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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운형의 옥중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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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9
여운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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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운형의 옥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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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운형! 그의 이름은 조선인의 귀에 언제나 쟁쟁히 남아 있을 것이다. 때는 1919년. 여운형은 당시 상해에 나가서 XX(독립)운동에 종사하다가 XX(독립)운동자를 대표하여 일본 정부와 직접 XX(담판)과 의견교환을 하기 위하여 동경까지 건너갔던 사람이다. 그래서 그때 조선인으로는 누구나 여운형을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XX(담판)이 결렬되자 그는 다시 상해로 건너가서 이래 10년을 하루같이 XX(독립)운동에 종사하였다. 여운형은 1929년 7월 8일 상해에서 일본 영사관 경찰에게 체포되어 동 17일 조선으로 호송되어 와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3년 징역의 형을 받고 이래 대전형무소에서 복역 중이다가 지난 7월 26일 가출옥이 되어 밖으로 나왔다. 형무소에서는 집필의 권리가 거부되어 있음으로 옥중기를 쓸 수는 없었다. 따라서 이 옥중기는 그가 출옥한 후 이야기한 것을 기자가 다시 옮겨 써놓은 것이다 ― 동아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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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에 처음 들어갈 때 얼떨떨하였다. 경찰서나 형무소에 관해서는 고생하고 나온 동지들로부터 그 생활이 얼마나 괴롭더라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었으나 그 안 생활 절차와 풍속이 어떻다는 것은 전연 물어 알아 두지 않았었기 때문에 모든 것이 퍽 서툴러서 곤란하였다. 그런 것도 미리 좀 알아두었더라면 퍽 요긴히 쓰였으리라고 자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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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의 몸이 된다는 것은 나(여운형) 같이 성미 급한 사람에게는 참으로 괴로운 일이다. 첫 한 주일 동안은 밥 한술 떠 넣을 수가 없었다. 기가 막히고 안타까워서 심화만 나서 혼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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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으로 호송되어 오자 날까지 몹시 더워져서 냉수만 자꾸 들이켰더니 그만 소화불량이 되었다. 그때 얻은 소화불량증을 이때까지 고치지 못하고 계속하여 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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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소 덕에 얻은 병이 다섯 가지이다. 맨 처음 상해서 잡힐 적에 운동장에서 경관과 격투하다가 귀를 몹시 얻어맞았는데 그때 고막이 상하여 한쪽 귀는 아주 병신이 되고 말았다. 그 다음에는 옥에서 주는 조밥을 먹다가 돌을 깨물어서 이 한 개가 그만 부러지고 말았다. 그리고 웬일인지 잇몸 전체가 상하고 염증을 일으키어 퍽 괴로웠다. 출옥한 후에 첫 날 한 20분을 계속하여 말을 했더니 턱이 아파서 혼났다. 차차 나아가기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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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도 말했거니와 소화불량은 대단하다. 얼굴이 이처럼 수척해지고 늙어졌으며 나왔던 배가 쑥 기어들어간 것이 모두 그 때문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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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중도 잡히기 전날까지 175파운드이던 것이 지금에는 135파운드 밖에 아니 된다. 그러니 40파운드를 잃어버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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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에 갇힌 지 며칠 못 가서 신경통이 격렬하게 일어났다. 그 통에 머리와 수염이 이렇게 하얗게 세어버렸다. 들어간 지 6개월 이내에 이처럼 세어버린 것이다. 코 아래 수염은 흰 털이 많기는 많지마는 이전 모양으로 다시 자라 뻗치려고 한다. 신경 관계인지 불면증도 대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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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3시간 이상을 자본 적이 없어 퍽이나 애를 먹었다. 출옥 이후에도 별로 차도가 있는 것 같지 않다. 여전히 잠을 이루기가 참으로 힘이 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감옥 안에서는 누구나 다 앓게 되는 치질에 걸리어 퍽 고생하였다. 네 번이나 수술을 했는데 그것은 완치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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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옥살이 3년에 나는 병쟁이가 되어버린 셈이다. 청년은 몰라도 성년기를 지난 중년급 사람은 옥에 갇히면 참으로 속히 늙어버리는 모양이다. 독방! 그것이야말로 옥 속의 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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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방이 사람을 늙히는 곳이다. 독방생활 1,09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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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스운 일이 있었다. 한번은 교회사(敎悔師)가 불러다놓고 훈계를 하는데 “당신 같은 사람은 학식도 많고 하니까 앞으로는 다카이 도쿠보오(高[고]い獨房[독방]: 높은 방)를 가지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하였다. 일본어 지식이 옅은 나는 그 말을 ‘높은 독방’이란 줄로만 알고 학식이 많은 사람은 어째서 높은 독방으로 가야만 하느냐고 항의를 하였었다. 사실인 즉 다카이 도쿠보오(高[고]い德望[덕망]: 높은 덕망)이란 말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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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사 말이 났으니 말이지 형무소 안에서 가장 불쾌감을 주는 사람이 이 교회사이다. 더욱이 한 달에 한 번씩 하는 그 훈계는 딱 질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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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이 수감자가 요구하는 서적의 차입 허가권이 이 교회사에게 있는데, 너무나 몰상식하기 때문에 어떤 때는 고소를 금할 수 없었다. 내가 들여다 본 영문 서적으로 보더라도 란싱이가 쓴 평화회의, H. G. 웰스의 역사서 같은 것은 차입을 허락하면서 셰익스피어 전집은 도리어 불허한다. 게다가 구운몽이란 소설의 영역본을 불허하는 데는 기가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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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무소에서 주는 책은 그 대부분이 불교서 종류였고 기독교 책 종류로는 예수 재림에 관한 책이 두어 권 있었다. 읽고 싶은 책을 마음대로 못 읽는 것도 안타깝지마는 읽기 싫은 책을 억지로 읽는 것처럼 기가 막히는 일은 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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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 안에서는 간수가 왕이다. 전옥이니 간수장이니 하는 사람들은 수감자들에게는 별무관계이다. 수인 생활의 편불편은 오로지 담당 간수와 간수부장의 손에 달렸다. 좋은 간수를 만나면 생활이 좀 낫고 몹쓸 간수를 만나면 그야말로 지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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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형무소는 서대문형무소에 비하여 훨씬 상등이었다. 설비도 훨씬 잘 되었고, 간수도 비교적 유상식자이어서 좀 나았다. 운동도 하루 40분가량 허락되는데 마음씨 좋은 간수를 만나면 한 시간여씩 허락되는 때도 종종 있다. 특히 사상범 감방에는 간수도 좀 더 교양이 있는 이로만 임명한 모양인데, 조선인 간수는 한 사람도 없고 전부 일본인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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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은 그물 뜨는 일과 종이 꼬아서 치룽 만드는 일 두 가지를 배웠다. 그물도 남에게 빠지지 않게 잘 떴거니와 종이 꼬기에는 대전형무소 중 가장 잘하는 3인중 1인에 낄 만치 빨리 만들고 곱게 만들었다. 종이를 꼬아 가지고는 그것으로 활족을 담아두는 광주리며 아이들 책 꾸러미 같은 것을 만들었다. 일을 잘한다고 그 상으로 목욕도 남보다 좀 자주 얻어할 수 있게 되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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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술을 해 볼 생각이 나서 붓과 종이를 두어 번 청구해보았으나 거절되어서 여의치 못하였다. 하도 심심할 때에는 한시도 몇 수 지어보았으나 어디 써 둘 데는 없고 그냥 기억해두고 몇 번씩 읊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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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바람은 소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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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슬픈 비 주룩 주룩 뿌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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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빗물 감옥 마당에 흘러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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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빗소리 이내 가슴에 스며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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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강 이 비슷한 시를 생각해놓고 종이가 없으면 석판이라도 한 번 옮겨 써보고 싶어서 교회사에게 석판이라도 하나 차입해달라고 부탁했더니 그것 역시 거절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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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무언가 생각한 것은 퍽 많았으나 하나도 글로 옮겨 놓지를 못했고, 독서도 순전히 차입 허가되는 것만 읽을 수밖에 없었던 고로 역사 서적만 많이 읽었다. 철학사·문학사 따위, 경제와 정치에 관한 서적은 절대 금물인 고로 청하기는 많이 하고도 전부 퇴각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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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아》, 1932년 9월호》
【원문】여운형의 옥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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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운형(呂運亨) [저자]
 
  # 신동아 [출처]
 
  1932년 [발표]
 
  수필(隨筆)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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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옥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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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3년 02월 1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