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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연(蕭然)한 우성(雨聲)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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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8.25~
최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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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蕭然[소연]한 雨聲[우성]
 
 
 

1

 
 
3
오늘 내일 하고 기다리던 비가 때 겨운 이때에 뿌리었다.
 
4
봄 이후로 가물다가 한여름에 한꺼번에 몰아왔던지 객지에 水亂[수난]을 내인 비는 많은 생명과 노력의 결정을 다시 만회치 못할 곳으로 흘리고는 뒤를 이어 다시 가뭄이 계속되어서 삼복이 지나고 입추가 지나도록 비는 방울도 듣지 않았다. 빗방울은 고사하고 하루 흐린 때도 없이 매일 내려쪼이는 일컹일컹한 볕발은 농촌에만 旱毒[한독]을 흘린 것이 아니라 도회에까지도 찾아 들었다. 매일 밥상에 오르는 쌀알이 어떻게 맺히는지도 모르고 비 오는 것을 오히려 반갑지 않게 여기는 도회지 사람의 가슴에까지 旱毒[한독]이 스며들어서 雲霓[운예]를 바라는 소리가 그들의 입에서까지 흘러나오게 되었다. 개인 날을 다행으로 청산이나 녹수를 찾아 여름의 긴 날을 오히려 빨리 갈세라 즐겁게 지내던 귀공자들 입에서까지 비를 바라는 타령이 흐를 제야 겨우 모를 내인 논판이 말라 갈라지는 것을 목전에 보고 직접 영향을 받게 되는 농민들의 심사야 다 말하여 무엇 하랴. 하늘가에 흐르는 조각 구름만 보아도 안타까운 마음으로 가슴을 태우고 잠결에 바람 소리만 들어도 빗소리나 아닌가 하여 눈을 비비고 귀를 기울이면서 기다리다가 때는 지나고 비는 오지 않으니 부녀들까지 나서서 산신과 河伯[하백]에게 정성을 다하여 기우제를 지내고 그것도 바라는 비를 주지 않으니 명산에 송장을 묻음으로 하늘이 비를 주지 않는다고 남의 묘를 파 버리는 살극까지 연출하게 된 것은 한두 군데만이 아니었다.
 
5
그것은 모두 미신의 소치이니 말할 것이 없다고 하겠으나 그러한 장면을 연출케 되는 그들의 심경은 미상불 보는 이에게까지 눈물을 자아내게 된다. 그들은 그처럼 하고도 바라는 빗방울을 보지 못하는 때에 하늘을 원망치 아니치 못하게 된다.
 
6
人事[인사]를 人事[인사]대로 닦지 못하고도 하늘을 원망하는 것은 사람의 상정인데 인사는 인사대로 닦고도 바라는 것이 되지 않는 때 그들이 평소에 믿고 바라던 하늘을 저주하게 될 것도 또한 무리라 할 수 없는 일이다.
 
7
그렇듯 바라던 비가 한여름이 다 지난 지금에야 내리었다.
 
8
바라고 바라던 나머지에 산과 들에 흐르던 한독[旱毒]이 풀리고 초조하던 인심이 다소 완화되었다고 하면서도 어쩐지 한여름의 가뭄을 몰아가던 비와는 다른 느낌을 준다.
 
9
한여름의 焦土[초토]를 적시던 비는 느긋한 맛이 있었고 기름기가 흘렀다. 그러나 이제 벌레 소리에 흔들리는 대지에 내리는 비에는 쓸쓸한 맛이 흐르는 줄 모르게 흐르고 있다. 그렇게 보니 그런지는 모르나 방울방울에 젖은 마당가 풀잎들은 어색한 표정으로 지나간 날의 영화를 돌아다보면서 무거운 한숨을 짓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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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뿐 아니다. 사람도 여름비는 맞으면 맞는 족족 없던 기운이 샘솟듯 솟을 것처럼 豪壯爽快[호장상쾌]한 맛이 나지만 한번 아슬아슬한 기운에 젖은 가을비를 대하면 으늑하고 푸근한 방을 찾아들어서 모든 것을 명상하고 싶고 추억하고 싶다.
 
11
파득거리는 綠葉[녹엽]에 듣는 빗소리는 소리소리 뻗어나가려는 새 생명의 약동의 속삭임이나 시들어가는 잎새를 잎잎이 울리는 가을비 소리는 지나간 꿈을 추억케 한다.
 
12
그 꿈은 슬픈 꿈이다. 그리운 꿈이다.
 
13
스스로도 까닭 모를 슬픔과 그리움에 온 신경이 고요히 잠겨서 그윽한 끝없는 저편으로 한 걸음 두 걸음 옮기는 것 같다.
 
 
 

2

 
 
15
가을 기운에 젖은 빗소리는 사람의 신경을 울리는 소리다.
 
16
봄비 소리는 사람의 동경의 나라로 유인하는 듯이 로맨틱한 정서를 일으키고 여름비 소리는 갑갑한 가슴이 툭 트이는 호장한 기분을 일으키나 가을비 소리는 처량하다. 소리소리 온몸의 신경을 거문고 줄 울리듯 울리면서 뼛속까지 스며드는 그 소리는 처량한 맛이 어디라 없이 흐르고 있다. 어쩐지 모든 것이 그립고도 슬프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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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도 맘이 찬물에 젖는 듯이 온몸이 으슬으슬 줄어드는 것과 같다. 여름에는 창살같이 내리는 비를 맞고 싶다가도 가을에는 빗발을 피하고 싶은 기분이 들게 되는 것도 가을비가 처량히 들리는 까닭이다.
 
18
어느 때에 듣든지 그러한 기분이 나지만 깊어가는 밤에 들으면 더욱 그렇게 들린다. 여름비는 불을 끄고 듣는 것이 한결 시원스럽고 가을비는 등불 밑에서 들어야 맛이 난다.
 
19
깊어가는 가을비 밤 고요한 등불 밑에서 읽던 책을 덮어놓고 창밖에 듣는 빗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그윽한 정조에 싸이는 맘은 흐르는 빗발을 찾아가는 줄 모르게 떠나간다. 한 층계 지나 두 층계 지나 아득한 옛날로 올라간다. 때로는 그리운 이의 자취를 따라 들을 지나고 산을 넘기도 하고 때로는 어린 아이가 되어 어릴 적 동무들과 기억에 희미한 고향의 좁은 길로 돌아 다니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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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그리운 것은 고향이다. 고향을 떠난 지 꼭 10년이되 흐르는 세월로 인하여 思鄕[사향]의 정회는 조금도 스러지지 않았다. 비단 가을뿐이랴.
 
22
사시를 통하여 고향이 그립지 않은 때가 없다.
 
23
그러나 여느 때보다 故園[고원]을 그리는 情[정]은 가을에 더욱 깊어진다. 가을에도 비가 내리는 깊은 밤에 더욱 그러하다. 창밖에 비가 듣고 마루 밑에서 귀뚜라미 귀뚤거리는 밤에 객창에 누웠으면 천리에 오락가락하는 맘은 고원 생각에 흔들린다. 고향으로 간대야 부끄러운 일뿐이요 누구 하나 반갑게 맞아 줄 이도 없건만 고향이 그립다. ‘思家步月淸宵立 憶弟看雲白目眠[사가보월청소립 억제간운백목면]’ 은 그래도 돌아갈 집과 맞아 줄 아우나 있지만 그것저것 없는 사람에게도 고향은 그리운 것이다. 사람들이 흔히 봄에 집을 나갔다가 가을에 돌아오게 되는 것도 그러한 정회의 말미암음이 많을 것이다. 튼튼한 사람의 맘도 그렇게 흔들리거늘 하물며 병석에 누운 사람의 맘이랴. 異域病席[이역병석]에 누워서 머리맡에 찾아드는 빗소리를 들으면 예민한 감성은 눈물을 자아내고야 말게 된다. 공연히 세상 밖에 쫓겨난 듯이 적적하고 길지 못한 생명이 느껴지면서 고향이 그립고 친구들의 얼굴이 그리워서 가슴이 짜릿하여 흐르는 눈물을 금할 수 없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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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어떤 여승의 글구가 생각난다.
 
26
九月金剛蕭瑟雨, 雨中無葉不鳴秋.[구월금강소슬우,우중무엽불명추]
27
十年獨不無聲淚, 淚濕袈衣空自愁.[십년독불무성루,루습가의공자수]
 
28
곡진한 설움이다. 그가 여자의 몸으로 어찌하여 머리털을 자르고 중이 되었는지는 모르나 28자에 나타나는 그의 설움은 그와 시대를 달리한 뒷사람의 가슴까지도 울리고 남음이 있다.
 
29
空自愁[공자수]라는 것을 보면 그는 그저 塵緣[진연]을 못 끊은 것 같다. 塵緣[진연]을 못 끊었으니 설움이 더욱 클 것이다. 10년이면 사람의 생애에 있어서는 기나긴 세월이다. 그러한 10년을 금강산 외로운 승방에서 보내었다. 끊이지 않는 속진의 애착을 억지로 끊으려고 애쓰면서 10년을 보내는 사이에 끊어지라는 진연보다 그의 간장이 얼마나 끊어졌으랴. 그러한 그에게 마른잎으로 잎잎이 울리는 蕭瑟[소슬]한 빗소리가 어찌 무심히 들렸으랴. 마른 잎을 울리는 비가 소리 없이 가사를 적시는 그의 눈물이 되었을 것이다.
 
30
창밖에 듣는 가을비 소리는 보통 때도 그처럼 만인의 설움을 자아내거늘 하물며 금년이랴. 벌써 이 빗소리에 눈물지은 이가 얼마이었는지 ?
 
31
이 빗소리가 그 소리 아닌지도 모른다.
 
32
오오 때늦은 비여 !
【원문】소연(蕭然)한 우성(雨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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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서해(崔曙海) [저자]
 
  동아 일보(東亞日報) [출처]
 
  1929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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