독에 덜덜 떨었다. 도수가 좀 더 떨어지면 불이 번쩍 나던 대야 벼락이 그리울는지도 모를 것이다.
【원문】물벼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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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서해(崔曙海) [저자]
 
  조선 일보(朝鮮日報) [출처]
 
  1929년 [발표]
 
  소설(小說)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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