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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8월 동경의 가장 진보적 신극단체인 新築地劇團[신축지극단]과 新協劇團[신협극단]의 해산 선언이 있었고, 이어 새 극단의 아성이던 築地小劇場[축지소극장]이 국민연극장으로서의 新裝[신장]을 하게 됨에 따라 30년來[래] 대중과 지식층에 고도의 예술제공으로서 친밀하던 신극은 이로써 완전히 소멸되었다. 近衛首相[근위수상]의 신체제운동에 호응하야 문화도 각 부문에 있어 재편성을 신체제에 屬應[속응]해야 하게 되었다. 국민연극 단체로서의 시스템을 具有[구유]케 한다고 하였다. 그런데 특기할 것은 해산한 신축지극단과 신협극단의 멤버가 그대로 합동하는 것은 절대로 불허한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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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극은 널리 극단 전체에서 수립될 것이지 신극을 모태로 해야만 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나는 과거의 신극인으로서 앞으로의 국민연극 수립에 있어 신극과 국민연극이 어떻게 연관되어야 하고 신극이 어떠한 발족으로 국민극을 具現[구현]해야 할까를 論爲[논위]하기 위하야 신극과 국민극의 본질을 考究[고구]해보고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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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극이란 과거의 연극에 만족할 수 없는 사람들이 전통에 반기를 들고 새로운 이념에서 출발한 연극이란 것밖에 일정한 定義[정의]를 붙일 수 없다. 상업주의의 연극에 대한 봉화이고 소극장을 아성으로 한 것이 공통된 조건이었을 뿐, 그 표방과 이념에 있어서는 그 나라 그 나라의 劇壇[극단]과 문화의 상황에 따라 달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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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란서의 ‘앙트와느’의 자유극장은 낭만에 대한 반기였고, 독일의 ‘브람’과 ‘술란텔니르킨’자유극장은 자연주의 연극의 고조였었다. 모스쿠바의 藝術座[예술좌]는 寫實[사실]을, 매이엘홀리드는 寫實[사실]을 배격한 환상적인 것의 순수한 이념을 매개로 한 것을 등등, 모두가 다른 것이다. 그리고 같은 나라에 있어서도 앙트와느의 자유극장과 쟈크코포의 붜이유·콜롬비아座[좌]는 그 이념에 있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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內地[내지]의 신극도 물론 이들 서구의 신극과 다를 것이고 또는 당연히 달러야 할 것이다. 坪內[평내]박사의 근대극협회와 島村抱月[도촌포월]의 예술좌도 신극임에는 틀림없으나 이것은 근대극이라 부르는 것이 타당하겠다. 그러므로 신극이 그 이론이나 실제에 있어서 결정적으로 선구적 전위적 역할을 한 축지소극장의 창설로 신극운동이 발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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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신극이란 그 본질과 목적에 있어 구구인데, 신극이라면 곧 강렬한 이데올로기에 貫流[관류]된 연극을 상상하게 되고, 신극인 하면 過激[과격]한 언론자 言論者[ ]를 연상케 하게 된 원인은 那邊[나변]에서 나왔는가? 그것은 서구의 신극이 예술이론을 근거로 한 혁신인데 비하여 내지의 신극에는 더 높이 사상성이 강조돼 있었기 때문이다. 現今[현금]에 이르기까지 축지소극장을 통한 단체의 대부분이 좌익적 색채가 농후했고 그 근저를 貫流[관류]하는 예술관은 終始[종시] 좌익적 세계관에 입각했었다. 그러므로 현존하는 文學座[문학좌]나 東龍[동룡]같이 오히려 사상성을 배격하고 문학성을 高張[고장]하는 신극단체는 신극의 주류에서 먼 듯하나 엄연한 신극단체라는 것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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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신극은 구 土月會[토월회] 계통을 받은 劇硏座[극연좌]를 모태로 수립되었는데 여기에는 제일 표방이 서구연극의 소개와 신극적 무대 기술을 확립할 제2세적 연극인의 육성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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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상으로서 신극이 이데올로기를 매개로 한 연극이론에 입각지 않은 것이란 것을 거듭 해명한 셈이다. 그러나 이제 국책이 一路[일로] 선명해졌고 국민의 진로는 결정되었으므로 문화나 연극이나 전체가 국가의 이념에 벗어난 문화는 국민문화로서 존재할 자격이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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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극이란 어휘가 한 시국어처럼 등장케 되자 혹 일부에서는 흔히 나치스 독일 국민연극과 동일시하는 듯한 경향이 없지 않은 듯하다. 그러나 나치스 宣傳省[선전성]에 속하야 정치의 방편적 역할을 하는 독일과, 국민의 정신을 主因[주인]으로 하는 우리의 연극은 같은 전체주의의 정치형태이되 독일과 我國[아국]이 다른 것과 같이 또한 다른 것이다. 나치스에서는 국가가 國費[국비]로써 한 정치기관 선전기관으로서 사용하되 我國[아국]에서는 국가가 통제·협력·지도는 할지언정 관리는 아니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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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나치스 국민연극이란 대체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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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스 연극이론의 지도자 게르라흐 베르나우의 말을 빌면 ‘독일의 국민연극은 풍토와 국가와 儀禮[의례]의 3요건을 具有[구유]한 表現[표현]이다’라고 정의했다. 즉, 환경을 언어로 표현하고 정치를 詩化[시화]하고 국민적 신앙을 동작으로 구현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3요건이 歸趨[귀추]하는 곳, 즉 이 3요건을 貫流[관류]하는 것은 전체의 유일한 단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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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곡에 있어서는 외국의 재료는 불가하고 국민적 제재의 撰的[찬적]이 필요케 된다. 또 추상적 이상주의는 단순하고 稠剛[조강]한 국민의 취미에는 영합지 않으므로 전체로 尋常[심상]한 서민을 위한 것이 아니면 안 되게 된다. 또한 국민의 같은 표현이라도 정치적 약진이 주제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하우프트만의 〈職工[직공]〉이나 〈홀로리안·가이에르〉》에는 한 사람의 지도자에 의하여 구체화된 건설적 이념이 없기 때문에 독일의 이 최고 시인도 국민극의 작가는 못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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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한 具解[구해]가 외국의 작품에도 적응되어 세익스피어의 〈하므레트〉는 그 퇴영적 회의적 虛强質[허강질]로 말미암아 국민연극의 주인공적 인물은 절대로 못 된다는 것이다. 즉, 이상을 일괄해보면 나치스의 연극은 나치스의 세계관과 불가분한 것이고, 예술은 정치의 詩化[시화]로서 그 업적을 남길 수 있다는 것으로 된다. 아까 말한 바와 같이 국민연극이란 숙어가 등장한 지 불과 5, 6개월은 지나지 못함으로 우리에게는 아직껏 그 이론이 확고히 수립되지 못했다. 다만 국민 전체가 국가적인 연극을 요망했고, 연극의 당사자들도 자기들의 연극을 국민생활에 根低[근저]해야 되겠다고 각성을 하고 있었던 것만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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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寶劇團[동보극단]은 자기들이야말로 국민연극이라 하였고, 前進座[전진좌]는 금반 호평을 받은 〈陸奧宗光[육오종광]〉이야말로 국민극의 대표작이라했고, 新國劇[신국극]은 신국극 대로 澤正[택정]시대부터 국민연극의 수립에 盡瘁진췌]해 왔으므로 이제야 그 開花[개화]를 보았다고 하고, 조선에 있어도 老童座[노동좌]가 國民座[국민좌]라고 간판을 改漆[개칠]하였다. 이러고 보면 대체 어느 것이 국민극인지 그 정체를 파악할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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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구체화의 방법에 있어서는 각 극단 구구하지만, 최고의 목표가 국민의 이념에 일치된 그 최후의 선에서는 동일한 것일 것이다. 국민적 의식에 근저를 두고 국민의 지지를 받으며 국민을 위하야 행해지는 예술적 업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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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이란 단일의 예술이 아니고 종합예술이기 때문에 일언으로 국민극이라 해도 널리 문화 전역을 代言[대언]하게 될 것이다. 즉, 희곡이 물론 국민문학이 되어야 하고, 장치가 국민미술로, 음악이 국민음악으로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이 일조일석에 성취할 성질의 것은 물론 아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이 극을 수립하기 전에 徐徐[서서]할 때, 시국은 급속도로 문화를 동반치 않고 刻刻[각각] 전개해간다. 여기에 따라 그 이론 수립의 긴급성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제 국가가 예술의 전면적 지도 통제를 하게 되어 國民總力聯盟[국민총력연맹]에서 문화부를 설치하고, 본부의 斡旋[알선]으로 연극협회가 탄생되었으므로 不遠間[불원간] 추상적 이론이 구체화될 기운이 농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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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국민연극이며 그 무대기구와 극단 씨스템은 어떻게 달러야 하느냐 아직 ? 현재 국민연극으로서의 이론을 구체화한 무대를 內地[내지]에서도 보여준 극단이 없고 희곡으로서도 上泉秀信[상천수신]의 〈雷雨[뇌우]〉, 藤森成吉[등삼성길]의 〈農民物[농민물]〉1막과 眞船豊[진선풍]의 〈人海[인해]〉를 볼 뿐 그것도 前記[전기] 2편은 이동극장용 短篇物[단편물]이므로 이렇다 할 희곡은 하나도 발표되지 않은 셈이다. 그러므로 나는 독일의 예를 들어보기로 하겠다. 여기서는 제일 먼저 심리주의적 분석적인 연극을 배격한다. 이것은 그들의 세계관과 일치되는 것이다. 무릇 靈[영]적인 것의 표현을 구비치 않은 예술은 없을 것이다. 이 속에는 인간의 奧底[오저]에서 湧出[용출]하는 극히 자연적이고 중추적인, 例擧[예거]하면 모성애나 민족애 같은 것과 또 하나는 외부의 자극이 원인이 되어 발산하는 주변적, 말초적인 것이 있다. 그러므로 예술에도 이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게르만 민족의 영역을 지배할 수 있는 것은 전자의 중추적, 靈[영]적인 표현이라는 점에서 심리주의적, 분석적 희곡은 배척된다. 世界演劇史上[세계연극사상]에 크나큰 에폭을 期[기]한 오트브람의 자유극장은 이 점에서 보아 진실한 독일연극은 아니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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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에 있어서는 세계적 대연출가 막스 라인하르트도 배격된다. 그는 희곡보다 무대기술, 연출술에 치중함으로 세익스피어의 고전도 방자한 驅使[구사]를 참지 않으면 안 되게 된다. 그러므로 그는 무대의 魔術師[마술사]는 될 수 있을지언정 독일 국민연극 이념에 봉사할 국민적 연출가는 못 된다. 즉, 제일 중요한 것이 이념을 중심으로 한 희곡이고, 이 독일 국민극에 절대로 봉사하지 않는 연출가의 연극은 국민극이 아니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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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술에 있어서도 前記[전기] 중추적 영적 표현이 적응된다. 즉, 분장술이나 에로쿠션이나 동작은 표면적이고 연출가에게서 오는 주변적인 것에 불과하므로, 연기자가 극중의 인물을 통하야 배후의 국민의 심금에 접촉지 못하면 국민극의 우수한 연기자가 못 된다. 그러므로 이러한 연극이론에 융합하야 前景[전경]에 진출한 것이 祝祭劇[축제극]이다. 이 축제극은 앞에서 말한 게르나흐 베르나우가 정의한 국민연극의 3요건 중의 하나인 국민적 신앙의 표현이다. 신성한 독일의 운명과 관련하는 것에서 희곡적 재료를 찾게 되었고, 게르만 신화의 更生[갱생]에 주력하야 往昔[왕석]의 儀禮劇[의례극]이 부흥되었다. 心靈[심령]의 신비적인 힘에서 나오는 연극 그것은 자연히 국민에게 감염하야 필연적인 律動[율동]으로 국민의 心胸[심흉] 속에 국가의 운명을 각성시키고 침윤하는 것이므로 국민적 운명의식의 연극은 의례적 신앙적 장엄한 神事[신사]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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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은 오랫동안 잃었던 축제극을 국민극으로 재흥함에 이르러 ‘르넷상스 이후의 독일 연극은 필경 外道[외도]를 걸어온 것에 불과하다. 레싱그의 推擧[추거]로 세익스피어가 독일에 소개된 것은 독일에 대한 크나큰 불행이였었다’ 라고까지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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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記[상기]로 미루어볼 때 국민연극이란 어느 의미로 보아 그 높은 이념과 함께 고도의 무대기술이 요구된다. 이 장엄한 국가적 예술을 지도하고 개척해나갈 사람은 종래의 商業主義的[상업주의적] 연극에 汨沒[골몰]했던 극인들이 容易[용역]히 이룰 수 없는 領域[영역]일 것이다. 여기에 終始[종시] 절대로 우수한 무대기술과 이론을 가지고 있는 新[신]극인들이 새로운 발족으로 요망되는 이유가 있다. 물론 국민연극에도 앞에서 말한 서민을 상대로 한 것이어서 이동극장을 조직해가지고 농어산촌으로 순회하야 단순한 오락을 제공하는 것도 있지만, 이것은 국민연극의 본질을 구현한 것은 아니다. 近者[근자] 국민연극하면 곧 이동극장을 연상하지만, 이것은 어데까지든지 부차적이지 핵심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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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연극인들은 이 독일 국민연극을 참고로 하고 어떻게 새로운 국민연극에의 출발을 꾀해야 할 것인가? 조선의 신극은 최고 목표를 예술의 至上[지상]에 두었었고 국민연극은 그 최고 표방을 국민의 이념에 두게 됨으로 우리가 그대로 간판만 갈아붙이고 나와서는 진정한 영구적인 수립은 불가하다. 먼저 종래 자유주의적, 예술지상주의적 예술관을 일체 청산하고 극작가와 관객을 무대를 통하야 국민적 이념에 집중시킬 用意[용의]를 해야 할 것이다. 이 장엄한 국민연극은 고도의 무대기술을 매개로 한층 좋은 성과를 내게 될 터이므로 신극인들이 가진 절대 우수한 성능을 최고한으로 발휘할 수 있게 해야 할 것이다. 그러랴면 경제적 基礎[기초]를 확고케 해야 하므로 그 운행방침을 철저히 考究[고구]해야 할 것이다. 국가 백년의 대계에 隨伴[수반]할 연극이 종래의 극단처럼 수회 공연으로 분산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일방 국민연극연구소를 설치하고 아직 미흡한 이론을 서로 披瀝[피력]하고 검토하고, 당국의 지도를 받아 국민정신의 把握[파악]에 힘쓰며, 일방 全鮮府所在地[전선부소재지]에 연구 지부를 설치하고 巡演時[순연시]에는 협력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극단의 지도자는 무대기술의 룰러로서의 역할보다도 사상면의 룰러로서 극단 전원을 통솔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도자만이 국가정신에 座員[좌원]을 이끌어도 단원 전부가 각기 심적 용의가 없어서는 물론 안 된다. 단원이 전원 일체가 되어서 善[선]히 할 수 있을 것이다. 전일 內地[내지] 文學座[문학좌]의 岩田豊雄[암전풍웅] 씨는 국민연극이야말로 최고의 신극이라고 하였다. 여기에는 관중에 영합할랴고 비속한 희곡이 選定[선정]될 리가 없고, 연기자가 誇張[과장]할 필요도 없고, 국가정신을 통한 배우와 작가와 관중만의 크나큰 감격이 있을 뿐일 것이다. 독일의 예는 어느 정도 우리에게도 적응될 것으로, 희곡은 이념을 중심으로 해야 될 것이다. 이 희곡이란 작가가 국가적 심금에 접하여 그 內底[내저]에서부터 우러나올 것이므로 앞으로 창작될 것이지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으나 그 제재의 선택은 현재의 우리들로서는 대동아공영권 확립의 국책에 順應[순응]할 건전한 건설적인 것이어야 할 것이고 指導[지도]적인 것이어야 할 것이다. 종래의 프롤레타리아 연극처럼 메가폰을 들고 슈프레히·콜을 할랴면 가두나 연단에 설 것이다. 우리는 어디까지든지 무대를 통해서 이념을 명백히 구체화하고 생명화해야 한다. 연극은 강의가 아니고 예술이므로 數[수]시간 동안에 관중으로 하여금 권태를 느끼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므로 연극의 본질에서 이탈되어서는 안 된다. 생산확충과 국방충실로 국민은 一意[일의] 職域奉公[직역봉공]에 心勞[심노]하고 있으므로 국민들이 자기들이 가질 수 있는 시간에는 건전한 오락으로 그 피로를 잊게 할 것은 총후 국민을 위하야 가장 의의 있는 것이다. 더욱이 農山漁村[농산어촌]은 전연 문화와 거리가 멀어 민속으로서 존재하는 農樂[농악]이나 놀이 외에는 오락에 접할 기회가 없다. 국민연극은 공공극이니만치 이들을 위하야 봄에는 어촌, 冬節[동절]에는 농촌 등으로 이동식 巡演[순연]을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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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나는 조선의 신극은 內地[내지]의 신극과 달러 이데올로기를 매개로 수립되지 않었던 것과, 국민극의 백년대계적 이론의 수립과 그 실천에는 연극에 대한 체계적 이론을 가졌고 내면적인 배우술과 절대 우수한 무대기술을 가진 신극인들이 가장 적합한 인물이라는 것을 附信[부신]하며 무질서한 붓을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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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보》1941. 2. 7·8·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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