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천축(天竺)의 서쪽에 나라가 있어 구라파(歐羅巴)라 하는데 '구라파'란 그 지역 말로는 '큰 서쪽'이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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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나라에 한 도(道)1)가 있어서 '기례달(伎禮達)이라고 하는데 그 지역 말로는 '하늘을 섬긴다'는 뜻이다. 그 도는 유교도 아니고 불교도 아니며 선교도 아닌 별도로 한 갈래를 세운 것이다. 무릇 마음을 먹고 일을 행할 때에 하늘의 뜻에 어긋나지 않아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각각 천존(天尊)의 상을 그려서 봉안하고 섬기며 부처와 노자(老子)와 우리 교(敎)2)를 배척하여 원수처럼 여긴다. 우리의 도에 대해서 기술한 바가 많지만3) 큰 근본에서는 현격히 다르다. 불교에 대해서는 윤회설을 깊이 배척하지만 천당과 지옥은 있다고 말한다. 그 풍속에는 혼인하는 것을 숭상하지 않으며 평생동안 여색을 가까이 하지 않는 자를 가리어 군장(君長)으로 삼고 '교화황(敎化皇:敎皇)이라고 부르며 천주(天主)를 계송하여 가르침을 반포하는데 대대로 세습하여 계승하지 않고 현인(賢人)을 가려 세운다. 사사로운 집이 없고 오직 공무(公務)만 보며 또 아들이 없고 오직 백성을 아들로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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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글씨는 대략 회교권(回敎圈)과 같은데 왼쪽에서부터 쓰며 글자는 횡서(橫書)로 행을 이룬다. 그 선비는 친구와의 사귐을 중하게 여기고 천문과 별의 현상에 아주 정통하다.
6
만력 중에 마태오리치(利瑪寶)라는 사람이 구라파에서 태어나서 팔 만리를 두루 다니다가 남마카오(南澳)4)에 머물렀다. 10여 년간 천금(千金)을 모았는데 모두 버리고 중국으로 들어갔다. 여러 서적과 성현의 글을 두루 보고 계묘년(1603년)에 상하권 8편의 책을 저술했는데 첫 편에는 천주가 시초에 천지를 만들어 주재하여 편안히 기르는 도를 논하였고 제2편에는 세상 사람들이 천주를 잘 못 알고 있음을 논하였고 제3편에는 사람의 혼은 멸하지 않아서 금수(禽獸)와 크게 다름을 논하였다. 제4편에는 귀신과 인간의 혼백이 천하의 만물과 일체라고 할 수 없는 것을 논하였고 제5편에는 육도(六道)를 윤회한다는 잘못된 설을 논하였고 제6편에는 뜻이 멸할 수 없다는 것을 풀이하고 그리고 천당과 지옥과 선악의 업보를 풀이했다. 제7편에는 인성은 본래 선하고 천주는 바른 학문임을 논했으며 제8편에는 서양풍속을 모두 열거하고 그 전도하는 선비가 혼인하지 않는 뜻을 논하고 아울러 천주가 서쪽 땅에 내려와 탄생하여 머무른 것에 대해 풀이해 제목5)을 <천주실의(天主實義>라고 했는데 '천주(天主)'는 상제(上帝)를 말하고 '실(實)'은 비지 않음을 말하는데 노자와 불교의 '공(空)'과 '무(無)'를 배척한 것이다. 그 마지막 편에는 한(漢)나라 애제(哀帝) 원수(元壽) 2년(B,C 1)이라 동지(冬至)후 3일이라 적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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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나라에 내려온 동정녀(童貞女)는 혼인하지 않고 잉태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야소(耶蘇:예수)'라고 했다. '야소'라는 말을 세상을 구한다는 뜻인데 몸소 종교를 세웠다. 후한(後漢) 명제(明帝) 때에 ㅇ;르러 서역에 신인(神人)6)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사신을 보내어 구했다. 사신이 길을 절반도 못 가서 독국(毒國)7)으로부터 불교를 얻어 돌아와 유교를 그르치게 되었다.
8
마태오리치는 이인(異人)이다. 천하를 두루 보고 나서 천하여지도(天下輿地圖:세계지도)를 그려서 각각 그 지역의 말로 여러 나라에 이름을 붙였다. 중국은 천하의 가운데 있으며 구라파는 중국의 4분의 1보다 크다. 그 남방은 몹시 더워서 다만 끝까지 가보지 못했다. 그러나 그 종교가 이미 전파되어 동남쪽의 여러 오랑캐들이 자못 존중하고 믿었다.
9
일본은 예로부터 불교를 숭상하고 섬겼는데 기례달교(伎禮達敎)가 일본에 들어오자 부처를 배척하고 요사한 것으로 생각했다. 부처를 믿는 자를 용납하지 않아서 침을 뱉어 진흙이나 찌꺼기 같이 여겼다. 지난 날 일본장수 평행장(平行長)은 이 도를 존중하였다고 하는데 오직 우리 나라에만 알려지지 않았다. 허균(許均)이 중국에 이르러 그 지도와 찬송가 12장을 얻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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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에 이치가 많으나 천당과 지옥이 있다 말하고, 혼인을 하지 않는 것을 옳게 여기니 어찌 못된 도리를 끼고서 세상을 미혹하게 하는 죄를 면할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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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 도(道) : 서양의 가르침(西敎)으로 카톨릭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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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우리의…많지만 : 카톨릭이 유교와 비슷한 점이 있는 것에 대한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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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남오(南澳) : 중국 광동성이 있는 섬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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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제목 : 원문 '月'은 '目'이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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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신인(神人) : 불교의 부처를 가리키는 말로 쓰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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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독국(毒國) : 서역(西域)에 있는 나라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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