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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황하는 시정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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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2
오장환
1
방황하는 시정신
 
 
2
시는 한낱 청춘기의 오류라 한다. 내 신념의 건강이란 이러한 말을 염두에 두도록 쇠잔한 것인가.
 
3
청년들은 체험하였다.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것 가운데 가장 위험한 보물인 언어를 통하여, 그가 일상에 느끼고 일상에 호소하는 귀여운 정서와 왕성한 정열을 시인들은 어떻게 처리해 왔는가. 머리에 형관(荊冠) 쓰기를 자원하는 이, 어찌 골고다의 청년 예언자뿐이었을까.
 
4
우리는 잠시라도 우리의 곁에서 떼어놀 수 없는 양도(糧道)를 보살펴 볼 때, 어느 때 어느 곳을 불구하고 가장 민감하여 순수하며 섬약한 시인들이여! 그대들은 이어 횔덜린(Hölderlin)의 말한 바 인간이 영위하고 있는 중의 가장 아름다웁고 죄 없는 일을 행하여 왔다.
 
5
안한(安閑)한 수엽(樹葉)속에 즐거이 노래하던 무릇 작은 새들이여! 구주문단(歐洲文壇)이란 울창한 거수(巨樹)의 도괴로 말미암아 너희들의 안주할 둥지는 어느 곳이냐.
 
6
19세기가 해석하여 주던 서정시의 개념은 현대에 와선 근본적으로 용납할 수 없이 변모하였다. 시대는 극도로 메커니즘에 시달려 고요한 명상 속에 잠기어 상징의 세계에 유유히 배회할 수 없는 이때, 전신 상흔의 알몸뚱이로 우리들이 바야흐로 당하려는 시의 세계는 어떠한 방향일거냐.
 
7
안전성을 보증하지 않는 미끄럼대에서, 불과 30~40년간 몇 세기나 서구보다 뒤떨어진 문명을 쫓기 위하여 선도자들이 미친 사람같이 날뛰며 지쳐나릴 때, 이러한 급격한 간조(干潮) 속에서 우리의 시단은 사조의 다량 주문과 유입 속에 태동되었고 또 우리와 같은 젊은 사람들은 늦게서야 이러한 것을 양식으로 하며 내 몸을 성장시킨 것이다.
 
8
신뢰할 만한 현실은 어디 있느냐. 나는 시정배와 같이 현실을 모르며 아는 것처럼 믿고 있었다. 이렇게 노래 부를 때의 나는 이미 늦은 것이었다.
 
9
내가 이때까지 가지고 있는 것은 무엇이었던가. 내가 이때까지 믿고 있었던 것이란 무엇이었던가.
 
10
이조 이후, 더 나아가서는 고려 이후로 우리의 문화가 자주성을 잃은 대신에, 남의 귀틈으로만 살아온 슬픔을 생각해 보라.
 
11
4천 년이나 되는 문화를 가지고 이것이 중간에 와서 한 번도 자기를 반성함이 없이 덮어놓고 외계로만 향한 속절없음을 생각해 보라. 그렇게도 우리의 풍토와 문화 속엔 돌아볼 재산이 없었었는가.
 
12
험악한 불모의 지(地)에 괭이질을 하며 새로운 씨를 뿌리려던 신문학 초창기의 개척자들도 결과에 있어선 앞서 말한 바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였다.
 
13
배낭에 지워준 비통한 숙명으로 인하여 지나온 길가에 핏방울을 떨어 뜨리고 온 젊은이들은 다 각기 가슴속에 눈물을 숨기고 앞으로 어떠한 노래를 어떠한 방식을 불러야 할까.
 
 
14
자기 공허에서 오는 순연한 절망에서 오직 창황(愴惶)하여
15
나도 어디쯤 죄그만 카페 안에서
16
자랑과 유전(遺傳)이 든 지갑 마구리를 열어헤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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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는 청년마다 입을 맞추리
 
 
18
하고 일찍이 나는 노래 불렀다.
 
19
대체로 빠르나 늦으나 자기를 돌이켜보고, 지나온 사단(事端)에 대하여 깨끗이 정리를 하려 할 때에 앞으로 이 모든 것을 어떻게 소화하여 순연한 우리의 모습을 나타내일까.
 
20
우선 시의 형태로만 하더라도 이곳에서 써지는 작품들의 거의 전부가 내지(內地)에서 대정(大正) 초년간에 통용하던 자유시의 방법을 벗어나지 아니하였다. 또는 새로운 수법을 쓰려고 힘쓰던 이도 그 여기(膂氣)가 줄고 작품 실천에 있어 이렇다고 표본을 보이지 못한 것은 대단 섭섭한 일이다.
 
21
혹은 한귀퉁이에 자리를 잡고(기실 그분의 의관이란 물 건너온 재생품이건만) 재담과 열매 없는 괴임새로써 그것을 시의 전부로 자처하는 것은 애석한 일이다.
 
22
더욱 그 여향(餘響)이 의외로 컸음은 같은 젊은이들을 위하여 적이 한 심치 않을 수 없다.
 
23
조선의 시단에서는 급기야, 춘기발동기(春期發動期)의 자연 발생하는 최정시(催情詩)나 자기 쇠망의 영탄시나, 신변 장식에 그쳐버리고 영영히 집단적인 한 종족의 커다란 울음소리나 자랑을 노래하지 못할 것인가.
 
24
소화(昭和) 초년간에 내지서 주창되던 신산문시운동이라든가 근간 연시(連詩)운동이니 하고 진지한 추구를 하듯, 우리도 왕성하는 개혁을 하려고 못한다 해도 어떻게 이 문제를 등한히 할까.
 
25
우리 본래의 면모를 돌이키기 위하여 우리 종족에도 하나의 큼직한 서사시 같은 것이 나와야 할 것은 필요 이상의 일이나 시에서도 문학의 장르가 갖가지로 분리하여 새로운 서사시를 쓰기에는 입장이 대단 불리한 오늘에 있어 이러한 것을 어떠한 방식으로 수습할 겐가.
 
26
고전이 없는 슬픔은 실로 막대하다. 자신까지도 믿을 수 없는 기력속에서 나마, 다만 우리들은 절망에 빠지지 않도록 경계해야만 된다.
 
27
피맺힌 발로 무연한 백사지(白沙地)를 헤매이는 청년들이여! 숨막히는 열사 속에서 건강한 육신이 가시 돋구고, 몇 해씩을 별러 가슴이 무여질 듯 피어나오는 선인장의 빨간 꽃송이, 그 빨간 꽃송이의 꿈을 아끼지 않으려는가.
【원문】방황하는 시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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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장환(吳章煥) [저자]
 
  1940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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