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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12.28
오장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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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단의 회고와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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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가장 절박한 때에 있어서 그 사람의 성실을 알 수가 있다. 이러한 의미에 있어서 8월 15일 이후의 우리의 시단을 회고하는 것은 옳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 회고에서 모든 것을 선의로만 해석하여 온 나의 생각이 엄연한 사실 앞에 부딪힐 때에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를 통절히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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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한때 붓대를 꺾이었고 또한 스스로 꺾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꺾이고 꺾은 것은 한낱 외관상의 것이요 적어도 조금만큼의 성실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내용이야 어느 것이든 스스로의 불타오른 생명력과 함께 그 노래도 계속해야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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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5일 이후는 이 점에 있어서도 전일 외관상으로나마 붓대를 꺾인 시인들이 다시 스스로의 노래를 세상에 물어 만인 앞에 자기의 성실을 심판받아야 옳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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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처럼 전에도 없고 후에도 없을 우리 민족의 혼란기를 당하여 우리의 시인들은 무엇을 노래하였는가. 이네들은 해방 즉후(卽後) 를 당하여 이구동음(理口同音) 으로 결혼식장에서 축사와 같은 말을(이것도 시라고 할 수 있으면) 노래하였을 뿐이다. 그리고 이 중에도 좀 체면을 아는 사람의 하나둘은 또 하나의 쇠사슬이 있다는 것을 부언하였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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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수작도 처음 한 번쯤이면 좋다. 그러나 전에 붓대를 들었었다는 경력 그거 하나만으로 많은 지면을 얻은 이네들이 곳곳에서 축사에 분주하다는 것은 아무리 선의로 보아도 이것은 참으로 가엾은 정도가 아니라 추태다. 시를 형식만으로 여기고 또 여기(餘技)로만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아무리 자기를 변명한대도 그는 그의 생활을 형식으로 또는 여기로밖에 생활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1910년대 우리의 선배들이 그때까지에 군림하던 한시의 지위를 땅 위에 끌어내릴 때 나는 그분들의 본의로 다만 형식 파괴와 외방문화 이입의 추종으로 보지 않는다. 그보다 훨씬 더 중대한 이유는 참다운 시의 생명력을 그 당시 썩은 선비들의 완전히 형식화한 여기 속에서 내어오는 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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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5일 이후로부터 지금까지 노래 부른 시인들이여, 그대들은 어떠한 노래를 불렀는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라. 물론 이 중에는 좋은 시를 그리고 옳은 정신을 보여준 이도 있었다. 또 전에는 별로이 눈에 뜨이기 어렵던 현실에의 적극 관심을 보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만약 시단이라는게 있다면 이 시단에 흐르는 도도한 꾸정물 속에 그들의 힘은 너무나 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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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 절실히 느끼는 것은 우리의 당면한 긴급 문제는 우리 동맹의 대외적인 선언 강령보다도 성명서보다도 우리 동맹 안에 있는 멋모르고 덤비는 형식주의자(결과에 있어서) 또는 가장 엄숙한 생활 투쟁 속에서 노력을 게을리 하여 저절로 되는 형식주의자(결과에 있어서)들의 청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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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사람이여 나오라. 모든 선배들이 일제의 폭압 밑에서도 굳세게 싸웠다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그리고 가슴에서 우러나오고 진정 노래하지 않으면 못 견딜 그런 때에 써진 것이 아니라면 기왕에 붓을 들었던 사람들은 이 중대한 현실에서 아까운 지면을 새 사라들에게 양보하라.
【원문】시단의 회고와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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