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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려서 보통 학교에 다닐 때였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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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년급 되던 해에 ‘육가락 방팡관’ 이라는 별명을 등에 짊어지고 다니는 아이와 책상을 같이하고 있었읍니다. 그의 본 이름은 방석산인데 그 본 이름을 불러 주는 사람은 선생밖에 없었읍니다. 그가 그런 별명을 제수하게 된 까닭은 이러합니다. 그는 발가락이 여섯이었읍니다. 그런데 그여섯 발가락은 오리발 모양으로 붙었읍니다. 이것은 그의 어머니가 그를 배었을 때에 오리 고기를 먹은 까닭이라고 그는 우리에게 설명하였습니다. ‘육가락’ 이라는 것은 그의 여섯 발가락을 의미하는 것이었읍니다. 그리고 그는 얼굴이 몹시 넓어서 그 이마에 떡을 치더라도 서 말은 치게 되었읍니다.‘팡관’이라는 것은 얼굴 넓다는 것을 의미한 것인데 그것이 무슨 뜻이던 것은 지금도 알 수 없습니다. 그것은 좀 유감되는 일이나 그가 ‘육가락 팡관’ 이라는 직함을 가지게 된 것은 대개 그러한 이유가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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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가락 팡관’ 은 장난꾸러기요, 심술꾸러기요, 욕꾸러기요, 싸움꾸러기였읍니다. 일없이 트집을 잡기로도 유명하거니와 따라서 싸움 잘 하기로도 유명하고 또 벌을 서기로도 유명하였읍니다. 그때 벌이라는 것은 일으켜세우고 팔을 들고 있는 것인데 그는 두 팔을 들고 심술이 잔뜩 난 뺨을 불룩거리다가도 선생이 칠판에 무엇을 쓰는 때면 들었던 팔을 슬며시 내려놓았다가 선생의 머리가 돌아지면 번쩍 들었읍니다. 학생들은 웃음을 참을 수 없었읍니다. 그러다가도 선생에게 들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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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교편으로 사정없이 때렸읍니다. 그 시간이 파한 뒷면 ‘육가락 팡관’은 선생에게 대한 분풀이를 우리에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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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우리들을 못 견디도록 때렸읍니다. 그래도 우리는 뒤가 무서워서 선생에게 이르지 못하였읍니다. 그때 그는 열 일곱이요, 나는 아홉이라 한책상에 앉아서 괴로움도 괴로움대로 받았거니와 사랑도 사랑대로 받았읍니다. 그에게도 사근사근하고 따뜻한 마음이 있었읍니다. 나는 한 책상에 앉은 사람이요, 또 어린 아이라고 비가 몹시 오는 때면 나를 업고도 다녔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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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은 전 주일에 배운 것을 외워 바치는 날이었읍니다. 못 외워 바치면 전 선생의 교편에 잔등이가 구멍이 뚫리도록 맞게 되는 판이었읍니다.전 선생은 그때 사십이 되는 수염이 많이 난 선생인데 학구 시대의 버릇이 그저 남아서 물푸레 교편을 가지고 가르치다가 누구든지 잘못하는 것만 있으면 죽어라고 때렸읍니다. 웬만한 매에는 잘 견디기로 유명한 ‘육가락팡관’도 전 선생의 매에는 몸을 송그리면서 고함을 치지 않을 수 없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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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 두 사람 순서를 따라서 외워 비치는데 ‘육가락 팡관’ 은 나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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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소근거리는데 그 두 눈에는 겁이 흘러 있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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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가락 팡관’의 차례가 되었읍니다. 그는 열흘에 팔십 리 걸음으로 외우는데 연방 손바닥을 보았읍니다. 눈치를 챈 전 선생은 그의 곁으로 오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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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면서 얼른 펴지 않는 그의 주먹을 폈읍니다. 그는 어느 틈엔가 손바닥에다 외워 바칠 것을 잘게 썼었읍니다. 전 선생은 그를 끌고 나가더니 그물푸레채로다가 등어리가 으스러지도록 때렸읍니다. 그는 몸을 뒤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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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소리를 치다가 우리를 흘긋 보면서 벙긋 웃는데 그까짓 매는 백, 천번 맞아도 겁날 것 없다는 표정이었읍니다. 그러나 그것을 우리만 본 것이 아니라 전 선생도 보았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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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다시 그의 등을 꽝꽝 때렸읍니다. 그렇게 때리는데 저고리 밑에서 무엇이 툭 떨어졌읍니다. 그것은 술이 두꺼운 책인데 그는 미리부터 매맞을 준비를 하노라고 그 책을 등에 받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을 본 전 선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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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허 기 ── 가 맥혀서……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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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웃었읍니다. ‘육가락 팡관’도 웃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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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와서야 그 전 선생의 웃음과‘육가락 팡관’의 꾀를 이해하였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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