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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당구법순례행기(入唐求法巡禮行記) 838년 ◈
◇ 입당구법순례행기(838년 6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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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세기
圓仁(엔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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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권(卷) 제(第) 1
2
 - 당(唐) 문종(文宗) 개성삼년(開成三年)
 
 
 

838년 6월

 

6월 13일 (음)

5
- 출항하다
 
6
承和五年。六月十三日午時。第一第四兩舶。諸使駕舶。緣無順風。停宿三箇日。
 
 
7
승화(承和) 5년(838)註 0016월 13일 정오경에 제1선과 제4선 두 척의 배註 002에 사절단이 승선하였다. 그러나 순풍이 없어 3일 동안 정박해 머물렀다.註 003
 
 
8
註) 001 일본 인편천황 5년(838)으로 신라 애장왕 원년에 해당한다.
9
註) 002 대양을 항해하는 큰 배를 말한다(小野勝年, 《入唐求法巡禮行記の硏究》 第1卷, 鈴木學術財團, 1964, 92쪽).
10
註) 003 《속일본후기(續日本後紀)》 권7 승화 오년 7월 갑신조에 의하면 대재부에 머무르고 있었던 견당사 제1선박, 제4선박이 출발하였다(小野勝年, 《入唐求法巡禮行記の硏究》 第1卷, 鈴木學術財團, 1964, 92쪽).
 
 

 
 

6월 17일 (음)

12
- 지하도에 정박하다
 
13
十七日夜半。得嵐風上帆搖艫行。巳時到志賀嶋東海。為无信風。五箇日停宿矣。
 
 
14
[6월]17일, 밤중에 남풍(嵐風)註 004 註 005이 불었으므로 돛을 올리고 노를 저어 바다로 나아갔다. 오전 10시 무렵 지하도(志賀嶋)註 006 註 007의 동쪽 바다에 도착했으나 신풍(信風)註 008이 없어 5일 동안 그곳에 정박하였다.
 
 
15
註) 004 산악지대에서 평지나 바다로 부는 바람.
16
註) 005 저녁 무렵 산에서 들이나 바다로 불어오는 바람(小野勝年, 《入唐求法巡禮行記の硏究》 第1卷, 鈴木學術財團, 1964, 93쪽).
17
註) 006 일본 후쿠오카현 하카다[博多]만 입구의 섬.
18
註) 007 복강현(福岡縣) 박다(博多)만 입구의 섬이다(小野勝年, 《入唐求法巡禮行記の硏究》 第1卷, 鈴木學術財團, 1964, 93쪽).
19
註) 008 일정한 방향으로 부는 바람으로 순풍과 같은 뜻으로 쓰인다(小野勝年, 《入唐求法巡禮行記の硏究》 第1卷, 鈴木學術財團, 1964, 94쪽).
 
 

 
 

6월 22일 (음)

21
- 야간에 항해하다
 
22
廿二日卯時。得艮風進發。更不覓澳。投夜暗行。
 
 
23
[6월]22일, 오전 6시경 북동풍이 불었으므로 출발해 나아갔다. 그런데 도무지 배를 정박시킬 후미진 곳을 찾지 못하여 밤을 뚫고 어둠 속에서 항해했다.
 
 

 
 

6월 23일 (음)

25
- 유구도를 떠나 당으로 향하다
 
26
廿三日巳時。到有救嶋。東北風吹。征留執別。比至酉時。上帆渡海。東北風吹。入夜暗行。兩舶火信相通。
 
 
27
[6월]23일, 오전 10시경 유구도(有救嶋)註 009 註 010에 도착했다. 동북풍이 불었다. 떠나는 사절단은 그곳에서 전송하는 사람들과 작별하고 오후 6시경쯤에 돛을 올려 바다를 건너기 시작했다. 동북풍이 불었으므로 밤이 되었음에도 어둠 속에서 항해를 계속했다. 두 척의 배는 횃불註 011로 서로 교신하였다.
 
 
28
註) 009 현재 나가사키현 고토 열도의 북단에 위치한 우쿠시마(宇久島)(小野勝年, 《入唐求法巡禮行記の硏究》 第1卷, 鈴木學術財團, 1964, 95쪽).
29
註) 010 유규도의 동쪽바다에 있다. 지금의 후쿠오카현의 하카다만에 위치한 섬이다(小野勝年, 《入唐求法巡禮行記の硏究》 第1卷, 鈴木學術財團, 1964, 95쪽).
30
註) 011 등불을 들어서 서로 교신하는 방법이다(小野勝年, 《入唐求法巡禮行記の硏究》 第1卷, 鈴木學術財團, 1964, 96쪽).
 
 

 
 

6월 24일 (음)

32
- 바다를 횡단하다
 
33
廿四日望見第四舶在前去。與第一舶。相去卅里許。遙西方去。大使([□@考]藤原常嗣)始畫觀音菩薩。請益留學法師等。相共讀經誓祈。亥時火信相通。其貌如星。至曉不見。雖有艮巽風變。而無漂遷之驚。大竹蘆根烏賊貝等。隨瀾而流。下鈎取看。或生或枯。海色淺綠。人咸謂近陸地矣。申時大魚隨船遊行。
 
 
34
[6월]24일, 제4선이 앞에 가고 있는 것이 멀리 보였다. 제1선과의 거리가 30여 리註 012 정도 떨어져 멀찌감치 서쪽으로 가고 있었다. 대사(大使)註 013 註 014가 처음으로 관음보살상註 015을 그리게 하였다.註 016 청익승(請益僧)註 017 註 018과 유학승(留學僧)註 019 註 020들은 함께 독경하며 기도했다. 밤 10시경에 횃불로 서로 교신하니 그 모양이 마치 별과 같았다. 새벽이 되자 [제4선이] 보이지 않았다. 비록 바람의 방향이 동북풍에서 동남풍으로 바뀌었으나, 표류하여 떠다닐까 두려워할 정도는 아니었다. 큰 대나무, 갈대 뿌리, 오징어, 조개 등이 물결을 따라 흘러 다녔다. 갈고리를 내려 건져서 살펴보니 어떤 것은 살아있고 어떤 것은 시들어 말랐다. 바닷물의 색깔이 옅은 녹색이었다. 사람들이 모두 말하기를
 
35
“육지가 가깝다.”
 
36
라고 하였다. 오후 4시 무렵 큰 물고기가 배를 따라오며 헤엄쳐 다녔다.
 
 
37
註) 012 5척이 1보가 되며 3백보가 1리가 된다. 당대척으로 계산하면 1리= 535.5cm이다(小野勝年, 《入唐求法巡禮行記の硏究》 第1卷, 鈴木學術財團, 1964, 97쪽).
38
註) 013 견당사 대사인 후지와라노 스네츠쿠[藤原常嗣]을 지칭한다.
39
註) 014 견당사의 장관격이다. 여기에서는 등원상사(藤原常嗣)을 지칭한다. 《연희식(延喜式)》 권 30에 보이는 견당사의 인원 구성은 다음과 같다. 대사(大使), 부사(副使), 판관(判官), 준판관(准判官), 녹사(錄事), 준녹사(准錄事), 지승선사(知乘船事), 사생(史生), 역어(譯語), 수수(水手), 의사(醫師), 음양사(陰陽師), 화사(畵師), 음성장(音聲長), 겸종(傔從), 청익승(請益僧), 유학생(留學生), 유학승(留學僧)이 있다(小野勝年, 《入唐求法巡禮行記の硏究》 第1卷, 鈴木學術財團, 1964, 98쪽).
40
註) 015 보살의 하나이다. 대자대비하여 중생이 괴로울 때 그의 이름을 정성으로 외면 그 음성을 듣고 곧 구제해 준다고 한다(신복룡, 《입당구법순례행기》, 선인, 2007, 30쪽).
41
註) 016 대사가 처음으로 화사에게 관음보살상을 그리도록 한 것은 대성 4년 3월조를 통해서 살펴 볼 수 있다(小野勝年, 《入唐求法巡禮行記の硏究》 第1卷, 鈴木學術財團, 1964, 99쪽).
42
註) 017 환학승(還學僧)이라고도 하는데, 단기간의 입당 구법승을 말한다.
43
註) 018 여기서의 청익승은 원인(圓仁)을 지칭한다(小野勝年, 《入唐求法巡禮行記の硏究》 第1卷, 鈴木學術財團, 1964, 99쪽).
44
註) 019 장기간에 걸쳐 당에 체류하는 구법승이다.
45
註) 020 여기서의 유학승은 원재(圓載)를 지칭한다(小野勝年, 《入唐求法巡禮行記の硏究》 第1卷, 鈴木學術財團, 1964, 99쪽).
 
 

 
 

6월 27일 (음)

47
- 항해 위치를 확인하다
 
48
廿七日平鐵為波所衝悉脫落。疲([□@考]疲下恐脫烏若鷺字)信宿不去。或時西飛二三。又更還居。如斯數度。海色白綠。竟夜令人登桅子。見山嶋稱不見。
 
 
49
[6월]27일, 평철(平鐵)註 021이 파도에 부딪혀 모두 떨어져 나갔다. 피로에 지친 새註 022들이 날아 와 머문 채 떠나지 않았다. 때때로 서쪽으로 두 세 마리씩 날아갔다가 다시 돌아와 쉬곤 하기를 수차례 반복하였다. 바닷물의 빛깔이 백록색(白綠色)이었다. 밤새 내내 사람을 시켜 돛대에 올라가 산이나 섬이 보이는지 살펴보라 하였으나, 한결같이 보이지 않는다고 하였다.
 
 
50
註) 021 선체의 모서리나 이음새 부분을 보호하기 위하여 덧댄 쇠붙이로 추측된다(小野勝年, 《入唐求法巡禮行記の硏究》 第1卷, 鈴木學術財團, 1964, 100쪽).
51
註) 022 조(鳥)가 빠진 듯 하다(小野勝年, 《入唐求法巡禮行記の硏究》 第1卷, 鈴木學術財團, 1964, 100쪽).
 
 

 
 

6월 28일 (음)

53
- 백수에서 표류하다
 
54
廿八日早朝。鷺鳥指西北雙飛。風猶不變。側帆指坤。巳時至白水。其色如黃泥。人眾咸云。若是揚州大江流水。令人登桅子見申云。從戊亥會直流南方。其寬廿餘里。望見前路水還淺綠。暫行不久。終如所申。大使深恠海色還為淺綠。新羅譯語金正南申云。聞導([□@考]導下文皆作導。池本作道)揚州掘港難過。今既踰白水。疑踰掘港歟。未時海水亦白。人咸驚恠。令人上桅([□@考]桅下池本有子字東本有令字)。見陸嶋。猶稱不見。風吹不變。海淺波高。衝鳴如雷。以繩結鐵沈之。僅至五丈。經少時下䥫試海淺深。唯五尋。使等懼。或云。將下石停。明日方征。或云。須半下帆馳艇。知前途淺深。方漸進行。停留之說。事似不當。論定之際。尅逮酉戌。爰東風切扇。濤波高猛。船舶卒然趍昇海渚。乍驚落帆。柂([□@考]柂池本作桅下同)角摧折兩度。東西之波互衝傾舶。柂葉著海底。舶艫將破。仍截桅弃柂。舶即隨濤漂蕩。東波來船西傾。西波來東側。洗流船上。不可勝計。船上一眾憑歸佛神。莫不誓祈。人人失謀。使頭以下至于水手。裸身緊逼褌船將中絕。遷走艫舳。各覓全處。結構之會。為瀾衝咸皆差脫。左右欄端。結繩把牽。競求活途淦水汎滿。船即沈居沙土。官私雜物隨淦浮沈。
 
 
55
[6월]28일, 이른 아침에 해오라기가 서북쪽으로 짝을 지어 나아갔다. 바람의 방향이 여전히 변하지 않아, 돛을 비스듬히 하여 서남쪽을 향하도록 했다. 오전 10시 무렵 백수(白水)註 023 註 024에 이르니 그 색깔이 누른 흙탕물 같았다. 사람들이 모두 말하기를
 
56
“이 물은 양주 대강(揚州大江)註 025에서 흘러오는 것이 아닐까”
 
57
라 하였다. 사람을 시켜 돛대에 올라가 살펴보게 하니
 
58
“이 물길은 서북쪽에서 남쪽으로 직류하는데, 그 폭은 20여 리 정도이다. 전방을 멀리 바라보니 바닷물의 색깔이 다시 엷은 녹색이다.”
 
59
라 말하였다. 얼마동안 나아가니 보고했던 것과 같았다. 대사는 바다 색깔이 다시 엷은 녹색으로 된 것을 괴이하게 여겼다. 신라어 통역註 026 註 027 김정남(金正南)註 028이 말하기를
 
60
“내가 듣기로는 양주 註 029 굴항(掘港)註 030 註 031은 통과하기가 어려운 곳이라는데, 지금 이미백수를 지나왔으니 아마굴항을 통과했는지도 모르겠다.”
 
61
라 하였다.
 
62
오후 2시경에 바닷물 빛이 다시 흰색으로 변했다. 사람들은 모두 놀라고 괴이하게 여겼다. 사람을 시켜 돛대 위에 올라가 육지나 섬이 있는지 살펴보게 하니
 
63
“아직 보이지 않는다.”
 
64
라고만 할 뿐이었다. 바람은 변함없이 불었다. 바다는 얕고 물결은 높아, 파도가 배에 부딪히는 소리가 우레와 같았다. 줄에 쇳덩이를 매달아 그것을 바다 속에 빠트려보니 깊이가 겨우 5장(丈)註 032이었다. 잠시 지난 후에 다시 쇳덩이를 내려 바다의 깊고 얕음을 재어 보니 5심(尋)註 033밖에 되지 않았다. 대사 등이 두려워하니 어느 사람이 말하기를
 
65
“닻을 내려 정박했다가 내일 바야흐로 나아가자.”
 
66
라 하였다. 또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67
“돛을 절반 정도 내리고 거룻배를 앞장세워 보내, 앞쪽 바닷길의 얕고 깊음을 숙지하고서 천천히 나아가는 것이 마땅하다.”
 
68
고 하였다. 정박해 머무르자는 주장은 사리에 맞지 않은 듯했다. 이러저러한 논의가 매듭지어졌을 때 시각은 오후 7시경이 되었다.
 
69
그 무렵 동풍이 세차게 불어 파도가 높고 광폭해져 배가 갑자기 바닷가 여울로 떠밀려 올라갔다. 문득 놀라서 돛을 내렸으나 키가 꺾여 부러져 두 동강이가 났다. 동쪽과 서쪽에서 파도가 번갈아가며 배에 부딪혀 배를 기우뚱하게 했다. 키는 바다 밑바닥에 닿았고 배의 노는 장차 부러지려고 하여 돛대를 자르고 키를 버렸다. 배는 파도에 따라서 이리저리 밀려 다녔다. 동쪽에서 파도가 밀려오면 배는 서쪽으로 기울고, 서쪽에서 파도가 밀려오면 배는 동쪽으로 기울었다. 바닷물이 배 위를 덮쳐 선상을 휩쓸어간 적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신(神)과 부처님께 의지하여 기도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사람들은 어찌할 방도를 몰랐다. 대사와 선두(船頭)註 034 이하 수수(水手)에 이르기까지 모두 맨몸에 잠방이를 졸라매었다. 배가 중간이 끊어져 두 토막 나려 하자 사람들은 뱃머리와 배꼬리로 쫓아가 각자 안전한 곳을 찾았다. 배의 이음새 부분은 파도에 부딪혀 모두 떨어져 나갔고, 좌우 난간에 밧줄을 묶어 꽉 잡고서 다투어 살길을 구하였다. 흙탕물註 035이 온통 배 안에 가득차서 배는 곧 가라앉아 모래흙에 빠져버렸다. 공물(公物)과 사물(私物) 할 것 없이 잡다한 물건들은 밀려 들어온 흙탕물을 따라 떴다 가라앉았다 했다.註 036
 
 
70
註) 023 동중국해나 황해는 양자강 황하의 영향으로 바다 빛이 변한다. 하구에 가까울수록 엷은 녹색에서 희뿌연 녹색으로 변했다가 강어귀에 이르면 황톳물로 바뀐다. 이것을 백수라 한다(서긍(徐兢), 《고려도경》 권 34 해도1)(小野勝年, 《入唐求法巡禮行記の硏究》 第1卷, 鈴木學術財團, 1964, 104쪽).
71
註) 024 徐兢이 《《선화봉사고려도경》》에서 말한 海道인 白水洋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72
註) 025 양자강 곧 장강을 말한다(小野勝年, 《入唐求法巡禮行記の硏究》 第1卷, 鈴木學術財團, 1964, 104쪽).
73
註) 026 일본이 견당사를 파견할 때 신라어 통역을 대동한 것은 한반도에 표착했을 경우뿐만 아니라 중국 황해 연안이 신라인들이 많이 거주하였으므로 그들과의 교섭을 원활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74
註) 027 《일본후기(日本後記)》권24 홍인 6년 정월 조를 통해서 신라어 통역인을 둔 기사를 확인할 수 있다(《일본후기(日本後記)》 권24 홍인(弘仁) 6년 정월조)(小野勝年, 《入唐求法巡禮行記の硏究》 第1卷, 鈴木學術財團, 1964, 104쪽).
75
註) 028 신라인 통역관이다. 아마도 견당사 초창기부터 그랬을 가능성이 크다. 조공사 선박이 신라에 표류하는 경우와 당시 당나라 연해안과 대운하 변에 신라인들이 많이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과의 교섭에도 필요했기 때문이다(《일본후기(日本後記)》 권 24 홍인(弘仁) 6년 정월조)(小野勝年, 《入唐求法巡禮行記の硏究》 第1卷, 鈴木學術財團, 1964, 104쪽).
76
註) 029 당대 대운하와 장강 하류의 요충지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중심지였다. 무덕 9년(626)에 대도독부(大都督府)를 두고 대도독으로 친왕이 취임하였다. 지덕 원년(756) 회남절도사(淮南節度使)가 설치되어 11개 주를 관장하였다(小野勝年, 《入唐求法巡禮行記の硏究》 第1卷, 鈴木學術財團, 1964, 104-105쪽).
77
註) 030 지금의 강소성(江蘇省) 해릉현(海陵縣) 여고진(女皐鎭) 마항(馬港) 인근이다(小野勝年, 《入唐求法巡禮行記の硏究》 第1卷, 鈴木學術財團, 1964쪽).
78
註) 031 《대청일통지(大淸一統志)》 권73 通州條에 의하면, 굴항은 여고진의 동쪽 130리 되는 곳에 있다고 한다.
79
註) 032 1장은 10척이므로 5장은 약 15m 정도의 길이에 해당한다.
80
註) 033 1심은 8척이므로 5심은 약 12m정도의 길이에 해당한다.
81
註) 034 배의 수령쯤으로 추측된다(小野勝年, 《入唐求法巡禮行記の硏究》 第1卷, 鈴木學術財團, 1964, 107)쪽
82
註) 035 감수(淦水)는 배 안으로 스며든 흙탕물을 뜻한다(小野勝年, 《入唐求法巡禮行記の硏究》 第1卷, 鈴木學術財團, 1964, 107쪽).
83
註) 036 《속일본기(續日本紀)》권 35 보구(宝龜) 9년 10월조에 유사한 내용이 실려 있다(小野勝年, 《入唐求法巡禮行記の硏究》 第1卷, 鈴木學術財團, 1964, 107쪽).
 
 

 
 

6월 29일 (음)

85
- 선박이 파손되다
 
 
86
廿九日曉潮涸。淦亦隨竭。令人見底。々悉破裂。沙埋槈𪲘([□@考]槈𪲘如指船底之結搆振時誤作槈或桭袱歟𪲘池本作拽)。眾人設謀。今舶已裂。若再逢潮生。恐增摧[A1]散歟。仍倒桅子。截落左右艫棚於舶四方建棹。結纜槈𪲘。([□@考]𪲘池本作栧)亥時望見。西方遙有火光。人々對之。莫不忻悅。通夜瞻望。山嶋不見。唯看火光。
 
87
[6월]29일, 새벽에 조수가 빠져나가자 밀려 들어온 흙탕물 역시 따라서 말랐다. 사람을 시켜 배의 바닥을 살펴보게 하니 배의 밑 부분이 모두 파열되었고 누아(搙▣(木+我))註 037 註 038가 모래에 묻혀 있었다. 여러 사람들이 계책을 세우기를
 
88
“지금 이미 배가 파열되었는데 만약 다시 밀려오는 조수를 만난다면 아마 더욱 심하게 부서지고 흐트러질 것이다.”
 
89
라 하고는 돛대를 넘어뜨리고 좌우의 노붕(艫棚)註 039을 베어내리고 사방에 노를 설치하여 닻줄로 누아(搙▣(木+我))를 묶었다. 밤 10시경 멀리 바라보니 서쪽 먼 곳에 불빛이 보였다. 그것을 보고 기뻐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밤새 주위를 살펴보았으나 산이나 섬은 보이지 않고 오직 불빛만 보일 뿐이었다.
 
 
90
註) 037 배 밑바닥의 이음새 부분이다.
91
註) 038 누복으로 배 밑의 골격을 이루는 긴 횡목(小野勝年, 《入唐求法巡禮行記の硏究》 第1卷, 鈴木學術財團, 1964, 107쪽).
92
註) 039 뱃전에 누각 모양을 설치한 시설물로 노를 저을 때 주로 사용한다.
【원문】입당구법순례행기(83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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