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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아해(兒孩)들에게 장난감을 주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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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상
이상
1960년 현대문학 12월호에 발표한 이상의 일문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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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해(兒孩)들에게 장난감을 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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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일대는 현무암질이어서 중·남선(中·南鮮)에 많이 있는 화강암질과 비하면 몹시 아름답지 못하다. 그래서 지방 아해들은 선천적으로 조약돌도 줍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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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해양 같은 권태 속을 헤엄치고 있다. 지느러미는 미적지근한 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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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해들은 아우성을 지르면서 나의 유쾌한 잠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았다. 나는 깜짝 놀랐다. 구릿빛 살결을 한 남아처럼 뵈는 아해 두셋이 내가 누워있는 곁에서 놀고 있는 것이다. 모색(暮色)이 망토 모양으로 그들의 시체같은 불결을 휩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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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라, 아해들은 어떻게 놀아야 좋을지 모르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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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들은 완전히 거세되어 버린 것이 아니다. 풀을 휘뚜루 뽑아 가지고 와서 그걸 만지작거리며 놀아 본다. 영원히 절색(絶色)─ 절색은 그들에게 조금도 특이하거나 신통치 않다. 아해는 뭐든 그들을 경탄케 해줄 특이한 것이 탐나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둘러봐야 현재의 그들로선 규모가 지나치게 큰 가옥과 권속(혈연)과 끝없는 들판과 그들의 깔긴 똥이나 먹고 돌아다니는 개새끼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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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이런 모든 것에 지쳐 버렸다. 그들은 홍취를 느낄 만한 출구가 없다. 그들은 무의식적으로 어째야 좋을지 어쩔 줄을 모른다. 그들, 상처에 어지러이 쥐어 뜯긴 풀잎 조각들이 함부로 흩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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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라, 이 아해들에게 가지고 놀 것을 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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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더러우나 그들의 신선한 손엔 아무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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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맣게 그리고 못 견디도록 슬픈 그들의 두뇌가 어떡하면 좋을까 하고 생각한다. 유희를 버린 아해란 것이 과연 있을 수 있는가,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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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유희 않는 아해란 있을 수 없다. 유희를 주장한다. 유희를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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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살길 없는 죽음(우리는 이래도 역시 아해랄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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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그들은 발명한다. 장난감 없어도 놀 수 있는 방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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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손을 앞으로 쭉 뻗기도 하며 뛰돌아다니기도 하며 한곳에 버티고 서서 몸을 뒤틀기도 하며 이것은 전혀 율동적이 아니며 그저 척해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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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어느 품사에서도 소속치 않는 기묘한 아우성을 지르면서 거의 자신들을 동댕이치듯 떠들어 댔다. 가엾게도 볼수록 엉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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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유희인가, 이래도 재미있는가 ─ 이렇게 광적이고도 천격(賤格)인 광경에 적이 눈시울을 적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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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불쌍한 소란 옆에서 정신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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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만 기다려도 아해들은 이 어처구니없는 유희를 그만두지 않는다. 어럽쇼, 이러다가 이 아해들은 참으로 미쳐 버리지나 않을까. 어디서나 권태로워서 안절부절못한다는 것은 치명적인 부상이라기보다도 인간에겐 더욱 치명적인 것만 같다. 현재 내 자신을 보라. 나는 혹 내부에서 이미 구원될 수 없을 정도로 미쳐 버리지 않았다고 누가 나를 보증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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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서 이미 불쾌한 감정이 뭉게뭉게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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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우주의 오점보다도 더욱 밉살스런 불행한 아해들이 태어났다는 것을 나는 저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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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그러는 중에 이 기괴한 유희에도 이만 싫증이 난 것이겠지 ─ 고요히 실망하고 만 그들은 아무런 동기도 목적도 없는 것만 같다. 도무지 분명치 못한 작태로 그 근방을 방황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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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들이 벌써 발광한 거나 아닌가 생각하고 슬퍼하였다. 그러나 모색에서도 그들의 용모는 정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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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해가 놀지 않는다는 현상은 병이 아니면 사망일 것이다. 아해는 쉴 새없이 유희한다. 그래서 놀지 않는다는 것은 전연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니 앞으로 이 아해들은 또 어떻게 놀 것인가. 나는 걱정하였다. 다음에서 그 다음으로 놀 수 있는(장난감 없이) 그런 방법을 발견 못한 아해들은 결국 혹시 어른처럼 자살이나 하지 않을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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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들에게 가르쳐 주고 싶다. 말하자면 돌멩이를 집어 이 근방에 싸다니는 남루 조각 같은 개들을 칠 것. 피해 달아나는 개를 어디까지나 뒤쫓을 것 등. 그러나 그들은 선천적으로 이 토지의 돌멩이가 기막히게 추악하다는 걸 알고 있음인지, 결코 돌멩이를 줍지 않는다(또 농촌에선 돌 던지는 걸 엄금하고 있다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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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만은 또 어떤 기상천외의 노는 법이라도 고안하여 그들의 생명을 유지할 것인가. 불연(不然)이면 정말 발병하여 단번에 죽어 버릴 것인가. 이상한 흥분과 긴장으로 나는 눈을 홉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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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그들은 집 사립짝 옆 토벽을 따라 약속이나 한 것처럼 나란히 늘어서서 쭈그리고 앉는다. 뭔지 소곤소곤 모의하는 성하더니 벌써 침묵이다. 그리고 열중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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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을 내지르는 것이었다. 나는 아연 놀랐다. 이것도 소위 노는 것이랄 수 있을까. 또는 그들은 일시에 뒤가 마려웠던 것일까. 더러움에 대한 불쾌감이 나의 숨구멍을 막았다. 하늘만큼 귀중한 나의 머리가 뭔지 철저히 큰 둔기에 얻어맞고 터지는 줄 알았다. 그뿐인가. 또 한 가지 나를 아연케 한 것은 남아인 줄만 알았었는데 빤히 들여다보이는 생식기 ─ 아니 기실은 배뇨기였을 줄이야. 어허 모조리 마이너스고녀. 기괴천만한 일도 다 있긴 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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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서로의 엉덩이 구멍을 서로 들여다보기 시작하였다. 하는 짓마다 더욱 기상천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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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얼굴빛과 대동소이한 윤기 없는 똥을 한 덩어리씩 극히 수월하게 해산하고 있다. 그것으로 만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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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슬픈 것은 그들 중에 암만 안간힘을 써도 똥은커녕 궁둥이마저 나오지 않아 쩔쩔매는 것도 있다. 이러고야 겨우 착상한 유희도 한심스럽기 그만이다. 그 명예롭지 못한 아이는 이제 다시 한번 젖먹던 힘까지 내어 하복부에 힘을 줬으나 역시 한발(旱魃)이다. 초조와 실망의 빛이 역력히 나타났다. 나도 이 아이가 특히 미웠다. 가엾게도, 하필이면 이럴 때 똥이 안 나오다니, 미움을 받다니, 동정의 대상이 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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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들은 목을 비둘기처럼 모으고 이 한 명의 낙오자를 멸시하였다(우리 좌석의 흥을 깨어 버린 반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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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마사(摩詞) 불가사의한 주문 같은 유희는 이리하여 허다한 불길과 원한을 품고 대단원을 고하였다. 나는 이제 발광하거나 졸도 할 수밖에 없다. 만신창이 빈사의 몸으로 간신히 그곳에서 도망하였다.
【원문】이 아해(兒孩)들에게 장난감을 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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