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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석(木石) 부인 ◈
◇ 제1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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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9~10
이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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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목석(木石) 부인
2
제1장
 
 

1. 제1절

 
4
내가 이·특이한─이라고 한다면 그 무슨 이단적인 의미의 선입감을 독자한테 줄 위험성도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따로 알맞은 말이 생각나지 않기로 이대로 두지마는, 어쨌든 송씨 가족과 함께 지난 여름부터 늦은 가을까지의 몇 달 동안을 회고할 때 실로 별세계에 여행이나 하고 돌아온 감회를 억제할 수가 없다. 나는 뜻밖에도 송이라는 한 중년 신사한테 끌려갔던 것이다. 자기 아버지의 초상화를 그려달라던 것이다.
 
5
말은 끌려갔다고 했지만 이 초청을 받고 나는 숨을 후유 내쉬었었다. 그만큼 나는 공적-이라야 대단할 것도 없지만-으로나 사생활로나 옴치고 뛸 수 없는 막다른 골목 안에다 나 자신을 몰아넣고 있었던 것이다. 좀더 솔직하게 고백을 한다면 내가 자살이라도 해야 한다는 중압감에 사로잡혀 있을 때다. 사실 그날 아침 송필수 씨한테서 그런 편지만 받지 않았더라도 나는 그날밤쯤은 이 몇 글을 두고 벌려온 자살을 단행해버렸을지라도 모르던 일이다.
 
6
'오늘도 아직 나는 사아야 하는가?'
 
7
아침에 눈이 뜨일 때마다 내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이 이것이었다. 이런 질문을 내게 하는 사람은 이 최근의 나라는 인간이 저지르고 다니는 행동을 그 누구보다도 잘아는 사람이었다. 나 같은 인간은 죽어 없어져야 마땅하다는 그 사람의 판단은 실로 정당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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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오늘도 더 살아 있을 작정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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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나에게 이렇게 따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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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끼, 지지리도 못난 위인! 뻔뻔스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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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이렇게 자살을 강요하는 사나이는 다른 사람도 아닌 박훈 씨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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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훈이란 갓나서부터 불러온 나 자신의 성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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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약 반년을 두고서 이 박훈이란 무지막도한, 잔인하기 짝이 없는 사나이로부터 자살을 강요당해온 것이다. 그래서 사실 나는 유서란 것을 수십 장 썼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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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그렇게 많이 써야 할 필요가 있어서는 아니다. 써서는 찢고 찢고는 또 쓰고 했었다. 실은 꼭 유서를 써야만 할 것도 아니었고 나의 유서를 받고자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 단 하나라도 있어서가 아니다. 어쩐지 써야만 할 것도 같았고 또 쓸 말이 있는 것만 같아서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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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되자 나는 유서까지도 단념하고 그날그날 내가 자살을 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기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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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반년 전만 한대도 나는 윤서를 쓸만한 상대자가 있었다. 아내다. 그리고 두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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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내는 이미 나로부터 떠나가고 없었다. 두 아들은 제 어미를 따라 갔다. 그들이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도 나는 아직껏 모르고 있는 터다. 대개는 저의 친정 오라비의 연줄을 찾아 그 끄트리로 어떻게어떻게 연명을 하고 있거니 짐작이 갈정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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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갔다지만 자식만은 찾았어야 할 나였다. 그러나 그럴 권한도 내게는 없다. 아내가 딴 남자의 뒤를 쫒아가기나 했단다면 박가의 자식이니 박가가 아닌 (또 공교롭게도 그자도 박가일 경우가 있다 치더라도) 박훈이가 아닌 딴 사내를 아비라고 불러서 쓰겠느냐고 떳떳이 내세울 수도 있었겠지만,그러나 아내는 그래서 나간 것도 아니다. 박훈이란 인간에 진이 떨어져서 나갔을 뿐인 것이다. 너와 같은 성격 파탄자─아니 정신분열증 환자와는 이 이상 더 살 수가 없다. 자식만 해도 네 자식이니 응당 네게다 떠앵기고 가야 할 것이로되 이 두 자식은 네 자식도 될 뿐만 아니라 내 자식도 되는 터고 보니 나도 데리고 갈 권리가 있다. 아니 너 같은 인간한테다 이 두 자식을 맡긴다는 것은 죄악에 속한다. 그래서 내가 데리고 가는 것이니까 아예 찾을 생각일랑 말아라―아내가 남겨둔 편지는 이런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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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나간 후에도 나의 술은 여전했다. 아니 점점 추태를 더해 갔었다. 파출소에 끌려가서 시멘바닥에 쪼그린 채 자기가 일쑤였고 공연한 객기를 부리다가 피투성이가 되어 들어오는 것도 전보다 도수가 훨씬 늘어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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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나면서도 아침녘에 술이 깨면 머리를 주어뜯으며 후회를 하던 것이다. 값싼 양주-라기보다는 숫제 메릴 알코올인 독주에 창자는 녹은 듯싶다. 아침마다 무서운 하혈을 한다. 그것은 이만저만한 하혈이 아니다. 한 번에도 3,4 홉씩은 실히 되는 그런 하혈이다. 한 인간이 생명을 유지하는 데 얼마만한 피를 필요로 하고 있는지는 모르되 그렇게 날구장천 많은 피를 쏟고도 살아 있는 것이 희한할 정도다. 음식이라고는 별로 먹지도 못하는데도 그만한 피가 보충되어 간다는 것도 나의 상식으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닭표'니 '드라이진'이니 하는 독주 한 병에 끽해야 콩 한줌 아니면 그가'빨랫비누'라고 불러오는 치즈 한 쪽이 끽이었다. 제대로 찾아 먹었다는 날이 잡채 오라기에 배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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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이런 나의 창자에 기름기가 끼어 있을 기 만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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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자 속이 그렇고 보니 머릿속엔들 무슨 기름기가 있으랴. 가만히 앉았으려면 머릿속에서 곧 바삭바삭 소리가 들려나온다. 해부를 해본다면 뇌수로 흡사 맥주 안주의 과자처럼 파삭거릴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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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도 술을 끊지 못하는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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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남편을 버리고 간 아내는 뉘가 뭬란대로 옳다. 아니 장했다. 아이를 빼앗아간 것도 정당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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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전까지만 해도 장래가 촉망되던 화가였고 도화 선생이란 직업도 가졌었고 보니 이제는 잘만 하면 꿈의 나라처럼 동경해오던 프랑스 유학도 할 수 있었을지 모르는 내가 어떻게 해서 이렇게 술만 먹게 되었던지를 나 자신 아직도 모르고 있다. 그래도 6·25 전까지만 해도 이렇지까지는 않았다. 며칠에 한 번씩이긴 했지만 그래도 셈은 차린답시고 캔버스 앞에 서보기도 했고, 미켈란젤로니 마티스의 전기를 손에 들기도 했던 것이다. 그 내가 9·28 수복 이후부터는 글자 그대로 소금물 먹은 미꾸라지처럼 내리고 만 것이다.
 
26
그러나 이런 나 자신의 신상에 관한 넋두리는 이 이야기와는 큰 관련이 없기로 이 정도에서 그만두려 한다. 이야기가 진전되는 중에 나 자신에 관한 이야기가 필요케 될때면 그때그때 삽입할 수도 있겠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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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어쨌든 나는 이토록 보기 추해진 나 자신을 알약 몇 개로 태질해 버리기로 결심을 하고 있던 터다.
 
28
여기에 뜻밖에도 송필수 씨로 부터 정중한 초대가 온 것이다.
 
 
 

2. 제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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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송필수 씨와는 전부터 친교가 있어온 사이도 아니다. 주지가 부처님 모시듯 정중한 초대장을 받고서도 나는 발신인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았었다. 만약에 그가 내가 단골로 다니는 스탠드 바의 이름만 대지 않았더라도 나는 영 그를 몰라보았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저 술김에 인사를 했을 뿐인 그런 사이밖에는 안 된다 이날도 몹시 취했었다. 마카오 포라에 여름이었지만 넥타이까지 단정하게 맨 신사였다. 그 날은 내 주머니에도 돈이 얼마간은 있었다. 오십원짜리 드라이진을 마신 끝에 취하면 으레껏 하는 버릇으로 스탠드 바에를 갔었다. 거기서 술김에 인사를 주고받았고 고급양주를 실컷 얻어먹기도 했고 그래서 곤드레만드레가 되어 집으로 온답시고 간 것이 파출소로 찾아들어갔던 모양이다. 술꾼이 아무리 취한대도 계집만은 찾아간다건만 어느새 나는 계집도 찾아갈 줄 모를 만큼 문자 그대로의 주정쟁이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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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은 혹 잊으셨을지 모릅니다마는 취주에 하신 약속이라고 거절하시면 안 됩니다. 그날 말씀대로 가친게 말씀을 올렸더니 사진도 찍으려 들지 않으시던 가친께서 웬일이신지 즉석에서 초상화라면 그려두어도 좋다는 말씀이십니다. 그러니 그날 말씀드린 대로 한 달도 좋고 두 달도 좋고 아니 일년이라도 좋습니다. 선생 댁 가족의 생활비는 조금도 염두에 안 두셔도 좋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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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은 혹 잊으셨을지 모릅니다마는 취중에 하신 약속이라도 거절하시면 안 됩니다. 그날 말씀대로 가친께 말씀을 올렸더니 사진도 찍으려 들지 않으시던 가친께서 웬일이신지 즉석에서 초상화라면 그려두어도 좋다는 말씀이십니다 그러니 그날 말씀드린 . 대로 한 달도 좋고 두 달도 좋고 아니 일년이라도 좋습니다. 선생 댁 가족의 생활비는 조금도 염두에 안 두셔도 좋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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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이렇게 바라던 복이 굴러떨어질 수가 있던가. 편지 사연도 간곡했지만, 첫째 우선 서울, 이 지긋지긋한 성울을 잠시라도 떠날 수 있다는 생각에 나는 가슴이 부풀어올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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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뿐이 아니다. 그는 역시 신사였다. 이 정중한 편지와 함께 우선 서울을 떠나시자면 가족들께 얼마간의 돈쯤은 두고 오셔야 할 것 같아서 보내노라 하면서 이럴 때 보낼 수 있는 액수와는 거리가 먼 은행 송금수표가 동봉되어 있던 것이다. 말만 화가이지 지금은 완전히 대중잡지에 삽화 조각이나 그리어 먹고사는 간판쟁이인 내 한 달 수입의 세 곱절이나 되는 액면이다. 그러면서도 그는이 고마운 처사에 백배 사과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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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조금도 오해하시지 마시기를 빌고 있습니다. 돈을 동봉한 것은 선생께 짐을 지우기 위해서는 아닙니다. 떠나실 수 있으시면 떠나오실 수 있으시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니 이 돈으로 해서 무리는 하시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그리고 이 돈에 대한 의무감은 조금도 느끼실 필요가 없으십니다. 다만 저의 원만하신 아버지와 저의 부처--아니 전가족이 선생님이 웬만한 정도이시라면 저희들의 이 간곡한 청을 물리치지 않으시기를 빌고 있다는 걸 염두에 두어주시면 하올 뿐입니다. 그날 밤 선생이 그려주신 저의 초상화는 지금 이 글을 쓰는 저의 책상 머리맡에 걸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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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는 이런 식으로 맺어져 있었다.
 
37
실상 이 긴 편지를 읽으면서도 이 편지의 주인공의 얼굴이 머리에 잘 떠오르지 않았었다. 그랬던 것이 이 "그날 밤에 그려주신 초상화"란 구절을 읽고서야 어렴풋이나마 신사의 얼굴 모습이 떠올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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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취중이었었다. 술에 취하면 늘 하던 버릇으로 화가라 뽐냈던 모양이었고 그럼 한번 그려보아 달라는 청을 받자 술잔 드는 셈치고서 한 장 찍찍 그려주었었다. 그것이 그림이랄 수도 없고 초상화랄 수도 없는 노릇이지만 간관쟁이로 타락하면서부터 사진처럼 닮게 그리는 재주가 나 자신도 모르게 늘어 있었다. 그도 그럴밖에, 화가가 타락하면 사진사가 될 수밖에 없기도 한 것이다. 술잔을 든 채 찍찍 갈겨 그린 옆 얼굴이 취한 사람 눈에도 꼭 자기처럼 보이기도 했던 모양이었다. 그는 좋아서 날뛰었고 감탄해 마지않았다. 취하기도 해서였겠지만 그는 또 그만한 미덕을 몸에 지닌 신사처럼 보이기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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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를 받고 나서 그날 밤 일을 가만히 더듬으니 한가지 한가지 기억에 살아온다. 자기는 경부선 K시에 산다. 지나는 길이 있으면 한번 찾아주면 융숭하게 대접을 하겠다.-술좌석에서 인사를 하게 될 때면 누구나 으레껏 주고받는 인사 끝에 그가 끼고 들어온 스케치 북을 보았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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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 화백이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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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이야기가 발전이 되었다. 관상장이 보면 관상 보아달라고, 점장이 보고는 손금 보아달라듯이 그는 내가 그림장이인 줄 알더니만, 그림 이야기를 꺼내자 필시 청치도 않는 초상화를 그려주마고 선손을 썼던 것도 같다. 어쨌든 그 끝에 자기 아버지 초상화를 그려주겠느냐 했고 나는 또 나대로 선선히 대답도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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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이런 식으로 곧잘 공술을 얻어먹는 비결을 배운지 오래다. 책임을 질 필요도 없는 일이다. 그려주마 했지만 안 그려주어도 그만이요. 정말 그려주어야 할 형편이 되기만 하면 그것은 바라는 일이었다. 아무래도 대중잡지의 삽화료보다는 그런 장사가 유리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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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만 해도 그랬었다. 나는 취중이기도 했지만 공술 얻어먹는 수단에 지나지 않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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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신사한테서 이렇게 정중한 편지에 돈 까지 보낻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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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같은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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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시로나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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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생각해볼 필요도 없었다. 그만큼 나는 절박한 사정에 놓여져 있었던 것이다. 가던 집에마다 외상이 나뭇가지에 연 걸리듯 해 있었다. 외상도 한두번이다. 이제는 갈 낯도 없었다. 한 컵에 3십환짜리 빈대떡 집에도 4,5천환이나 깔려 있다. 어쩌다 돈푼 생기거든 그 외상값 먼저 갚고 또 외상을 지면 좋으련만, 돈푼이나 주머니에 들어오면 나 자신도 모르게 객기를 부리고 만다. 명동에는 발 들여놓을 집이 없어지자 이번에는 종로로 발전을 한다. 그러나 종로인들 별천지일 리 없다. 거기서도 한집 한집 외상을 지고 나니 이제는 소주 한 컵 기대어볼 재간이 없어지고 만 것이다. 내가 자살까지 생각게 된 데는 물론 자기혐오에서 생에 대한 애착을 잃은 것이 무엇보다도 가장 큰 원인이지만 실상 따지고 본다면 이 와상줄이 콱 막힌 데서 온 절망때문일지도 몰랐다. 사실 나는 나의 생명을 이어나갈 자신을 잃고 말았었다. 나는 벌써 화가가 아니었다. 내가 값있는 생물로서 살아갈 수 있는 길이란 어쨌든 이 그림의 길밖에는 없었다. 그러나 나는 이미 간판쟁이로 전락한 지 오래였다. 그 누구도 나를 화가로 보아주는 사람은 없다. 삽화가라는 이름의 화가라고 자처하지마는 실은 주문만 오면 그장 간판도 그리고 가장제 약광고도 그리나. 말은 삽화가라지만 이 알량한 직업조차도 목이 겨우 붙어 있는 형편이다. 대중잡지나 신문사의 가자도 벌써 나의 뒤를 따라다니지 않은 지가 오래다. 그 대신 이젠 내가 그들 궁둥이를 따라다니며 차도 사야 했고 술도 사야만 했다. 일이 쏟아져 들어올 때 버틴 화를 내가 입어야만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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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벌써 삽화는 나만의 독무대가 아니었다. 피리처럼 재치가 있는 젊은 패들이 그야말로 우후죽순처럼 쏟아져 나와서는 내 길을 턱턱 갈로막았고 일거리도 툭툭 채어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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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예술의 길과 함께 직장 -아니 밥벌이의 길조차 막혀버리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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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이 또한 그랬다 . 30년 가까이 살아온 서울이었지만, 나는 단 한 사람의 지기도 갖지 못하고 있다. 모든 친구가 나를 마치 아편 중독자이기나 한 것처럼 기피하는 것이다. 거짓말이 아니다. 아직까지는 나는 아편쟁이는 아니다. 그렇건만 그들은 나만보면 시일시일 피해가기만 한다. 인간사회에서 인간한테 겉돌리는 ㅡㄹ픔보다 더 큰 슬픔이 있을까? 그렇거든 넌 너구 난 나 아니냐-이렇게 엇나간다든가 배채기로 나선다든가 그렇지도 못하거든 차라리 깨끗이 체념을 한다든가 했으면 좋으련만 또 어떻게 되어먹은 인간인지 그 누구라도 사랑하지 않고서는 못견디는 것이 나란 인간인 것이다. 나는 시일시일 피해가는 친구의 눈치를 슬금슬금 보아가며 차도 사고 소주도 사고 해가며 말붙어도 보았다. 그저 그때뿐이었다. 그것은 그대로 아침이었다. 그러나 아침이 우정이 될 수는 없지 않던가.
 
51
이러한 내게 또 가정의 파탄까지 오고 만 것이다.
 
52
오직 술을 먹는 일만이 내 앞에 트인 길이었다. 술은 나의 예술도 되어주었고 생애 대한 의욕도 일깨워주었고 사회적인 한 존재로서의 자위도 술에서 밖에 얻을 길이 없었다. 술만이 우정도 모르는 한 고독한 사나이의 마음의 공허를 매워주고 있었다. 술만이 깨어진 가정에서 오는 고뇌와 고적과 울분을 흐트러주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나를 괴롭혀주는 것은 나 자신에 대한 혐오였다. 갈가리 찢어도 시원치 않은 증오가 간단없이 나 자신을 엄습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머리를 벽에다 꽝꽝 들이박기도 했고 가슴을 해피고 피가 나도록 쥐어뜯기도 한다.
 
53
-이런 끝에는 나도 모르게 또 술집으로 달아나는 것이다.
 
54
이런 자기혐오에서 나를 구원해주던 것은 역시 술뿐이었다.
 
55
이 술의 길조차 이제는 꽉막혀버리고 만 지금의 나다.
 
56
나는 밤차로라도 떠날 작정으로 하숙집을 나왔다. 아내가 나가서 판잣집도 소용이 없어지자 나는 세를 주고서 지금의 하숙집으로 옮아앉았던 것이다.
 
57
'이것만은 부도수표가 아니겠지?"
 
58
나는 송금수표를 몇 번이고 앞뒤로 살펴보았다. 하도 부도수표를 많이 받아 본지라 수표라는 것은 도시 신용이 가지 않아서다.
 
59
나는 양담배 두 갑을 사들고 은행 문을 들어섰다. 십환짜리로 내어안길까 겁이 나서다. 그 덕분에 나는 손아귀에 드는 지폐로만 받아들 수도 있던 것이다. 어쨌든 고마웠다. 부도수표가 아닌 것이다.
 
60
'외상값은 갚고 가야지!'
 
61
나는 하늘의 벌이라도 딴 듯싶어졌다. 흥겨웠다. 그 순간만은 서울이 아니 전세계가 몽땅 내것이 된 것 같은 흐뭇한 심정이었다. 그래서 또 취하고 말았다.
 
62
"선생님, 아무래도 오늘은 수상하셔!"
 
63
"왜?"
 
64
"좀 깔아노시래두 기어코 깨끗하게 갚으신다니 말이죠. 단돈 천화이라두 깔아두셔야 또 오시게 되잖아요? 우리집하구 아주 인연을 딱 끊으시려는 게죠?"
 
65
"아냐, 갚을 껀 갚구 봐야 해."
 
66
"글쎄, 그 점이 전과 나르시다니까그래. 아무래도 아주 명동을 떠나시려나 보죠?"
 
67
"명동-뿐인가. 서울은 인제 하직이야!"
 
68
"아무래도 수상하셔! 그러지 말구 자 한잔 드세요. 이건 제가 서비스하는 거니까요."
 
69
'종달새'라는 스탠드 바에서 이렇게 마담과 어울려버렸다. 깨어진 그릇처럼 된 나의 성격에 되게 일종의 매력을 느낀다는 엉뚱스러운 데카랑이었다. 한번은 몹시 취한 나를 자기 침대에다 재워준 일까지 있는 애원이다. 여름이기는 했지만 자기는 마루에서 잤다던 것이다.
 
70
"그래, 정말 싹 내시겠어요?"
 
71
"그럼."
 
72
"전 죽어두 나는 못 받겠어요. 자, 이건 도루 가지셨다가 나중에 또 오셔서 주세요. 3천환입니다. 3천환 외상값이 있는 것은 잊으셔서는 안 됩니다. 안 잊으시죠?"
 
73
마담은 이렇게 엉터리를 치면서 기어코 3천환을 내 주머니에다 꾸겨박는다.
 
74
"뭐가요. 외상 지구 다니는데 박 선생님이 가치가 있다는 걸 아셔야 해요."
 
75
"가치!"
 
76
하고 나는 실소를 하고 말았다.
 
77
가치치고는 슬픈 가치다. 외상을 지고 다니는 것만이 내게 붙은 가치라고 생각할 때 나는 통곡이라도 하고 싶어지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나는 종달새 마담을 잊지 못한다. 그는 이 넓은 서울에서 그대로 나라는 인간에 흥미를 갖고 있는 오직 하나의 인간이기 때문이다.
 
78
이튿날도 이튿날도 나는 '종달새'를 찾았었다.
 
79
그러나 나는 이 유혹에 이겨야만 했다. 나는 몸부림을 쳤다. 머리도 주어뜯었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는 어린애처럼 엉엉 울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술이 깨면 또 어슬렁 어슬렁 명동으로 걸어나가던 나였다.
 
80
이러기를 닷새- 그러나 나는 이 종달새의 유혹과 독주의 매력을 털고 일어날 수가 있었던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그때는 벌써 차비를 하면 몇 푼 남지 않을 정도의 돈 밖에는 내 주머니에 없었을 때다. 차비만이라도 남았던 것이 다행이었지만 또 생각하면 그것이 불행이었던 것도 같다.
 
81
그러나 어쨌든, 나는 그날 아침 통일호에 술통처럼 된 내 몸뚱이를 실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3. 제3절

 
83
K시는 경부선에서 몇째 안 가는 도시다. 6·25로 해서 전시에 기왓장만이 흩어졌더니 이태 동안에 거의 도시 면목을 갖추고 있다. 역에 내리니 오후 세시다.
 
84
여장이라야 보스턴 백 한 개뿐이었다. 약간의 내복과 화구, 세수 연모 정도다. 심심하면 본다고 오스카 와일드의 「옥중기」한 권이 들어 있을 뿐이다.
 
85
간밤 술을 막 쉬어 먹은 탓인지 아직도 머리가 지끈거린다. 역 앞에서 찬 것을 하나 마시고 봉투를 꺼내어 전화를 걸었더니,
 
86
"사장께선 댁에 들어가셨는데요?"
 
87
한다. 긴한 볼일이라면 댁으로 전화를 걸어보란다. '삼일상사'란 무엇을 하는 회사인지는모르겠으되 송씨는 그 회사의 사장인 모양이었다. 집으로 전화를 걸었더니 안계시다는 대답이다. 회사에서는 댁으로 가셨다는 대답이었다고 하니까 그러면 지금 돌아오시는 길인 모양이니 다시 한번 걸어달라고 한다. 나는 다방 이름을 알리고 들어오시는 대로 전화를 걸어주도록 일러놓고 기다리기로 했다. 술집에서 술김에 만난 사람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요새 세상에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사장이 아닐 것같이 생각이 든다. 무료하니 앉았을 수도 없었지만 조갈도 나서 찬 코카콜라를 마시며 반 시간이나 보내고 있으니까 전화 대신 송 사장 자신이 손을 덥석 내민다.
 
88
"참 감사합니다. 선생님! 난 그런 편지를 올리고도 웬걸 와주시랴 했었습니다."
 
89
"추측에 어긋나서 죄송합니다."
 
90
이런 나의 농담에도 정색으로 질색을 해보이는 송 사장이었다.
 
91
"원 천만에요, 그 편질 올ㄹ고서도 여간 불안하지 않았습니다. 편지만 울렸어도 그런 실례가 없었겠는데 그날은 어떻게 그렇게 생각이 들었던지 약간이라도 보내 올리는 것이 예의일 것처럼만 생각이 들어서요… 죈 제 아내한테 있지요. 아내가 그런 선생님을 장기간 모셔 오면서도 그대루 오십소시야 할 수 있느냐구 그러지 않습니까? 예의에 벗어진 점은 미거해서 그런 게니까 과대히 용서해줏힙시오. 보시다시피 이런 시골에 사는 시골 신사입니다. 장차도 서울에서 세련된 사고에 찾으신 선생님께 실례 되는 일이 많을 줄 압니다만 그런 점도 다…"
 
92
이런 말을 하든가 하면,
 
93
"말씀은 가친 초상화루 되어 있습니다만 그 일루 해서 짐을 느끼시진 마십시오. 시간이고 뭐고 (이 뭐고란 돈이란 뜻이리라고 나는 눈치를 채었다. 역시 그는 신사이라고 속으로 탄복을 했던 것이다) 일체 염두에 두지 마시고 감홍이 나시면 하시고 안 그러실 땐 푹 쉬어주십시오. 근방엔 강도 있구 산두 있습니다. 희망하시면 절 같은 데도 있습니다. 아내 의견이 조용하신 데가 좋으실 거라기에 숙소도 좀 한적한 데로 정했습니다만… 불편만 안 느끼신다면 저의 집에 모셨으면 합니다만, 아무래도 되려 부자유하실 것만 같아서…"
 
94
송씨는 이런 이야기를 늘어놓고는 다시,
 
95
"뭐 이렇게 오시기까지 하셨으니까 아주 다 말씀드리는 게 좋겠습니다. 실은 저의 가친 되시는 어른이 좀 다심하십니다. 글쎄요. 완고하시다구나 할까요. 요새 세대 사람들의 생활 감정에 대한 이해가 적으신 편이셔요. 그래, 아내와 상의한 끝에 선생님만 좋으시다면 강가에 있는 거의 과수원으로 숙소를 정하자구 얘기가 되어 있답니다. 그래, 거기에 유하시게 하는 것이 좋겠다구 내외간에 상의가 됐습니다만 그건 선생님이 가서 보시구서 결정을 해주시지요."
 
96
"거기가 좋겠군요."
 
97
하고 나는 거의 부르짓듯 했다.
 
98
사실 나는 숙소가 불안했었다. 평생 어른들을 못 모셔보았고 놓아먹인 말망아지처럼 자란 나인데다가 나 자신 아무리 싸고돌아보았자 정상적인 사람은 못 되는지라 뒤늦게 된시집살이를 하게 되어도 탈이니라고 은근히 끌탕을 하던 터다. 물론 남의 집에 가서까지 전 같은 생활을 할 생각은 아니었지만 황금 보료를 깔고 잔대도 침식에 구속을 받는 것만은 질색이다. 숙소도 그러했고 송씨만 해도 생각더니보다는 나이도 든직했다. 사십이삼세는 되어보인다. 많지 않은 나이의 코밑 수염이란 대개 갖다붙인 것처럼 보이는 법인데 조금도 어색치가 않다. 허우대도 든지했지만 마카오 양복도 몸과 겉돌지가 않는다.
 
99
"선생, 혹 외국에 많이 계셨던가요?"
 
100
그런 인상이어서 이렇게 물어보자니깐,
 
101
"뭐 외국이랄 건 못 됩니다만, 상해에 한 3년은 있은 일이 있지만 거기서 방직 공장을 하는 영국인과 알게 돼서 일을 좀 보아준 일이 있었습니다. 술 잘하고 놀기 잘하면서도 무섭게 사무적인 사람이었지요."
 
102
"역시 그러셨군요."
 
103
나는 즐겁기까지 했다.
 
104
송씨의 집은 K시 변두리에 있었다.
 
105
조그만 언덕이 있고 언덕 뒤로 밤나무갓이 천여 편은 되었다. 멀리서만 보아도 옛날 대갓집은 풍류다. 왜가리집이 있는 늙은 은행나무만 보아도 이 집터의 역사가 짐작이 갔다.
 
106
"야러 해 여기 사셨나보군요?"
 
107
은행나무 밑에서 널찍한 정원을 바라다보며 나는 이렇게 물어보았다.
 
108
"이 은행나무가 저의 십오대 조부께서 심으신 겐데 그전부터라니까 아마 한 2백여년 이 집터에서 산 셈이 되지요."
 
109
"2백여 년!"
 
110
"해방 후에 적산 한 채를 샀었습니다. 이바라기라는 일인이 살던 집인데 참 좋았습지요 총독 이하 . 옛날 총독부 고관들이 오면 꼭 그 집에서 자고 갔다니까요. 그 집을 사놓고서 아버지께 옮기시자고 여쭈었더니만 막무가내십니다요, 썩어도 나는 이 집이 좋다구 하시면서 끝끝내 안 옮기겠지요. 한동안 우리 부부만 나가 있었는데 내 아내가 충동였다고 며느리를 보지 않으시려 드셔서 한 수 없이 되돌아오고 말았답니다. 그렇다고 집을 비워두는 재간도 없어서 남을 빌려주고 방 하나만 내어서 제가 피곤할때만 가서 쉬고 하다가 이번 난리에 다 타버리고 말았지요. 글쎄, 이런 어른이셔서 선생님을 뫼시기가…"
 
111
하는 송씨는 머리를 벅벅 긁어보인다.
 
112
"뭐 아무 걱정 마십시오. 내가 잘 알아서 하지요. 나란 인간은 구속을 좀
 
113
받아야만 할 위인이랍니다."
 
114
"그렇게까지 말씀해주시면…"
 
115
나는 송씨가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지가 짐작이 되어.
 
116
"그럼 안사 올릴 때두 옛날 식으로 하는게 좋겠군요."
 
117
이렇게 물으니까 송씨는 신이 나서,
 
118
'네네, 그렇습니다! 그래 주신다면 아버지두 좋아하실 겁니다."
 
119
나는 큰사랑에 들어와서 송씨 아버지 되시는 노인을 뵈었다. 눈이 부신 흰수염이 온 턱을 덮은 칠십 노인이었다. 상투도 아직 그대로 있지만 뿔만은 물론 버선에 행전까지도 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미리 지식을 갖고 있었지만 나는 몸이 움츠려드는 것을 어찌 할 수가 없었다. 손 처치가 곤란했다. 이런 집에서 일주일만 묵으란대도 나는 줄행랑을 놓았을 것이다.
 
120
"자식한테서 노형 말은 많이 들었소. 그 영험한 붓으로 이런 사람을 그리구서 유한이 되지 않겠소? 뭐 자식이 하두 그러기에 그래보라군 했지만, 쉬러온 셈치고서 천천히 놀다 가시오."
 
121
"말씀 낮추십시오."
 
122
나는 선수를 쳤다.
 
123
"원, 뭐 노형이 내 자식이오?"
 
124
불과 십분도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내게는 몹시 길었다. 밖에 나오니 기가 펴진다.
 
125
나는 다시 송씨가 쓰는 작은사랑으로 안내를 받았다. 큰사랑을 돌아서 밤나무낫이 저만큼 바라다보이는 위치였다.
 
126
방도 말끔이 치워져 있었지만 책상이며 문갑이며가 모두 옛날 화류다.
 
127
"요새 그 흔한 외국 물건 저의 집에는 단 한 가지가 없답니다."
 
128
하고 송 사장은 웃는다.
 
129
"아버지가 대단하셔서요. 그 대신 과수원엔 더러 갖다놨습니다만."
 
130
이런 소리를 하고 안으로 들어가더니 말끝마다 내세우던 자기 아내를 앞장 세우고 나와서 소개를 시키는 것이다.
 
131
"아닙니다. 저보다두 선생을 더 숭배하고 있습지요."
 
132
초나라 미인 이란 첫인상 ' ' 이었다. 서른네댓 되었을까말까 한 해사한 여인이다. 흰지지미 적삼에 유독 치마를 받쳐입은 탓도 있었겠지만, 동양화에나 나옴직한 인상이다. 그러면서도 첫눈에 마치 '미망인'을 대하는 듯싶은 까닭은 웬일일까?
 
133
너무 청초한 데서 그런 인상이 오는지도 몰랐다.
 
134
"내가 내려와서 선생님을 만나뵈었다는 이야기와 저 초상화를 보였더니만, 나보다두 아내가 먼저 선생님을 모셔다가 사진 찍기 싫어하시는 아버님 초상화를 그려드렸으면 좋겠다구 하잖습니까? 그래, 말씀을 드렸었지요. 제겐 안내의 명령보다 더 무서운 명령이 없답니다요."
【원문】제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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