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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수정전(鄭秀貞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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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수정전(鄭秀貞傳)
 
 
2
화설(話說) 송(宋) 태종황제(太宗皇帝) 시절에 병부상서(兵部尙書) 겸 표기장군(飄騎將軍)인 정국공이란 재상이 있으니, 문무겸전(文武兼全)하기로, 조야(朝野)에 공경추앙(恭敬推仰)하며 명망(名望)이 일세(一世)에 들되, 다만 슬하에 일점혈육(一點血育)이 없어 슬퍼하더니, 일일(一日)은 공이 그 부인 양씨를 대하여 이르기를,
 
3
“우리 부귀(富貴) 일세(一世)에 으뜸이로되, 조전향화(祖前香火)를 어찌 하리오. 내 벼슬이 공후(公侯)에 거(居)함에 족히 두 부인을 둠직 한지라. 행여 생자(生子)하면 후사(後事)를 이을 것이니, 부인 소견(所見)이 어떠하뇨?”
 
4
부인이 탄식하며 이르기를,
 
5
“첩(妾)이 전생(前生)에 죄 중하여 일점혈육이 없사오니, 상공(上公) 재취(再娶)하심을 어찌 애처로이 할 바가 있으리까?”
 
6
말을 마치며 옥안(玉顔)에 쌍루(雙淚)가 종횡(從橫)하니, 상서 이를 보매 불쌍 측은(惻隱)하여 부인을 위로(慰勞)할 따름이더라. 이날 부인이 잠을 이루지 못하고 시녀(侍女)를 데리고 추양각에 올라, 월색(月色)을 구경하더니, 이때는 삼월 망간(望間)이라.
 
7
부인이 난간(欄干)에 의지하여 잠깐 졸더니, 문득 동쪽에서 오색구름이 일어나며, 두 선녀(仙女) 공중(空中)에서 내려와 부인을 보고, 벽련화(碧蓮花) 한 가지를 주며 이르기를,
 
8
“부인이 우리를 아시나이까? 상제(上帝)께옵서 우리를 보내어 부인에 차물(此物)을 드리라 하시기로, 이 벽련화를 부인께 드리나이다.”
 
9
하고 부인 앞에 놓고 홀연(忽然) 간 데 없거늘, 부인이 놀라 깨달으니 한 꿈이라. 남천(南天)을 향하여 무수히 사례(謝禮)하고 돌아보니 벽련화 있거늘, 부인이 괴이 여겨 구경하고저 하더니, 문득 광풍(狂風)이 일며 그 꽃이 낱낱이 떨어지는지라.
 
10
부인이 내려와 상서께 이 말씀을 전하니, 상서가 청파(聽罷)에 해몽(解夢)하니 반드시 생자지상(生子之相)이라 가장 기뻐하더니, 과연 그달부터 잉태(孕胎)하여 십 삭(朔)이 차매, 일일은 공중에서 한 쌍 선녀 내려와 부인 침전(寢前)에 이르러 이르매,
 
11
“월궁항아(月宮姮娥)의 명으로 해복(解腹)하심을 기다리나이다.”
 
12
하니 오색구름이 집을 옹위(擁衛)하고 향취(香臭)가 진동(香水振動)하거늘, 부인이 문득 생아(生兒)하니, 선녀가 향수(香水)로 씻겨 누이고 이르되,
 
13
“이 아이 이름은 수정이오니, 차아(此兒) 배필(配匹)은 황성(皇城)에 있으니, 때를 잃지 마옵소서.”
 
14
하고 문득 간 바를 알지 못하더라. 이때 상서 바삐 들어와 보니 부인은 인사(人事)를 모르고, 한 아이 곁에 누었거늘, 상서가 일변(一邊) 부인을 붙들어 구(救)하며 아이를 보니, 짐짓 월궁(月宮) 소아(小娥)라.
 
15
상서가 즉시 생월일시(生月日時)를 기록(記錄)하고 이름을 수정이라 하다. 이러구러 세월이 훌훌하여, 수정의 나이 오세에 이르매, 백태(百態) 천염(千艶)이 날로 새로우니, 상서 부부가 장중보옥(掌中寶玉) 같이 애지중지(愛之重之)하니라.
 
 
16
이때 장운이란 사람이 있으니, 벼슬이 이부상서(吏部尙書)에 거(居)하고, 한 아들을 두었으니, 얼굴은 두목지(杜牧之)요 행실(行實)은 증자(曾子)를 효칙(效則)하더라. 장상서가 조회(朝會)를 파하고 돌아오더니, 병부상서 정국공을 만나 서로 예(禮)를 파(破)하고. 장상서가 이르기를,
 
17
“현형(賢兄)은 모름지기, 소제(小弟)의 집으로 가심이 어떠하시나이까.”
 
18
정상서 흔연(欣然)히 허락(許諾)하고, 한가지로 장상서 부중(府中)에 이르니, 경풍각에 좌정(座定)하고 담화(談話)하며 주찬(酒饌)이 나와 대접(待接)할새,
 
19
정공이 웃으며 이르기를,
 
20
“형의 부귀로 어찌 일배주(一杯酒)로 박(薄)히 대접하느뇨.”
 
21
장공도 웃으며 답하기를,
 
22
“형은 이백(李白)의 후신인지, 주배(酒杯)탐하기를 잘하는 도다.”
 
23
하며 즉시 시녀에 명하여 주찬(酒饌)이 나올새, 술이 반취(半醉)함에 정상서가 청(請)하건데,
 
24
“형의 귀자(貴子)를 한번 구경하고자 하노라.”
 
25
장상서가 즉시 공자(公子)를 부르니, 공자 수명(受命)하고 즉시 이르렀거늘, 정공이 잠깐 보니 짐짓 영풍(英風) 호준(豪俊)이라. 일견(一見)에 대희하여 이르기를,
 
26
“내 일찍 한 여식(女息)을 두었으니, 나이 십 세라. 짐짓 차인(此人)에 배우(配偶)로다. 우리 양인(兩人)이 이렇듯 심밀(甚密)한 가운데, 가히 슬하(膝下)에 재미를 봄직 한지라. 가히 배우(配偶)를 정함이 어떠하뇨?”
 
27
장공이 답하기를,
 
28
“형이 이에 먼저 청혼(請婚)하시니 불승(不勝) 황공(惶恐)하여이다.”
 
29
정상서 칭사(稱辭)한데, 장상서 백옥홀(白玉笏)을 내어다가, 정상서를 주며 이르기를,
 
30
“차물(此物)이 비록 대단치 않으나 선조(先祖)부터 결혼시(結婚時)에 신물(信物)을 삼았사오니, 이로써 정약(定約)하나이다.”
 
31
정상서 또한 쥐었던 청선(靑扇)을 주며 이르기를,
 
32
“이로써 표정(表正)하소서.”
 
33
하고 인(因)하여 파연(罷宴)하매, 정상서 집에 돌아와 부인에게 정혼(定婚)한 사연을 이르더라.
 
 
34
이때 예부상서 진량이란 사람이 있으니, 황제(皇帝)가 가장 총애(寵愛)하시니 진량이 양양자득(揚揚自得)하고 교만방자(驕慢放恣)한지라. 정상서 일찍 진량이 소인(小人)인줄 알고 태종께 자주 고간(固諫)하되, 태종이 종시(終始) 불연(不然)하심에 진량이 이 일을 알고 정공을 해하고자 하더니,
 
35
차시(此時) 마침 태종의 탄일(誕日)이 되었는지라. 만조(滿朝)가 모두 조회(朝會)하더니, 마침 정상서가 병이 있어 상소(上疏)하고 조참(朝參)하지 못하였더니, 황제 백관(百官)더러 묻기를,
 
36
“정상서의 병이 어떠하더뇨?”
 
37
하시고 사관(辭官)을 보내시려 하시니, 진공이 출반(出反)하며, 주(奏)하기를,
 
38
“정국공은 간악(姦惡)한 사람이라 그 병세(病勢)를 신이 자세히 아니이다. 정국공이 요사이 탑전(榻前)에 조회하는 것이 다르옵고, 신이 정국공의 집에 가오니, 정국공의 말이 수상하옵더니, 오늘 조회에 불참하오니 반드시 사고(私考)가 있는 줄 아나이다.”
 
39
상이 대경(大驚)하사, 벌로 처지(處地)하려 하시거늘, 중관(中官)이 주(奏)하기를,
 
40
“정국공의 죄 명백(明白)함이 없사오니, 어찌 중(中)히 다스리기에 미치오리까.”
 
41
상이 경아(驚訝)하사, 절강에 귀양을 정하시니, 중관(中官)이 명을 듣고 정국공의 집에 나아가 하교(下敎)를 전하니, 상서가 하교를 듣고 대곡(大哭)하며 이르기를,
 
42
“내 일찍 국은(國恩)을 갚을까 하였더니, 소인에 참언(讒言)을 입어 이제 찬출(竄黜)을 당하니 어찌 애달프지 않으리오.”
 
43
하고 칼을 빼어 서안(書案)을 치며 이르기를,
 
44
“소인(小人)의 무리를 소제(掃除)치 못하고, 도리어 해(害)를 입으니 뉘를 원망하리오.”
 
45
체읍(涕泣)하기를 마지않으니, 부인은 애원통도(哀怨痛悼)하고 친척노복(親戚奴僕)이 다 설워하더라.
 
46
사관(辭官)이 재촉하여 이르기를,
 
47
“황명(皇命)이 급하오니 수이 행장(行裝)을 차리소서.”
 
48
정공이 일변 행장을 준비하여 부인에게 이르기를,
 
49
“나는 천만에 의외의 사이에 적객(謫客)이 되어 가거니와, 부인은 여아(女兒)를 데리고 조선(祖先) 향화(香火)를 받들어 길이 무양(無恙)하소서.”
 
50
하고 즉시 발행(發行)할새, 부인 모녀(母女) 흉격(胸膈)이 막혀 아무 말도 못하더라.
 
51
정공이 여러 날 만에 적소(適所)에 이르니, 절강 만호(萬戶)가 관사(官舍)를 쇄소(灑掃)하여 정상서를 머물게 하더라.
 
 
52
차설(此說) 정공이 적거(謫居)한 후로 슬픔을 머금고 세월을 보내더니, 삼 삭(三朔)만에 홀연 득병(得病)하여 여러 날 신고(辛苦)하다가, 마침내 세상을 영결(永訣)하니, 절강 만호가 차악(嗟愕)히 여겨, 나라에 장계(狀啓)하고 정부인(貞夫人)께 기별(奇別)하니라.
 
53
이때 부인과 소저 상서를 이별하고 눈물로 세월을 보내더니, 하루는 문득 시비(侍婢) 고(告)하되,
 
54
“절강 사람이 왔나이다.”
 
55
하거늘 부인이 급히 불러 물으니, 기인(其人) 아뢰기를,
 
56
“노야(老爺)께서 거월(去月) 망간(望間)에 기세(棄世)하시다.”
 
57
하는지라. 부인과 소저가 이 말을 듣고 한마디 소리에 혼절(昏絶)하니, 시비 등이 창황망조(蒼黃罔措)하여 약물로 급히 구함에, 오랜 후에야 숨을 내쉬며 눈물이 비 오듯 하니 이때 소저 나이 십일 세라. 일가(一家)가 모두 통곡(痛哭)하며 산천(山川)이 다 슬퍼하더라.
 
58
선시(先時)에 천자(天子)가 상서의 죽음을 들으시고 측은이 여기사, 즉시 하교하사 증직(贈職)하시며 왕후(王侯)의 예(禮)로 장(葬)하라 하시더라.
 
 
59
차설(此說) 이때 부인과 소저가 주야애통(晝夜哀痛)하며, 상서 영구(靈柩)가 돌아오기를 가디리더니, 홀연 부인이 득병하여 상석(上席)에 위독(危篤)한지라. 소저가 더욱 망극(罔極)하며 낯을 부인 옥안에 대이고 울며 아뢰기를,
 
60
“부친(父親)이 만리절역(萬里絶域)에서 기세(棄世)하시고, 또 모친(母親)이 이렇듯 하시니, 소녀 뉘를 의지하여 부친 영구(靈柩)를 받들어 안장(安葬)하며, 일명(一命)을 어찌 보전하리요.”
 
61
하고 언파(言罷)에 실성(失性)하고 체읍(涕泣)하는지라. 부인이 혼혼(昏昏) 중에 여아(女兒)의 곡성(哭聲)을 듣고, 오열(嗚咽) 장탄(長歎)하며 이르기를,
 
62
“상공의 시신을 미처 거두지 못하여서 내 또한 죽기에 이르니, 내 죽기는 섧지 아니하거니와, 네 경상(景狀)을 생각하면 구천(九泉)에 원혼(冤魂)이 되리로다.”
 
63
하고 애호일성(哀號一聲)에 명(命)이 진(盡)하니, 소저에 호천벽용(呼天擗踊)하는 형상은 초목금수(草木禽獸)라도 슬퍼할지라. 부인 시체(屍體)를 부용정에 빈소(殯所)하고 주야 통곡하더니, 절강 만호가 정공의 상구(喪柩)를 모셔왔거늘, 소저가 부친 상구를 붙들고 애곡(哀哭)한 후, 정당(正堂)에 빈소(殯所)하고 주야로 관을 두드려 통곡하여, 이렇듯 세월이 여류하여 장일(葬日)이 다다르매, 예관(禮官)이 황명으로 시구(屍柩)를 붙들어 왕례(王禮)로 장사(葬事)하니라.
 
 
64
이때 장공이 정상서 부인이 마저 죽음을 듣고, 소저의 정상(情狀)을 공측(恭惻)히 여겨 자주 왕래하며, 소저의 안부(安否)를 탐문(探聞)하더니 오래지 아니하여, 장공이 또한 득병하여 마침내 세상을 버린지라.
 
65
소저 듣고 장탄(長歎)하기를,
 
66
“우리 부친 생시(生時) 언약(言約)을 굳게 하고, 피차 신물(信物)을 받았으니, 나는 곧 그 집 사람이라. 내 팔자 기험(崎險)하여, 장상서 또한 기세(棄世)하여 계시니, 어찌 살기를 도모하리오.”
 
67
하고 슬퍼하더니, 문득 한 계교(計巧)를 생각하고 유모(乳母)를 불러 의논(議論)한 후, 항상 남복(男服)을 개착(改着)하고 밤이면 병서(兵書)를 읽고 낮이면 말달리기와 창 쓰기를 익힘에 용맹(勇猛)과 지략(智略)이 일세(一世)에 무쌍(無雙)이러라.
 
 
68
차설 장연이 삼상(三喪)을 마침에, 왕부인이 아자(兒子)더러 이르기를,
 
69
“네 이미 장성하였으니, 과업(課業)을 힘쓰라.”
 
70
하니 연이 수명(受命)하고 주야로 힘쓰더니, 이때 상이 인재(人才)를 얻으려 하사 예부(禮部)에 하교하여 택일(擇日) 설과(設科)하시니라. 과일(科日)이 다다르매 장연이 과장(科場)에 들어가 글제(題)를 살핀 후, 일필휘지(一筆揮之)하여 바치고 배회(徘徊)하더니, 장원(壯元)에 장연이라 호명(呼名)하거늘, 장연이 옥폐(玉陛)에 나아가 사배(四拜)하니, 상이 인견(引見)하여 이르기를,
 
71
“네 아비 충성(忠誠)으로 나를 섬기더니, 일찍 죽으매 짐이 매양(每樣) 충직(忠直)을 아끼더니, 네 이제 방목(榜目)에 참례(參禮)함을 다행함을 아노라.”
 
72
하시고 인하여 한림학사(翰林學士)를 제수(除授)하시니, 한림이 사은(謝恩)하고 부중(府中)으로 돌아 오니라.
 
73
 
74
차설 장한림이 삼일(三日) 유가(遊街) 후에, 선영(先塋)에 소분(掃墳)하고 직임(職任)에 나아갔더니, 해 바뀜에 한림이 과궐(窠闕)이 많음으로 상표(上表)하여 별과(別科)를 청(請)하거늘, 상이 의윤(依允)하사 택일 설과(設科)하시니, 이때 정수정이 과거(科擧) 기별을 듣고, 과구(科具)를 차려 황성(皇城)에 들어가니, 과일(科日)이 다다랐는지라. 과장(科場)에 나아가 글을 지어 바치고 나와 쉬더니, 상이 한 글장을 빼내시니, 문필(文筆)이 탁월(卓越)함을 대찬(大讚)하시고, 비봉(祕封)을 떼이시니, 국공의 아들 정수정이라. 즉시 인견하사 진퇴(進退)하신 후, 하교하시기를,
 
75
“정국공이 아들이 없다 하더니 이 같은 기자(奇字) 둠을 몰랐도다.”
 
76
하시고 의아(疑訝)하시더니, 문득 진량이 주(奏)하기를,
 
77
“정국공이 본래 아들이 없음을 신이 익히 아옵는 바라. 연(然)하여 정수정이 나라를 기망(欺罔)하옵고, 정국공의 아들이라 하오니 폐하는 살피소서.”
 
78
하거늘 정수정이 제 부친을 해하던 진량인줄 알고, 불승(不勝) 분노(憤怒)하여 이르기를,
 
79
“네 국가를 속이고 대신을 모해(謀害)하던 진량이냐? 무슨 원수로 우리 부친을 해하여 만리(萬里) 절역(絶域)에서 죽게 하고, 이제 나를 또 해코자 하며, 가층(假層) 부대(附帶)라 하니, 천륜이 어찌 중(重)하거든, 무륜(無倫) 패상(敗常)을 하는 말을 군부지전(君父之前)에서 하는가. 이제 네 간을 씹고자 하노라.”
 
80
하며 눈물이 비오듯 하거늘, 상이 수정의 말을 들으시고 진량이 간흉(奸凶)함을 깨달으사,
 
81
“너 같은 것이 충량지신(忠良之臣)을 애매히 죽게 하니, 짐의 불명(不明)함을 뉘우치노라.”
 
82
하시고 법관(法官)에 명하여, 진량을 강서에 찬출(竄黜)하시고, 정수정을 한림학사 겸 간의태부(諫議太傅)에 제수(除授)하시니, 수정이 사은하고 삼일 유가 후 말미를 얻어 선산(先山)에 소분(掃墳)하고, 즉시 상경하여 천자에게 숙사(肅謝)하고 나오매,
 
83
장연이 정수정을 보고 피차 한훤(寒喧)을 마친 후, 장연 이르기를,
 
84
“전일(前日) 우리 부친과 영대인(令大人)이 서로 언약하여, 소제(小弟)와 영매(令妹)가 더불어 결혼하였더니, 피차 불행하여 초토(草土)에 있기로 혼사를 의논치 못하였거니와, 이제 우리 양인(兩人)이 새로이 만남에 수이 택일(擇日) 하여 성례(成禮)하고자 하나니 형(兄)의 뜻은 어떠하뇨?”
 
85
정수정이 옥안(玉顔)에 잠깐 수색(愁色)을 띠며 이르기를,
 
86
“소제 가운(家運)이 불행하와 부모가 장서(長逝)하시매, 소매(小妹) 주야통곡 하다가 병이 일어 세상을 버림에, 할반지통(割半之痛)이 날로 더하더니, 금일 형의 말을 들으니 새로이 슬프도다.”
 
87
장연이 청파(聽罷)에 아연(亞鉛) 탄식(歎息)하며 이르기를,
 
88
“연즉(然則) 어찌 진시(趁時) 통부(通訃)를 않았느뇨?”
 
89
수정 이르기를,
 
90
“그때를 당하여 비황(悲惶) 중에 염불(鹽拂) 급하다 함이니, 금일(今日) 형에게 통부 전하지 아니한 허물은 면치 못하리로다.”
 
91
하더라.
 
92
 
93
차설, 하루는 상이 경풍루에 전좌(殿坐)하시고, 정장양인(鄭張兩人)을 명초(命招)하사 이르기를,
 
94
“경등이 시부(詩賦)를 지어 짐에 적요(寂寥)함을 소창(消暢)케 하라.”
 
95
하시니 양인이 응명(應命)하고, 지필(紙筆)을 취하니, 때는 정(正)히 삼월 망간이라. 시흥(詩興)이 발양(發揚)하여 산호필(珊瑚筆)을 들어 일필휘지하여 일시에 바치니, 상이 보신즉 시재(詩才) 민첩하고 경물(景物)이 구비(具備)하여, 진선진미(盡善盡美)함에 칭찬 불리(不離)하시고, 특별히 장연으로 대사도(大司徒)를 삼고, 정수정에게 자정전(資政殿) 태학사(太學士)를 내리시니, 간관(諫官)이 주(奏)하기를,
 
96
“그 장정(鄭張) 양인의 재주는 비상하오나, 연기최소(年期最少)하오니 그 직임(職任)이 과한가 하나이다.”
 
97
상이 진노(震怒)하사 이르기를,
 
98
“연기 과소(寡少)로 벼슬을 할진대, 재주 고하(高下)를 의논치 말미 옳으냐?”
 
99
하시고, 다시 정수정에게 병부상서 겸 표기대장 병마총독을 내리시고, 장연으로 이부상서 겸 대사도를 내리시니, 양인이 감당치 못함으로 굳이 사양(辭讓)하되, 상이 종시불윤(終始不允)하시고 환내(還內) 하시니, 양인이 어쩔 수 없이 사은(謝恩)하고 각각 부중(府中)으로 돌아 오니라.
 
100
장상서 모부인이 상서의 손을 잡고, 전사(前事)를 생각하며 도리어 슬퍼하거늘, 상서가 모부인을 위로하며, 인(因)하여 정수정의 누이 사연을 고하되, 모부인 참연(慘然)하며 이르기를,
 
101
“제 이미 죽었으면, 가히 타처(他處)에 숙녀(淑女)를 구하여, 주궤(主饋)를 비우지 말게 할지어다.”
 
102
상서 듣기만 할 따름이더라.
 
103
 
104
각설, 각로(閣老) 위승상은 대대로 공후(公侯) 묘예(苗裔)요, 교목세가(喬木世家)로 부귀 일세에 으뜸이나, 늦게야 다만 일녀(一女)를 두었으매, 침어낙안지용(沈魚落雁之容)이 일대 가인(佳人)이라. 소저가 방년(芳年) 십육임에 부인 강씨, 각로께 고(告)하기를,
 
105
“바삐 가랑(佳郞)을 구하여 저의 쌍유(雙遊)함을 보고, 우리 후사(後事)를 맡겨 노래(老來) 재미를 봄이 어찌 아름답지 아니하리잇가.”
 
106
각로 이르기를,
 
107
“이부상서 장연이 인물 풍도(風度)와 명망(名望) 재혜(財慧)가 일세에 추앙하는 바니 청혼하리라.”
 
108
하고 즉시 매파(媒婆)를 장부(張府)에 보내어 통혼(通婚)하니, 강씨 익히 아는 바이라. 즉시 허락하여 보내고 택일 납빙(納聘)한 후 성례(成禮)할새, 상서 나이 또한 이팔이라.
 
109
위의(威儀)를 차려 원부(遠府)에 나아가 홍안(鴻鴈)을 전하고, 내당에 들어가니, 각로 부부의 즐거워함은 이를 바 없고, 만당(滿堂) 빈객(賓客)이 칭찬하는 소리 진동하더라.
 
110
이윽고 수십 시녀들이 신부를 옹위하고 나오매, 상서가 잠깐 본즉 맑은 용모와 아리따운 자태, 진실로 일세에 희한한 여재(女才)더라. 양인이 교배(交拜)를 마침에 이미 일모서산(日暮西山)한지라. 시녀 상서를 인도(引導)하여 침실에 나아가, 서로 좌(座)를 이루니, 소저 옥안(玉眼)에 잠깐 수색(愁色)을 띠어, 아미(蛾眉)를 숙이고 단정히 앉았으매, 상서 심하(心下)에 기뻐하며 즉시 촉(燭)을 물리고, 소저 옥수(玉手)를 잡아 금침(衾枕)에 나아가니, 그 견권지정(繾綣之情)이 비할 때 없더라.
 
111
명조(明朝)에 상서 본부에 돌아와 사묘(四廟)에 배알(拜謁)하고 모부인(母夫人)을 뵈오니, 부인이 희색(喜色)이 만면하더라.
 
112
 
113
각설 강서 도독 한복이 상표(上表)하였으되,
 
114
‘북방 오랑캐가 기병(起兵)하여 관북 칠십여 성을 항복 받고, 어남태수 장보를 참(斬)하고 병세(兵勢) 호대(浩大)하다.’
 
115
하였거늘, 상이 대경하사 문무(文武)를 모아 의논할새, 제신(諸臣)이 주(奏)하기를,
 
116
“정수정이 문무겸비 하였고 벼슬이 또한 표기장군이오니, 가히 적병을 막으리라.”
 
117
상이 이르기를,
 
118
“정수정을 명초(命招)하라.”
 
119
하시니 이때 정수정이 궐하(闕下)에 조현(朝見)하되, 상이 이르기를,
 
120
“이제 북적(北狄)이 침범(侵犯)하여 그 세(勢)가 급하다 하매, 조정이 모두 경을 보내면 근심을 덜리라 하니, 경은 능히 이 소임(所任)을 당할 소냐?”
 
121
상서가 부복하여 주하기를,
 
122
“신이 비록 무재(無才)하오나, 신자(信者)되어 이때를 당하여 피하리잇고. 간뇌도지(肝腦塗地)하여도 도적을 파하여 폐하의 근심을 덜이이다.”
 
123
상이 대희하여 즉시 정수정으로 평북대원수(平北大元帥) 겸 제도병마도총 대도독을 내리시고, 인검(引劍)을 주시며 이르기를,
 
124
“제후(諸侯)라도 만일 위령(違令)하거든 선참후계(先斬後啓)하라.”
 
125
하시니, 원수 사은(謝恩) 수명(受命)하고 주하기를,
 
126
“군중(軍中)은 중군(中軍)이 있어야 군정(軍政)을 살피옵나니, 어찌하리잇고?”
 
127
상이 이르기를,
 
128
“연즉 경이 택출(擇出)하라.”
 
129
하시니, 원수 아뢰기를,
 
130
“이부상서 장연이 그 소임을 감당할까 하나이다.”
 
131
상이 즉시 장연으로 부원수를 삼으시니, 원수가 물러나와 진국장군(鎭國將軍) 관영으로 십만 병을 조련하라 하고, 인하여 궐하에 하직하고 교장(敎場)에 나아가 중군 장연에게 전령(傳令)하여, 빨리 진상(陣上)으로 대령하라 하고, 제장(諸將)에게 군례(軍禮)를 받은 후, 관영으로 선봉장(先鋒將)을 삼고, 양주자사 진시회로 후군장(後軍將)을 삼고, 대장군(大將軍) 서태로 군량총독관(軍糧總督官)을 삼으니라.
 
132
이때 중군 전령이 장상서 부중에 이르니, 상서 마음이 가장 불호(不好)하나, 이미 국가대사(國家大事)요 군중(軍中) 호령(號令)이라 장령(將令)을 거역하지 못하여 모부인께 하직하고, 갑주(甲冑) 갖추어 말에 올라 교장에 나아가니, 원수 갑주를 갖추고 장대(將臺)에 높이 앉아 불러 드리니, 장연이 들어와 군례(軍禮)로 꿇어 뵈는지라.
 
133
원수 내심(內心)에 반갑고 실소(失笑)하나, 외모(外貌)를 엄정(嚴正)히 이르기를,
 
134
“이제 적세(敵勢)가 급하였으매, 명일(明日) 행군(行軍)하여 기주로 가리니, 그대는 평명(平明)에 군사를 영솔(領率)하여 대령하되, 군중(軍中)은 사정(私情)이 없나니 착념(着念)하라.”
 
135
하니 중군(中軍)이 청령(聽令)하고 물러 나니라.
 
136
 
137
차설 원수가 행군하여 기주에 다다르니, 적세가 호대(浩大)하다 하거늘, 명조(明朝)에 진세(陣勢)를 벌리고, 적진에 격서(檄書)를 보내어 싸움을 돋우니, 호장(胡將) 마웅이 또한 진문(陣門)을 열고 정창(挺槍) 출마(出馬)하거늘, 원수 채찍을 들어 대매(大罵)하기를,
 
138
“무지한 오랑캐 천시(天時)를 모르고, 무단(無斷)히 기병(起兵)하여 지경(地境)을 침노(侵擄)함에 황제께서 대노하여 이르시기를, 너희를 소멸(消滅)하라 하시니 빨리 목을 늘이어 내 칼을 받으라.”
 
139
마웅이 대노(大怒)하여 맹달통에게 대적하라 하니, 맹달통이 팔십 근 도채를 휘두르며 말을 내몰아 꾸짖어 이르기를,
 
140
“너 같은 구상유취(口尙乳臭) 어찌 나를 당할 소냐.”
 
141
하고 진(陣)을 헤치고자 할 즈음에, 승진(昇進) 선봉(先鋒) 관영이 내달아 교봉(交鋒) 십여 합에 맹달통이 크게 고함(高喊)하고 도채로 관영의 말을 쳐 엎어지니, 관영이 마하(馬下)에 떨어지는지라. 원수 관영이 급함을 보고 말에 올라 춤추며 이르기를
 
142
“적장(敵將)은 나의 선봉을 해치지 말라.”
 
143
하고 달려들러 맹달통을 맞아 싸워 삼 합이 못되어 원수의 창이 번듯하며, 맹달통을 찔러 마하에 내리치고, 그 머리를 베어 말에 달고 적진을 헤쳐 들어가니, 마웅이 맹달통의 죽음을 보고 중군에 들어가 나오지 않거늘, 원수 적진 전면을 헤치며 좌충우돌하여 중군에 이르되, 막는 자 없더니 문득 적장 오평이 원수에 충돌(衝突)함을 보고 방천극(方天戟)을 휘두르며 급히 내달아 싸워, 삼십여 합에 문득 적병이 사면으로 급히 쳐 들어오는지라.
 
144
원수가 오평을 버리고 남녘을 헤쳐 달아날새, 마웅이 기를 두르고 북을 울리며 군사를 재촉하여 철통같이 에워쌌는지라. 원수 대노하여 좌수(左手)에 장창(長槍)을 들고 우수(右手)에 보검(寶劍) 들어 동남을 짓치니, 적진장졸(敵陣將卒)의 머리가 추풍낙엽(秋風落葉) 같더라. 적병이 저당(抵當)치 못하여 사면으로 흩어지거늘 마웅이 이를 보고 노하여 이르기를,
 
145
“조그마한 아이를 에워도 잡지 못하고, 도리어 장졸만 죽이니 이는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하심이다.”
 
146
하고 혼절(昏絶)하더라. 강서 도독 한복은 당시 영웅이라. 원수가 쌓임을 보고 대경하여 철기(鐵騎) 오백을 거느려 쌓인 데를 헤쳐 원수를 구하여 나오니, 뉘 감히 당하리오. 본진으로 돌아와 승전고(勝戰鼓)를 울리며 장졸(將卒)의 기운을 돋우며, 한복과 관영이 원수께 사례(射禮)하기를,
 
147
“원수의 용맹은 초패왕(楚霸王)이라도 미치지 못하리로소이다, ”
 
148
하더라.
 
149
 
150
차설 마웅이 패잔군(敗殘軍)을 수습하여 물을 건너 진을 치고, 오평으로 선봉을 삼으니라. 이때 원수 장대(將臺)에 앉고 제장을 불러 이르기를,
 
151
“이제 마웅이 물 건너 결진(結陣)함은 구병(救兵)을 청(請)하려 함이니, 마땅히 이때를 타파(打破)하리라.”
 
152
하고 한복을 불러 철기 오천을 거느려 흥양중에 숨었다가, 적병이 패하면 그리로 갈 것이니 급히 내달아 치라 하고, 기주자사 손경을 불러 정병 오만을 거느려 불로 치되 여차여차 하라 하고, 선봉 관영을 불러 이르기를,
 
153
“너는 삼천 철기를 거느려 여차여차 하라.”
 
154
하니 제장이 청령(聽令)하고 각각 군마를 거느려 가니라.
 
155
원수 황혼에 군사를 밥 먹인 후 제장으로 본진을 지키고, 철기를 몰아 물을 건너 적진으로 행할새, 이때는 정히 삼경이라. 적진의 등촉(燈燭)이 다 꺼지고 준비함이 없거늘, 사면을 살펴본 즉 산천이 험악하고 길이 좁은지라.
 
156
원수 심중(心中)에 암희(暗喜)하여 큰 소리 포향(砲響)에 사면에서 불이 일어나 화광(火光)이 중천(中天)하고, 금고(金鼓)가 제명(諸鳴)하며 함성이 천지진동하는지라.
 
157
적병이 크게 놀라 진(陣) 밖으로 내다르니, 화광이 연천(連天)한데, 소년 대장이 칼을 들고 좌우충돌하니, 마웅이 무심(無心) 중에 황겁(惶怯)하여 칼을 휘두르며 불을 무릅쓰고 앞을 헤칠 즈음에, 등 뒤에서 손경이 장창을 들고 말을 달려 짓쳐 들어오고 앞에 원수가 또 칼을 들고 가는 길을 막으니, 적장이 비록 지용(智勇)이 있으나 이미 계교에 속았는지라. 다만 죽기를 모르고 살기만 도모하여 좌우를 헤칠새, 원수 급히 마웅에게 달려들어 십여 합에 이르러는 함성이 천지진동하는지라.
 
158
마웅이 세 급함을 보고 좌편으로 달아나더니, 부원수 장연이 길을 막고 활을 쏘며 마웅이 몸을 기울려 피하며 분연(憤然)히 장연을 취하더니, 문득 원수 창을 휘두르며 뒤로 달려들어 마웅을 베니, 오평이 마웅의 죽음을 보고 상혼낙담(喪魂落膽)하여, 겨우 명(命)을 도망하여 큰 뫼를 넘어 흥양을 바라고 닷더니, 앞에 함성이 일어나며 일표(一彪) 군마(軍馬)가 내달아 오평을 사로잡으니, 이는 위수대장 한복이라.
 
159
차시 원수가 좌충우돌하니 적진 장졸이 일시에 항복하매, 손경으로 하여금 압령(押領)하여 본진으로 돌아오니, 한복이 또한 오평을 잡아 왔는지라. 원수 장대에 높이 앉고 오평을 잡아드려 계하에 꿇리니, 오평이 눈을 부릅뜨고 무수히 질욕(叱辱)하거늘, 원수 대노하여 무사에 명하여 오평을 베니라.
 
160
 
161
차설 원수가 호병을 멸하고 첩서(捷書)를 조정에 올린 후에, 대군을 휘동(麾動)하여 황성으로 향하니라.
 
162
선시(先時)에 상이 정수정의 소식을 몰라 근심하시더니, 첩서가 옴을 보시고 불승(不勝) 대희(大喜)하시더니, 원수가 회군하는 소식을 들으시고 문무를 거느려 성외(城外)에 나오사, 원수를 맞아 손을 잡고 이르기를,
 
163
“짐이 경을 전지(戰地)에 보내고 염려함이 간절하더니 이제 경이 도적을 파하고 개가(凱歌)로 돌아오니, 그 공로를 다 어찌 갚으리오.”
 
164
원수 복지(伏地)하여 아뢰기를,
 
165
“이는 폐하의 홍복(弘福)이로소이다.”
 
166
상이 못내 칭찬하시며 환궁하사, 익일(翌日) 출전 제장을 봉작(封爵)하실새, 정수정으로 이부상서 겸 총도독 청주후에 봉하시고, 장연으로 태학사 겸 부도독기주후에 봉하시고, 그 남은 장수는 차례로 봉작하시니, 정장양인(鄭張兩人)이 굳이 사양하되 상이 종시 불윤(不允)하시니, 양인이 마지못하여 사은숙배(謝恩肅拜)하고 각각 본부로 돌아갈새, 정후(鄭侯)는 유모(乳母)와 시비를 대하여 석사(昔事)를 생각하고 슬퍼하며, 사묘(四廟)를 모셔 청주로 가고, 장후(張候) 또한 사묘와 모부인을 모셔 기주로 가니라.
 
167
 
168
차설 정후(鄭侯) 청주에 도임(到任)하여 두루 살펴본 후, 수성장(守城將) 불러 이르기를,
 
169
“내 이제 북적을 파(破)하였으나, 북적은 본대 강한지라. 반드시 기병하여 중원(中原)을 범할 것이니, 제읍(諸邑)에 병마(兵馬)를 각별 연습하여 불의지변(不意之變)을 방비하라.”
 
170
하고 표(表)를 올려 아뢰기를,
 
171
“신(臣)이 청주를 살펴본즉, 영웅(英雄)이 용무(用武)할 곳이오니, 마땅히 지용(智勇)있는 장수를 얻어 북방 오랑캐로 하여금 기운을 최찬(璀璨)케 하오리니, 양주자사 진시회와 강서도독 한복과 호위장군 용봉과 한가지로 도적 막기를 원하나이다.”
 
172
하니, 상이 표를 보시고 대희하사, 삼인을 명하여 청주로 보내시니라.
 
173
 
174
차설 이때는 대업(大業) 십구년 초춘(初春)이라. 천자가 자주 제후와 문무백관에 조회를 받으실새, 제신(諸臣)을 돌아보고 이르기를,
 
175
“청주 후(候) 정수정과 장연으로 더불어 부마(駙馬)를 삼고저 하나니, 경등의 뜻이 어떠하뇨?”
 
176
제신이 일시에 성교(聖敎) 마땅함을 주하거늘, 상이 청주 후를 인견하여 이르기를,
 
177
“짐에게 한 공주(公主)가 있으니 경으로 부마를 삼노라.
 
178
정수정이 들으매 혼비백산(魂飛魄散)하여 복지하여 주하기를,
 
179
“신이 미천한 몸으로 어찌 금지옥엽(金枝玉葉)과 짝 하리잇고. 만만(萬萬) 불가하오니, 성상(聖上)은 하교를 거두사 신의 마음을 편케 하소서.”
 
180
상이 웃으며 이르기를,
 
181
“고사(固辭)함은 짐의 후은(厚恩)을 저버림이라. 다시 고집하지 말라.”
 
182
또 장연을 불러,
 
183
“짐에게 일매(一妹) 있어 방년(芳年) 십팔이니, 경이 비록 취처(娶妻)하였으나, 벼슬이 족히 양처(兩妻)를 둘지니 사양치 말라.”
 
184
하신대 장후가 황공사은(惶恐謝恩)하고 퇴(退)하더라.
 
185
 
186
인하여 천자 파조(罷朝)하시매 정후(鄭侯)가 장후(張侯)와 더불어 예부상서 맹동현의 집에 이르러 한담(閑談)하다가, 각각 부중(府中)으로 돌아오매 정후(鄭侯)가 부중에 이르니 유모 맞아 아뢰기를,
 
187
“군후(君侯) 무슨 불평(不平)한 일이 있나이까?”
 
188
정후 전후사연 이르고 옥루(玉淚)가 방방(滂滂)하더니, 문득 생각하되,
 
189
‘내 표(表)를 올려 본적(本跡)을 아뢰리라.’
 
190
하고 상표(上表)하여 이르되,
 
191
“이부상서 겸 병마총도독 정수정 돈수백배(敦壽百拜) 하옵고 상표하옵나니, 신의 나이 십일 세에 아비 절강 적소(謫所)에서 죽사오니, 혈혈(孑孑) 여자 의탁할 곳이 없어, 외람한 뜻을 내여 천지를 속이고, 음양변체(陰陽變體)하여 입신양명(立身揚名)하옴은, 원수(怨讐) 진량을 베여 아비 원혼(冤魂)을 위로할까 함이러니, 천만 이외에 초방지친(椒房之親)을 유의(有意)하시매, 감히 은익(隱匿)지 못하여 진정으로 아뢰나니, 신이 기군(欺君)한 죄를 밝히시고, 아비 생시에 장연과 정혼(定婚) 납빙(納聘)하였더니, 신의 본적을 감추었으매, 장연이 이미 원가(元家) 취처하였는지라. 신첩(臣妾)은 이제부터 공규(空閨)로 늙기를 원하옵나니, 복원(伏願) 성상은 살피소서.”
 
192
하였더라.
 
193
상이 남필(覽畢)에 대경하시고, 만조(滿朝)가 뉘 아니 놀란 이 없더라. 상이 장연을 명초(命招)하사, 정수정의 표를 뵈사 이르기를,
 
194
“경이 전일 정수정과 언약이 있었나뇨?”
 
195
답하기를,
 
196
“아비 생시에 정국공과 정혼(定婚) 납빙(納聘)하였삽더니, 정수정더러 묻자온즉, 제 누이 있다가 죽었다 하옵기로 신은 그리 아옵고, 수정이 음양변체(陰陽變體)함을 몰랐나이다.”
 
197
상이 서안(書案)을 치며 이르기를,
 
198
“진실로 이런 여자는 고금(古今)에 희한하도다.”
 
199
하시고 인하여 표에 비답(批答)하시기를,
 
200
“경에 표를 봄에 능히 비답할 말을 생각지 못하리로다. 규중(閨中) 약녀(弱女) 의사(意思)를 내어 원수를 갚고자 하여, 만리 전장에 대공을 세우고 돌아오니, 짐이 그 재주를 사랑하여 부마로 삼고자 하였더니, 오늘날 본적(本跡)이 탄로(綻露)함이 도리어 국가의 대불행(大不幸)이로다. 경등의 혼사는 내 주장(主掌)하고, 모든 직임(職任)은 환수(還收)하나, 청주 후는 식읍을 삼아두나니 지실(知悉)하라.”
 
201
하시니 정수정이 비답을 보고 또 방표(放表)하며 굳이 사양하되, 상이 종시 불윤하시니, 정후 마지못하여 입궐 사은하니라.
 
202
 
203
차설, 상이 예부(禮部)에 하교하사, 위의(威儀)를 준비하라 하시고, 또 장후더러 이르시되, 빨리 기주로 돌아가 혼례를 이루라 하시니, 장후 천은(天恩)을 감축(感祝)하고 기주로 가 태부인을 뵈옵고, 정후의 전후 사실과 천자의 연중설화(筵中說話)를 고하고 혼구(婚具)를 차리니라.
 
204
이때 상이 태감(太監)을 청주에 보내사, 매사를 관금(官禁)하라 하시다. 이러구러 길일(吉日)이 다다름에 정후가 남의(男衣)를 해탈(解脫)하고, 여복(女服)을 개착(改着)할새, 거울을 대하여 아미(蛾眉)를 다스림에, 전일 원융(元戎) 대장이 변하여 요조숙녀 되었더라.
 
205
이날 장후 또한 위의를 차려 청주에 나아가니, 그 위의 비할 데 없더라. 태감이 주장(主掌)하여 장후를 맞아 막차(幕次)에 이르니, 허다(許多)한 절차(節次) 전고(典故)에 희한한 바이라.
 
206
이윽고 태감이 조복(朝服)을 갖추고 장후를 인도하여 배석(拜席)에 나아가 옥상(玉觴)에 홍안(鴻鴈)을 전하고, 내아(內衙)로 들어가니 홍상(紅裳)한 시녀가 신부를 옹위(擁衛)하여 교배석(交拜席)에 이르매, 찬란한 복색(服色)과 단정한 용모(容貌)는 사람으로 하여금 현황(眩慌)하고, 양인이 교배를 마치고, 외당(外堂)에 나와 빈객(賓客)을 접대할새, 맹동현이 장후를 대하여 웃으며 이르기를,
 
207
“군후(君侯)가 전일 원각누에서 이세(理勢)되여 정후에게 보챔을 보았더니, 금일은 정후 깊이 드니 군후의 아내될 줄 알았으리오.”
 
208
하며 종일 즐기다가 파연곡(罷宴曲)을 부를새, 빈객이 다 헤어지고 장후 내당에 들어가, 석반(夕飯)을 파한 후, 시비 홍촉(紅燭)을 잡아 정후를 인도하여 들어오니, 장후가 바라본즉 신부의 화용옥태(花容玉態) 전일 남장(男裝)으로 보던 바와 판이(判異)하더라. 이에 촉(燭)을 물리고 옥수(玉手)를 이끌어 금침(衾枕)에 나아가니 그 무르녹은 정이 여산여해(如山如海) 하더라.
 
209
 
210
차설 장후가 정후를 권귀(捲歸)하여 기주로 돌아올새, 정후 수성장(守城將)으로 성대(城臺)를 수호하라 하고, 위의 갖추어 기주에 이르러 구고(舅姑)께 뵈는 예를 행하매, 태부인이 못내 칭찬 불이(不二)하더라.
 
211
이러구러 여러 날이 되어 장후 사명(使命)을 좇아 황성에 이르러 예궐(詣闕) 숙사(肅謝)하니, 상이 인견(引見)하시고 이르기를,
 
212
“경이 정수정을 제어(制御)하여 도리어 중군을 삼았는지라. 짐이 경등의 원을 이루어 주었으니, 경도 짐의 원(願)을 좇을지라. 수정은 여자라. 공주로 경의 배우(配偶)를 정함이 마땅하도다.”
 
213
하시고 즉일(卽日)에 흠천관(欽天官)으로 택일(擇日)하시니, 금월(今月)이 십삼 일이라. 상이 장후에게 칙지(勅旨)를 내리사, 길례(吉禮)를 하라 하시고, 예부상서 맹동현을 명초(命招)하사,
 
214
“경으로 이미 부마를 정하노라.”
 
215
하시니, 맹공이 황공하여 감히 사양치 못하고 사은이퇴(謝恩而退)하니라.
 
216
이때 길일이 다다름에 장후 길복(吉服)을 갖추어, 태감과 더불어 여러 날 만에 황성에 이르러, 입궐숙사(入闕肅謝)하고 공주와 행례(行禮)한 후, 천자께 사은하고 초방(初房)에 들어가니, 공주가 천염백태(千艶百態)하여 사람을 현혹(眩惑)케 하는지라. 장후 심중에 암희(暗喜)하며 삼일을 지난 후, 장후 공주를 거느려 기주로 내려올새, 홍상 시녀는 쌍쌍이 벌여 서고 어원(御員) 풍악은 융융(融融)하여 구소(舊巢)로 통하는지라.
 
217
 
218
기주에 이르러 공주 태부인께 납폐(納幣) 행례(行禮)하고, 장공 사묘에 배알한 후, 일모(日暮)함에 장후가 정후의 침실(寢室)에 나아가니, 정후 맞아 좌정하매 함소(含笑)하여 이르기를,
 
219
“군후 공주를 맞아 초방 부귀를 누리시니 재미 어떠하시나이까?”
 
220
서로 담소(談笑)한 즈음, 원부인(源婦人)이 공주와 더불어 이르거늘, 정후가 일어나 맞아 좌정(坐定)하며 정후가 웃으며 이르기를,
 
221
“공주 궁금(宮禁)에 존중(尊重)하심으로 누지(陋地)에 욕림(辱臨)하시니 자못 불안하도소이다.”
 
222
공주 웃으며 이르기를,
 
223
“첩은 졸(拙)한 사람이라. 황명으로 이에 이르렀으며 일신고락(一身苦樂)은 군자와 원비(元妃) 부인께 달렸으니, 어찌 편치 아니하리오. 첩이 궁중에 있을 때 정후의 재덕을 사모(思慕)하더니, 금일에 한가지로 군자를 섬길 줄 어찌 뜻하였으리오.”
 
224
정후 또한 손사(遜辭)하더라. 이렇듯 담화하다가 야심(夜深)후 삼부인(三婦人)이 각각 헤어지니라.
 
225
 
226
차설 이때는 삼춘가절(三春佳節)이라 정후 시비를 데리고 후원에 들어가 풍경(諷經)하더니 부용각에 이르니, 장후의 총희(寵姬) 영춘이 부용각 연못가에 걸터앉아 발을 못에 담그고 무릎 위에 단금(短芩)을 얹어, 곡조를 희롱(戱弄)하며 정후를 보고 요동(搖動)치 않는지라. 정후 대노하여 꾸짖기를,
 
227
“공후(公侯)장상(將相)이라도 나를 감히 만모(慢侮)치 못하거든, 너같은 천녀(賤女) 어찌 나를 보고 요동치 아니하는다.”
 
228
하고 즉시 돌아와 황관(黃冠)을 벗고 융복(戎服)을 갖춘 후에, 진시회를 불러 영춘을 잡아 오라 하여 대하(臺下)에 꿇리고 정후 꾸짖기를,
 
229
“네 군후에 총애(寵愛)을 믿고 방자(放恣) 무지(無知)하여 주모(主母)를 만모(慢侮)하니, 그 죄가 가히 머리를 베어 타인(他人)을 징계(懲戒)할 것이로되, 주군의 낯을 보아 약간 경책(警責)하노라.”
 
230
하고 결곤(決棍) 이십 도 하여 내치고 침실로 돌아오니, 이때 태부인이 정후의 거오(倨傲)함을 미안(未安)히 하던 차에, 이를 보고 대노하여 장후를 불러 이르기를,
 
231
“영춘이 비록 유죄(有罪)하나 내가 신임(信任)하는 비자(婢子)이거늘, 정후 내게 품(稟)하지 아니하고 임의(任意)로 치죄(治罪)하니, 어찌 제가 하는 법도(法道)라 하리오.”
 
232
장후 돈수(敦壽) 사죄하고 외당(外堂)에 나와 정후의 시비를 잡아다가 수죄(受罪)하여 정후의 죄로 맞아라 하고 결장(決杖)하여 내치니, 정후 가장 불쾌히 여기더라.
 
233
 
234
화설 맹동현이 어매(御妹) 공주와 성친(成親)하고, 장후의 부중에 이르더니 장후 맞아 반기며 주찬(酒饌)을 나와 대접하며 담화하더니, 야심후(夜深後)에 장후 내당(內堂)에 들어가니 삼부인이 정후 침소에 모여 바둑을 희롱하며 서로 술을 가져다가 권하며 담화하거늘, 장후 즉시 외당(外堂)에 나오니라.
 
235
이때 정후 대취(大醉)하매 공주와 원부인을 이끌어 양춘각에 이르러 술을 깨고자 하더니, 이때 영춘이 이미 누(樓)에 올라 삼부인이 올라감을 보고 안연(安然)히 난간에 의지하여 앉아 경치를 구경하며, 조금도 요동치 아니하거늘, 정후가 이를 보고 불승(不勝) 분노(憤怒)하여 돌아와 융복(戎服)을 갖춘 후, 외헌(外軒)에 나와 진시회에 명하여 영춘을 잡아오라 하니, 진시회 군사로 하여금 영춘을 잡아 꿇리는지라.
 
236
정후 대질(大叱)하기를,
 
237
“향자(向自)에 너를 죽일 것이로되, 내 십분 용서하였거늘 네 종시 조금도 기동이 없으니 어찌 통한치 아니리오. 이제 네 머리를 베여 간악(奸惡) 교완(嬌顔)한 비자(婢子) 등을 징계하리라.”
 
238
하고 무사를 호령하여 영춘을 베라 하니, 이윽고 영춘의 수급(首級)을 올리거늘, 정후 좌우로 하여금 궁중(宮中)에 순시(巡視)하니, 궁중 상하 크게 놀라 태부인께 고하니, 태부인이 대경하여 즉시 장후를 불러 대책(大責)하기를,
 
239
“네 벼슬이 공후(公侯)로 있어 한 여자를 제어치 못하고, 어찌 세상에 행신(行身)하리오. 자부(子婦)되어 나의 신임하는 시비(侍婢)를 결장(決杖)함도 가하지 않거든, 하물며 참수지경(斬首地境)에 이르니, 이는 불가사문어타인(不可使聞於他人)이라.”
 
240
하거늘, 장후 면관돈수(免冠頓首)하고 물러나와, 이에 정후의 신임(信任) 시비를 잡아내어, 무수 곤책(棍策)하고 죽이고자 하거늘, 공주와 원부인이 힘써 간하여 그치니라. 이후로부터 장후 정후를 미안히 여겨 외대(外待)함이 많은지라. 정후 조금도 가관(可觀)함이 없더라.
 
241
일일은 정후 진시회를 불러 분부하되,
 
242
“내 이제 청주로 가려하나니 군마를 대령하라.”
 
243
하고 내당에 들어가 태부인께 하직을 고하니 태부인 발연(勃然)하고 이르기를,
 
244
“어찌 예고없이 가려 하나뇨?”
 
245
정후 답하기를,
 
246
“봉읍(封邑)이 중대(重大)하옵고, 군마가 급하였기로 돌아가려 하나이다.”
 
247
하고 공주와 부인을 이별하고 외당(外堂)에 나와 위의를 재촉하여 청주에 돌아와 좌정하고 전령(傳令)하여 삼군(三軍)을 호상(犒賞)하여 무예를 수습하여 불의지변(不意之變)을 방비하더라.
 
248
 
249
차설 철통골이 겨우 명을 보전하여, 호왕을 보고 패한 연유를 말하니, 호왕이 대성통곡(大聲痛哭)하며 원수 갚기를 한하여, 문무를 모아 의논할새, 문득 한 장수 출반주(出班奏)하기를,
 
250
“마웅은 신의 형이라. 원컨대 당당히 형의 원수를 갚고 태종의 머리를 대왕 휘하(麾下)에 드리리다.”
 
251
하거늘 모두 보니 거기장군 마원이라. 지용이 겸전(兼全)하매, 호왕이 대희하여 마원으로 대원수를 삼고, 철통골로 선봉을 삼아 정병 오만을 조발하여 출사(出師)할새, 수삭지내(數朔之內)에 하북 삼십여 성을 항복받고, 양성에 다다랐는지라.
 
252
양성 태수 범수흥이 대경하여 상표(上表) 고변(告變)하니, 상이 대경하사 문무를 모으고 의논할 제, 제신이 주하기를,
 
253
“정수정 아니면 대적할 자 없나이다.”
 
254
상이 이르기를,
 
255
“전일에는 수정이 여화위남(女化爲男) 줄 모르고 전장에 보냈거니와, 이미 여자인줄 알진대, 어찌 전장에 보내리오.”
 
256
제신이 주하기를,
 
257
“차인(差人)은 각별히 하늘이 폐하를 위하여 내신 사람이오니, 폐하는 염려 마옵소서.”
 
258
상이 마지 못하사 사관(辭官)을 청주에 보내어, 정후를 명초하시며 이르기를,
 
259
“이제 국운이 불행하여 북적이 다시 일어나 여차여차 하였다 하니, 사세(事勢) 급한지라. 경은 도적을 파하여 짐의 근심을 덜라.”
 
260
하시고 즉시 정수정으로 정북대원수(征北大元帥)를 내리시고, 상방검(尙方劍)을 주사, 임의(任意)로 처치하라 하시며, 어주(御酒)를 사급(賜給)하시니, 원수 사은한 후, 청주로 돌아와 각도에 전령하여 군기와 군량을 하북으로 수운(輸運)하라 하고, 한복으로 그 선봉을 삼고, 진시회로 중군을 삼고, 용봉으로 좌익장 삼고, 관영으로 청주성을 지키게 하고, 본부병 이십 만과 철기 오만을 거느려 즉일 행군하여, 십여 일 만에 하북에 이르니, 양성태수 범수흥이 대병을 거느려 원수를 맞아 합병하고, 적세(敵勢)을 살피더니 수일이 못되어 제도(諸道)의 병마 모두 모이니 갑병(甲兵)이 육십 만이요, 정병이 삼십 만이라. 원수 적진에 격서(檄書)를 보내고 병막(兵幕)을 나와 대진(對陣)하니라.
 
261
 
262
차설 적장 마원 승승장구하여 경사로 향하더니, 문득 정원수(鄭元帥)의 대군을 만나 한번 바라보매 정신이 황홀하여, 제장과 의논하기를,
 
263
“정수정은 천하 영웅이라. 진세(陣勢)를 본즉 과연 경적(輕敵)치 못할지라. 가히 금야(今夜)에 자객(刺客) 엄백수를 보내어 수정의 머리를 베라.”
 
264
하고 엄백수를 불러 천금을 주며 이르기를,
 
265
“네 오늘 밤에 송진(宋陣)에 들어가 정수정의 머리를 베어오면, 너를 크게 쓸 것이니 부디 시행하라.”
 
266
엄백수 흔연(欣然)히 응낙하고, 차야(此夜)에 비수(匕首)를 끼고 몸을 흔들어 풍운을 타고 송진으로 가니라.
 
267
 
268
차시 원수 한 계교(計較)를 생각하고, 기주후 장연에게 전령하되,
 
269
“군무사(軍務司)에 긴급한 일이 있기로 전령하나니 수일 내로 대령하라. 만일 기한(期限)을 어기면 군법으로 시행(施行)하리라.”
 
270
하고 서안(書案)을 대하여 병서를 읽더니, 문득 일진광풍(一陣狂風)이 등촉(燈燭)을 끄는지라. 마음에 의심하여 소매 안에서 한 괘(卦)를 얻으매, 선흉후길(先凶後吉)하여 이로 인하여 성공하리라 하였거늘, 즉시 군중에 전령하여,
 
271
“금야(今夜) 장졸은 잠자지 말고, 도적을 방비하라.”
 
272
하고 홀로 서안에 의지하였더니, 이때 엄백수 칼을 끼고 송진 장대(將臺)에 이르니, 등촉이 휘황하고 인적이 고요하거늘, 장(帳) 틈을 열어본즉 정원수 갑주를 갖추고 단검을 쥐고 앉았으매, 위풍(威風)이 엄숙하여 영기(靈氣) 발월(發越)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에 현황(眩慌)한지라. 백수가 헤아리되,
 
273
‘차인(此人)은 천신(天神)이니, 만일 해하려다가는 큰 화를 당하리라.’
 
274
하고 스스로 장하에 내려와 칼을 던지고 땅에 엎드려 사죄하거늘, 원수 경문(警問)하기를,
 
275
“너는 어떤 사람이기에 이 심야에 진중에 들어와 무단(武斷)히 청죄(請罪)하느냐?”
 
276
백수 고두하여 아뢰기를,
 
277
“소인은 본대 북방 사람이더니, 적장 마원이 천금을 주고 노야(老爺)의 머리를 구하러 왔다가, 노야의 기상을 본즉, 백신(百神)이 호위하였으매, 감히 범접(犯接)지 못하고 죄를 청하나이다.”
 
278
원수 청파(聽罷)하고 이르기를,
 
279
“네 이미 중(重)한 값을 받고 위지(危地)에 들어왔다가, 그저 돌아가면 반드시 네 목숨이 위태할 것이매, 너는 내 머리를 베어가지고 돌아가 공을 세우라.”
 
280
백수 더욱 황공하여 사죄하며 아뢰기를,
 
281
“소인이 이미 본심이 발하였고, 노야께서 이같이 용서하시니 은덕이 백골난망(白骨難忘)이로소이다.”
 
282
원수 좌우에 명하여 주효를 가져다가 관대(寬待)하고 상자 안에 금을 내어주며 이르기를,
 
283
“이를 가지고 고향에 돌아가 생애를 위업(偉業)하고, 불의지사(不義之事)를 행치 말미 어떠하뇨.”
 
284
백수 불승감은(不勝感恩)하여 즉시 하직하고 돌아가니라.
 
285
 
286
차설 원수의 전령이 기주에 이르니, 장연이 남필(覽畢)에 통해(痛駭)하여 내당에 들어가, 이 사유를 고하니, 태부인이 또한 통해하더라. 장후 생각하되, 군령이라 마지못하니 태부인께 하직하고 하북으로 갈새, 군량관을 불러 분부하되,
 
287
“군량은 강하(江河)로 운전(運轉)하여 일한(日限)에 닿게 하라.”
 
288
배도(倍道)하여 나아가더라.
 
289
 
290
차시에 자객 엄백수 호진에 돌아가 마원더러 이르되,
 
291
“송진에 들어가 본즉 좌우에 범 같은 장수가 무수하옴에 감히 해치지 못하였노라.”
 
292
하니 마원이 이르기를,
 
293
“만일 그러할진대 명일 다시 성공하라.”
 
294
하거늘 백수 일계(一計)를 생각하고, 거짓 응낙한 후, 장(帳) 뒤에서 쉬더니, 이때 마원이 야심하매 홀로 장중에서 잠이 깊이 들거늘, 백수 가만히 들어가 마원의 머리를 베어가지고, 송진에 나아가 원수께 드리니 원수 놀라며 일변 기뻐하며 다시 천금을 주어 보내니라.
 
295
익일에 군사(君師) 보(報)하되,
 
296
“기주후 장연이 본부병을 거느려 성하에 결진하였으나 군량은 아직 미치지 못하였나이다.”
 
297
하거늘 원수 심중에 대희하나, 짐짓 속이고자 하여 군량이 미치지 못함을 책하여 아직 부과(附過)하라 하고, 마원의 수급(首級)을 기에 높이 달아 이르기를,
 
298
“우리 장졸이 하나도 나간 이 없이 적장의 머리가 내 손에 왔으매, 제 장졸(將卒)은 자세히 보라.”
 
299
하니 일진(一陣) 장졸이 대경실색(大驚失色)하여 아무 곡절을 몰라 의아하더라.
 
300
 
301
각설, 적장 철통골이 장중(帳中)에 이르니, 마원이 안연(晏然)히 누웠는데, 머리 간데없고, 유혈(流血)이 낭자하였는지라. 대경실색하여 급히 자객을 찾으니 이미 자취가 없으매, 일군(一軍)이 황황(遑遑) 망조(亡兆)거늘, 철통골이 칼을 들고 외치기를,
 
302
“만일 지레 요란하는 자 있으면 참하리라.”
 
303
하고 마원의 시신을 거두어 염빈(殮殯)하고 군마를 계대(係隊)에 나누어 진을 베풀고, 이 사연을 본국에 보(報)하여 구병(救兵)을 청하니라.
 
304
차시 정원수 각도 병마를 통합하여, 사대(四隊)에 분배하고 제장으로 더불어 의논하기를, 검칙
 
305
“이제 적진에 주장(主將)이 없으매 금야(今夜)에 가히 겁측 하리라.”
 
306
하고 차야(此夜)에 원수 한 번 북을 쳐, 적진을 파하고 철통골을 사로잡아 본진으로 돌아와, 원수 장대에 높이 앉아 철통골을 장하에 꿇리고 대질(大叱)하기를,
 
307
“여등(汝等)이 무단히 천조(天朝)를 범하고자 하니, 그 죄 만사유경(萬死猶輕)이라. 너희를 신속이 처(處)하여 후인(後人)을 징계(懲戒)하리라.”
 
308
하니 철통골 등이 머리를 두드려 항복하거늘, 원수 좌우로 맨 것을 끄르고 장대에 좌(座)를 주며, 주효(酒肴)를 성비(盛備)하여 관대(寬待)하니, 호장 등이 은덕을 못내 감사하더라. 원수 호장 등을 본토로 보내니라.
 
309
 
310
차설 원수 우양(牛羊)을 잡아 삼군을 호궤(犒饋)하고, 원수 또한 술을 연(連)하여 나와, 취흥이 도도(滔滔)하매, 좌우를 호령하여 장연을 나입(拿入)하라 하니, 무사가 쇠사슬로 장연에 목을 옭아 장하에 꿇리매, 장후 꿇지 않거늘, 원수 대노하여 이르기를,
 
311
“이제 도적이 침노하여 황상이 나에게 도적을 막으라 하시니, 내 황명을 받자와 주야(晝夜) 용려(用慮) 하거늘, 그대는 어찌하여 막중(幕中) 군량(軍糧)을 진시(盡時) 대령치 아니하였나뇨? 장령(將令)을 어기었으니 군법은 사사(私事)없느니, 그대는 나를 원(怨)치 말라.”
 
312
하고 무사를 명하여 내어 베라 하니, 장후 대노하여 대질(大叱)하기를,
 
313
“내 비록 용렬(庸劣)하나 그대의 가부(家夫)라. 소소(小小) 혐의(嫌疑)로써 군법을 빙자(憑藉)하고 가부를 곤욕(困辱)하니 어찌 여자의 도리리오.”
 
314
하거늘 원수 차언(此言)을 듣고 더욱 항복받고자 하여, 짐짓 꾸짖기를,
 
315
“그대 사체(事體)를 모르는 도다. 국가 중임을 맡으매 곤이외(坤以外)는 내 장중(掌中)에 있을뿐더러, 그대 이미 범법(犯法)하였으니, 어찌 부부지의(夫婦之義)를 생각하여 군법을 착란(錯亂)케 하리오. 그대 나를 초개(草芥)같이 여기나, 내 또한 그대 같은 장부는 원치 아니하노라.”
 
316
하고 무사를 재촉하는지라. 장후 이에 다다라서는 대답할 말이 없으매 다만 고개를 숙이고 이르기를,
 
317
“군량은 육로(陸路)로 수운(輸運)치 못하여 강하(江河)로 수운(輸運)함에 순풍(淳風)을 만나지 못하여 지완(遲緩)함이니 어찌 홀로 내 죄라 하리오.”
 
318
하니, 제장이 또한 사세(事勢) 그러한 줄로 굳이 간(諫)하거늘, 원수 양구(良久)에 이르기를,
 
319
“두루 낯을 보아 용서하나마, 그저 두지 못하리라.”
 
320
하고 무사를 명하여 결곤(決棍) 십여 장에 이르라 분부하여 출(出)한 후, 즉일 회군하여 황성으로 향발(向發)할새, 강서 지경에 이르러 한복에게 이르기를,
 
321
“진량의 적소(謫所) 얼마나 하뇨?
 
322
답하기를,
 
323
“수십 리는 되나이다.”
 
324
원수 분부하되 철기를 거느려 진량을 결박하여 오라 하니, 한복 등이 청령(聽令)하고 나는 듯이 진량 적소에 가 바로 깨쳐, 내실로 들어갈새, 진량이 대경하여 연고를 묻거늘, 한복이 칼을 들어 시노(侍奴)를 베고 군사를 호령하여 진량을 결박하여, 본진으로 돌아와 원수께 고하니, 원수 이에 진량을 잡아드려 장하에 꿇리고 노기(怒氣) 대발(大發)하여 부친 모해(謀害)하던 죄상을 문초하니, 진량이 다만 살려 달라 빌거늘, 원수 무사를 명하여 빨리 베라 하니, 이윽고 진량의 수급을 드리거늘, 원수 상탁(床卓)에 배설(排設)하고, 부군(父君)께 설제(設祭)한 후, 나라에 첩서(捷書)를 올리고 장연을 기주로 보내고, 대군을 회동하여 경사로 향하여 여러 날 만에 궐하에 이르니, 상이 백관을 거느려 원수를 맞아 못내 치사(致謝)하시고 원수를 좌각로 평북후를 봉하시니, 원수 사은하고 본부병을 거느리고 청주로 가니라.
 
325
 
326
차설 장연이 기주에 이르러 태부인께 뵈옵고, 전후 사연을 고하니, 태부인이 청파(聽罷)에 통분(痛憤)히 여기니 원부인과 공주 고하기를,
 
327
“정후 벼슬이 각로(閣老)에 이르렀으니 능히 제어치 못할 것이요, 제 또한 대의(大意)를 알아 삼가 화목할 것이니, 이제는 노(怒)치 마소서.”
 
328
태부인이 그렇게 여겨 사자(使者) 시녀를 정하여 서간을 주어 청주로 보내니라. 이 때 정후 전후사를 생각하고 심사 울민(鬱悶)하더니, 시비 문득 보(報)하되 기주 시녀 왔다 하거늘, 불러드려 서간을 본즉 태부인의 서찰(書札)이라.
 
329
심하에 기뻐 즉시 회답하여 보내고, 익일(翌日)에 행장 차려 갈새, 홍군(紅裙) 취삼(翠衫)으로 봉관(鳳管) 적의(赤衣)에 명월(明月) 패(佩) 차고 수십 시녀를 거느려 성 밖에 나오니, 한복이 정후의 거교(巨橋)를 호위하고 기주에 이르러 궁내에 들어가, 정후 태부인께 예(禮)하고 양부인과 더불러 예필(禮畢) 좌정(坐定)하매, 태부인이 전사(前事)를 조금도 혐의(嫌疑) 없으니, 정후 또한 태부인께 지성으로 섬기더라.
 
330
 
331
이후로 부귀영화를 누리며 슬하에 선선지락(善善之樂)이 가득하여, 정후는 이자일녀(二子一女) 두었으되, 장자로써 후사를 이으니 기주를 승습(承襲)하고, 차자(次子)로 정씨(鄭氏) 봉사(奉祠)를 받들어 청주를 진정케 하며, 원부인 사자일녀(四男一女)를 두고, 공주는 이자일녀(二子一女)를 두었으되, 다 부풍모습(父風母習)하여 비범(非凡)치 아니하더라.
 
332
왕태부인이 팔십칠 세에 기세(幾歲)하매 장후와 삼부인이 애통(哀痛) 과례(過禮)하여, 예로써 선산(先山)에 합장한 후, 삼상(三喪)을 지내고 더욱 슬픔을 마지아니하더니, 이때 태황제 또한 붕(崩)하시니, 공주와 정장(鄭張) 양인이 슬퍼함이 비할 때 없더라.
 
333
이후로 장후 부부 안과(安過) 태평하다가, 나이 칠십오 세에 이르러는, 양양 (漾漾) 물가에 풍경(風景)을 완성(玩賞)할새, 이때는 삼월 망간이라. 채선(彩船)을 타고 선유(船遊)하더니, 한 때 채운(彩雲)이 일어나며, 양인이 구름에 쌓여 백일승천(白日昇天)하니라. 원부인과 공주는 해를 연(連)하여 죽으니라. 자손이 창성(昌盛)하여 대대로 벼슬이 끊이지 아니하고, 충효열절(忠孝烈節)이 떠나지 아니하매 기특한 사적(事跡)을 기록하여 전하노라.
【원문】정수정전(鄭秀貞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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