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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楓岳行 (풍악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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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4년
이이(李珥)
조선 중기에 이이(李珥)가 지은 금강산 기행시. 그가 19살때인 1554년에 금강산을 유람한 후 기행시형식으로 쓴 탐승기이다.
(이 글은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나온 '율곡전서'를 인용하였습니다.)
목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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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풍악행(楓岳行)
 
 

1. 1

3
[余之遊楓嶽也. 懶不作詩. 登覽旣畢. 乃摭所聞所見. 成三千言. 非敢爲詩. 只錄所經歷者耳. 言或俚野. 韻或再押. 觀者勿嗤.]
4
내가 풍악산(楓岳山)1)을 유람하면서도 게을러 시(詩)를 짓지 않았다가, 유람을 마치고 나서, 이제야 들은 것 또는 본 것들을 주워 모아 3천 마디의 말을 구성하였다. 감히 시(詩)라 할 것은 못되고, 다만 경력(經歷)한 바를 기록했을 뿐이므로, 말이 더러 속되고 운(韻)도 더러 중복되었으니, 보는 이들은 비웃지 말기를 바라는 바이다.
 
5
混沌未判時,     혼돈 상태2)로 아직 갈라지기 전에는,
6
不得分兩儀。     하늘과 땅 구별할 수 없었다네.
7
陰陽互動靜,     음·양이 서로 움직이고 고요함이여 !
8
孰能執其機。     누가 그 기틀을 잡고 있는가.
9
化物不見迹,     만물의 변화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10
玅理奇乎奇。     미묘한 이치는 기이하고도 기이해라.
11
乾坤旣開闢,     하늘과 땅이 개벽되고 나서야,
12
上下分於斯。     위 아래가 여기서 나눠졌네.
13
中間萬物形,     그 중간에 만물의 형태가 있지만,
14
一切難可名。     일체 다 이름 붙이기 어렵도다.
15
水爲天地血,     물은 하늘과 땅의 피가 되고,
16
土成天地肉。     흙은 하늘과 땅의 살이 되었건만,
17
白骨所積處,     흰 뼈가 쌓이고 쌓인 그 곳이,
18
自成山崒嵂。     저절로 드높은 산을 이룩했으리 !
19
特鍾淸淑氣,     특히 맑은 기운이 모인 산을,
20
名之以皆骨。     이름 붙여 개골(皆骨)3)이라 하였다네.
 
21
1) 가을의 금강산을 가리킨다.
22
2) 하늘과 땅이 나뉘기 이전의 원기(元氣) 미분(未分) 상태를 말한다.
23
3) 겨울의 금강산을 가리켜 하는 말이다.
 

 
 

2. 2

25
佳名播四海,     아름다운 명칭이 사해에 떨쳤기에,
26
咸願生吾國。     모두가 우리나라에 태어나길 원했다오.
27
[諺傳中華人有言曰. 願生高麗國. 親見金剛山云云]
28
세속 말에 의하면, 중국 사람들이 이르기를 "원컨대 고려국에 태어나서 친히 금강산을 보았으면〔願生高麗國 親見金剛山〕운운 하였다." 한다.
 
29
崆峒與不周,     공동산(山)4)과 부주산(不周山)5) 따위는,
30
比此皆奴僕。     여기에 비하면 다 보잘 것 없네.
31
吾聞於志怪,     내가 「지괴(志怪)」6)에서 들으니,
32
天形皆是石。     하늘의 형상도 다 이 돌이라더라.
33
所以女媧氏,     그러므로 옛날 여와씨(女氏)7)가,
34
鍊石補其缺。     돌을 다듬어 그 이지러진 곳을 때웠다네.8)
35
玆山墜於天,     이 산이야말로 하늘에서 떨어졌지,
36
不是下界物。     속세에서 생긴 물체가 아니리 !
37
就之如踏雪,     나아가면 눈을 밟는 듯하고,
38
望之如森玉。     바라보면 늘어선 구슬 같아라.
39
方知造物手,     이제야 알겠노라. 조물주의 솜씨가,
40
向此盡其力。     여기에9) 와서 그 힘을 다한 줄을.
41
聞名尙有慕,     이름만 들어도 사모하게 되거늘,
42
況在不遠域。     하물며 멀지 않은 지역에 있음에랴.
 
43
4) 중국 전설상에 전해 오는 산 이름이다. 《讀史方輿紀要》
44
5) 중국의 곤륜산(崑崙山) 서북쪽에 있다는 산 이름이다. 《山海經 大荒西經》
45
6) 괴이한 것을 기록한 책. 「장자(莊子)」소요유(逍遙遊)편에, "제해(齊諧)는 괴이한 것을 기록한 것이다. 〔齊諧者 志怪者也〕" 하였다.
46
7) 상고 때의 제명(帝名)이다.
47
8) 상고 때 여와씨(女氏)가 5색의 돌을 다루어 하늘을 보수했다는 고사가 있다. 《史記 三皇傳》
48
9) 금강산을 가리키는 말이다.
 

 
 

3. 3

50
余生愛山水,     나는 평생에 산수를 좋아하기에,
51
不曾閒我足。     일찍이 발걸음을 한가로이 하지 않았네.
52
夙昔夢見之,     지난번 꿈에 보았을 적에도,
53
天涯移枕席。     그 먼 곳이 잠자리로 옮겨왔었지.
54
今朝浩然來,     오늘 아침에 호연(浩然)10)히 당도하니,
55
千里同咫尺。     천릿길이 곧 지척이로다.
 
56
10) 「맹자」공손추(公孫丑) 상의, "나는 잘도 나의 호연의 기운을 기른다. 〔吾善養吾浩然之氣〕" 란 데서 온 말인데, 여기에서는 즐거운 마음으로 온 것을 형용한다.
 

 
 

4. 4

58
初從行脚僧,     처음이라 어떤 떠돌이 스님을 따라,
59
過盡千山禿。     그 우뚝한 뭇 산을 다 거쳐.
60
漸漸入佳境,     점차 아름다운 경계에 들어가니,
61
渾忘行逕永。     걷는 오솔길에 지루함도 잊었었네.
62
欲見眞面目,     참 모습을 보기 위해,
63
須登斷髮嶺。     곧장 단발령을 오르고 보니.
64
[未至山三十里有嶺. 名曰斷髮. 登眺則望月山之全體. 突兀撑天. 森然可敬也]
65
산에까지 30리를 못 가서 재가 있으니 그 이름이 바로 단발령이다. 올라가 바라본즉, 망월산(望月山)의 전체가 우뚝 솟아 마치 하늘을 버티고 있는 듯, 삼연히 공경할 만하였다.
 
66
一萬二千峯,     1만 2천의 봉우리가,
67
極目皆淸淨。     눈길 닿는 데마다 모두 맑기만 하여라.
68
浮嵐散長風,     떠 있는 안개 긴 바람에 흩어지고,
69
突兀撑靑空。     우뚝한 형세는 푸른 허공 버티었네.
70
遠望已可喜,     바라만 보아도 이미 기쁜데,
71
何況遊山中。     하물며 산 속에서 유람함이랴.
72
欣然曳靑藜,     흔연히 지팡이를 잡았으나,
73
山路更無窮。     산길은 다시 끝이 없어라.
74
溪分兩派流,     시냇물은 두 갈래로 흘러가는데,
75
出谷何悠悠。     골짜기는 어이 그리도 길디긴고.
76
[洞口二溪. 分流. 一則毗盧峯. 水爲別派. 一則萬二千峯水合流而去也]
77
동구(洞口)에 두 시냇물이 흘러 하나는 비로봉(毗盧峯) 물의 딴 갈래이고, 하나는 1만 2천봉 물인데, 두 갈래 물이 합류하여 흘러간다.
 
78
危橋幾酸股,     위태로운 다리에 그 몇 번 정강이 시큰거렸나,
79
苔石頻就休。     이끼 핀 바위에 자주 멈춰 쉬었네.
 

 
 

5. 5

81
崔初入長安,     맨 처음 장안사(長安寺)를 들어서자,
82
洞口雲乍收。     동구에 구름이 잠깐 걷히었다.
83
琳宮値火後,     잘 집은 화재를 당한 뒤라,
84
新起梵鐘樓。     새로 범종루를 세우는데.
85
[山之洞門寺曰長安. 數年前失火. 有僧重創. 起鐘樓]
86
산 동구에 있는 장안사(長安寺)가 몇 해 전에 화재를 당하였으므로, 그 절 스님들이 범종루를 중창(重創)하는 중이었다.
 
87
居僧散樵徑,     그 절 스님들이 산길에 흩어져,
88
伐木山更幽。     나무 베는 소리에 산은 더욱 그윽하네.
89
天王立門側,     문 곁에 서 있는 사천왕(四天王)은,
90
怒眼令人愕。     성낸 눈사람을 놀라게 하고,
91
[長安與楡岵. 皆有天王像]
92
장안사(長安寺)와 유점사(楡岾寺)에 다 천왕상(天王像)이 있다.
 
93
庭前何所有,     뜰 앞엔 무엇이 있는가 하면,
94
數叢紅芍藥。     두어 포기 붉은 작약 꽃이 피었구려.
95
禪牀展兩足,     참선(參禪)하는 평상에 두 발을 뻗고,
96
困疲留一宿。     하룻밤 묵으면서 피로 풀었네.
97
明朝向何許,     내일 아침엔 어디로 가야 하나,
98
路轉千萬曲。     구불구불 천만 굽이의 길이구려.
 

 
 

6. 6

100
金藏與銀藏,     금장암(金藏菴)과 은장암(銀藏菴)은,
101
高占蒼厓旁。     푸르른 절벽 곁을 높이 차지하였네.
102
[金藏銀藏二菴. 在長安寺東]
103
금장(金藏), 은장(銀藏) 두 암자는 장안사(長安寺) 동편에 있다.
 
104
所見漸奇秀,     보이는 곳이 점차 뛰어나게 기이하여,
105
出入行澗岡。     냇물이고 산등성이고 마구 오가며 걸었네.
106
高峯立我前,     높은 봉우리가 내 앞에 우뚝 서니,
107
七寶爲其糚。     칠보로 단장 한 듯하고.
108
[有一峯. 在二菴之東. 奇巖怪石. 如瓔珞之垂. 山僧稱七寶莊嚴]
109
한 봉우리가 두 암자 동편에 있어, 그 기암괴석(奇巖#怪石)이 마치 영락(瓔珞) 구슬이 드리워진 것 같으므로, 산승(山僧)이 칠보장엄(七寶莊嚴)이라 일컫는다.
 
110
忽近楡岾寺,     갑자기 유점사 근처에 다다르니,
111
松檜鬱成行。     소나무 회나무가 줄지어 울창해라.
112
飛樓跨澗水,     날을 듯한 누각이 냇물에 걸쳐 있어,
113
映奪靑山光。     물에 비친 그림자가 푸른 산 빛을 가리고.
114
[有樓當門跨澗. 名曰山映]
115
절문 앞의 누각이 냇물에 걸쳐 있으므로, 이름을 산영루(山暎樓)라 하였다.
 
116
門前平地闊,     절의 문 앞 넓은 평지에는,
117
沙草逢春綠。     모래 풀이 봄 맞아 푸르르네.
118
入門駭汗出,     문에 들어서자 놀래어 땀이 솟아나고,
119
神將相對立。     양편에 신장(神將)이 마주섰네
120
靑獅與白象,     푸른 사자와 흔 코끼리 형상으로
121
呀口瞋雙目。     입을 벌리고 두 눈을 부릅떴네
122
[門中立神像與獅像. 面目皆獰惡. 可咳]
123
문에 서있는 신장이 사자와 코끼리 상이었고, 그 얼굴이나 눈이 다 영악(獰惡)하여 놀랄 만하였다.
 
124
撞鐘千指迎,     종소리 따라 천 손가락이 합장(合掌)하는데,
125
繞袖香煙輕。     소매를 둘러싼 향 연기가 가볍게 피어오르고,
126
庭中聳高塔,     뜰 복판엔 높은 탑이 우뚝 솟아,
127
風鐸聲琮琤。     풍경 소리가 땡그랑땡그랑하네.
128
翬飛三昧宮,     날을 듯한 삼매궁(三昧宮)은,
129
結構何其雄。     규모 어이 그리도 웅장한고.
130
堂中古佛像,     마루 가운데 오래된 불상은,
131
塵埃暗金容。     먼지에 흐릿한 금빛 얼굴이네.
132
遠自天竺來,     멀리 천축(天竺)으로부터 올 때,
133
駕海隨黃龍。     바다를 타고 황룡에 업히어.
134
尼巖與憩房,     이암(尼巖)과 계방(憩房)에,
135
一一留其蹤。     낱낱이 그 발자취를 남겼다나.
136
眞贋不可辨,     참인지 거짓인지 가릴 수는 없지만,
137
事與齊諧同。     그 일이야말로 「제해(齊諧)」11)와 같도다.
138
[寺之記事. 載天竺人鑄佛像五十三軀. 泛之于海. 有黃龍負之. 到于此山. 高城人聞而尋之. 見路旁有小人迹. 乃入山中. 有尼踞石. 指其像處. 乃構楡岾寺以安焉. 後人以尼所踞石爲尼巖. 以見迹處爲憩房云]
139
절 기사(記事)에 실려 있기를, "전축 사람이 불상 53구(軀)를 만들어 바다에 띄웠더니, 황룡(黃龍)이 이 불상을 업고서 이 산에 도착하였다. 고성(高城) 사람이 이 소문을 듣고 불상을 찾다가, 길가에 작은 사람 발자취가 있는 것을 보고 곧 산중으로 들어가니, 석가모니가 돌에 걸터앉아 그 불상이 있는 곳을 가리키므로, 거기에 유점사(楡岾寺)를 지어 안치하였는데, 후인들이 석가모니가 걸터앉은 돌이라 하여 이를 이암(尼巖)이라 하고, 그 발자취 본 곳을 이름하여 계방(#憩房)이라 하였다…"하였다.
 
140
11) 전주(前註) 6) 참조.
 

 
 

7. 7

142
明寂[菴]在其西,  명적암(明寂菴)은 그 서편에 있고,
143
興聖[菴]在其東。  흥성암(興聖菴)은 그 동편에 있어.
144
尋幽不暫閒,     그윽한 곳을 찾느라 잠시도 쉬고 않고,
145
興入煙霞濃。     짙은 연하 속으로 흥겨웁게 들어갔네.
146
寂寥斗雲菴,     고요한 두운암(斗雲菴)에는,
147
雲碓水自舂。     구름 속에 물방아가 저절로 방아 찧고.
148
[斗雲菴在楡岾之北]
149
두운암은 유점사의 북쪽에 있다.
 
150
臨溪渡石矼,     냇물에 다다라 돌다리를 건너니,
151
活水聲淙淙。     활기찬 물소리 끝이 없구나.
152
成佛倚高峯,     성불암(成佛菴)은 높은 봉우리에 기대 섰고,
153
滄溟在東窓。     큰 바다가 그 동편에 있네.
154
[成佛菴. 在斗雲菴之東北. 與佛頂臺相連. 俯見東海]
155
성불암이 두운암의 동북편에 있어 불정대(不頂臺)와 서로 연이었는데, 동해(東海)가 내려다보인다.
 

 
 

8. 8

157
嵯峩佛頂臺,     우뚝하여라 불정대(佛頂臺),
158
孤絶更無雙。     그 절경은 다시 둘도 없구려.
159
我來看朝曦,     내가 와서 아침 해돋이를 바라보니,
160
滿目紅雲披。     눈부시게 붉은 구름을 헤치고 나오네.
161
水天兩無際,     물과 하늘은 둘 다 끝이 없고,
162
火氣驚馮夷。     불기운은 풍이(馮夷)12)를 놀라게 하네.
163
擧頭白巓面,     백전면(白面)으로 머리를 들어 바라보니,
164
十二天紳垂。     열 두 폭포 하늘에서 큰 떠 드리운 듯.
165
[白巓面有十二瀑布. 在佛頂臺可望見]
166
백전면(白面)으로 열두 폭포가 있는데, 불정대(佛頂臺)에서 바라볼 수 있다.
 
167
12) 물 귀신을 가리킨 말이며, 또는 양후(陽候)라고도 한다. 《故事成語考 地輿》
 

 
 

9. 9

169
回尋舊時路,     다시 옛적 길을 찾아드니,
170
到處皆可怡。     가는 데마다 모두가 기쁘기만.
171
上下二見性,     위 아래의 두 견성암(見性菴)은,
172
臨路危甍飛。     길가에 우뚝 날으는 듯하고,
173
[自佛頂臺還. 西行則上見性. 下見性. 二菴. 皆在斗雲菴之北]
174
불정대(佛頂臺)에서 서편으로 가면 상견성(上見性) 하견성(下見性) 두 암자가 다 두운암(斗雲菴)의 북쪽에 있다.
 
175
石窟名竺修,     축수(竺修)라 부르는 석굴은,
176
瀟灑澗之湄。     냇물 가에 자리잡아 깨끗하기도 하며,
177
[在下見性之西. 臨水背巖. 淸致可愛]
178
하견성암(下見性菴) 서편에 있는데, 앞에는 물이고 뒤에는 바위로, 그 맑은 경치가 사랑스럽다.
 
179
靈臺[菴]與靈隱,  영대암(靈臺菴)과 영은암(靈隱菴)에는,
180
雲霧生階墀。     구름과 안개가 뜰에 피어오르기도.
181
[二菴在竺修窟之西南]
182
두 암자는 축수굴(竺修窟) 서남쪽에 있다.
 
183
崎嶇勞涉險,     험악한 길이라 오르내리기 힘겨워,
184
兩脚難自持。     두 다리를 스스로 가누기 어려웠네.
185
橋摧臥古槎,     다리가 부서진 데서는 뗏목으로 건너고,
186
路斷攀樹枝。     길이 끊긴 데서는 나무 가지를 더위잡았다.
187
流湍亂我耳,     흐르는 여울은 귀를 따갑게 하고,
188
濺沫灑人衣。     뿌리는 물방울은 옷자락을 씻어 주기도.
189
幽深九淵洞,     깊고 그윽한 구연동(九淵洞)에는,
190
草合人迹微。     풀만 우거져 사람 자취 드물구나.
191
[九淵洞在靈隱菴之西. 幽深淸絶]
192
구연동은 영은암(靈隱菴) 서편에 있는데, 그윽하고 깊으며 맑기 그지없다.
 
193
徘徊普賢菴,     보현암(普賢菴)을 배회하다가,
194
仰見峯巒危。     쳐다보니 봉우리 아스라하다.
195
寄傲眞見性[菴],  진견성(眞見性 : 암자이름)에 흥미를 붙여,
196
欲去仍留遲。     떠나려다 그대로 머뭇거렸네.
197
[二菴皆在洞中]
198
두 암자는 다 구연동(九淵洞) 안에 있다.
 
199
冒雨入香鑪,     비를 무릅쓰고 향로암(香爐菴) 찾아드니,
200
人靜關柴扉。     인기척 없는 사립문도 닫혔는데.
201
[香鑪菴在九淵洞之南]
202
향로암은 구연동 남쪽에 있다.
 
203
天陰與夜氣,     하늘은 컴컴하고 밤 기운이 감돌아,
204
滿山同霏霏。     온 산에 가득히 부슬비만 내리었네.
205
內院半日留,     내원암(內院菴)에서 반나절 머무는 동안,
206
禪榻學忘機。     선탑(禪榻)에 기대어 속세를 잊었네.
207
[內院在香鑪之西北. 漸入深境]
208
내원암은 향로암 서북쪽에 있는데, 여기서부터 점차 깊은 경내로 들어간다.
 
209
更尋彌勒峯,     다시 미륵봉(彌勒峯)을 찾아드니,
210
愛山如渴飢。     산을 즐기기 굶주림과 목마름 같아라.
211
峯頭石如佛,     봉우리머리 돌이 부처님과 같아서,
212
得名良在玆。     이 때문에 미륵봉이라 이름 붙였다네.
213
[彌勒峯在內院之西. 峯上有石. 形如彌勒焉]
214
미륵봉은 내원암(內院)의 서편에 있는데, 봉우리 위의 돌 모양이 미륵불과 같다.
 

 
 

10. 10

216
蕭條南草菴,     쓸쓸한 남초암(南草菴)이지만,
217
居僧有仙姿。     스님은 신선 자태 있어라.
218
[菴在峯之南. 最爲深邃]
219
암자가 미륵봉 남쪽에 있는데 가장 깊은 곳이다.
 
220
見我薦山羞,     나를 보자 산중의 반찬 차려 주어,
221
香蔬療我饑。     향기로운 나물로 허기를 면하기도.
222
[洞中極多山菜]
223
이 산골에 산나물이 매우 많다.
 
224
此洞深幾許,     이 산골 깊이가 얼마인지를,
225
山僧亦不知。     산에 사는 스님도 모른다나.
226
是非聲不至,     세속의 시비 들리지 않는데,
227
何須勞洗耳。     뭐 수고롭게 귀를 씻으랴.13)
228
暮共白猿吟,     저녁이면 흰 원숭이와 함께 읊고,
229
朝隨蒼鶴起。     아침에는 푸른 학을 따라 일어나도다.
230
還登萬景臺,     발길을 돌려 만경대(萬景臺)에 오르니,
231
四方皆洞視。     사방이 활짝 눈앞에 보이네.
232
[還向洞口. 乃登此臺. 在南菴之東北. 靈隱之西北]
233
도로 동구(洞口)를 향해 이 만경대에 올랐다. 만경대는 남초암(南草菴)의 동북편에, 영은암(靈隱菴)의 서북편에 위치하고 있다.
 
234
13) 상고 때 요(堯)가 천자의 자리를 허유(許由) 에게 물려 주려고 하자, 허유는 은자(隱者)인 자신이 본분에 맞지 않다고 거절한 후, 더러운 말을 들었다고 귀를 씻었다는 고사가 있다. 《高士傳》
 

 
 

11. 11

236
有窟名養眞,     양진(養眞)이란 동굴이 있는데,
237
過淸難久止。     너무 맑아서 오래 머물기 어려웠고.
238
[在萬景臺西北]
239
만경암의 서북편에 있다.
 
240
人寰隔霄壤,     속세와 격리된 딴 천지라,
241
宜居避世士。     세상 피하는 선비가 살 만한 곳이었네.
242
他時期再來,     뒷날 다시 오기로 기약하고,
243
出洞頭屢回。     산골을 나오면서 자주 머리를 돌리었네.
244
僧言內山好,     스님은 말하기를, 안 산이 좋지,
245
[此洞巖石. 白於他處]
 
246
外山同輿儓。     바깥 산은 마치 천한 하인 같다하네.
247
外山已如此,     바깥 산이 이미 이렇게 수려할진대,
248
況彼內山哉。     하물며 저 안 산이랴.
249
急須入仙境,     재빨리 선경에 들어가서,
250
以滌塵中病。     먼지 속에 찌든 병을 씻어야겠네.
251
[以山之東南爲外山. 西北爲內山. 內山尤爲奇秀. 巖石益白]
252
산의 동남쪽을 바깥 산이라 하고, 서북쪽을 안산이라 하는데, 안산이 더욱 기묘하게 뛰어났고 암석도 보다 희기 때문이다.
 

 
 

12. 12

254
行行樹陰中,     나무 그늘 속을 계속 걷노라니,
255
晚風吹不定。     저녁 바람은 끝없이 불어오네.
256
[自靈隱菴北行. 可達內山]
257
영은암(靈隱菴)에서 북쪽으로 걸어가면 안산까지 당도할 수 있다.
 
258
山禽不知名,     이름을 알 수 없는 산새들이,
259
自呼三兩聲。     제 멋대로 두세 마디 우는구나.
260
小溪通略彴,     작은 냇물로 통하는 외나무다리가,
261
攲側不可行。     기울어져 건너갈 수 없어라.
262
解衣弄淸泚,     옷 벗고 맑은 물결 희롱하니,
263
形影聊相戲。     형체와 그림자 서로 어울려.
264
一身在巖上,     한 몸은 바위 위에 있고,
265
一身在水裏。     한 몸은 물 속에 있네.
266
爾今不是我,     너는 지금 내가 아니고,
267
我今還是爾。     내가 지금 도리어 너이로세.
268
散爲百東坡,     흩어지면 수많은 동파(東坡)14)가 되었다가,
269
頃刻復在此。     잠깐 새에 다시 여기에 있구려.
270
好在水中人,     물 속에 있는 사람아,
271
到處無緇磷。     가는 데마다 물들거나 닳아짐15) 없게 하라.
 
272
14) 물에 비친 사람의 그림자가 여럿으로 나누어진 것을 말한다. 「동파집(東坡集)」범영시(泛潁詩)에, "채색배에서 거울 같은 물을 굽어보며, 물속의 그림자에게 네가 누구냐고 물어본다. 갑자기 출렁출렁 물결이 일더니, 내 수염과 눈썹을 흩뜨리고, 여러 동파(東坡)로 분산시켰다가, 경각간에 다시 제자리에 있게 하누나. 〔般俯明鏡 笑問汝爲誰 忽然生麟甲 亂我鬚與眉 散爲百東坡 頃刻復在玆〕" 하였다.
273
15) 자세가 확고하여 제아무리 나쁜 것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뜻으로, 「논어(論語)」양화(陽貨) 편에, "단단하다고 말하지 않았느냐? 갈아도 엷어지지 않는다. 희다고 말하지 않았느냐? 검게 물들어도 검어지지 않는다. 〔不日堅乎 磨而不 不日白乎 涅而不緇〕"라고 하였다.
 

 
 

13. 13

275
禪菴妙吉祥,     선암(禪菴)인 묘길상(妙吉祥)16)은,
276
面戶淸無塵。     주변이 말끔하여 티끌 하나 없고.
277
[內山最初所見菴也]
278
내산(內山)에서 최초로 보는 암자이다.
 
279
其旁有文殊[菴],  그 곁에 있는 문수암(文殊菴)은,
280
地祕人難臻。     지세가 신비로워 찾아가기 어려웠다.
281
登登到佛地[菴],  오르고 또 올라 불지암(佛地菴)에 왔거니,
282
幾經山嶙峋。     험악한 산비탈을 몇 번이나 거쳤던고.
283
[在玅吉祥西]
284
묘길상(妙吉祥)의 서편에 있다.
 
285
小菴在巖下,     조그만 암자가 바위 밑에 있는데,
286
厥號爲罽賓。     그 이름이 계빈(賓)17)이었다.
287
[窟名在佛地菴西]
288
계빈은 굴(窟) 이름인데, 불지암 서편에 있다.
 
289
萬樹衛金殿,     나무들로 둘러싸인 금전(金殿)은,
290
名是摩訶衍。     그 이름이 마하연(摩訶衍)18)이다.
291
[在佛地西. 此菴據山正中. 其主峯乃毗盧峯]
292
불지암 서편에 있다. 이 암자가 산의 한 중앙에 위치하고 있는데, 그 주봉(主峯)이 바로 비로봉(毗盧峯)이다.
 
293
雄峯峙其後,     웅장한 봉우리가 그 뒤에 솟아 있고,
294
峻嶺當其面。     높은 재가 그 앞에 마주 보고 있다.
295
環回天所成,     서리고 두른 산세 천연으로 이뤄져,
296
絶勝前所見。     앞서 본 것보다 경치가 뛰어나라.
297
佳氣鬱葱葱,     여기저기 울창한 아름다운 기운에,
298
心驚顏爲變。     마음이 놀래어 얼굴빛이 변하였네.
299
[山勢環回. 有若天成]
300
사방으로 둘러싼 산세(山勢)가 천연으로 이뤄진 것 같다.
 
301
16) 문수사리보살(文殊師利普薩)의 역명(譯名)이다.
302
17) 서역(西域)의 나라 이름인데, 이것으로 암자의 이름을 삼은 것이다.
303
18) 대법승(大法乘)이란 뜻인데, 이것으로 전(殿)의 이름을 붙인 것이다.
 

 
 

14. 14

305
吁嗟最靈地,     아 ! 가장 신비스러운 이 땅이,
306
千載空虛棄。     천년 동안 헛되이 버려졌구려.
307
庸僧汚雲霞,     용렬한 중들이 운하(雲霞)를 더렵혔으니,
308
感歎知奈何。     이제 한탄한들 어찌할 수 있으리 !
309
山中所歷菴,     지나온 산중의 그 많은 암자,
310
多少難爲科。     이루 다 품평할 수 없고.
311
欲詳不可得,     자세히 적으려 하나 그럴 수도 없어,
312
我試言其略。     내 시험삼아 그 대략만 말하리 !
313
[山中諸菴. 多至百餘. 不可畢擧. 姑記大槪耳]
314
산중의 암자가 백이 넘을 정도로 많아, 다 들 수 없기에 우선 그 대개 만을 기재할 뿐이다.
 
315
玅峯與獅子,     묘봉암(妙峯菴)과 사자암(獅子菴)은,
316
近在摩訶側。     마하연(摩訶衍) 곁에 가까이 있고.
317
[二菴在摩訶衍之西]
318
두 암자는 마하연 서편에 있다.
 
319
萬回與白雲,     만회암(萬回菴)과 백운암(白雲菴),
320
船菴與迦葉。     선암(船菴)과 가섭암(伽葉菴).
321
玅德與能仁,     묘덕암(妙德菴)과 능인암(能仁菴),
322
圓通與眞佛。     원통암(圓通菴)과 진불암(眞佛菴).
323
修善與奇奇,     수선암(修善菴)과 기기암(奇奇菴),
324
開心與天德。     개심암(開心菴)과 천덕암(天德菴).
325
天津與安心,     천진암(天津菴)과 안심암(安心菴),
326
頓道與神林。     돈도암(頓道菴)과 신림암(神林菴).
327
利嚴與五賢,     이엄암(利嚴菴)과 오현암(五賢菴),
328
安養與靑蓮。     안양암(安養菴)과 청련암(靑蓮菴).
329
雲岾與松蘿,     운점암(雲岾菴)과 송라암(松蘿菴)이,
330
次第如星羅。     차례로 기라성처럼 나열해 있네.
331
[已上皆菴名. 萬回在摩訶衍北. 白雲在萬回北. 船菴在白雲西北. 玅德在能仁西. 能仁在圓通北. 圓通在眞佛南. 眞佛在船菴西南. 修善. 奇奇在船菴東南. 開心. 天德在圓通西. 天津. 安心在開心北. 頓道在表訓東南. 神林在表訓西. 利嚴. 五賢在頓道東北. 安養. 靑蓮等在長安東. 皆取其協韻. 故無次序而擧之]
332
이상은 다 암자 이름인데, 만회암은 마하연 북쪽에 있고, 백운암은 만회암 북쪽에 있으며, 선암은 백운암 서북쪽에 있고, 묘덕암은 능인암 서쪽에 있으며, 능인암은 원통암 북쪽에 있고,원통암은 진불암 남쪽에 있으며, 진불암은 선암(船菴) 서남쪽에 있고, 수선암과 기기암은 선암동남쪽에 있으며, 개심암과 천덕암은 원통암 서쪽에 있고, 천진암과 안심암은 개심암 북쪽에 있으며, 돈도암은 표훈암(表訓菴) 동남쪽에 있고, 신림암은 표훈암 서쪽에 있으며, 이엄암과 오현암은 돈도암 동북쪽에 있고, 안양암과 청련암은 장안(長安) 동쪽에 있는데, 다 그 협운(協韻)을 취하였기 때문에 순서가 없이 적었다.
 
333
或倚最高峯,     혹은 최고 봉우리에 기대고 있어,
334
手可捫銀河。     손으로 은하수를 어루만질 성싶고.
335
或枕急流瀑,     혹은 쏟아지는 폭포를 굽어보아,
336
靜中喧聒聒。     고요한 속에서도 요란히 시끄럽고.
337
或在巖石下,     혹은 바위 밑에 있어,
338
低頭僅出入。     머리를 숙여야 겨우 드나들고.
339
或對紫翠峯,     혹은 붉거나 푸른 봉우리를 마주 대하여,
340
暮色來排闥。     석양 빛이 문에 비춰 아롱거리고.
341
或占大巖上,     혹은 큰 바위 위를 차지하여,
342
綫路纔容迹。     가느다란 길을 겨우 걸어갈 수 있고.
343
或隱幽邃處,     혹은 깊숙한 곳에 숨어 있어,
344
永與塵勞隔。     아주 속세와는 격리되었는가 하면.
345
雖無外客來,     비록 외부 나그네가 오지 않더라도,
346
小語山已答。     속삭일 땐 산울림 메아리치고.
347
或祕樹木中,     혹은 수목 속에 묻혀 있어서,
348
濃陰遮日色。     짙은 그늘이 햇빛을 가려 주고.
349
或據斷崖頭,     혹은 낭떠러지 끝에 자리 잡아,
350
滿庭皆怪石。     뜰에 가득 온통 괴석뿐.
351
奇形與異狀,     그 기이한 형상과 특이한 모습을,
352
記之終難悉。     기록으로 끝내 다할 수 없고.
353
眼看口難言,     눈으로 보았으나 입으론 말하기 어려워,
354
漏萬纔掛一。     만에 하나쯤 겨우 적어 둔다오.
 

 
 

15. 15

356
我愛表訓寺,     나는 표훈사(表訓寺)를 사랑하노니,
357
鬱鬱依林麓。     그 울창함 숲 기슭을 의지했네.
358
[在開心南]
359
개심사(開心寺) 남쪽에 있다.
 
360
僧閒畫殿空,     스님은 한가롭고 단청 집은 비었는데,
361
日午樓陰直。     한낮이어라 누각 그늘 직선을 이루었네.
362
我愛正陽寺,     나는 정양사(正陽寺)를 사랑하노니,
363
俯臨千丈壑。     천 길 되는 구릉이 내려다보이네.
364
[在表訓上]
365
표훈사 위에 있다.
 
366
褰衣步庭除,     옷을 걷고 뜰에서 산책하다가,
367
四顧山如積。     사방을 돌아보니 산이 쌓인 것 같았네.
368
我愛須彌臺,     나는 수미대(須彌臺)를 사랑하노니,
369
疊石成崔嵬。     겹겹이 쌓인 돌들 높은 대를 이루었네.
370
[在眞佛西北]
371
진불암(眞佛菴) 서북쪽에 있다.
 
372
淸絶似仙區,     그지없이 깨끗하기 선경 같아서,
373
不必求蓬萊。     봉래산(蓬萊山)을 찾을 필요 없겠더라.
374
我愛望高臺,     나는 망고대(望高臺)를 사랑하노니,
375
四面收黃埃。     사방에 먼지 한점 없어라.
376
[在長安北表訓南]
377
장안사(長安寺) 북쪽, 표훈사(表訓寺) 남쪽에 있다.
 
378
欲知高幾何,     그 높이 얼마인지 알고 싶은가,
379
笙簫天上來。     퉁소소리 천상에서 들려온다네.
380
凌雲縱快活,     구름 헤치며 오르는 것이 쾌활하긴 하나,
381
執鎖誠危哉。     쇠줄 잡기 정말로 위태로웠네.
382
[上望高臺時. 路窮處則垂鐵鎖. 攀之以上焉]
383
망고대(望高臺)를 올라갈 때, 길이 끊어진 곳에는 드리워져 있는 쇠줄을 더위잡아야 올라갈 수 있다.
 
384
我愛十王洞,     나는 시왕동(十王洞)을 사랑하노니,
385
山勢皆盤回。     산 형세가 다 빙 둘리었어라.
386
[在長安東北. 最深邃. 人所不到處. 有古塔]
387
장안사(長安寺)의 동북편에 있어 가장 깊은 곳이고, 사람들이 이르지 않는 곳에 옛탑이 있다.
 
388
古塔不記年,     연대를 알 수 없는 옛탑 하나가,
389
兀立懸崖邊。     낭떠러지 가에 우뚝 서 있었네.
 

 
 

16. 16

391
我愛萬瀑洞,     나는 만폭동(萬瀑洞)을 사랑하노니,
392
飛流瀉靑汞。     날을 듯한 폭포 푸른 수은이 쏟아지는 듯.
393
[在表訓東. 獅菴之西. 純是巖石所成]
394
만폭동은 표훈암(表訓菴) 동편이자 사암(獅菴) 서편에 있는데, 순전히 암석으로 이뤄진 곳이다.
 
395
一巖連數里,     온통 암석이 몇 리를 연이어,
396
滑淨難所[所,一作徒]倚。  미끄럽고 깨끗해 기대기 어려워라.
397
逶迤至洞口,     구불구불 산골 어귀에 이르기까지,
398
滿洞皆流水。     온 산골이 죄다 흐르는 물이었네.
399
坎處陷爲淵,     깊은 곳은 오목하게 못이 되어,
400
下有火龍眠.[淵名]。  그 밑에 화룡연(火龍淵)이 있고.
401
傾處激爲湍,     경사진 곳엔 거센 여울이 되어,
402
鳴雷振空山。     천둥 같은 소리 빈 산을 진동하며
403
平處湛不流,     판판한 곳은 맑기만 하고 흐르지 않아,
404
如鏡鑑吾顏。     거울처럼 내 얼굴을 비춰 주기도.
405
淸風左右至,     맑은 바람이 좌우에서 불어와,
406
炎熱變爲寒。     더운 열기가 추한기로 변해라.
407
披襟坐樹下,     옷깃을 헤치고 나무 아래 앉아,
408
始知身世閒。     신세가 한가함을 비로소 알았네.
 

 
 

17. 17

410
我愛寶德窟,     나는 보덕굴(寶德窟)을 사랑하노니,
411
銅柱盈千尺。     구리쇠 기둥이 천 자 이상이라.
412
[在洞中. 飛閣跨空. 三面依巖. 一面以銅柱撑之. 近百尺. 最爲奇絶]
413
골짝 복판에 있는 동굴로서 날을 듯한 누각이 허공에 걸쳐 있는데, 3면은 바위를 의지했고, 1면은 구리기둥으로 떠받친 것이 백 자에 가까워 그지없이 기이하다.
 
414
飛閣在虛空,     허공에 걸려 있는 날을 듯한 누각은,
415
天造非人力。     하늘을 조화이지 사람솜씨 아니리.
416
未至望如畫,     멀리 바라볼 적엔 그림 같았는데,
417
旣登汗如沐。     막상 오르고 보니 땀이 목욕한 듯하네.
418
禪僧萬緣虛,     참선하는 스님은 뭇 인연 후리쳐 버려,
419
紙帒儲松葉。     종이 포대에 솔잎만 담아 두었구려.
420
若欲棲此地,     만약 이 곳에 와서 살려거든,
421
應須學絶粒。     응당 곡식 끊기부터 배워야 하리 !
422
去矣不可留,     떠나야겠네 이곳엔 머무를 수 없으니,
423
我將巡山遊。     내 장차 산을 돌면서 유람이나 하리 !
424
有石類獅子,     사자를 닮은 바윗돌 하나가,
425
屹立乎峯頭。     봉우리 꼭대기에 우뚝 서 있고.
426
[在獅子菴前]
427
사자암(獅子菴) 앞에 있다.
 
428
有菴似築城,     쌓인 성 비슷한 암자도 있었으나,
429
不知誰所營。     그 누가 만들었는지 알 수가 없구나.
430
[在獅子菴側]
431
사자암 곁에 있다.
 
432
世無方朔儔,     이 세상에 동방삭과 짝할 이 없어,
433
怪事問無由。     기괴한 일 물어 볼 곳 막연하였네.
434
內山留十日,     안산에서 열흘을 머무른 동안,
435
遊尋略已周。     볼 만한 곳은 대략 두루 보았네.
436
東行到上院,     동쪽으로 걸어서 상원에 도착하니,
437
路旁層巒遠。     길 가에 층층 봉우리 멀리 보여라.
438
[從此向白巓面. 上院在路邊]
439
여기에서 백전(白)으로 가는데, 상원(上院)이 길 가에 있다.
 

 
 

18. 18

441
寂滅[菴]上開心[菴],  적멸암(寂滅菴)에서 개심암(開心菴)으로 올라가니,
442
橫雲時未捲。     비낀 구름이 마치 걷히지 않아.
443
[二菴最高. 在寂滅則可見東海]
444
두 암자가 가장 높은 곳에 있고 적명암에서는 동해를 볼 수 있다.
 
445
開窓何所見,     창문 열자 무엇이 보이는가 하면,
446
赤海平如練。     붉은 바다가 비단처럼 판판하였네.
447
山人指白巓,     산 사람들이 백전(白)을 가리켜,
448
人閒兜率天。     속세의 도솔천(兜率天)19)이라네.
449
[以白巓爲兜率. 蓋淸勝故]
450
백전을 도솔이라 하는 것은 대개 깨끗한 명승이기 때문이다.
 
451
諸菴列翠微,     여러 암자가 푸른 빛 속에 널려 있어,
452
鐘鼓聲相連。     종소리 북소리가 번갈아 들린다.
453
有洞名聲聞,     성문(聲聞)이라 일컫는 그 골짝엔,
454
水石何紛紜。     수석이 이어 그리 어수선한지.
455
可望不可尋,     바라보긴 해도 찾아갈 수 없어,
456
靑鶴爲弟昆。     청학동(靑鶴洞)과 형제가 될 만하였네.
457
[寂滅菴下有洞. 名聲聞. 俯見巖奇水淸. 而無路可入. 如智異山靑鶴洞焉]
458
적멸암(寂滅菴) 밑에 성문동(聲聞洞)이 있는데, 내려다 보면 바위가 기이하고 물이 맑기는 하나 들어갈 길이 없어 지리산(智異山)의 청학동(靑鶴洞)과 같다.
 
459
鉢淵對絶壁,     발연사(鉢淵寺)를 마주 대한 그 절벽은,
460
天工所磨削。     천공(天工)20)으로 갈고 깎았나 봐.
461
一條噴長虹,     한 줄기 긴 무지개 같은 폭포를 뿜어내니,
462
其底澄潭碧。     그 밑엔 맑은 못이 푸르기도 해라.
463
山僧無一事,     산 스님들이 아무 하는 일 없어,
464
轉下聊爲樂。     굴러 내림을 부질없이 낙으로 삼네.
465
投身急如梭,     베틀에 북처럼 급히 몸을 던지면,
466
顚倒眩莫測。     엎치락뒤치락 아찔함을 헤아릴 수 없었네.
467
[鉢淵寺在寂滅之東. 有瀑甚高. 巖石極滑. 僧俗來玩者. 皆解衣上巖. 隨瀑轉下以爲戲. 雖顚倒而下. 終無所傷]
468
발연사(鉢淵寺) 위치는 적멸암의 동편인데, 폭포가 아주 깊고 암석이 극히 미끄러워 산승이나 속인들이 와서 구경하는 자는 다 옷을 벗고 바위에 올라가 폭포를 따라 굴러 내리면서 장난하기 일쑤이다. 비록 엎치락뒤치락 굴러 내리어도 끝내 다치지는 않는다.
 
469
19)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육계 육천(慾戒六天)의 넷째 하늘을 말한다.
470
20) 하늘의 조화로 이루어진 재주를 말한다.
 

 
 

19. 19

472
回登九井峯,     구정봉(九井峯)을 돌아 오르니,
473
桂樹森可折。     우거진 계수나무 꺾을 수 있고.
474
[在寂滅北. 甚高峻. 有桂樹]
475
적멸암 북쪽에 있는 매우 높고 험준한 봉우리로서 계수나무가 있다.
 
476
扶桑手可挹,     부상(扶桑)21)도 손으로 잡을 수 있어,
477
夜半看日出。     한밤중에 해 돋는 것을 보았네.
478
欲見九龍淵,     구룡연(九龍淵)을 구경하려고 하니,
479
僧言路險惡。     스님이 말하기를, 길이 험하여.
480
若遇驟雨來,     만약 소나기라도 만나게 되면,
481
死生在頃刻。     죽느냐 사느냐가 경각에 달렸으니
482
[九龍淵在毗盧峯之東. 最爲奇麗. 但路險石滑. 遇雨則定死無疑. 故余懼不往]
483
구룡연은 비로봉(毗盧峯) 동편에 있는데, 가장 기절하고 화려한 곳이다.
484
다만 길이 험하고 돌이 미끄러워 비를 만나면 정말 죽기 마련이다. 이 때문에 나는 두려워서 가지 않았다.
 
485
不如上高峯,     차라리 높은 봉우리에 올라가,
486
以躡飛仙蹤。     날으는 신선 발자취나 밟음이 나으리라.
487
斯言定信乎,     이 말대로 정말 그럴까 하다가,
488
決意登毗盧。     비로봉에 오를 뜻을 결정하였네.
489
松根絡石角,     솔 뿌리가 돌 모서리에 얽히어,
490
手攀足可踏。     손으로 붙잡아야 발을 붙일 수 있었네.
491
[毗盧峯此山之絶頂]
492
비로봉이 이 산의 절정이다.
 
493
有僧導我前,     어떤 스님이 내 앞을 인도하면서,
494
戒我勿俯矚。     날더러 내려다보지 말라고 당부한다.
495
臨危若俯矚,     아스라이 높은 곳에 다다라 만약 내려다 보면,
496
目眩神必惑。     눈이 아찔하여 정신을 못 차릴 것이오.
497
若欲見山形,     또는 산 형세를 보고 싶더라도,
498
莫上最高嶽。     최고 봉우리엔 올라가지 마시오.
499
若登最高嶽,     만약 최고 봉우리에 오라 간다면,
500
所見皆怳惚。     보이는 것이 모두 아물아물 때문이지요.
501
[極高則所見不明]
502
너무 높으면 보이는 것이 분명하지 않다.
 
503
此言爲我師,     이 말을 나의 스승으로 삼아,
504
勉旃無怠忽。     조심조심 게으르거나 소홀히 하지 않고.
505
一經晝與宵,     하루 낮 하룻밤을 지나고서야,
506
始及山之腰。     비로소 산 중턱에 이르러.
507
困臥盤石上,     피곤해서 반석 위에 누었으니,
508
廓落迷俯仰。     위나 아래가 모두 아득하기만 해라.
509
心定始擡首,     마음이 안정되어 머리를 치켜드니,
510
衆峯皆我向。     수 많은 봉우리가 죄다 나에게로 향하는데.
511
高低與遠近,     높고 낮고 멀고 가까운 산들이,
512
一槩皆削粉。     한결같이 다 깎아 세운 듯이 하얗네.
513
百里不盈尺,     백 리 거리가 한 자도 채 못되어,
514
鉅細皆無隱。     큰 것 작은 것이 모두 숨김없이 보이더니.
515
忽然蒸白霧,     갑자기 흰 안개가 뭉게뭉게 피어올라,
516
澒洞失遠覯。     시야가 흐려져 멀리 볼 수 없어라.
517
初依一谷生,     처음에는 한 골짝에서 피어 일더니,
518
漸蔽羣山走。     차츰 뭇 산을 뒤덮어 가면서.
519
遂使山蒼蒼,     끝내는 산들을 아스라하게 만들고,
520
飜作海茫茫。     다시 바다까지 아득하게 만들기도.
521
浩浩同一氣,     넓고도 넓은 하나의 기운이건만,
522
漠漠難爲量。     아득하여 측량하기 어려웠네.
 
523
21) 해가 뜨는 동쪽 바다 가운데 있다는 신목(神木)이다.
 

 
 

20. 20

525
吾聞太極前,     듣건대 태극 이전에는,
526
萬化不開張。     모든 조화를 드러내지 않았다는데.
527
山靈意何如,     이제 산신령은 무슨 뜻으로,
528
示我物之初。     나에게 만물의 시초를 보여 주는고.
529
無風漸飄散,     바람이 없자 안개가 점차 흩날려,
530
半卷還半舒。     반은 걷히고 반은 자욱하네.
531
始露數點秀,     수려한 두어 곳이 비로소 드러나,
532
孤如天上岫。     외롭기 하늘에 있는 산봉우리 같아라.
533
濃靑畫脩眉,     짙은 청색으로 기 눈썹을 그린 듯,
534
浴海褰鵬噣。     바다에서 목욕하는 붕새 부리를 치켜든 듯.
535
俄驚[驚,一作頃]疾風起,  갑자기 놀랍게도 거센 바람 일더니,
536
駛若驊騮驟。     속도가 마치 달리는 천리마와 같아.
537
須臾無點滓,     경각간에 한 점의 띠끌도 없어,
538
眼力皆通透。     시야가 모두 환히 열리더군.
539
或尖若劒鋒,     혹은 칼끝처럼 뾰죽하기도 하고,
540
或圓若籩豆。     혹은 대바구니나 접시처럼 둥글기도 하며.
541
或長若走蛇,     혹은 달아나는 뱀처럼 길기도 하고,
542
或短若臥獸。     혹은 누워 있는 짐승처럼 짧기도 하며.
543
或如萬乘尊,     혹은 존귀한 만승(萬乘) 천자가,
544
朝會開天門。     대궐문 활짝 열고 조회 받을 때.
545
衣冠儼侍立,     만조 백관들이 엄숙하게 시립하여,
546
車馬如雲屯。     구름처럼 모여 있는 거마(車馬) 같기도.
547
或如釋迦佛,     혹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548
領衆依靈鷲。     중생을 거느리고 영취산에 계실 때.
549
蠻君與鬼伯,     오랑캐 군주나 귀신 우두머리들이,
550
競進頭戢戢。     앞다투어 나오는 머리 같기도.
551
或如吳與孫,     혹은 오 기(吳起)나손빈(孫)22)
552
擊鼓陳三軍。     북을 치면서 삼군으로 돌진할 때.
553
鐵馬振刀鎗,     철마로 창 칼을 휘두르며,
554
壯士爭追奔。     장사들이 앞을 다퉈 추격하는 듯.
555
或如獅子王,     혹은 짐승의 왕 사자가,
556
威壓百獸羣。     온갖 짐승 떼를 제압하는 듯도.
557
或如行兩龍,     혹은 비를 내리는 용이,
558
奮鬣噴陰雲。     갈기를 날리며 검은 구름을 뿜는 듯도.
559
或如靠巖虎,     혹은 바위에 기댄 호랑이가,
560
顧眄當路蹲。     돌아보면서 길 복판에 쭈구려 앉은 것 같기도.
561
或若文書積,     어떤 것은 서적(書籍)을 높이 쌓은 듯
562
鄴侯三萬軸。     업후(業侯)23)의 삼만(三萬) 권 책과 같네
563
或若建浮圖,     어떤 것은 부도를 세운 듯해서
564
蕭梁九層塔。     소량(蕭梁)24)의 9층탑 같기도 하며.
565
或若纍纍塚,     혹은 다닥다닥 연이은 무덤에,
566
令威尋故國。     정령위(丁令威)25)가 고국을 찾은 듯도.
567
或向如揖讓,     혹은 앞을 향해 읍하고 물러서는 듯도,
568
或背如抱毒。     혹은 등을 돌려 독기를 품은 듯도.
569
或疎若相避,     혹은 서먹서먹 서로 피하는 듯도,
570
或密若相狎。     혹은 오손도손 서로 친한 듯도.
571
或如窈窕女,     혹은 얌전한 새아씨,
572
深閨守貞淑。     깊은 규방에서 정숙을 지키는 듯도.
573
或如讀書儒,     혹은 글 읽는 선비가,
574
低頭披簡牘。     머리 숙여 책을 펼치는 듯도.
575
或如賁育徒,     혹은 힘센 분·육(賁育)26)의 무리들이,
576
賈勇氣咆勃。     용기를 뽐내어 호통치는 듯도.
577
或如坐禪僧,     혹은 앉아 참선하는 스님들이,
578
藜牀穿兩膝。     명아주 평상에 무릎을 꿇은 듯도.
579
或若搏兔鷹,     혹은 토끼를 잡아채는 새매와도 같고,
580
或若抱兒鹿。     혹은 새끼를 안은 사슴과도 같으며.
581
或翔若驚鳧,     혹은 놀란 오리 풀쩍 날듯,
582
或峙若立鵠。     혹은 우뚝 서 있는 고니와 같기도.
583
或偃然肆志,     혹은 거만하게 자세를 부리기도 하며,
584
或靡然自屈。     혹은 힘 없이 굽히기도.
585
或散而不合,     혹은 뿔뿔이 흩어져 합쳐지지 않은 모양도 있고,
586
或連而不絶。     혹은 연이어져 끊기지 않은 모양도 있어.
587
萬象各異態,     온갖 형상이 각기 다름 자태라서,
588
貪翫忘移足。     탐내어 구경하느라 발걸음 옮길 줄을 잊었네.
589
不可廢半道,     그러나 중도에 그만 둘 수 없어,
590
我欲窮其高。     그 높은 절정에까지 오르려 하니.
591
繞身是何物,     온 몸을 둘러싼 것이 무엇이냐 하면,
592
時有行雲孤。     가끔 지나가는 외로운 구름이었고.
593
行雲不及處,     지나가는 구름도 못 미치는 곳엔,
594
肅肅剛風號。     강한 바람만 세차게 불고.
595
飛鳶與棲鶻,     날으는 솔개나 깃드리는 새매도,
596
莫能追我翺。     내 발걸음을 따라오지 못하였네.
 
597
22) 다 같이 전국시대 병법가(兵法家)로 오 기(吳起)는 위(魏) 나라 사람이고, 손 빈(孫)은 제(齊) 나라 사람이다.
598
23) 당(唐) 나라 이 비(李泌)의 봉호(封號). 그는 장서(藏書)가 2만여 권에 이르렀다.
599
24) 남조(南朝)의 양(梁) 나라를 소씨(蕭氏) 가 세웠기 때문에 붙여진 칭호. 양 무제(梁武帝)가 사탑(寺塔)을 세우고 불도(佛道)를 독신하였다. 《梁書 武帝記》
600
25) 한(漢) 나라 요동(遼東) 사람인데, 영허산(靈虛山) 에서 도(道)를 배운 뒤 학(鶴)으로 변화하여 요동에 돌아와 공중에 배회하면서 말하기를, "집을 떠난 지 천년만에 돌아오니 성곽(城郭)은 여전한데 사람은 그렇지 않구나. 어째서 신선(神仙)이 되는 것을 배우지 않고 무덤들이 다닥다닥하느냐" 하였다. 《搜神後記》
601
26) 분(賁) 은 맹분(孟賁)을, 육(育) 은 하 육(夏育)을 가리키는데, 다같이 춘추전국시대의 용사(勇士)이다.
 

 
 

21. 21

603
直到無上頂,     곧장 최상의 절정에 올라가,
604
朗詠聊遊遨。     상쾌히 읊고 자유로이 유람하니.
605
林端拂朝日,     숲 끝엔 아침 해가 솟아오르고,
606
石頭礙夜月。     바위 위엔 저녁 달이 떠올라라.
607
俯聽蟻動聲,     어수선한 소리 귀 기울여 보니,
608
山腰起霹靂。     산 중턱에 벼락이 친 듯 하건만.
609
山川圍四面,     사면이 산천으로 둘러싸여서
610
糢糊不可辨。     모호하여 분별할 수 없도다.
611
大者類丘垤,     아무리 큰 것도 언덕과 비슷하고,
612
小者視不見。     작은 것은 보아도 보이지 않네.
613
縱有離婁目,     비록 이루(離婁)27)의 눈을 가졌더라도,
614
安能辨城郭。     어찌 성곽을 분별할 수 있으랴.
615
浩然發長嘯,     호연히 긴 휘파람을 불어,
616
聲入淸都闕。     그 소리 상제(上帝)의 궁궐에 들어갔으니.
617
仙侶定駭愕,     신선들도 정말 이상하게 여기고,
618
玉皇應驚詰。     옥황(玉皇)도 필경 놀라 힐문했으리 !
619
天宮縱不遠,     상제의 궁궐이 비록 멀지 않지만,
620
其奈道根淺。     그 도근(道根)이 얕은 데야 어찌하리 !
621
吾聞上界仙,     듣건대 하늘의 신선들도,
622
官府未得閒。     그 관부(官府)가 한가롭지 못하다더군.
623
何如方外人,     세속을 초월한 사람이이라 해도,
624
不在仙凡間。     신선과 범부(凡夫) 사이에 있지 않겠는가.
625
心虛萬事一,     마음만 텅 비면 만사는 하나이고,
626
氣大六合窄。     기운이 어귀차면 우주도 비좁아라.
627
崑崙脫手毬,     곤륜산은 손에서 벗어난 공이고,
628
大海塗足油。     큰 바다는 발에 바르는 기름이라오.
629
胸中有山水,     내 가슴 속에 산수가 있으니,
630
不必於此留。     여기 금강산에 머물게 없네.
631
一覽便知足,     한 번 유람으로 만족할 줄 안다 해서,
632
造物不我尤。     조물주가 나를 꾸짖지는 않을 테지.
 
633
27) 옛날에 눈이 밝기로 이름난 사람이다.
 

 
 

22. 22

635
僧言此山景,     그런데 스님이 말하기를 이 산 경치는,
636
四時皆淸勝。     사철 내내 다 맑고 좋다오.
637
炎涼異世閒,     더웁고 서늘함이 세상과는 달라서,
638
陰氣春猶盛。     차가운 기운 봄에도 기세 부리니.
639
浮花豈吐蘂,     범상한 꽃들이야 어찌 꽃송이를 피우겠소,
640
只有寒梅瑩。     겨울 매화에만 꽃이 핀다오.
641
山門四五月,     산중이라 4월, 5월쯤 되어야,
642
始有尋春興。     비로소 봄 흥취를 찾을 수 있지요.
643
層崖千萬丈,     천만 길이나 되는 층층 낭떠러지에,
644
蹢躅紅相映。     붉은 철쭉꽃이 서로 비추어.
645
大地入紅鑪,     대지(大地)가 붉은 화로 속으로 들어가도,
646
衲僧猶苦冷。     스님은 오히려 차가움에 시달린다오.
647
撲緣不侵人,     으레 속세 인연이야 침범하지 않지만,
648
蒼蠅絶形影。     쉬파리는 그림자도 볼 수 없다오.
649
秋風來苦早,     가을 바람은 왜 그리 일찍 오는지,
650
落葉塡石逕。     낙엽이 돌 길을 다 메워버리고.
651
峯巒瘦生稜,     봉우리는 앙상하게 모가 나는데,
652
素月增耿耿。     흰 달은 유달리 휘영청 밝으며.
653
松林閒楓樹,     한편 솔숲 사이 단풍나무는,
654
紅碧紛無數。     붉은 빛 푸른 빛 수 없이 요란하고.
655
水落露危巖,     물이 줄자 높은 바위 드러나고,
656
激激波聲怒。     흐르는 물소리 거세게 들린다오.
657
冬寒水官驕,     추운 겨울엔 수관(水官)28)이 교만을 부려,
658
積雪高天柱。     쌓인 눈이 천주(天柱)29)보다 높고.
659
煙生知有寺,     연기 나는 곳엔 절 있는 줄 알지만,
660
門礙難開戶。     문이 막혀 드나들기 어려웠다오.
661
譬如別世界,     마치 딴 세상 같아서,
662
白銀爲國土。     온 국토가 흰 은빛이며.
663
翠檜列幾行,     푸르른 전나무가 줄줄이 늘어서서,
664
鬚髮垂滄浪。     수염 같은 잎들이 물결을 드리운다오.
665
君胡不見此,     그대로 왜 이런 것들을 보지 않고서,
666
反思歸故鄕。     도로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하나요.
667
[所記四時景. 皆山中實事]
668
기록한 것이 사철 경치로서 모두 산중의 실사(實事)이다.
 
669
28) 물을 맡은 신(神)을 가리킨다.
670
29) 하늘을 괴고 있다는 기둥. 「신이경(神異經)」에 의하면, "곤륜산(崑崙山)에 구리 기둥이 있는데, 그 높이가 하늘에 닿아 이를 천주라 한다. 〔崑崙之山 有銅柱焉 其高入天 所謂天 柱也〕"고 하였다.
 

 
 

23. 23

672
此山有羽人,     이 산에 우인(羽人)30)이 있어,
673
馭風凌空行。     바람 타고 마구 허공을 나는데.
674
綠髮飄若煙,     푸른 머리털을 연기처럼 휘날리면서,
675
巖竇藏其形。     바위 구멍을 그 몸을 감춘다오.
676
千年食松脂,     천년 동안 송진만 먹어서라,
677
蟬蛻得長生。     번뇌에서 벗어나 오래 살면서.
678
見人不接言,     사람을 보고도 말붙이진 않지만,
679
顏秀方瞳淸。     그 얼굴 수려하고 모난 눈도 맑다오.
680
君胡不見此,     그대 어째서 이 사람을 보지 않는고,
681
似無物外情。     속세 벗어나고 싶은 마음 없는가봐.
682
[山中有人. 只食松葉. 歲久身輕. 空中往來. 綠毛遍體. 山僧樵菜. 時有得見者云]
683
산중에 어떤 사람이 솔잎만 먹고사는데, 오랜 세월에 몸이 가벼워 공중으로 오가고 온 몸에는 푸른 털이 났다. 산승(山僧)이 땔나무를 베고 나물을 캘 때 가끔 만나보았다 한다.
 
684
此山有異獸,     이 산에는 또 이상한 짐승이 있는데,
685
非虎非豺狼。     호랑이도 아니고 승냥이도 아니면서.
686
雄形大如山,     우람한 몸집은 산처럼 커다랗고,
687
怒眸若鏡光。     성낸 눈초리는 거울처럼 빛나.
688
有時磨大木,     가끔 큰 나무에 몸을 문지르면,
689
翠毛掛百尺。     그 푸른 털이 백 척 높이에 걸리고.
690
足迹廣如輪,     발자국은 수레바퀴처럼 넓어,
691
諒非凡獸匹。     진정 범상한 짐승 종류가 아니라오.
692
君胡不見此,     그대 어째서 이것을 보지 않고서,
693
避去如畏怯。     마치 겁내어 피해 가듯 하는고.
694
[山中有獸. 如詩中所記云]
695
산중에 어떤 짐승이 이 시(詩)의 기록과 같은 것이 있다 한다.
 
696
此山有仙鶴,     이 산에는 또 선학(仙鶴)이 있는데,
697
大如垂天翼。     그 크기가 하늘에 드리운 날개와 같아.
698
翺翔白雲上,     흰 구름 위로 훨훨 날아다니다가,
699
暮還棲翠壁。     해가 저물면 돌아와 푸른 벽에 서식하고.
700
有時舞雌雄,     때로는 수컷 암컷이 춤을 추면,
701
雙影峯前落。     두 그림자가 봉우리 앞에 비친다오.
702
高人尙不親,     고상한 사람도 그와 친하지 못한데,
703
況求對以臆。     하물며 억지로 반가이 대해 주길 구하랴.
704
君胡不見此,     그대 어째서 이것을 보지 않는고,
705
胸次未免俗。     마음이 속세를 벗어나지 못했구려.
706
[山中有鳥. 大於鸛. 靑質丹頂. 有雌雄雙飛. 人謂之鶴]
707
산중에 어떤 새가 있는데, 두루미보다 크고 푸른 바탕에 붉은 이마를 지닌 한 쌍이 날아다녀 사람들이 두루미라 한다.
 
708
我聞此僧言,     내 이 스님의 말을 듣고 나서,
709
將還更回躅。     돌아오려다가 다시 발길을 돌려
710
遂作半歲留,     끝내는 반년 동안 머물렀는데,
711
所聞非虛說。     앞서 들은 것이 헛된 말이 아니었네.
 
712
30) 신선 또는 도사(道士)를 두고 하는 말. 우사(羽士)라고도 한다. 《楚辭 遠遊》
 

 
 

24. 24

714
僧言此山名,     스님이 말하기를, 이 산의 이름은,
715
金剛與怾怛。     금강산 또는 지달산인데.
716
衆寶所合成,     수많은 보배가 합쳐 이뤄졌고,
717
中有曇無竭。     담무갈(曇無竭)31)이 머물던 곳이기도 하오.
718
我言佛書中,     나는 반문하기를 불경 속에서는,
719
不見朝鮮國。     조선국이란 것을 보지 못했고.
720
又云在海中,     또 금강산이 바다 가운데 있다 했으니,
721
不與此山同。     이 산과는 동일하지 않는 것이라네.
722
[僧言佛經云. 海中有金剛山. 曇無竭聖人所住. 卽此山云云. 此山豈在海中耶]
723
산 승이 이르기를, "불경에 '바다 가운데 금강산이 있어 담무갈(曇無竭)이란 성인이 그곳에 머물었다.'했는데, 바로 이 산이다…" 한다. 그러나 이 산이 어찌 바다 속에 있는 산이겠는가.
 
724
我疑龍伯豪,     아마도 용백국(龍伯國)32)의 호걸이,
725
一釣連六鰲。     한 번에 여섯 마리 자라를 연달아 낚았는데.
726
三山遂失所,     삼산에서 드디어 방향을 잃어,
727
泛海驚仙曹。     바다에 떠서 신선들을 놀라게 하고.
728
漂流到我疆,     정처 없이 떠돌다가 우리 강토에 이르러,
729
作此羣山王。     수 많은 산중에 제일 가는 산이 되었나봐.
730
又疑西河吳,     또 아마 서하의 오 강(吳剛)33)이,
731
荷斧桂樹旁。     계수나무 곁으로 도끼를 메고 가
732
斫桂落此地,     계수나무를 베어 이 땅에 떨어뜨렸는데,
733
萬古無時停。     만고토록 쉬는 때가 없자.
734
玉幹化爲石,     옥 같은 계수나무 줄기가 돌로 화하여,
735
高積巉靑冥。     높이 쌓여 푸른 하늘에 솟았는가.
736
虛實竟誰分,     허위와 진실을 그 누가 분별하여,
737
何人作山經。     어떤 이가 산경(山經)을 만들려나.
738
自從作天遊,     이번에 자유로운 유람을 하고부터,
739
始覺吾生浮。     비로소 우리 인생 허무함 깨달았네.
 
740
31) 당(唐) 나라 때 고승(高僧)이다.
741
32) 옛날에 거인(巨人)들이 살았다는 나라 이름. 「열자(列子)」탕문(湯問)에, "용백국에 거인이 있는데, 두어 걸음도 떼지 않고서 오산(五山)에 이르러 한 번 낚시질로 여섯 마리의 자라〔鱉〕를 연달아 잡았다."는 고사가 있다.
742
33) 한(漢) 나라 서하(西河) 사람인데, 신선(神仙)을 배우다가 잘못을 저질러 달 속으로 귀양가 계수나무를 베는 일을 했다는 고사가 있다. 《酉陽雜著 天咫》
 

 
 

25. 25

744
下山將出洞,     산에서 내려와 골짝을 나오려 하자,
745
山靈向我愁。     산신령이 나를 대해 걱정하더니.
746
夢中來見我,     꿈속에 나타나서 나를 보고는,
747
自言有所求。     요구할 것이 있다고 스스로 말하네.
748
物生天宇閒,     천지 사이에 생겨난 만물은,
749
因人名乃休。     사람을 만나야만 이름이 빛나게 되나니.
750
廬山無李白,     만약 여산(廬山)에 이 백(李白)34)이 없었던들,
751
誰能詠其瀑。     누가 그 폭포를 센解愍만?
752
蘭亭無逸少,     난정에 왕 일소(王逸少)35)가 없었던들,
753
誰能壽其迹。     누가 그 자취를 오래 전했겠는가.
754
子美題洞庭,     두 자미(杜子美)36)는 동정에서 시를 썼고,
755
東坡賦赤壁。     소 동파(蘇東坡)37)는 적벽부(赤壁賦)를 지었으니.
756
咸因大手筆,     모두가 큰 솜씨의 붓을 빌어서,
757
令名垂不滅。     훌륭한 이름이 내내 사라지지 않았네.
758
君今遊我山,     그대도 이젠 내 금강산에 노닐어,
759
風景皆收拾。     풍경을 남김 없이 다 구경했거늘.
760
胡爲不吟詩,     어찌 이에 대한 시를 읊지 않고,
761
反作緘口默。     도리어 입 다물고 말이 없는가.
762
請君揮巨杠,     부디 그대의 큰 붓 휘들러,
763
庶使山增色。     금강산의 빛을 더해 주게나.
764
我言子過矣,     나는 대답하길, 자네가 잘못일세.
765
子言非我擬。     자네 부탁은 나의 가능한 바 아니네.
766
我無錦繡腸,     나는 시문(詩文)에 뛰어난 재주 없거니,
767
安能追數子。     앞의 두어 분을 어떻게 따르겠는가.
768
滿腔惟一拙,     온 가슴이 오직 옹졸함뿐이어서,
769
吐出人不喜。     시를 읊어본들 남들이 기뻐하지 않을 걸세.
770
子欲得瓊琚,     자네가 구슬 같은 시를 얻고 싶다면,
771
往求無價手[手,恐誤]。  가장 값진 솜씨를 찾아가서 구하오.
772
山靈色不悅,     이에 산신령이 기뻐하지 않는 낯빛으로,
773
側立久凝視。     곁에 서서 오랫동안 지켜보더니.
774
咄咄指我言,     혀를 차면서 나를 가리켜 이르기를,
775
惡賓無汝似。     그대 같이 고약한 손은 없을 거야.
776
我知不能辭,     내 끝내 사양할 수 없음을 알고,
777
遂許撰荒鄙。     부족한 글이나마 짓기로 허락하노니.
778
形開如酒醒,     얼굴은 마치 술을 깬 것 같고,
779
所聽皆慌爾。     들은 것은 모두가 황당한 일 뿐일세.
780
有約不可負,     그러나 약속한 걸 저버릴 수 없어,
781
聊以記終始。     처음부터 끝까지를 그런 대로 적어 둔다오.
 
782
34) 당(唐) 나라 시인(詩人) 이 태백(李太白)을 가리킨다. 그는 일찍이 중국 강서성(江西省)에 위치한 여산(廬山)에 노닐면서 이곳에 있는 폭포를 두고 시를 지었다. 《李白, 望廬山瀑 布詩》
783
35) 진(晋) 나라 때 명필 왕 희지(王羲之)의 자이다. 그는 영화(永和) 9년(353)에 당시의 명사(名士) 41인과 더불어 회계산음(會稽山陰)의 난정(蘭亭)에 모여 시회(詩會)를 가졌는데, 왕 희지가 난정 의 서문을 지었다. 《晋書 王義之傳》
784
36) 당(唐) 신인 두 보(杜甫)의 자이다. 그는 중국 호남성(湖南省)에 위치한 동정호(洞庭湖)에서 지은 시가 있다. 《柱甫, 登岳陽樓詩, 長沙送李十一衒詩》
785
37)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인 소 식(蘇軾)을 가리킨다. 그는 원풍(元豊) 5년(1082)에 적벽강(赤壁江)에 노닐면서 적벽부(赤壁賦)를 지었는데, 전적벽부(前赤壁賦)는 이 해 7월에, 후적벽부(後赤壁賦)는 10월에 각각 지었다. 《東坡年譜》
【원문】풍악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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