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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미년 3월 1일 ◈
◇ 제 1 막 (1918년 10월) ◇
카탈로그   목차 (총 : 5권)     처음◀ 1권 다음
1946
함세덕
1
기미년 3월 1일(전 5막)
 
2
이 일편(一篇)을 삼가 기미년(己未年)혁명운동에 순(殉)한 젊은이들의 영전(靈前)에.
 
 
3
戱曲[희곡]
4
己未年[기미년] 三月[삼월] 一日[일일](禁無斷上演上映[금무단상연상영])
 
5
最後[최후]의 一人[일인] 最後[최후]의 一刻[일각]까지 民族[민족]의 正當[정당]한 意思[의사]를 快[쾌]히 發表[발표]하라.(獨立宣言書[독립선언서] 公約[공약] 第二章[제2장])
 
 
6
제 1 막
 
7
인물:
8
사이풀 (米國人[미국인] 선교사, 교장)
9
권상갑 (權尙甲 ; 교무주임, 男[남] 50세)
10
나카니시 하마 (中西浜[중서빈] ; 日女[일녀], 역사교사 겸 生徒監[생도감], 35세)
11
최순천 (崔順天 ; 3년 담임, 女[여] 23세)
12
정향현 (鄭香峴 ; 3년 女[여]
13
목계숙 (睦桂淑 ; 3년 女[여]
14
진국진 (陳菊珍 ; 3년 女[여]
15
손소복 (孫召福 ; 3년 女[여], 警部[경부] 孫圭鐵[손규철]의 딸)
16
다와라 (俵河[표하] ; 헌병소위, 警視總監部[경시총감부] 高等課長[고등과장]
17
손규철 (孫圭鐵 ; 형사)
18
노소사 (老小使 ; 舊韓國解散兵[구한국해산병] 나팔수)
19
3년 1조생(三年 一組生) 다수
 
 
20
서력(西曆) 1918년 10월.
 
21
구주대전(歐洲大戰)이 종식(終熄)할려는 무렵 경성재(京城在) 미인계(米人系) 사립 성화여학교(聖花女學校) 교주(敎主)겸 교장인 선교사 사이풀의 거실. 좌변(左邊) 정면 벽에 큰 세계대지도, 그 우에 기독의 겟세마네 -(山上祈禱[산상기도])의 그림들. 그 이외엔 집무용 테 - 불과 응접용 셋트 일식(一式), 뻬 - 지카엔 불이 피였다.
22
좌변에는 직원실로, 우변에는 복도로 연(連)하는 도어 2개.
23
정면엔 커 - 텐을 제친 아 - 치식 창문, 창외(窓外)에 큰 은행나무 1주(一株), 그 뒤로 라이락의 꽃울타리, 울타리 너머는 교정.
24
막이 열리면 사이풀, 텅 비인 실내를 이리갔다 저리갔다 한다. 무슨 큰 사건이 생기어 처리할 길이 없나 보다.
25
교정에서 여학생들의 떠드는 소요, 낭하(廊下)를 이리저리 달리는 학생들의 발소래. 그 사이를 뚫고 교사들의 “빨리 돌아들 가라”, “빨리 돌아들 가라”, “곧바루 집으로 가야 한다” 등등의 규성(叫聲).
26
교무주임 권상갑(權尙甲) 들어온다. 흔히 볼 수 있는 무능력과 비굴의 표본이다.
 
 
27
사이풀   권선생, 아즉두 학생들이 아니 돌아가고 있습니까?
 
28
교무주임  네. 1, 2학년은 거의 다 돌아가구 3학년 애들이 이쪽 저쪽에 남어서 쑤군거리구 있습니다.
 
29
사이풀   대체 웨들 아니 돌아가고 있습니까?
 
30
교무주임  향현이 외 두 학생을 빨리 석방해달라구 하나 붑니다.
 
31
사이풀   석방이라니? 누가 체포했단 말이요? 감금했단 말이요? 조사가 끝나는 대로 집에 가두룩 할 테니 딴 애들은 빨리 돌아가라구 하시오. 누가 보면 마치 스트라익크나 하는 것 같지 않소? (하고 성급히 책상 우의 초인종을 친다)
 
 
32
노소사(老小使), “불르셨습니까?” 하고 들어온다. 왕년의 무인(武人)의 풍모는 다 - 만 형형(炯炯)한 안광(眼光)에 겨우 찾어볼 수 있을 뿐, 하잘 것 없는 초라한, 그야말로 고쓰가이가 되고 말았다.
 
 
33
사이풀   다시 한번 파학나팔을 부시오. 학생들이 아즉두 아니 돌아가구 있나 보오.
 
34
노소사   네. 대가리 큰 처녀들이란 사내들보담 더 말을 안 들어먹이엽쇼. 제가 군대에 있을땐 상관의 명령이라면 그야말로 소굼섬을 물루 끌래두 끌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35
교무주임  또 시위보병(侍衛步兵) 제 1연대 이야기요. 어서 나갑시다. (교장에게) 그럼 다시 한번 타일러서 돌아가두룩 해보겠습니다.
 
 
36
교무주임, 노소사를 앞세우고 나간다. 이윽고 교정에 퍼져가는 유량(嚠喨)한 나팔 소래. 학생들의 떠드는 소래. 교무주임의 “빨리 돌아들 가라. 아니 돌아가면 단호한 처분을 할 터이다” 하는 함성. 낭하(廊下)에서 튀는 듯한 스맆퍼 끄는 소리가 나드니 일(日) 여교사 나카니시 하마(中西浜[중서빈]) 들어온다.
 
 
37
나카니시  (숨이 턱끝에 달 듯이 흥분해가지고) 고 - 죠 - 센세이, 사이 센세이한테선 아즉두 아무 통지가 없어요?
 
38
사이풀   그렇습니다.
 
39
나카니시  그럼 그 주모자인 데이고 - 갱〔鄭香峴[정향현], 보구게이슈구〔睦桂淑[목계숙], 징기쿠징〔陳菊珍[진국진]은 끝까지 자기들 죄를 고백지 않는단 말씀이에요?
 
40
사이풀   그렇습니다.
 
41
나카니시  아이 능글능글한 계집애들, 이쪽에선 확실한 증걸 잡구 있는데 끝까지 고집을 피면 그게 그대루 통할 줄 아남?! 이 사건요, 아무래두 저희들 손만으룬 해결되지 않을꺼에요.
 
42
사이풀   그래서 나두 이렇게 대단 걱정하고 있는 겁니다.
 
43
나카니시  고 - 죠 - 센세이, 이번 일은 3학년 데이고 - 갱, 보구게이슈구들만이 꾸민 일은 절대루 아닙니다.
 
44
사이풀   그럼?
 
45
나카니시  배후에서 그 기집애들을 조종하구 있는 사람이 있어요.
 
46
사이풀   최순천 씨 말입니까?
 
47
나카니시  그렇습니다.
 
48
사이풀   나는 그 선생을 믿습니다. 그리고 존경합니다. 그분은 인격잡니다. 결코 학생들에게 그런 일을 계획하라고 선동했을 리 없습니다.
 
49
나카니시  고 - 죠 - 센세이, 그인 껍질을 쓰구 있어요. 겉으루 봐선 파리 한 마리 못 죽일 보살님 같지만 속은 아주 무서운 사람입니다. 그인 아즉두 조선 독립을 꿈꾸구 있어요. 부산고등여학교 시대에 지금 그 데이고 - 갱들처럼 스트라익크를 주모한 건 고 - 조 - 센세이두 잘 아시겠지요. 그인 지금두 학창시대하구 똑같은 사상을 가지구 있습니다. 아니에요. 그때보담두 더 불온한 생각을 품구 있어요. 그인 사립학교에나 취직할 수 있지 공립학교엔 절대루 못 합니다.
 
50
사이풀   사람이 자유를 동경하고 조국을 사랑하며, 독립을 하구 싶어하는 것은 민족의 본능일 것입니다.
 
51
나카니시  (펄쩍 뛰며) 본능이라구요? 그럼 죠 - 센징〔朝鮮人[조선인]이 독립운동을 하는 게 민족의 당연한 요구라구 하시는 말입니까?
 
52
사이풀   나는 그런 뜻으로 말한 것은 아닙니다.
 
53
나카니시  학생들이 해야 할 공부는 하지 않고 연판장에다 도장을 찍어가지고 카이젤이란 녀석한테 독립을 탄원하는 게 죠 - 센징 학생의 권리란 말이에요?
 
54
사이풀   그런 건 아닙니다.
 
55
나카니시  선생이란 자가 학생들을 충동이 시켜가지고, 국가에 대한 반항을 음모토록 하는 게 죠 - 센징 교사의 의무란 말이요?
 
56
사이풀   그런 건 아닙니다.
 
57
나카니시  고 - 죠 - 센세이, 여긴 아메리카는 아닙니다. 반도의 일부인 경성이에요. 이 승화여학굔 경기도 학무과와 총독부 학무국의 지도 명령에 복종치 않군 일시도 존속할 수 없다는 걸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58
사이풀   나 잘 알고 있습니다.
 
59
나카니시  잘 아시면 아까 하신 말씀은 취소하세요. 다시 한번 여쭤듸리겠습니다. 여긴 아메리카가 아니라 우리 일본의 영토에요. 그리고 학무국의 교육방침은 죠 - 센징을 훌륭한 우리 황국신민으로 맨드는 게 목적이지 결코 결코 독립사상을 장려하는 게 아니라는 걸 잊지 마십쇼.
 
60
사이풀   그것도 나 잘 알고 있습니다. 다 - 만 내가 말하고 싶은것은 최선생이…….
 
61
나카니시  고 - 죠 - 센세이, 이번 사건요 보통 사립학교에 흔히 볼수 있는 백지동맹이나 교사배척하군 성질이 달릅니다. 정치운동의 하나에요. 민족운동이에요. 여학교 3학년 정도의 두뇌루 국제정세와 전국의 동향을 파악할 리가 없지 않습니까?
 
62
사이풀   정향현은 두뇌가 명석한 아햅니다.
 
63
나카니시  고 - 죠 - 센세이 말씀대루 정향현이가 수재인 건 사실입니다. 성적두 평균 96점을 내린 쩍이 없어요. 허지만 결국 그건 학교성적이에요. 정치적 사회적 식견과는 근본적으로 달릅니다.
 
64
사이풀   그럼 아마 가족이나 혹은 친구의 영향을 받았나 보지요.
 
65
나카니시  영향은 가족에게서두 친구에게서도 받은 게 아니에요. 사이쥰덴 센세이한테서 받은 거에요.
 
 
66
이 때 교무주임이 들어온다.
 
 
67
나카니시  교 - 무슈닝 센세이, 마침 잘 오셨습니다. 그 사이센세이말입니다. 그이가 자기 담당인 수학시간의 삼분지일, 아니에요 반 이상일 꺼에요. 거진 전부를 일한합방, 불란서 혁명, 워싱톤의 독립전쟁 얘기루 보내구 있는 건 교 - 무슈닝 센세이두 잘 아실 껍니다. 그리구 교 - 무슈닝 센세이가 순시하시면 능청맞게두 시침을 딱 떼고 호 - 대이시기〔方程式[방정식] 얘길 시작하거든요. 네에, 소 - 데쇼 - 교 - 무 - 슈닝 센세이. 〔그렇지요? 교무주임 선생님〕 (하고 동의를 구하는 듯 주임을 본다)
 
68
교무주임  네. 내가 목격한 것만 해두 세 번이나 됩니다.
 
69
나카니시  음악시간은 더해요. 한 번두 우리 일본 노래를 가르치는 걸 본 쩍이 없어요. 해삼위(海蔘威)에 망명한 죠 - 센징 혁명가들이 부른다는 그 불온한 노래가 아니면 청승이 뚝뚝 떠는 조선 민요에요. 그래서 그 어린 것들한테 칼슈무 주사같이 민족의식을 집어넣주구 있어요.
 
70
교무주임  사실 최선생에 관해선 나두 여간 걱정하는 게 아닙니다. 3학년 일조가 우리 승화여학교에서 마치 불순분자의 소굴처럼 돼 있는 것두 나카시니 선생 말씀대로 최선생께 책임이 있다구 봅니다.
 
 
71
이때 노크 소래, 사이풀의 응낙을 최순천(崔順天) 들어 온다. 이지와 정열이 고요한 품성속에 흐르고 있는 23세의 처녀.
 
 
72
사이풀   최선생, 어떻게 됐습니까?
 
73
최순천   자긴 독립이란 생각두 못해봤을 뿐더러 독일이 연합국한테 승리하리라구두 생각지 않구 있다구 합니다.
 
74
사이풀   그건 정향현 양의 말입니까?
 
75
최순천   네, 그리구 국진이, 계숙이두…….
 
76
사이풀   그럼 자기들이 계획한 일 절대루 아니라구 한단 말입니까?
 
77
최순천   네.
 
78
사이풀   그럼 누가 했단 말입니까?
 
79
최순천   오히려 제가 묻고 싶은 말씀입니다.
 
80
사이풀   허지만 3학년 1조에서 계획했든 것만은 명백한 사실 아닙니까?
 
81
최순천   확실히 단언할 수야 없겠지만…….
 
82
나카니시  난 단언합니다. 연서하고 도장을 찍은 노 - 트 표지에 산노이찌〔三之一[삼지일]라고 확실히 씌여 있지 않어요?
 
83
최순천   3학년 1조라고만 썼지 일홈이야 어디 씌여 있었어요?
 
84
나카니시  고구고〔國語[국어]로 말해주세요. 교내에선, 특히 직원실에선 고구고를 상용하도록 시학(視學)한테서 여러 번 주의를 받구 있으니까요.
 
85
최순천   그리게 지금 국어로 얘기하구 있지 않어요?
 
86
나카니시  죠 - 센고〔朝鮮語[조선어]는 고구고가 아니에요. 고구고는 닛봉고〔日本語[일본어]에요. (하고 응원을 구하는 듯 교무주임을 본다)
 
87
교무주임  최선생, 고구고 상용문제는 전일 전국 교장회의에서…….
 
88
사이풀   (말을 가로채며) 권선생, 나는 그날 외국인들에겐 아즉 시기상조라구 했습니다. 그리구 우리들이 일본말로 능숙하게 회화를 할 수 있게 될 때까진 조선말을 쓰겠다구 내락을 얻었습니다.
 
89
나카니시  (무안하야) 우린 뭐 교장 선생님께…….
 
90
교무주임  그렇습니다. 저흰 교장 선생님께 여쭌 게 아니라……. 최선생께선 국어를 잘하시니까…….
 
91
사이풀   (그들을 견제하기 위하야 일부러 크게) 최선생, 그럼 나에게 최선생 개인의 의견을 솔직히 얘기해주십쇼.
 
92
최선생   무슨 의견 말입니까?
 
93
사이풀   최선생 담임인 3학년 1조에 이번 사건을 주모함직한 애를 전연 짐작하실 수 없습니까?
 
94
최순천   전연 짐작할 수 없습니다.
 
95
사이풀   최선생, 이문젠 주모자 몇 사람의 문제나 직원들의 책임문제에 끄치는 게 아닙니다. 학부과의 귀에 들어가면 이 승화학교의 운명까지도 좌우되는 중대한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짐작할 수 있는 학생이면 불러다 엄중히 심문을 해보는 게 좋을까 생각되는데……?
 
96
최순천   저두 거기엔 동감입니다.
 
97
사이풀   지금 최선생께서 남아 있으라구 한 정향현 외 두 아해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98
최순천   저는 도저히 그애들이 주모했다군 생각할 수 없습니다.
 
99
나카니시  허지만 사이센세이.
 
100
최순천   가만히 계세요. 미처 말을 끝내야지요.
 
101
나카니시  허지만 사이센세이.
 
102
최순천   가만히 계세요. 미처 말을 끝내야지요.
 
103
나카니시  도 - 소 - .
 
104
최순천   허지만, 나카니시 선생과 교무주임께서 정향현, 국진, 계숙 3인을 절대 자신을 가지시고 주모자로 지목하시므로 다른 애들은 전부 돌아가게 하고 그애 셋만 교실에 남겨논 후 두 시간 동안이나 달래두 보구 얼러두 보았습니다. 그러나 아까두 말씀한 바와 같이 일제히 함구하구 ‘모른다’구만 하니 전들 그 이상 더 어떻게 추궁하겠습니까?
 
105
사이풀   그럼 전연 부인한단 말입니까?
 
106
최순천   네.
 
107
사이풀   필적을 조사해볼 수 없습니까?
 
108
최순천   일기책을 내라고 해서 조사해봤습니다만, 탄원서의 글씨체완 전연들 달릅니다.
 
109
교무주임  문맥이나 문장으로 봐선?
 
110
최순천   반애들 일기를 매일 제가 읽구 있습니다만 그런 문장을 쓸만한 애가 없습니다.
 
111
사이풀   이거 대단 난처하게 됐습니다. 권선생, 무슨 좋은 방법 없겠습니까?
 
112
교무주임  글쎄요. 당사자들이 일제히 입을 봉하고 있다니까…….
 
113
나카니시  (암상이 잔뜩 나가지고) 고 - 죠 - 센세이, 저런 애들은 신사적으로 심문하는 게 첨부터 틀렸습니다. 도적놈이란 아푸지 않으면 결코 고백하지않는 법이에요.
 
114
최순천   그럼 생도들한테 고문을 해서 강제적으로 자백을 시키잔 말이에요?
 
115
나카니시  교장이나 직원은 학생을 취조할 권리가 없어요.
 
116
최순천   그런데요?
 
117
나카니시  사이센세이같이 미온적인 심문에 고백할 생도가 누구겠어요? 저애들은 첨부터 교장과 직원들을 우스꽝스럽게 보고있어요. 정향현이 그룹이 한 게 분명해요. 그 애들은 이번 사건뿐만이 아니에요. 자기들이 끝까지 자백 안 한다면 이우엔 당국의 힘을 빌리는 수밖에 없어요.
 
118
사이풀   (약간 당황하며) 당국이라니요?
 
119
나카니시  게이시소 - 감부〔警視總監部[경시총감부]에요.
 
120
최순천   그럼 헌병들한테다 넘긴잔 말이에요?
 
121
나카니시  그래요.
 
122
사이풀   나카니시 선생, 이번 일은 될 수 있으면 교내에서 우리 끼리 해결짓두룩 하십시다.
 
123
나카니시  사건이 여늬 사건이야지요? 우리 끼리 해결할 그러한 간단한…….
 
124
사이풀   허지만 나카니시 선생, 이 얘기가 당국의 귀에 들어가게 되면……?
 
125
교무주임  교장 선생님, 이 문젠 역시 당국의 힘을 비는 게 졸까 생각합니다. 나카니시 선생님 말대루 사건이 사건인 만큼, 교내에서 해결할려구 숨겼다가 나종에 경시총감부나 학무국의 귀에 들어가는 날이면 범인은닉죄루 교장 선생님과 저희들까지두 화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
 
126
최순천   나종엔 어떻게 됐든간에 지금은 교내에서 처리해야지…….
 
127
나카니시  (신경질적으로) 벌써 보고했어요. 이러쿵저러쿵 했댔자 소용없어요.
 
128
사이풀   그럼 도(道) 학무에도?
 
129
나카니시  네. 과장하구 시학한테두 각기 한 장씩 보낼 참이요.
 
130
최순천   그것이 직원으로서 생도들에게 취할 유일한 것이라구 생각하세요?
 
131
나카니시  그렇소. 어쩔 테요?
 
132
사이폴   나카니시 선생. 웨 그런 보골 나의 승낙도 없이 임의대루 하십니까?
 
133
나카니시  이번 사건은 정치문제에요. 죠 - 센징이 우리들 일본 사람한테 대한 반역이에요. 교장의 승낙을 안 받아두 당국에 보고할 권리가 있구 또 의무가 있을 꺼에요. (하고 팔딱팔딱 튀는 듯이 나간다)
 
 
134
       (침묵)
 
 
135
사이풀   최선생, 정향현 외 두 애를 이리 더리고 오시오.
 
136
최순천   네. (하고 밖으로 나간다)
 
 
137
       (무거운 침묵)
 
 
138
최순천의 인도로 정향현·목계숙·진국진 들어온다.
 
 
139
사이풀   거기들 앉으시오.
 
140
3인    (의자에 앉는다)
 
141
사이풀   당신들이 끝까지 아니 했다고 하는 이번 일을 내가 또 다시 되풀이해서 묻는 게 물론 불유쾌하겠지만, 나는 당신들의 진심을 다시 한번 듣고저 오라고 한것이오.
 
142
3인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
 
143
사이풀   설혹 당신들이 그런 일을 했다고 해도 도적질을 한 게 아니요, 교사배척의 동맹파업을 한 게 아니요, 당신들이 찾고저 하는 자유독립에 관한 일이라 나로서는 충분 동정하고 또 한편 가긍하다고까지 생각합니다. 이 생각은 여기 계신 최선생도 같으실 것이오. 그러나 여기는 어디까지든지 학교요 사회는 아니라는 것을 잊지 말기 바랍니다. 당신들의 본무는 수학에 있는 것이지 정치운동에 있는게 아니라는 것은 당신들도 다 잘 알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로서는 당신들 한 일은 아까 말한 바와 같이 동정하고 또 이해할 수 있으나 일교의 책임자로서 당사자를 찾아내서 책임을 지게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진실로 당신들이 한 일이 아닙니까?
 
144
3인    (무언(無言))
 
145
사이풀   (다시 다지며) 진실로 당신들이 한 일이 아닙니까?
 
146
3인    (무언)
 
147
사이풀   (흥분하야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하시오. 학무과와 헌병대에서 사람이 오기 전에.
 
148
3인    (헌병대란 소리에 약간 동요하야 서로 얼골을 바라보드니 다시 고개를 숙인 채 무언)
 
149
사이풀   돌부처같이 입을 다물고 있지만 말고 어서 대답을 하시오. 도에선 지금쯤 이 승화학교의 폐교문제를 회의중일 것이오. 당신들도 아다시피 학무과장은 나카니시 선생의 남편이십니다.
 
150
3인    (무언)
 
151
사이풀   나와 최선생은 교내에서 그냥 처리할랴고 했으나 나카니시 선생이 벌써 당국에다 보고를 하시고 말었다 합니다. 당신들 몇 사람 때문에 이 크나큰 학교가 문을 닫어야 옳겠단 말이요? 600명 생도와 22명 교직원이 교문을 나가야 시원하겠단 말이요? 당신 부모들과 오빠·언니들은 배우지를 못했기 때문에 나라를 빼앗겼든 것 입니다. 그러므로 당신들만은 가르치고저 가진 고난을 겪어가며 당신들을 이 학교에다 보내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당신들 몇 사람의 잘못으로 전교 600명 학생이 모두 공부를 못 하게 된다면 그 부모들이 얼마나 당신들을 원망하겠소?
 
152
3인    (의연 무언)
 
153
사이풀   오래잖아 헌병대에서 사람이 올 것입니다. 그사람들이야 나나 최선생같이 당신들한테 순순히 대하진 않을 것이오. 당신들이 저질른 짓이라 물론 그만한 각온 했겠지만 주모잘 찾기 위해서 다른 애들까지 헌병대에 불려가게 한다면 그게 무슨 꼴입니까? (책상을 내리치며) 어서 대답들 하시요.
 
154
3인    (부동(不動) 무언)
 
 
155
       [간]
 
 
156
사이풀   내려와 무릎을 꿇고 앉으시오.
 
157
3인    (의자에서 일어나 마루에 무릎을 꿇고 앉는다)
 
158
사이풀   내 앞에 고백하기가 싫으면 주 예수 크리스도 앞에 자백하시오. 너희가 너희 자신은 속일 수 있으되 나는 속일 수 없으리라 하셨습니다. 예수께선 당신들 왼편 가슴에 앉어 계십니다. 그러니 내가 기도를 올리는 동안 당신들 중에 이번 일을 주모한 사람은 눈을 뜨고 기도를 올리지 마시오. 주님께선 자기 자신을 속이는 자의 기도는 아니 받으십니다. (두 팔을 벌려 3인의 머리 우에 얹으며) 다 - 같이 정성된 맘으로 기도합시다.
 
159
3인    (엎대인다)
 
160
사이풀   거 - 룩하신 우리 여호와 하나님,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 승화여학교가 7년 동안 아무 연고없이 융창해오든 중 오늘 뜻하지 아니한 중대 사건이 일어나 학교의 운명이 좌우되게까지 경각에 이르렀습니다. 여기 엎대인 이 세 어린 양은 자기의 범한 과오를 스스로 고백지 못 하고 있습니다. 주여, 그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들의 가슴에 성부·성자·성신의 삼위일체 성신이 손을 얹으시어 그들로 하야금 자기의 행한 일을 고백케 하야 주옵소서.
 
 
161
이때 낭하에 거츠른 구두 발짜욱 소리와 대검(帶劍)소리가 나드니 나카니시의 안내로 고등계 과장(헌병 소위)과 형사(孫圭鐵[손규철]) 들어온다.
 
 
162
나카니시  (일부러 큰소리로) 고 - 죠 - 센세이, 경시총감부에서 오셨습니다.
 
 
163
사이풀, 기도를 “아 - 멘”으로 끝맺는다.
 
 
164
사이풀   (생도들에게) 다시 불를 때까지 교실에 가 기대리고들 있으시오.
 
 
165
정향현·목계숙·진국진 나간다.
 
 
166
고등과장  (명함을 내주며) 와다구시 고 - 도 - 노 다와라가 쇼 - 이데스. 〔고등계 俵河小尉[표하소위]입니다〕
 
167
사이풀   나, 교장 사이풀입니다.
 
168
고등과장  대강 이야긴 보고서로 보았습니다만 구체적인 것은…….
 
169
나카니시  (기대리고 있었다는 듯이 앞으로 썩 나오며) 와다구시가라모 - 시아게마쇼 -. 〔제가 이야기하지요〕 오널 아츰 둘째시간인 국사시간이였습니다. 아해들이 몰 - 래 책상 밑으로 리레 - 식으로 공책을 패스하고 있어요. 난 또 그저 저희들끼리 둘러보는 ‘부단세이지노 쇼 - 다이오 규 - 메이’〔武斷政治[무단정치]의 正體[정체]를 糾明[규명]함〕식의 회람신문인가 하고 내버려두었드니 너무두 얼골빛들이 엄숙하길래 때를 봐가지고 전광석화로 노 - 트를 집어챘습니다. 이것이 그거에요. (하고 노 - 트를 내준다)
 
170
고등과장  호 -. 지(血)데 가아다 데스네. 〔피로 썼군요〕
 
171
나카니시  그렇습니다. 진실로 자유와 독립을 사랑하고 일본의 식민정책의 철사에서 해방코저 하는 사람은 서명날인하라고 했습니다.
 
172
형 사   도장을 받아가지고 어떡허자는 작정입니까?
 
173
나카니시  이 끝장을 보십쇼. (하고 공책장을 넘겨주며) 독일 황제 카이젤한테 독립 탄원서를 보낼려는 거에요.
 
174
고등과장  일본과 교전중인 독일한테 말입니까?
 
175
나카니시  네.
 
176
고등과장  게시까랑, 지쓰니 게시까랑 하나시데스나. 〔당돌한, 당돌한 얘깁니다〕
 
177
나카니시  일본은 반드시 질 꺼라구 했어요.
 
178
고등과장  마게루? 바까니……. 〔지다니? 망할것들……〕 고 - 슈 - 왕〔膠州灣[교주만]을 봉사하고 찐다우〔靑島〕에 상륙해야 인도양(印度洋)으로 나갈랴는 동양함대와 육전대를 전멸시킨 건 대체 누구라는 거에요?
 
179
나카니시  물론 우리 일본이지요. 그런데 글쎄 그 기집애들은 독일의 승리를 믿구 있군요. 그것뿐 아니라 그 불량자 카이젤을 마치 구세주나같이 떠바치구 있어요. 그리구 그녀석한테 일본이 지나시장에 침략할려구 하구 있으니 그걸 방지하기 위해서라두 조선을 독립시키도록 해달라구 매달릴 작정이에요.
 
180
고등과장  아호 - 매, 도이쓰가 오이소래또 유루스까. 〔바보 같은 년들, 누가 그렇게 쉽사리 해준다드냐?〕 대관절 이런 당돌한 생각을 품구 있는 년이 누구에요?
 
181
나카니시  데이고 - 갱, 북게이슈구, 징기구찡 외 몇 사람의 그룹 이에요.
 
182
최순천   나카니시 선생, 무슨 증거루 그애들을 지명하세요?
 
183
나카니시  당신은 가만히 구구루 있어요.
 
184
최순천   그애들이 무고하게 잽혀가게 되는데 담임으로서 어째 가만 있을 수 있어요?
 
185
나카니시  그 기집애들은 이번에 한한 일이 아니에요. 한번인가 기미가요〔君が代〕를 바르게 불른 걸 들은 쩍이 없어요. 소뿌라·알트·빠리통·오리떼 합창두 그것보단 날 꺼에요.
 
186
고등과장  게시까랑, 지쓰니 게시까랑.
 
187
나카니시  기미가요는 그래두 난 폭이에요. 죠구고호 - 도구〔勅語奉獨[칙어봉독] 땐 으레 옆에 사람을 쿡쿡 찔르구 킬킬거려요. ‘징오모후니 고 - 소 고 - 소’〔朕思[짐사]ふ仁皇祖皇宗[인황조황종]를 징 어머니 궈서 궈서, 즉 황태후 폐하를 황공하옵게도 궈서 궈서 씹어 먹자는 거에요.
 
188
고등과장  지쓰니 후게이 데스나. 〔實[실]로 不敬[불경] 막심이군요.〕
 
189
나카니시  ‘구니오 하지무루고도 고 - 엔니’〔國[국]を肇[조]むること高遠[고원]に〕를 ‘감기를 시작하기 영원히’, 즉 천황 폐하께옵선 황감하옵게도 영원히 감기를 앓으시라는 거에요.
 
190
형 사   그렇다면 불경 막심인데요.
 
191
고등과장  광대무변한 일시동인(一視同仁)의 황은에 부익코 있는 반도의 학생으로서 참으로 죄당만사입니다.
 
192
형 사   과죠 - 상〔課長[과장]님〕, 이런 년들은 붙잡어다 한번 본때를 벼줄 필요가 있습니다.
 
193
고등과장  본때가 아니라 때려죽여도 션치가 않겠다. 고 - 죠 - 센세이,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194
사이풀   무엇을 말입니까?
 
195
고등과장  구주대전 말입니다.
 
196
사이풀   나는 우리 미국과 연합군이 승리할 것을 믿구 있습니다.
 
197
고등과장  그렇시지요?! 나두 동감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독일에다 독립을 탄원할려는 과대망상광이 데이고 - 갱인가 하는 바세기뿐만 아니라 일반 지식인들층에두 상당히 많은가 봅니다. 요전에두 그런 놈이 한 30명 드러나서 유치장에다 처박어뒀습니다.
 
198
사이풀   (탐지(探知)할려고) 그럼 그 사람들두 역시……?
 
199
고등과장  네, 그눔들은 유림(儒林)을 동원시킬 계획이었습니다.
 
200
형 사   범인들의 고백에 의하면 첨엔 100만 명의 연서로 할려구 했다는군요. 그러나 100만 명 도장을 받을려면 적어도 2년은 걸릴 것이므로 경학원 대제학(經學院 大提學)을 끼고 전국의 유생들을 동원시켜 단체적으로 그들의 서명날인을 받어가지고 천진에 있는 독일 총영살 찾어갈랴구 했었다구 합니다.
 
201
고등과장  일본 사람하구 당신의 조국 미국군대가 현재 피를 흘리고 싸우고 있는데 조선눔들은 독일이 이기길 바라구 있으니, 아무리 착하신 키리스토라도 그들을 용서할 수 있겠어요?
 
202
사이풀   허지만 우리 학생들은 그 사람들처럼 투철한 의식이 있어가지고 한 것도 아니고, 또 조직적인 것도 아니고, 그냥 단순한 애국심에서…….
 
203
고등과장  마아, 그 얘긴 나종 문제로 하고 그 데이고 - 갱인가 하는 애를 좀 불러주십쇼.
 
204
최순천   (결연히) 확실한 증거가 없는 이상 불를 수 없습니다.
 
205
고등과장  뭐, 불를 수 없어요?
 
206
최순천  
 
207
고등과장  경찰의 명령이오. 불러주시오.
 
208
최순천   아무리 경찰의 명령이라두 증거가 없는 이상 그애들을 당신들 손에 넘길 순 없습니다. 교원들은 학부형들한테서 학생들을 맡어가지고 있는 이상 그들을 보호할 의무가 있습니다.
 
209
고등과장  경찰은 그 대신 총독에게서 취조심문할 권리를 맡어가지구 있습니다.
 
210
나카니시  (얼굴이 주홍이 돼 가지고) 사이센세이, 증인이 있는데야 어떡허시겠어요?
 
211
사이풀·최순천  (이구동성으로) 증인이요?
 
212
나카니시  네, 동급생의 손쇼 - 후구〔孫召福[손소복]가 확실히 데이고 - 갱이라구 제 입으루 그랬어요.
 
213
최순천   (골수를 얻어맞은 듯 현기증이 일어나는 것을 겨우 진정하며) 손소복이가요?
 
214
나카니시  그래두 못 믿겠거든 아주 증인을 즉접 대면시켜드리지요. (직원실로 통하는 도아를 열고) 고쓰가이〔小使[소사], 고쓰가이.
 
 
215
노소사, 복도 훔치는 걸레를 든 채 들어온다.
 
 
216
노소사   불르셨습니까?
 
217
나카니시  산넨노 이찌구미노 손 - 쇼 - 후꾸〔3학년 1조의 손소복이〕 좀 불러와.
 
218
노소사   다 - 들 돌아갔습니다.
 
219
나카니시  나가봐. 있을 테니.
 
220
노소사   (중얼거리며) 요 쪽바린 부러진 젓가락으루만 먹구 살았나, 턱이 떨어졌나 고쓰가이, 고쓰가이 그저 말끝마다 반말이야. (하며 나간다)
 
221
나카니시  고 - 죠 - 센세이, 사이센세이, 지금 증인이 올 꺼에요. 허지만 크라스의 딴 애들한테는 비밀루 해주시기 바랍니다. 본인이 그럴 조건으로 일러줬으니까요.
 
222
최순천   염려마세요.
 
 
223
노소사, 손소복을 안내해주고 다시 나간다.
 
 
224
최순천   이리 가까이 오너라.
 
225
손소복   (가책에 고개를 못 든다)
 
226
최순천   주모자가 향현이라는 게 사실이냐?
 
227
손소복   …….
 
228
최순천   여기 있는 분들만 알고 절대로 비밀히 해줄 테니 조곰도 거리낄 것 없이 얘기해라.
 
229
고등과장  호오. 기미노 무스매쟈 나이까.
 
230
형 사   (머리를 긁으며) 헤헤헤.
 
231
나카니시  손쇼 - 후꾸상, 절대로 딴 사람들한테 비밀로 하기로 맹세했으니 안심하고 얘기하라, 데이고 - 갱이지?
 
 
232
손소복, 막 대답을 할려는 순간, 정면 창외(窓外) 은행나무 우에서 무엇이 쿵하고 떨어지는 소래. 이어서 학생 한 애가 창 뒤를 달려서 지나간다.
 
 
233
고등과장  무슨 소리에요?
 
234
나카니시  (달려가 창문을 열어보며) 나무 위에서 파술 보다 달아났나 봅니다.
 
 
 
235
이때, 도어가 열리며 말없이 정향현 들어온다. 일동의 시선은 일제히 향현에게로 쏠린다. 손소복, 그의 시선이 마주치자 탈토(脫兎)같이 도어를 차고 나간다.
 
 
236
고등과장  기미가 데이고 - 갱까. 〔네가 정향현이냐?〕
 
237
향 현   (냉연히) 그래요.
 
238
고등과장  카이젤에게 탄원설 내려는 이유는?
 
239
향 현   당신들의 그 야만적 무단정치에서 한시라도 빠져나오구 싶어서 조선의 자주독립을 청원할려구 했든 거에요.
 
240
고등과장  무단정치라니?
 
241
향 현   문화를 수립하고 경제를 부흥시키어 인민의 생활을 향상시키고 행복되게 하려는 정치가 아니라, 헌병 순사 군대의 삼중도로 조선 사람을 탄압하야 그들의 거사를 억제하고 인권을 유린하야 1,600만 민족을 영원히 이 지상에서 막멸할려는 당신들 정치의 대명사 말이요.
 
242
고등과장  그럼 우리는 조선인의 안녕질서의 유지자가 아니고 조선인의 자유와 재산의 보호자가 아니란 말이냐?
 
243
향 현   뿐만 아니라 표 없는 개를 잡을려는 쇄올개미와 몽둥이를 든 백정에 가깝다고 봐요.
 
244
나카니시  마아, 데이고 - 갱. 쇼 - 이도노 오에다 닷데. 〔소위님더러 백정이라고?〕
 
245
고등과장  총독부의 정치가 무단정치라면 어째서 학교를 설립하고 앨써 너희들을 가르칠려고 하겠냐? 아니 나온다는 여자를 가마를 태우다시피 하여 연필을 주고 공책을 주고 월사금도 안 받고 너희들을 가르칠려고 막대한 비용을 예산에 계산하는 이유는?
 
246
나카니시  그리게 말이요. 내무국의 작년도 교육비 예산은 30만원이요.
 
247
향 현   그건 당신들이 우리들의 문맹을 깨춰줄려는 게 아니라 우리들을 일본 신민을 만들려는 수단이요, 당신들의 충실한 개로, 머슴으로, 노예로 만들려고 하는 방편이예요. 당신들은 연필을 주고 공책을 주고 월사금을 면해줬다고 하지만 그 대신 우리말을 빼앗어가고 우리의 역사를 빼앗어가지 않았어요? 조선말을 못 하게 하고 당신들 일본말을 상용케 하고, 단군 대신 아마네라스 오 - 미까미〔天照大神[천조대신]을 머리에 집어넣어줬으며, 고유한 우리 민족의 역사·전통·사상·도덕·풍속 등 가운데서 온갖 미풍을 제거하고 괴상망칙한 당신들의 문화를 강제적으로 의식시킬려고 하고 있지 않어요? 조선의 4천년 역사와 일천육백만을 일본인으로 동화시킬려는 데 그까짓 교육비 30만 원이 많다 말이에요?
 
248
나카니시  마아, 고노고와……. 〔어쩌면 얘가……〕 (하고 얼굴이 푸르락 누르락한다)
 
249
고등과장  (폭발하려는 감정을 억제하며) 그럼 교육비 30만 원이 적어서 하는 말이냐?
 
250
향 현   작년도 경찰비가 150만 원이고 재판소와 감옥비가 137만 원인데 교육비 30만 원이 기형적 비례가 아니고 뭐예요? 30만 원 중에두 7만 5천 원은 당신들 일본애들 교육비 아닙니까?
 
251
고등과장  넌 뭐든지 이로메가네〔色眼鏡[색안경]로 보는 악질 습성을 가졌구나.
 
252
나카니시  죠센징 각세이와 젠부 히네꾸래데이마스. 〔조선 학생들은 전부 외져 있어요〕 우리 일본 아해들의 심상소학굔 현재 324교예요. 그런데 조선 아해들의 보통학굔 426교로 약 100개가 더합니다. 그런데도 우릴 무단정치라고 하고 배격하니 이런 억울할 데가 어디 있겠어요?
 
253
향 현   통계를 늘어놓실려거든 비례까지 늘어놓세요. 1,630만 9천명 조선 사람에게 426이면 3만 8,200명에 한 학교예요. 당신들 이수자 32만 1천 명에 324이면 987명에 한 학교 아니예요? 그것뿐이예요? 당신들은 소학이 6년제, 중학이 5년제인데 조선 사람은 보통학교가 4년제, 고등보통이 4년제예요. 수료연한에도 차를 두고 월사금에도 차를 두고 허다 못해 영어시간 수효에도 차를 두고 있지 않아요? 여기에선 최 선생님하고 나카니시 선생은 사립학교지만 월급에까지 차가 있어요.
 
254
나카니시  (최순천을 흘겨본다)
 
255
향 현   당신들하고 합방하기 이전에 조선에 사립학교가 2천이 넘었어요. 그런데 현재는 170밖에 안 되니 1,830개가 10년 동안에 준 셈이에요, 이게 웨 줄었어요? 당신들의 충복되기를 거부했기 때문이였지요? 전 한 학생으로 교육에 관한 숫자만 이야기했지만 이 차이(差異)가 조선의 노동시장이나 토지나 기타 경제계의 통계표에는 비등점과 냉각점 사이 같은 현격이 있어요. 이 현격을 나는 그대로 볼 수가 없어요.
 
256
고등과장  (칼로 마룻바닥을 찍고 벌덕 일어서며 규환한다) 그래서 독립을 할려고 했단 말이냐?
 
257
향 현   (눈도 깜작 않고) 그래요.
 
258
고등과장  (격양하야) 허지만 독일이 지는 날이면?
 
259
향 현   과학을 가지고 있는데 독일이 웨 진단 말이에요? 독일엔 쳅베링이 있고 잠수함이 있어요. 영국의 론돈은 매일 이 괴물의 세례를 받고 있고, 미국의 군대는 수송 도중 대서양에서 잠수함에게 침격을 당하고 있어요. 독일은 미국의 군대가 구주에 상륙하기 전에 절대의 승리를 거둘 거에요. 최후의 승리는 단연코 독일에게 있어요.
 
260
고등과장  그따위 등사판 신문에서 줏어 읽은 승패론은 그만 지껄여라. 독일에 쳅베링이 있다면 연합국엔 탕크가 있다. 탕크란 수풀 속에두 진탕 속에두 마구 뚫구 지나가는 전차야. 우리 일본에서두 지금 군부에서 전과학진을 총동원시켜서 맹렬히 연구중에 있다. (뱉는 듯이 함성을 치며) 일본은 독일과 싸우기 위해서 탕크를 만들고 있는 건 아니야. 너 같은 독일 광신자나 독립운동을 할려는 불온분자를 소탕하기 위해서 맨들고 있는 거야. 다시한번 똑똑히 얘기해둔다. 일본은 너희들 반역자들을 이 지상에서 영원히 말살하기 위해서 탕크를 만들고 있는 거야. 총독정치를 부정하고 일본 사람을 배격하고 일본 상품을 보이곳트해서 배일사상을 선동하는 너희들 같은 박데리야를 뿌리째 뽑아버리기 위해서 만들고 있는 거야. 독일이 이기건 연합국이 이기건 그건 나하군 상관없는 이야기야. 나는 경시총감부 헌병소위로서 사내 총독각하의 명령에 복종하야 너희들을 탄압하면 그만이야. 카이젤한테 탄원해서 독립할랴거든 해봐라. 탕크로 조선바닥을 깨끗이 소제해줄 테니. 바까매〔馬鹿奴[마록노].
 
261
형 사   (평신고두(平身叩頭)하며 비굴하게) 가죠 - 상, 이런 기집애들은 야마도마찌〔大和町[대화정]에 웨 헌병사령부가 있는가를 몰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웨 헌병대에서 경찰행정을 겸하구 있는가두 모르구 있습니다.
 
262
고등과장  가르쳐주랴? 순사로선 너 같은 위험분잔 취조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 같은 헌병이 경찰 임무를 겸임하고 있는 거다.
 
263
형 사   유치장 맛을 보기 전엔 자유니 독립이니 하는 생각이 좀처럼 없어지지 않는 법입니다. 구주대전 얘기를 하시드래도 총감부 세멘트 바닥 우에서 하시지요.
 
264
고등과장  끌구 가지. (교장에게) 잠깐 물어보고 돌려보내겠습니다.
 
 
265
고등과장·형사, 향현을 더리고 나가려 할 때 어데서인지 분노와 원차(怨嗟)에 찬 이양(異樣)한 고함소리가 들리드니 돌팔매가 정면 창으로 일제히 날러온다. 고등과장, 본능적으로 몸을 피한다. 최순천, “얘들아, 얘들아, 그 돌맹이 놔라. 그 돌맹이 놔” 하고 창턱에 올라서서 돌팔매를 맞어가며 필사적으로 제어한다.
 
 
266
고등과장  (발검(拔劍)을 해가지고 창가로 달려가며 포후(砲吼)하는 듯한 노호로) 우 - 누, 관겐니 데무까이 수루까, 〔관헌(官憲)에게 반항할 테냐?〕
 
267
형 사   (역시 규환(叫喚)을 치며) 돌팔매 끄치지 못하겠냐? 끄치지 않으면 이루 사정없이 모주리 체포해버릴 테다.
 
 
268
이때 돌팔매는 최순천의 희생으로 잠시 정지됐다. 그의 이마에서는 피가 철철 흐른다. 나카니시는 꼴 좋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다.
 
 
269
사이풀   (성난 맹수같이 날뛰는 과장과 형사 앞에 필사적으로 막아서며 애원하듯이) 과장 참으시오, 과장 참으시오.
 
270
고등과장  (그를 떠다 박질르며) 도끼나사이. 〔비키쇼〕
 
271
사이풀   과장, 이 사이풀을 봐서 참어주시오.
 
272
고등과장  관헌에게 돌멩이를 던져? 요구모 손나 다아소레다 고도가……. 〔그런 불손한 행위를 겁두 없이……〕
 
273
나카니시  죠 - 센징이란 돌맹이 던지는 것밖엔 몰르나 봐. (창외(窓外)를 향하야) 야반징〔野蠻人[야만인], 야반징, 야반징.
 
274
고등과장  (격노에 떨며) 반항할려거든 해봐라. 이쪽에선 얼마든지 탄압해줄 테니. 기관총의 탄환은 너희년들 돌팔매하군 맛이 달르다. 이누메. 〔개 같은 것들〕
 
275
사이풀   애들이 흥분돼서 그럽니다. 철 모르고 하는 것이니까 너그럽게 생각하십쇼.
 
276
형 사   요새 학생들 공기가 여간 험악해진 게 아니에요. 아까두 말했지만 아직들 유치장 맛을 못 봐서들 그래요.
 
277
향 현   그리게 지금 맛보러 가지 않어요.
 
278
형 사   서에 가서두 네가 그런 소리 할 테냐?
 
279
최순천   (향현을 끌어안으며) 얘야, 넌 가만히 있거라.
 
280
사이풀   (애원하듯이) 과장, 오늘은 이대로 돌아가주시오. 모든 것은 이 사이풀의 책임입니다. 아시다시피 이런 일이 우리 승화학교에만 있는 게 아닙니다. 구주대전이 불일간 결정이 날 모양이므로 그런지, 학교뿐 아니라 경성 시내와 지방의 방방곡곡바다 민심이 별안간 소요해졌습니다.
 
281
고등과장  서울은 30인치 대포알 3발이면 넉넉해요.
 
282
사이풀   허지만 지금이 교전중 아닙니까? 교전중 제일 무서운 건 내란입니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연합국이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구주대전두 셀비아의 일 청년의 총성으로 시작되지 않었습니까. 오스토라리아 황태자 흴지난드 태공(太公)에게 향한 피스톨 한 방에 폭발했었습니다. 오늘 무슨 일이 생기면 그것이 조선 사람들의 폭동의 동기가 안 된다구 누가 단언하겠습니까? 내가 보기엔 조선 사람들의 반란은 일촉직발의 상태에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오늘은 두 분이 그냥 돌아가십쇼. 30분 내로 내가 이 애를 데리고 갈 터이니 …….
 
283
고등과장  (칼자루로 향현의 중복(中腹)을 콱 찔르며) 민나 오마헤노 다메다. 〔모두 너 때문이다〕
 
284
형 사   (쓰러진 향현을 발길로 콱 차며) 망할년,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구…….
 
285
최순천   (달려가 향현을 부축한다)
 
286
고등과장  (교장에게) 30분 중에 1분이라두 틀리는 경우엔 내 대신 기마대가 올테니 그리 아십쇼.
 
287
사이풀   절대 책임지고 더리고 가겠습니다.
 
 
288
고등과장·형사, 나가려고 도어를 여니 복도에 흥분된 학생들이 위집(蝟集)해 있다.
 
 
289
고등과장  (대질(大叱)한다) 도강가. 〔비키지 못하겠냐?〕
 
 
290
학생들, 좌우로 비키니 양인, 발을 쾅쾅거리며 나간다.
 
 
291
사이풀   (과장과 형사를 바래고 다시 들어오며) 최선생과 향현이만 남기고, 딴 분들은 일단 직원실로 나가주시오.
 
 
292
나카니시·교무주임, 직원실로 나간다.
 
 
293
사이풀   몹시 아푸시오?
 
294
향 현   (고통을 참으며) 괜찮어요.
 
295
사이풀   참으시오. 참는 자에게 복이 있다고 주님께서도 말씀하셨소. 당신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같은 희망을 가지고 독립과 자유를 구하다 쓰러진 생령이 한일합방 후 오늘까지 몇 천 명 몇 만 명이겠소? 허다한 젊은 청년남녀가 당신 같은 뜻을 품고 해외에서 감옥에서 울고 있을 것입니다. 나는 당신네들 뜻있는 학생이, 젊은이가, 무지한 일본관헌의 탄압 밑에 감옥으로 가는 것을 조선에 건너온 후 10년 동안이나 목격해왔소. 이 승화학교에서만두 스물두 번쨉니다. 이것은 당신들이 진 무거운 십자가입니다. 조선이 독립될 때까지 당신들 젊은이들은 이 무거운 십자가를 용감히 져야 할 것 입니다.
 
296
향 현   교장선생님, 독일이 그 헌병 녀석 말대로 참말로 질까요?
 
297
사이풀   당신에겐 낙망될 말이지만 그건 결정적 사실입니다. 우리 미국의 참전으로 항복 전야에 이르게 되고 말았습니다.
 
298
향 현   정말로 카이젤이 손을 들게 됐습니까?
 
299
사이풀   (고개를 끄덕인다)
 
300
향 현   (절망한 듯 비통한 눈으로 먼 - 허공의 일우(一隅)를 응시코 있드니 돌연 쾅 엎더져 흐느껴 운다)
 
301
사이풀   (그의 등을 어루만지며) 울지 마시오. 하날은 늘 가난한자와 괴로워하는 자의 편이십니다. 카이젤한테 내려든 당신들 탄원서를 연합국에 내면 되지 않겠소?
 
302
향 현   (소스라치듯 고개를 들며) 연합국에다요?
 
303
사이풀   그렇소, 전쟁이 끝나는 대로 우리 미국의 대통령 윌슨은 세계평화를 위하야 반드시 강화회의를 열 것입니다. 거기다 당신들 조선 사람의 독립탄원서를 내면 연합국은 동정과 성의로서 조선독립에 대해서 힘써줄 것입니다.
 
304
향 현   허지만 그 속엔 일본이 껴 있지 않어요?
 
305
사이풀   일본의 참전은 영토를 목적한 형식적인 것이라 국제연맹엔 아무런 발언권이 없을 것입니다.
 
306
향 헌   허지만 제가 감옥에 들어가구 나면 누가 나 대신…….
 
307
최순천   (그의 팔을 시차게 붙들며) 염려마라. 네가 못 한 일은 내가 해줄 테니.
 
308
향 현   선생님께서요?
 
309
최순천   너 같은 생각으로 독립운동을 하구 있는 사람이 교장 선생님 말씀대루 해내 해외에 한두 사람이겠냐? 그분들과 손을 잡어 나도 내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싸울 결심이다. 그러니 그런 걱정은 조곰두 말구 헌병대에 가서라두 절대루 반항하지 말구 순순히 해서 하루바삐 나오두룩 해라.
 
310
향 현   선생님 고맙습니다. 그럼 제가 그 대신 좋은 동지 한분을 소개해드리겠어요.
 
311
최순천   누군데?
 
312
향 현   강기덕 씨라구 보성전문 학생이에요. 안국동 34번지 하숙에 계시니 그분을 한번 꼭 만나보세요. 그분두 지금 동지를 구하구 있어요. 선생님이 동지가 돼주신다면 여간 든든해 하지 않을 꺼에요.
 
313
최순천   그분이 너를 코 - 취한 분이냐?
 
314
향 현   그렇진 않아요.
 
 
315
이때 나카니시 들어온다.
 
 
316
나카니시  고 - 죠 - 센세이, 시간입니다. 기마대가 오구 하면 귀찮어질 테니까 빨리 가시는 게 좋겠습니다.
 
317
사이풀   (향현에게) 그럼 설설 가보십시다.
 
318
향 현   네.
 
 
319
사이풀, 향현을 데리고 나간다. 도어를 여니 목계숙, 진국진 달려와 향현을 붙들고 운다. 복도에 섰든 학생들의 입에서 울음이 터지기 시작하야 하학(下學)후의 공허한 교사내에 멀 - 리 퍼져간다. 최순천은 쏟아질려는 눈물을 씹으며 씹으며 그를 바랜다.
【원문】제 1 막 (19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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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세덕(咸世德)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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