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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문연가 (鴻門宴歌) ◈
《해설》   본문  

      해     설

이 <홍문연가(鴻門宴歌)>는 진(秦)나라 말년, 초나라와 한나라 초기에 있던 사적(史蹟)을 엮은 노래이다.
 
홍문(鴻門)은 홍구(鴻溝)를 말하는데, 섬서성(陝西省) 임동현(臨潼縣) 동쪽에 있는 지명이다. 홍구의 군문(軍門)에서 항우(項羽)와 패공(覇公)이 연회(宴會)를 베푼 곳이다.
 
그 당시 중국에서는 진나라의 혹독한 정치에 시달리어 백성이 도탄(塗炭)에 빠져 허덕일 때 강동(江東)에서 항우가 일어나고 패택(覇澤)에서 유방(劉邦)이 일어났다. 두 사람은 결의 형제를 하고 진나라를 쳐들어갈 때 관중(關中)에 먼저 들어가는 사람이 왕이 되기로 굳게 약속을 하고 길을 떠났다. 항우는 제 힘만 믿고 자기가 먼저 갈 줄 알았으나 유방이 먼저 들어 왔다. 항우는 분이 치밀어 어쩔 줄 몰랐다. 그래서 당시 세력을 믿고 스스로 서초(西楚) 패왕(覇王)이 되어 논공행상(論功行賞)을 할 때 패공은 한왕(漢王)을 봉하여 한중(漢中)으로 쫓아 버리기로 했다. 그런데 범증이 패공(沛公)을 살려 두는 것은 후환을 기르는 것이라 하여, 아주 없애 버리려고 홍문에다 잔치를 열고 검무(劍舞)을 잘 추는 항장(項莊)으로 하여금 패공의 목을 베게 하였다. 그러나 이것을 미리 안 장자방(張字房)이 항우의 삼촌 항백(項伯)에게 은밀히 부탁하여 겨우 위기를 모면하였다.
 
이 <홍문연가>는 잔치에 모인 사람들의 몸차림을 낱낱이 엮었는데, 잔치에 오는 사람들이 모두 든든한 무장을 해서 그야말로 살벌하기 그지없다.
 
그런데 이 잔치의 주빈인 패공의 몸차림이 나타나 있지 않은 것이 자못 아쉽다. 패공은 항백에 의하여 항장의 칼날은 피했으나 사실상 번쾌(樊쾌)의 공이 더 크다. 번쾌는 패공의 아장(牙將)으로, 패공과는 동서지간(同서之間)이다. 홍문연 잔치에 수행했는데, 분위기가 살벌한 것을 보고 마음 속으로 은근히 걱정하다가 협기를 일으켜 좌중(座中)으로 쑥 들어갔다.
 
번쾌의 행동은 극도로 긴장된 분위기를 더 한층 놀라게 했다. 번쾌의 형상을 보면 머리털이 다 위로 솟고 눈매가 찢어진 것이 그야말로 무섭기 이를 데 없었다.
 
그는 술을 청해서 잔을 주니까 뿌리치고는 술 항아리째 그대로 입에 대고 순식간에 들이켜 버렸다. 안주(按酒)를 주니까, 역시 뿌리치고 돼지 앞다리를 통째로 들고 뜯었다. 이것을 치주체견(치酒체肩)이라고 한다. 이것을 본 초패왕은 그만 위압(威壓)이 되고 말았다. 그는 옛일이 생각났다. 항우가 아직 힘이 덜 났을 무렵인 진시황 때에 만리장성 축성(築城) 공사에 나갔다. 항우도 본래 장사라 남보다 몇 곱절씩 돌을 지고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한 곳에 이르러 보니 어떤 사람이 돌을 짊어 놓았는데, 자기 것보다도 배나 되는 돌을 짊어 놓지 않았는가. 항우는 크게 놀라 곁사람에게 몰래 그를 물어 보았더니 그가 바로 번쾌였던 것이다. 항우는 그만 옛날이 생각나서 패공을 번쾌에게 빼앗겨 놓치고 말았다. <홍문연가>는 이 대문을 엮지 않고 단순히 항장무(項莊舞)에 대한 것만 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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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3년 07월 2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