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S 여러분! 반갑습니다.    [로그인]
키워드 :
한글 
◈ 압록강상(鴨綠江上) ◈
카탈로그   본문  
미상
이명선, 장광자(蔣光慈)
1
鴨綠江上[압록강상]
2
(蔣光慈[장광자])
 
 
3
어느 해 하학기(下學期) 우리 기숙사는 학교로부터 어느 수도원(修道院)으로 옴겼다. 모스크바(莫斯科[막사과])에는 교회가 매우 많었고 나는 일일히 그 수를 조사해보지는 않었으나 듣끼에는 일천이 넘는다고 했다. 혁명이 이러나기 전에는 하나님께서 교회는 신성하고 불가침의 곳이라 하야, 말하자면 중국에 공화제가 성립되기 전의 절과 같었다. 그러나 혁명이 이러난 후에 무신론자(無神論者)가 나서서 정권을 잡게 되고서는 이 교회도 또 체면을 유지하지 몯하얐다. 월래 이교도(異敎徒)에는 교회 출입을 금하고 있었으나 우리들 무신론자는 이렇게 현재 수도원의 일부를 차지하야 기숙사로 쓰고, 또 늘 수도원에 있는 수녀들이나 성상(聖像)을 보고 너니 나니 하며 웃기도 하고 조곰도 존경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었다. 이러한 것은 교도들이 말하는 소위 하나님으로서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4
우리가 거처하든 수도원은 터이루쓰야(特威爾斯牙[특위이사아]) 대가(大街)에 있었는데 방이 대단히 많고 뜰도 넓고 또 나무도 많이 각궈 있어서 제법 조고마한 공원을 이루었었다. 매일 아침마다 혹은 일이 없을 때 나는 반드시 이 수도원 안을 쭉- 한 바퀴 돌았다. 수녀들의 수는 사십 명이 좀 넘으며 다 똑같이 왼몸에는 검정 옷(黑衣[흑의])을 걸치고 머리에는 검은 수건을 쓰고 다만 얼골만 빼꼼이 내놓고 있었다. 그 중에 대부분은 얼골이 햇쓱하고 또 추레하였다. 수녀들을 볼 때마다 나는 언제나 일종의 비애를 느꼈다. 그러나 역시 그 중에 몇은 나이도 젊고 얼골도 어여뻐서 동무들 중에는 희롱하랴는 자까지 있어 통틀어 밉다고만 할 수도 없었다. 어느 날 저녁에 내가 밖에 나갔다 수도원 안으로 들어왔을 때 마침 동무 하나가 스무살 남짓해 보이는 수녀와 함께 큰 나무 밑에 마주 서서 즐겁게 이야기하다가, 나를 보자마자 바로 사라지고 말았다. 나는 그 때 그들의 행복을 방해한 것을 후회하였으며 또 한 편 “우리는 너무나 겁이 많다. 무어 그까짓 것을…”하는 생각도 났다. 이런 일이 있은 후에는 나는 특별히 조심하야 남의 일에는 상관하지 않고 더구나 남의 좋와하는 일을 방해하지 않토록 노력했다. 하물며 수녀들은 얼마나 부자유하고 적적하고 서러울 것이냐…….
 
5
마침 이 날은 저녁 여덜시쯤부터 눈이 펄펄 날리며 매우 치웠다. 나와 한 방에 있는 세 사람들은 하나는 펠샤인(波斯人[파사인]) 하나는 조선인 또 하나는 중국인 C군이였다. 우리 방에는 소사가 없어서 소제나 불 피우는 것이나 모다 우리들 자신이 하얐고 그야말로 노동실행주의(勞動實行主義)였다. 이 날 밤에도 몹시 치워서 우리들은 다같이 협력하야 화로에 불을 피웠다. 열료는 로서아에 특유한 일종의 백양수(白楊樹)였고 그 나무는 매우 잘 타고 불심도 시였다. 불을 피워놓고 우리는 쭉-둘러앉어서 잡담을 시작하였다. 우리도 역시 다른 젊으니들과 같이 몇 사람만 모이면 여자의 이야기를 하지 안을 수 없었다.
 
6
“삐터(比得[비득]) 자네는 안나(安娜)가 어떤가?”
 
7
“내가 오늘 거리에서 만난 처녀는 여간 어여뿌지 않테. 아! 그 처녀의 진주같은 눈동자!”
 
8
“자네 장가 아즉 안 갔나?”
 
9
“나는 장가를 가면 좋기도 하고 또 나뿌기도 하지.”
 
10
“…….”
 
11
이렇게 우리는 이 쪽에서 한 마디 저 쪽에서 한 마디 대개는 모다 여자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 중에서도 펠샤인 동무는 제일 신이 나서 혼자말로 중얼거리기도 하고, 또 손짓 발짓을 하여가며 그야말로 무슨 보물이나 손에 들고 있는 상 싶었다. 그러나 또 하나 조선인 동무는 전연 침묵을 지키어 별로 떠들랴고 하지 않고 또 다른 동무들의 로만쓰를 들을 때마다 눈에 일종의 슲은 표정이 나타나며 눈물이 어릴 때도 있었다. 나는 늘 그 동무에게 물었다.
 
12
“동무는 무슨 슲은 일이 있지 안나?”
 
13
그러나 그 동무는 억지로 우슴을 띄우고 대답을 하지 않거나 그렇지 않으면 그저 한 마디,
 
14
“아모 것도 슲은 일은 없네.”
 
15
하고 간단히 잘러서 말할 뿐이였다. 그는 툭 터놓고 이야기하지는 않었으나 나로서는 그의 슲음을 깨닷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마음에는 잊으랴야 잊을 수 없는 마음의 상처가 있는 것 같었다. 이 조선인 동무의 이름은 이맹한(李孟漢)이라 하는데 나이는 이십이 조곰 넘은 미소년이었다. 그는 사실 어느 정도 여성적이었다. 다른 사람하고 말할 때도 언제나 얼굴을 붉혀서 나는 늘 즉접 그와 농담도 하고 다른 동무들 앞에서 나의 시악씨라고 놀리었다. 내가 그를 시악씨라고 불러도 그는 언제나 미소를 띄우고 얼굴을 좀 붏일 뿐으로 조곰치도 성낸 적도 욕하는 적도 없었다. 나는 때로 그를 좀 업수이 여긴 적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와 마음이 맞었고 퍽 친했었다. ― 그의 여성적인 데가 나의 마음을 좀 껄었든 듯하다. 이와 동시에 나는 또 그를 마음껏 존경하였다. 그것은 그가 대단히 열심히 공부하고 퍽 도량도 크고 또 언제나 침묵을 지켜, 이러한 여러 가지 점으로 보아 나로서는 도저히 따를 수 없는 좋은 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조곰도 나를 시러하지 않었다. 때로는 그가 나에게 대한 태도로 말미아마 나의 마음은 은연중에 위로되였다.
 
16
우리들의 화로ㅅ가의 잡담이 한참 벌어젔을 때 펠샤인 동무 ― 그의 이름은 스딴싸더(蘇丹撤得[소단철득]) ― 는 모다 제각기 조곰도 숨김없이 툭 터러놓고 자기 연애사(戀愛史)를 이야기하자고 제안하였다. 이 때 마침 C군은 동무를 맛나러 나갔다. 여러시들 나를 보고 먼저 이야기하라고 족쳤다. 그러나 나는 연애하야본 경험이 없으므로 이야기를 꺼낼 건지가 없다고 대답하였다. 그러나 스딴싸더 동무는
 
17
“안돼 안돼! 웨이쟈(維嘉) 자네 거짓말할텐가! 자네같은 멋쟁이가 중국 있을 때에 자네가 사랑하는 여자나 혹은 자네를 그리워하든 여자가 하나도 없었때서야 말이 되나? 게다가 동무는 시인(詩人)이 아닌가. 시인이 가장 사랑하는 것은 여자고 또 여자는 시인을 가장 좋아하지 안나. 이맹한 그렇지 않은가?”
 
18
하고 그는 이맹한을 보고 말을 붗이었다. 맹한은 이에 대하야 다만 우슬 쁜이고 아무 대답도 없다. 그러니까 또 나를 보고 족치는 것이다.
 
19
“자네 어서 말하게! 꼭 좀 말하게! 감춰서는 않되네!”
 
20
나는 엇지할 수 없었다. 만일 억지로라도 이야기하지 않으면 그들은 나를 신용해 주지 않을 테고 또 이야기를 하자니 나한테는 이야기할만한 자미있는 연애사가 도무지 없으니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을가? 할 수 없이 나는 입에서 나오는 대로 꾸며서 거짓말을 시작했다.
 
21
“동무들! 내가 학생회장(學生會長)을 하고 있을 때 여러 학생이 나한테 편지를 보내여 나의 어떤 점이 좋으며 또 내가 쓴 글 중 어떤 데가 맘에 든다는 따우의 말을 하였었네. 그 중에도 여학생장(女學生長)이 참으로 어여뿌고 여러 차레 나한테 사랑을 거렀는데 나는 당시 바보가 돼서 전혀 그 여자의 구애를 거절해 버렸네. 동무들! 나는 또 언젠가 기선우에서 선녀같이 아름다운 한 처녀를 만났었네. 그 여자의 미모는 실로 무엇이라 말할 수 없이 아름다웠네. 나는 가진 수단을 다 불이어 그 여자한테 가까이 가서 말을 거렀는에 그는 그처럼 아름다운 동시에 대단히 인테리(知識的[지식적])였었네. 그리고 서로 말을 주고 받는 동안에 그가 나에게 따뜻한 동정의 맘을 갖이고 있는 것을 알게까지 되었네.”
 
22
내가 여기까지 이야기를 하였을 때 스딴싸더 동무는 흥분한 어조로 우스면서 말했다.
 
23
“그 아름다운 여자가 동무를 사랑하였구려! 동무는 참 행복이야! 그래 그 다음은 어떻게 되었나?”
 
24
“그리구? 응… 그리구는 결국… 무어 그다지 좋은 일도 없었네. ….”
 
25
“그건 또 웬말인가?”
 
26
스딴싸더 동무는 깜짝 놀라며 말하였다.
 
27
“설마 그 여자가 자네를 사랑하지 않을 이는 없겠는데….”
 
28
“아니어. 아냐 참 내가 숭맥바보였었네.”
 
29
“웨이쟈 동무! 자네가 제 자신을 숭맥바보라고 하는 것은 전연 신용 몯하겠네.”
 
30
“스딴싸더 동무! 가만 있게. 내 말을 다 들으면 내가 얼마나 숭맥바보이였었든가를 저절로 잘 알 것일세. 우리들 둘이 기선우 난간(欄杆)에 몸을 의지하야 서로 이야기할 때는 참으로 둘의 맘이 꼭 맞었네. 나는 지금 감히 한마디 하겠네만 그 여자는 틀림없이 내게 대하야 사랑의 싹이 움트고 있었네. 그리고 내야 말할 것도 없지. 그러나 누가 꿈에나 생각했겠나? 그 여자는 배가 부두에 닫자마자 그의 오빠에게 껄려서 그만 분주하게 육지로 올라가고 마렀네. 나는 전연 그 여자의 주소 성명을 묻는 것도 잊고 ― 우리들은 이렇게 꿈같은 이별을 하고 말었네. 동무들은 내가 얼마나 바보짓을 했는지 가히 알 수 있겠지. 나는 얼마동안 상사병(相思病)에 걸리어 아모 것도 손에 잪이지 않었지만 그러나 어찌할 도리가 없었네.”
 
31
“아! 분하다! 분해! 그것은 참 분한데!”
 
32
스딴싸더 동무는 이렇게 외치며 동시에 한숨을 쉬여 나한테 대한 침통(沈痛)한 동정의 뜻을 표시하였다. 그러나 이 때 이맹한 동무는 무었인지 따로 느끼는 바가 있는지 아모 말도 없이 우리 둘의 이야기에도 주이를 하지 않었다.
 
33
“자네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또 무었을 그리 잔득 생각하고 있나?”
 
34
나는 이맹한 동무를 보고 말하였다.
 
35
“나는 벌서 나의 연애사를 이야기하였으니 이번에는 당연히 자네 차렐세. 나는 암만해도 자네 가슴 속에 깊이 드러있는 큰 비애가 어떠한 것인지 알고 싶네. 그런데 왜 자네는 한 마디도 하지 않는 건가. 지금 이 자리에서 우리한테 그 이야기를 들려주게. 야! 시악씨 이맹한! (나는 늘 그를 이렇게 불렀다.) 만약 이야기하지 안는다면 그냥 노아두지 않겠네.”
 
36
그는 다만 두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지 단 한 마디도 대답이 없었다. 나는 겊어 또 한 번 재촉하였다.
 
37
“나는 벌서 할 말을 다 했네. 인제 자네 차렐세. 자 시악씨! 남의 맘도 좀 알어주게.”
 
38
이맹한은 한 번 크게 한숨을 내쉬고 머리를 푹 숙이면서 일종 슲은 어조로 이야기하기 시작하였다.
 
39
“자네들이 그만치 권하니 말하겠네. 나의 생각으로는 나만치 비극인 연애사를 갖인 사람도 없을 겔세.”
 
40
“그러면 오늘 밤에 자네의 그 슲은 이야기를 우리들한테 들려주게.”
 
41
하고 스딴싸더 동무가 말을 받었다.
 
42
“금년 삼월 믿을만한 ― 서울(漢城[한성])서 로서아로 도망해 온 어느 조선인의 알려준 소식에 의하면 나의 가장 사랑하고 또 가장 불상히 여기든 그 여자가 조선 서울서 일본놈들 손에 가엽슨 옥사(獄死)를 했다네.”
 
43
이맹한은 말하면서 눈물이 눈에 글성글성하여 거의 울 지경이였다.
 
44
“으-ㅁ! 그것 참 너머나 가엽쓴 일일세.”
 
45
하고 스딴싸더 동무는 대단히 놀란 빛을 보였다. 그러나 나는 무었이라고 한 마디 위로해 줄 용기조차 없었다.
 
46
“그래 무슨 죄로 인해선가. 이동무?”
 
47
“무슨 죄? 스딴싸더는 조곰도 우리 조선의 사정을 몰을 것일세. 우리 조선은 일본이 침략한 후 조선 인민이야말로 아! 참 불상하지! 종일 깊은 물 뜨거운 불 속에서 일본인의 천만근이 넘는 무거운 압박 밑에서 살고 있네. 죄를 짓거나 않거나 조곰이라도 복종치 않으면, 또 일본인에게 공손치 않으면 그만 큰 죄가 돼버리네. 그래서 체포하야 죽이거나 감옥에 너커나 하는 것일세. 일본인은 조선인의 생명을 닭의 목숨만치도 알지 않네. 죽이랴고 하면 마음대로 죽이고 죄의 유무야 묻지도 말라는 말일세. 불상하게도 나의 애인 운고(雲姑)도 뜻밖에 몹쓸 일본놈한테 맞어 죽었다네! ….”
 
48
이맹한은 말하면서도 슲음을 이기지 못한다. 이 때 내 가슴에도 설음이 복바처 올러와 어찌할 줄을 몰랐다. 모다 잠시 침묵해진 뒤에 이맹한은 다시 말을 이었다.
 
49
“나는 지금 한 망명객(亡命客)일세. 고국에는 도라갈 수가 없네. ― 만약 고국으로 도라간다면 나는 단번에 일본놈에게 잪이여 생명을 보존하기 어려울 것일세. 아! 친애하는 동무들이여! 조선이 만약 독립 않된다면 만일 일본 제국주의자(日本帝國主義者)의 압박 밑에서 해방되지 몯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국인 조선 땅에 도라갈 히망이 없을 것일세. 나는 참으로 한 번 도라가서 그리든 ‘운고’의 무덤 우에 난 풀이라도 보고, 뫼 앞에 업데여 마음껏 울어나 보았으면 하네. 또 고국의 가련하고 고생하며 있는 동포들을 삿삿치 찾어보고 ― 그 아름답든 옛날의 우리 집 정원도 보고 싶어 죽겠네. 그러나 나는 아무리 하야도 나의 뜻을 이루지 몯할 것일세. 나의 뜻을 이루지 몯할 것일세. ….”
 
50
이맹한은 울었다. 스딴싸더는 언제나 활발한 사람이였으나 이번만은 넋을 잃은 듯이 말이 없었다. 나는 점점 이맹한의 설음과 그 곳 감옥 속에 갗여 있는 조선 인민들을 생각할 때 소름이 쪽〃 낓이지 않을 수 없었다. 이맹한은 손등으로 눈물을 씻고 나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51
“웨이쟈! 자네 말은 꼭 맞었네. 자네가 나를 보고 늘 무슨 슲은 일이 있느냐고 물었었지만 꼭 맞었네. 조국의 멸망, 동포들의 수난, 애인의 옥사, 이런 것이 어찌 이 세상에서 가장 슲은 일이 안일 수 있겠나. 웨이쟈! 내가 만약 조국해방(祖國解放)의 희망과, 언제나 한 번 꼭 사랑하는 ‘운고’ 무덤에 난 풀이나마 찾어보랴는 희망을 갓지 않었다면 나는 벌서 자살했을 것일세. 나는 내 자신의 이지가 대단히 굳은 것을 믿고 있네. 나는 설영 무한한 슲음을 가지고 있지만 또 한 편 열열한 희망을 가지고 있네. 나는 ‘운고’가 조선을 위하야 죽은 것을 잘 알고 있네. 그러므로 내가 조선의 해방(解放)을 위하야 힘쓰는 것은 그것이 곧 죽은 ‘운고’의 영혼을 위로해 주는 것이 될 뿐만 아니라, 나가서는 그의 원수를 갚는 것도 될 것일세. 웨이쟈! 자네는 이제 내 이야기를 알었나?”
 
52
“자네 말은 잘 알었네. 이맹한 자네가 그러한 소원을 가지고 있는 것은 맛당한 일이겠지. 그러나 그런 슲은 이야기는 그만두고 이제 우리에게 자네와 ‘운고’양 사이에 연애 한 경과나 한 번 들려주게. 내일 오전 중은 라지예후(拉季也夫[랍계야부]) 교수인데 몸이 불편하다니 우리는 좀 늦잠을 자도 괜찬을 것일세. 스딴싸더! 무었을 그리 생각하고 있나? 왜 아무 소리도 않고 있나?”
 
53
“나는 동무 말을 듣고 넋을 이렀네. 자 그러면 이맹한 이제 자네의 연애사를 말해주게.”
 
54
이맹한은 그와 ‘운고’양과의 역사를 말하기 시작하였다.
 
55
“아! 동무들! 나는 참으로 나와 ‘운고’와의 연애의 역사를 이야기하기 시려. 아니 내가 이야기하기 싫은 것이 아니라 참아 이야기할 수가 없네. 말을 내놋는다면 나는 슲어서 고만 우러버릴 것일세. 나는 이 때까지 이 세상에서 ‘운고’만치 아름답고 성실(誠實)하고 사람을 경복싷기는 여자는 다시 둘도 업다고 생각하네. 만일 그런 여자가 있다면 나에게 있어서는 그 여자가 바로 ‘운고’이겠네. 아! 그저 오로지 ‘운고’뿐일세! 동무들이 늘 이 여자가 어여뿌니 저 여자가 스마-트하니 하지만 내게는 조곰도 흥미를 느끼게 하지 안네. 왜냐하면 ‘운고’를 제해놓고는 나의 애정(愛情)을 점령하고 나를 꿈속으로 인도하는 여자는 다시는 없기 때문일세. 내 사랑은 벌서 파-란 풀이 되여 ‘운고’ 무덤 우에 나고, 피를 토하며 우는 두견새(杜鵑)가 되여 ‘운고’ 무덤 옆에 슨 백양수(白楊樹) 가지에서 느껴 울고, 금강석이 되여 ‘운고’ 백골(白骨) 옆에 파무쳐 영원히 사라지지 않도록 장예(葬禮) 지내어 ‘운고’가 천년만년 되어도 썩지 않게 하고, 또 곻은 연기가 되여 ‘운고’의 향혼(香魂)과 함께 둥둥 떠다닐 것일세. 동무들 내가 이와 같은 맘을 가지고 어떻게 또 다른 여자의 이야기를 하며 또 연애를 생각할 여지가 있겠나? 조선이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임은 동무들도 지리를 배웠으니 대개 알고들 있겠지. 말하자면 우리 조선은 참으로 기후가 온화하고 산천초목이 모다 아름다운 곳일세. 삼면(三面)이 바다로 둘러싸이고 게다가 온대지방(溫帶地方)에 있어 건조(乾燥)하지도 않고 또 춥지도 않고 물론 산천이나 초목이나 바다에서 부러오는 바람의 혜택으로 극히 아름답고 깨끗한 곳일세. 여기 사는 조선 국민은 이런 지리적 환경 속에 살고 있기 때문에 그 성정(性情)은 당연히 월래부터 평화하고 온순(溫順)하야 소위 문아(文雅)한 국민일세. 앗갑게도 조선은 일본 제국주이의 침략을 받쟈 문아한 조선 국민은 무한한 고통 속에 빶어 다시는 아름다운 산천을 즐기고 따뜻한 바다ㅅ바람을 드려마시는 일조차 몯하게 되였단 말일세. 일본놈들은 조선을 비애(悲哀) 속에 잠기게 하고 고통(苦痛) 잔인(殘忍) 암흑(暗黑) 학대(虐待) 통곡(痛哭) 등등으로 ……. 일월이 무광하고 산천초목이 무색하게 까지 되어버렸네. 수천년 내의 주인이 일조에 큰 재난 속에 빶었으니 산천인들 영혼이 있다면 어찌 통분하지 않겠나.
 
56
아! 우리 가련한 조선!
 
57
웨이쟈! 자네는 압록강(鴨綠江)이 조선과 중국의 천년적 경계(境界)를 짓고 있는 것을 알겠지. 압록강의 어구 - 바로 강물과 바다ㅅ물이 서로 연접하는 곳에 조고마하지만 극히 아름다운 C성(城)이 있네. C성은 압록강 어구에 있어 교통이 펼리한 관게로 꽤 번화한 곳이며, 또 한편은 강을 의지하고 다른 한편은 바다를 의지해서 수목이 무성하고 산과 언덕이 적당히 배치된 확실히 경치 좋은 곳일세. 아! 생각해보니 나는 벌서 육년 전에 아름다운 C성의 품속에서 떠났네! 나는 조선을 사랑하고 그 중에서도 가장 C성을 사랑하네. 그것은 그 곳이 내가 난 땅이고 또 나와 ‘운고’의 보금자리로 둘이 같이 자라난 고향이기 때문일세. 동무들 내 머리에 C성을 그려볼 때 나와 ‘운고’가 어릴 적에 놀든 데가 지금은 어찌 되었을가 궁굼해지네만 그러나 지금 이 이맹한에게는 다만 한낫 꿈에 지나지 몯하는 것일세. C성 밖으로 버들과 소나무가 드러슨 숲이 하나 한 십리 떠러진 곳에 있네. 그 숲은 바로 바다ㅅ가에 있어서 혹시 우리가 배를 타고 C성을 지날 때면 색깜안 숲을 뚜렷하게 볼 수 있으며 또 그 그림자가 바다ㅅ물에 빛여있는 것도 볼 수 있네. 숲 속에는 파 -란 잔디밭이 있고 어데서 굴러왔는지도 모르는 커드란 바우가 여기저기 흐터저 있네. 이 숲은 겨울이 돼도 버들은 잎이 지나 소나무는 언제나 푸르러 그렇게 살풍경하지는 안네. 그리고 봄철과 여름철이 도라오면 척척 늘어진 버들가지들이 푸른 물결 우에 춤추고 또 가지각색의 새들은 천연(天然)의 미묘한 음악을 부르며, 매암이는 목이 메도록 울고 바다에서 솔솔 부러오는 안윽한 바람은 사람의 정신을 상쾌하게 씨서 쥬네. 이 숲이야말로 천연의 묘취(妙趣)를 다한 곳이였네!
 
58
벌서 그것은 십년 전 일일세. 날만 좋기만 하면 한 쌍의 어린아이 ― 머슴애 하나 게집애 하나가 하로종일 이 숲 속에서 놀고 있었네. 두 아이들의 나이는 다 여닐곱살(六七才)쯤 되여보이고 그들의 노는 모양은 꼭 한 쌍의 조고마한 천사(天使)같았네! 그 머슴애에 대한 이야기는 잠간 그만두고 그 천사같은 게집애의 이야기를 하겠네. 그 게집애는 장미화같이 고흔 얼골에 가을 물처럼 맑은 눈동자, 앵도같은 입술, 옥순(玉筍)같은 손, 까 -만 구름같이 납풀거리는 머리, 게다가 온순하고 얌전함을 느끼게 하는 양쪽 뺌에 귀여운 볼조개(笑窩[소와]) 아! 나는 참 무었이라 형용할 수 없네. 그야말로 하늘에서 나려온 천사겠지! 동무들은 나의 형용이 너무나 지나치다고 하겠지만 사실에 있어서는 어찌 만부지일인들 형용할 수 있겠나? 나는 다만 그를 상상할 수는 있지만 절대로 그를 형용할 수는 없네.
 
59
이 한 쌍의 어린아이들은 날마다 이 숲 속에서 놀고 있었는데 그들은 때로는 풀밭 우에서 다름질도 치고, 때로는 나무ㅅ가지를 모아 집도 짓고, 이 방은 내 방 저 방은 네 방 또 저 방은 어머니 방 하고 재재거렸으며 때로는 바다ㅅ가에 뛰여가 서로 돌팔매질도 하고 또 풀밭 우에 둘이 나란이 들어누어 하늘에 오락가락하는 힌 구름을 쳐다보고 때로는 과자나 술을 준비해서 손님을 청하고 또 둘이서 나란이 바우에 기대여 어머니 아버지를 서로 자랑도 하고 다른 사람들한테서 들은 이야기도 하고 이튼날 놀 일에 대한 의논도 하고 손목을 마주 잡고 바다ㅅ가에 서서 오락가락하는 배며 파도를 바라보기도 하고……. 설혹 둘이 다투기는 하나 그런 일은 퍽 드문 일이고 다툰 뒤라도 불과 얼마 안돼서 씨슨 듯이 홱 푸러지고 말었네. 두 어린이는 근심도 없고 두려움도 없이 하로종일을 자연 속에서 자라났으니 그 얼마나 행복이였겠나?
 
60
동무들 이 두 어린 아이가 바로 십여년 전의 나와 ‘운고’였었네. 아! 이미 벌서 십여년 전 일이 되었네! 지나간 일은 이미 지나갔고 이를 어찌 또 도맇길 수가 있겠나? 나와 ‘운고’를 또 다시 옛날같이 행복스럽게 살게 할 무슨 방법이 있겠나? 지난날의 행복을 생각하면 그저 가슴이 앞을 뿐일세!
 
61
나와 ‘운고’는 모다 귀족(貴族)의 후예(後裔)로 나의 성은 이(李)고 ‘운고’의 성은 김(金)일세. 김과 이는 조선에서 유명한 귀족인 줄은 웨이쟈도 잘 알 것일세. 일본놈이 조선을 합병해 버린 후에 나의 아버지와 ‘운고’의 아버지는 벼슬을 그만두고 시골로 은퇴하여 버렸네. 그의 아버지와 나의 아버지는 무척 친한 친구여서 친척으로 따진다면 사촌형제간이나 지지않었네. 우리들 집은 둘 다 옆에 있고 서로 한 열 발자옥밖에는 떠저저 있지 않었네. 그 두 노인은 나라가 망한 수치와 동포들의 고생을 대단히 근심하였으나 한두 사람의 힘으로는 이미 척 기우러진 집을 이르켜 세울 도리가 없어 시골로 은퇴하야 산수(山水) 속에서 소일하게 되었든 것일세. 그 분들은 어느 때는 화로를 끼고 술을 디여 마시며 이야기가 슲으로 쓰라린 상처를 건디리이 서로 커다란 소리를 내여 우는 때도 있었네. 그 때 나와 ‘운고’는 너무나 어려서 두 노인의 이러한 모양을 보고 그 까닭을 몰랐으나 다만 어린 맘에도 일종의 자극을 받어 파동(波動)을 이르켰든 것일세. 그후 나와 ‘운고’는 점점 자랐네. 그리하야 비로소 두 노인의 이야기의 뜻을 차차 알만치 되었는데 그 노인들은 각금 이야기하다가 우리가 곁에 있으면 말을 끝이고 우리들을 도라보며 뜸벅뜸벅 눈물만 떨어틀인 적도 있었네. ― 이것은 아즉 나이 어린 우리들 마음속에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인상(印象)을 주었네.
 
62
두 노인 이야기는 그만 두겠네. 나와 ‘운고’는 났을 때부터 동무였고 어릴 때부터 서로 친하고 사랑해서 그림자가 그 임자를 따러단이는 것처럼 같이 지냈네. 우리는 집도 서로 구별하지 않고 ‘운고’가 우리 집에 와서 같이 먹거나 내가 그 집에 가서 꼭 그와 함께 한 상에 먹었는데 만일 그렇지 않으면 서로 다 밥이 먾기지 않었네. 우리의 어머니들 사이도 역시 아버지들 사이와 같이 매우 친하고 우리들을 똑같이 여겨서 조곰도 등분이 없었네. 나와 ‘운고’는 이와 같은 가정적 환경에서 참으로 너무나 행복스러웠었네! 우리는 점점 자라서 책읽기를 시작하였는데 ‘운고’의 아버지가 선생이 되여 우리들이 배우는 책도 같았었네. 선생한테 배우는 것은 다름없었으나 ‘운고’의 재조는 도저히 나의 따를 배가 안이었으며 내가 그에게 배운 적도 한두 번이 아니였네. 매일 불과 서너 너덧 시간만 책읽기를 맟이면 우리는 손을 마주 잡고 숲 속이나 또는 바다ㅅ가로 놀러가는 것이 일이었네.
 
63
아 참! 아주 자미 있는 이야기가 생각났으니 소개하겠네. 우리 둘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친척집이 있었는데 그 집 사촌형의 혼인날 우리는 두 어머니를 따러갔었네. 이튼날 우리는 숲에 가서 바로 그 흉내를 내는데 ― 그는 신부가 되고 나는 실랑이 되였네. 때는 마침 바람이 산들산들 불고 새싹이 푸릇푸릇 터올러 꽃과 새가 모다 사람을 즐겁게 하는 봄날이었네. 놀기에 실증이 나면 곧 실랑 신부가 되는데 내가 그의 머리에 많은 꽃을 꽂어주면 그는 머리를 숙이고 신부의 흉내를 내며 나와 손을 잡고 한 거름 두 거름 걷기도 했네. 그러나 조곰도 이상한 생각이 안 들었고 또 신부 실랑이 되기는 했으나 그 관계란 어떠한 것인 줄은 몰랐었네. 두 어린 내외가 막 한참 발을 맟우어 걷고 있을 때 급작이 숲 오른 편에서 그의 아버지와 우리 아버지가 나타나 우리 앞에까지 와서 매우 이상한 빛으로 ‘느덜 무었다고 있니?’하고 물었었네. 우리는 이러한 유희(遊戱)를 하고 놀았으나 두 노인이 나타났을 때 어쩐지 부끄러워서 ‘저들 잔치 노름을 하고 있었어요. 제가 실랑이 되고 ‘운고’가 신부가 되여 ― 우리는 이따금 이런 작난을 해요.’ 내가 부끄러운 듯이 이렇게 한 마디 대답하니까 두 노인은 껄껄 웃어 버렸네. 나의 아버지가 ‘운고’ 아버지를 보고 ‘노형! 한 쌍의 어린 내외를 보니 참 재미있지 않은가?’ 말하니까 ‘운고’ 아버지는 긴 수염을 써-ㄱ 한 번 쓰다듬으며 우리를 자세히 바라보다가 무었인지 생각난 듯이 두서너 번 고개를 끄덕어리면서 ‘참 기특한 일인데! 이런 노리를 할 줄은 몰랐네. 응 노형 잘 됐네. 우리는 이 아이들의 앞날의 행복을 축하하세. ….’ 그 때 나는 ‘운고’ 아버지의 말뜻을 잘 몰랐지만 ― 사실은 이미 ‘운고’를 암암리에 내게 주겠다는 말이였는데. …. 세월은 화살같이 참 빨라서 나와 ‘운고’는 그러는 사이에 어느듯 열한두살(十一二歲)이 되었네. 우리는 점점 커갔으나 조곰치도 서로 멀어지지 않고 또 우리 부모들도 구태여 우리들 일을 간섭하지 않었네. 여전히 날마다 같이 공부하고 같이 놀았네. 운고 아버지는 매우 점잔은 분이 돼서 혼내는 일도 없고 때로는 노래까지 가르켜 주었네. 봄이 되면 숲속에서 새들이 곻은 목소리로 울었고 그러면 우리도 흥이 나서 새들과 함께 곡조를 맟우어 노래 불렀네. 올치! 새 말이 나왔으니 거기에 대하야 한 가지 이야기꺼리가 생각나네. 어느 날 저녁 때 큰아버지가 나가지고 놀라고 꾀꼬리 한 마리를 대ㅅ가치로 만든 새두퉁지에 넣어가지고 왔었네. 나는 그 때 여간 기뻐하지 않었네. 그 꾀꼬리는 무척 아름다웠네. 빨-간 주둥이 파-란 날개 노-란 발톱 ― 참 좋은 노리개였네! 자네들 나라에도 이런 새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우리 조선에서는 제일 어여뿐 새로 치는 것일세. 그 때는 이미 날이 점으러 ‘운고’도 잠이 들었을 것 같애서 나는 이 새로 얻은 보배를 알리지 못했네. 그래서 나는 자기 전에 새 두퉁지를 집 처마에 달어매여 고양이가 물어가지 몯하게 잘 주이했으며 내일 ‘운고’가 이 새를 보면 얼마나 기뻐할가 생각하고 또 한편 큰아버지가 아주 한 쌍을 갖이고 와서 한 마리를 ‘운고’에게 주면 얼마나 좋왔을까? ……. 나는 한 마리의 꾀꼬리 때문에 하로ㅅ밤을 꼼박 새워버렸네 그려.
 
64
이튼날 채 날이 새기도 전에 나는 이러나서 어머니가 외 그리 일즉 이러나느냐고 묻는 말에도 그저 신둥만둥 대답해 버리고 세수도 않고 ‘운고’네 집에 쫓아갓네. 그 때 운고는 아직 곤히 자고 있는 것을 나는 ‘운고’ 옆에 가서 흔드러 깨우며 ‘이러나! 이러나! 운고야! 난 꾀꼬리 한마리 얻었단다! 참 어여뿌다! 어서 빨리 이러나서 봐라….’ 운고는 무슨 영문인지 모르고 고 작은 손으로 양쪽 눈을 비비며 나를 보더니 급하게 옷을 줏어입고 나를 따러 우리 집으로 달려왔네. 새 두룽지를 나려 걸상 우에 놓고 자세히 가리켜 주었드니 ‘운고’도 대단히 기뻐하며 ‘잘 키워서 죽지 않도록 하고 또 날라보내지 않도록 주이하자’ 이렇게 말하였네. 누가 알었을까. ‘운고’는 그 새 두룽지를 놓지 않고 작고만 가지고 놀다가 그만 잘몯해서 그 문이 열리여 ― 꾀 많은 꾀꼬리는 이 틈을 타서 횅- 하고 하늘 높이 날러가 버렸네. 나는 보배를 잊고 분해서 막 엉엉 울며 ‘운고’를 족처댔네. ‘내가 일부러 너를 데려다 보였는데 왜 날려 보냈니? 꼭 내 꾀꼬리를 무러내야만 한다. 만일 안 무러내면 가만 안 둘테다. 느 어머니한테 일를테야…. 엉…. 엉….’ ‘운고’는 새가 날러가는 것을 보자 단번에 얼골이 빩애지고 또 내가 울며 무러내라고 족처대는 바람에 그도 딸어 엉엉 울면서 그는 일부러 날려보낸 것이 아니니까 무러내지 몯하겠다고까지 말하였네. …. 그러나 나는 울면 울수록 더 분해서 꼭 새를 무러내라고 족첬네. 우리가 한테 어울어저 우는 바람에 어머니와 아버지가 놀래여 방에서 쫓어나와 왜 아침 일즉부터 이렇게 울어대느냐? 무슨 큰일이 났느냐고 물었을 때 나는 울면서 ‘운고’가 내 꾀꼬리를 날려보냈어요 꼭 무러내랄 테야요. …. 하니까 ‘운고’도 연달어 ‘아니예요 아니예요! 내가 일부러 꾀꼬리를 날려 보낸 것이 아니예요. 나를 보고 무러내라면 나는 도대체 어데 가서 잡어오란 말예요? ….’
 
65
‘응! 그런 사소한 일이냐! 아 고까진 새 한 마리 날려보낸 것 가지고 통곡을 할 것이 무었이란 말이냐? ‘운고’야! 참 착하지. 인제 울지 말고 무러내지 않어도 좋으니 집으로 그만 도라가거라.’― 운고는 울면서 집으로 도라갔네. 어머니가 나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달래는 바람에 나도 겨우 울음을 끛었네.
 
66
이 날은 글방에도 안 가고 왼종일 몸부림처 울며 집에 있었는데 무슨 대단한 것이나 잊어버린 듯이 작고만 슲어저서 평소처럼 유쾌하고 평정(平靜)하게는 도모지 되지 몯하였네. 이것은 꾀꼬리를 잊어버려서 그런 것이 아니라 ‘운고’가 내 눈 앞에 없는 까닭이었네. 나는 처음으로 고적의 쓰라림을 맛보고 외로운 생각이 나면 날수록 ‘운고’가 그리워저서 그에게 죄를 잎여 괴롭힌 것이 깊이 후회되었었네. ‘아! 모다 내가 잘몯이다. 그까진 꾀꼬리 한 마리가 무었이니? 하물며 ‘운고’가 고의로 그런 것도 안인데…. 그도 역시 꾀꼬리를 사랑하지 안었든가! …. 왜 그렇게도 그를 족쳐댔을가? …. 모다 내가 잘몯이다. 나는 당연히 그에게 사죄하여야 한다. 그러나 ‘운고’는 내가 이렇게 후회하고 있다는 것은 모를 것이다. 필연코 그는 내 맘을 몰라 줄 것이다. 만일 내가 가서 비러도 나를 몰라준다면 나는 어찌할가? ….’ 나는 이런 생각 저런 생각에 어떻게 하면 좋을 지 몰라 그여히 우러버렸는데 울면 울수록 더 슲어지고 이번에는 꾀꼬리 때문에 우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운고’ 때문이였네. 꾀꼬리 한 마리로 인해서 부당하게 ‘운고’에게 죄를 지운 까닭이였네. …….
 
67
동무들 이것이 내가 이 세상에서 처음 맛본 서름이였네! 나는 이미 ‘운고’한테 사죄하기로 정했지만 참말로 골을 내버린 ‘운고’가 과연 맘이 풀릴까 하는 의문이였었네. 그러는 중 마침 저녁 먹을 무렵에 ‘운고’네 집에서 일하는 할멈이 편지 한 장을 가지고 왔는데 나는 그 겉봉 글씨를 보고 ‘운고’가 나에게 한 것을 알고 무척 부끄러워서저서 그 할멈에게 물었네. “운고’는 오늘 잘 놀았오?’“운고’ 아가씨 말이요? 그 아가씨는 오늘 외종일 울고 있었는데 아마 도련님하고 싸운 게지. 아! 잘 놀게지 왜 또 그렇게 싸웠오? 자 받어보슈 이것은 ‘운고’ 아가씨가 준 편지요.’ 할멈은 매우 언짠은 빛으로 말을 맟이고 가버렸네. 나는 ‘운고’가 왼종일 울었다는 말을 듣고 나의 조고만 불찰로 그처럼 그를 괴롭게 한 것을 알었으며 나는 어찌하야 이러한 큰 죄를 저질렀나 해서 깊이 제 자신을 저주하였네. 나는 손에 든 편지가 서로 사과하자는 것인지 절교하자는 것인지 몰라서 감히 뜯어보지 몯하다가 겨우 벌벌 떨면서 뜯어보았네. ….”
 
68
스딴싸더는 이맹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69
“그래 그 편지에는 무어라고 써 있든가? 히소식이든가 어떻든가? 이맹한! 나까지 은근히 걱정이 되네.”
 
70
그는 부쩍 대들며 물었다. 이맹한은 슬슬 웃으며 화로의 불덩어리를 독구며 또 이야기를 이었다.
 
71
“물론 좋은 소식이지! ‘운고’가 어찌 내 맘을 몰라줄 리가 있겠나. 그 편지에 말하기를 ―‘사랑하는 맹한씨! 저는 제 잘못을 알고 있읍니다. 당신이 사랑하는 새를 날려 보낸 것은 잘몯입니다. 그러나 맹한씨! 제가 일부러 한 것이 안이라 실수였다는 것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용서해 주시겠지요? 저는 꼭 용서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저는 오늘 당신 없이 혼자 있기가 여간 맘이 괴롭지가 안었읍니다! 맹한씨! 제 두 눈은 너머 울어서 빨개젔읍니다. 저를 불상히 여겨주십시요! 조곰이라도 저를 불상히 여겨주신다면 내일 아침 우리가 늘 노는 그 바위 앞으로 와 주십시요. 저는 거기 가서 사과하겠읍니다.’ 동무들 이 편지를 읽고 내가 얼마나 기뻤을가 좀 생각해 보게. 그러나 그 때 또 나는 부끄러운 생각을 어찌할 수 없었네. 나는 맛당히 그에게 사과해야 할 것인데 도리혀 그가 내게 사과한다 하며 또 나보고 불상히 여거달라 하니 아! 이것이 어찌 부끄럽지 안을 것인가!
 
72
이튼날 해도 뜨기 전에 나는 일어나서 ‘운고’의 약속 대로 바다ㅅ가 큰 바우 있는 데로 갔드니 뜻밖에도 ‘운고’가 웨쳤네. 그도 ‘맹한 옵빠!’
 
73
하고 부르짖고 ― 우리는 마조 바라보았으나 다른 아무 말도 나오지 안었네. 그의 두 눈은 빨갰으며 내 품에 않기여 우리는 한참동안 서로 안고 울었네. 왜 울었는지? 기뿐 눈물인지? 슲은 눈물인지? 울 때 우리는 그 까닭을 몰랐고 또 지금도 역시 대답 몯하겠네. 이 때 파란 풀 우에는 이슬이 구슬같이 반짝이고 ― 숲 속의 새들은 새벽 노래를 부르고, 평온한 바다에는 순한 물결만 각금 일고……. 신선하고도 한없이 빨간 아츰해는 차츰차츰 떠올라 서로 안고 우는 한 쌍의 어린이를 빚의었네.”
 
74
이맹한은 여기까지 말하고 끛이었다. 이 때 그의 얼골에는 점점 뚜렷하게 슲은 표정이 보였고 유쾌히 웃든 빚은 차차로 사라저버렸다. 양쪽 팔로 잔득 팔장을 끼고 두 눈은 화로 안의 숫불만 드려다 보고 있었다. 심리학을 연구하지 않은 나로서도 이 때의 그의 슲음을 능히 깨달을 수 있었다. 잠간 침묵이 게속되자 성미 급한 스딴싸더는 물론 그 이야기를 뿌리째 캐려하고 또 이러한 침묵이 게속되는 것을 원하지 않었음으로 이맹한을 보고 말했다.
 
75
“자네 이야기는 아즉 끝나지도 않었는데 왜 그만 두나? 인제 막 자미나는 판인데 급작이 딱 끛어버린다니 어데 말이 되나! 이맹한! 어서 끝까지 이야기해 주게. 그렇지 않으면 오늘 밤 잠은 다 잔 잠일세. 웨이쟈 동무 말 맛다나 내일 오전에는 강의도 없으니까 좀 늦잠 자도 괜찮을께야. 자네는 무었을 그리 근심하고 있나? 어서 빨리 빨리 해. 이맹한!”
 
76
나는 물론 스딴싸더 말에 동의해서 이맹한에게 그 이야기를 끝맟이도록 권하였다. 나는 보통 때는 초저녁 잠이 많은데 이 날 밤만은 예외로 잠이 오지 않고 또 조곰도 몸이 피로해지는 것을 느끼지 않었다.
 
77
이맹한은 그래도 아모 말이 없다. 나는 급히 이러났다. 스딴싸더가 그만 화가 났는지 양손으로 이맹한의 왼손을 움켜쥐고 꼭 그 이야기를 끝맟워야 된다고 서둘렀다. 이맹한은 슲은 표정으로 우리를 쳐다보았는데 그것은 우리의 동정을 구하는 듯했다. 그는 할 수 없이 또 이야기를 게속했다.
 
78
“아! 나로서는 이야기는 이만하여 두는 것이 맛당하고, 또 더 이야기할 피료가 없을 것 같애. 더 이야기한다면 나도 괴로울 뿐 안이라 동무들도 재미 없을 것일세. 그렇지 안나 스딴싸더! 내 손을 놓게 이야기하겠네. 아! 이야기…. 내가 어떻게 이야기를 참아 잊겠나? …. 자네들은 작난이 너무나 심하네! ….
 
79
이런 일이 있은 후 나와 ‘운고’와의 사랑은 한층 더 깊어저 우리들의 사랑은 해마다 더 깊어갈 뿐이였네. ― 나와 ‘운고’는 한 동갑이였으며 다만 내가 몇 달 먼저 났을 따름이었는데 ― 둘의 사이는 자랄수록 차차 달라저서 이 때까지의 사랑은 그야말로 천진란만한 것으로 어린이의 아무 자각이 없는 사랑이었으나 그러나 후에 이러한 사랑이 차차로 어린이의 사랑에서 버서나 그것을 깨닸는 시기에 도달하였네. 은연중에 우리는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안되고 그는 나의 것 나는 그의 것이며 장래 살어나가는 데도 영원히 떠러질 수 없는 한 짝인 것을 깨닷게 되었네. 동무들 나는 참으로 그 때의 내 심경을 어떻다고 그러낼 수가 없네. 더구나 나의 노어(露語)는 아직도 서투르고 게다가 문학적 소질도 없어 안타깝기 짝이 없네!
 
80
세월은 빠르고 사람은 해마다 장성할 뿐이라 나와 ‘운고’는 어느듯 열네 살이 되였네. 아! 그 열네 살 때 동무들 그 해부터 나의 슲으고 불행한 생활이 시작되였네. 속담에 ‘하늘에도 불측(不測)의 풍운(風雲)이 있고 사람에도 잠시(暫時)의 화복(禍福)이 있다’― 하지만 동무들 우리 조선에는 잠시의 복이라는 것은 없고 잠시의 화는 있는데 이것은 아마 자네들이 바로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일세. 어떠한 사람이고 제 집에서 아모 짓도 하지 않고 있어도 그의 생명은 결코 안전치는 몯한 것일세. 일본놈의 경찰, 제국주의자의 개놈들은 번뜻하면 조선 사람을 잡어다가 제멋대로 모반(謀叛)의 죄명을 잎여 바로 그 자리에서 목을 비거나 총살을 한단 말일세. 아! 일본놈들이 와서 한 흉악한 행동을 자네들은 꿈에도 생각 몯하리? 자네들 상상력이 아모리 풍족하다할지라도 조선 사람이 일본 제국주의자들한테서 받는 학대가 얼마만한 것인가 도저히 상상할 수 없을 걸세!
 
81
우리 아버지는 열심히 조선 독립을 회복하려고 한 사람이였든 것은 나도 잘 알고 있네. 그 해에 조선인 하나가 일본 경관을 암살했는데 일본놈들 당국에서는 이것은 필경 우리 아버지가 주모(主謀)라는 혐의를 씨워서 ― 그 자세한 것은 나는 잘 몰랐었네만 그여히 아버지는 잪여가서 그만 총…살… 되었네….”
 
82
스딴싸더는 놀래여 펄적 뛰면서 연겁허 외첬다.
 
83
“그럴 도리가 있나! 그럴 도리가 있나! 아! 나는 일본놈이 조선서 그런 악착한 행동을 하고 있는 줄은 몰랐네!….”
 
84
나도 이맹한의 말을 듣고 크게 놀라 스딴사더의 이러한 태도는 나를 더 한층 놀라게 했다. 이맹한은 뚝! 뚝 눈물을 떨어틀이었다. 울며 목 메이는 소리로 뛰염 뛰염이 말을 이었다.
 
85
“아버지가 일본놈에게 총살을 당한 후… 나의 어머니는… 아… 아… 아! 불상하게도… 어머니는… 물에 빠저 죽고 말었네.”
 
86
스딴싸더는 눈이 휘둥그래지며 말을 몯하고 허수아비처럼 돼버렸다. 나 역시 눈시울이 뜨거워저 눈물이 솟아올으는 것을 어찌할 수 없었다. 모다 또 아무 말 없이 잠잠해젔다. 창 밖에 바람은 더 한층 사나워지고 급작이 수 많은 말이 뛰어닷는 듯 ― 별안간 큰 물결이 몰아닥치는 듯 ― 수 많은 군사가 아우성 치는 듯 ― 졸지에 하늘이 문어지고 땅이 깨지는 듯… 이것은 바로 조선의 운명을 슲어하는 것이며 이맹한의 불평을 같이 울어주는 것이 아닐가? 이맹한은 우름을 끝이어 수건으로 눈물을 씼고 또 슲은 이야기를 게속했다.
 
87
“만일 ‘운고’가 없었드면 ―‘운고’의 권고가 없었드면 ― 동무들 나는 벌써 부모를 딸어 죽었을 것이지. 이 이맹한이가 어찌 지금 이렇게 여기 있을 것이며 내가 어찌 자네들과 모스크바에서 맛났겠으며 오늘 밤 이 자리에서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나? …. 아! ‘운고’는 내 은인(恩人)일세! 아! ‘운고’는 내 목슴을 살린 은인일세!
 
88
나의 아버지 어머니가 다 참사한 후 남은 것은 다만 외로운 나 하나뿐이었네. ‘운고’의 아버지는 (그도 경찰에 잪여 갔었는데 여러 사람들이 그렇지 않다고 잘 말해서 간신히 나왔네.) 나를 집으로 다려다가 자기 아들과 똑 같이 걷우었네. 그러나 나는 왼종일 울기만 하고 자살까지 하랴 했네. 부모가 참혹하게 죽은 것을 생각하면 이미 고아 된 이 몸이 살어서 무슨 재미가 있겠느냐는 것일세. ‘운고’도 나를 보고 몹시 슲어했으며 거이 밥도 잘 먹지 않었네. 그는 총명한 여자이였기 때문에 내 태도가 수상함을 아러채고 욱하는 마음에 큰일을 저질르지나 않을가 해서 내 행동을 특별히 보살폈네. 언젠가 그에게 나는 자살할 생각이라고 했드니 그 말을 듣고 그는 냇다 울어대며 백반(百般)으로 애원하야 나의 장래 갈 길을 가르처 주었네. 아! ‘운고’는 참으로 경복할 만한 여자였으며 그의 식견은 나보다 몇 배나 낳었었네. 부데부데 장래를 위해서 몸조심을 하며 나종에 원수를 갚을 날이 꼭 있으리라는 것 또 죽어버리면 아모 일도 안되고 사내 대장부가 그런 옹색한 생각을 해서는 안되며 만일 내가 죽으면 자기도 꼭 죽겠으니 그래도 좋겠느냐고까지 말하였네…. 운고의 말은 한 마디 한 마디가 모다 옳고 그의 지헤에는 참으로 나는 딸을 수 없었네. 그래서 나는 자살할 생각을 버렸네. 또 그 때 나는 암만 자살하랴 해도 도모지 머리에서 떼어버릴 수 없는 일이 하나 있었네. 그것이 무었이였느냐 하면 바로 ‘운고’였네. 내 생명의 ‘운고’! 동무들! 생각해 보게. 만일에 ‘운고’의 격려가 없었드라면 지금 자네들이 어찌 이맹한과 같이 있을 기회가 있겠나?
 
89
이 때부터 ‘운고’는 나의 가장 인자한 어머니가 되였네. 그는 나를 위안해주고 보호해주고 내 맘을 잘 알어주어 무었 하나 부족한 점이 없었네. 내가 성을 내는 때라도 그는 그것을 잘 참어서 조곰도 나를 의심치 않었네. 아! 내 ‘운고’ 나의 사랑하는 ‘운고’! 나는 또다시 그의 따뜻한 애호를 받을 수 없게 되었네! ….
 
90
이러는 동안에 또 이태가 지나 ‘운고’는 클수록 더 어여뻐지고 전보다 더 똑똑해젔네! 아! 그의 아름다운 것을 내가 어찌 형용할 수 있겠나! 나같은 뚝눈을 가지고 어찌 선녀같이 아름다운 그를 형용할 수 있겠나! 아마 이 세상에서 나의 ‘운고’같이 아름다운 여자는 또 없을 것일세. 내 눈에는 자네들이 어여뿌다고 하는 여자에게는 나는 조곰도 맘이 쏠리지 안네. 자네들은 평소에 나를 공부만 알고 여자라면 이야기만 하여도 싫여하는 사람이라고 웃었지만 아! 자네들은 어찌 내 사랑이 무덤과 같이 싸느라케 식어버리고 고시란이 ‘운고’와 함께 사라저버려 다른 여자와는 다시 용납 몯한다는 것을 알 수 있겠나? 나는 ‘운고’를 위해서 수절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는 ‘운고’만치 어여뿐 여자가 다시는 없기 때문일세. 나는 ‘운고’의 사랑을 받어 이렇게 행복스러웠으니 무었을 또 바랄 것이 있었겠나. 자네들도 이제 나를 좀 이해하겠나? 아직도 이해 몯하는 사람이 있을 것일세! ….
 
91
나는 벌서 열여섯 살이 되었네. 일본놈 아! 그 흉악한 일본놈이 나를 편안히 살게 놔뒀겠나? 아버지도 죽이고 어머니도 도라가시게 하고 그래도 또 무었이 부족했든 모양이었네. 아! 내 이 목숨을 뺏을랴고 하지 안나! 조선 사람이 조곰이라도 그 일본놈한테 나뿌게 하면 그 놈들은 아주 그 씨를 멸하여 조선 사람은 하나도 남기지 않을 것일세. …. 나는 점점 커갈수록 일본 경찰의 나에 대한 주이와 감시(監視)도 점점 더 심하여젔네. 경찰이 나를 잡으러 온다는 소문이 돌자 ‘운고’ 아버지는 이런 소문을 듣고 몹시 근심하여 일본놈의 독수(毒手)가 어느 때 또 나를 잡어다 죽일지 몰라서 밤낮으로 잠도 편안이 몯 자고 입맛까지 잃고서 뇌심해 주섰지만 나는 도리혀 아모 걱정도 없는 듯이 지냈네. 하루는 그 노인이 나를 불러 앞에 않지고 사람이 없을 때 뚝-뚝 눈물만 흘렸는데 나는 그 때 웬 영문인지를 몰랐네.
 
92
그는 목메인 소리로 ―‘맹한아 너의 양친이 작고하신 후에 나는 너를 내 친아들과 진배없이 키워왔고 이것은 너도 대강 이해하겠지. 내가 너를 내 앞에서 키워온 것은 한 가지는 황천에 게신 너의 부모들이 죽어서도 눈을 감게 하기 위한 것이요 또 한 가지는 죽은 동무에 대한 나의 의무를 다하고 저 함이었다. 더구나 또 이미 ‘운고’를 네게 허락하지 않었었드냐? 그러나 지금 와서는 맹한아 너는 이 조선에 있을 처지가 몯된다. ……. 일본 경찰은 너를 노리고 있다. 아! 그 놈들이 어떠한 흉악한 짓을 할는지 누가 그것을 예측하겠느냐! 만일 네가 불행히도 또 그 놈들 독수에 걸린다면 나는 어떻게 너나 혹은 저 세상에 게신 너의 부모들을 대할 낱이 있겠느냐? 아! 맹한아!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너는 어서 바삐 도망하지 않으면 안된다. 벌서 내가 준비는 다 해놓았으니까 오늘 밤에라도… 떠나야만 한다. 얘야… 얘야… 너는 반듯이 이 슲은 조선 땅을… 어느 때나… 아! 어느 때나 또 혹시 서로 맛날 수 있을지! ….’ ‘운고’ 아버지는 그만 소리를 내여 울고 말었네. 나는 청천에 벽력을 맛난 것처럼 어떻게 해야 좋을지 무었이라 말해야 좋을지 몰랐네. 동무들 자네들도 나의 그 때 심경이 어떠했을가 좀 생각해 보게! 아! 나이 어린 내가 급작히 이런 큰일을 당했으니 동무들 자네들은 그것을 어떻게 하면 좋을 줄로 생각하나? 나는 이 때 별로 이야기도 하지 않고 다만 울고만 있다가 그 노인이 하라는 대로 그 지시에 따르는 수 밖에 없었네. ….
 
93
그러나 나의 ‘운고’는? 그는 그 때 그의 아버지가 내게 말하는 데 반대하였을가? 아! 현숙한 ‘운고’! 대의(大義)를 깨달은 ‘운고’! 그는 벌서
 
94
다 알고 있었으며 또 나의 도망할 방법까지도… 모다 그의 아버지와 상의해 노았었네. 근들 어찌 이렇게 하는 것을 원하였겠나? 어찌 내가 그에게서 떠나 홀홀단신(單身)으로 정처없이 타국으로 방낭의 길을 떠나는 것을 원하였겠나 그는 원치 않었을 것일세. 절대로 원치 않었을 것일세. 아! 그러나 나의 안전과 나의 장래를 위해서 그는 억지로 참고서 나와 애처러운 생이별을 하게 되었네! 아! 그의 가슴은 얼마나 앞었겠나! 그의 아버지가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할 때 그는 자기 방에서 너무나 설게 울었으며 오곡간장이 다 끊어지도록 몸부림쳤다네….
 
95
그 날 밤 열시 쯤 해서 한 노인이 어선(漁船) 한 척을 몰고 조용조용히 압록강을 건너서 사람 기척도 없고 갈대만 수굿하게 난 강가로 노를 저어 왔을 때 컴컴한 어둠 속에서 한 쌍의 어린이가 잿빨리 걸어서 어선이 닫는 강가로 달려갔네. 이것이 이제 막 생이별하려는 한 쌍의 원앙(鴛鴦)일세. 아! 누가 능히 그네들의 쓰라린 심정을 형용할 수 있겠나! 둘이 막 강가에 닫자 손에 든 보재기에 싼 것을 땅에 놓고 서로 부뜰고 흑흑 느껴우는 소리만 한참동안 들리다가 우는 음성이 한층 높아저서 ‘맹한 옵바! 이번에 떠나가서… 부데 몸조심하십시요. …. 나는 영원히… 당신의 것입니다. …. 이 세상에는 정의(正義)가 있어야 합니다. …. 우리는 결국… 끝에는 서로 맛날 날이 있겠지요! ….’
 
96
“운고’씨! 아! 내 마음은 부서… 지는 것… 같소. …. 나는 당신의 뜻을 이루도록 노력하겠오. … 당신을 제하고는 이 세상에 또 누가 있겠오. … 아! 당신은 내 마음의 광명… 광명…’ 그들의 말소리는 울음에 가루맥히여서 잘 나오지 않었는데 아! 이것이 어찌 애꿋는 비극의 일막이 아니겠나! 배ㅅ사공 노인은 배에서 나려 언덕 우에 올라와 그들을 갈라놓고 무뚝뚝하게 타일렀네. ‘울지 말게! 도련님! 조선에도 자유의 날이 돌아와 두분이 화촉(華燭)을 밝힐 날도 있겠지! 이제 울면 무었하나! 아가씨! 어서 도러가오. 다른 사람 눈에 띠이지 않게! 사람이 보면 재미 없어!’ 말이 맟이자 노인은 바로 그 소년을 어선에 실고 뒤도 도라보지 않고 떠나가 버렸네. 아마 ‘운고’는 언덕 우에 서서 배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울었을 걸세. 아! 동무들! 여러 동무들! 이 압록강 언덕 우에서 한 작별이 그대로 영원의 작별이 될 줄이야 누가 알었겠나. … 조선에 자유의 날이 오드래도 나의 ‘운고’ 나의 ‘운고’는 영원히 또 다시 맛나보지는 몯할 것일세! 언제 화촉을 밝힐 날이 있겠나! …. 압록강변은 영원히 나의 몯 잊을 곳일세! 압록강물은 해마다 다름없이 서러운 조선의 운명과 가련한 ‘운고’를 위하야 나를 대신하여 울면서 흐를 것일세! ….
 
97
나는 그 날 밤에 도망해서 중국(中國)에서 이년 거기서 다시 해방된 로서아로 와서 이년 동안을 붉은 군대의 병사(兵士)로 있다가 어느듯 오늘에 이르렀네. 조선을 떠난 지가 벌서 육칠 년이나 되었네. 그러나 나의 일편단심은 한결같고 조선과 ‘운고’를 잊을 날이 없네! 내가 떠난 후 ‘운고’의 편지를 단 한 장도 받은 일이 없고… 사실상 우리는 통신을 할래야 할 수가 없었네. 나는 다만 그와 결혼할 날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운고’가 금년 정월 초승에 일본놈에게 죽을 줄이야! 강물은 끝이 있을지언정 내 원한은 풀릴 날이 없을 것일세!”
 
98
“그래 ‘운고’씨는 무슨 죄로 죽었단 말인가?” ― 하고 내가 물으니 이맹한은 상을 찡그리며 조고만 소리로 말했다.
 
99
“무슨 죄로 죽어? 들리는 말에는 그는 조선 사회주의 청년동맹 부녀부서기(朝鮮社會主義靑年同盟婦女部書記)로서 한 번 노동자 집회에 참가했다가 일본 경찰에 잪이여 파업 선동(罷業煽動)이란 죄명으로 수감되여서 거기서 옥사(獄死)했다네. 그는 재판소 법정(裁判所法廷)에서 일본놈의 폭행을 욕하고 또 조선인 노동자가 전부 죽기 전에 자유로운 조선이 실현될 날이 꼭 있다고 웨첬다데. 아! 이것이 얼마나 장열(壯烈)한 일인가! 이런 장열한 여자를 나는 무슨 신성(神聖)한 것과도 비하고 싶네. 동무들 이런 신성한 여자를 두고 자네들은 어떤 여자를 사랑하란 말인가? ….”
 
100
이맹한이 여기까지 이야기했을 때 밖으로 동무를 찾으러 갔든 C군이 돌아왔다. C군은 웬몸에 하야케 눈을 맞어 마치 백로(白鷺)같어서 우리는 급작이 모다 그리로 정신이 쏠려버렸다. ― 우리의 이야기도 그만 끝처지고 마렀다.
 
101
시간은 벌서 열두 시가 지나고 화로의 불은 다 꺼지고 우리는 제각기 이불 속으로 드러갔다. 그러나 이맹한은 이불 속에 들어가서도 좀체로 잠이 안 오는지 이따금 도라누면서 긴 한숨을 쉬는 것이었다.
 
 
102
【원문】압록강상(鴨綠江上)
▣ 커뮤니티 (참여∙의견)
내메모
여러분의 댓글이 지식지도를 만듭니다. 글쓰기
〔번역소설〕
▪ 분류 : 근/현대 소설
▪ 최근 3개월 조회수 : 12
- 전체 순위 : 3813 위 (3 등급)
- 분류 순위 : 512 위 / 882 작품
지식지도 보기
내서재 추천 : 0
▣ 함께 읽은 작품
(최근일주일간)
• (1) 함박눈
• (1) 독서법
• (1) 새 거지
• (1) 아침
▣ 참조 지식지도
▣ 기본 정보
◈ 기본
  # 압록강상 [제목]
 
  이명선(李明善) [저자]
 
  # 장광자 [저자]
 
  소설(小說) [분류]
 
  # 중국문학 [분류]
 
◈ 참조
 
▣ 참조 정보 (쪽별)
백과 참조
목록 참조
외부 참조

  지식놀이터 :: 원문/전문 > 문학 > 한국문학 > 근/현대 소설 카탈로그   본문   한글 
◈ 압록강상(鴨綠江上) ◈
©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3년 05월 0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