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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그 영명을 당시에 번뜩이던 세조조(世祖朝)의 명신 수옹(守翁) 홍윤성이 과거에 응시코자 도보(徒步)로 그 고향 회인(懷仁 )을 떠난 것은 경태삼년(景泰三年) 임신(壬申) 호서(湖西)일대에도 봄소식 무르익는 삼월 하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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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년 가까운 세월을 가난한 그 숙부집에 붙쳐 있으며 밭갈기 논매기 심지어는 그 숫한 식구가 때야 할 나무까지 해 대느라고 밤낮을 주접속에 묻혀 지나던 그였으나 그동안에도 잠시 마음을 떠나지 않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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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해서든지 한번 벼슬자리를 얻어 사람 구실을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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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이 기운이 장사라 열세살 때에 나무를 하러 갔다가 산돼지를 맨주먹으로 잡은 일이 있으매 스스로 자기 기운에 대하여 자만하는 마음이 있던 그는 이때부터 어린 마음에라도 더욱 굳게 뜻을 세우고 서울편을 향하여 희망에 타는 눈살을 부라리었다. 그러나 동리사람 사이에서 받는바 평판은 결코 좋은 것이 아니었으니, 그것은 너무 자기 힘을 믿는 만큼 자연 횡폭한 행동이 잦은 까닭이오. 또 한가지는 영웅호색이라니 그처럼 용맹한 성미의 사람이라 마음까지 호방해지어서 드디어 마을의 처녀나 유부녀를 막론하고 심상히 보아 넘기는 일이 없게끔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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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그 숙부되는 사람이 원체 착하고 어진, 요사이 말하자면 동리의 신망가(信望家)였기 때문에 아무도 맞 대해서는 무어라 탓하는 일이 없었지만 돌아서면 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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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이번 윤성이 정든 고향을 등지고 수중에 한푼 없으면서 감히 서울을 향하여 떠날 뜻을 낸 것도 첫째로는 물론 항상 그리던 청춘의 꿈을 어떻게라도 이루어 보고자 하는 소원이었겠지만 둘째로는 역시 마을 어떤 유부녀를 후려 내려다 톡톡히 망신을 당하고 다시 동리에 붙어 있을 면목이 없을 만큼 사태가 난망해진 까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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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그 숙모되는 이가 눈물까지 흘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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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이 어디라고 이런 행색으로 떠나려느냐. 아무리 동네가 창피하더라도 다시는 그같은 행실을 말고 붙어 있으면 사람의 소문이란 두달을 못 넘는 법, 오래면 잊어버릴 날도 있을 것이니 제발 참아보려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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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여러번 사리에 맞는 말로 타일렀건만 그 같은 수작은 들은척도 않고 드디어 표연히 이집 대문을 나서고 말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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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지금이나 그 때나 돈없는 설움이란 마찬가지여서 집집마다 문전걸식을 하다시피 하는 중에 심하면 산에서 자고 들에서 유하고 혹 그 센 기운을 이용하여 주막집 장작같은 것도 패주며 하룻밤의 숙소를 청하니 그 꼴이야말로 거지와 다를 배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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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럭 저럭 십여일을 걸어서 서울이라고 당도 하였으나 누구 한사람 반가히 맞아주는이 있을리 없고 역시 수중에는 무일푼하여 갖은 고생을 하는 중에 드디어 배다리께 불량자의 무리에까지 전락하고 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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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사람이 발신을 하려면 그 기회를 얻는 것도 이상하여 이렇듯 청운의 높은 뜻은 다 잃어 버리고 불운을 한탄하며 아침이면 깍쟁이 무리에 싸이어 장안을 두루 돌고 저녁이 되어 어디서 찬밥 한술을 얻어 먹고는 만족하여 다리밑 소굴로 돌아오군 하던 윤성에게 한 소문이 들렸으니 이로부터 그의 운명도 일회전을 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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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다리 밑에도 어느결에 모기떼들이 몰려와 웅웅거리므로 그것을 피하기 위하여 다리위로 기어올라 왔던 그는 문득 어떤 이야기 소리에 발을 멈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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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다리 난간에 기대어서 한가히 부채를 흔드는 사람은 아마 소풍나온 어떤 선비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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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과거에 응시하는 사람으로는 홍계관(洪繼寬)의 집 대문을 두드리지 않는 이가 없으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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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인 듯한 헙수룩한 젊음이가 그 말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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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그래 그 사람에게 좋지 못한 말을 듣는 사람이야 아예 응시도 마는 것이 옳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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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나도 내일 꼭 그 사람을 찾아 보고 희망이 없거든 향제로 내려 갈 작정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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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입입이 이렇게 말하며 저편쪽으로 발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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넋을 잃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던 윤성은 과연 과거날이 멀지않은 것을 새삼스럽게 느끼며 그만 서글픈 생각이 나서 벌써 꾀죄죄하게 깍쟁이 꼴이 박혀가는 자기의 행색을 내려다 보며 하염없이 탄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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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줄 알았더면 시골서 비럭질을 하여서라도 기를 펴고 살아갈걸 숙부 숙모의 말을 안 들은 보람이 이러하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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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나도 그 홍계관이라 하는 점장이나 찾아보고 발신할 가망이 없다거든 향곡으로 내려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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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일찌감치 일어난 윤성은 오래간만에 개천물을 찍어발라 우선 달라 붙은 때꾸정을 대강 떨고 홍계관의 집을 찾아나섰다. 그러나 계관으로 말하면 비록 일개 점장이에 불과하나 그 이름이 널리 경사에 떨치고 있는만치 사는 규모나 지내는 본세는 어떤 재상가의 그것에 비하여 떨어질배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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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으리으리한 대문간에는 한 비종이 서있다가 서슴치 않고 들어가는 윤성의 꼴을 훑어보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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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윤성은 원체 배포가 유한 사람이라 두루마기도 입지 못하고 버선조차 안 신은 행색에 비복이 의아히 여기는것도 무리가 아니련만 도리어 노한 눈을 부릅뜨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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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약한 종은 일시 기세에 멈칫하였으나 의기양양하게 활개치며 들어가는 윤성의 뒷모양을 바라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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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 네까짓거야 한평생 남의 대문앞에서 비럭질 할 팔자라고 할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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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종의 이 상상과는 달리 윤성이 중문을 들어서자 사랑방문을 반쯤 열고 그 아들에게 무엇을 분부하던 맹복(盲卜)계관은 그만 곤두박질 하다시피하여 뛰어나오며 윤성의 손목을 잡고 정중하게 상좌로 인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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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온 이후로 아니 평생 처음 이같은 융숭한 대접을 받으매 윤성은 일변 놀라고도 기가 막히어 묵묵히 주인의 정해주는 자리에 앉으니 계관은 다시 일어나 꿇어 엎디어 절한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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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누추한 집에 높으신 어른이 이처럼 왕림하시니 황감하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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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은 인신(人臣)에 극귀할 몸이시라 군주에 다음가는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르실줄 믿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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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믿을 수 없는 그 말에 이렇게 윤성이 따지자 계관은 태연히 잘라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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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몸이 본 바에 오늘날까지 일호의 실수함이 없었거든 어찌 공의 일만 그릇 볼 리가 있겠나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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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몸이 아는대로 행할진댄 내일 오시까지라고 장담하리이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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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이 성급하게 다가 앉으며 말하니 주인은 잡자기 그 먼눈에 눈물을 주루루 흘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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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다. 윤성이는 그 방책이라는 것이 어서 듣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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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년 모월 모일에 공께서는 형부(刑部)를 맡으시게 될 터인데 그 때 제 아들놈이 죄를 지어 옥에 갇히고 죽음을 당할 것이니 부디 공은 오늘의 이 일을 생각하시고 살려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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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그 때를 당하여 정말 이런 일이 있거든, 다만 한마디 내가 홍계관의 아들이오 하라고 일러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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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내일 오시(午時) 안으로 한강(漢江)을 나가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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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송하오나 과연 공이 장차 인신으로서의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를 것이야 두말할 것도 없지만 꼭 한가지 너무 표한하심이 험이오니 남에게 덕행을 베푸시지 않으면 무자(無子)할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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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내일부터 발신이 되리라는 맨첫번 말에 온몸에 피가 끓다싶이 된 윤성이 이 말뜻을 살필 겨를이 있을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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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고로 후일 과연 무과하고 정난공신(靖難功臣) 인산부원군(仁山府院君)이 되며 나중 무자(戊子)에는 우의정위평공(右議政威平公) 까지 되었건만 한가지 남에게 끼친 적악으로 말미암아 전례없이 두처(二妻)를 거느리어 후인의 웃음을 사게 되고, 또한 평생 무자 하였으니 이때 계관의 말만 명심해 들어두었던들 이런 불행이야 없었을 것이다. 아뭏든 홍계관의 집에서 간곡한 저녁대접까지 받고 얼근히 취한 윤성은 다리 숙소까지 어찌 어찌 돌아오기는 하였으나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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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몇번이나 이렇게 부르짖으며 소름이 쭉 끼치도록 지나온 바 경로가 아슬아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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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위를 지나가던 사람들의 대화를 듣던 일이나 내일만 지나면 영원히 놓쳐 버리고 말았을 귀한 발신의 기회를 요행히 하루를 상격하여 알아 내었기 때문에 자기 앞길에는 양양한 광명이 빗기어 있는 것을 생각하니 과연 천지신명의 도우심이라고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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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한 하룻밤이 전전반측하는 동안에 밝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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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은 곧 한강을 향하여 터덜터덜 걸어 갔으나 보는 사람이야 누가 감히 이 더러운 깍쟁이의 모양이 후일 그처럼 큰 귀인이 될 인물인 줄로 짐작인들 하였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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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다리에서 한강 ── 십리나 되는 거리었으나 윤성이 강변에 이른 때는 그래도 아직 오시가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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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어떤 어옹이 재미있게 고기를 낚아 올리는 곁에 쭈그리고 앉아 어서 때가 이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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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얼마후 상류로부터 배 한척이 흘러오는 데 풍악소리가 유량하며 아름다운 기생들 이 나비같이 번득이는 것이 어떤 귀인의 놀음배일시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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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구석에만 쳐박혀 있다가 화려한 정경이라고는 본 일이 없던 윤성은 처음 이 배의 화려한 모양과 그 풍악의 질탕함에 온 정신을 빼앗기다시피 멀거니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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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만에야 조금 바른 정신이 든 듯한 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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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곁에 있는 어옹을 돌아보니 친절한 노인은 한참 윤성의 행색을 바라보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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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 사람이 묻는 건 대답 안하시고 딴 소리만 하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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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서울사람 쳐놓고 저배의 임자를 물을리 없겠기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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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은 경멸하는 듯한 눈초리로 이렇게 말하며 다시 낚싯대만 내려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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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은 잠간 발끈하는 성미를 억지로 누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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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곳 사람이고 모르니까 이렇게 물어보는 것이 아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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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씨를 부드럽게하여 다시 한번 노인을 바라보매 그는 마지 못하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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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대군(首陽大君)의 출유선(出遊船)이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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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세태로 말하면 단종(端宗)이 아직 어리시고 보좌하는 제신은 있다하지만 팔대군(八大君)의 세력이 너무나 강성하여 인심이 위의(危疑)에 싸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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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이 이 수양대군으로 말하면 이 기회를 타서 정란의 뜻을 이루고저 권람(權擥)과 한명회(韓明澮)로 더불어 매일 진견(進見)하여 그 야심을 채울 날을 기다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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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하기를 얼마를 거듭한 지금 정란지책(靖難之策)도 대개 작정되었으매 이날은 그 대책도 다시 한번 토의할 겸 오랫동안 여러가지 묘책에 피곤한 신경도 가라 앉히고저 이렇게 제천정(濟川亭)으로 출유하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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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의심많은 세상의 인심은 사냥개같이 예민하여 수양대군저(大君邸)에 권람 한명회 등이 무시로 출입하며 혹은 진선(進膳)이 때 없이 드나들매 자연 의혹의 눈을 돌려 수군수군 이것을 감시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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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수양대군으로 말하면 그만한 대음모를 꾸며낼 인물인만큼 조금도 내색을 들어낼 까닭이 없어 명회를 종부사관(宗簿士官)이라하고 혹은 의원이라고도 칭하여 비록 집안에 부리는 사람들까지 의심을 받지 않게 애를 썼지만 세상으로 흩어져나가는 소문은 어느틈으로 흘러나오는 것인지 겉잡을 수 조차 없었다. 그러나 그의 세력이 상감님보다도 더한 것만은 사실이니 그 출유하는 모양의 굉장호화함은 말할 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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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사람이란 저렇게 한번 놀아봤으면 죽어도 소원이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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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이 이렇게 말하고 다시 한번 고개를 돌렸을 때 그는 참으로 넋을 잃을만치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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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데없는 창두(蒼頭) 십여인이 갑자기 배 위로 뛰어 올라 장검과 몽둥이를 번쩍거리며 뱃속 사람들을 닥치는대로 찔러 넘기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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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들의 아우성 소리 비단을 찢는 듯한 비명 통곡소리 그 사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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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벼락같은 호통은 윤성의 귀까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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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수양대군의 좋지 못한 소문을 미워하던 이양(李纕)이나, 조극관(趙克寬)같은 사람이 오늘의 출유를 듣고 그 근처에 관노를 숨겨두었다가 아마 수양을 맞아 없애려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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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수양을 미워하는 사람은 그같은 대신뿐만 아니라 보통 사람들중에도 많이 있었던 모양으로, 창두가 칼을 빼며 수양대군을 위협하나 한 사람 뛰어들어 제지하려는자 없고 드믄 드믄 배를 띄우고 청풍하던 사람들은 도리어 아우성치며 도망하기만 바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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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의 곁에 앉아 있는 노옹까지 드리웠던 낚싯대를 걷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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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것이 권람 그리고 이편 사람은 한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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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더니 그만 꽁지가 빠져라고 달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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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하고 윤성은 이름 익히 들었던 권람과 명회를 바라보고 비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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굵은 밧줄로 묶이어 있는 안주사(按舟使)의 뒤에서 칼을 피하고자 생쥐처럼 빠져다니는 권람과 뱃전만 붙잡고 방금 물에 뛰어 들려는 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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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 키는 작아도 힘은 장사라더니 저꼴이 장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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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의 굳센 팔에는 힘이 불끈 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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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세살때 산돼지를 때려잡던 그 용맹이 백배천배가 되어 온몸을 구비치는 듯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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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식한 그는 순간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력도 없었다. 이것이 홍계관이 일르던 발신의 기회인가보다하는 여유 있는 생각도 있을 리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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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벌벌떠는 무리들의 태도가 밉고 그 미지근한 행동이 아니꼬아 넘쳐오르는 만용 그대로 배를 향하여 헤엄을 쳐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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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이 배에 이른 때에는 가장 아슬 아슬한 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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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사람의 창두가 철퇴를 높이 추켜들고 수양대군의 머리 위를 내려치려는 찰나 윤성은 서슴치 않고 그 허리를 걷어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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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의 강적에게 철퇴를 던지고 나가 자빠지는 사람의 가슴을 밟고 서서 그는 칼을 들고 덤비는 다른 사람들과 싸우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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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으로 치고 서으로 갈겨내고 옆에 있는 돛대를 탁 분질러서 바른손에 쥐고서니 그의 앞에 달겨들던 사람들은 추풍에 낙엽같이 산산히 흩어졌다. 어떤 놈은 대가리가 깨어지고 어떤자는 팔이 꺾어지고 목이 달아나고 허리가 잘라지고 느런히 드러누은 시체틈에는 다투어 강물에 뛰어들어 생명이나 부지하려는 사람의 그림자가 번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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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은 실신한 듯이된 수양대군을 흔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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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누구인지는 몰라도 참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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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대군의 떨리는 첫 음성이 내리자 뱃전과 강속에서 물에 젖은 권람 명회가 엉금 엉금 기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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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은 그 꼴은 본체도 않고 홀로 배를 저어 강을 건너가니 그 모양이야말로 개선장군같이 늠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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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인물을 고르기에 정신을 모으로 있던 수양대군이 아무리 경황중이기로 어찌 이 윤성의 호연한 기상을 심상히 보아넘기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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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물었다. 윤성이 국궁하고 그 성명이며 오늘날까지 지내온 경력을 낱낱이 고하니 대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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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이같은 호걸을 초야에 묻어두기는 아깝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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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은 그제야 문득 홍계관의 하던 말이 생각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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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으로 부르짖고 대군에게 더욱 믿는 태도를 보이니 대군은 매우 기뻐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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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며, 어떻게라도 이 은혜를 갚을 뜻으로 언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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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부터 수양대군의 비호를 받아가며 그 궁저(宮邸)안에 붙어 있게된 윤성은 차츰 많은 무인들과도 추축하게 되고, 따라서 드나드는 사람에게 무예같은 것도 배우게되니 원체 장사라 몇달이 못가는 중에 일반 궁술검도에 도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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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임신(壬申)시월 초열흘날 드디어 수양대군 거사할 제 곧 감순(監巡)으로 먼저 떠나 김종서(金宗瑞)를 찾아보고 두장(二張) 활을 꺾은 일화까지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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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뭏든지 수양을 도와 정란을 성공한 공로는 컸으므로 경태육년(景泰六年) 을해(乙亥) 윤六[육]월 十一[십일]일 수양대군이 수선(受禪)하니 곧 세조인효대왕(世祖仁孝大王)이요 동시에 윤성은 정란공신 인산부원군이 되었다. 더우기 날이 갈수록 왕이 총애함이 크니 자연 축재(蓄財) 되는 바가 많아 몇해전 에 학척불우객은 어느 사이에 장장(藏藏)이 거만(巨萬)이요, 미곡이 요성하며 유물납제(輸物納弟)에 치마(輜馬)가 쇄도하고 문밖에는 나날이 열공(列貢)하는 자가 기만명인지 헤아릴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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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옛날 배다리밑 소굴은 감히 생각조차 할 수 없게 큰 갑제(甲第)를 일으키어 명유거사(名儒巨士)를 청하여다 석연(席宴) 치 않는 날이 없음에 왕까지 그 호화함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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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증(何曾)의 만전지식(萬餞之食)이라도 감히 따르지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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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윤성의 집 후원의 못에 임한 한 별당에는 친히「경해(傾海)」의 두자를 써주며 현판으로 걸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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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하여 주야로 사죽(糸竹) 소리가 유량하며 영기(伶妓)의 전두(纏頭) 소용이 역시 무수하니 그 성쇠의 혁혁함이야 짐작할만하였으나, 이 세상이란 잠깐의 실수로 인하여 인생의 모든 영화색체가 순식간에 상전벽해로도 변하나니 공도 나날이 부귀하여 감에 따라 옛날의 불우하던 생각은 잊고 이 모든것이 홍계관으로 인연함까지 생각할 여유가 없었지만 세조 즉위 구년만에 형조판서를 대신하여 하루는 친히 대옥(大獄)의 관계자를 국문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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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고로 공은 크게 놀라서 옛일을 생각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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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근히 물었다. 그 아들이 대답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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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해전 아비는 죽삽고 집안도 이제는 퇴폐하였사오나 아비 임종시에 후일 옥사를 만날터이니 홍계관의 이름을 대라고 거듭 당부하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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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때 윤성은 부귀가 극할 수록 그 표한한 성격이 더욱 광폭하여지며 살생을 좋아하고 탐재를 심히 하여 자기집 앞 장천(長川)에서 말을 씻기는 사람이 있으면 당장에 죽이게하며 혹은 승마한채로 그 문앞을 지나는자 역시 불문귀천하고 드디어는 죽이는 등, 더우기 남의 논밭을 무단으로 빼앗을 때 어떤 노구(老驅)의 하나뿐인 재산이던 밭까지 빼앗으려하다가 응치않는다고 돌맹이로 쳐죽인 일까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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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이제 계관의 아들이 그 아비의 죽은 것을 말하고 또한 집까지 탕가해버리었다함을 듣고 탐욕한 그는 잠시 동안 일어났던 동정의 생각까지 푸시시 사라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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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마음이 나서 그 아들의 애원하는 소리는 듣지 않고 그만 처형케 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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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아버지가 죽을 때, 언약을 지키지 않는 자는 평생 무자하리라 하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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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부터 윤성의 양심은 더욱 어두어져서 사람을 자유로 생사케할 권리가 있는 것을 맡으매 그 마음은 더욱 횡폭하여 심지어는 자기 친속이나 부리던 비복에게까지 탐욕과 전살(專殺)에 손을 미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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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바로 그가 우의정을 배수하던 무자년 가을 그때까지 시골구석에서 땅이나 파고 살던 그 숙부가 암만 기다려야 발신한 조카에게서는 한마디의 그럴듯한 통기가 없으므로 찢어진 도포소매를 여미며 상경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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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리으리할만큼 굉장한 대문과 그 당당한 위풍에 한없이 외위(畏威)한 늙은 삼촌이 드디어 높게 좌정한 조카를 감히 우러러 볼 수도 없는 듯이 황공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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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사촌들을 어떻게 좀 벼슬 자리에 있게 해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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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청하니, 욕심많은 윤성은 오래간만에 본 이 삼촌을 반겨하는 기색도 없이 언태에 이렇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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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옛날 갈고 매고 하던 아무곳 논 스무두락(二十斗落)이 그냥 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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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있고말고 그것을 내놓고야 우리들이 여태 목숨을 어찌 부지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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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그 논을 내게로 보내시오. 삼촌의 아들들은 대신 관록을 먹게 해드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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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말을 들은 그 숙부의 노여움이 얼마나 컸으랴 그만 상기가 되어 붉으락 푸르락 하는 안색을 진정치 못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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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공이 뜻을 얻지 못했을 때에는 내집 솥에서 십여년을 같은 밥을 얻어 먹었더니 이제 처신출세(處身出世)함에 내 자식 하나를 벼슬 자리에 앉혀주지 않겠다니 그런 고약한 심사가 어디 있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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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며, 옷자락을 떨치고 나와 버리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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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윤성은 도리어 자기의 잘못을 생각하려고 하지 않고 언뜻 나는 걱정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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싶어서 곧 그 숙부의 소매자락을 잡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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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내말에 응치 않겠단 말이로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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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식한 노인은 씨근 씨근하는 분한 숨을 모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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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고약한 놈이기로 부귀가 이에 이르른 이상 가난한 삼촌의 목숨줄인 수무두락 논을 탐낸단 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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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네 숙모나 가엾은 어린 종형제를 생각하여도 그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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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은 그래도 마음을 회개치 못하고 그만 칼자루에 손을 대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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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것이 공연한 망언을 토하니 그럼 이몸의 권세가 얼마나 큰가를 보아 두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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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그제야 노인은 윤성이 극악한 인간임을 깨달은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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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너 같은 놈의 손에 죽는 나도 불우하지만 남겨 놓은 가족이 더욱 가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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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소리가 몹시 떨리어 감히 사람의 간장을 녹이지 않을 수 없었으나 윤성은 들은척도 아니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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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무죄한 것은 아오마는 살려두면 장차 이일을 세상에 알릴가 무서워.』
192
한마디와 함께 그는 홍계관의 아들을 죽이듯 전은(前恩)을 불구하고 그 목을 잘라 버렸으니 어찌 이 비행의 보복을 받지 않을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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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시체는 곧 후원 으슥한 숲속에 던져두고 태연히 있으매 그 눈치를 채인 집안 비복들도 원망하지 않는자가 없었으나 누가 감히 입을 열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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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우기 평소부터 절의(節義)깊고 뜻 굳은 그의 아내 허씨(許氏)는,
197
하고 떠난 남편에게서 아무 통기가 없으므로 처음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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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일이 순순히 피어서 우리 가족을 한꺼번에 데려 가실가부다.』
199
하고 기뻐하며 기다렸으나 떠난지 반삭이 가깝도록 아무 소식이 없으매,
201
하는 생각과 함께 그만 가슴이 설레이며 이상한 생각이 머리에 떠나가지 아니하였다.
202
그리하여 행여 남편이 돌아오실가 밤새도록 치마고름하나 풀지 않고 기다리던 허씨가 이같은 밤을 한달이 넘게 겪은 후 그만 참을성이 다 하여 서울을 향해 올라오게 되었다.
203
으리으리한 장안 화려한 거리, 아무 본것 없고 들은것 없는 이 노부인은 장안 네거리에서 어쩔 줄을 모르고 쩔쩔매다가 마침 어떤 친절해 보이는 노인을 발견하고 은근히 홍윤성의 집 소재를 물었다.
204
그 사람은 이상한 듯이 허씨의 아래위를 훑어 본 후,
205
『홍공의 저택은 여기서 멀지 않지만 아마 그 행색으로는 못 들어갈 것이오.』
207
(글쎄 윤성이 발신을 하였다더니 그럼 어떤 차림새로 찾아가야하나.) 하는 순박한 마음에,
210
『홍공으로 말하면 탐욕 전살하기로 장안에 모르는 사람이 없거든 어찌 빈 손으로 가겠소. 첫째, 코아래 진상물이 있어야 할것이요. 둘째로는 그 같은 것이 있다는 증거로 잘 입고 잘 차리고 가야할 것이 아니요?』
211
그 말을 듣더니 허씨는 겨우 안심한듯이 웃으며
212
『나는 참 깜짝놀랐네, 그런 연유거든 염려마시고 집이나 가리켜주오. 나는 그 숙모인데 숙모까지야 초라하다고 괄세하겠소.』
217
허씨가 연하여 선선히 대답하자 가엾은듯이 그의 모양을 바라보고,
219
하고 불쑥 말한다. 허씨도 공연히 가슴이 덜컥 내려 앉으며 무슨 상서롭지 않은 일이 있을것 같아
220
『나두 공연히 이상한 생각이 나서 살던 시골을 떠나 머슴하나만 데리고 이렇게 올라온 터인데 혹 당신이 우리 바깥 어른께 관한 일을 아시는 바가 있으면 들려주시오.』
223
『벌써 한 달이 넘었지, 그 삼촌되는 사람이 홍대감 칼에 맞아 돌아가셨다우.』
224
해준다. 이말에 허씨도 그만 정신이 아찔해지고 천지가 노랗게 변하여 하염없이 눈물만 솟아나
225
『그것이 정말이요? 정말이라면 어떻게 당신은 그걸 아시우.』
226
하니, 노인도 그 가엾은 정경에 고개를 돌리며,
227
『다름이 아니라 마침 그 집 계집애 종이 사랑으로 숭늉그릇을 가질러 가다가 고함소리가 나기에 가만히 엿들었대요, 그랬더니 홍공은 공연한 트집을 잡아 무죄한 삼촌어른의 목을 잘라 버리더라오. 그런데 그 계집종이 바로 우리 건넌집 박물장사 딸이거든, 그래 지금은 어미 딸입을 통하여 그 소문을 모르는 사람이 없소외다.』
228
노인은 다시 자세자세히 당시 이야기를 들려준 후 그 무죄한 사람을 탄식하였다.
230
『숙모가 무엇이냐. 조카가 어디 있을가. 나도 그 놈하고는 철천지 원수다. 어떻게 해서라도 보복을 하고야 말리라.』
232
『그런 연유로 소장(訴狀)이나 하나 써 주시오 이제는 악만 남은 몸이 권세는 무엇이 무섭겠소.』
233
하니, 노인도 그의 정경에는 동정하는체 하면서도 홍윤성의 위세와 횡포는 무서운 듯 선뜻 응치 않는다.
234
허씨는 일변 눈물을 흘리고 또한 애걸하며 그 원통한 사정을 따라 사정하니 노인도 드디어 그 정성에 꺾인듯 한장의 상소문을 지어주며 그래도 미심한 듯이,
237
허씨는 그러마고 승낙한 후 그 길로 다시 형조에 이르러 이것을 상소(狀訴) 하였지만 불수(不受)되고 말았다.
238
그는 너무 원통하여 하늘을 우러러 통곡하니 그래도 착해 보이는 형리 한 사람이,
240
하며 가르쳐 주는고로 허씨는 다시 헌부(憲府)로 향해 가서 이것을 호소하였다.
241
그러나 윤성의 세력을 무서워하기는 마찬가지인 헌부에서도 여전히 불청이므로 그는 그만 미칠듯이 되어 세상의 권문을 저주하고 위력 앞의 여러 인간들을 원망하였다.
242
그렇건만 남편을 생각하고 그 죽은 혼이나마 불쌍히 여기는 정성은 도리어 일층 더하여져서 헌부를 나오며 이를 갈고 맹세하는 말이
243
『이제는 상감마마에게 직접 호소할 수 밖에 없겠다. 이 목숨 하나 내놓으면 무서울것 없을 것을 어떻게 해서라도 남편의 원수만 갚는다면 방도를 가릴 것이 무엇이랴.』
244
이렇게 갖은 애를 다 쓰는 동안 어느듯 해가 저물었으므로 그는 우선 어떤 주막에 숙소를 작정하고, 다음날은 노인이 일러 주는대로 아직 후원에 쳐박아둔 남편의 시체를 찾아내어 몰래 어느 산 모퉁이에라도 안장코자 일을 시작하였다.
245
이 일은 가장 어려운 여러가지 곤경 속에 이루어졌다. 그리하여 다음날부터는 남편의 무덤에 다녀오면 어떻게 해서라도 상감님의 동정을 살피어 직소할 기회가 이르기만 간절히 원하던 중 어느 날은 과연 기쁜 소식이 이르렀으니 그것은 몇날 후면 임금님이 온정(溫井)으로 향하신다는 장안의 소문이었다.
246
그 여자의 기쁨이 오죽이나 하였을는지 너무나 기다리던 기회가 속히 이름이 꿈결같아 곧 남편의 무덤을 찾아가
247
『이번에는 어떻게 해서든지 귀정을 낼 터이지만, 만약 이루지 못하면 당신곁을 찾아 올 것이요. 요행 이 원수를 갚게 되거든 부디 지하에서라도 눈을 감으오.』
250
절부 허씨는 미리 밥을 타서 왕이 지나실 길옆 버드나무에 올라가 가만히 엎드려 있으려니 그 가슴속에는 천상만상이 꼬리를 물고 왕래한다.
251
『이놈 홍윤성이, 두고 보아라, 네가 이미 홍계관의 공을 잊고 그 자식 죽인 것이며, 홍산사람(鴻山人) 나계문(羅季文)을 죽여 그 아내 윤씨로 하여금 철천지 원한을 품게한 것이며, 남의 논을 빼앗고 재물을 약탈한 것이며 그외의 모든 죄과에 대한 보복을 내 비록 미천한 일개의 아녀자이지만 하늘에 대신하여 그 보복을 받게 하리라.』
252
그는 주먹을 내두르고 이를 갈다가 다시 죽은 남편을 생각하여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지루한 밤을 밝히었다.
253
다음날은 과연 왕의 행차가 지나가는데 가슴을 두근거리며 기다리던 허씨는 마침 어가가 그 버드나무 가까이 이르렀을 때,
254
『상감마마 어전에 드릴 말씀이 있나이다.』
255
하고 소리를 질렀다. 무심히 행차를 재촉하시던 왕은 어디서 무엇이라고 연해 호소하는 소리가 들리므로 우선 사람을 보내어 살피게 하시니,
256
『저기 버드나무 위에 한 여인이 있어 슬피 통곡하며 상소하올 말씀이 있다 하옵니다.』
257
하고 아뢰었다. 왕은 의아한 생각으로,
259
하고 분부하시니, 명을 받은 사람이 급히 달려가 그 연유를 물으나 허씨는 고개를 흔들고,
260
『소원이 심히 중대하와 권신(權臣)에게 관한 말씀이옵기 입을 건너 말씀드릴진댄 필시 그 뜻이 달라질 듯하와 감히 사뢰지 못하겠나이다.』
261
하니 그것은 비록 무식한 촌부(村婦)이나 그동안 가지가지 곡경을 겪는 중 모두 홍윤성의 세력 앞에 정당함을 잃고 사리를 그릇 판단하는 법관들에게 그만 혼이 난 까닭이었다.
262
왕은 이 말을 들으시고 친히 주련(駐輦)하기를 명하신 후,
265
허씨는 그제야 비로소 눈물을 걷우고 옷매무새도 단정히 한 후 나무에서 내려와 지극히 황공한 태도로,
266
『상은의 지극하심과 넓으신 베푸심을 받자와 홍윤성의 숙부의 계집이 감히 어전에 이르렀나이다.』
267
그 목소리 낭랑하여 비록 왕의 앞이나 일호의 주눅됨이 없었다.
268
왕도 흡족한 듯이 고개를 끄덕여 보이시며,
269
『소관사를 아뢰라』친명을 내리시매 여인은 윤성의 잘못됨과 악행을 일일히 고해 바친 후, 말이 억울하게 횡사한 그 남편의 이야기에 미치자 그만 눈물만이 비오듯하여,
270
『형조 불수하고, 헌부 역시 불청하오니 이 원념이 가실길이 없사와 감히 직소로 사뢰고저 하왔나이다.』
271
말을 맺고는 그만 땅에 머리를 조아리며 부복하였다.
272
왕은 이윽히 그 모양을 바라보시더니 맑은 용안에는 점점 노기가 치밀어 오르시며,
273
『짐은 윤성을 그 같은 악행자로 믿지 않았더니 이제 말을 들으매 용서할 수 없은즉 잘 힐지하여 처리하겠노라.』
275
『위세를 두려워하지 않고 지아비의 원수를 갚으려 하는 그 절의 장하도다.』
276
하신 후 여인에게 급미십곡(給米十斛) 하사하라는 고마우신 어명을 내리셨다.
277
여인의 기쁨과 만족은 말로 다할 수 없다.
278
더욱이 몇날 후 왕께서 윤성을 친문하시고 일층 대노하사 곧 죽이려다가 옛날 한강 선상에서 윤성의 도움을 입고,
279
『어떤 일이 있든지 목숨은 살려주마.』
281
『경은 전은을 잊어버리고 계관의 아들을 죽였지만 짐은 그렇지 아니하노라.』
282
하시는 비웃음과 함께 그 창두(蒼頭) 수십인을 대신 죽여 그 죄를 벌하셨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그만 뛰어오를 듯이 기뻐하였다.
283
이 일이 있은 후로는 과연 그처럼 횡폭무비하던 윤성도 깊이 깨닫는 바가 있어 전행을 뉘우치고 나라의 일을 근심하니 오로지 숙모 허씨가 가진 바 절의에 감동한 까닭이었다.
284
그러나 항상 가슴 속에 근심되는 바가 있었으니 그것은 홍계관이 옛날
285
『적악하는 바가 있을진댄 무자하리다.』
287
그 말을 들을 때도 심상히 넘어버리고 그후 여러가지 악행을 하면서도 생각나는 일이 없더니 이같은 변고를 겪고나서 스스로 자기를 돌아다볼 여유가 생기고 여러가지 전과에 대한 후회하는 마음이 일어나는 동시에 새삼스럽게 이 일이 근심스러웠던 것이다.
288
그리하여 어떻게든지 그 죄과를 풀어 보고저 홍계관과 그 아들을 위하여 큰 재를 올리며 지금은 초야의 한구석에 흩어져 있던 삼촌의 뼈를 모아 다시 후히 장례를 행하고 옛날 홍계관이 살던 동네를 홍계관리(洪繼寬里)라 이름까지 주었다.
289
그렇건만 무자를 염려하는 마음은 가시지 아니하여 드디어 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또한 처를 맞으며 그밖에 많은 첩을 두었으나 과연 생자하는 사람이 없이 다만 첩실에 한 딸을 두었을 뿐이니 이는 그 죄과를 생각하면 영영 무자녀할 것이로되 나중 후회하고 선행한 것으로 보아 하늘이 도우심일시 분명하다.
290
여하튼 두 처를 두기는 했으나 한 사람은 산중에 또 한 사람은 숭례문(崇禮門) 밖에 살게 하여 서로 상종이 없었더니 드디어 윤성이 늙고 병들어 여전히 무자함을 탄식하며,
291
『한 사람의 숙부에게 베풀은 적악의 보복이 이만할진댄 참으로 세상에 죄과 같이 무서운 것이 없을 것이요, 또한 절부같이 귀한 것이 없으리로다』
292
한 말을 남기고 죽으니 서로 적처(嫡妻)임을 다투어 아무리 오랜 시일이 지나도 그 싸움이 그치지 않음에 윤성의 집안은 순식간에 그 호화도 간곳 없고 다만 두 여인이 아웅거리는 수라장으로 바뀌어 버렸음이 모두 인과보복을 밝혀 가르쳐 주는 현상이었다.
293
그리하여 드디어 상소가 일어나매 임군께서도 어이 판단할 길이 없어 특히 영을 내려 두처(二妻)를 허락하시며 남은 가산은 이분(二分)하여 가지게 하시니 윤성의 후신도 이로 인하여 연기같이 사라져 버린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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