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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1
김남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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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여성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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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용의주도한 산보인이 되어본들 어떨 것이랴. 하루는 종로 네거리에서 오후 네 시를 기점으로 하고 서서히 발을 옮기어 보았다. 광화문 네거리에서 태평통으로, 부청(府廳) 앞을 지나 장곡천청으로 빠져 나가 우편국 앞 광장에 이르렀다. 로타리를, 교통윤리의 규정대로 우편국 ─ 본정 입구 ─삼월오복점 ─ 저축은행 ─ 청목당의 순서로 좇아 한 바퀴 돌고, 남대문 옆을 거쳐 경성역에까지 와서, 드디어 경의선의 완행이 오후 여섯 시의 손님을 쏟아 놓는 것까지 구경하고 나니, 그 동안에 소비한 시간이 더도 말고 꼭 두 시간. 장안의 짧은 하루는 이미 황혼을 지나서 캄캄한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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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코스를 산보하는 데 두 시간을 걸린 데는 까닭이 있다. 관문처럼 된 몇 군데에서 나는 십 분 내지 이십 분을 땅에다 발을 붙이고 조수처럼 밀려드는 사람의 떼에 황홀히 눈을 빼앗겼던 때문이다. 화신 백화점, 광화문 네거리, 조선 호텔, 본정 입구, 그리고 경성역 출구. ─ 이것이 세월 좋은 산보인의 수시(隋時) 정류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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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단 두루마기에 은호(銀狐)의 스카프는 둘렀으나 인력거를 타고 요리점으로 가는 이의 현대미에는 들 수 없다. 스와가 식의 외투에 알룽달룽한 조셋드의 목도리가 가난하고 시산스럽긴 하여도, 입술의 붉은 루즈와 전발(電髮)로 하여, 여급 제씨는 오히려 현대미의 총아가 되어도 마땅하다. 간편한 스목크로 화해 버린 스츠와 두터운 멜롱으로 깡총하게 겉갑줄을 두른 가방근 젊은 직업 여성의 물결. 총독부에서, 체신국에서, 보험과 분실에서, 경무국 분실에서……. 그들은 연령과, 화장과, 신은 지 반 년이 되는 마멸된 하이힐과, 즉쿠 가방에 든 벤토와 또는 부인구락부의 부록과, 한토리의 털실로 하여 어김없는 타자기양(孃[양]), 계산기양, 장부양, 서류나 카드 정리양, 교환수양 등등이다. 때때로 건방진 토크과 스마트한 앙상블과, 변소 옆 화장실에서 두드리고 나온 코티 냄새가 파격적이라 하여도, 그가 여학교를 나온 직업 여성임을 속이지는 못한다. 생활에 여유는 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렇다면 아직 신랑 될 신사를 붙들지 못했었거나 여하튼 그들의 머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 적게는 틀리되 크게는 일치할 것이다. 반도 호텔의 포치에서 차에 오르는 부인네가 있다. 애프터눈의 푸아코트를 입고 장식 입 붙은 크레르데싱의 부인모는 서울 태생 같지 않아서 혹여 부민관에서 공연하는 무용이나 음악, 아니 어느 영화관 아트렉션에 나올 스크린 여사는 아닐런지, 그러나 조선 호텔에서 나오는 모피 속에 대추씨만큼 한 얼굴을 파묻은 오만스러운 부인네는 동승한 코 큰 친구로 하여 연상한 것이 아니라. 대상을 삼킬 듯한 총명한 벽안으로 하여 우리가 가끔 오십 전씩 지불하고 구경하는 먼이방의 현대미인 것을 안다. 한가지 양복은 입었으나 부립도서관에서 커다란 책보를 끼고 땅만 보면서 걸어 나오는 우리 부이네를 보라! 그는 2부 시험에 안과 한 가지가 통과되지 않아서, 3부는 그대로 임상이니까 수이 면허증이 나올 것을, 그것이 마음대로 되질 않아 오늘도 변함없는 우울한 황혼이다. 본정 입구에선 우리 부인예술가의 삼삼오오의 작반과 만났으나 이들에게는 고유의 특색 있는 풍속이 아무데도 없어서 심히 유감스럽다. 그보다는 정거장이 훨씬 재미있다. 신촌서 오는 손님이 출구로 나온다. 까만 세루 두루마기는 아직도 제복이다. 양서(洋書)푼어치나 배운다고 모두가 가죽 가방이다. 그래도 뽑부와 중발(中髮)에 명랑이 깃들어서 유쾌하다. 「선생님 안녕히 가세요!」의 인사는 받는 이는 로힐에 검정 명주 두루마기를 길게 입어서 그 밑에 입은 것이 국방색인지 무언지는 알 수 없으나 낯짝에 기독교적 위선이 웃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그들의 성경 교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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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 고현(考現)산보는 그만하고 수첩을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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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무(虛無)미 ─ 아무데도 없다. 있을 것 같으나 아무데도 없는 것이다. 그들은 허무에 빠질 만큼 성실된 사색을 해 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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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懷疑)미 ─ 이것도 상(上)과 동(同)함,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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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폐미 ─ 이건 얼마든지 있다. 허무미나 회의미는 결여되고 퇴폐미만이 흔하다는 것은 현대 여성의 내면생활에 「성실」이 빠져서 없어졌다는 것을 말하는 증거가 되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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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感傷)미 ─ 그러니까 감상미는 영구히 현대 여성미의 구성 요소가 된다. 감상미를 끌고 다니는 한, 조선 여성의 지적 수준은 문제도 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범용성과 평범성이 훨씬 미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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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설(饒舌)미 ─ 이건 현대적 화술만 체득하면 언제까지나 가지고 있어도 좋을 것이다. 침묵은 여성에게 있어서는 미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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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장(擬裝)미 ─ 연약한 부인네, 성조차 가질 수 없는 아담의 늑골은 의장을 가져야 한다. 위엄을 갖추고 세계라도 삼킬 듯이 한번 뻐겨보지 못할 것이 무엇이랴! 전일, 미국에서는 스텐레스 스틸제의 헬멧 같은 군국조(軍國調)의 금속모가 부인네들 간에 전시 모드로서 유행하고 있다는 외전에 접하였다. 사자처럼도 차려라! 탄환처럼도 의장하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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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미 ─ 여성미를 희생하고서야 교양미가 생겨난다면 나는 절대 반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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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평론』, 1940년 1, ‘현대미의 서(書)’ 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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