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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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余生於癸卯六月。時先祖宰利城。先君歸侍庭下。夢見貞陵洞家書堂前庭。葵花盛開。覺後記其日於窓壁。俄有京報。卽我降生之日也。遂以國馨爲兒名。蓋取義夢葵也。先君嘗道曲折於小子。至丙申秋。李夢鶴逆變作。其黨有吳先覺者。余惡其同名。而欲改之。時余忝在備邊司。日與諸公言及而發嘆。皆曰。吳罪不可知。姑俟鞫畢。所犯果重。不容不避。若輕則不須避。及見其斷以籍沒。乃決意改之。竊念兒名亦有取義。與其改以新名。不如仍舊。乃以國馨呈藝文館。入啓受帖。字則不改。欲使後孫知悉。錄之。貞陵家卽外家也。趙靜庵先生乃外祖妹夫也貞陵洞家卽外家世傳者也外曾祖在時靜庵構書堂歲久猶存所謂前庭葵花卽其書堂也
 

 
2
나는 계묘년(1543, 중종 38) 6월에 출생하였는데, 그때 할아버지께서는 이성(利城) 원으로 계셨고, 아버지께서는 할아버지를 모시고 계셨다. 꿈에 정릉동(貞陵洞) 집 서당 앞뜰에 해바라기꽃이 만발한 것을 보고, 꿈이 깬 뒤에 창 벽에 그 날짜를 기록해 두었다. 조금 뒤에 서울에서 소식이 왔는데, 그날이 바로 내가 출생한 날이었다. 드디어 국형(國馨)으로 아명(兒名)을 삼았으니, 꿈에 본 해바라기에서 뜻을 취한 것이다. 아버지께서 일찍이 나에게 그 곡절을 이야기해 주셨다.
 
3
병신년(1596, 선조 29) 가을에 이몽학(李夢鶴)의 역변이 일어났는데, 그 무리 중에 오선각(吳先覺)이라는 자가 있었다. 나는 그가 내 이름과 같은 것을 싫어하여 이름을 고치려고 하였다. 그때 나는 비변사의 직책을 맡고 있었는데, 날마다 공(公)들과 이 일을 말하며 한탄을 하였다. 여러 사람들이 말하기를,
 
4
“오선각의 죄를 알 수 없으니 우선 국문이 끝나기를 기다려 죄가 과연 무거우면 갈지 않을 수 없으나, 만약 가볍다면 꼭 그 이름을 피할 필요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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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였다. 그의 형벌이 급기야 적몰(籍沒)로 결정이 난 것을 보고는 이름을 고치기로 결의하였다. 가만히 생각건대, 나의 아명이 또한 뜻이 있어 취한 것이니, 새로운 이름으로 고치는 것보다는 예전대로 하는 것이 낫다고 여겨 마침내 국형(國馨)으로 예문관에 올려 입계(入啓)하여 첩지를 받았고, 자는 고치지 않았다. 후손으로 하여금 소상히 알도록 하기 위해 기록을 하는 바이다. 정릉 집이란 곧 나의 외가를 말한다. 조정암(趙靜菴) 선생은 내 외조부의 매부(妹夫)이다. 정릉동 집은 곧 외가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집이다. 외증조가 살아 계실 때 정암 선생이 서당을 지어 세월이 오래도록 그대로 남아 있었는데, 이른바 앞뜰의 해바라기꽃이 있던 곳이란 그 서당을 말한다.
【원문】갑진만필(甲辰漫筆) 2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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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진만필(甲辰漫筆) [제목]
 
  조광조(趙光祖) [출처]
 
◈ 참조
  1596년
 
 
 
 
  # 오선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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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1년 04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