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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죄(犯罪) 아닌 범죄(犯罪)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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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8
채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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犯罪 아닌 犯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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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커야 골이 깊다는 말도 없잖아 있는데, 본디 우리네 생활이 무어 좀 큼이 있어야 그래도 제법 이야기거리가 됨직한 심각한 범죄가 발생이 되지요. 그것도 밀수가 로맨스를 얽는 신의주(新義州) 같은 국경지대라면 모르지만 경성쯤이야 이름이 좋아서 인구 70만의 대도시지, 뭐 나무접시같이 속이 빠안히 들여다보이는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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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는 졌으나 아직도 어둡지 않은 종로거리에는 해멀끔한 전등이 생색없이 켜져 있고 명물 야시가 이윽고 복닥거리려 시초를 잡을 무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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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맘때면 연신 꾀꼬리같이 이쁘게 단장을 한 기생 아가씨네들이 인력거 위에 올라앉아 까불까불 요리집으로 불려가는 풍경이 따암땀 보이기 시작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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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보는 풍경이라 무심히 보고 만다면 그만이겠지만 오늘이야 말고 XX관으로 몰리는 그 인력거의 기생행렬이 유독 잦습니다. 새 패 네 패가 한꺼번에 몰려가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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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이 그렇게 한꺼번에 많이씩 불려가고 또 시간이 아직 이르고 한 걸로 보아, 혹시 어떤 공식의 연회라도 벌어진 게 아닌가. 제법 그 방면의 통(通)은 그렇게 알은체를 하기 십상이겠지요. 그러나 실상은 그런 게 아니고, 바야흐로 그 어여쁜 꾀꼬리(개중에는 벙어리도 많지만) 들이 어떤 하나의 범죄에 동원이 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실로 모골이 송연할 노릇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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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따라 이 요리점 XX관은 그야말로 잔치집같이 풍성풍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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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저물기도 전인데 기생 태운 인력거가 꼬리를 물고 들이닿고 사무원은 세 개나 되는 전화가 모자란다고 바빠하고, 보이들은 긴장해 좌왕우래(左往右來)하고, 주방은 그릇 소리 칼소리가 요란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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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야 요새 그 소위 은진산업(殷賑産業) 경기로 인하여 어디를 물론 하고 요리집의 흥정이 좋아서, 약간 망건 쓰고 귀만 뺀 친구가 아니라도 조촐한 자리를 얻어 술 한잔 마시자면 대단한 노력이 들어야 하고, 기생이라고는 눈 하나 찌그러진 놈(矢禮!)까지도 동이 날 지경이고 하니, 하필 이 XX관이라고 또 오늘이라고 세월이 좋지 말란 법은 없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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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것이 어느때의 그런 노말한 풍성거림이 아니고(하나의 범죄의 전주곡으로서) 이례(異例)의 일이기 때문에 우선 눈의 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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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히 4,50명이 벌려 앉도록 분별을 시킨 요리상의 한귀퉁이에 가서 이번에 XX에서 올라온 건주사(乾主事)와 그의 친구인 X동 사는 달주사(達主事)와는 단둘이 앉아 하나씩 둘씩 모여드는 기생을 전후 좌우로 늘어앉히면서 부어라 먹자 진탕치게 호유(豪遊)는 이윽고 시작이 되고 하는 동안에 불려온 기생이 자그마치 마흔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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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방금 기름단지에서 빠져나온 듯이 맵시 나고 태도 좋고 한 미기(美妓)들이요, 그러한 41명의 미녀 틈바구니에 끼여, 5백 원짜리 특별 주문의 고량진미(膏粱珍味) 앞에서 먹고 마시고 노래부르고 하는 두 사람의 호걸, 건주사와 달주사! 진실로 근래에 보기 드믄 호화판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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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명의 미기들은 제각기 사무실에서 선성(先聲)을 들음이 있었던지라 제마다 이 건주사의 눈에 들도록 있는껏 교태와 은근을 다 부리고 시중하는 보이들은 칙사 같은 저 두 손님을 위하여 입안의 혀깔이 알뜰히 놀되 유공불급(唯恐不及)하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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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것이 건주사로 말하면 비록 행색이 약간 초라스럽기는 할값에 방금 몇 시간 전에 180만 원짜리 금광을 판 또 한 사람의 시대의 인간선수임을 이곳 XX관에서는 그의 친구인 달주사를 통하여 잘 소개받은 터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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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주사라는 사람은 하기야 1백80만 원의 큰 돈이 생긴 길이니 그럼즉도 하기는 하지만, 글쎄 오늘 밤 이 XX관을 통째로 가이끼리를 하자고 덤빌 만큼 담보가 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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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것을 XX관에서는 제발 다른 단골 손님도 적지 않고 하니 그것만은 용서해달라고 비지발괄을 했더라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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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열두시가 되자 대영웅 건주사는 예정이나 했던 듯이, 셈을 치를 요량으로 간죠를 시켰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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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수석( ? ) 보이가 일금 1천 2백 몇십원 몇십몇전야라는 계산서를 갖다가 공순히 허리를 굽히면서 취안이 몽롱한 채 기생을 인(人) 안석삼아 앉았는 건주사에게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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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1천 2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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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산서를 아무렇게나 받아들고 끄터리의 합계만 보는 둥 마는 둥 1백 80만 원짜리 부호는 혼잣말같이 하는 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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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 원 몇푼 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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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백80만 원짜리 부자니 약간 1천2백원쯤 워너니 돈 같지도 않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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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건주사는 계산서를 손에 쥔 채 처억 일어서더니 햄 연설이라도 한바탕 할 듯이 목을 가다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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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저 어른이 무슨 ‘큰부자(富者)’다운 기행을 한바탕 하려고 저러노? 싶어 41명의 기생하며 안팎으로 벌려 섰는 보이들 하며 모두 침을 삼키면서 귀를 기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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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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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번 밭을기침을 하더니 드디오 1백80만 원짜리 부자 건주사는 입을 열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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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녁 에, 참, 여러 사람들 덕에 잘 먹고 잘 놀았소! 허고, 간죠로 말하면 돈이 없소! 미안허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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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영감두 망녕의 말씀이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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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씨가 황송하여 뒤통수를 긁적긁적하면서 대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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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께서 돈이 없으시다구 즈이가 약주 안 대접하겠습니까? 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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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허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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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주사는 한바탕 크게 웃더니, 보이씨의 어깨를 툭 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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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이 친구…… 어제 저녁부터 굶었더니 배두 고프구 술 생각두 나구, 또 모처럼 저런 이쁜 기생들 틈사구니에 끼여서 놀구두 싶구, 해서 채린다구 노름을 채린 게 아무려나 나루서는 평생 소원을 풀었소! 한푼 껀지없는 건달 두 놈이 이만침 놀았으면 무던하지 않소. 허허허허! 자아, 그러니 요리점의 억울한 하소연일라건 경찰서에 가서 허시우, 허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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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또 한번 큰웃음으로 맺더니 날 잡아 잡수라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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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라! 모르겠다 인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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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벌떡 나가 누워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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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그게 어디 범죄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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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에 말씀을! 무전취식으로 건주사·달주사가 뻐젓하니 유치장 신세를 졌는데 범죄가 아니랄 게 될 말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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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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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북부에 사는 자유노동자 맹(孟)서방이 하루 아침 경찰서에서 온 호출장을 받고 하늘이 무너진 듯 땅이 꺼진 듯 망지소조 정신을 차리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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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 전에 지은 그 죄가 드디어 벌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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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안해로 더불어 내 살 두 살의 두 남매를 데리고 그날 그날을 벌어먹고 사는 가난한 신세에 그만 죄를 지고 벌을 받게 되었으니, 내 자신이야 지은 죄가 있으니 벌이 아니라 천하 없는 것이라도 받는다고, 아무 세태도 물정도 모르는 어린 처자가 뒤에 남아서 애통하고 할 일을 생각하면 그만 칼로 가슴을 에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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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렇다고 어디 법의 명령을 거역할 수가 있읍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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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서방은 용감하게 슬픈 마음으로 호출장에 적힌 오전 아홉시를 어기지 않고 경찰서의 사법계로 대령을 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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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사법계에 있는 순사와 맹서방과 사이의 문답 일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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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사 : 네가 맹 무엇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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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서방 : 네에, 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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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사 : 빌어먹을 놈! 야 이 빌어먹을 놈아 어디 오줌을 쌀 데가 없어서 하필, 예다가 오줌 누지 말라구 패를 해 세운 그 패에다가 오줌을 퍼 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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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서방 : 네에, 거저 무식한 노동꾼이 어디 그런 걸 압니까? 까막눈인 뎁쇼. 이번 한번만 용서해 주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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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사 : 몰라! 이놈아! (동간 하나를 돌려다보면서) 아 글쎄 저런 빌어먹을 녀석이 떠억 그 다데후다에다 대구 오줌을 퍼싸구 섰더라노? 그걸 또 우환중에 XX부장이 보았으니 용서를 할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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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간 : 히야까시를 한 셈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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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사 : 그렇구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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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서방 : 거저 이번 한번만 용서해 줍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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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사 : 몰라, 구류 사흘이다. 꼭 1주일은 시킬 것이지만, 가자 들어가서 구류 사흘 살구 나가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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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겁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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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그렇지만 경찰법 위반으로 구류 3일은 범죄가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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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야기도 또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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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두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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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두라면 그만두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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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본
  # 범죄 아닌 범죄 [제목]
 
  채만식(蔡萬植) [저자]
 
  조광(朝光) [출처]
 
  1939년 [발표]
 
  수필(隨筆)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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