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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금강산(金剛山) 삼방약수(三防藥水)와 석왕사(釋王寺) 원산(元山) 해수욕장과 명사십리의 해당화 또 하다못하면 가직한 인천 월미도(月尾島)의 조탕(潮湯)…… 이렇게 죽 골라 세기만 하여도 무엇이 어찌 좀 선선하여지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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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왕이면 얼마나 시원한 맛이 나나 보게 좀더 자세한 것을 써보았으면 하겠지만 원래 그러한 곳이라고는 한번도 가서 놀아본 적이 없으므로 그야말로 자반조기한 뭇을 사서 달아 매어놓고 밥 한 숟갈에 한 번씩 치어다보는 격이나 얼마 상관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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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작년 여름에 모사(某社)에 있는 덕으로 하기(夏期) 백마강(白馬江) 탐방(그 강이 실상은 금강이지만 중간의 어느 부분은 백마강이라고 합니다)을 갔던 일이 아직 어렴풋이 기억에 남아 있으니까 그것이나 이용하여(하기야 두 번이나 부려먹기가 좀 창피는 하지만) 나처럼 좋은 곳으로 피서를 못 다니는 독자를 위하여 간단하고도 비교적 취미가 있음직한 피서 안내나 하나 만들어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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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있는 독자 가운데 한 일 주일 동안의 여유만 있거든 삼사 인이 작반(作伴)하여서 내일이라도 길을 떠나면 그다지 후회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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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라야 비용으로 한 20원쯤 들 것이고 함부로 굴러도 관계치 아니할 옷 한 벌이면 그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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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밖에 카메라와 간단한 악기를 가지고 가도 좋겠고 또 담요는 하나 필요하겠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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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8월 10일 전후면 음력으로는 7월 보름이니까 더위도 한참이려니와 밤이면 달까지 있어서 마침 떠나기에, 가서 놀기에 알맞은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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푹푹 삼는 듯한 더위와 눈코를 뜰 수 없는 먼지의 구렁텅이 서울을 벗어나 경성역에서 아침 열시에 떠나는 남행(南行) 특급열차에 몸을 싣고 앉으면 시원스럽게 달아나는 그 쾌(快)한 속력과 차창으로 들어오는 선선한 바람이 벌써 반(半)피서는 넉넉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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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열차 안에서 네 시간 가량 창밖 경치를 구경하고 있느라면 오후 두시가 좀 지나서 대전역에 당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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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역에서 잠깐 기다려 다시 호남선을 갈아타고 남으로 내려가느라면 다같이 피서객의 눈을 살지게 하는 푸른 산과 맑은 강언덕을 몇 굽이 지나 오후 다섯시쯤 하여서 강경(江景)역에 내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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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강경이가 우리의 뱃놀이의 최초 출발지입니다. 최초 출발지이니까 다소 준비도 할 겸 또 지리도 서투르니까 위선 안내를 받자면 어느 신문지국을 찾아가는 것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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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를 가든지 지방의 신문지국에서는 그 지방으로 찾아오는 탐승객(探勝客)을 예상 이상으로 고맙게 대접하여 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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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간 아직 남은 해가 멀었으니까 안내하는 사람을 따라 시가를 한 바퀴 휘돌아 앞산(무슨 산이라든지 이름은 잊었지만)에 올라가면 강경 시가의 전폭(全幅)을 발 아래 내려볼 수가 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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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강경이라는 곳은 강경평야라는 넓고 밀숨한 들 가운데서 발전한 곳이기 때문에 다만 상업지대일 뿐이지 그다지 경치나 고적은 찾을 곳이 되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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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약간의 고적과 소위 강경팔경이라고 몇 군데 좋다는 곳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뭐 그다지 신통하지가 못하고 또 강을 끼고 있기는 하지만 물이 탁하기 때문에 청신한 맛이 없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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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경을 마치고 나서 여관을 찾아들면 꼭 저녁밥 때가 알맞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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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먹고 나서 달도 밝고 하니까 뒷산 정산(亭山)에 올라가서 소풍도 하고 또 웬만하면 맥주병이나 깨트리기에 그다지 무류하지는 아니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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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잊어서 아니될 것은 밝는 내일 부여를 거쳐서 공주까지 갈 배 하나를 미리 말하여 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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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자동차로도 넉넉히 갈 수는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아무 취미가 없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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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부여를 왕래하는 장배가 있기는 하지만 마침 그 기회를 만날 수도 없는 것이고 또 장배를 타고 가느라면 중간에서 마음대로 놀 수가 없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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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십 원 주면 사공 딸린 조그마한 범선(帆船) 하나를 빌릴 수가 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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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가지는 강경에 소년군(少年軍)이 있으니까 천막 하나와 자취기구를 좀 주선하여 가지고 조그마한 고깃그물 한 채를 빌어서 배에 실어두면 반드시 쓸 곳이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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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그밖에 쌀이나 몇 되 하고 빵 몇 덩이하고 간즈메통이나 사가지고 가면 넉넉하겠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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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맥주 다스나 있으면 해롭지는 않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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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는 날 느직이 선창으로 나아가서 준비하여 둔 배를 타고 백마강 뱃놀이의 첫 길을 떠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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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도 말한 바와 같이 강물은 얼마 가는 동안까지 매우 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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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것은 잠깐 동안 말이고 차차 가는 동안에 물은 점점 맑아지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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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푸른 강물에 돛대를 넌지시 달고 소리 없이 미끄러져 올라가면서 고요한 바람결에 들려오는 뱃사공의 콧노래도 듣고 뱃전에 나앉아 시원한 찬물에 발도 잠가보고 때때로 배를 버리고 백모래사장에 뛰어내려 한참씩 걸어가면서 사지를 마음껏 내어뻗고 소리도 쳐보고 얕은 물을 만나거든 옷을 활활 벗어 내던지고 목욕도 하여보고 그물을 던져 한 두 마리 걸리는 고기도 잡아보고 또 가다가는 강 언덕의 주막에 올라가 백마강의 별미인 우어(이 우어는 대동강과 한강과 금강의 세 군데서밖에는 나지 않습니다) 회에 입맛을 다시면서 맥주잔이나 마시기도 하고. 이렇게 천천히 가는 대로 가느라면 이른 석양에 대왕벌(王場里)에 다다라 부여의 엿바위(窺巖津)를 가까이 바라볼 수가 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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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빨리 서둘면 강경에서 부여까지 세 시간이면 넉넉하지만 결코 그렇게 할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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엿바위에 배를 대고 언덕에 내려 조금 가느라면 자온대(自溫臺)가 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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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수북정(水北亭)이 산언덕에서 강물을 굽어보며 위태로이 서 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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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곳에 발을 잠깐잠깐 멈추었다가 다시 엿바위나루를 건너 한 오리쯤 가면 그곳이 바로 우리 백제의 옛도읍터 부여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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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부여, 우리의 역사 가운데 가장 눈물겨운 멸망의 페이지를 채운 백제의 옛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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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발을 들여놓으면 길가에 성긴 이름 모르는 풀포기와 하늘에 떠다니는 무심한 구름까지라도 창연한 빛으로 우리를 맞이하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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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하면서 바로 고적을 찾아가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나 달이 있을 터이니까 저녁으로 미루고 위선 여관을 찾아들어 잠깐 동안 쉬는 것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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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고 나서 저녁밥을 마치고 달이 돋아오르거든 부소산(扶蘇山)에 올라가 위선 천고의 한을 머금고 어둑한 비각(碑閔) 속에 말없이 서서 있는 유인원(劉仁願) 장군의 비에 점두(點頭)를 하고 그 길로 사자루(泗泚樓)에 올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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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루는 근래에 지은 것이라 고적이라고 일컬을 것은 못되지만 바로 발밑으로 흐르는 백마강의 푸른 물을 굽어보며 벌써 옛날에 지고 없는 낙화암의 삼백 수중 원혼을 안돈(安頓)시키는 듯이 이른 아침과 늦은 저녁에 고요히 고요히 울리는 고란사(皐蘭寺)의 종소리를 들으면서 발길을 두루 옮기기에 매우 알맞은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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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취(詩趣) 깊은 이가 술잔이나 기울이고 몇 구 시나 읊으면서 고요히 잠자는 옛 부여의 일대를 상상하느라면 일종의 형언할 수 없는 깊은 명감(銘感)을 맛볼 수가 있읍니다. 달이 밝고 먼지가 걷혔는데 주흥(酒興)까지 띠었으니 밤이야 깊건 말건 오래도록 놀다가 돌아오는 길에 평제탑(平濟塔)⎯이 탑이 만일 귀가 있어서 듣는다 하면 발버둥을 치게 원통한 이름을 듣고 있는 기실의 왕흥탑(王興塔)⎯을 잠깐 구경하는 것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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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길이 험하기는 하지만 사자루에서 바로 고란사를 들려보는 것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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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는 날이 떠난 지 사흘째 되는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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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직이 일어나 다시 몇 군데 구경할 만한 곳을 둘러보고 어제 배를 매어두었던 엿바위로 나아가서 돛을 고쳐 달고 공주(公州)로 향하여 떠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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엿바위에서 떠나 수북정(水北亭)을 돌아보면서 한 십 분 동안 가느라면 바른편 강언덕에 산이 다다른 곳에 깎아지른 어마어마한 바위가 오랜 비바람에 시달린 자취로 고색이 창연하게 서서 있으니 이가 곧 낙화암(落花巖)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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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화암, 낙화암, 옛일을 알면서도 말이 없는 낙화암, 수많은 가인재자(佳人才子)를 울리는 낙화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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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화암이 말이 없고 배 역시 무심히 지나가니 역시 가는 길을 길게 멈출 수는 없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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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화암을 지나 비회(悲懷)가 더우기 가라앉을 만하면 강물은 더욱 맑아지고 강 언덕의 세사(細沙)는 더욱 희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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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어제 하루와 같이 즐겁고 시원스럽게 천천히 올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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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다가 날이 저물고 물새가 강물을 차고 날아들어 지저귈 때쯤이면 금성리(錦城里)라는 공주 땅에 다다를 수가 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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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야 주막에 들어가서 잘 수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그것은 재미가 적고 또 음식이 나쁠 뿐만 아니라 모기와 빈대 벼룩이 생으로 사람을 물어가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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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까 기왕 가지고 간 자취기구와 천막이 있겠다, 강언덕 마른 곳을 가리어 치고 주막집에 가서 나무를 얻어다가 섣부른 솜씨나마 저녁밥을 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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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선을 살 수가 있거든 주모를 주어 국을 끓여 달라는 것도 좋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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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하여가지고 둘러앉아 먹느라면 아마 그 맛이 조선호텔에 가서 십 원 가까이 내는 정식보다 몇곱절이나 나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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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먹고 나면 동편인 듯싶은 산봉우리에서 달이 우렷이 떠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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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 오르거든 다시 배로 돌아와 그물질을 합니다. 물이 얕아서 그다지 어렵지는 않겠지만 그러나 우리의 재주로는 아무리 하여도 몇 사람이 먹을 고기를 잡을 수가 없을 터이니까 한편으로 주막 사람에게 부탁하여 얼마간 잡아달라는 것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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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가 잡히거든 주모를 주어 회를 쳐가지고 배에 올라앉아 사가지고 간 맥주병을 터트리면서 먹습니다. 혹은 달을 우러러보며 혹은 은빛 같은 고기가 잠방잠방 뛰노는 물을 굽어보면서 한잔 두잔 마시는 그 맛이 결코 소동파(蘇東坡)가 적벽강(赤壁江)에서 놀던 것만 못하지 아니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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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물며 인내(人臭)와 음내(淫臭)가 물씬거리는 통속 피서지에 가서 뇌꼴스러운 꼴을 보는 것 같겠읍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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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대로 마시고 마음대로 놀고 노래부르고 소리치고 나서 저으기 밤이 깊거든 주막집에 가서 섬거적을 빌어다 천막 안에 펴고 가지고 갔던 담요를 덮고 하룻밤을 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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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아침에는 어제 저녁에 먹고 남은 생선으로 주모의 손을 빌어 얼큰하게 국을 끓이고 역시 손수 지은 밥을 먹고 다시 배를 띄워 올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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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어제와 그저께 같은 하루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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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짓을 사흘이나 되풀이하면 싫증이 날 것 같으나 실상 당하여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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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양에 공주의 곰나루 (熊津)를 지납니다. 곰나루에서 조금 더 가면 공주의 입문인 배다리에 배를 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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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주가 백제의 처음 도읍지인데 우리는 여기로서 백마강 뱃놀이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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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 왔던 배는 배다리에서 작별하고 위선 여관을 찾아들어 하룻밤을 편히 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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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을 지내고 이튿날 아침에 대강 볼 만한 곳을 구경하고 나서 마지막으로 배다리 위에 뱃놀이를 꾸미는 것도 무류하지는 아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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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가 그래도 시골로는 번화한 곳인만큼 뱃놀이도 도회풍조(都會風調)로 할 수가 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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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으로 피서를 마치고 자동차로 조치원까지 나와서 밤차로 서울로 돌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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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필자의 붓이 서툴러서 독자의 마음이 당기도록 사실을 여실코 재미있게 쓰지는 못하였으나 실지로 한번 시험하여보면 그 맛을 알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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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現代評論[현대평론] 1927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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