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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황(彷徨) 20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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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2
채만식
1
彷徨 20년
 
 
2
받은 제가 ‘작가수첩’이라는 것이었으나 마차이 무슨 말을 하여야 거기에 적당한 내용일는지 별반 요량이 없이 우선 지필(紙筆)을 대한다.
 
3
해도 이럭저럭 거진 저물고 나이는 1년을 더 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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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금 1년을 더 얹고 불원(不遠) 그리하여 40. 바야흐로 마흔 살.
 
5
마흔 살, 정녕 40이요 착오 없는 산술이건만, 내 나이 마흔 살이라니어쩐지 이상스럽고 정말 같지가 않은 것 같다. 언제어디서 이런 나이를 다 먹고 싶으면서 섬뻑은 실감적으로 사실이 캐치되어지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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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없은 말이지만 그래서 어린 놈을 데리고 앉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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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살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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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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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잊었어? 네 살이요 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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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살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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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옳지! 몇 살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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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살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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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가르쳐 주듯이 이 40을 다 먹은 노동(老童)은 제 스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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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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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원 사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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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아니면 마흔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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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면서 몇번이고 이런 염량을 해서야 비로소 곧이가 들리곤 하니 주정한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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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는 40이라도 40이란 나이엔 인생 초년병이어서그런가 보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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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의 연치감(年齒感)이란 흡사히 붇는 물이 차차로 차차로 한 치 두 치 차올라 어언가슴께까지 찬 그런 절박스럼을 준다. 20적에도 30적에도 느낄 수 없던, 여후(餘後) 막막한 절박스럼이다. 종차 50이면 한결이나 그것이 더함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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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 노상에서 일전에 최규동(崔奎東) 선생을 문득 뵈었었다. 숙아 (宿痾)도 숙아지만 연래로 완구히 더 노쇠하셨음을 첫눈에 알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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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영주(泳柱)와 동행이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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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선생님도 인제는 아주 늙으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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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말을 하다가 그 끝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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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한 10년 후면 누가 보고서 허어! 저 사람도 인제는 아주 늙었어! 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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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는 서로 서글피 웃은 일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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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을 먹는대서, 늙는대서, 구태여 놓친 청춘이 안타깝다든가 늙음이 원통하다든가 황차 죽음이 섧든가 등 인생을 투정하고 싶은 생각은 아니다. 그러나 역시 많은 평범한 여러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무엇으로 이 나이를 먹은고 하는 회오(悔悟)와 더불어 두루 섭섭한 생각이 듦은 어찌할 길이 없다.
 
27
인간에 참예한 지 40년, 성인(成人)한 지 20년, 명색이 문학에 뜻한지 십유(十有) 칠팔 년. 이만하면 뉘 앞에다가 내놓아도 먹을 만큼 먹은 나이요 살 만큼살았고, 문단적으로도 (따라서 몇몇의 동배에 비하여서 도) 결고 옅은 연조는 아니다. 그러하건만 그만치나 오랜 동안을(근 20년을) 소위 문학을 합노라고 해온 바 성과랄 것이 무엇이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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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도 아무것도 아니요, 아무것도 없음에 한갓 망연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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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난 천재가 아니니 감히 이름을 천하에 떨치고 영세까지 남길 대작 을 바라는 참람스런 생각이야 먹지 않더라도 시속(時俗)에 10년을 독공(篤工)하면 입신(入神)을 한다고 이르지 않는가. 10년은새려 20년이 아닌가. 적이나 이 시대 이 지역에서나마 과히 부끄럽지 않을 조그마한 소득은 있었어야 할 것이 아닌가.
 
30
그러나 그도 오히려 둘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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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이내까지 나는 꾸준히 한가지를 파고들지를 못하고서, 끊이지 않고 방황을 해왔었다. 방황하는 20년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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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거기에는 이른바 객관적 정세의 부절한 변화를 영향받은 탓도 있고, 보다 나은 방향을 찾으려는 정성도 없었던 것은 아니나, 결과는 나는 나이 40에 문령(文齡)이 20이로되 여지껏 나아갈 방향을 정치 못한 방황자이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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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남(懷南)은 나를 가리켜, 어떤 작품을 가지고 이 사람의 대표작이 라 하여 추려 잡을 만한 작품이 막상 없다고 했었다. 매우 지당한 간파요 아픈 지적이었는데, 그렇듯이 소위 대표작이랄 작품을 특별히 가지지 못한 연유도 주로 내가 어떤 한 길을 파고 나가지 못한 때문이 아닐는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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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에 불혹이라고 한다. 그리고 인생은 40부터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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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귀가 기울여지는 말이기는 하다.그러나 나는 우선 나의 정력을 잘 짐작하거니와, 남처럼 40을 고패로 왕성한 활동을 시작하기엔 너무도 지치고 쇠약이 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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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에 불혹(不惑)이라지만 그는 큰 인물에게 말이지 나 같은 평범한 무리는 차라리 남의 충언에조차 자이(藉耳)를 않으려 드는, 그리하여 고집불통이 될 위험한 시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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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10여 년을 더 문학을 붙들고 있을는지, 내일이라도 이 붓을 꺾고 말는지 좀처럼 보장키 어려운 형편이다. 그러나 가사(假使) 그렇게 50토록 계속을 한다고 하더라도 역시 나는 끝끝내 방황하는 문학의 룸펜, 인생의 룸펜이고 말 것이다.
【원문】방황(彷徨) 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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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만식(蔡萬植)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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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1년 [발표]
 
  수필(隨筆)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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