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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9.27
최서해
1
수박
 
 
2
“싸구려 싸구려 ! 수박이 싸구려 ! 한 개에 오 전이요 두 개에 십 전이구료 ! 막 싸구려 막 파는구료…….”
 
3
수박 장수가 집 앞으로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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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덜털거리는 수박 구루마 바퀴 소리와 조화가 되어서 벌겋게 달은 석양 공기를 흔드는 그 외치는 소리는 땀에 젖은 듯이 흐뭇하면서도 異樣[이양]의 활기를 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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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루마 바퀴 소리는 우리 집 앞에 와서 뚝 그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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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구려 수박이 싸구려 ! 오 전에 한 개 십 전에 두 개씩이오 ! 막 싸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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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외치는 소리가 아까보다는 더 높이 들렸다. 그는 살 사람을 기다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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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다 가고 가을 기운이 들도록 수박 맛을 보지 못한 나는 밖으로 나갔다. 불 같은 夕陽苦熱[석양고열]에 비지땀투성이가 된 나의 마음은 그 靑皮紅心[청피홍심]을 상상하는 때 일종의 芳香[방향]이 어린 凉味[량미]를 느끼었던 것이다. 어른 어린애 할것없이 수박 구루마에 모여 섰다.
 
9
십 전을 던지고 두 개를 받아든 나는 들어오듯 마듯하여 꼭지를 돌렸다. 좀 큰 놈은 속이 불그데데하고 작은 놈은 새빨갛게 익어서 미각을 몹시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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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것으로 풍미 있게 먹어 보려고 제일 잘 익은 놈의 속에 사탕과 소주를 부어넣고 다시 제 꼭지를 꼭 덮어서 물항아리 속에 집어넣었다. 물항아리에 집어넣으려니까 중심이 바르지 못한 수박통은 이리 궁글 저리 궁글 해서 똑바로 뜨지 않는다. 良策[양책]을 생각한 우리는 바가지에 얼음을 담고 그 속에 수박을 실어서 물항아리 속에 띄웠다. 아까까지 炎陽下[염양하]에서 이 사람 저 사람의 惠顧[혜고]를 기다리고 초조히 지내던 수박은 인제야 이렇게 고요한 항아리 湖上[호상]에서 세상은 꿈도 못 꾸는 氷船[빙선]을 타고 萬斛[만곡]의 凉味[량미]를 맛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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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띄워 놓은 우리는 덜 익은 놈으로 해갈을 하고 마루에 드러누워서 땀을 들이다가 그만 낮잠이 들어서 눈을 붙였다 뜨니 어느새 석양은 마당에서 자취를 감추고 아까는 없던 서늘한 바람이 스쳐 와서 맑은 정신이 차츰 돌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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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낮잠을 자고 나서 서늘한 석양 바람을 받는 우리는 항아리에 채여놓은 수박은 깜빡 잊었다가 저녁을 지으려고 부엌으로 들어갔던 아내가 먼저 잊었던 기억을 불러일으키었다. 그러나 모든 것은 破矣[파의]다. 一葉氷舟[일엽빙주]에 갖은 정성을 다 들여서 실어 놓았던 수박은 의외의 풍랑에 慘沒[참몰]이 되어서 꼭지와 몸통이 각각 떠돌게 되고 바가지도 엎어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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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아리 속에 물이 그득 찬 것을 보니까 물장수가 저녁 물을 길어 온 것이 분명하다. 그는 우리가 자는 사이에 들어와서 무심코 부어 놓았던 것이다. 쏟아져 내리는 굵은 물줄기에 그 수박 배가 어찌 견디었으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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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는 수박도 버렸고 물도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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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아리 앞에 서서 들여다보던 나는 미구에 미각을 찌를 향긋하고도 달 凉味[량미]를 상상하고 은근히 침을 삼키던 아까의 내 그림자가 눈앞에 떠올라서 한바탕의 웃음을 마지않았다. 동시에 운명의 不可逆睹[불가역도]를 다시금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원문】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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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서해(崔曙海) [저자]
 
  조선 일보(朝鮮日報) [출처]
 
  1928년 [발표]
 
  수필(隨筆)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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