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佛蘭西 畵界[불란서 화계]와 巴里[파리]에 잇는 畵家[화가]의 生活[생활].
3
내가 巴里[파리]에 滯在(체재)하기는 겨오 八個月[팔개월] 동안이엇다 그럼으로 以上 問題[이상 문제]로 알냐고 애를 썻스나 充分[충분]치 못하엿고 不絶[부절]이 變[변]하난 畵界[화계]를 알기에난 恨[한]이 업난 일이엇다.
5
美術評論[미술평론]에 依[의]하면 佛蘭西[불란서] 繪畵(회화)는 두가지 傳統[전통]이 잇다고 한다 卽[즉] 民主々[민주주]義[의]인 北方[북방]후탄덴 地方[지방]으로부터 드러온 것과 其一[기일]은 貴族主義[귀족주의]인 南方 伊太利[남방 이태리]로 부터 드러온 것이라 한다 그리하야 이 두 가지 系統[계통]으로 佛蘭西[불란서] 貴族生活[귀족생활]과 民衆生活(민중생활)을 빗최여 볼 수가 있다.
7
佛蘭西[불란서]에난 十七世紀[십칠세기]로부터 十八世紀[십팔세기] 그동안 所謂[소위] 로고 々[로고고]式[식]이라는 貴族[귀족]의 華麗 奢侈[화려사치]에서 날긴 建築[건축]의 裝飾[장식] 貴族[귀족]의 肖像畵(초상화)로 因[인]하야 美術[미술]이 發達[발달]하엿다 有名[유명]한 벨사유 宮殿[궁전]이 生[생]긴 것도 이 일이다 이와 가치 佛蘭西 繪畵[불란서 회화]가 急速[급속]히 勃興(발흥)하게 되엿다. 이 로고々[로고고] 美術期[미술기]에 佛蘭西 國民[불란서 국민]의 獨特[독특]한 點[점]을 進展[진전]한 畵家 天才[화가 천재] 왓도가 낫다.
9
그럴 동안 十八世紀[십팔세기]로부터 十九世紀 間 [십구세기 간] 다부잇도와 앙그로 가튼 天才[천재]가 나서 佛蘭西[불란서]에 처음으로 다른 畵風[화풍]을 이르키엿다 同時[동시]에 畵風[화풍]이 判異[판이]한 一群[일군]의 畵家[화가]가 生[생]겻다 卽[즉] 前者[전자]를 古典派[고전파]라 하고 後者[후자]를 浪漫派[낭만파]라고 하엿다 古典派[고전파] 그림과 가치 血[혈]이 업고 脈[맥]이 업고 感情[감정]이 업난 그림만으로 滿足[만족]할 수 업다 하야 다토는 勇聽(용청)한 一群[일군]의 그림은 衡載的(형재적) 畵材(화재)를 取[취]하야 實[실]로 感覺[감각]한 그대로 그렷다 더욱이 古典派[고전파] 그림은 輪廓(윤곽)에 重視[중시]함에 反[반]하야 浪漫派[낭만파]의 그림은 色彩[색채]를 重視[중시]하엿다 이 一群[일군]의 首領(수령)이 도라구로아이다.
11
이와 가치 古典派[고전파] 浪漫派[낭만파]가 서로 그 眞[진]을 다토아 잇슬 이와난 아모 關係[관계]가 업난 것 갓치 巴里 市外[파리 시외]인 바루비돈(汽車[기차]로 一時間[일시간] 가령 가는 곳) 이란 寂寞(적막)한 村[촌]에서 從容[종용]히 作品[작품]에 專念[전념]한 一群[일군]이 잇섯다 바루비종 村[촌]에 풍뎅불노라는 大森林[대삼림]이 잇다 이 森林[삼림]을 中心[중심]으로 모인 畵家 中 後日 著名[화가 중 후일 저명]하게 된 畵家[화가]『루소』『고로』『밀네』가 잇다 이들노 하여곰 美術史上 影響[미술사상 영향]을 친 거슨 이들이 取[취]한 新技巧[신기교] 方面[방면]이 아니라 그것보다 內的[내적] 微妙(미묘)한 自然 風景[자연풍경]의 情緖[정서]를 取[취]한거시다 이르난 곳마다 感激[감격] 情趣[정취]를 發見[발견]하고 自然[자연]에 조찻다 그들의 작품은 質朴[질박]하고 愛[애]가 잇다 그들이 後世人[후세인]에게 暗示[암시]를 준거슨 藝術[예술]의 自由性[자유성]과 自然[자연]의 單純化[단순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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容實派畵家(용실파화가) 漫畵家[만화가] 大壁畵家[대벽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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以上[이상]에 擧[거]한 바루비론派[파]와 同時代[동시대]에 特徵[특징]을 가진 세 畵家[화가]가 잇섯나니 卽[즉] 寫實主義[사실주의] 先驅者(선구자)『구루베』와 漫畵家[만화가]『도미에』大壁畵家(대벽화가) 『솨반』이 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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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千八百七十四年[일천팔백칠십사년]에 巴里[파리]에 어느 寫眞店[사진점]에서 一團[일단]의 第一回 繪畵展覽會(제일회 회화전람회)가 잇섯다 開催 中 各 新聞紙上[개최 중 각 신문지상]에난 各色 評論[각색 평론]이 만앗다 그 中[중] 모네의 出品 印象 落日[출품 인상 낙일]에 對[대]하야 嘲弄(조롱)하난 意味[의미]로 이 展覽會[전람회]를 印象派 展覽會[인상파 전람회]라고 命名[명명]하엿다. 이것이 急傳波(급전파)되여 世人[세인]은 嘲弄的[조롱적]으로 印象派[인상파]라고 불으게 되엿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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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一世人[일세인]은 이가치 空前[공전]의 嘲笑[조소]를 하게 되엿나, 다름아니라 當時 佛蘭西 畵壇[당시 불란서 화단]에는 上[상]에 擧[거]한 古典派[고전파], 浪漫派[낭만파] 바루비돈派[파]가 서로 압흘 다토아 자리를 잡고 잇섯다 그런데 이와는 아모 關係[관계]업는 派[파]가 生[생]겨 只今[지금]지의 畵家[화가]들이 取材[취재]하든 名所[명소]나 或[혹]은 貴人[귀인]의 얼골도 아닌 山川 市街 工場 [산천 시가 공장] 卑賤(비천)한 酒場(주장)의 女子 等[여자 등]을 그려낸 닭이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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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印象派 中 著名 [인상파 중 저명]한 畵家[화가]는 『마네』『모네』『빗사로』『루노알』『시스레』『드가』가튼 天才[천재]이다 印象派 繪畵[인상파 회화]의 題財[제재]는 從來(종래)와 가치 歷史的 宗敎的 詩的[역사적 종교적 시적]이 아니다 肉眼[육안]에 보이난대로 描破(묘파)한 것이다 그리고 物體[물체]의 色[색]과 色[색]의 調和對照[조화대조] 交錯(교착)로 生[생]기난 것이 美[미]에 重視[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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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學[광학]을 硏究[연구]한 것이 印象派[인상파]라 하면 그 印象派 色彩[인상파 색채]에 技巧[기교]를 加[가]하야 藝術味[예술미]를 一層[일층] 强[강]하게 한 것이 新印象派[신인상파]이다 그 始祖[시조]는 시냑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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印象派[인상파] 及[급] 新印象派 畵家[신인상파 화가]들이 日光 空氣[일광 공기]를 重視[중시]하야 自然[자연]에서 어든 刹那(찰나)의 印象[인상]을 表現[표현]한 反面[반면]으로 後期 印象派 畵家[후기 인상파 화가]들은 그것을 다 밟아 넘어서 全體的[전체적]으로 自然[자연]을 感銘(감명)하야 그것을 綜合的[종합적]으로 表現[표현]하랴고 하엿다 卽 前者[즉 전자]는 客觀的[객관적]이라 할 수 잇고 後者[후자]는 主觀的[주관적]이라고 할 수 잇다 다시 말하면 印象派[인상파]나 新印象派[신인상파]는 光線描寫[광선묘사]에는 成功[성공]하엿스나 人間性[인간성]을 이젓섯다 이와 가치 後期 印象派[후기 인상파]의 畵家[화가]들은 自我[자아]의 表現[표현]과 藝術[예술]의 本質[본질]을 잇지 아니 하엿다 卽 藝術[즉 예술]의 精神[정신]을 創造的[창조적]으로 個體化[개체화]하랴고 하엿다 그들은 古來[고래]로 전해 오난 美[미]와 醜[추]의 無意識[무의식]한 것을 알엇다 美醜[미추]를 超越[초월]하야 人情美[인정미]로 萬象[만상]을 凝視[응시]하야 人生[인생]과 가튼 갑되는 作品[작품]을 作[작]하랴 하엿다 그럼으로 그들의 作品[작품]은 自然[자연]의 說明[설명]이 아니오 보고 즐겨할 趣味(취미)의 것도 아니오 人格[인격]의 表徵(표징)이오 感激[감격]이엿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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後期 印象派[후기 인상파]의 代表的 畵家[대표적 화가]가 四人[사인]이 잇다
33
一九○八年 秋期(일구○팔년 추기) 쌀론에 (展覽會[전람회]) 비카소가 出品[출품]을 하자 부락구가 出品[출품]을 하엿다 그 偶然[우연]히 兩人[양인]의 思索[사색]의 本意[본의]가 相合[상합]하게 되엿다 이 이 그림을 본 마지스가 이것을 立體派[입체파]라고 命名[명명]한 것이 派名[파명]이 되고 마럿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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翌年(익년) 안데당(展覽會[전람회]일홈) 四十一號室 全部[사십일호실 전부]가 立體派[입체파] 그림으로 陳列[진열]하게 되엿고 翌年[익년] 랏셀(白耳義 首府[백이의 수부])에서 立體派[입체파]의 展覽會[전람회]가 開催[개최]하게 되엿다 立體派[입체파]의 着眼點(착안점)은 이러하다 藝術[예술]은 架空的(가공적)이 아니오 思想[사상]이오 意識[의식]이다 傳統的[전통적]이 아니오 解放的[해방적]이다 槪念的[개념적]이 아니오 科學的[과학적]이다 線[선]과 色[색]으로 그 動[동]을 그리려 하난 것이다 그럼으로 立體派[입체파]의 畵面[화면]에는 하모니(色彩의 交錯[색채의 교착]) 무빙(動[동]) 콤포시숀(構造[구조]이 滿載(만재)하엿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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立體派[입체파]의 代表者[대표자]는 비카소(西班牙人[서반아인])와 부락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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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상]에 擧[거]한 後期 印象派[후기 인상파]의 後[후]를 繼[계]하야 野獸群(야수군)이라고 이르난 一派[일파]가 興起[흥기] 하야 現在 佛蘭西[현재 불란서]는 勿論[물론]이고 全世界 洋畵界[전세계 양화계]를 衝擊(충격)하고 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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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一群[일군]의 畵家[화가]들은 가삼에 情熱[정열]이 타는 靑年[청년]들인 만치 旣存[기존]의 모든것을 否定[부정]하고 오직 러오르난 氣分[기분]으로 創作[창작]하랴는 意氣[의기]가 그 人格[인격]에나 作品[작품]에 나타낫다 이와 가치 그들의 기분 態度[태도] 咆哮(포효)는 마치 無人[무인]의 野[야]를 밟난 것 갓다하야 이 一群[일군]을 野獸群[야수군]이라고 命名[명명]하엿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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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一群[일군]의 靑年[청년]은 現代 靑年[현대 청년]인 만치 科學的修養[과학적수양]을 가젓고 自覺[자각]의 洗禮[세례]를 바다 明朗[명랑]한 現性[현성]과 强[강]한 自我意識[자아의식]이 잇섯다 그리하야 後期 印象派[후기 인상파]에 對[대]하야 尊敬[존경]은 가젓스나 그것을 盲從的[맹종적]으로 繼承[계승]할냐고 아니하엿다 畵面[화면]에 무슨 魅力[매력]을 表現[표현]하랴고 하엿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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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하면 엇더케 直感[직감]할가 그 直感[직감]한 것을 엇더게 率直[솔직]하게 明瞭(명료)하게 表現[표현]할가 하난 것이 重要[중요]한 點[점]이엇다 그럼으로 그들의 그림은 色[색]이든지 線[선]이든지 明暗[명암]의 單純化[단순화]가 마치 小兒[소아]의 自由畵[자유화]가튼 感[감]이 生[생]긴다 이 野獸派[야수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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代表的人物[대표적인물]은『마치스』요 其[기] 外[외]는 『도란』『빌나망크』『피』마루게, 푸리에즈, 옷도망, 왓도망, 마이요루, 계란, 아스랑, 롯도, 빗세루, 웃쥬리오와 가치 그림에 特異[특이]한 個性[개성]을 가지고 잇는 畵家[화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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野獸派群[야수파군]이 直感[직감]을 重視[중시]한 結果[결과] 넘어 單純化[단순화]하야 知識[지식]을 否定[부정]함으로 이에 反[반]하야 모든 知識[지식]을 土臺[토대]로 하야 美術[미술]을 建設[건설]하자난 것이다.
45
佛蘭西[불란서]에 立體派[입체파]의 運動[운동]이 잇난 同時[동시]에 伊太利[이태리]에 未來派[미래파]가 勃興[발흥]하엿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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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九○九年[일구○구년]에 伊太利[이태리]에서 『마리넷지』를 中心[중심]으로 드리노 劇場[극장]에서 처음으로 未來派[미래파]에 對[대]한 講演[강연]을 하고 宣傳[선전]을 하엿다 다만 繪畵[회화] 아니라 文學 音樂[문학 음악]지 라도 包含(포함)하랴고 하엿다 그들은 傳統[전통]을 否認[부인]하고 破壞的(파괴적) 精神[정신]을 尊重[존중]히하며 從來 靜的 美[종래 정적 미]를 動的 美[동적 미]로 高唱[고창]하엿다 그리하야 오직 力[력],疾走[질주],突擊(돌격), 爆發(폭발), 閃光(섬광)가튼 瞬間[순간]을 表現[표현]하기에 憧憬[동경]을 가젓다 卽 主視 向[즉 주시 향]하난 그대로 現在 擧動[현재 거동]에 過去 未來[과거 미래]를 綜合[종합]한 現象[현상]을 그리려 하엿다. 이에 代表的 作家[대표적 작가]는 룻쇼, 바루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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表現派[표현파]는 科學的 理智的[과학적 이지적]으로 土臺(토대)를 삼은이만치 光學[광학]을 重視[중시]한 印象派[인상파]나 主視化[주시화]한 後期 印象派[후기 인상파]나 知識[지식]을 土臺[토대]로 한 立體派[입체파]나 外象[외상]의 刹那的 現象[찰나적 현상]을 表現[표현]하랴난 未來派[미래파] 이 모든 거슬 咀嚼(저작)하야 形々色々[형형색색]의 美點[미점]을 取[취]하난 것이다. 이에 代表的 作家[대표적 작가]는 『상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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露西亞 出生[로서아 출생] 『간데인스키』가 獨逸[독일]에 잇서서 抽象的[추상적]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야 一千九百拾一年 毆洲大戰以後(일천구백습일년 구주대전이후] 그 形勢[형세]가 大端[대단]하엿다 이 抽象派[추상파]는 全然 客觀性[전연 객관성]을 나 抽象的 色[추상적 색]과 線[선]과 線[선]과 輪廓(윤곽)을 表現[표현]하랴난 것이다 卽 氣分[즉 기분]과 直感[직감]만이 藝術[예술]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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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가치 그림은 描寫[묘사]가 아니라 構成[구성]이라 한다 그리하야 露西亞 靑年一團[로서아 청년일단]들이 좀더 自由[자유]스러운 畵具 材料[화구 재료]를 가지고 表現[표현]하랴난 것이 卽 構成派[즉 구성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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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으로 이 構成派[구성파]에 이르러서는 임이 繪畵[회화]가 아니라고 볼 수가 잇다 그러나 그 內容[내용]은 範圍[범위]가 커서 繪畵 彫刻 工藝美術[회화 조각 공예미술]이 包含[포함]하야 所謂 綜合的 藝術趣味[소위 종합적 예술 취미]를 맛볼 수 잇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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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述[상술]한 未來派 表現派 抽象派 及 構成派[미래파 표현파 추상파 급구성파]는 다 外國[외국]에서 勃興[발흥]한 것이나 直接[직접] 間接[간접]으로 佛蘭西 現代 畵界 略歷[불란서 현대 화계 약력]에 述[술]하지 아니치 못할 事實[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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現在 佛蘭西 畵界[현재 불란서 화계]는 上[상]에 擧[거]한 野獸派 一群[야수파 일군]의 勢力[세력]이 크다 卽[즉] 비카쇼 부략, 마치스, 도란等[등]의 그림이 勢力[세력]을 占領[점령]하고 잇다 其 外[기 외] 누구든지 獨特[독특]한 筆法[필법]만 創作[창작]하난 同時[동시]에는 大家列[대가렬]에 參加[참가]할 수 잇다 그 名聲[명성]이 全世界[전세계]에 미츨 수 잇다. 일노 미루어 보면 그림은 亦是 創作[역시 창작]이라고 할 수 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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個々[개개]人[인]의 趣味[취미]에 라 歷代[역대]의 名畵[명화]를 硏究[연구]하난 者[자]도 不少[불소]하며 後期印象派[후기인상파]의 先祖[선조]인 세잔의 그림에 對[대]한 硏究[연구]가 만타 要[요]컨대 現在 巴里[현재 파리] 아니라 全世界[전세계]의 畵家[화가]를 支配[지배]하난 것은 너 (色彩[색채]) 하모니 (階調[계조]) 무빙 (動[동]) 콤포시슌(構圖[구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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巴里[파리]에서 現在 人氣[현재 인기]를 난 畵家[화가]는 亦是[역시] 마치스다, 마치스난 每日 四十餘 點式[매일 사십여 점식] 그림을 그린다하며 그 代價[대가]는 無限量[무한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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審査 或[심사 혹]은 會員制[회원제]로 拔選(발선) 或[혹] 陳列[진열]을 公開[공개]한다 그 展覽會 中[전람회 중] 가장 큰 規模[규모]로 된 것은 아티스트 푸란세, 쏘시에트 나쇼날, 쌀론 데 주레리, 쌀론 도톤,及[급] 안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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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나쇼날은 會員制[회원제]로 每年 春期 公開[매년 춘기 공개]하며 쏘시에트 나쇼날은 一名[일명] 쌀론 랑이라 하야 審査制[심사제]로 每年 五月[매년 오월]에 公開[공개]한다 이것은 크라식(古典式[고전식]) 畵流[화류]를 爲主[위주]한 國立展覽會[국립전람회]이다 쌀론도톤은 亦是 審査制[역시 심사제]로 每年 十月[매년 십월]로 十一月 間公開[매일월간공개]하난 秋期 展覽會[추기 전람회]인 가장 繪畵[회화]의 個性[개성] 重視[중시]한다 前者[전자] 쌀론 푸란이 日本[일본]에 帝國 美術院 展覽會[제국 미술원 전람회] 갓다 하면 後者[후자] 쌀론도톤은 日本[일본]에 二科 展覽會[이과 전람회]와 가타 하야 그 主旨[주지]가 大同小異[대동소이]하게 對立[대립]하여 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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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론 주레리는 巴里 畵界 一,二流[파리 화계 일,이류)의 畵家[화가]들의 會員制[회원제]요 이 展覽會[전람회]에는 量[양]이 豊富[풍부]한 作者[작자]가 不少[불소]하다 每年 七月頃 公開[매년 칠월경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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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데은 雜品[잡품]이란 意味[의미]로 勿論 何人[물론 하인]하고 一年前[일년 전]에 出願[출원]하야 자리만 엇게 되면 出品[출품]할 수가 잇난 展覽會[전람회]이다 그럼으로 이 展覽會[전람회]에난 各派[각파]의 그림이 모혀드러 가장 鑑賞[감상]할 價値[가치]가 잇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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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外[외]에 個人展覽會 名畵々商[개인전람회 명화[명화화] 상]에서 公開[공개]하난 展覽會[전람회]는 를 라 無數[무수]함으로 枚擧(매거키)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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畵商[화상]은 營利 外[영리 외]에 趣味[취미]로도 한다 畵商[화상]은 부아시 通[통]에 만흐며 其 外 各處[기 외 각처]에 畵商[화상]이 만타 畵商[화상]의 經營[경영]은 個人[개인] 或[혹]은 組合[조합]으로 資金[자금]을 내 가지고 故人[고인]의 名畵[명화]든지 現在 名實[현재명실]잇난 그림을 사거나 或[혹]은 부탁을 밧거나 난 兩方 言約[양방언약]으로 作品[작품]을 陳列[진열]한다 그러면 各方面[각방면]의 鑑賞家[감상가]들은 自由[자유]로 出入[출입]하난 中[중]에 팔니는 수가 만타 專門家[전문가]들은 每週 一次式[매주 일차식]「라써맨파리」라는 冊廣告[책 광고]에 나난 것을 보고 그 有名[유명]한 作品 陣列[작품 진열]한 畵商[화상]에 出入[출입]하며 自己畵道[자기화도]에 硏究[연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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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가데미 中[중]에는 몬발나스에 잇난 共同硏究所[공동연구소] 그란쇼미에가 잇고 其 外 個人 經營[기 외 개인 경영]과 밋 敎授硏究所[교수 연구소]는 애가데미 로도 애가데미 스캔지나비아, 애가데미모덴, 애가데미 주니안, 애가데미 란손, 애가데미 콜나로시, 애가데미 루쇼가 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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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가데미 그란쇼미엘은 油畵部[유화부](裸體着衣(나체착의)) 구로기部[부] 彫刻部[조각부]가 잇고 時間[시간]은 午前部 卽 午前 九時[오전부 즉 오전 구시]로 十二時[십이시]지 午後部[오후부]는 午後一時[오후일시]로 四時[네시]지 午後二時[오후이시]로 七時[칠시]지 夜間部[야간부]는 夜七時[야 칠시]로 十時[십시]지 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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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가데미 로도는 로도 先生[선생]의 指導下[지도하]에 個人[개인]의 經營[경영]하난 硏究所[연구소]로 亦是 午前部 午後部 夜間部[역시 오전부 오후부 야간부]가 잇다. 애가데미 스캔지나비아는 후리에즈 先生[선생]의 指導下[지도하]에 잇서 그 先生[선생]의 畵法[화법]을 敬慕(경모)하는 畵家[화가]들이 모혀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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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가데미 모덴은 다른 個人硏究所[개인연구소]와 달너 先生[선생]이 評[평]만 해주난 것이 아니다 無時[무시]로 先生[선생]이 와서 곳처준다 그럼으로 初學者[초학자]가 만히 간다.
72
애가데미 줄니안 이 硏究所[연구소]는 特[특]히 男女部[남녀부]를 로 하야 繪畵 彫刻[회화 조각]을 크라式的[식적]으로 硏究[연구]한다.
73
애가데미 란숀은 빕세루 先生[선생]이 指導[지도]한다
74
애가데미, 란콜라로시는 빌립先生[선생]이 指導[지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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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가데미,무쇼는 露西亞人 先生[로서아인 선생]의 指導[지도]요 此外[차외]에도 만히 잇스나 上述[상술]한 硏究[연구]를 代表的[대표적]으로 볼 수 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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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가데미는 午前 午後 夜 三部[오전 오후 야 삼부]로 나누어 各々[각각]모임을 갈나 그리게 됨으로 自己[자기]만 부즈런하면 終日[종일]이라도 工夫[공부]할 수 잇스나 사람의 精力[정력]이란 어느 程度[정도]지 達[달]하면 실증이 나는 故[고]로 精神[정신]을 새롭게 하기 爲[위]하야 間々[간간]이 놀기도 한다, 애가데미에 라 그 特長[특장]이 달나서 콤포시슌을 爲主[위주]하는 곳 或 線 或 色彩 或[혹 선 혹 색채 혹] 포즈 (構圖[구도])를 爲主[위주]로 하는 곳이 잇서 一週日[일주일]에 一次式 宿題[일차식 숙제]를 주는 곳도 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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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델 姿勢 時間[자세 시간]은 普通 三十分式[보통 삼십분식]이오 구로기할 에는 一時間 或 四十分式[일시간 혹 사십분식]하고 休息[휴식]한다 모델은 포즈 잡는대 常識[상식]이 잇서서 畵家[화가]들에게 大便利[대편리]를 주고 前次[전차]에 하는 포즈와 조곰도 틀님업시 하는 대는 實[실]노 感心[감심]하엿다 그리고 오래 잘 참는 것도 如干 便利[여간 편리]한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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硏究料[연구료]는 硏究所[연구소]에 러 다르며 一日分 一週日分 一朔分式 任意[일일분 일주일분 일삭분식 임의]로 내고 硏究[연구]할 수 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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畵家[화가]들이 巴里[파리]에 到着[도착]하면 넘어 크고 넘어 만코 넘어 조흔 그림이 만하 입이 々[] 버러지게 되는 同時[동시]에 그 硏究方法[연구방법]에 彷徨[방황]하야 얼마동안은 이곳저곳으로 갈팡질팡하며 그 要領[요령]을 取得[취득]하기지 苦心[고심]하는 것이다 硏究方法[연구방법]은 程度[정도]에 러 다르겟스나 대개는 이런 方針[방침]을 取[취]한다. ─ 次號繼續[차호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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