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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아의 형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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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오장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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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아의 형벌
 
 
 

1. 1

 
3
生也一片浮雲起(생야일편부운기) 死也一片浮雲滅(사야일편부운멸) 浮雲自體無本質(부운자체무본질) 生死去來亦如是(생사거래역여시)라 하였사옵니다. 저는 지금 이렇게 생각하옵니다.
 
 
4
한동안 조용하던 소월의 마음에 파문을 던진 것이 있었다.『망우초(忘憂草)』-안서의 한시역(漢詩譯), 그것은 남이 보면 그렇게 크게 문제될 시집이 아니었다. 그러나 소월로서는 안서의 이 작은 업(業)이 한없이 마음에 키이었다.
 
 
5
동으로 가면 동대문이요
6
서으로 가면 서대문이요
7
남으로 가면 남대문이요
 
8
-안서,「광화문 네거리에서」
 
 
9
이미 정열조차 고갈하여 별것을 다 시로 쓰는 그의 스승. 일찍이는 그의 광명이요 그의 동경이던 안서가 이제 와서는 그가 볼 때 한낱 시의 반도(反徒)요 백면서생인 청년 이흡(李治)에게‘시땜쟁이 김억’이란 표제로 풍자시에까지 오르내리게 되었으나 그래도 꾸준히 밀고 나기는 스승의 모습은 소월의 초조한 마음을 그대로 두지는 않았다.
 
10
“잊자 하시는 선생님이 잊지 아니하시고 주신『망우초』책은 역문(譯文)이라든가 원작이라든가 졸혹가(拙或佳)는 막론하옵고 고침(孤枕)에 꿈 이루기 힘들 때마다 낭공(藝空)에 주붕(注朋)이 없어 무료하올 때마다 읽겠사옵니다” 하는 서신과 함께 오랜만에 볼 수 있는 그의 시고(詩稿)가 안서에게로 갔다.
 
 
11
삼수갑산 나 왜 왔노,
12
삼수갑산이 어디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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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고 나니 기험하다
14
아하 물도 많고 산 첩첩이라.
 
15
내 고향을 도로 가자,
16
내 고향을 내 못 가네.
17
삼수갑산 멀더라
18
아하 촉도지난(蜀道之難)이 예로구나.
 
19
삼수갑산 어디메냐,
20
내가오고 내 못 가네.
21
불귀로다 내 고향을
22
아하 새더라면 떠가리라.
 
23
님 계신 곳 내 고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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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못 가네,내 못가네.
25
오다가다 야속하다
26
아하 삼수갑산이 날 가둡네.
 
27
내 고향을 가고 지고
28
삼수갑산 날 가둡네.
29
불귀로다 내 몸이야
30
아하 삼수갑산 못 벗어난다.
 
 
31
제(題)를「차안서선생삼수갑산운(次岸曙先生三水甲山韻)」이라 붙어있는 이 작품이 처음부터 발표를 위한 것이 아니고 서신 속의 부분이라고는 하나 이것이 지금엔 세상에 알려진 그의 절작(絶作)이다.
 
32
이 작품의 세계는 전체가 애절한 분위기와 호소로 면면히 짜여 역시 소월이 아니면…… 하는 느낌은 주나 그의 작품으로서는 저조를 면할 수 없다. 민요조로 풀려나간 압운,이것도 왕년에 형식을 이리저리 바꾸어 꾸미던 7 ․5조의 묘미와 신선한 감각을 볼 수는 없고 어구의 중복은 거듭하여 후중한 느낌을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일률로 가하여지는 음영의 압력은 두말할 것도 없는 절망감이다.
 
33
모처럼 붓을 든 것이 이렇다. 나도 시가 쓰고 싶으다. 나도 이렇게 시를 쓸 수 있다. 이처럼 별러서 쓴 그의 시가 이러하였을 것이다.『망우초』가 간행된 것이 1934년 그의 죽던 해였으니까 소월이 아무리 별렀대야 그 작품의 주조만은 바꿀 수 없었을 것이다.
 
34
이해,소월은 여러 해를 살아온 구성군(龜城郡) 남시(南市)에 있었다. 처음 치패(致敗)한 가재(家財)에서 분깃을 받아가지고 고향인 곽산을 나올 때에는 동아일보 지국장이라는 지방에서는 유지의 지위가 남시에서 그를 기다리기도 하였다.
 
35
한낱 일화를 가지고 그의 생활 전체를 이야기하는 것은 온당치 않겠으나 그의 만년에는 이런 일이 있었다. 여러 해를 두고 남편의 강권에 못 이겨 반주(飯酒)를 함께 하여오던 소월의 부인은 그를 따라 장거리의 선술집에 까지 동행을 하였다 한다. 그러면 그는 돌아오는 길에 대로상에서 춤을 추고는 하였다 한다. 이러한 소월이 시가 그의 오매(寢寐)에 잊을 수 없는 세계라 하여도 잠시 스승의 소엽(小業)에 깨우쳐 그냥 뛰쳐나기는 할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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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부림을 치는 것 그냥 받아들이는 감성밖에 없는 사람이 몸부림을 치는 것,이것은 아무리 선의로 생각하여 모든 사회악과 부정에 항거하는 몸짓이라 한다 하여도 이것은 일호(一毫)의 공이 없는 것이다. 이러한 감정은 2차 대전으로 말미암아 승리한 위대한 민주주의가 우리의 눈을 띄워주지 않았던들 대개의 소시민이 헤어날 수 없는 수렁이기도 하여 더욱 몸 가차이 느끼는 감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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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점에서 소월이 장기라 하면 몸부림치는 것이 남보다 능동적이었다고 할까. 그러나 이것은 처음부터 문제가 아니다. 그때의 정세 즉 소월의 만년, 1933, 1934년을 곁들인대도 별것은 아니다. 포학한 일본이 만주 침략을 끝마치고 안으로는 우가키(宇垣一成)가 이 땅의 총독이 되어 자작농 창정(創定)이니 전향 정객에게 이권분여(利權分與)니 하던 이것보다는 소월이 그의 만년을 어떻게 알았으며 그의 생을 어떻게 처리하였느냐 하는 것이 여기에는 중요한 명제이다.
 
38
소월은 1934년 그해 서른두 해의 생명을 가지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하룻저녁 다량의 마약을 복용한 그는 아침이 되어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집에서는 외문(外聞)을 돌리어 병사(病死)로 발표하였다. 이것이 허망한 소월의 생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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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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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41
일찍이는 이처럼 목메어 호소하고 또 그런가 하면 한편으로 조용하게 목청을 낮추어
 
 
42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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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빛
44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45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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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꿈꾸던 생활은 그에게 없었다.
 
47
천진한 시인,정직한 가련아(可憐兒),이렇게만 생각하려던 나는 그의 죽음과 그의 죽음의 결행을 전일(前日)의 불운한 시인 예세닌과 비하고 싶었다. 소월과 예세닌 이것은 물론 대조도 안 되는 일이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이 자아에게 향하여 내리는 최고의 형벌인 자살의 길을 취하였을 때 나는 그들의 행동을 동일한 경지에서 나무랄 수 없었으며 되레 사랑하지 않을수 없었다.
 
48
시집『진달래꽃』을 간행할 당시 역시 그의 스승 안서가 발행하던 잡지 『가면』에 쓴 시편들과 그 후 파인(巴人)이 발행하던 잡지『삼천리』에 뜨문뜨문 발표된 한시역(漢詩譯)을 남겼을 뿐,여러 해 동안 전연 붓을 던지다시피 한 소월이나마 나는 그의 죽음이 온전함이 아님을 알았을 때 과거의 모든 것은 이 냉혹한 자아의 형벌로서 풀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이렇게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이것이야말로 양심이 요구하는 지상 명령으로 알았던 것이다.
 
 
 

2. 2

 
50
제가 구성 와서 명년이면 십 년이옵니다. 십 년도 이럭저럭 짧은 세월이 아닌 모양이옵니다. 산촌 와서 십 년 있는 동안에 산천은 별로 변함이 없어 보여도 인사(人事)는 아주 글러진 듯하옵니다. 세기(世紀)는 저를 버리고 혼자 앞서서 달아간 것 같사옵니다. 독서도 아니하고 습작도 아니하고 사업도 아니하고 그저 다시 잡기 힘드는 돈만 좀 놓아보낸 모양이옵니다. 인제는 돈이 없으니 무엇을 하여야 좋겠느냐 하옵니다.
 
51
소월은 그의 시집이 간행된 그 다음해 즉 1926년에 구성으로 가서 1934년 그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한곳에 살았다. 그러므로 그의 구성 생활은 그 초년(初年)을 제한다면 온전히 시 생활(詩生活)에 있어서는 공백 시대이다.
 
52
전장(前章)에 서술한 소월의 생태는 오랫동안 내가 생각하던 방식이었다. 나는 그의 시 생활의 공백 시대 그것보다도 이것을 통하여 그가 절작으로 남긴「차안서선생삼수갑산운」에 표현된 그의 심경에 좀더 관심을 가졌다.
 
53
구성에서 곽산까지는 그리 먼 곳이 아니다. 풍을 친다면 엎어지면 코가 닿을 곳인데“오고 나니 기험하다 아하 물도 많고 산 첩첩이라”하고
 
54
“불귀로다 내 고향을 아하 새더라면 떠 가리라”하여 자기의 위치를 우리나라에서 제일 험한 삼수갑산에 비하였을 리가 없다.
 
55
이 시를 읽으며 이 사람은 무엇을 하나 왜 이리 깔고 뭉개기만 하는 가하고 안타까이 그의 지향하는 것을 같이 지향하다가도 혀를 차는 나는 그의 자기(自棄)하는 정신을 경멸하기도 하고 허순하게도 느끼었다.
 
56
저도 모르게 절망까지를 긍정하는 이 무력한 위인의 앞길은 점쟁이가 아닌 사람이라도 그는 건질 수 없다고 단정할 것이다.
 
57
소월이“내가 오고 내 못 가네”“삼수갑산 날 가둡네 아아 삼수갑산 못 벗어난다”하는 것은 조금 남은 그의 꿈-지난날에 그의 보람이었을-이것마저 버리는 것이다. 그의 마음은 한 노래를 꾸미는 데에도 이처럼 기력(氣力)이 암암하다.
 
58
몸부림도 무서운 것이다. 여러 해를 두고 하여온 자아의 학대! 이것을 위한 감정의 운동은 그를 꼼짝달싹도 못할 만큼 피로하게 하였다. 그가 이러한 때 인간 최후의 단안을 내린 것이 겨우 그 누질린 무력(無力)이 마지막으로 매인 투전패란 말가.
 
59
아니다 아니다 소월은 그런 것이 아니다 하고 그를 애착히는 감정이 이것을 싸고돌려 한다. 양심이 요구하는 지상 명령이 자아를 형벌할 때 목숨을 스스로 잘라라 하는 이런 일은 없다. 죽음은 끝이요 또 자기를 없애는 것이니 이것은 형벌이 아니다. 그러면 앞서서 나는 왜 소월이나 나아가서는 예세닌의 죽음에 대하여 아름다운 옷을 입히려 하였는가.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를 싸고돌려 하는 심정 또 그를 편애하는 감정의 정체이다.
 
60
이토록 마음이 키이고 안타깝고 한 것을 내가 오래인 세월에 깨달은 것은 그에게서 느낀 나 자신의 지양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선뜻 스치고 만 스러지는 작은 감정의 하나하나이라도 이것이 그를 내 곁으로 오게 한다. 내 처지는 이러니 관대하게 보아주 할 수는 없으나 친구의 입장은 이러니 동정이 안 갈 수 없다는 것은 일면 떳떳하여도 보인다.
 
61
남의 처지를 미화시켜 합법적으로 자아를 변명하려거나 고전 계승의 표방 아래 그 그늘 밑에 자취를 숨기려는 심사와 쾌히 결별하기 위하여서는 속히 이네들과의 사이에 놓여진 거리를 밝혀야 된다. 이러고 보면 일찍이 예세닌이 자살을 하였을 때“우리는 한 사람의 셀요샤조차 구하지를 못하였다. 앞으로 그의 뒤를 따르는 수많은 청년들을 위하여는 무슨 일이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부르짖은 그 당시 루나차르스키의 말은 오늘에도 남의 일이 아니다.“우리 공청원(共靑員)의 책상 위에는 『공산주의입문』과 함께 예세닌의 앓은 시집이 놓여 있다”고 기급을 하여 놀란 부하린의 말은 어제까지도 아니 실상은 무의식중의 현재까지도 오래인 과거를 통하여 정서상의 감회를 입어온 우리에게 있어 많은 시사를 주는 것이다. 그렇다. 급격한 전환기에 선 우리에게는 이성과 감성이 혼연(渾然)한 일체로서 행동과 보조를 맞추기는 힘드는 일이다.
 
 
62
아 이 원통함이 술로써 씻어질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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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칠은 들판을 무작정 헤매인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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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몸뚱이를 사뭇 짓이긴다 하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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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마음속의 고뇌를 씻을 수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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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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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내리는 괴타리를 찢어 던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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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청(共靑)의 뒤에서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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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달음질을 치고 싶어진 것은……
 
 
70
이것은 말년까지 작품을 통하여 보조를 맞추기에 피 흐르는 노력을 아끼지 않은 예세닌의 안타까운 몸짓이다. 의지와 감성의 혼선은 이처럼 장벽을 건넌다. 하물며 그 생활에서 모든 것을 내어던진 소월,소월에서랴.
 
 
71
산에는 꽃 지네
72
꽃이 지네
73
갈봄 여름 없이
74
꽃이 지네
 
 
75
소월은 그저 관조적인 표현에서만 더 많이 그의 해조(諧調)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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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 주위의 정세는 여러 고팽이의 위기와 침체와 고난이 있다. 딛다가도 한 번씩 이 위기가 닥쳐올 때마다 마음의 준비를 갖추지 못한 감정인들은 심한 상처를 입는다.
 
77
그때마다 생각키이는 이 감정,자아에게 내리는 최고의 무자비한 형벌! 준열한 양심이 요구하는 지상 명령! 이처럼 버젓하고 떳떳하여 보이는 듯한 감정 속으로 뛰어들려고 한다. 그렇다 더욱이 지금의 현실은 양심이라는 것 만으로도 생각하려 하는 소시민 인텔리에게는 참으로 괴롭고 어려운 시기다.
 
78
무위(無爲)한 소시민 인텔리 이들도 옳은 것을 위한 투쟁이 바른 길로 살기 위한 투쟁이 단 한 번이나 혹은 두 번쯤만이라면 구태여 스스로의 목숨을 끊는 경거(輕學)에는 나가지 않을 것이다. 겹쳐오는 투쟁과 또 여기에 따르는 고역과 상처 이것은 계산에서가 아니라 육체로 받아들이기는 조만한 일이 아니다.
 
79
어떻게 해결을 짓자. 결말을 내리자. 되도록 숭없지 않게…… 이처럼 가장하려는 패배 정신은 스스로의 생명을 끊어버리는 무모한 짓까지도 하게 한다. 이 정체(正體)! 우리가 알기 싫어하는 이 정체는 자아가 절박한 경우에 처하여 행동을 요구할 때 그 행동을 갖지 못하는 무위한 인간이 처음으로 하여보는 일종의 행위이다.
 
80
단 한 번의 용단! 이 얼마나 피곤하고 가엾은 처지에 있는 사람의 처사이냐. 그것이 더욱이 자기의 박약한 지조를 살리기 위한 지키기 위한 또는 그렇지 않다면 각각(刻刻)으로 더러워지는 자기 자신을 그 더러움 속에서 건지기 위한 최후의 방법이었다면 사리(事理)의 시부(是否)는 밀어놓고라도 일말의 측은한 정을 금할 길은 없다.“자살은 자유주의자가 마지막으로 사용할 수 있는 피난처”라고 일생에 존경하는 E형이 그 옛날 필자와의 대담 끝에 이런 말을 하여 그때의 나는 그를 대단히 매정한 사람이라고 원망까지 하였지만 지금까지도 저도 모르게 소시민을 고집하려는 나와 또 하나 바른 역사의 궤도에서 자아를 지양하려는 나와의 거리는 다름 아닌 이것이다.
 
81
지상 명령과 마지막 한 장의 투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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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또한 우리가 앞으로의 고전문학을 받아들이는 데 있어서도 어제와 오늘의 상거(相距)를 여기에 두어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원문】자아의 형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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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詩)
 
  진달래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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