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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전(月前)에는 왕(百濟王―義慈)이 몸소 대군을 이끌고 와서 신라를 침략하여 이 나라(新羅)의 사십여 성을 빼앗았다. 그 놀란 가슴이 내려앉기도 전에, 팔월에 들면서 백제는 또 장군 윤충(允忠)을 시켜서 신라의 대야성(大耶城)을 쳐들어 온다는 놀라운 소식이 계림(鷄林)의 천지를 또다시 들썩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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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식이 들어오자 꼬리를 이어서 따라 들어오는 소식은 가로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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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야성은 함락되었다. 대야성 도독 김품석(金品釋) 이하는 모두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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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를 이어서 그 상보(詳報)가 이르렀다. 그 상보에 의지하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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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야성이 백제 장군 윤충의 군사에게 포위되자, 대야성 성내에서는 반역자의 분란이 일어났다. 대야성 도독 김품석의 막하에 점일(點日)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점일에게는 젊고 아리따운 안해가 있었다. 도독 김품석은 자기의 지위를 이용하여 점일의 안해를 빼앗았다. 이 때문에 도독에게 원심을 품고 있던 점일은, 백제의 정벌군이 이르자 안해 빼앗긴 분풀이로, 제 나라를 배반하고 백제군에게 내응하여, 성내의 각 창고를 불 놓으며 성내에서 난을 일으켰다. 그러지 않아도 백제의 강병을 도저히 대적치 못하겠거늘 성내에 반역 분자까지 생기고 보니, 인제는 대야성은 더 볼 나위가 없게 되었다. 일이 이렇게 되매 김품석의 막하에 서천(西川)이라는 사람이 성에 올라가서 적장 윤충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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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목숨만 거두어 주신다면 성을 들어 항복케 하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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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굴복할 뜻을 나타내었다. 그리고 윤충에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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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성이 항복을 하면 생명은 보전해 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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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대답을 얻은 서천은 도독 김품석에게 그 뜻을 전하여 동의를 얻고, 다른 사람에게도 모두 그 뜻으로 권고를 하여 동의케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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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가운데 죽죽(竹竹)이라는 사람이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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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어머니가 내 이름을 죽죽이라고 지어 주신 것은, 꺾어질지언정 굴하지 말라신 뜻인데, 내 어찌 죽기를 두려워하여 적에게 굴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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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며 동지를 모아가지고 끝끝내 항전하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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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복한 무리들(도독 김품석 이하, 서천이며 그 밖에 허다한 장졸 백성들)은 성문을 열고 목숨을 보전하러 성 밖으로 나갔다. 그러나 목숨을 보전하러 나간 무리들은 백제의 군사에게 전멸을 당하였다. 성을 들어 항복한다더니 아직 성내에 적지 않은 군병이 있지 않으냐. 그러매 생명 보전을 허락할 수 없다 하는 것이 백제의 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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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항복한 군민이 성 밖으로 나간 뒤에, 죽죽은 성문을 굳이 닫고 남은 무리들을 지휘하여 백제 군사에게 대항을 하여 용감히 싸워 최후의 한 군사까지도 남지 않고 백제군의 칼 아래에 장렬한 전사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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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항복한 무리에 섞이어, 부끄러운 목숨을 그냥 어떻게 유지하여 보려고 대야성을 빠져 나오다가 죽은 사람 가운데는, 도독 김품석의 안해 고타조(古陁炤)가 있었다. 고타조는 신라 이찬(伊湌―벼슬 이름) 김춘추(金春秋)의 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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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월― 찌는 듯한 잔서가 아직 심할 때였지만 아침 저녁은 꽤 서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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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추는 바야흐로 대궐에 들어가서 임금(善德女王)께 대야성 구원병을 보내야 하겠다는 말씀을 아뢰려고 할 때에, 대야성 함락의 보도가 이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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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얼? 행차로 나가려던 발을 김춘추는 멈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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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전에는 미후(獼猴) 등 사십여 성을 백제에게 빼앗겼다. 그 상처가 낫기는커녕 그 상처의 아픔을 명료히 감각할 겨를도 없이 지금 또 대야성을 잃는다? 백제의 횡포를 미워하는 생각보다도, 내 나라의 미약함을 한탄하기 보다도, 다만 이 연다른 불행을 망연자실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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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려던 발을 멈추고 기둥에 몸을 기댄 채 얼빠진 사람같이 우두머니 서버렸다. 죽기가 두려워서 성을 들어 항복하려다가 제 목숨까지 잃어버린 사위 김품석의 가증코 치사한 행위를 밉게 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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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지사(無名之師)를 연하여 일으켜, 남의 나라를 침략하고 무고한 백성을 도탄에 울게 하고 남의 국토를 침식하는 백제의 행위를 괘씸히 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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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는 자기의 딸 고타조― 고귀한 가문의 딸로 태어나서 고귀한 가문에 출가한 것이, 결국에 있어서는 비겁한 매국한의 안해로, 그나마 남편의 고임조차 받지 못하고 남편은 남의 유부녀에게 혹하여 그것이 원인이 되어, 지키던 성을 잃고 지위와 신분을 잃고 종내 생명까지 잃는다는, 인생 최대의 비극을 겪고, 불충 불의한 남편과 함께 적(敵)에게 해를 입어 죽은 그 가련한 딸의 인생행로를 조상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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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모든 과정을 건너 뛰어 김춘추는 얼빠진 사람 모양으로 망연히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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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연히 서 있는 그의 입에서는 이런, 머리도 끝도 없는 말이 때때로 새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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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伊飡金春秋聞之[윤찬금춘추문지], 倚柱而立[의주이립], 終日不瞬[종일불순], 人物過前而不之省[인물과전이부지성], 旣而言曰[기이언왈], 嗟平大丈夫[차평대장부], 豈不能呑百濟乎[기불능탄백제호]’云云[운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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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연히 서 있는 그의 머리에 일고 잦은 단 한 가지의 생각은, 이 원수의 백제를 그냥 두지 못하겠다는 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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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보자면 나라의 원수요, 작게 보자면 그 일생을 애처롭게 마친 가련한 딸 고타조의 원수다. 이를 어찌 그냥 두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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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군사― 단지 침략을 위한 군사를 연해 일으키는 백제로서, 어제는 미후 등 사십여 성을 빼앗고 오늘은 대야성을 빼앗았으면, 무론 내일 또 어디를 침략하러 올지 예측을 할 수가 없으되 올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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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도 원수려니와 한번 단단히 두들겨 주어서 다시는 야심을 못 품도록 골려주지 않았다가는, 연해 오는 무명지사에 신라의 관민은 마음놓고 명일의 조반을 준비할 수가 없다. 원수까지는 못 갚는다 할지라도 한 주먹을 단단히 가해 주어서, 다시는 넘실거릴 생각을 품지 못하도록이라도 해 주어야하지, 그렇지 않았다가는 내 나라에서는 하루도 베개를 높이하고 잠을 잘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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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워낙 내 나라의 힘이 부족한 것을 어찌하랴. 기둥을 기대어 서 있는 춘추의 머리에는 가지가지의 생각이 일고 잦았다. 명신 명장(名臣名將)이 배출한 위에 또한 명군 의자(義慈)왕이 위에 임한 백제는, 그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 날카로운 끝을 막을 자가 없다. 거기 반하여 우리 신라는, 지금 겨우 주변의 작은 나라들을 합하여 통일의 공은 이루었다 하나, 아직 튼튼한 자리는 잡지 못하였다. 김춘추 자기가 일국의 신망을 한 몸에 지니고 있고, 대장군 김유신의 위력이 국내를 덮고 있기는 하지만, 자리잡히지 못한 나라이매 아직 백제를 대적하기에는 힘이 훨씬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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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대로 버려두면 그칠 바를 모르는 백제의 횡포를 어찌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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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김춘추는 식불감미, 와불안면― 현저히 기분이 침울하여지고, 기력이 줄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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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국가의 불안한 상태에 있어서, 임금(善德女王)은 오직 김춘추 한 사람을 믿고 김춘추에게 어떻게든지 지금의 국면을 타개하기를 은근히 촉망하는 것이었다. 내 나라이 워낙 약하니 임금도 김춘추에게 어떻게 하라고 재촉을 하든가, 왜 이러이러하게 하느냐고 힐책을 하든가 하지는 못하나, 김춘추가 담당하면 어떻게든 이 국면이 타개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요행심으로, 은근히 춘추에게 촉망을 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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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도 그러하거니와 온 백성도 또한 김춘추 한 사람을 믿고, 김춘추가 어떻게 활동을 하면 이 불안한 상태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날 수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김춘추의 동정을 엿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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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임금과 온 국민에게 무언의 책무를 지고 있는 김춘추는, 이 촉망에 대해서라도 어떻게든 무슨 보답이라도 있어야 할 터인데, 두고두고 생각하여 보아야 아무 방책도 생각나지 않아서 혼자 애타 하고 번민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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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추 자기의 처남이요 막역지우요 겸하여 지모가 겸비한 대장군 유신과 늘 마주 앉아서는, 무슨 대책이 있지 않을까고 머리를 모으고 협의하고 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무슨 묘방이 생각나지를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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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는 동안에 그 해의 구월도 어느덧 지나가고 시월도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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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근심이나 분한 생각이 나는, 세월이 흐르면 거기 따라서 씻기운다 한다. 그러나 김춘추의 마음에 맺힌 근심과 억분함은 세월의 힘으로도 씻기우지를 않았다. 그것이 춘추 혼자의 근심이거나 억분함이면, 혹은 세월의 힘으로 씻기웠을는지도 모르지만 지금의 춘추의 마음에 맺힌 자는 그와는 달라서, 온 신라 백성의 편달이 춘추의 뒤에서 춘추를 재촉하였다. 서쪽으로 무시무시한 원수 백제를 가지고 있는 온 신라 백성은, 하루도 마음을 놓고 내일의 살림을 준비할 수가 없는지라, 따라서 여기 대한 보호책과 방비책을 김춘추에게 채근하는 것이었다. 온 국민의 채근을 몸으로 받고 있는 춘추는, 그 책임감 때문에 잠시 한 때도 마음놓이는 때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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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해서든지 이 문제를 해결치 않으면 안 되겠다.―이 생각으로 춘추의 몸이 쇠약하여 감을 따라서 차차 강박적 위협감까지 띠어서, 이 문제를 급속히 해결짓지 못하면 무슨 큰일이 생겨날 듯이 그의 마음을 누르고, 그의 관념을 재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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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무리 생각하여야 우리의 약한 힘을 가지고는 도저히 백제를 대적할 수가 없고, 실력으로 백제를 대적치 못하여 가지고는 해결이 되지 않을 문제 임을 어찌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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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빠진 춘추는 마지막에 할 수 없이 이 짚이라도 붙들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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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와 백제는 본시 같은 조선(祖先)의 후손으로서, 고구려의 시조 동명(東明)성왕을 백제도 자기네의 시조로 모시고 숭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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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오랜 세월을 내려오고 서로 촌수가 멀어지고 하는 동안에, 자연 분규도 생기고 티각태각하는 일도 일어나고 서로 싸우는 일도 잦아져서, 어떻게 보자면 지금은 원수지간인 듯이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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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와 백제의 새가 이러하매, 혹은 신라에게 썩 잘 고구려를 달래면 백제 공격에 협력해 줄는지도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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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라고 무슨 고구려와 친근할 연분이 있는 바가 아니다. 친근은커녕 늘 국교관계에 분규가 있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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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물에 빠진 지금에 있어서는, 짚이라도 붙들지 않을 수가 없는 형편으로, 고구려에게 협력을 빌어 보고자 생각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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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마음먹고 이를 계청하고자 임금께 뵈올 때는, 춘추에게서는 차마 말이 나오지 않고 눈물만 비오듯 하였다. 임금과 국민의 신망을 한 몸에 지니고, 춘추면 어떻게 이 난국을 타개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촉망을 받고 있는 자기로서, 아무 신통한 묘책도 없이 이제 최후로 고구려의 힘을 빌자고 임금께 계청을 하려 하니, 말문이 막혀서 입이 벌려지지를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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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저하고 주저한 끝에 간신히 말을 더듬으며 이 뜻을 임금께 아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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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께는 다른 의견이 있을 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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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야 일국의 군왕이라 하나 구중의 아녀자, 무엇을 알겠느냐? 이찬만 믿는 배니 이찬의 의향이 그렇다면 이찬의 의향대로 하려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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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성공하리라고 장담할 수도 없는 위에, 실패하면 국가의 치욕만 더하는 이 일에 대하여 춘추로서는 더 아뢸 말씀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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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 그런데 그 청병을 고구려에서 응락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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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있어서도 고구려에서는 그 강대함을 자세삼아 늘 신라에게 왕자의 볼미〔人質〕를 요구하고, 왕자가 볼미로 가면 대개는 늙기까지 돌아오지 못하고 고구려에서 종신하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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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예도 그러하였지만 더우기 현재 고구려에 재상으로 앉아 있는 사람은 일대의 영웅 연개소문(淵蓋蘇文)으로서, 연개소문의 품고 있는 마음이 신라와 백제를 고구려의 손아귀에 집어넣으려는 것이니만치, 신라의 두드러진 인물로 알리어 있는 김춘추를 혹은 그냥 볼미로 붙들어 둘는지도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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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세가 그런지라 고구려에서 신라의 청병에 응락할는지는 춘추로서는 무에라 아뢸 말씀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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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김 장군(유신)과 잘 협의를 하와 최선의 힘을 다하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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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사 여부는 미지수이지만 좌우간 고구려에게 청병을 한다 하는 일에 대해서는 임금의 윤허까지 얻은 뒤에, 김춘추는 비로소 이 일을 대장군 김유신에게 알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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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시월도 다 가고 동짓달에 들어서는 절기, 남국(南國) 계림에도 동색(冬色)은 완연히 이르러 만물은 가을의 소슬한 빛깔에서 겨울의 무장으로 들어서려는 절기에, 가슴 깊이 무거운 수심을 간직한 춘추는 김유신을 그의 집으로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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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은 춘추를 맞아서 그의 내실로 인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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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 장군의 인도로 춘추가 유신과 대좌한 방은, 춘추에게 있어서는 감회 깊은 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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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찌기 춘추와 유신이 혈기방장한, 어떤 해 정월 상원일(上元日)에, 유신의 집 후원에서 축국(蹴鞠)을 논 일이 있었다. 그때 유신은 실수(?)하여 춘추의 옷자락을 밟아서 찢었다. 유신은 이 경솔을 사과하고 춘추를 안내하여 안으로 인도하여, 찢기운 옷을 벗게 하고 그의 누이 문희(文姬)로 하여금 찢어진 상처를 깁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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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춘추의 찢어진 옷자락을 기운 문희가, 오늘날 춘추의 사랑하는 안해였다. 그 날의 찢어진 옷이 연분이 되어 두 남녀는 결합이 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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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중대한 사명을 띠고 사지(死地)로 감에 임하여 옛날에 인연 있던 그 방에, 옛날의 그 인연을 지어준 사람 유신과 대좌하매, 만감이 스스로 가슴에 사무쳐 잠시는 아무 말도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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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수심띤 춘추에게 대하여 유신은 누차 그 수심의 원인을 물었다. 한창 구미 좋을 때는, 하루에 서 말 밥과 꿩 아홉 마리를 먹던 춘추가, 이 날은 유신의 대접에 마지못해 수저를 움직이는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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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의 수차의 질문을 받고 춘추는 비로소 오늘 임금께 계청하여 윤허받은 일에 대하여 유신에게 자세히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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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의 말을 다 듣고도 유신은 곧 대답치 못하였다. 기다란 탄식성이 나온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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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뒤에야 비로소 유신이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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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사여부는 둘째 두고 이찬의 신상이 안전하리까. 고구려에서 무사히 귀국하시게 되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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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는 말을 중도에 끊고 한 무릎 유신에게 다가앉았다. 손을 들어 앞으로 내밀었다. 그 손에 대하여 마주 나오는 유신의 손을 꽉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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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 장군과 나는 이신동심. 같이 나라의 고굉지신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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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끊었다. 손을 마주 잡은 채 머리를 푹 수그렸다. 등에 진 짐의 중대함이 더욱 절실히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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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중명을 띠고 저 나라에 갔다가, 불행 저 나라 사람에게 해를 받는 일이 있으면 장군은 어떻게 하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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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의 말이 떨어지기 전에 유신의 대답이 먼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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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 그런 일이 생기면, 내 말발굽이 여제(麗濟) 두 나라의 왕정(王庭)을 쑥밭을 만드오리다. 그렇지 않고야 내 무슨 명목으로 장차 국인을 대하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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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은 그의 눈을 들어서 춘추를 건너 보았다. 유신의 눈에는 눈물이 한껍질 서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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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이찬. 내 생각으로는 성사는 지난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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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한 것은 나도 알지만 지난한 이 한 길밖에는 딴 길이 없음을 어찌하겠소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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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사키 지난하고 그 위에 생명조차 보전키 힘든 길을, 떠나려는 사람과 이 사람을 보내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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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할 말이 없어서 얼굴만 마주 볼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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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의 앞에는 잔이 내놓이었다. 두 사람은 칼로 손을 베어 흐르는 선혈을 잔에 받았다. 잔에 받은 피를 저어 섞이어, 둘이서 나누어 마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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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 내 육 순―두 달을 기약할 테니, 두 달이 지나도 내가 돌아오지 않거든 차생에서 다시 볼 기약이 없는 사람으로 알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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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두 달을 기다려 보아, 이찬께서 안 돌아오시거든, 내 성상께 여쭈어 용(勇)병 일만을 빌어가지고 여지(麗地)에 돌입해서 그 나라를 쑥밭을 만들어서, 이찬의 원수를 갚으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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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삿 원수도 원수려니와 국사는― 저 백제의 횡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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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도― 지금 우리나라의 민심이 해이되었기에 백제를 당하지 못하지, 한 사람 한 사람의 힘으로야 우리나라나 백제나 일반이 아니오니까. 이찬께서 저 나라에서 해(害)를 보시면 그로써 민심을 격동시키면, 우리나라 백성인들 어찌 백제인에게 지리까. 격동된 민심으로 저 나라를 들이치면, 능히 백제의 강병이라도 넉넉히 당할 수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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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뒷일을 장군께 믿을 뿐이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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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일을 염려바시고 성사에나 주력을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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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고대하오리다. 부디 성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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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하여 피를 나누어 마시고 작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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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추는 간소한 행차에 종자 몇 명을 데리고 계림을 떠났다. 향하는 곳은 고구려의 서올. 그의 어깨에 짊어진 짐은 국가사활의 중대한 열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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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짓달에서 섣달로 차차 더 깊어가는 엄한의 절기에, 남국에서 북국으로 차차 더 찬 곳으로 길 가는 김춘추이었지만, 어깨에 지워진 무거운 짐 때문에 추위도 감각할 수 없도록 긴장된 심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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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재촉하여 대매현(代買縣)까지 이른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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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지방에 사는 두사지(豆斯智)라는 사람이 춘추를 와서 뵙고 청포(靑布) 삼백 필을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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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께서 지금 천금의 귀하신 몸으로 나라를 위하시어 만리 이역(異域)에 가심에, 혹은 무엇에든 옹색한 일을 당하실 때에 소용이 되실까 하와, 약소한 물건이오나 바치옵니다. 쓰실 때가 계시다면 바친 소인의 무한한 영광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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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은 짐스러울지는 모르나 이도 모두 소민(小民)의 국가에 대한 충심에서 나온 바이며, 또한 춘추 자기가 지니고 있는 중대한 책무에 대한 국민의 헌납품이라, 생각하매, 고맙기 한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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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우이. 객지에는 무엇이든 부족한 법이라 이것도 지니고 가면 얼마나 유용할지 모르겠네. 내 일신보다도 이번의 사명이 무사히 성취되기를 신명께 축원이나 해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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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야 분부 안 계신들 어련하오리까? 그럼, 이 모진 삭풍에 몸 보중하옵시고 무사히 사명을 치르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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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하여 대매현을 떠나서 또 길을 재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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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찌기 수(隋)나라 문제(文帝)의 삼십만 대군을 어린애 다루듯 쳐 물리고, 그 뒤를 연한 수나라 양제(煬帝)의 이백만 대군을 겨우 이천칠백의 패잔병 이외에는 전멸을 시키고, 수나라는 고구려 패전이 빌미되어 망한 뒤, 대신으로선 당나라의 고조(高祖)의 정벌군 태종의 정벌군을 뒤이어 전멸시켜, 그 위력이 천하를 누르는 고구려.
120
국체가 해이되고 군심이 문란된 신라에서 장성한 김춘추에게는, 고구려 서울의 모양은 가슴을 서늘케 하였다. 그 국민의 표표함은 둘째 두고 병비의 정밀함이며 군사의 정비됨은 과시 동방을 응시하는 군국의 도시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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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나라가 이러하거늘 내 나라의 현황을 돌아볼 때는 한심한 생각뿐이었다.
122
그날 밤 춘추는 장려(長旅)에 피곤한 몸이로되 빨리 잠이 들지를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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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인제라도 돌아서서 내 나라로 돌아갈까.
124
남을 의뢰할 생각을 왜 품으랴. 내 나라의 무비가 이 고구려와만 같다면, 백제의 횡포가 무엇이랴. 백제가 횡포한 것은 필경은 내 나라가 약하기 때문이다. 내 나라가 약한 것은 백성의 탓이 아니라 위에서 거느리고 지도하는 치자(治者)계급이 무위한 탓이다. 내 나라 백성도 같은 사람일진대 잘 지도하고 훈련만 하면, 왜 이 고구려만 못 할지며, 내 나라의 형세가 고구려만 하면 왜 남의 나라의 수모를 받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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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을 의뢰하기보다 먼저 나 자신을 고칠 필요가 있다. 남을 의뢰할 생각을 지금이라도 내던지고, 발을 돌이켜 내 나라 신라로 돌아갈까. 돌아가서 내 나라를 어서바삐 키우기에 정력을 다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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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눈에 다닥치고 현재 겪고 있는 백제의 수모에, 우선 임시적으로라도 피할 필요가 있는 현재의 형편으로는, 일껏 여기까지 왔다가 청병을 해보지도 않고 귀국한다는 것은 너무도 싱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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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력 양성은 차차 하려니와 우선 현재 받고 있는 모멸에서 면할 겸 이미 받은 수모의 원수를 갚기 위해서는, 청병은 해 보아야 할 것이다. 모사는 재인이요 성사는 재천이라, 성불성은 예측할 수가 없으되 부딪쳐 보기는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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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고구려 서울의 강대함을 보고 춘추는 신라 국민훈련의 필요를 절실히 느끼고 그 실행의 결심을 굳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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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句儷王高藏[고구려왕고장], 素聞春秋之名非凡[수문춘추지명비범], 嚴兵衛而後見之[엄병위이후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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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하였지만 유난스럽게 위엄성을 보인 것이 아니라, 예사 때의 병위로 보았지만 신라인의 눈에는 그러이 비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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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는 고구려 조정에 자기가 이번 고구려에 오게 된 사명을 대강 아뢰고 왕께 알현하기를 청하였다. 이리하여 고구려 임금의 어전에 나아가게 되었다. 고구려 임금은 그때 갓 등극한 보장왕(寶藏王)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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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의 곁에는 일대의 영웅 연개소문이 시립하고, 기치창검이 휘황하고 엄엄하게 번득이었다.
134
문약한 신라 조정의 풍습에 젖은 김춘추는, 처음 한순간은 이 위엄에 위압되었다.
135
이 위압에서 정신을 수습할 때에 왕께 시립했던 개소문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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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추운 절기에 먼 길을 어떻게―.”
137
거기 대하여, 춘추는 먼저 임금께 신라 왕에게서의 문안을 여쭙고 그 뒤에 이번 사명을 말하였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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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쭌 바 같이 백제가 무도하게도 늘 우리나라의 강역을 침범하므로 대국의 병마를 빌어 백제에게 받은 치욕을 면할까 하는 생각으로서 하신을 보내와 지금 대국에 청병을 하는 바이옵니다.”
140
보장왕은 그의 막리지(벼슬 이름) 개소문을 돌아보았다. 개소문이 왕을 대신하여 춘추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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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리가 있겠소? 아무리 백제국인들 까닭없이 남의 국가를 침범하고 강역을 노략할 리야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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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않습니다. 아무 까닭이 없이 남의 나라를 침략―.”
143
계속하는 말을 이번은 보장왕이 가로 끊었다―.
144
“사신의 말은 까닭이 없다 하지만, 백제로 보자면 무슨 연유가 있겠지. 신하와 백제의 옥신각신은 짐이 모르는 배지만, 신라는 원체 남의 나라에 대해서 불측한 일을 잘 하니까, 사신의 생각에는 까닭없다 하지만 백제의 측으로 보자면 무슨 연유가 있겠지.”
145
“신라는― 말대답 같아서 아뢰기 황송합지만 신라는 우금 남의 국가에 먼저 손질해 본 일이 없사옵니다.”
146
“그건 짐 몰라. 모르는 배지만, 짐이 아는 바로서는, 지금 신라가 차지하고 있는 죽령(竹嶺)지방은 본시 우리 고구려 지역― 그것을 지금 신라가 점거하고 있는 것은 신라의 무도한 일이야. 그런 일을 제법 잘 하는 신라라 백제에게 대해서도 무슨 그런 혐의를 질 일을 한 게지.”
147
춘추는 한순간 주저하였다. 주저하는 동안 보장왕의 말은 계속되었다―.
148
“이러니 저러니 헛말을 가지고 다투느니보다 실제의 의논을 하지. 지금 사신은 신라가 백제를 치는데 우리 고구려에서 조력을 해달라 하는 게 요점인데, 그것을 들어주마. 그 대신 짐의 소청도 신라가 들어주어야.”
150
“별게 아니라 지금 신라가 가지고 있는 죽령 이북(竹嶺以北)의 땅은 본시 우리 고구려 땅이었으니, 그 땅을 고구려에 반환하면 사신의 소청도 들어주마.”
151
교환조건이었다. 그러나 일개 사신으로는 대답치 못할 문제였다. 춘추는 아뢰었다―.
152
“나랏님. 그것은 일개 사신인 하신으로서는 자유로 처분치 못할 일이오라, 지금 무에라 복주할 바이 없사옵니다.”
154
“하신으로서는 아뢸 말씀이 없사옵니다. 권한 밖의 일이옵니다.”
157
“내 청을 들어다고, 네 청은 못 듣겠다― 뱃심 좋은걸.”
159
“신라 사신의 말이 저런 이상은 고구려의 한 군사도 신라를 위해 활을 들지 못하게 하오.”
161
난문제― 딴 문제를 꺼내가지고 춘추의 사명은 곱다랗게 거절하였다.
162
춘추는 머리를 숙이고 생각하였다. 보장왕의 말투, 개소문의 말투로 미루어, 다시 이 교환조건을 물시하고 춘추의 청을 들어주기는 꿈에도 바랄 수 없을 형편이었다.
163
“나랏님. 외신이 군명을 받자와 대국에 청병을 함에, 대왕님께옵서는 딴 문제를 꺼내시와 이 외신을 위협하오니, 외신은 다만 황송할 따름이옵니다. 외신 죽사온들 어찌 군명에 없는 말로써 대왕님께 응하오리까?”
164
이때의 춘추의 말투는 벌서 아까 청병할 때와 같은 간구하는 태도가 아니었다. 그의 생장한 환경이 그에게 부여한 거만한 태도가 다분히 포함되어 있었다.
165
보장왕은 이 태도를 보았다. 순간 용안의 빛이 변하였다.
167
한 마디 내던지고는 노색(怒色)을 분명히 나타내고 몸을 용상에서 일으켰다. 시신의 부액을 받아 내전으로 입어하고 말았다.
168
사신 접견실은 사신 김춘추와 고구려 신하 연개소문 이하 몇 사람이 냉락하게 된 기분 가운데 잠자코 앉아 있었다.
169
이윽고 내전에서는 왕의 어명을 받자온 시신이 나왔다.
170
신라 사신 김춘추는 고구려 왕옥에 내렸다.
172
김춘추는 고구려 왕옥에서 낡은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았다.
173
김춘추의 죄가 중하여 가두어 두는 것이 아니라, 신라의 한 두드러진 인물로서, 그냥 잡아 두는 것이 안전하다 보아서, 감금하여 두는 모야이었다. 그런지라 장차 기회 있을 때를 보아서 춘추를 제거해 보릴 심산인 듯싶었다.
174
이런지라 귀국할 기약이 망연한 영어의 몸으로, 김춘추는 만리타국에서 엄동을 겪고 있었다.
175
본국을 떠날 때에 대장군 김유신과 약속한 바― 육 순이 지날지라도 돌아오지 않으면 춘추는 이미 죽은 사람으로 알고, 유신이 신라의 군사를 이끌고 고구려로 달려 오겠다―한 그 기약의 날짜도 점점 가까와 온다. 그러나 고구려의 조정에서는 김춘추에게 아무런 처분도 없이 그냥 버려두었다.
177
그가 본국을 떠나서 고구려로 오는 길에, 대매현을 지날 때에 그곳 사람 ‘두사지’가 청포(靑布) 삼백 필을 바치며 장차 쓸 일이 있거든 쓰시라고 하던 일이었다.
178
청포 삼백 필이면 한 사람을 매수하기에 넉넉하다. 이 청포 삼백 필 무엇에 쓸 수가 없을까.
179
청포 삼백 필을 누구에게 뇌물해 가지고 내 몸을 고구려 왕옥에서 벗어날 도리가 없을까.
180
북국 엄동에 떨면서 김춘추는 청포 삼백 필을 유용하게 쓸 방도를 생각하고 또 생각하였다.
181
생각하고 생각한 끝에 이 물품을 고구려 보장왕의 총신 선도해(先道解)에게 보내기로 하였다. 보내는 연유에 대해서는 아무 덧붙이가 없이 무조건으로 보낸 것이었다. 이 물품을 받은 선도해가 이를 받은 뒤에 자유로이 처단하라는 뜻이었다. 시치미를 떼고 잘라 먹건 혹은 도의적(道義的) 보답(報答)을 하건 선도해의 자유에 맡겨서….
182
창(窓)살 틈으로 비치는 다스로운 볕에 밤새도록 얼었던 몸이 녹느라고 매지근해 지는 바람에, 잠깐 앉은 채 잠이 들었던 김춘추는 밖에서 사람의 두선두선 하는 소리에 깨었다.
183
밖에서 두선거리는 목소리의 주인을 알아들었다. 청포 삼백 필을 받은 선도해의 음성이었다.
184
“갱(坑)에 불이나 좀 지펴라. 그리고 화로에 불을 하나 가득 피어 들여오구.”
185
도해는 수직하는 사람에게 이렇게 분부하였다. 그리고 문이 데걱데걱 열리고 앞에 선도해가 들어오고 그 뒤에 (책임상) 이 회견에 입회(立會)할 옥관이 달려 들어왔다.
186
도해는 들어와서 김춘추와 마주 앉았다. 옥관은 뒤에 섰다. 불을 가득히 피운 화로가 들어오고 갱에 불을 때려는 소리도 났다.
187
“객고가 심하시겠읍니다. 귀하신 몸이…. 더구나 이 엄동에.”
188
도해는 마주 앉으며 이렇게 인사의 말을 하였다.
189
“네. 내 집에 있는 것 보다는 약간 불편하고 괴롭습니다.”
190
“야. 그 주안상 들여라. 존객의 객고를 약간이라도 위로하고자 변변치 못하나마 주효를 좀 준비했읍니다. 한 잔 드시지요.”
194
도해가 준비해 가지고 돈 주안을 가운데 놓고, 김춘추와 도해는 술을 서로 주고 받았다.
195
허하고 굶주렸던 창자에 기름진 음식과 향그러운 술이 들어가니, 추위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춘추의 심신은 차차 녹아들었다.
196
따르는 술을 연해 받으면서 춘추는 생각하여 보았다. 지금 도해가 옥중에 자기를 찾아온 것은, 무론 청포 삼백 필의 효과일 것이다. 그러나 춘추는 청포 삼백 필을 도해에게 보낸 것은 단지 이렇게 술이나 한번 얻어먹고자하여 한 바가 아니다. 도해도 춘추의 입장과 환경이며 사정을 짐작하는 사람이거니, 청포 삼백 필을 보낼 때에 무슨 덧붙이의 사연이 없었을지라도 그 의미를 짐작은 할 것이다.
197
그렇다 하면 도해는 무슨 수단 어떤 방법으로써, 자기를 (혹 잘하면) 고국으로 돌아가게 하려는가. 술을 주고 받으며 도해의 입에서 혹은 행동에서 무슨 그럴듯한 점을 얻어보려 퍽이나 주의해 보았지만, 도해는 다만 시시하고 너절한 잡담 한담만 연해 하면서 술 먹기에만 골독한 모양이었다.
198
감시하는 옥관이 있으매 무론 노골적으로 어떤 언사나 행동을 표시하지는 못하겠지만, 좌우간 좀 다른 무엇을 발견해 보려 하였지만 도해는 연해 쓸데없는 한담만 하고 술만 연거퍼 먹고 있었다.
199
꽤 술이 취했다. 그러나 도해에게는 무슨 별다른 표시는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한담과 옛말. 한담과 옛말만 연해 하는 가운데 도해는 이런 이야기를 하였다.
200
“계림에도 이런 이야기가 있는지 모르지만, 우리 고구려에는 이런 재미있는 옛말이 있읍니다. 토끼하구 거북이의 이야긴데 이야기가 자미있어요. 내 그 이야기를 할 테니 이찬 들어 보세요.”
201
이러한 서두로 도해가 춘추에게 한 한 가지의 옛말. 그것은 대략 이런 이야기였다.
202
동해 용왕(龍王)께는 사랑하는 따님이 있었다.
203
그 따님이 우연히 병에 걸렸다. 좋다는 약은 구할 수 있는 대로 다 써 보고, 굿이라 경이라 온갖 노릇 다 해보았지만 따님의 병은 나날이 더 집중하여 갈 따름이었다.
204
고칠 약방문이 없는 바가 아니었다. 약방문은 났으나 그 약을 구할 수가 없었다. 영한 의원들의 여출일구 하는 말은 가로되,
205
“토끼의 간을 잡수셔야 이 탈이 낫겠읍니다.”
207
그러나 심해(深海) 중에 있는 용궁에서, 어떻게 해서 산짐승 토끼의 간(肝)을 구할 수가 있으랴. 그래서 다른 약으로 다스려 보았지만 용녀님의 탈은 나날이 더 중하여 갈 뿐이었다. 토끼의 간이 아니면 용녀의 탈은 도저히 가망이 없었다.
208
사랑하는 따님의 탈 때문에 용왕은 수심에 잠겼다. 구할 수 없는 토끼의 간― 그러나 따님을 어떻게든 구하여 보려는 성심으로, 용왕은 이 구할 수 없는 토끼간을 어떻게 하여 구할 도리가 없을까고 머리를 싸매고 생각하였다.
209
드디어 한 가지의 방책을 안출하였다. 어족(魚族) 중에서 고래로 뭍〔陸〕에 올라가서 장시간을 지낼 수 있는 자는 오직 거북이다. 이 거북에게 토끼의 간을 구하는 중대한 사명을 부탁해 보기로 하였다.
211
높은 벼슬과 많은 상금으로써 토끼의 간을 구해오기를 거북에게 명하였다. 빠르고 날래기로 유명한 토끼를, 느리고 둔하기로 으뜸인 거북이, 어떻게 붙들어 가지고 그 간을 얻어 오나.
212
지중막대한 사명을 띤 거북, 벼슬과 재물에만 욕심난 바가 아니라 천성이 충직한 짐승이라, 용왕께 대한 보답으로 무슨 수단으로 써서든지 토끼의 간을 구해다가 용왕께 바쳐서 용왕의 사랑하는 따님을 병에서 구원하고 이로써 용왕의 근심을 해소시켜 드리려고 굳이 결심하였다.
213
느리고 더딘 거북이매 토끼를 붙들어서 힘으로 그 간을 꺼낼 생각은 꿈에도 낼 수가 없었다. 이 직하고 슬기롭지 못한 거북은, 그의 둔한 머리를 짜내어서 토끼를 속여서 바다로 끌고 가기로 하였다.
215
“대왕님 분부대로 봉행은 하오리다마는, 소신이 뭍에 올라가서 토끼란 놈을 만날지라도 그 생김생김을 모르오니 그것을 가르쳐 주시옵소서.”
217
용왕도 토끼의 생김생김을 잘 알지 못하였다. 그래서 뭇 어족들을 불러가지고 토끼의 생김생김을 아는 자를 구해내 가지고, 그로 하여금 토끼의 생긴 모양을 거북에게 설명해 주게 하였다.
218
설명뿐으로는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마지막에 화공을 불러서(설명하는 대로) 토끼의 모양을 그림으로 그리게 하였다.
219
“자, 토끼의 화상이로다. 이것을 품 깊이 잘 간직하고.”
221
화공에게서 받은 토끼의 화상을 잘 간직하고 어슬렁어슬렁 뭍으로 기어올랐다. 수풀을 찾아갔다. 그의 짐작으로는 토끼가 다닐 듯한 곳으로 찾아 기어갔다. 토끼의 화상을 펴들고 기다리기를 한나절, 한 마리의 토끼가 깡충깡충 달려 와서 거북이 앉아 있는 그곳에 와서 코를 바룩거리며 무엇을 살피고 있다.
222
여기서 거북은 길게 그의 목을 내어 뽑았다.
228
“별주부. 바다의 별주부가 무얼 하러 뭍에 올라왔나.”
229
거북은 다시 토끼의 화상을 실물과 비추어 보았다.
230
“임자가 분명 토낀 가. 틀림이 없지.”
232
여기서 거북은 그의 지혜로 연구한 바의 꾀를 베풀 순간이 이르렀다. 그의 능치 못한 언변으로 토끼를 속이지 않으면 안 될 차례였다. 그는 다시 화상을 굽어보고 눈을 들어 실물 토끼를 쳐다보고 목을 뽑아 올려 감탄하는 얼굴을 하였다.
233
“그럴듯하이. 털도 이쁘기도 해라. 부드럽기도 비단 이사일걸. 눈깔 빛깔을 새빨갛게 물들였는가? 어쩌면 저리도 고울까. 주먹 같은 저 귀. 어쩌면 머리 꼭대기부터 꼬리까지 저렇듯 이쁠까. 저런 것들을 모두 잡아서 종자를 없애야지 그냥 두었다가는 우리 용궁에서는 용녀는 통 없어지겠다. 요놈 토끼야. 네가 이쁘게 생겨서 우리 용왕님의 따님이 어쩌다가 너를 잠깐 보고 그만 홀짝 반해서, 상사병이 나서 자리에 눕게 됐다. 인삼 녹용, 백약이 무효고 네놈하고 혼인을 하지 못하면 다시 자리에서 일지 못할 지경이다. 우리 용왕님도 처음에는 뭍의 천종(賤種)을 어떻게 용궁에 불러들여 부마(駙馬)를 삼겠느냐고 노염이 심하시고 꾸중이 심하셨지만, 따님이 워낙 네놈의 그 눈빛같은 터럭에 홈박 반해서 너하구 혼인하지 못하면, 죽는다고 야단이니 어찌하느냐. 타이르고 꾸중하고 하다 못해 종내 따님에게 지시고, 나더러 너를 좀 용궁까지 데려오라시누나. 이 벼락맞을 놈. 우리 용궁 일색을 뭍에 사는 네놈에게 빼앗길 일 생각하면 분하기 끝이 없지만 우리 대왕님의 분부가 계시니 할 수 없지, 여보게 토끼 생원. 나하구 좀 할께 가세. 여보게, 임자 데려오느라고 그릇 딴 놈 데려올까 보아 임자 화상까지 그려서 내게 분부야. 이 복벼락 맞을 자식 같으니. 천하일색 용궁의 햇빛― 네놈이 용궁공주를 데려가면 우리 용궁은 컴컴해지겠구나.”
234
능하지 못한 언변으로 늘어 놓는 바람에 토끼는 얼떨해졌다.
240
좌우간 해롭지는 않은 말이다. 게다가 천하일색이라 하고 용왕의 부마라 하니 토끼 비위가 동하였다.
244
다시 덤벙 바다로 들어갔다. 한참을 헴쳤다. 한바다까지 이르렀다.
245
한바다까지 이르러서 인제는 토끼를 놓칠 염려가 없이 되매, 거북은 비로소 안심하는 동시에 인제 토끼를 잡아온 덕으로 받을 막대한 상과 높은 벼슬이 생각나며, 스스로 얼굴에 떠오르는 미소를 금할 수가 없었다.
248
“자네의 덕으로 나는 인제 많은 상과 높은 벼슬을 하게 됐네그려.”
249
“내가 부마가 되면 나도 그저 있지 않을 테니.”
250
“하하하하하. 네가 부마가 돼? 등에 업고 보니 네 살이 꽤 보드럽구나. 맛있겠는걸. 네 간은 꺼내서 대왕님께 바치구 네 고기는 내가 얻어 먹겠네.”
253
“너를 잡아서 간을 꺼내 먹는단 말이야.”
254
정직한 거북은 (인제는 토끼가 도망치려야 칠 수 없는 한바다인 데 안심하고) 자기가 토끼를 속여서 지금 업고 가는 까닭을 토끼에게 다 말하여 주었다.
255
“뭍엣 짐승이란 그렇게 어리석단 말인가. 용궁 안에는 얼마나 사내가 없어서, 너 같은 방정맞고 야스꺼운 것에게 공주가 반하겠느냐 말이다. 저 잘난 맛에 산다구 너는 그래 네 꼴이 스스로 이쁜 줄만 아느냐. 이 어리석은 뭍것아.”
256
토끼는 잠자코 있었다. 기가 막힌 모양이었다.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비로소 생긋 웃었다.
257
“흥, 내가 어리석어? 어리석기는 네가 어리석다.”
259
“내 간이 어째서 그런 영약이 되겠는지―. 이놈의 간 저놈의 간 다 제쳐놓고 유독 내 간이 그렇듯 영약이 되겠는지, 그 점을 생각해 보지 못한 자네가 어리석지 않고 어떻단 말인가.”
261
“여보게, 내 간은 남의 간과 달라서, 한 달에 절반은― 초승부터 보름까지는 몸 속에 넣어 두되, 보름부터 그믐까지는 꺼내서 영기로운 곳에 걸어 두어서, 영기와 볕을 쬐네그려. 반 삭을 영기와 볕에 쬐어서 몸에 간직하면 그게 천하 영약이 되는 걸세그려. 그런 유다른 간이 아니고야 왜 하필 토끼의 간이 약이 되겠나.”
265
“그럼 지금 자네는 간을 가지고 있는가 안 가졌는가?”
266
“지금이 스무날이 아닌가. 지금은 꺼내서 영기롭고 인적 안 이르는 청명한 곳에 잘 널어두었지.”
268
여기서 토끼는 한번 그의 귀를 쫑긋하였다.
272
“내 산에 돌아가서 그 간을 가져다가 몸에 넣고 용궁에 가면― 공주가 천하일색이라지.”
276
“간을 갖다가 공주께 바쳐서 공주의 불치의 병이 낫는다 하면, 나는 공주의 재생의 은인이 아닌가. 재생의 은인이 용왕님의 부마가 못 되겠나.”
277
“그렇지만 임자는 간을 꺼내서 공주께 바치면 살겠나?”
278
“지금도 간 없이 살아 있지 않은가. 뿐더러 간을 아주 꺼내면 반 년만 지나면 또 새 간이 돋다나네그려. 중매만 서 주겠다면 내 그 간을 갖다가 공주께 바치마.”
279
“그건 내 담당하마. 자네 아니면 죽을 목숨을, 자네 덕에 살아났으면, 일생해로야 그 보은으론들 못하겠나. 중매는 내 장담하마.”
282
“염려말게. 내야 간을 바쳐두 반 년만 있으면 새 간이 돋아나니 염려없구, 그 대신 용왕의 부마가 되는 일이니 내 일은 염려말고, 중매나 다짐 두네.”
284
이리하여 거북은 토끼를 업은 채로 돌아섰다.
286
한 번 다시 서로 다짐을 두었다. 그리고 거북은 등에 업었던 토끼를 내려 놓았다.
287
거북의 등에서 뭍에 내린 토끼는, 열아믄 걸음 달려가서 거북에게 돌아섰다.
288
“이 어리석은 짐승아. 이 세상에 간을 꺼내고 사는 짐승이 어디 있단 말이냐. 간은 여기 이 내 가슴 속에 그냥 있다. 잘 가거라. 나는 산으로 간다.”
289
한번 소리높이 거북을 비웃고는 몸을 돌려서 산으로 향하여 달아났다.
290
선도해는 춘추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였다.
291
“알아들으시겠어요? 토끼가 거북을 속이고 옥― 에서가 아니라 바다에서 살아났단 말씀이지오. 옥에서―아이 내가 취했네― 옥에서가 아니라 바다에서 피해 나고자 거북을 속였단 말씀이지오. 예삿수단으로는 도저히 옥에서 ―가 아니라― 참 취했어― 바다에서 피할 도리가 없으니까, 제가 하지 못 할 일을 하겠노라고 거짓말을 해가지고 이로써 거북을 속이고 사지(死地)를 피해났단 말씀이야요. 바다에서고 옥에서고 살아나기 위해서는 거짓말이 필요한 때는 거짓말도 할 줄 알아야 하는 법인 모양이지오. 허허허 그놈의 토끼 슬기롭지 않아요?”
292
김춘추는 선도해의 수수께끼를 알아들었다. 감시하는 옥관이 있으매, 노골적으로는 말하지 못하였지만 선도해가 춘추에게 한 바 토끼와 거북의 이야기는, 말하자면 춘추에게 고구려 조정을(토끼와 같이) 거짓말로 속이고 몸을 빼어나가라는 뜻임에 틀림이 없었다. 무슨 거짓말을 어떻게 한다는 것은 김춘추 자기가 안출해야 할 일이지만 속이고 몸을 빼어나가라는 선도해의 의견만은 넉넉히 알아들었다. 청포 삼백 필의 값이 넉넉하였다.
293
선도해를 보낸 뒤에 쓸쓸한 옥중에 혼자 남은 춘추는, 고구려 조정을 속일 일을 생각하였다.
294
고구려 조정에서는, 춘추더러 ‘지금 신라가 차지하고 있는 마목현(痲木縣) 죽령(竹嶺) 등지는 본시 고구려의 땅이니 도로 돌려보내라’는 요구를 한다. 그 요구만 들어주면 무론 춘추는 본국으로 돌려보내 줄 것이다.
295
그러나 국가의 영토를 자의로 어떻게 한다는 것은 김춘추의 권한에 없는 일일 뿐더러 설사 권한 안의 일이라 할지라도 내 몸 하나를 위하여― 내 일신의 자유를 얻기 위하여 국가 영토를 운운한다 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도저히 응낙치 못할 일이다.
296
그러나 ‘돌려준다’는 거짓말로써 이 몸의 자유를 얻을 수 있다 하면 그 맛 방편은 혹은 취하여도 무방할까.
297
김춘추의 몸이라는 것도 신라 국가에서는 꽤 중요한 것이다. 현재의 인망으로 보든 신분 지위로 보든 혹은 역량 수완으로 보든, 춘추의 존재는 현하 신라의 무게를 훨씬 더하고 있는 배다. 실질적으로 국가에 손해만 없을 터이면 임시 방편의 거짓말쯤은 하여서라도 일신의 안전을 도모하는 것은, 오직 자기 한 사람을 위함이 아니요 국가적으로 적잖은 도움이 될 것이다.
298
김춘추는 자기의 일신의 자유를 도모하기 위하여, 고구려 조정에 비공식으로, 마목현 죽령 지방을 돌려주겠노라는 거짓 약속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299
그로부터 며칠 뒤 김춘추는 막리지(莫離支―군부대신) 연개소문을 좀 만나게 해달라고 청하였다.
300
춘추는 개소문의 앞에 나아가게 되었다.
302
호상에 걸터앉아서 개소문은 춘추를 보았다. 사람을 위압하는 그의 눈초리 앞에 춘추는 마주 앉아서 고요히 그를 우러러보았다.
303
“네, 막리지께 뵙구 잠깐 대왕님께 상주할 말씀을 주달해 주시기를 청하고자.”
305
“내 몸을 고국으로 돌려보내 주신다면, 마목현 죽령 등지를 귀국에 돌려보내오리다.”
306
“그럼 내 대왕님께 여쭈어서 이찬을 뵈옵게 하리다.”
307
이리하여 춘추는 고구려 보장왕의 어전에 나아가게 되었다.
308
“마목현 죽령 등지를 우리 고구려에게 반환하겠다고?”
309
보장왕은 춘추를 보자 곧 이 말부터 꺼내었다.
310
“네이, 외신이 무사히 환국하오면 우리나라 임금님께 여쭈어 그 땅을 대왕님께 돌려보내도록 하오리다.”
312
“네이. 소국으로 말씀합자면 하신이 비록 우매하오나 소국의 귀한 몸이옵고 겸하와 왕실의 지친이옵니다. 소국 몇백 리의 불모지지(不毛之地)보다는 한 하신을 소중히 여기옵니다. 하신의 무사환국을 위하와는 몇백 리의 불모지지는 결코 아끼지 않으리라고 하신은 믿사옵니다.”
314
“하신의 이 몸둥이가 계림의 국가로 보자면 약간한 영토보다는 더 귀중하옵니다.”
315
왕은 그의 막리지 개소문을 돌아보았다. 어떻게 할까 하는 의견을 묻는 눈치였다. 개소문이 왕께 아뢰었다.
316
“계림은 본시 반복무쌍하와 그대로 믿기 힘듭지만 이찬을 인질(人質)로 삼아 국경까지 호송하옵고 거기서 마목현 죽령 등지를 우리나라로 거두는 수속을 끝내고 이찬을 계림으로 돌려보내면 무방할 듯하옵니다.”
318
이리하여 마목현 죽령 등지를 고구려로 돌려보내는 교환조건으로 김춘추의 귀국을 허락하기로 작정이 되었다.
319
삼백 필의 청포로 몸의 해방의 약속을 얻은 김춘추. 옥에서도 해방이 되어 그가 나라에서 데리고 온(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종자(從者)들이 묵어 있는 사관으로 몸을 의탁하였다. 김춘추를 국경까지 호송할 관원이 준비되기까지 이삼 일간을 더 고구려에 묵어 있지 않을 수가 없었다.
321
그러나 장차 고구려의 호송군관들과 함께 국경까지 가야겠으니 거기서 고구려의 호송관원들을 어떻게 하고 자기 홀로이 고국으로 돌아가는가.
322
약속한 바 마목, 죽령 등지 반환은 마치 토끼가 거북에게 약속했던 생간(生肝) 출급과 마찬가지로, 춘추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는 바였다. 그야말로 임시의 방편에 지나지 못하였다.
323
적지 않은 생령과 적지 않은 물자와 적지 않은 노력을 들여서 얻었던 그 영토를 왜 고구려에게 돌려주랴. 내 변변치 않은 몸둥이 하나를 구하고자 그 피의 대상품을 고구려에게 주어? 당치않은 소리다. 또 그만한 영토를 얻을 수 있다 하면 이 목숨을 아끼지 않겠거늘 지금 일껏 얻었던 영토를 내 목숨 살겠다고 도로 내주어? 큰 망령이요 망발이다.
324
설사 내가 어떤 망발로 우리나라 조정에 그런 건의를 한다 할지라도, 우리나라의 조정에서 승락할 리가 만무하다. 섣불리 그런 소리를 꺼냈다가는 장군 김유신의 성난 칼에 몸과 머리가 두 토막에 나고야 말 것이다.
325
고구려 조정에서는 호송관원들 동행케 하여 국경까지 보낸다 하니, 국경까지 가서 영토반환의 수속이 되지 않으면 도로 자기를 붙들어 서울로 데려올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번에는 성난 고구려의 군신에게 목숨을 잃을는지도 알 수 없다.
326
죽기가 아까운 바는 아니다. 그러나 자기 한 사람이 없어진다 하는 것은 신라의 국가로 보아서 막대한 손실이다. 똑똑히 가치(價値)를 따져 보면 마목현, 죽령 등 지방과 비겨서 그다지 가볍다고도 볼 수 없다. 자기 일 개인으로는 죽기가 아깝지도 않다 할지라도 국가적 안목으로 보아서 경경히 죽을 수도 없는 이 몸이다.
327
어떻게 해서든 목숨을 그냥 보전하여 가지고 귀국을 해야겠다. 여기서 그렇게 헛죽음을 하지 않고 곱게 보전해 두기만 하면, 장차 나라를 위하여 얼마만한 공로를 세울지 어찌 알랴.
328
여기서 죽는 것은 의미없는 헛죽음이다.
329
그러면 어떻게 해서 이 목숨을 보전해 가지고 귀국을 하나.
331
춘추는 따로이 방을 하나 차지하고 종자들은 종자들끼리 딴방에서 자고―밤이 어지간이 깊은 때.
332
춘추는 소리를 감추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구려의 감시병의 눈은커녕 자기네(신라) 종자들에게도 들키지 않을 만치 소리를 감추어서.
333
곁방(종자들이 자는 방)으로 소리없이 건너갔다.
334
눈〔雪〕의 반사광 때문에 방안의 형지는 어렴풋이 알아볼 수가 있었다. 곤하기 때문에 깊이 잠든 종자들을 한 사람 넘고 두 사람 넘어 그가 목적했던 사람에게까지 이르렀다.
335
먼저 그 사람의 입을 막았다. 그리고 가만가만 몸을 흔들었다.
336
몇 번 흔들리우기 때문에 깨어나는 그의 입을 수건으로 단단히 누르고, 입을 귀에 갖다 대었다.
337
작기는 하나마 폐부를 찌르는 듯한 음성으로 한 마디 한 마디 똑똑히 종자의 귀에다가 불어넣었다―.
338
“먼저 귀국하거라. 김유신 대장군께 국경까지 정병을 이끌고 맞아달란다고 부탁해라. 나머지는 알아차려 좋도록 하거라.”
339
그만치만 분부하면 그 뒤는 알아차려 잘 처리할 만한 사람을 골라서 분부했는지라, 이 간단한 부탁만 하고는 춘추는 자기의 자던 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이번은 시킬 일 다 시켰는지라 마음놓고 자리에 들었다.
340
본시 김춘추가 고국을 떠나 고구려로 올 때에 김유신과 약속한 바― 육 순―두 달이 지나도 춘추가 귀국치 않으면, 고구려에서 해(害)를 본 줄로 인정하고, 김유신이 정병을 이끌고 달려와서 여제(麗濟), 두 왕정(王庭)을 쑥밭을 만들마 한 그 두 달이 거진 다 되었다. 의에 굳고 용감한 김유신은 혹은 지금 그 정병의 준비를 해가지고 있을 것이다.
341
만약 김춘추가 두 나라 국경까지 이르기 전에 김유신의 행동이 시작되면, 모든 일은 다 허물어지고 만다. 지금 김춘추가 보낸 사자가, 유신이 정병을 이끌고 출발하려는, 그 같은 때에 도달해야 꼭 좋을 것이다.
342
아직도 김유신 정병의 비보가 고구려 조정에 뛰어들지 않았으니, 여기의 사자가 빨리 가기만 하면 꼭 알맞은 날짜에 들어가 닿을 것이다.
345
드디어 춘추가 고구려를 출발하는 날이 이르렀다.
346
춘추는 고구려 임금께 하직하고 고구려의 장상들과 작별하고 귀국의 길에 올랐다.
347
춘추가 이곳으로 올 때에 데리고 와서 그 새 춘추가 왕옥에 갇히어 있을 동안 밖에서 기다리던 신라의 종자들이며, 김춘추를 호송하는 고구려의 호송관원(20명)의 일행은, 북국 정월의 매운 바람을 가슴으로 안고 고구려 서울을 떠났다.
348
춘추 본시의 목적이었던 청병(請兵)은 완전히 실패하였다. 지금 구원병은 커녕 무사히 국경을 넘는 것까지도 의심스러운 처지 아래서, 두 달 전에 왔던 길을 거꾸로 더듬어서 고국으로 길을 밟았다.
349
청병을 왔다가 그 사명을 다하지 못한 것만 해도 언짢은 일이어늘, 자기가 무슨 죄가 있다고 호송병으로 엄중히 단속을 받으면서 길을 가야 하는가.
350
그 위에 인제 장차 국경까지 이르러서 거기서 예기한 바와 같이 김유신의 영접 정예군이 와 있지 않으면, 그 뒷처리를 또 어떻게 해야 하는가.
351
방환(放還) 귀국의 길이지만 앞일을 생각하면 답답하였다.
352
고구려에서 실패한 구원병의 문제는 자기가 무사히 귀국하기만 하면 다시 다른 길로 활동하여, 당(唐)나라에 청병을 하여 당나라의 힘을 빌어서 백제에게 분풀이를 하면 되기는 될 것이다. 같은 이웃나라와의 분규를 가지고 멀리 당나라에게까지 청병을 한다는 것은 사체에 어긋나기는 하지만, 고구려가 이 청병을 응낙하지 않고 딴 시비를 꺼내니 부득이 그렇게 할밖에는 없다. 그러나 그보다도 선결문제는 자기의 무사 귀국이어늘, 이 문제가 어떻게 귀결지으려는가. 하루 이틀― 한 걸음, 두 걸음― 국경에 가까와 감을 따라서 무사 월경 문제가 차차 더 가슴을 무겁게 하였다.
353
여기서 김유신에게 보낸 사자는 어떻게 되었는가. 중도에 지체되지나 않았는가. 무사히 계림까지 득달하여서 예기했던 바와 같이 김유신을 만나서, 지금 이리로 달려오는 도중인가. 혹은 어떤 고장이 생겨서 모든 예기가 틀려나가지나 않았는가.
354
내일이면 국경까지 이르는 그 전날밤이었다.
355
‘내일’이라 하는 중대한 운명의 기로에 선 춘추는, 그 밤은 긴장되어 좀체 잠이 못들었다. 지금껏 너무도 아무 소식도 없으니 불안증이 마음에 적지 않게 일었다.
356
그저께와 꼭같은 어제요, 어제와 꼭같은 오늘이나, 내일도 오늘과 꼭같은(아무 변화도 없는) 날이 이르면 어찌하는가. 지금 고요히 잠든 이 세상에서 내일이라고 무슨 별다른 일이 생겨날 듯싶지도 않았다.
357
무슨 변동, 무슨 변화가 있어 주어야 할 터인데, 오늘과 꼭같은 내일이 이르면 이 일을 어찌하는가.
358
근심 걱정으로 좀체 잠이 들지 못하고 이리 돌아눕고 저리 돌아누우며 전전 불매하다가, 거진 날이 밝게 되어서야 간신히 잠이 들었다.
359
첫잠을 풀낏 들다가 밖에서 나는 소리에 깜짝 놀라 깨었다.
360
밖에서는 수다한 인마성이 요란스러웠다. 날은 벌써 밝아서 동천에는 불그스레한 아침빛 그림자까지 보이고, 인마성이 소란하고 노호성 질타성 무슨 큰 소란이 일어난 것이 분명하였다.
361
동시에 이 소란한 소리를 누르고 우렁찬 노호성이 들려 가로되―.
362
“우리 이찬 어디 계시오니까. 약속에 의지해서 소장 김유신 봉영차로 왔읍니다.”
364
이불을 박차고 일어났다. 옷을 입고 자던 몸이매, 그냥 문 밖으로 뛰쳐 나갔다.
369
붙들매 무슨 말이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너무 억하여 눈물만 주르르 흘렀다.
371
“정병 삼천을 이끌고 이찬을 봉영하려 왔읍니다.”
372
이 근처의 민가를 점령하고 이틀 전부터 여기서 춘추의 오기를 기다렸다 한다.
373
춘추를 호송하여 온 고구려의 호송관원들은 김유신에게 잡혀서 한편 방에 감금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374
“김 장군. 사명을 다하지 못하고 성상께 욕을 돌렸으니 사람을 대할 면목이 없소이다.”
375
“무법한 폭력 앞에 큰 욕을 보셨읍니다. 성상께옵서 고대하시오니 어서 환경하사 성상전에 뵈사이다.”
376
“백제의 무도함을 갚고자 이 나라에 청병을 왔더니, 대왕께서는 도리어 내게 땅을 반환하라 요구하시니, 이것은 일개 사신의 자유처리치 못할 문제라, 지금 임시의 방편으로 한 때 거짓말로 응낙했지만 이는 위협에 못이기어 부득이 한 대답이라 시행치 못할 일이라고 대왕께 여쭈어라.”
377
자기를 호송하여 온 고구려 관원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378
그리고 신라의 삼천 정예에게 호위되어 김유신과 말을 나란히 하여 서울로 서울로 길을 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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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에 지고 갔던 사명은 다하지 못하였지만, 무사히 귀국한 것을 기뻐하여 임금은 큰 잔치를 열고 춘추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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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에 국경까지 진군하여 춘추를 무사히 맞아온 공로로 임금은 김유신을 압량주(押梁州) 군주(軍主)를 제수하였다.
381
(〈野談[야담]〉, 1943.12~19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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