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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高麗) 조에서는 충렬왕(忠烈王) 이후로 대개는 원나라(元) 궁실에서 공주를 맞아다가 왕비를 삼았다. 충선왕의 왕비도 또한 원나라 공주이었으므로 원나라와 왕래가 잦았다. 충선왕은 오랫동안 원나라에 머무시는 사이에 한 여인을 사랑하여 정이 매우 깊어졌다.
3
왕이 본국으로 돌아오게 되시매 왕도 여인을 버릴 수 없고 여인도 또한 왕을 떨어지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때 왕의 뒤에는 여러 종신(從臣)들이 있어 그들의 이목에 거리끼는 바가 있었으므로 할 수 없이 여인을 원나라에 두고 돌아오시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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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일행이 떠나시는 날 여인은 역(驛)에 까지 따라 나와 만사를 무릅쓰고 왕을 쫓고자 하였다. 왕은 여인을 위로하면서 연꽃(蓮花) 한 송이를 꺾어주시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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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꽃은 그대와 이별하는 정표로 주는 것이니 언제든지 연꽃을 보거든 나를 보는 것 같이 생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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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의 분부가 계시오니 첩이 어기리까마는 데리고 가시지 못할 형편이오면 첩을 죽이고 가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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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원하는 그 정상이 참으로 애처로웠다. 왕께서도 남모르게 눈물을 흘리시며 간신히 여인을 달래어 후일을 기다리게 하고 일행은 말을 몰아 본국을 향하여 떠났다.
9
왕께서는 이 날 하룻동안 아무 정신없이 길을 가시었다. 왕의 가슴에는 여인의 생각뿐이었다. 혹 스스로 약함을 자책하시기도 하며 혹 여인을 데리고오지 못한 것을 후회하기도 하시었다. 이와 같이 온종일 여인을 생각하시며 오시다가 날이 저물매 객사에 말을 멈추고 가만히 이제현(李齊賢)을 불러 도로 여인에게 보내시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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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은 돌아가 여인의 동정을 살펴 오라. 상심함이 과하면 내 다시 돌아가거나 그렇지 아니하면 따르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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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시고 용안에 처량한 빛을 지으시었다. 제현이 돌아가 보니 여인은 아직도 역루(驛樓)에 앉아 왕을 사모하여 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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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감 마마께서는 아직도 가시는 도중 무슨 미진사가 있어 내 홀로 말을 전하러 왔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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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는 글 한 장을 써서 제현에게 주며 왕께 올리어 달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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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가서 여인을 찾았사오나 여인은 벌써 젊은 사내들과 주사(酒肆)에 놀러 나갔으므로 찾지 못하고 돌아왔사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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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여인이 변심하여 버린 듯이 말하였다. 이 말을 들으신 왕께서는 마음으로 여인의 거짓 사랑에 속으신 것을 분개하시며 또 홀로 연모하시던 것을 비웃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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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이 송도(松都)로 돌아온 그 해 경수절(慶壽節)에 이제현이 충선왕께 술잔을 올리고 빨리 뜰 아래 내려와 엎딘 채 죽기를 청하였다. 왕께서 그 이유를 물으시매 제현이 원나라에서 여인에게 받았던 글을 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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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여인은 전하를 사모하와 먹지도 않고 자지도 않으며 누상(樓上)에서 울고 있었사오나 신이 진정을 아뢰오면 전하께서 다시 여인을 찾아 돌아가실까 저어하와 황공하오나 어전에 사언(詐言)을 하였사오니 원컨대 신의 목을 베어 죄를 책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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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였다. 왕께서 제현의 말을 들으시고 놀라시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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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은 나를 이처럼 아끼니 참으로 만고의 정충(精忠)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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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시고 눈물을 흘리시며 술잔을 내리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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