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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에도 문단은 상당수 작품을 산출하였다. 백유여(百有餘) 편을 추산하게 된다면 그 수 결코 적다고 볼 수 없다. 그러나 일 년 회고를 더듬어보는 이 자리에서 기억에 역력한 작품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은 적이 섭섭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상당히 기대를 갖고 있던 신진층에서도 이렇다고 할 만한 작품이 기억에서 되살아나지 않는다. 다만 하나 《동아일보》신춘문예 당선 정연희 작인 「파류장」이 인상에 깊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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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에 대해서는 그 발표 당시 몇몇 분의 평이 있었다. 그러나 모두 앞으로 촉망을 가진다는 격려가 있었을 뿐, 그 이상의 작품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또 몇몇 분 친지 작가들로부터서도 그 작품의 관념성을 들고 대수롭지 않게 평하는 말도 들었다. 이 관념성이라는 데 있어서는 전자인 몇몇 분의 평문에서도 이로 말미암아 그 평가에 인색하였음은 후자나 모두 일치되는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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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단지 관념성이라고만 하고 허물을 잡은 그 관념성이 이 작품 전체에 흐르고 있다는 관념성이라는 말인지 혹은 그 어떤 부분을 지칭함인지 그 막연함이 지극히 알고 싶은 점이었다. 내가 보는 소견으로는 이 작품 전체를 통해서 국군 장병이 주인공 마드레느에게 건네는 이야기에서 부자연성이 튀어나옴을 보았을 뿐(이 부분은 물론 관념적이다) 이 작품이 전반적으로 관념의 테두리를 벗어나지는 못했다고는 결코 보지 않는다. 이런 성질의 작품에서는 그 깊이의 천착을 위함이 관념적이기도 쉽고 또 관념적이 됨을 면하게 되는 수도 있다. 그것은 이 관념이라는 것을 제거하고는 영혼의 밑바닥까지 파고들지는 못하게 되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되는 경우가 있음을 우리는 보아 온다. 그러나 그 작품이 우리의 심금을 울릴 때 우리는 그 작품을 무시할 수가 없게 된다. 요는 그 작품이 우리의 심금을 울려 주느냐 주지 못하느냐가 문제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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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파류장」도 나는 이러한 경우와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다고 본다. 6·25사변을 측면으로 취급해 가지고 신과 인간을 대결시킨 이 작품은 하나의 인생 문제를 해결하려는 깊은 데까지 영혼 속으로 들어가 그것을 용하게 파 헤집었다. 그리하여 인간이 승리를 하기까지 그 고뇌를 우리의 가슴속에다 쥐어박으므로 오늘날 인간이 처해 있는 그 생활의 위치에 커다란 동요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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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름다우신 천주님.”하고 “천주를 부르는 마음에서 어쩌면 그렇게도 작은 나를 느끼는 것일까?…… 법의(法衣) 허리에 늘어진 목주의 상쾌한 무게, 발 끝까지 늘어진 법의의 엄숙함” 속에서 “조그마한 육신이 지탱할 수 없도록 벅찬 환희의 가슴을 웅켜잡던” 마드레느가 “보이시나이까? 주여, 힘을, 이 악의 사슬을 끊을 힘을.” 하고 빌다 못해 “이것이 수녀의 고행이란 말인가. 혼미하여 가는 의식 속에 죽어가는 슬픈 반발처럼 자기를 떠맡기”면서 “예수가 흘린 피와 내가 흘리는 피와”하고 부르짖으며 “죽음도 삶도 아닌 위치에서 간구의 마음도 공포도 잊는 채 마드레느는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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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에게 의지했던 환희가 이렇게 전도될 때, 그 고뇌는 마드레느 개인의 고뇌가 아니고 신에다 삶을 의탁한 인류의 고뇌였다. 이 자체가 미덥지 않아 신에 의존을 하였던 마드레느는 이제 어디에다 의존을 해야 할 것인가. 신의 배반을 당하고 인간으로 돌아온 마드레느는 신이 아닌 인간으로서 무언가를 갈구하는 인간의 영혼을 위무할 수가 있었다. 그리하여 신의 세계에 의존한 인류의 위치에 동요를 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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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어린 여학생의 작품이라고 그 작품이 지닌 가치가 가치 이하로 평가되어서는 결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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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도 함축성이 있고 지성적이고 품위가 있어 이 작품의 빛을 더하고 있었다. 덤비지 않고 차근차근 조용히 파고 들어가면서 향기를 풍기는 이 「파류장」의 문장은 마치 봄볕처럼 따스하게 마음을 어루만져 주며 감명을 깊이는 데가 있었다. 적어도 나는 그런 느낌을 받았다. 다만 위에서도 잠깐 언급한 국군의 부자연한 이야기에서부터 박력까지 잃게 된 구성에 다소의 불만이 없는 게 아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작품이 지닌 가치가 전적으로 무시되어 좋을까. 아니, 이 작품을 금년 문단의 총결산에서 그 맨 윗머리에다 놓아 주게 되면 어떻게 될까. 나는 다만 이 한마디를 이 해가 가기 전에 문단에 묻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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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지〕《한국일보》(1957.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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