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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연문학의 최고봉 「변강쇠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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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7
이명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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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朝鮮[조선] 軟文學[연문학]의 最高峰[최고봉] 「변강쇠전」
 
2
李明善[이명선]
 
 
 

일(一)

 
4
朝鮮文化[조선문화]에 끼친 中國文化[중국문화]의 影響[영향]은 어느 時代[시대]를 勿論[물론]하고 顯著[현저]한 바 있었지만 李朝時代[이조시대]의 儒敎[유교]처럼 絶對的[절대적]인 權威[권위]를 가지고 君臨[군림]한 일은 없었다. 게다가 이 儒敎[유교]라는 것도 朱子學[주자학]에만 局限[국한]된 이 退溪[퇴계] 栗谷[율곡] 尤菴[우암][등]의 大學者[대학자]가 徹底[철저]한 朱子信奉者[주자신봉자]에 不外[불외]하였고 李朝[이조] 末葉[말엽]에 擡頭[대두]한 異學派[이학파]의 勢力[세력]도 勿論[물론] 無視[무시]할 수는 없으나 끝끝내 中央[중앙]에 得勢[득세]함에는 이르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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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朱子學派[주자학파]의 文藝思想[문예사상]은 所謂[소위] 道文一致[도문일치]의 思想[사상]으로 端的[단적]으로 말하면 道德[도덕]을 爲[위]한 文學[문학]을 主張[주장]하는 것이다. 朱子[주자] 自身[자신]이 지은 “少年易老學難成[소년이로학난성], 一寸光陰不可輕[일촌광음불가경]” 같은 것은 이 좋은 例[예]다. 이러한 傾向[경향]은 非但[비단] 兩班官僚[양반관료]들이 지은 漢文學[한문학]뿐만이 아니라 一般[일반] 大衆[대중]이 愛好[애호]하던 古代小說[고대소설] 歌辭[가사][등]에도 濃厚[농후]하게 反映[반영]되어 劉忠烈傳[유충렬전]의 忠[충], 沈淸傳[심청전]의 孝[효], 春香傳[춘향전]의 烈[열]은 그들을 굳게 사로잡어 나려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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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環境[환경]은 朝鮮文學[조선문학]의 正常[정상]한 發展[발전]을 爲[위]하여 決[결]코 반갑지 않은 條件[조건]이었으며, 外國文學[외국문학]에 心醉[심취]되었던 절문이들이 朝鮮文學[조선문학]을 도라보고 朝鮮文學[조선문학]은 形式[형식]이 千篇一律的[천편일률적]이고 內容[내용]이 無味乾燥[무미건조]하다는 不滿[불만]을 表明[표명]하게 되는 것도 無理[무리]가 아니며, 더구나 男女關係[남녀관계]를 그린 軟文學[연문학]의 不振[부진]은 이 가장 重要[중요]한 要素[요소]의 하나로서 指摘[지적]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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朱子學[주자학]과 軟文學[연문학] ─ 이것은 確實[확실]히 兩立[양립]할 수 없는 相剋[상극]이며, 大提學[대제학]을 지낸 金萬重[김만중](西浦[서포])이 九雲夢[구운몽]을 썼다는 것도 참으로 破格的[파격적]인 일이다. 그러나 九雲夢[구운몽]은 男女關係[남녀관계]를 그리기는 하였으나 그 重要[중요]한 目標[목표]는 兩班官僚[양반관료]의 理想[이상]을 그린데 있으므로 理想小說[이상소설]로서 볼 것이지, 軟文學[연문학]으로서는 第二次的[제이차적]인 意義[의의]밖에 없는 것이다. 雲英傳[운영전] 玉樓夢[옥루몽] 春香傳[춘향전][등]도 本格的[본격적]인 軟文學[연문학]으로 보기에는 그 속에 담겨 있는 思想[사상]이 너무나 道德的[도덕적]이고, 男女間[남녀간]의 愛情[애정]을 描寫[묘사]함에 있어서도 너무나 槪念的[개념적]인 說明[설명]에 끄치었음은 否認[부인]할 수 없는 事實[사실]로 中國[중국]의 『金甁梅[금병매]』나 日本[일본]의 『源氏物語[원씨물어]』같은 것에 比[비]하면 그 사이에 相當[상당]한 距離[거리]가 있음을 認定[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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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가운데 있어서 朝鮮[조선]의 本格的[본격적]인 軟文學[연문학]으로서 『변강쇠젼』의 存在[존재]는 注目[주목]할 만하다. 이 小說[소설]의 文獻學的[문헌학적] 考證[고증]이라든가 文學作品[문학작품]으로서의 價値評價[가치평가]는 將來[장래] 그 方面[방면]의 專門家[전문가]의 出現[출현]을 기다리기로 하고, 여기서는 爲先[위선] 이 作品[작품]이 別[별]로 世上[세상]에 알려지지 않었으므로 되도록 忠實[충실]하게 作品[작품] 自體[자체]를 紹介[소개]하는데 置重[치중]하고저 한다. 或[혹]은 一部[일부] 封建主義者[봉건주의자]들은 東方禮義之國[동방예의지국]의 體面[체면]을 損傷[손상]한다고 憤慨[분개]할는지도 모르나, 孔子[공자]에게도 子孫[자손]이 있었고 退溪[퇴계]에도 妾[첩]이 있었다는 事實[사실]을 認定[인정]한다면 이러한 文學作品[문학작품]의 紹介[소개]쯤 容納[용납] 못할 것도 없을 것이다.
 
 
 

이(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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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朝時代[이조시대]에 비록 漢文[한문]으로 되었으나 淫談悖說[음담패설]을 蒐集[수집]하여 記錄[기록]해 놓은 冊[책]으로는 다음의 몇 가지가 有名[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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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村談解頤[촌담해이](古今笑叢[고금소총]의 一部[일부]) : 成宗[성종](?) 時[시]의 姜希孟[강희맹](私淑齋[사숙재] 혹은 無爲子[무위자])의 著[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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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禦眠楯[어면순](古今笑叢[고금소총]의 一部[일부]) : 中宗[중종](?) 時[시]의 宋世琳[송세림](醉隱[취은])의 著[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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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續禦眠楯[속어면순](古今笑叢[고금소총]의 一部[일부]) : 仁祖[인조](?) 時[시]의 成汝學[성여학]의 著[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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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蓂葉志諧[명엽지해] :顯宗[현종](?) 時[시]의 洪萬宗[홍만종](玄默子[현묵자])의 著[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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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禦睡錄[어수록] :正祖[정조](?) 時[시]의 閱淸齋[열청재]의 著[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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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중에는 或[혹]은 正式[정식]으로 出版[출판]된 것도 있고 안된 것도 있는데, 이러한 記錄[기록]들은 兩班官僚[양반관료]들이 紗帽冠帶[사모관대]하고 쓴 正史[정사]에서 보다도 훨신 生新[생신]하게 그 當時[당시] 社會的[사회적] 現實[현실]을 表現[표현]하고 있어 意外[의외]로 큰 價値[가치]를 占有[점유]하고 있지만, 변강쇠젼과 直接[직접] 關聯[관련]이 있는 것이 아니므로 여기서는 긴 說明[설명]을 避[피]한다. 다만 변강쇠젼과 같은 本格的[본격적]인 軟文學[연문학]이 成立[성립]함에 그 以前[이전]에 오랫동안 이러한 冊[책] 속에 記錄[기록]된 民間[민간]의 淫談悖說[음담패설]이 直接[직접] 間接[간접]으로 刺戟[자극]을 주고 土臺[토대]를 닦어놓아 주었으리라는 事實[사실]만은 指摘[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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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한 가지 말해둘 것은 肅宗[숙종] 以後[이후] ─ 더구나 英宗[영종] 正祖[정조] 以後[이후] 中人階級[중인계급]이 그네들의 獨特[독특]한 地位[지위]를 利用[이용]하여 商業界[상업계]에 勢力[세력]을 펴게되자 軟文學[연문학] 發展[발전]을 爲[위]하여 적지 않은 功憲[공헌]을 하였다는 事實[사실]이다. 그들은 一般[일반] 平民[평민]들과 달라서 兩班官僚[양반관료]들에게지지 않게 有識[유식]하고, 그러면서도 兩班官僚[양반관료]들처럼 日常生活[일상생활]에 있어 嚴格[엄격]한 道德的[도덕적] 拘束[구속]을 받지 않었으며, 經濟面[경제면]에 있어서는 譯官[역관]으로 中國[중국] 가는 使臣[사신]의 뒤를 따라단기는 통에 外國貿易[외국무역]을 獨占[독점]하였고, 大槪[대개] 都市[도시]에 居住[거주]하여 見聞[견문]이 넓었으므로 이러한 여러 가지 有利[유리]한 條件[조건] 밑에 다른 어떠한 階級[계급]보다도 自由[자유]롭게 風流[풍류]를 일삼고 人間[인간] 享樂[향락]을 任意[임의]로 하였다. 이러한 背景[배경]을 가지고 金天澤[김천택](南坡[남파]), 金壽長[김수장](老歌齋[노가재])의 『靑丘永言[청구영언]』『海東歌謠[해동가요]』가 나오게 되고 훨신 時代[시대]는 뒤지지만 朴孝寬[박효관]·安玟英[안민영]의 『歌曲源流[가곡원류]』가 나왔다. 卽興的[즉흥적]이고 享樂的[향락적]인 것은 그들의 時調[시조]의 特徵[특징]이며, 그들은 生活[생활]로나 作品[작품]으로나 軟文學[연문학] 發展[발전]에 큰 役割[역할]을 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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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朝鮮[조선] 軟文學[연문학]의 發展[발전]을 史的[사적]으로 考察[고찰]하는 것이 本意[본의]가 아니고, 또 說明[설명]이 너머 길어짐으로 이만하고, 要[요]컨대 변강쇠젼이 成立[성립]함에는 그 以前[이전]에 이러한 傳統[전통]이 育成[육성]되어 왔다는 것을 强調[강조]함에 끝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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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변강쇠젼의 作者[작자] 申在孝[신재효](1812-?)에 關[관]하여서는 오래前[전]에 曹雲氏[조운씨]가 發表[발표]한 「近代歌謠大方[근대가요대방] 申五衛將[신오위장]」(新生[신생] 卷二[권이]의 1·2號[호])이나 金在喆氏[김재철씨]의 『朝鮮演劇史[조선연극사]』에 이미 紹介[소개]된 바 있으며, 그 외 作品[작품]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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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春香傳[춘향전] 男唱[남창], 女唱[여창], 童唱[동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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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박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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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톡기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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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沈淸歌[심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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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卞[변]강쇠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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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이 列擧[열거]되어 있다. 그러나 이에 關[관]하여는 筆者[필자] 自身[자신]이 아무런 새로운 資料[자료]도 가지지 못하였으므로 여기서는 먼저 말한 바와 같이 作品[작품] 自體[자체]의 紹介[소개]로 바로 드러가고저 한다.
 
 
 

삼(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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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강쇠젼을 <橫負歌[횡부가]>, 或[혹]은 <가루지기>라고도 하며 변강쇠는 이 男主人公[남주인공]의 이름이며, 女主人公[여주인공]은 옹씨(雍氏)로 이 옹씨의 登場[등장]으로 小說[소설]은 始作[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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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年[중년]의 孟浪[맹랑]한 일이 있던 것이였다. 平安道[평안도] 月景村[월경촌]에 게집 하나이 있으되 얼골로 볼작시면 春三月[춘삼월] 半開桃花[반개도화] 玉鬢[옥빈]에 어리엿고 初生[초생]에 지난 달빗 蛾眉間[아미간]에 빗치었다. …… 四柱[사주]에 靑孀[청상]살이 겹겹피 싸인고로 喪夫[상부]를 하여도 징글징글하고 지굿지굿하게 당콩 주어먹듯 하것다. 열다섯에 어든서방 첫날밤 잠자리에 急傷寒[급상한]에 죽고, 열여섯에 어든서방 唐瘡病[당창병]에 퀴고, 열일곱에 어든서방 涌泉病[용천병]에 페고, 열여들에 어든서방 방베락 마저식고, 열아홉에 어든서방 天下大賊[천하대적]으로 捕廳[포청]으로 떠러지고, 시무살에 어든서방 비상먹고 도라가니 書房[서방]에 퇴가 나고 송장치기 신물난다. 二三年式[이삼년식] 걸녀가며 喪夫[상부]를 할지라도 소문이 凶惡[흉악]한테 한해에 한 해에 하나式[식] 전례로 처치하되 이것은 남이 아는 기동서방 그나문 간부 애부, 거드모리, 새훌우기, 입 한번 마춘 놈, 젓 한번 쥐인 놈, 눈 흘레한 놈, 손 만저본 놈, 심지어 치마귀에 엽자락 엍는 한 놈까지 대고 결단을 내는데 한달을 뭇을 넝겨 一年[일년]에 동반 한 동 일곱뭇, 閏朔[윤삭]든 해면 두 동 뭇수 대고 설거질 졔 엇더케 씹엊든지 삼십리 안팟에 상투 올인 사나히난 고사하고 열다섰 너문 총각도 업서 게집이 밧을 갈고 처녀가 집을 이니 黃平[황평] 兩道[양도] 公論[공론]하되 이년을 두엇따는 우리 두 道內[도내]에 ×단 놈 다시 없고 女人國[여인국]이 될터이니 쫓일 일밧게 수가 업다 兩道[양도]가 合勢[합세]하야 毁家[훼가]하야 쫓차내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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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하여 黃平[황평] 兩道[양도]에서 쫓겨난 옹는 과랑 보찜 옆에 끼고 三南[삼남]을 向[향]하여 나려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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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에 邊强釗[변강쇠]라 하는 놈이 天下[천하]에 잡놈으로 三南[삼남]서 비러먹다 兩西[양서]로 가너라고 연놈이 오다가다 靑石[청석]골 좁은 길에서 둘이 꽉 만나꺼든…….”
 
31
天下[천하]의 잡놈과 잡년이 한데 맛부닥처서 길가에서 몇 마디 수작하는 동안에 바로 合意[합의]되어 當日[당일]로 行禮[행례]하게 되었다. 履歷[이력]이 찬 두 연놈이 靑石[청석]골을 新房[신방] 삼어 白晝[백주]에 사랑가로 히롱힌다. 男女[남녀]가 서로 사랑가를 부르는 場面[장면]은 春香傳[춘향전]과도 相近[상근]하는데, 다만 그보다 훨신 淫亂[음란]하여 到底[도저]히 그대로는 紙上[지상]에 옴기지 못하는 點[점]이 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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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男北女[남남북녀]가 이처럼 結合[결합]되였으나 그들도 亦是[역시] 먹고 사는 問題[문제]에 直面[직면]하였다.
 
33
“…… 살임살이 살 걱정 두리 안저 議論[의논]한다. 우리 안팟 외입장이 僻鄕窮村[벽향궁촌] 살 수 업서 도방사리 하여 보세. 내 소견도 그러하오. 년놈이 손목 잡고 도방 各處[각처] 단일 적에 一元山[일원산], 二江景[이강경], 三茂州[삼무주], 四[사]법성 이곳 저곳 처저당겨, 게집년은 애를 써서 들병장사 막장사며, 낫불임, 넉장질에 돈냥 돈관 모와노면 강쇠놈이 허망하여 대냥내기 방디리기, 둘양패에 가보하기, 갑자꼴이 여시하기, 비골치패 퇴기질, 호홍호백 쌍육치기, 장군멍군 장기두기, 그 중에 무슨 비우 강새암, 게집치기, 밤낫으로 싸홈이니 암만해도 할 수 없다.”
 
34
이리하여 都方[도방]사리를 할 수 없이 되어 게집의 發意[발의]로 이번에는 深山窮谷[심산궁곡]을 찾아 들어가게 되었다.
 
35
“東金剛[동금강] 石山[석산]이라 나무 업서 갈 수 업고, 北香山[북향산] 찬 곳이라 눈 싸이어 살 수 업고, 西九月[서구월] 조타하나 賊窟[적굴]이라 살 수 있나. 南智異[남지리] 土厚[토후]하여 生理[생리]가 조타하니 그리로 가세. 如干家産[여간가산] 질머지고 智異山中[지리산중] 차자가니 疊疊[첩첩]한 깁흔 골에 빈집 한채 서있으되, 壬辰倭亂[임진왜란] 八年干戈[팔년간과] 엇던 富者[부자] 避難[피난]하자 이 집을 지엿던지 오간팔작 기와집에 다시 사람 산 일 업고, 凶家[흉가]로 비어서서 累百年[누백년] 독개비 동청이오 멧귀신의 사당이라. 거츤 뜰에 잇난 것이 니삭과 여호 발자최요, 깊흔 뒤안 우는 소래 부엉이 웃배미라. 강쇠놈이 집을 보고 大喜[대희]하여 하는 말이 수의사도는 간듸마다 宣化堂[선화당]이라 하더니 내 八字[팔자]도 방사하다. 寂漠[적막]한 이 山中[산중]에 나올 줄을 뉘가 알고 이리 조흔 기와집을 지어 노코 기달엿노.”
 
36
부억에 土鼎[토정] 걸고 房[방] 쓸어 空席[공석] 펴고 곧 살림을 始作[시작]하게 되었다. 餘談[여담]이나 이 智異山[지리산]은 全羅[전라] 慶尙[경상] 兩道[양도]의 境界[경계]를 이루어 <興夫傳[흥부전]>의 舞臺[무대]로도 되어 있으며 多少[다소]의 聯關[연관]이 있는 것도 같다.
 
 
 

사(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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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쇠는 옹씨의 勸告[권고]에 마지 못하여 낫과 도끼를 들게가러 點心[점심] 그릇과 함게 지개에 언저 가지고 身世自嘆[신세자탄]을 하여가면 平生[평생]에 처음 나무하러 나섰다.
 
39
“제 身勢[신세]를 제 보아도 어린 것들 한가지로 갈키나무 할 수 있나. 독긔 빼여 들너메고 이봉저봉 단이면서 그 중 큰 나무 한두번식 찍은 후에 나무 내력 말을 하며 제가 저를 꾸짓는다. 梧桐[오동]나무 베자 하니 堯人君[요인군]의 五絃琴[오현금]. 살고나무 베자 하니 孔夫子[공부자]의 講壇[강단]. 솔나무 조타마는 秦始皇[진시황]의 오대부(五大夫). 이리저리 생각하니 베일 나무 전혀 업다. 山中[산중]의 동천맥 우물물 좋은 곳의 점심굴역 풀어노코 단단이 먹은 후에 부쇠를 얼는 처서 담배 피여 입에 물고 솔그늘 잔디밧데 돌 베고 누으면서 唐音[당음] 한귀 읊어보와 偶來松樹下[우래송수하]에 高枕石頭眠[고침석두면]이 날노 두고 한 말이라, 잠자리 장이 좃타 말하며 고는 코가 山中[산중]이 들석들석 한속금 질근 자다 났바닥이 선듯선듯 비슥이 눈 떠보니 하날에 별이 총총 이슬이 젓는구나. 게을니 이러나서 기지개 불근 켜 뒤곡지 두달이며 혼자말로 두번거려, 요새 해가 그리 짤나 빈지게 지고가면 게집년이 방정떨듸. 四面[사면]을 둘너보니 登九馬川[등구마천] 가는 길에 엇더한 장승 하나 山上[산상]에 서잇거늘. 강쇠가 반겨 伐木丁丁[벌목정정] 애 안이쓰고 조흔 나무 거긔잇다.”
 
40
강쇠는 거침없이 달여드러 長承[장승]을 불끈 안고 쑥 빼내어 지개에 질머지고 意氣揚揚[의기양양]하게 제 집으로 도라왔다. 그리고 저녁밥을 먹은 후에 木神[목신] 동티가 무서우이 長承[장승]을 도리 지고 갖다 꼬지라는 게집의 忠告[충고]도 물리치고 도끼를 들고 달여드러 長承[장승]을 쾅쾅 패여 군불을 많이 때고 뜨뜻하게 누어잤다.
 
41
그러나 억울하게 犧牲[희생]된 長承木神[장승목신]이 그대로 있을 理[리]가 없다. 노들선창 大房長承[대방장승]을 찾아가서 冤情[원정]을 하소하고 公員[공원] 有司[유사]에 傳喝[전갈]하여 이 大變事[대변사]를 公論處置[공론처치]하기 爲[위]하여 全國[전국]의 八路同官[팔로동관]들에게 通文[통문]을 돌리어 無漏參集[무루참집]케 하였다. 이 席上[석상]에서 議論[의논]이 紛紛[분분]하였으나 結局[결국] 海南[해남] 관머리 長承[장승]의 提案[제안]
 
42
“그러한 凶[흉]한 놈을 쉽사리 죽여서는 설치가 못될터니 고생을 실컷시켜 죽자하되 썩 죽지 못하고 사자하되 살수업서 七七[칠칠]이 四十九[사십구] 한달 열아흐래 밤낫으로 복개다가 험사악사 하게되면 長承火葬[장승화장]한 罪[죄]인 줄을 저도 알고 남도 알아 쾌히 증계될 터이니, 우리 食口[식구]대로 病[병] 하나식 가지고서 강쇠를 차저가서 신문에서 발톱까지 五臟六腑[오장육부] 內外[내외]없이 새 집에 앙토한듯, 紙所房[지소방]에 부벽한듯, 각장장판길음 결우듯, 왜관목물 칠살갓치 점점이 발나서면 그 수가 졸 듯하오”
 
43
이대로 施行[시행]하게 되어, 머리에서 두 팔까지 全羅[전라] 慶尙[경상] 차지하고, 겨드랑서 볼기까지 黃海[황해] 平安[평안] 咸慶[함경] 차지하고, 五臟六腑[오장육부] 內腹[내복]얼낭 京畿[경기] 忠淸[충청] 차지하여, 八萬四千[팔만사천] 털구녁 한 구녁도 빈틈 없이 八道長承[팔도장승]들이 강쇠의 全身[전신]에다 病[병]도배를 해버렸다.
 
44
“그날 저녁 日課[일과]하고 한참 곤케 자고나니 千萬意外[천만의외] 왼집 안에 長承[장승]이 場[장]을 서서 몸 한 번씩 건듸리고 말이 업시 나가거늘 강쇠가 깜작놀나 말하자니 안나오고 눈 뜨자하니 꽉 부터서 滿身[만신]을 結縛[결박]하고 各色[각색]으로 쓔시난듸 제 所見[소견]도 살 수 업서 날이 점점 발가가매 강쇠 게집 잠을 깨니 강쇠의 된 形容[형용]이 丁寧[정녕]한 송장인대 呻吟[신음]하여 알난 소래 숨은 아니 끈쳐구나. 깜짝 놀나 옷을 입고 米飮[미음][급]히 고아 소금 타서 더너으며 왼몸을 만저보니 니를 꽉 앙등물어 미음 들어갈 수 업고 랑자한 부스럼이 어느새 롱창하여 피고름 독한 내가 코 두를 수가 없다. 病[병] 일홈 짓자하니 만가지가 넘게구나.”
 
45
강쇠 게집 겁이 나서 건너마을 洪奉事[홍봉사]를 다려다가 점을 하고 讀經[독경]까지 하였으나 아무 效驗[효험]을 보지 못하고 咸陽[함양] 자바지 李進士[이진사]가 名醫[명의]란 말 듣고 다려다가 藥[약]을 쓰고 針[침]을 맞었으나 病[병]든 강쇠의 몸은 藥[약]에 골코 針[침]에 꼼작없이 죽게 되었다.
 
46
이제는 강쇠도 하는 수 없이 게집에게 戀戀之情[연연지정]을 하소하고 다음과 같은 駭怪罔測[해괴망측]한 遺言[유언]을 남기고 게집의 속옷 아귀에 손을 풀숙 넣은 채 文字[문자] 그대로 長承[장승]죽엄을 하여 버렸다. 卽[즉],
 
47
“朝夕上食[조석상식] 三年喪[삼년상]을 지낸 後[후]에 비단수건 목을 잘나 저승으로 차자오면 이생의 未盡緣分[미진연분] 斷絃復續[단현복속] 되려니와, 내가 지금 죽은 後[후]에 산아히라 명색하고 十歲前[십세전] 兒孩[아해]라도 내 몸에 손대거나 집 근처에 얼는하면 直刻[직각] 急殺[급살]할 것이니 부대부대 그리하소.”
 
 
 

사(四)

 
49
以上[이상]이 前半[전반]이 되고 以下[이하]가 後半[후반]이 되겠는데, 後半[후반]은 이 뻣뻣이 슨채로 뻐드러친 강쇠의 屍體[시체]를 싸고 이러나는 가지가지의 喜悲劇[희비극]이다.
 
50
강쇠의 괴상한 臨終[임종] 遺言[유언]이 무섭지 않은 바는 아니나 게집이 元來[원래] 淫蕩[음탕]하여 守節[수절]이란 처음부터 생각지 못하였고, 그보다도 爲先[위선] 어떻게 이 깊운 山中[산중]에서 사내놈을 후려나가 이 屍體[시체]를 치우게 하느냐가 先決問題[선결문제]다. 머리 풀고 한참 痛哭[통곡]한 後[후]에 사잣밥 지어놓고 옷깃 잡어 招魂[초혼]하고 하야케 素服[소복]한 然後[연후]에 큰길가로 나리가서 청성마께 望夫詞[망부사]를 애고애고調[조]로 부르기 始作[시작]하였다. 여기에 걸러든 것이 마침 여기를 지나든 중이다.
 
51
“小僧[소승] 問安[문안]드리요. 女人[여인]이 할끗 보고 못드른체 연애 울어 梧桐[오동]에 鳳[봉]없이니 烏鵲[오작]이 지저귀고 綠水[녹수]에 鴦[앙] 없이니 오리가 나라든다. 에고애고 설운지고. 밧작밧작 달녀들며 小僧[소승] 問安[문안]이오 小僧[소승] 問安[문안]이오. 女人[여인]이 울음을 끈치고 점잔이 꾸지저, 중이라 하는 것이 부처임의 弟子[제자]이니 戒行[계행]이 달을턴데 寂寞山中[적막산중] 수풀 속에 前後不見[전후불견] 女人[여인]에게 체모없이 달여드니 버릇이 꽤 심하다. 문안 그만하고 갈 길이나 가게. 중이 대답하되, 부처임 弟子[제자]기로 자비심이 만삽더니 제주임저 청춘에 애원이 우는 소래 뼈저려 못갈 터이니 우난 내력 아사이다. 女人[여인] 對答[대답]하되, 單夫妻[단부처] 山中[산중]사리 강근지친 업삽더니 身數[신수]가 不幸[불행]하여 家君[가군] 初喪[초상] 맛난대 송장조차 험악하여 治喪[치상]할 수 업삽기로 여긔 와 우는 뜻은 膽氣[담기]있는 男子[남자]만나 家君治喪[가군치상]한 然後[연후]에 靑春守節[청춘수절]할 수 없어 그 사람과 夫婦[부부]되여 百年偕老[백년해로] 하자 하니 대사의 말삼대로 자비심이 있삽거든 近處[근처]로 단이시며 血氣男子[혈기남자] 만나거든 지시하여 보내시오. 저 중이 또 물어, 우리 절 중 좋에 자원할 이 있스면 가르처 보내릿가. 致喪[치상]만 하게다면 그 사람과 살 터이니 僧俗[승속]을 가릴터요. 저 중이 대희하여 “그리하면 쉰 일 있오. 그 송장 내가 치고 날과 살이 엇더하오. 악가 다 한 말이니 다시 물어 쓸대잇소.”
 
52
이리하여 게집의 뒤를 따러 강쇠의 집에 當到[당도]하였다. 그리고 게집 앞에 俠氣[협기]를 보이느라고 壯談[장담]하고 속으로는 진언 치며 송장한테 덤벼 들다 그대로 죽 떠드러저 버렸다. 송장 하나 치라다가 둘이 된 셈이다.
 
53
두 번째 걸려든 것이 난데없이 나타난 초란이다. 송장만 치웨주면 게집이 같이 살겠다는 바람에 목에 長鼓[장고]를 거러메고 가진 방정을 다 떨며 나대다가 송장 앞에서 長鼓[장고] 든 채를 또 쭉 빼드러지고 말었다.
 
54
세 번째 걸려든 것이 풍각쟁이패들이다. 소리 名唱[명창] 歌客[가객]과 눈멍 통소쟁이와 劍舞[검무] 추는 아이놈과 개악고 타는 늙은이와 북 치는 엄질억이 總角[총각]놈과 都合[도합] 五名[오명]이 한꺼번에 나타나, 各自[각자] 才操[재조]를 자랑하며 송장 치우기를 自願[자원]하였다.
 
55
“女人[여인]이 生覺[생각]하니 食口[식구]가 여럿이요 재조가 저만하니 송장 서넛 처내기난 염여가 업게거든 여보시요 저 손님네, 송장 먼저 보아서는 아마 기가 맥킬터니 身體房門[신체방문] 다든채로 퇴말우에 늘어안저 各色風流[각색풍류] 하엿시면 멋잇난 송장이니 감동하여 눕거드면 묵거내기 쉴터이니 그리하어 엇더하오. 그 말이 장이좃소. 굿하는 집에 고인뻔으로 마루에 느러안고 劍舞匠[검무장]이 이러서서 與民樂[여민락] 神房曲[신방곡]을 자미있게 한창 노니 방에서 찬바람이 시르르 이러나며 雙牕門[쌍창문]이 절로열여 왼몸이 읏슥하며 독한 내가 코졀으니 눈뜬 食口[식구]들은 송장을 먼저 보고 시로 다 죽는다.”
 
56
이리하여 한꺼번에 송장이 여덜이 싸이게 되었다.
 
 
 

오(五)

 
58
이 때 健壯[건장]하게 생긴 사내 하나가 또 나타났으니 이는 서울 사는 댑뜩이 金書房[김서방]이다. 宰相宅[재상댁] 마중으로 慶尙道[경상도] 黃山驛[황산역]에 좋은 말이 있다는 말을 듣고 나려오는 길에 꽃 같은 美人[미인]이 家君[가군]이 險死[험사]하여 膽氣[담기]있는 男子[남자]를 求[구]한다는 所聞[소문] 듣고 이리로 달여온 것이다. 송장이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두 눈을 딱 부르뜨고 뻣뻣하게 버티고 서 있다는 말을 게집에게 듣고, 그러면 그 놈의 눈을 먼저 빼버리어야 하겠다고 갈퀴를 들고 덤벼드러 냇다 글거대니 눈이 앞으로 툭 붉어저서 더욱 험상마께 되었다. 뎁뜩이가 大驚失色[대경실색]하여 신을 마빈 호랑이 닷듯 줄행낭을 치는 것을 게집이 뒤를 따라 쫓아가며 가진 嬌態[교태]와 달콤한 말로 꾀어 다시 집으로 끌고 드러왔다. 그리고 이번에는 새로 方法[방법]을 곤첬다.
 
59
“떡메를 내여주니 떱뜩이 둘너메고 집뒤으로 도라가서 주해의 진미치듯, 경포의 함관치듯, 뒤벅을 꽝꽝치니 송장이 벽에치여 덜퍽 뒤처지는구나. 떱뜩이 조와라고 땀씨스며 장담하여 제만놈이 엇다가서 女人[여인]은 더위한다 부채질하여 송장묵거 내랴할때 아모리 장사기로 송장여덜 질 수 있나. 近處[근처] 마을 차저가서 삿군을 엇재더니 마침 각서리패 셋이 달려드난듸….”
 
60
이 각설이패도 송장 처내면 美人[미인]과 살게 된다는 所聞[소문]을 듣고 찾어 온 것인데, 이미 美人[미인]이 남의 손에 넘어간 것을 보고 그것은 단염하고 삯을 받고 송장 처내는데 협역하게 되었다.
 
61
그럭저럭 떱뜩이와 각설이 패와 네 놈이 송장 여덜을 둘식 나누어지고 게집은 뒤를 따라 北邙山[북망산]을 向[향]하여 나섰다. 그러나 長承[장승] 죽엄을 한 심술 궂인 송장이 그렇게 順[순]하게 땅속에 드러갈 理[리] 없다.
 
62
“한참을 지고가니 무겁기도 하거니와 길가에 잇는 언덕 쉴자리 매우 조와 네 놈이 함게 쉬여 짐머리 서로 대어 一字[일자]로 부리우고 억개를 빼려 하니 그만 땅하고 송장하고 짐꾼하고 三物調合[삼물조합] 꽉 되여 다시 변통 없서꾸나. 네 놈이 할 수 없어 서로 보며 통곡한다. 애고 엇지할고. 天地開闢[천지개벽]한 然後[연후]에 이런 변고 또 있을가.”
 
63
하도 답답하여 게집이 송장 보고 꼭 守節[수절]하겠다고 굳게굳게 盟誓[맹서]하고, 떱뜩이도 “女人[여인]내 치미귀나 만저보면 벅긴 쇠아들이요” 하고 盟誓[맹서]해 보았으나 꼼짝도 안는다.
 
64
모다 배가 곺어 게집은 쪽박 들여 밥 어드러 보내고 네 놈이 선후책을 議論[의논]할 제, 마침 거기가 참왼밭 머리라, 밧임자 움生員[생원]이 아침에 일즉 나오다가 마주첬다.
 
65
“밧머리에 사람보고 된목으로 악써 무러, 네 저것들 웬놈이냐. 떱뜩이 대답하되 담배장사요. 그 담배 맛 조흐냐. 구상 조흔 상관초요. 한대 떼여 맛 좀 보자. 와서 떼여 잡수시요. 마음고든 움생원이 담배욕심 잔뜩나서 달여들어 손 쑥 너니 독한 내가 코 쑤시고 손이 꽉 붓난구나. 움생원이 호령하여 이놈 이게 웬일인고.”
 
66
네 놈이 손벽치며 大笑[대소]하고 송장 來歷[내력] 이야기하니 움生員[생원]도 同病相憐[동병상련]으로 한목 끼어
 
67
“그러하면 존 수 있다. 오고가는 사람들을 보는대로 후려드려 무수이 부쳐스면 消日[소일]도 될 것이오 뗄 의사도 날 것이니 그박게 수가 읍다. 己所不欲[기소불욕]을 勿施於人[물시어인]이라니 일은 아니 되엿시되 窮無所不爲[궁무소불위]라니 재조대로 하여보오.”
 
68
이 때 마침 寺黨[사당]패가 여기를 지나게 되었다.
 
69
“움생원이 불너, 이야 사당들아 너의 장긔대로 한마듸식 잘만하면 맛조흔 상관담배 두귀빗식 줄 것이니 쉬여가면 엇더하냐. 이것들이 담배라면 밥보다 더 조커든 그리하옵니다. 판노름 차린득키 가는 길 건너편에 一字[일자]로 느러안저, 거사는 소고치며 사당은 제차대로 연게사당 몬저 나서 ….”
 
70
연하여 初月[초월], 九降仙[구강선], 一點紅[일점홍], 雪中梅[설중매], 月下仙[월하선], 金玉[금옥][등]의 게집년들 시뚱머러진 노래를 쏟아놓으니, 움生員[생원]이 은근히 친근한 채하며 하나씩 불러 옆에 안첬다.
 
71
“잇때에 時任[시임] 雍座首[옹좌수]가 수유하고 집이 갔다 도라오난 길이 엿다. 道袍[도포]입고 안장마에 鄕廳下人[향청하인] 後陪[후배]하야 달내달내 도라가니 움생원이 불너 여보소 옹좌수. 자내가 亞官[아관]으로 긔구조타 하야 출패나무저하제(?) 날카튼 貧賤之交[빈천지교] 視也不見[시야불견] 지내가니 富貴者嬌人[부귀자교인]이란 말 자네 두고 한말이쇠. 座首[좌수]가 할 수 있나. 말게 나려오니 움생원이 제옆에다 안처꾸나.”
 
72
雍座首[옹좌수]가 한참 앉어 談話[담화]하고 이러나서 가랴하니 이미 벌서 딱 붙어서 꼼작을 안는다. 이 때까지 영문 모르고 있든 寺黨[사당]들이 깜짝 놀라 이러스랴 하니 모조리 다 붙었다. 요망한 게집들이 울며불며 야단이다.
 
73
그러는 동안에 求景[구경]군들이 작구 뫃여드러 人山人海[인산인해]를 이루고 굿상을 차려 놓고 목청 좋은 계대네들 急[급]하게 請[청]해다가 굿을 始作[시작]하였다.
 
74
제대의 능청마진 “에라 만수”소리에 송장이 感動[감동]하였든지 우에 붙은 사람들은 모드 다 떨어저서 떱뜩이 각설이만 남겨놓고 뿔뿔이 헤저갔다. 그러나 이 중에서 떱뜩이가 그래도 서울 손이라 다시 또 송장에게 懇曲[간곡]히 비러 바치어 네 놈도 겨우 떠러젔다.
 
75
그리하여 네 놈이 다시 송장 짐을 지고 北邙山[북망산]으로 急[급]히 가서 짐을 부리었는데 석 짐은 順[순]하게 부려졌으나 떱뜩이가 진 송장은 강쇠와 초란이라 등에 붙은 채 떠러지지 않는다. 각설이 세 동무는 여섯 송장 묻어주고 하직하고 가버리고 떱뜩이만 외로이 남었다.
 
 
76
[『新天地[신천지]』 7(4-6)집, 서울신문사, 1949년 6월]
【원문】조선 연문학의 최고봉 「변강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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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선(李明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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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9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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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3년 04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