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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한 운명에 사로잡힌 바 되어 일생을 눈물과 한숨으로 보낸 독일 시인 하이네의 수많은 시편(詩篇) 중에도, 세상 사람들이 높이 불러서 그의 시운(詩韻)에 황홀해지고 나직이 읊어서 또한 그의 생애에 일국(一鞠)의 눈물을 뿌리지 않을 수 없는 한 편의 명시(名詩)가 있으니, 그것은 곧 〈로렐라이〉란 노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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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네는 유태족의 혈통을 계승한 사람입니다. 그의 운명도 이 혈통의 관계도 비참한 판결을 받지 않을 수 없었으니, 그러면 숙명적으로 저주를 받고 탄생한 가련한 하이네는 그의 용솟음쳐 올라오는 시상(詩想)에나 탐혹(耽惑)하여 위자(慰藉)를 구하는 외에 별 도리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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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 독일에서는 유태인이 보도를 걸어가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 같은 천대를 받던 유태인 하이네는 만인의 칭찬을 한 몸에 받는 청년시인이면서도 오직 종족에 대한 편견과 차별로 말미암아, 그는 크나큰 천지에 자기 한 몸을 용납할 곳이 바이없는 위에, 고적과 비탄에 싸인 그의 생활에는 한층 더 통분하고 비절한 일이 생겼으니, 그것은 곧 독일 여자와의 로맨스로부터 빚어나온 1편의 실연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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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네가 베를린에 있던 소장시절(小壯時節) , 하루 저녁에는 라인 강가의 녹음 아래에서 평소부터 왕래가 있던 한 조각사(彫刻師)의 딸 메리를 옆에 앉히고서, 차마 말하기 어려운 가슴 속의 순정을 하소연하여 구세주를 찾듯이 메리의 따뜻하고 보드라운 사랑을 간원(懇願)한 일이 있었습니다. 세사(世事)에 부대낀 경험이 없는 순진한 소녀 메리는 하이네가 유태인인 줄은 까맣게 모르고 오직 그의 시에 남모르게 어린 가슴을 태우고만 있던 터이니, 그 밤 그 자리에서 하이네의 보드랍고도 뜨거운 사랑의 포옹을 막을 길이 어디 있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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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저주를 받은 운명의 신은 하이네로 하여금 언제까지나 달콤한 사랑의 꿈만을 꾸고 있게 하지는 않았읍니다. 메리는 드디어 하이네가 유태인이란 것을 알게 되었으며, 또 그의 부모도 역시 이런 말을 어디선지 얻어들었던 것입니다. 독일인 기질의 양친은 메리를 앞에 불러놓고서 눈이 빠지도록 꾸짖고, 그 후부터는 두 남녀의 교제를 엄금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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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하여 두 남녀의 불붙는 듯하던 사랑은 여지없이 깨어져 버리고 만 것입니다. 신을 원망해야 좋을지, 사람을 미워해야 옳을지, 또는 자기 자신을 저주해야 할 것인지, 오뇌(懊惱)와 수탄(愁嘆)의 깊은 구렁텅이에 빠진 소장시인(小壯詩人) 하이네는 마침내 생명 있는 시상(詩想)에 용기를 가다듬어가지고 베를린이란 한많고 눈물겨운 곳을 떠나버린 것입니다. 그리하여 미구에 보불전쟁이 발발하자, 그는 종군하여 원정의 길에 오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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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無量)한 감개에 가슴이 터질 듯, 무너질 듯한 그는 즉흥의 시상을 금할 바 없어 단장(斷腸)의 곡을 읊으니, 이는 곧 라인강의 상류, 요신(妖神) 로렐라이의 전설을 바탕으로 하고 거기다 자기의 애달픈 추상을 곁들여서 엮어 놓은 실연의 비가(悲歌)였던 것입니다. 후일에 질허라는 악인(樂人)이 여기에 곡을 지어 붙이니, 이 시에 이 곡, 이것이 천고(千古)에 이름 높은 〈로렐라이〉인 줄이야 아는 이는 알지마는 모르고 부르는 이도 또한 많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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