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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공의 최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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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 1
심훈(沈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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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공의 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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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아침에 직업을 잃고 서울의 거리를 헤매다니던 나는 넌덜머리가 나던 도회지의 곁방살이를 단념하고 시골로 내려왔다. 시골로 왔대야 내 앞으로 밭 한 뙈기나마 있는 것도 아니요 겨우 논마지기나 하는 삼촌의 집에 다시 밥벌이를 잡을 때까지 임시로 덧붙이기 노릇을 할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나이 어린 아내와 두 살 먹은 아들놈 하나밖에는 딸린 사람이 없어서 식구는 단출하지만 한 푼의 수입도 없는 터에 뼈가 휘도록 농사를 지으시는 작은 아버지의 밥을 손끝 맺고 앉아서 받아먹자니 비록 보리곱삶이나마 목구멍에 넘어가지를 않을 때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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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호미 자루 한 번 쥐어보지 못한 책상물림이기로 번들번들 놀고만 있기는 너무나 염치가 없어서 괭이를 들고 밭으로 내려가서 덥적거리면 삼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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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너더러 일을 해달라니? 어서 들어가 글이나 읽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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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시면서 사랑방으로 들여쫓듯 하신다. 어떤 때는 책상 속에서 좀이 먹은 논어와 시전 같은 길길을 꺼내 놓고 꿇어앉아서 읽으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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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견딜 수 없이 무료하고 단조로운 그날 그날을 몸을 비비 틀면서 보내노라니 서울의 친구들과 네온의 거리가 몹시 그리워졌다. 눈을 뜨면 하고 한날 들여다보는 아내의 얼굴도, 나날이 늘어가는 어린 것의 재롱도 다 싫어졌다. 감방 속 같이 침침한 뜰아랫방 속에서 사흘씩이나 걸러서 오는 신문이나, 광고까지 뒤져보고 흘미지근한 호흡을 계속하여 누워 있는 나 자신에게도 그만 염증이 나서 저엉 가슴이 답답할 때에는 자살이나 해버렸으면 하는 공상까지 하게쯤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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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적에는 동저고리 바람으로 뛰어나갔다. 신작로가의 주막으로 가서 막걸리를 두어 사발이나 약 먹듯이 들이키고는 논틀 밭틀로 쏘다니며 휘파람을 불어 우울한 심회를 억지로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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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전 몇 원 남지도 않은 퇴직금을 야금야금 막걸리로 녹여버리면 어떡할 작정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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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아내에게 바가지를 긁히면서도 주막에나마 가지 않으면 말벗 하나 없는 곳이라 갑갑해서 미쳐날 것 같은 데야 어찌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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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 아닌 궂은 비가 온종일 질금거리는 어느 날 황혼 때였다. 그 날도 나는 침울한 방 속에서 뛰어나와 급한 볼 일이나 있는 것처럼 우산도 안 받고 주막거리로 건너갔다. 아궁이 앞에서 술을 데우는 노파의 부지깽이를 빼앗아 가지고 검불을 긁어 넣으면서 비에 젖은 바지를 말리는데 무엇이 곁에 와서 바시락거리더니 살금살금 발등을 간지른다. 고개를 홱 돌리니 그것은 토시짝만한 노랑 강아지였다. 한 놈, 두 놈, 세 놈이 앙금앙금 기어나와서 머리를 마주 모우고 아궁이 앞에 쪼그리고 앉더니 나부죽이 엎드려 불을 쪼이는 꼴이 여간 귀엽지가 않다. 나는 그 중에 한 놈을 끌어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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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이 요것들 보게. 언제 이렇게 새끼를 낳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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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주인마누라에게 묻는데 나무가리 속에서 별안간 어미개가 으르렁거리며 달려들 형세를 보여서 얼떨김에 새끼를 놓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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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거 나 하나만 논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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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주인마누라에게 두세 번 단단히 부탁을 한 뒤에도 나는 날마다 강아지가 보고 싶어서 저녁 때면 주막을 찾아갔다. 어미개 몰래 한 놈씩 안아주고 함치름한 털을 어루만져주고 앉았노라면 은연 중에 적으나마 무슨 위안을 받는 듯싶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젖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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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젠 요놈은 내가 가져갈 테요”하고 여섯 마리 중에서 제일 탐스러운 수컷을 껴안으니까 주인마누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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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되유. 그건 우리가 멕일테유. 저 문어리나 가져가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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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내놓지를 않는 것을 술상을 들고 방으로 들어간 틈을 타서 바둥거리는 놈을 번쩍 들어 얼른 두루마기 속에다 숨겨가지고 휭낳게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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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더니 누렁이는 강아지 때부터 그 생김생김이 출중하였다. 순전한 조선의 토종이면서도 셰퍼드니 셋터니 하는 서양개만큼이나 두 눈에 총기가 들어보이고 목덜미를 쥐면 가죽이 한 줌이나 늘어나서 얼마든지 자라날 여유를 보였다. 게다가 털은 금벼이삭 같이 싯누런 숫놈이라 개를 싫어하는 아내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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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탐스럽게 생긴 강아지는 첨 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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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내가 자는 방 윗목에다가 희연 궤짝을 들여놓고 작은 어머니 몰래 목화송이를 훔쳐다가 그 속에 깔아주고는 밤마다 토닥토닥 두드려 재워주었다. 누렁이는 자다말고 앙금앙금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서 아내는 막중중하고 징글맞다고 자막대기로 때리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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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 두 가만 둬. 우리 애기 친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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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말리면서 정말 둘째 자식이나 되는 것처럼 폭 끌어안고 잤다. 그러면 누렁이는 어미의 품인 줄 아는지 조이삭만한 꼬랑지를 살래살래 흔들다가 어떤 때는 토끼처럼 콜콜 하고 코를 다 골며 잤다. 새벽녘이 되어 머리맡에서 바시락거리는 소리에 눈을 떠보면 누렁이는 미닫이틀에 가 매달리듯 하고 앞발로 창호지를 박박 긁으면서 끙끙댄다. 나는 처음에는 그 뜻을 몰랐다. 그래서 문을 열어주었더니 간신히 문지방을 기어넘어 밭으로 내려가서 똥을 누고는 흙을 후벼파서 그 자리를 덮고야 들어오는 것이었다. 그러면 나는 누렁이의 발을 닦아주고 다시 이불 속에서 언 몸을 녹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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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늦잠이 들면 가슴과 겨드랑이와 얼굴을 싹싹 핥아서, 간지럼을 참다못해 사정없이 목덜미를 쥐어 집어던지면 다시 기어들고 기어들어선 또 손등이나 발바닥을 싹싹 핥는다. 귀찮기는 하면서도 어린애가 재롱을 부리듯 하는 꼴이 하도 귀여워서(어린 놈도 정말 제 동생처럼 강아지를 귀여워하고 서로 붙안고 놀았다) 나는 강아지를 끌어안고 입을 다 맞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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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는 동요를 불러주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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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소원 누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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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광실 아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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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손만대 나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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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석종신 올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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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면서 놀려주는 것이 일과 중의 하나가 되었다. 그러는 동안에 나는 늦잠을 자는 버릇이 떨어졌고 개는 하등의 동물이라는 관념이 없어졌다. 성미가 깔깔한 아내까지도 누렁이를 어린 식구의 한 사람으로 여기고 자기의 밥을 먼저 떠주는 때까지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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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렁이는 크는 것이 눈에 보이는 듯이 무럭무럭 자랐다. 두어 달쯤 되니까 허리가 늘씬해지고 키가 자가웃이나 되었다. 작은 어머니에게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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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애는 개하구 헝겊붙이나 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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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꾸중까지 들어가면서 내 밥의 대궁을 일부러 남겨주고 손수 솥바닥의 콩누룽지를 박박 긁어다가는 어린애는 안 주고 누렁이를 주곤 하였다. 그렇지 않아도 한창 자랄 고비라 누렁이는 먹는대로 우쩍우쩍 자라니까 한 방에 데리고 자기가 징그러워서 마루 밑에 공석떼기를 깔아 살림을 내고 구융을 파서 밥그릇 장만까지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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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밤에 뒷간에 가면 반드시 따라와 턱을 고이고 앉아서 주인을 지키고 어느 때에는 주막에서 술이 취해서 비틀거리고 오다가 눈 위에 가 쓰러진 것을 보고는 집으로 달려가서 아내의 치맛자락을 물고 끌고 온 덕택으로 까딱하면 얼어 죽을 것을 살아났다. 그래서 그 뒤로 누렁이는 나의 사랑을 곱절이나 더 받게 되었던 것이다. 사실 여우나 늑대 같은 짐승의 출몰이 심한 산 중에는 누렁이만 앞을 세우면 무장한 보호병정을 데리고 다니는 것만큼이나 든든하였다. 동시에 누렁이는 장난이 늘었다. 취각이 어찌나 예민한지 내가 이웃집으로 마실을 가면 댓돌 위에 십여 켤레나 벗어놓은 고무신 가운데서 내 신을 맡아서 알고는 살그머니 물어다가 저의 집 신돌에다가 놓고는 시침을 떼기가 일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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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럭저럭 누렁이가 내 손에 길리운지 거의 일 년이나 되었다. 원체 숙성한 놈이라 벌써 암캐의 꽁무니를 따라다니고 봄철이 되니까 암내를 내고 이웃집으로 오입을 하러 가서는 이틀 사흘씩 들어와 자지를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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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년한 총각 모양으로 목이 패었는데 베이스로 컹컹컹 짖는 목소리는 아주 남성적으로 우렁찼다. 동네의 개들에게는 왕 노릇을 하거니와 한 번 목청껏 짖고 내달으면 동냥아치나 중들은 문간에 얼씬도 못한다. 밤중에 안 마루속에서 짖으면 사랑채의 벽이 울리고 장지가 떨렸다. 도둑을 지키는 천직에 충실한 것은 물론 집안 식구의 밤출입까지 감시를 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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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나는 두어 달 동안이나 서울로 올라가서 취직 운동을 하다가 실패를 하고 두 어깨가 축 처져가지고 내려왔다. 가족을 대할 면목조차 없어서 기신없는 걸음걸이로 동네 밖에 장승이 선 고개를 넘어오는데 다박솔 밑에 누우런 것이 쭈그리고 앉았다가 어느 틈에 나를 보았는지 말처럼 네 굽을 몰며 달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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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 누렁이 잘 있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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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려니까 누렁이는 반가워서 견딜 수가 없는 듯이 길길이 뛰어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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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응 으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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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어린애가 응석을 하는 듯한 이상한 소리까지 하면서 사뭇 몸부림을 하는 꼴을 볼 때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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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어 누가 나를 이다지 반겨주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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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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귓바퀴에서 바람이 일도록 꼬리를 흔드는 누렁이의 목을 껴안아 주려니 부지 중에 콧마루가 저려지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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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안에 누렁이는 엄청나게 컸다. 뒤에 따라오던 동행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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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어이 그 가이! 개호주만 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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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혀를 빼문다. 처음 보는 사람의 눈에는 더 한층 커 보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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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와서 들으니 누렁이는 내가 없는 동안 날마다 아침 저녁으로 장승박이 언덕으로 올라가 북쪽 하늘을 우러러 한바탕씩 짖고, 내가 타고 가던 합승차가 지나간 다음 내리는 사람이 없는 것을 확실히 안 뒤에야 집으로 돌아오기를 하루도 빼놓지 않았다 한다. 개가 사람 한 몫도 더 먹는다고 걱정을 하시던 작은 아버지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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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건 영물이야, 함부로 다루지 못할 짐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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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시고 이를테면 경이원지(敬而遠之)를 하시게까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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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렁이는 자랄수록 얼굴바탕이 넓어지고 두상이 둥글고, 이는 쓰렛발 같은데 성미만 나면 싯누런 앞 털이 갈기처럼 뻐쭈하게 일어서는 것과 동체가 한 아름이나 되는 대신에 아랫도리가 훌하게 빠진 것이 여불없는 사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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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지쪽에서 낮잠을 자다가 기지개를 켜며 딩구는 것을 보면 천연 동물원에서 본 사자와 같았다. 그래서 나는 그 때부터 ‘누렁아’하고 부르던 아명을 버리고 ‘사지’라는 별명을 지어 불렀고 어느 때에는 친한 친구를 부르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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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황공(黃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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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관명까지 지어서 불러주었다. 아닌 게 아니라‘황공’이라는 점잖은 이름이 누렁이에게는 잘 맞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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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황공은 나쁜 버릇이 생겼다. 워낙 걸대가 커서 여간 누른밥 찌꺼기쯤으로는 양이 차지를 않는지 쌀광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가 참새도 날치를 하고, 수챗구멍을 지키고 있다가는 쥐도 움켜먹었다. 무엇이든지 벼락불똥같이 달려들어서 한 번만 덥석하면 그만이다. 그 동작은 꿩을 잡는 매만큼이나 빨랐다. 만일 돈 있는 사람의 사냥개 노릇을 하거나 외국에 태어나서 몇만 원짜리 정탐개가 되었더면 우유와 고기만 먹고 털 위에 털옷을 입고서 사람 이상의 호강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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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두 팔자가 사나워서 조선에도 시골구석에 태어나 누른밥 한 구융도 배불리 못 얻어먹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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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면서 나는 황공을 몹시 가엾이 여겼다. 그래서 막걸리나 마시고 들어오는 날은 아내 몰래 내 밥을 통으로 쏟아주는 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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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육식에 입맛이 붙은 황공은 고기가 먹고 싶어 죽을 지경이던가 하루는 내가 들로 산보를 다니는데 줄곧 따라다니다가 돌아오는 길에 범용이네 집 마당에서 닭이 서너 마리나 모이를 쪼아먹는 것을 보고 꼬리를 사타구니에다 끼고는 넓죽 엎드리더니 별안간 껑충 뛰어올라 닭을 물려고 든다. 닭은 깩깩깩하고 비명을 지르면서 사방으로 풍기고 암탉은 죽을 힘을 다해서 지붕으로 날아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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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 쫓던 개 지붕만 쳐다본다’는데(설마 물기야 하랴) 하고 장난으로만 여기고는 멀찌감치 떨어져서 구경만 하고 섰으려니까 사지는 전신의 용기를 다해서 검정 수탉을 쫓아가더니 그만 덥석 물었다. 몸이 둔한 커다란 수탉은 땅 위에서 서너 자쯤밖에 솟지를 못하고 푸드덕거리며 날다가 기어이 날갯죽지를 물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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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탉들은 뜻밖의 환난을 당하고 지붕 위에서 꼬꼬댁거리는데 사지에게 물린 수탉은 차마 들을 수 없는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물려간다. 범룡이네 집에서는 닭장에 든 족제비나 튀기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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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개! 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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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사지를 쫓아간다. 사지는 눈 꿈쩍하는 사이에 산으로 치달았다. 아마 포수에게 놀랜 노루도 그만큼 빨리 뛰지는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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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개의 주인이 되는 책임상 단장을 휘두르며 헐레벌떡거리고 사지의 뒤를 쫓아 올라갔다. 처음에는 닭의 털이 버들개지처럼 나는 것만 보이더니 거의 한 간통씩이나 뛰어간 사지는 홀연히 그림자를 감추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개의 발자국과 털이 떨어진 것만 대중하고 숲 속으로 산모퉁이로 천방지축 따라갔다. 나무등걸과 돌부리에 발끝을 채이면서 거의 삼마장이나 숨이 턱에 닿아서 추격을 하였는데 바다로 향한 모래 언덕까지 와서는 발자국조차 끊어졌다. 황혼 때라 어둑어둑해지는 그 근처를 헤매이며 더듬어 보았으나 개도 닭도 온 데 간 데가 없는 거야 어찌하랴. 나는 망단해서 소매로 이마의 땀을 씻고 섰는데 등 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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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게 아녀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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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나중에 내 뒤를 따라온 범룡이가 외쳤다. 가뜩이나 휘젓한 생각이 들던 판이라 깜짝 놀라 돌아다보니 아닌 게 아니라 바위 밑에 가서 닭의 꼬리가 뻐쭈하게 꽂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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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잡아먹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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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어쩐지 손을 대기가 싫은 것을 혹시나 하고 꼬랑지를 끌어당기니까 묵직한 닭의 시체가 달려 올라온다. 닭은 그 날카로운 이빨에 정통으로 목줄띠를 물려 철철 흘린 피가 털 위에 엉겨 붙었는데 눈을 뽀얗게 뒤집어쓰고 죽은 꼴은 끔찍해서 바로 볼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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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눔의 개가 여우 혼신이 씌웠나. 어쩌믄 이렇게 감쪽 같이 파묻었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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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범룡이는 울상이 되었다. 여우는 닭이고 무엇이고 물어다가 이렇게 파묻었다가는 며칠 뒤에 썩혀가지고 먹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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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어디선지 부시럭거리는 소리가 나기에 둘러보려니 맞은편 소나무 밑에 웅숭그리고 앉아서 나를 노려보는 사지의 파아란 광채를 발하는 눈과 마주치자 가슴이 선뜻 하였다. 사지가 정말 사자처럼 무서웠던 것이다. 나는 얼떨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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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놈의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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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소리를 버럭 지르며 돌을 던졌다. 몹시 밉살스럽기도 하고 일변 무섭기도 해서 연거푸 돌멩이를 던졌다. 사지는 있는 힘을 다 들여서 물어온 것을 주린 김에 오붓하게 뜯어먹으려다가 그만 주인에게 빼앗겨서 불평이 가득 찬 눈으로 나를 흘깃흘깃 돌아다보다가 어디론지 자취를 감추었다. 아마 다른 사람이 닭을 빼앗았더면 한사코 달려들어 물어박질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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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값은 물어주기로 하고 죽은 닭을 들고 내려와 보니 사지는 먼저 집에 와 있었다. 죽을 죄나 지은 듯이 슬금슬금 내 눈치만 보고 꼬리를 사리며 피해 다니는 것을 버르장이를 가르쳐 줄 양으로 붙들어다가 중문간에다 몰아넣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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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놈 또 그 따위 짓을 할 테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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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사설을 해가며 빗자루로 두드려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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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공은 너무 귀여워만 해주던 주인의 과도한 폭력행동에 놀라서 꺼겅껑 하고 소리를 지르고 죽는 시늉을 하며 엄살을 한다. 그러면서도 감히 달려들어 반항은 하지 못하는 것이 가엾기도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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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그 따위 짓을 했담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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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매를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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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녁에 나는 닭고기 볶은 것을 맛있게 먹었다. 개의 이빨에서 무슨 독이나 퍼지지 않았나 하고 꺼림칙하기는 했지만 여러 달 동안 고기란 구경도 못해서 허수증이 났었고 나는 닭고기를 편기하는 터라 기름진 살은 물론 뼈까지 으지직으지직 깨물어서 고소한 국물까지 빨아먹었다. 먹다가 마당에서 텁석텁석하는 소리가 들리기에 내려다보니 배가 홀쭉하게 꺼진 황공이 구융에다 머리를 틀어박고 멀겋게 탄 숭늉 찌꺼기를 핥아먹고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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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황공이 여간 불쌍해 보이지 않았다. 천신만고를 해서 호젓하게 뜯어 먹으려고 물어가다 파묻은 닭을 주인에게 송두리째 빼앗기고 고기 냄새를 맡아서 회만 동했을 텐데 주인에게 난생 처음으로 매까지 호되게 얻어맞고는 숭늉찌끼로나마 주린 창자를 채울 수 밖에 없는 황공의 신세가 눈물겨웁도록 가엾어 보였다. 황공이 말을 할 줄 안다면 동네방네로 친구들을 찾아 다니며 ‘내가 먹을 것을 강탈해가지고 몽둥이찜질까지 한 뒤에 그것을 횡령취식한 주인의 횡포가 얼마나 분하고 얼마나 원망스러우냐’고 억울한 사정을 하소연하였을 것이다. 그래서 황공을 동정하고 이해관계가 깊은 근처의 개들이 일치단결을 해가지고 이빨을 갈며 으르렁거리고 달려들면 나는 어찌할 것인가? 나를 여지없이 물어박지르고 뭇 개가 다투어가며 내 살을 물어뜯으면 과연 저항할 힘이 있을까? 그들의 정당한 보복에 대해서 변명할 것이나마 있을 것인가 하고 생각해보니 황공을 대하기가 두렵고 부끄럽기도 하였다. 개가 고기가 먹고 싶었던 것이나 내가 육식이 하고 싶은 것은 그 본능에 있어서 조금도 다름이 없다. 저보다 약한 것을 잡아먹고 저의 식욕을 채우는 것을 사람들이 떳떳하게 여기는 것과 같이, 남의 살을 뜯고 피를 빨지 못하는 사람을 도리어 못난 놈 빈충맞은 놈으로 여기는 것과 같이, 개의 경우에 있어서도 사지의 행동이 잘못되지 않은 것이 분명치 않은가? 눈앞에 먹을 것을 보고 달려들어 문 것은 사지가 다른 저의 동족보다도 용감하기 때문이다. 보통개보다 잘난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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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을 잡아간 사지에게 무슨 죄가 성립되느냐. 개 자신으로 보아서도 정당한 행위가 아니었더냐. 구태여 잘못이 있다면 사지에게는 날짐승이라도 날치를 할 수 있는 힘과 날램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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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사지가 출중하게 잘나고 날래인 것은 결코 저 자신의 의사로 된 것은 아니니 그것도 조물주의 장난인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나는 나보다 약한 개가 물어다 먹으려던 그 개보다도 약하였던 닭을 잡아서 먹었다. 개의 토죄를 해가며 때려주기까지 하고, 바로 그 개가 친히 먹을 닭을 뼈다귀까지 아지작아지작 깨물어 먹고는 입을 닦았다. 그나마 숭늉찌끼로 주린 창자를 채우고 섰는 사지를 내려다보고 동정 비슷한 미안한 생각이 난 것도 그 닭을 맛있게 먹고 난 뒤이다. 그러고보니 남을 동정한다는 것도 제 배가 부른 뒤에 식곤증 비슷이 일어나는 미지근한 심리작용이요, 양심의 가책을 받는다는 것도 제 욕망을 채운 뒤에 생기는 얄미운 자기변호에 지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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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지가 제 육체의 힘을 다해서 닭을 문 것은 억제할 수 없는 본능이 시키는 용감한 행동이다. 그러나 그 뒤를 쫓아가서 물어놓은 것까지 파헤쳐다가 힘 안 들이고 먹은 내 행동은 개가 부끄러울 만큼 가증하고 비겁하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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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지를 달래주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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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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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불러서 먹다 남은 닭의 내장과 뼈다귀를 던져주었다. 그러나 황공은 본 체도 안하고 머리를 돌리고는 대문 밖으로 나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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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 황공은 그다지 귀여워해주던 주인을 곁눈으로 눈치만 보고 가까이 오지를 않았다. 내가 눈에만 뜨이면 비실비실 피해가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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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황공 내가 잘못 했네 미안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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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사과를 하여도 들은 체 만 체하고 외면을 하고는 동네 집으로 가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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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며칠 뒤에 황공은 집에서 기르는 닭을 물었다. 둥우리에서 알을 낳고 꼬꼬댁거리다가 내려오는 암탉을 물었다. 알을 꺼내려고 나온 아내의 눈앞에서 여봐란 듯이 물고 눈 깜짝할 사이에 뒷산으로 치달았다. 물려가는 닭의 비명은 차마 들을 수 없는데 하얀 털이 마당 가득히 눈송이처럼 휘날렸다. 집에서 기르는 닭 중에서 값이 제일 비싼 레그혼인데 아이 잘 낳는 여편네 모양으로 앙바틈하게 생겨서 오리알 만큼씩이나 한 알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낳던 씨암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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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보다가 뛰어나간 나는 어안이 벙벙해서 마루 끝에 서서 바라다 볼 뿐이요 개를 추격하려고는 하지 않았다. 먼저 먹은 후답답으로 두번째 닭을 빼앗을 염치가 없었던 것이다. 머슴이 작대기를 들고 쫓아가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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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버려 둬라, 내버려 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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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는 호령하듯 해서 말렸다. 같은 동물로써 피차에 제 힘으로는 억제할 수 없는 본능의 발작을 막을 권리가 없었던 것이다. 이를테면 남의 생존권을 방해할 아무 이유도 찾을 수 없었고, 남의 노력을 중간에서 착취하는 죄를 두 번 다시 짓지 말려 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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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촌 내외분은 ‘저 개 없애라’고 걱정이 대단하신데 그 뒤로 날고기에 입맛이 붙은 사지는 점점 맹수성을 띄우고 동네집 돼지 새끼를 두 마리나 잡아먹었다. 난 지 얼마 안 되어 젖살이 포동포동 찐 것이 울 밑으로 나와서 어릿어릿하는 것을 물어다가 전과 같은 수단으로 흙을 허비고 파묻었다가 꺼내먹은 눈치다. 나는 돼지 임자에게 시비를 듣고 돼지 값을 물어주는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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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 사지는 집에 잘 들어오지를 않고 물론 밥도 먹지를 않았다. 이제는 입이 높아져서 누룽지 같은 것은 입에 대기도 싫은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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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지의 행동이 너무나 정도가 지나치니까 동정이 차츰차츰 아무 죄없이 비명에 죽은 닭과 돼지에게로 갔다. 동시에 사지가 때려죽이고 싶도록 미워졌다. 약육강식도 그 도를 넘어서 같은 가축끼리 화목하게 지내지를 못하고 가장 참혹하고 잔인한 수단으로 제 배때기를 불리우는 사지가 극도로 미웠다. 일종의 의분까지 느껴지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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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촌 내외분은 물론이지만 동네 사람들은 나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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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댁의 개 때문에 닭은커녕 돼지도 못 길러먹겠소. 그래 그 따위 버르장이를 하는 걸 그대루 버려둔단 말요? 조만간 어린애꺼정 물어갈 테니 아아니 살인하는 것까지 당신의 눈으로 봐야만 시원하겠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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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팔을 걷으며 시비를 걸었다. 나는 속으로 (이런 말을 들어도 싸다)하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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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을 물어줬으면 고만이지 웬 여러 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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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버티었다. 억지의 소린 줄 모르는 바는 아니나 그렇다고 사지를 차마 백정에게 내줄 수는 없었다.
101
(저것을 그대로 뒀다간 암만해두 큰 일을 저지르겠는데……)
102
하고 나의 어린 것까지 염려는 되건만 그다지 사랑하던 사지가 올가미를 쓰는 거야 볼 수가 없지 않은가?
103
그렇지 않아도 어느 날은 동네 사람들이 장거리에서 개백정을 데리고 와서
104
“자아 고집 세지 말구 고만 요정을 냅시다. 물건이 그렇게 크니 다른 개 값 갑절을 드리지요”
105
하고 일 원짜리 지전 넉 장을 내민다. 저희끼리 수근거리는 소리를 들으니 뒷다리는 아무개가 갖다 먹고 내보는 누구누구가 차지하는 등등 잡아먹을 배비까지 차리고 온 눈치다. 어쩌면 가마 속에 물까지 끓여놓고 왔는지도 모른다.
106
“쓸 데 없는 소리 말구 어서들 가우. 내 손으로 기르는 개를 돈 받고 팔아먹을 듯싶소?”
107
하고 나는 처음부터 순순히 말대꾸를 하다가 부득부득 조르는 것이 밉살스러워서
108
“가라면 갔지그려, 남의 집엘 떼를 지어와서 웬 야료들야? 백 원을 내두 안 팔 테니 헐대루들 해봐!”
109
하고는 마루 끝에 놓은 지전을 발길로 걷어찼다. 그 때 마침 사지가 안 마루 밑에 누웠다가 집에서 떠들썩하니까 그 우렁찬 목소리로 몇 마디 컹컹 짖으며 나온다. 개백정은
110
“얘 이눔 엄청나구나!”
111
하고는 시꺼멓게 그을은 상판에 살기 도는 눈초리로 사지의 목덜미에 눈독을 들이며 가까이 온다. 그 자의 허리춤에는 올가미 한 끝이 쳐진 것이 보였다.
112
사지는 제 앞으로 다가오는 개백정을 흘낏보더니 그 자가 제 동무를 옭아 가는 것을 보았는지 한사코 짖으면서도 겁이 나서 냉큼 달려들지를 못한다. 급한 김에 나는
113
“사지야!”
114
하고 목소리를 높여 불렀다. 사지는 내 목소리를 듣더니 비호 같이 마루 위로 뛰어올라 내 곁으로 바싹 붙어서면서 귀가 먹먹하도록 짖어댄다. 여느 때에는 마루로 뛰어오르는 버릇이 없었고 더구나 그 동안 나하고는 아주 불상견인 사이였는데 위급한 경우를 당하니까 주인에게로 달려들어 구원을 청하는 것이다. 사지의 위풍에 백정도 혀를 내두르며
115
“아아이 그눔의 개 사람 잡겠네”
116
하고 게두덜거리며 돌아섰다. 사지는 그제야 마음이 놓인 듯이 짖기를 그치고 내 앞에 가 앞발을 뻗고 너부죽이 엎드리며 꼬리를 젓는다. 나는 그 눈과 동작에서 무한한 감사와 다시 살아난 기쁨을 보았다.
117
“황공 너 이눔 아주 혼났지? 또 그 따위 짓을 해봐라. 그 땐 이렇게 올감지를 쓴다”
118
하고 두 손으로 목을 조르며 올가미를 씌우는 흉내를 내어보았다. 그러니까 그 얼굴에는 동물의 사나운 빛이 사라지고 내가 이불 속에서 끼고 자던 어렸을 때의 유순하고 천진스런 표정이 나타났다. 나는 그 애원하듯, 모든 죄를 뉘우치는 듯한 누렁이의 얼굴을 한참이나 들여다보았다. 담배 한댓거리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119
그 뒤로 황공은 주인에게 새로이 충성을 맹세한 듯 전보다도 더 나를 따랐다. 잠시도 곁을 떠나지 않으며 낯 서투른 사람은 근접도 못하게 굴었다.
120
동시에 나 역시 황공에게 대한 동정이 더 깊어가는 것을 깨달았다.
121
그런 일이 있은 후 한 달이 되었다. 저녁 때인데 불시에 온 동네가 떠들썩하기에 나는 (사지가 또 무슨 일을 저질렀나) 하고 안마당으로 들어가보니 사지는 장독대 곁에서 유산태평으로 네 활개를 뻗치고 낮잠을 자고 있었다. 조금 있자
122
“미친개가 들어왔다!”
123
“수만이네 개가 물렸다!”
124
“영준네 개두 물렸다!”
125
하고 외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나는 우리 사지가 물릴까 보아 대문을 걸고 몽둥이를 들고 앉아서 미친개가 오기만 하면 두드려 잡을 작정을 하고 기다렸다.
126
아니나 다를까 조금 뒤에 털이 시꺼멓고 거의 사지만큼이나 큰 놈이 동네 사람에게 쫓겨서 혀를 기다랗게 빼물고 쏜살 같이 내 앞으로 달려왔다. 동네 사람들은 사지를 내주지 않은 감정이 있어서 그러는지, 몸들을 사리느라고 그러는지 막대기를 들고도 먼발치로 바라다보고만 서있다.
127
미친개는 눈깔이 썩은 생선처럼 새빨갛게 뒤집혔는데 개소리 같지 않은 이상한 소리를 지르더니 다짜고짜 내게로 뛰어오른다. 나는
128
“이이개! 이이개!”
129
하고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몽둥이를 휘두르나 길길이 뛰어오르는 미친개를 막아낼 수가 없다. 개는 미치기만 하면 평소보다 몇 곱절이나 기운이 늘고 맹수 이상으로 날래지는 것인데 주사는커녕 의료기관도 없는 이 시골구석에서 미친개에게 물리면 사람도 미쳐나서 개소리를 하다가 죽는다는 말을 들은 나는 개와 싸우는 동안 머리끝이 쭈뼛거리고 아랫도리가 사시나무 떨리듯 하였었다.
130
삼촌은 마침 초상집에 가시고 머슴도 들에 나가고 없는데 안에서들은 내다보고
131
“아이 저를 어쩌나 저를 어쩌나?”
132
하고 부들부들 떨기만 할 뿐. 미친개는 어느 겨를에 휙 하고 내 뒤로 돌아와서 바지자락을 물고 늘어졌다. 하마터면 종아리를 물릴 뻔 했는데 겁결에 댓돌을 헛때려서 몽둥이는 두 동강에 났다. 그러니 맨손으로는 더구나 당할 장사가 없다. 쩔쩔매는 찰나에 미친개는 시이익 하더니 이리 같은 이빨로 내 발뒤꿈치를 물었다.
133
“애고머니! 저를 어쩌나?”
134
하는 아내의 외치는 소리가 들리자 나는
135
“사지야!”
136
하고 소리를 버럭 질렀다. 저엉 형세가 급하니까 구원병을 청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137
사지는 밖에서 내가 개와 싸우는 줄 알았는지 골통이 깨어져라 하고 아까 걸어놓은 대문짝을 막 들이받았다. 그래도 열리지를 않으니까 한 길이나 되는 수수깡이 울타리를 훌뛰어 넘어서 안마당으로 내닫자
138
“으르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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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를 한 번 지르며 목덜미 털이 고슴도치처럼 일어서더니 주춤하고 물러서는 체 하다가 시익하고 미친개에게로 돌격을 하였다. 대번에 미친개의 넓적다리를 물어박지르는 바람에 나는 구원을 받았다. 요행 고무신 위로 물렸기 때문에 상처는 나지 않았다.
140
사지와 미친개는 맹렬한 단병접전이 시작되었다. 식식거리며 으르렁거리며 업치락 뒤치락 단판싸움을 한다. 그제야 동네 사람들은 막대기와 쇠시랑 같은 것을 들고 모여들었다. 나도 사지를 응원하려고 막대기를 들고 덤볐으나 서로 한 몸뚱이가 되어 딩구는 것을 얼러칠 수도 없어서 손에 땀만 쥐며 형세를 관망할 수밖에 없었다.
141
사지는 참으로 용감하였다. 그러나 귀와 앞다리에는 시뻘건 피가 줄줄이 흐른다. 나는 차마 그대로 볼 수가 없어서
142
“어느 개가 죽든지 난 모른다”
143
하고 쇠시랑을 뺏어들고 내 앞으로 쫓아오는 미친개의 골통을 겨냥해서 힘껏 내려 갈겼다. 미친개는
144
“껑”
145
하더니 그 자리에서 혀를 빼물고 거꾸러졌다. 사지는 이제는 저항을 못하고 버둥거리는 미친개를 닥치는 대로 물어뜯으며 실컷 분풀이를 한다.
146
나는 그 독한 이빨에 물려서 얼마 아니면 미쳐 죽게 된 것을 사지의 결사적인 응원으로 살아났다. 사지는 내 생명을 두 번째나 구해준 은견(恩犬)인 것이다. 나는 이마의 땀을 씻던 손수건으로 사지의 피를 ─ 나를 위해서 대신 흘려준 검은 피를 씻어주었다. 그러나 사지가 미친개에게 피가 나도록 물린 것이 여간 걱정이 되지 않아서 밤이면 잠을 편히 못잤다. 동네 사람들은
147
“저 개를 그냥 뒀다간 정말 큰 일 나우. 마저 잡아 없애야지 저 큰 게 미쳤다간 성할 사람이 없을 껄 뻔히 알면서……”
148
“아아니 그래 동네 애들이 모조리 물려서 개소리를 하고 죽는 걸 봐야 시원하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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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이번에는 아주 위협적으로 대들었다.
150
“예이끼 개만두 못한 자들 같으니라구. 너희는 내가 물리는 걸 멀거니 보구만 섰다가 인제 와서 무슨 수작이냐? 물려두 내가 먼첨 물리구 죽어두 내가 먼첨 죽을 께니 걱정들 말어!”
151
하고 나는 어찌나 성이 나는지 막 욕설까지 해서 보냈다.
152
그러나 실상인즉 나 역시도 몹시 걱정이 되어서 자전거를 얻어 타고 삼십리나 되는 장거리로 가서 미친개에게 특효가 있다는‘청가래’라는 약을 사다가 밥에 타서 몇 번이나 억지로 먹이고서야 조금 안심을 하였다. 그러면서도 혹시 눈이 붉어지지나 않나? 밥을 안 먹고 시룽거리지나 않나? 하고 하루도 몇 번씩 사지의 건강상태를 검사하였으나 다행히 조그만 이상도 보이지 않았다.
153
수만네 집 강아지와 영준네 개는 물려 그 날로 핑계가 좋은 김에 잡아들먹었다는 말을 들었다.
 
154
그런지 한 달쯤 뒤에 삼촌의 심부름으로 오십 리도 넘는 군청에 볼일이 생겨서 갔다가 비에 막혀서 사흘만에야 집에 돌아왔다. 갈 때에는 황공이 비를 줄줄 맞으면서 한사코 따라오는 것을 주막집 부엌에다 가두고 갔었는데 멀리 고개를 넘을 때까지도 황공의 원망스러이 짖는 소리가 들렸었다.
155
집에까지 오니 내가 출입했다가 들어왔건만 보면 길길이 뛰어오르던 황공이 눈에 뜨이지를 않는다. (혹시 나 없는 사이에 그 자들이 어쩌지나 않았을까?) 하는 불길한 예감이 언뜻 머리 속에 떠올라서 중문간을 들어서며 여전히 친구를 부르듯이
156
“황공!”
157
하고 점잖게 불렀다. 대답이 없다. 마루 밑에 공석을 깔아놓은 저의 침소에서도 저의 식당인 부엌에서도 황공은 그림자도 찾을 수 없다. 아내에게
158
“사지 어디 갔소?”
159
하고 물어보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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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갔는지 누가 알아요?”
161
하고 톡 쏘듯 한다. 며칠만에 돌아와서 어린 것은 아는 체도 안하고 개부터 찾는데 불평인 눈치다.
162
“아뿔싸 늦었구나!”
163
하는 후회가 쇠망치처럼 뒤통수를 갈겼다. 며칠 전에도 올개미까지 차고 와서 나 몰래 사지를 불러내다가 들키고 나를 노려보면서 돌아서던 개백정의 날카로운 눈초리가 내 가슴을 잘 드는 칼로 베는 듯이 선뜩했다.
164
나는 황공과 단짝인 암캐를 기르는 순돌이네 집으로 부리나케 갔다. 가보니 그 집의 개만 부엌 앞에서 북어 대강이를 뜯고 있다. 나는 순돌이를 불러내어
165
“우리 개 봤나!”
166
하고 될 수 있는 대로 침착히 물었다. 순돌이는 어름어름하고 냉큼 말대답을 못한다.
167
“아 우리 개 봤어?”
168
이번에는 조급히 채우쳐 물었다. 순돌이는 또다시 뒤통수만 긁더니
169
“제가 알어유. 주인이 안 계신 줄 알구 아마……”
170
“아마 어쨌단 말야?”
171
나는 소리를 버럭 지르며 순돌이 앞으로 달겨들었다. 순돌이는 겁이 나서 문칫문칫 물러서며
172
“저…… 건넛말서 잡어가는 소리만 들었시유”
173
한다. 설마 잡아가기야 했으랴! 하던 나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염통이 별안간 쿵쿵 기계방아처럼 찧는 것을 간신히 진정시키며
174
“아 뉘집에서 잡었어?”하고 바른대로 고해바치지 않으면 멱줄이라도 누를 듯이 엄포를 하니까 순돌이는
175
“아마 작은 말 응천네루들 뫼나 봐유”
176
하고 목소리를 떤다.
177
나는 비 뒤에 미끈미근 미끄러지는 길을 엎드러지며 곱드러지며 응천네 집으로 달음박질을 하였다. 걸음이 굼뜨인 나로서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빨랐다.
178
싸리짝문을 발길로 걷어차니 개의 독특한 비린내가 훅 끼쳤다.
179
“어떤 놈이 남의 갤 잡어 먹느냐?”
180
나는 호통을 하며 더운 김이 연기처럼 서리어 나오는 부엌으로 불쑥 머리를 들이밀었다. 동네의 늙수그레한 축들이 칠팔 명이나 쭈그리고 앉았다가 내 호통에 놀라서 벌떡 일어선다. 하도 서슬이 푸르니까 하나 둘 슬금슬금 꽁무니를 빼는데 부뚜막을 보니까 컴컴한 가마 속의 물이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나의 시선이 김과 연기에 싸여 어두침침하던 부엌바닥으로 달리자, 이를 어찌하랴?! 백정 놈이 창칼로 황공의 가죽을 벗겨가지고 그 가죽에 붙은 살을 싸악싸악 발르고 있지 않은가. 그 것을 들여다본 나는 두 눈이 벌컥 뒤집혔다. 여전히 독살스러운 눈을 치뜨고 할끔 쳐다보는 개백정의 배를 갈라 간을 꺼내서 씹고 싶도록 미웠다.
181
“이눔아! 이 잡어먹을 눔아!”
182
하고 부르짖으며 이를 부드득 갈다가
183
“이 이눔! 너두 죽어봐라!”
184
하고 단장을 번쩍 들어 개백정의 어깨를 힘껏 후려갈겼다. 개백정은
185
“어이쿠!”
186
하고 고개를 푹 수그렸다가 칼을 들고 일어나 반항을 하려는 것을
187
“이 개만두 못한 눔 어딜 덤벼!”
188
하고 물푸레 단장 끝으로 그 자의 앙가슴을 총창으로 찌르듯 푹 들이질렀다.
189
그 자는 개소리처럼
190
“깡!”
191
하고 비명을 지르고 꼬꾸라지더니 몸뚱이를 발에 밟힌 지렁이처럼 뒤튼다.
192
동내 사람들은
193
“아아니 미친개를 잡았는데 왜 이러슈? 이건 너무 심하구려”
194
하고 대들어 말린다. 나는 동경의 검극 배우처럼 두 손으로 단장을 들어 그 자들을 후려갈기고 떠다박지르고 하면서 미친 사람처럼 날뛰었다. 그 바람에 막걸리까지 받아다 놓고 군침을 흘리며 부뚜막 앞에 턱을 쳐들고 앉았던 아귀들은 풍지박산을 했다.
195
그것만으로는 꼭두까지 오른 분이 풀리지 않았다. 사방을 휘휘 둘러보다가 외양간 앞에 세워 놓은 괭이를 들고 들어가서 가마솥 뚜껑을 힘껏 내려찍었다. 유착한 솥뚜껑은 쩡!하고 두 쪽 세 쪽에 갈라졌다. 거품이 일듯이 부글부글 끓는 물 속에서 떴다 잠겼다 하며 들먹거리는 것은 허옇게 가죽을 벗겨놓은 황공의 잔등이가 아닌가! 나는 고개를 홱 돌렸다. 그다지도 사랑하던 누렁이의 사지의 황공의 무참한 시체를 차마 내 눈으로는 두 번 다시 볼 수가 없었다. 더구나 부엌바닥에 백정이 살점을 훑다가 달아난 그 껍질은 내려다 볼 용기가 없었다. 툭 불거진 눈알맹이는 반이나 빠져나오고 몸뚱이는 송두리째 벗기우고 살점은 갈갈이 찢겨 부엌바닥에 납작하게 깔린 사지의 껍질! 그 싯누런 털! 나만 보면 곁에서 바람이 일도록 내두르던 그 탐스럽던 꼬랑지! 나는 흥분이 조금 가라앉자 눈두덩이 뜨끈했다. 이윽고 두 줄기 눈물이 앞을 가리었다. 더운 물에 불어서 축축하고 끈적끈적한 황공의 머리털과 등어리를 전처럼 어루만져 주려니 울음이 북받쳐올라 어린애처럼 엉엉 울고 싶은 것을 입술을 깨물며 참았다.
196
“황공! 황공! 내가 잘못했다! 주막에서 너를 왜 못 따라오게 했더란 말이냐. 사지야! 주인의 잘못을 용서해다우”
197
나는 넋두리를 하듯 하며 소매로 얼굴을 가리고 흐느꼈다. 올가미를 쓰지 않으려고 나를 찾으며 최후의 반항을 하던 것을 눈 앞에 상상하려니 개가 미치면 위독하다는 것보다 그 탐스러운 목덜미와 군살이 너덜너덜하게 찐 뒷다리를 식욕이 동해서 황공을 몰래 잡아먹으려던 인간들, 그 인간들의 살점을 물어뜯고 싶었다.
198
황공이 그다지도 무참한 최후를 마친지도 어느 틈에 두 달이 지났다. 그때처럼 궂은 비가 오는 날 밤에 나는 동경서 친구가 부쳐주는 신문에, 대강 이러한 기사가 실린 것을 보았다.
199
‘사랑해주던 주인 ×××박사가 세상을 떠난 후, 진 날 마른 날을 가리지 않고 4년 동안이나 조석으로 정거장에 나와서 주인을 기다리며 슬픔에 젖어있던 동경 「뽀찌구락부」의 명예회원인 「충견 하찌 공(公)」이 노환으로 세상을 버렸다’는 것과 그 임종하던 모양이며 수많은 아이들과 어른들에게 싸여서 조상을 받는‘하찌 공’의 사진까지 커다랗게 났다. 4단으로 내려뽑은 기사는 대신이 죽었어도 그보다 더 크게 취급은 하지 못했으리라.
200
며칠 뒤에 온 신문에는 그 후보(後報)가 났다. ‘하찌 공’의 장례 때에는 중(僧侶)이 여섯 명이나 경을 읽어서 그 충성스럽던 영혼을 위로해 주었고, 주인의 무덤에까지 온 동네 사람들이 회장을 나왔는데, 이 슬픈 소식이 한번 퍼지자 전국에서 모인 부의금이 3백 6십여 원에 달하였으며, 어느 동물학 박사는 손수 메스를 들어 ‘하찌 공’을 해부한 뒤에 생시와 똑 같은 모양으로 박제를 해서 아동 박물관에 영원히 보존하기로 되었다 ―.
 
201
─《신동아》제1호(1936. 1).
【원문】황공의 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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