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의 금강산 그림은 대소 70여 점이나 되는데 일생의 화업과 역량을 금강산 그림에 걸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겸재만큼 금강산의 여러 곳을 여러 각도로 수 없이 많이 그린 화가도 없을 것 같습니다. 정선의 금강산 그림은 골격미 또는 岩骨美라고 할 수 있는 중첩한 암골의 준엄한 모습을 거센 필선으로 독창적으로 그렸다는데 더욱 창조성이 엿 보입니다. 정선은 대개 화면 전체를 꽉 채우거나 중앙으로 몰아 집중적으로 그렸는데 구도는 조감식입니다. 줍법은 미점준 . 미아준 . 수직준 등을 섞어 섰고, 청록색을 주조로 한 담채와 논담묵을 격조 높게 써서 활달한 필치로 그렸습니다. 그의 금강산 그림에는 1만2천이나 되는 장대한 산봉우리가 화면에 가득 차서 嵯峨한 骨山의 암골미를 유감없이 보여줍니다. 이 '금강산도' 는 칼날 같은 첨봉들을 화면의 4분의 3쯤 가득 그리고, 그 왼쪽과 아래쪽으로는 푸른색을 바탕색으로 하고 그 위에 미점을 부드럽게 찍어 남성적인 골산과 여성적인 토산을 대조시키고 있습니다. 정선은 이 한 폭의 그림에서까지 흑과 백 . 강과 약 . 음과 양 등의 대비를 잊지 않았으며, 또 천지의 조화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그림의 위쪽 좌우에는 4행씩 쓴 자필의 화찬이 있고, 그 사이에 오른쪽으로 치우쳐서 '謙齋'라 쓴 款署와 白文方印이 찍혀 있습니다. 오른쪽과 왼쪽의 畵讚은 다음과 같습니다.
(산이 안팎으로 나뉘어 하나는 신기하면서 빼어나고, 하나는 크고 넓으니, 합하면 만옥포굴이 될만하다, 대개 멀리서 보는 것이 가까이서 보는 것 보다 낫고, 두 번째 구경이 첫 번째 구경보다 낫기 때문에 돌고 돌고 왔다 갔다 하게 된다, 지팡이를 마련하여 예닐곱 차례나 다닌 이 늙은이도 이런 까닭에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