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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들에 쌓였던 흰 눈도 이제는 거의 다 녹았습니다. 차갑게 불어와서 사람의 뺨과 귀를 베어갈 듯하던 바람도 차차 부드럽고 따뜻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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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겨울 동안을 차고 무거운 땅속에서 꼼짝 못하고 웅크리고 숨어있던 예쁜 가락지꽃 나무 한 그루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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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어느 때나 따뜻한 봄날이 돌아와서 나도 한번 세상 구경을 하나， 나의 아름다운 얼굴을 들고 마음껏 햇빛을 쏘여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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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조그만 가락지꽃은 몹시 봄날 돌아오기를 기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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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더니 하루는 정말 푹신푹신한 햇볕이 땅을 녹이고 부드러운 봄바람이 불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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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가락지꽃은 뛰며 반가운 마음으로 오래 진저리나던 겨울 땅을 뚫고 고개를 반쯤 내밀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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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사방에는 마른 풀들이 기운 없이 몸을 휘청거리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동무될 꽃이라고는 이무도 나온 것이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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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봄이 이르구나. 도로 들어갈까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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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가락지꽃은 생각하였으나 오래 보지 못하여 그립고 그리운 태양을 볼 때에 정말이지 도로 차고 쓸쓸한 땅속으로 들어갈 생각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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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얼 내가 먼저 피면 다들 따라 나와서 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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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면서 가락지꽃은 가만가만히 솟아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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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립던 햇볕을 보려고 반가운 봄바람을 마시려고 아름다운 새소리를 들으려고 가락지꽃은 방긋 웃고 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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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더니 원래 이른 봄이라 하늘에 구름이 밉살맞게도 모여들며 어디서인지 싸늘한 바람이 몹시 불어오기를 시작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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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가락지꽃은 어쩔 줄 모르는데 바람이 점점 더 불면서 눈 조각까지 날아왔습니다. 가락지꽃의 예쁜 얼굴은 추운 바람과 눈바람 때문에 얼굴이 찌그러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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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가락지꽃은 그만 눈물을 흘리면서 울기를 시작하였습니다. 가락지꽃의 온몸은 아프고 떨리면서 그만정신을 잃고 눈을 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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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무엇인지 가락지꽃 몸을 따뜻이 덥혀주는 것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가락지꽃은 희미한 가운데 아무것도 모르고 정신을 잃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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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후에 다시 날이 따뜻해지고 정말 부드러운 봄바람이 불어왔습니다. 이제는 사방에서 파릇파릇 풀들도 솟아나오고 진달래， 개나리들도 봉우리를 벌렸습니다. 사방에서는 나비들이 펄펄 날아들고 꾀꼬리는 즐겁게 노래를 부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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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처음 피었다가 얼어서 정신을 잃고 있던 가락지꽃도 어떻게 살아나서 다시 정신을 차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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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어떻게 내가 살아났을까? 그리고 내가 얼어 죽게 되었을 때 무엇이 와서 따뜻이 덥혀준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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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가락지꽃은 방실방실 웃으면서 사방을 둘러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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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상한 일이 아닙니까? 가락지꽃 앞에 하얀 나비 한 마리가 죽지를 벌린 채 얼어 죽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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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처음 나온 저 흰나비가 그 날개로 죽게 된 가락지꽃을 덥혀주었던 것이었습니다. 그 나비는 이곳저곳으로 꽃을 찾으러 다녔어요. 그러다가 다만 하나 핀 가락지꽃을 보았겠지요. 그리고 제 날개로 덥혀주어서 가락지꽃을 살리고 저는 가락지꽃 속에서 얼어 죽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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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처음 나온 나비는 맨 처음 핀 가락지꽃 때문에 죽은 것을 오히려 기뻐하였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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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락지꽃은 불쌍히 죽은 흰나비를 하염없이 내려다보았습니다. 그리고 윤나는 눈으로 뜨거운 눈물을 한 방울 한 방울 흘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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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이른 봄날 푸른 잔디 사이에 보랏빛 도는 예쁜 가락지꽃이 애달게 고개를 소곳하고 있는 것을 보시면 반드시 죽은 흰나비를 내려다보고 눈물 짓는 것인 줄 알아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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