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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의 집시-들병이 철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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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10월
김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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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의 집시 – 들병이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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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구경거리로 개방할 의사가 있는가, 혹은 그만한 용기가 있는가, 나는 이렇게 가끔 묻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물론 사교계에 용납(容納)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아내의 출세와 행복을 바라지 않는 자가 누구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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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내가 하는 말은 자기의 아내를 대중의 구경거리로 던질 수 있는가, 그것이다. 그야 일부러 물자를 들여가며 이혼을 소송하는 부부도 없지는 않다. 마는 극진히 애지중지하는 자기의 아내를 대중에게 봉사하겠는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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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밥! 이렇게 부르짖고 보면 대뜸 신성치 못한 아귀(餓鬼)를 연상케 된다. 밥을 먹는다는 것이 딴은 그리 신성치는 못한가 보다. 마치 이 사회에서 구명도생(救命圖生)1)하는 호구(糊口)가 그리 신성치 못한 것과 같이―거기에는 몰자각적 복종이 필요하다. 파렴치적 허세가 필요하다. 그리고 매춘부적 애교, 아첨(阿諂)도 필요할는지 모른다. 그렇지 않고야 어디 제가 감히 사회적 지위를 농단(壟斷)2)하고 생활해 나갈 도리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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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것은 그런 모든 가면 허식을 벗어난 각성적 행동이다. 아내를 내놓고 그리고 먹는 것이다. 애교를 판다는 것은 근자에 이르러서는 완전히 노동화하였다. 노동하여 생활하는 여기에는 아무도 이의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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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즉 들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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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도 처음에는 다 나쁘지 않게 성한 오장육부(五臟六腑)가 있었다. 그리고 남만 못하지 않게 낄끌한 희망으로 땅을 파던 농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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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라는 것이 언뜻 생각하면 한가로운 신선 노릇도 같다. 마는 실상은 그런 고역(苦役)이 다시 없을 것이다. 땡볕에 논을 맨다. 김을 맨다. 혹은 비 한 방울에 갈급(渴急)이 나서 눈감고 꿈에까지 천기(天氣)를 엿본다―그러나 이렇게 해서라도 농작물만 잘되고 추수 때 소득만 여의(如意)하다면3) 이에 문제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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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농촌의 유일한 명절(明節)이다. 그와 동시에 여러 위협과 굴욕을 겪고 나는 한 역경이다. 말하자면 그들은 지주와 빚쟁이에게 수확물을 주고 다시 한겨울을 염려하기 위해 한 해 동안 땀을 흘렸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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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 한 번 분발한 것이 즉 들병이 생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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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병이가 되면 밥은 식성대로 먹을 수 있다는 것과 또는 그 준비에 돈 한 푼 안 든다는 이것에 그들은 매혹된다. 아내의 얼굴이 수색(秀色)이면 더욱 좋다. 그렇지 않더라도 농촌에서 항용 유행하는 가요나 몇 마디 반반히 가르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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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아내를 데리고 앉아서 소리를 가르친다. 낮에는 물론 벌어야 먹으니까 그럴 여가가 없고 밤에 들어와서는 아내를 가르친다. 재조 없으면 몇 달도 걸리고 총명하다면 한 달포 만에 끝이 난다. 아리랑으로부터 양산도ㆍ방아타령ㆍ신고산타령에 배따라기―그러나 게다가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나의 희망쯤 부르면 더욱 시세(時勢)가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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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면 그때에는 남편이 데리고 나가서 먹으면 된다. 그들이 소리를 가르친다는 것은 예술가적 명창(名唱)이 아니었다. 개 끄는 소리라도 먹을 수 있을 만큼 세련되면 그만이다. 아내의 등에 자식을 업혀 가지고 이렇게 남편이 데리고 나간다. 산을 넘어도 좋고 강을 몇씩 건너도 좋다. 밥 있는 곳이면 산골이고 버덩을 불구하고 발길 닿는 대로 유랑하는 것이다. 이것을 다른 데 예를 잡으면 애급(埃及)의 집시-(유랑민)적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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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낙엽이 질 때면 추수는 대개 끝이 난다. 그리고 궁하던 농촌에도 방방곡곡이 두둑한 볏섬이 늘어 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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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병이는 이때로부터 자연적 활동을 시작한다. 마치 그것은 볏섬을 습격하는 참새들의 행동과 동일시하여도 좋다. 다만 한 가지 차이라면 참새는 당장의 충복(充腹)이 목적이로되 그들은 포식(飽食) 이외에 그담에 여름의 생활까지 지탱해 나갈 연명(延命) 자료가 필요하다. 왜냐면 농가의 봄, 여름이란 가장 궁할 때이요 따라 들병이들의 큰 공황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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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하여 가을에 그들은 결사적으로 영업을 개시한다. 영업이라야 적수공권(赤手空拳)4)으로 유랑하며 아무 술집에고 유숙하면 그뿐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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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의 술집에서는 어디고 들병이를 환영한다. 아무개 집에 들병이 들었다 하면 그날 밤으로 젊은 축들은 몰려든다. 소리 조금만 먼저 해보라는 놈, 통성명만으로 낼 밤의 밀회를 약속하는 놈, 혹은 데리고 철야하는 놈 ...... 하여튼 음산하던 술집이 이렇게 담박 활기를 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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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집 주인으로 보면 두 가지의 이득을 보는 것이다. 들병이에게 술을 팔고 밥을 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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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병이가 보통 작부와 같은 점이 여기다. 그들은 남의 술을 팔고 보수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주막 주인에게 막걸리를 됫술로 사면 팔 때에는 잔술로 환산한다. 막걸리 한 되의 원가가 가령 17전이라면 그것을 20여전에 맡는다. 그리고 손님에게 잔으로 풀어 열 잔이 났다 치고 50전 다시 말하면 탁주 1승의 순이익이 30전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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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한 잔에 반드시 5전씩만 받겠다는 선언은 없다. 10전도 좋고, 20전도 좋다. 취객의 처분대로 이쪽에서는 받기만 하면 된다. 그럴리야 없겠지만 한 잔에 1원씩을 설사 쳐준다 해도 결코 마다지는 않는다. 다만 그 대신 객의 소청(所請)이면 무엇을 물론하고 응낙(應諾)할 만한 호의만 가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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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병이는 무엇보다도 들병이로서의 수완이 있어야 된다. 술 팔고 안주로 아리랑타령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아리랑쯤이면 농군들은 물릴 만치 들었고 또 하기도 선수다. 그 아리랑을 들으러 30~40전의 대금을 낭비하는 농군이 아니었다. 술 몇 잔 사 먹으면서 의례히 딴 안주까지 강요하는 것이다. 또 그것이 여러 번 거듭하는 동안에 이에 한 개의 완전한 권리로서 행사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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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들병이가 여기에 응치 않는다면 그건 큰 실례다. 안주를 덜 받은 데 그들은 담박 분개하여 대들지도 모른다. 혹은 지불하였던 술값을 도로 내달라고 협박할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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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소박한 농군들을 상대로 생활하는 들병이라 그 수단도 서울의 작부들과는 색채를 달리한다. 말하자면 작부들의 애교는 임시변통으로도 족하나 그러나 들병이는 끈끈한 사랑 즉 사랑의 지속성을 요한다. 왜냐면 밤마다 늘 오는 놈들이 거의 동시에 몰려들기 때문에 일정한 추파(秋波)를 보류치 않으면 당장에 권비백산(拳飛魄散)5)의 수라장이 되기가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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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병이가 되려면 이런 화근을 없애도록 첫째 눈치가 빨라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현금으로 청구해서는 또한 실례가 될는지도 모른다. 보통 외상이므로 떠날 때쯤 하여 집으로 찾아다니며 쌀이고, 벼고, 콩ㆍ팥ㆍ조, 이런 곡식을 되는 대로 수합함이 옳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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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두 내외 짊어지고 그담 마을로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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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병이를 객관적으로 평가하여 빈궁한 농민들은 잠식하는 한 독충이라 할는지도 모른다. 사실 들병이와 관련되어 발생하는 춘사(椿事)6)가 비일비재다. 풍기문란은 고사하고 유혹ㆍ사기ㆍ도난ㆍ폭행―주재소에서 보는 대로 축출을 명령하는 그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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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것은 일면만을 관찰한 편견에 지나지 않는다. 들병이에게는 그 해독을 보가(報價)하고도 남을 큰 기능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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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의 총각들이 취처(娶妻)를 한다는 것은 실로 용이한 일이 아니다. 결혼 당일의 비용은 말고 우선 선채금(先綵金)7)을 조달하기가 어렵다. 적어도 40~50원의 현금이 아니면 매혼시장(賣婚市場)에 출마할 자격부터 없는 것이다. 이에 늙은 총각은 3~4년간 머슴살이 고역을 부득이 감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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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한편 그들이 후일의 가정을 가질 만한 부양 능력이 있느냐하면 그것도 한 의문이다. 현재 처자와 동락(同樂)하는 자로도 졸지에 이별되는 경우가 없지 않다. 모든 사정은 이렇게 그들로 하여금 독신자의 생활을 강요하고 따라서 정열의 포만 상태를 초래한다. 이것을 주기적으로 조절하는 완화작용을 즉 들병이의 역할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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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병이가 동리에 들었다 소문만 나면 그들은 시각으로 몰려들어 인사를 청한다. 기실 인사가 목적이 아니라 우선 안면만 익혀 두자는 심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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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병이의 용모가 출중나다든가, 혹은 그 성악(聲樂)이 탁월하다든가 하는 것은 그리 문제가 못 된다. 유두분면(油頭粉面)8)에 비녀쪽 하나만 달리면 이런 경우에는 그대로 통과한다. 연래(年來)의 숙원을 성취시키기 위하여 그 호기(好機)9)를 감축(感祝)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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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병이가 들면 그날 밤부터 동리의 청년들은 떼난봉이 난다. 그렇다고 무모히 산재(散財)10)를 한다든가 탈선은 아니한다. 아무쪼록 염가로 향락하도록 강구하고 노는 것이 버릇이다. 여섯이고 몇이고 작당하고 추렴을 모여 술을 먹는다. 한 사람이 50전씩을 낸다면 도합 3원―그 3원을 가지고 제각기 3원어치 권세를 표방하며 거기에 부수되는 염태(艶態)11)를 요구한다. 만약 들병이가 이 가치를 무시한다든가, 혹은 공평치 못한 애욕남비(愛慾濫費)12)가 있다든가, 하는 때에는 담박 분란이 일어난다. 다 같이 돈을 냈는데 어째서 나만 빼놓느냐, 하고 시비조로 덤비면 큰 두통거릴 뿐 아니라 돈 못 받고 따귀만 털리는 봉변도 없지 않다. 하니까 들병이는 이 여섯 친구를 동시에 무마하여 3원어치 대접을 무사공정히 하는 것이 한 비결일지도 모른다.
 
33
이렇게 결산하면 내긴 50전을 냈으되 그 효용가치는 무려 18원에 달하는 셈이었다. 이런 좋은 기회를 바라고 농군들은 들병이의 심방(尋訪)을 적이 고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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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들병이로 보면 빈농들만 상대로 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때로는 지주댁 사랑에서 청할 적도 있다. 그러면 들병이는 항아리나 병에 술을 넣어가지고 찾아간다. 들병이가 큰 돈을 잡는 것은 역시 이런 부자집 사랑이다. 그리고 들병이라는 명칭도 이런 영업 수단에서 추상된 형용사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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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농촌부녀들이 들병이를 선망과 시기로 바라보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자기네들은 먹지도 잘 못하거니와 의복 하나 변변히 얻어 입지 못한다. 양반댁 사랑에 기탄없이 출입하며 먹고 입고 또는 며칠 밤 유숙하다 나오면 지전장을 만져보니 얼마나 행복이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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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병이가 들면 남자뿐 아니라 아낙네까지 수군거리며 마을에 묘한 분위기가 떠돈다.
 
37
들병이를 처음 만나면 우선 남편이 있느냐고 묻는 것이 술꾼의 상투적 인사다. 그러면 그 대답은 대개 전일에는 금슬이 좋았으나 생활난으로 말미암아 이혼했다 한다.
 
38
들병이는 남편이 없다는 이것이 유일의 자본이다. 부부생활이 얼마나 무미건조하였던가를 역력히 해몽함으로써 그들은 술꾼을 매혹케 한다.
 
39
그러나 들병이에게는 언제나 남편이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아내가 술을 팔고 있으면 남편은 그 근처에서 배회하고 있다.
 
40
들병이의 남편이라면 흔히 도박자요 부량하기로 정평이 났다. 그들은 아내의 밥을 무위도식하며 일종의 우월권을 주장한다. 아내가 돈을 벌어놓으면 가끔 달려들어 압수하여 간다. 그리고 그걸로 투전을 한다, 술을 먹는다,― 이렇게 명색 없이 소비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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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내는 이에 불평을 품거나 남편을 힐책하지 않는다. 이러는 것이 남편의 권리요, 또는 아내의 직무로 안다. 하기야 노름에 일확천금하면 남편뿐이 아니라 아내도 호사로운 생활을 가질 수 있다. 잡담 제하고 노름 밑천이나 대주는 것도 두량(斗量)13) 있는 일일지도 모른다.
 
42
들병이로 나서면 주객 접대(酒客接對)도 힘들거니와 첫째 남편 공양이 더 난사(難事)다. 밥만 먹일 뿐 아니라 옷 뒤도 거둬야 된다. 술 팔기에 밤도 새우지만 낮에는 빨래를 하고 옷을 꿰매고 그래야 입을 것이다. 게다가 젖먹이나 달리면 강보(襁褓)도 늘 빨아대야 하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43
그러나 그것만도 좋다. 엄동설한에 태중(胎中)으로 나섰다가 산기가 있을 때에는 좀 곡경(曲境)14)이다. 술을 팔다 말고 술상 앞에서 해산하는 수밖에 별 도리 없다. 물론 아무 준비가 있을 까닭이 없다. 까칠한 공석 위에서 덜덜 떨고만 있을 뿐이다. 들병이 수업 중 그중 어렵다면 이것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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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때이면 남편은 비로소 아내에게 밥값을 보답한다. 희색이 만면해서 방에 불을 지피고 밥을 짓고 국을 끓이고 지성으로 보호한다. 남편은 이 아이가 자기의 자식이라고는 믿지 않는다. 다만 자기 소유에 속하는 자식이라는 그 점에 만족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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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으로 보면 이런 아이가 제대로 명을 부지할 것 같지 않다마는 들병이의 자식인 만치 무병(無病)하고 죽음과 인연이 먼 아이는 다시 없을 것이다. 한 7일만 겨우 지나면 눈보라에 떨쳐 업고 방랑의 길로 나선다.
 
46
들병이가 유아를 데리고 다니는 것은 기이한 현상이 아니다. 대개 하나씩은 그 품에 붙어다닌다. 고생스런 노동에도 불구하고 자식만은 극진히 보육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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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누가 그들을 동정하여 아이를 데리고 다니기가 곤란일 테니 길러주마 한다면 그들은 노할지도 모른다. 이것은 고생이 아니라 생활 취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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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도 춘궁 때가 돌아오면 들병이는 전혀 한가롭다. 그들은 고향으로 돌아가 옛집에 칩거한다. 품을 팔아먹어도 좋고 땅을 파도 좋다. 하여튼 다시 농민생활로 귀화하는 것이다.
 
49
그리고 그담 가을을 기다린다.
 
50
들병이는 어디로 판단하든 물론 정당한 노동자이다. 그러나 때로는 불법행위가 없는 것도 아니니 그런 때에도 우리는 증오감을 갖기보다는 일종의 애교를 느끼게 된다. 왜냐면 그 법식이 너무 단순하고 솔직하고 무기교라 해학미가 따르기 때문이다.
 
51
예를 들면 남편이 간혹 야심하여 아내의 처소를 습격하는 경우가 있다. 이때에는 방에 들어가 등잔의 불을 들여놓고 한 구석에 묵묵히 앉았다. 강박하거나 공갈은 안 한다. 들병이니까 그럴 염치는 하기야, 없기도 하거니와 ― 얼마 후에야 남편은 겨우 뒤통수를 긁으며
 
52
"머릴 깎아야 할텐데―"
 
53
이렇게 이발료가 없음을 장탄(長嘆)하리라.
 
54
그러면 이것이 들병이의 남편임을 비몽사몽간 깨닫게 된다. 실상은 죄가 못 되나 순박한 농군이라 남편이라는 위력에 압도되어 대경실색하는 것이 항례(恒例)15)다. 그러나 놀랄 건 없고 몇 십 전 희사하면 그뿐이다. 만일 현금이 없을 때에는 내일 아침 집으로 오라하여도 좋다. 그러면 남편은 무언으로 그 자리를 사양하되 아무 주저도 없으리라. 여기에 들병이 남편으로서의 독특한 예의가 있는 것이다. 절대로 현장을 교란하거나 가해하는 행동은 안 한다.
 
55
들병이에게 유혹되어 절도를 범하는 일이 흔히 있다. 기십 원의 생활비만 변통하면 너와 영구히 동거하겠다는 감언이설에 대개 혹하는 것이다. 그들은 들병이를 도락적(道樂的)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아내로서의 애정을 요망한다. 늙은 홀아비가 묘령(妙齡)16) 들병이를 연모하여 남의 송아지를 끌어냈다든가, 머슴이 주인의 벼를 퍼냈다든가, 이런 범행이 빈번하다.
 
56
들병이가 내방하면 그들 사이에는 암암리의 경쟁이 시작된다. 서로 들병이를 독점하기 위하여 갖은 방법으로 그 환심(歡心)을 매수한다. 데리고 가서 국수를 먹이고, 닭을 먹이고, 혹은 감자도 구워다 선사한다. 그러나 좀 현명하면 약간의 막걸리로 그 남편을 수의(隨意)로17) 이용하여도 좋을 것이다.
 
57
들병이가 되려면 이런 자분(自分)의 추세를 민감으로 파악하여야 할 것이다. 소리는 졸렬할지라도 이 수단만 능숙하다면 호구(糊口)는 무난일 게다. 그리고 남편은 배후에서 아내를 물론 지휘조종하며 간접적으로 주객(酒客)을 연락하여야 된다. 아내는 근육으로, 남편은 지혜로, 이렇게 공동전선을 치고 생존경쟁에 처한다.
 
58
들병이는 술값으로 곡물도 받는다고 전술(前述)하였다. 그러나 사실은 곡물뿐만 아니라 간혹 가장집물(家藏什物)에까지 이를 경우도 없지 않다. 식기, 침구, 의복류―생활상 필수품이면 구태여 흑백을 가리지 않는다.
 
59
들병이에게 철저히 열광(熱狂)되면 그들 부부 틈에 끼어 같이 표박(漂迫)18)하는 친구도 있다. 이별은 아깝고, 동거는 어렵고, 그런 이유로 결국 한 예찬자로서 추종하는 고행이었다. 이런 때에는 들병이의 남편도 이 연애지상주의자의 정성을 박대하지는 않는다. 의좋게 동행하여 심복같이 잔심부름이나 시켜 먹고 한다. 이렇게 되면 누가 본 남편인지 분간하기 어렵고 자칫하면 종말에 주객이 전도되는 상외(想外)19)의 사변(事變)20)도 없는 것이 아니다.
 
 
60
(매일신보, 1935.10.22~29.)
 

 
61
1) 苟命圖生, 구차스럽게 겨우 목숨만을 보존하며 부질없이 살아감
62
2) 이익이나 권리를 독차지함
63
3) 마음 먹은 대로 된다면
64
4) 맨손과 맨주먹으로,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65
5) 주먹이 날아가고 혼백이 흩어짐. (혼비백산- 혼백이 어지러이 흩어진다)
66
6) 뜻밖에 일어나는 불행한 일
67
7) 전통 혼례에서 혼례를 치르기 전에 신랑집에서 신부집으로 보내는 채단을 마련할 돈, 혹은 보낼 돈.
68
8) 기름 바른 머리와 분 바른 얼굴이라는 뜻으로, 여자의 화장한 모습을 이르는 말.
69
9) 좋은 기회
70
10) 재산을 이리저리 써서 없애 버림
71
11) 아리따운 모양이나 태도
72
12) 헛되이 헤프게 씀
73
13) 일을 헤아려 처리함
74
14) 몹시 힘들고 어려운 처지
75
15) 보통 있는 일
76
16) 스무 살 안팎의 여자 나이
77
17) 마음대로
78
18) 일정한 주거나 생업이 없이 떠돌아다니며 지냄.
79
19) 생각 밖의
80
20) 사람의 힘으로는 피할 수 없는 큰 사건.
【원문】조선의 집시-들병이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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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조
  들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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