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부군은 이미 3삭(朔) 전에 베를린에 가서 체재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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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2월 20일에 갸르 드 누아르를 떠나 베를린을 향하여 독행(獨行)하였다. 차 속에는 독일 사람이 많이 탔다. ‘야 야’ 소리는 프랑스인의 ‘위’와 영국인의 ‘예스’보다 다른 어쿠수수한 맛이 돈다. 국경에서는 여행권 조사가 심하였다. 산간소역(山間小驛)이 많으나 승강객이 드물고, 산과 같이 쌓인 짐이 많았을 뿐이다. 독일 농촌은 토지의 이용이 프랑스보다 낫다. 그리고 간간이 라인 강 지류가 흐르는 것은 아름다웠다. 삼림이 많은 중에도 백화가 많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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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일 오후 7시에 베를린역에 도착하였다. 택시를 타고 부군 숙소를 찾아가서 짐을 끄르려 할 때, 정거장에 헛걸음치고 부군과 S군이 들어온다. 때에 베를린 시는 적설(積雪)로 인하여 설풍(雪風)이 심하고 한기(寒氣)가 혹(酷)하였다. 1삭 간 있었으나 홑옷으로 외출하기가 추워서 별로 구경도 아니하고 중요한 것만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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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전차, 버스, 택시, 지하차는 부절히 왕래한다. 통행 지도 순사는 방망이를 들고 휘두르며 4거리 통에는 반드시 가공(架空)에나 지하에 전기등을 해놓아 붉은 불이 나서면 진행하고 푸른 불이 나서면 정지하게 되었다. 모든 것이 과학 냄새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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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주전쟁시 천하를 움직이던 카이제르가 주거하던 궁이다. 2층에는 황제실, 황후 거실, 알현실, 화장실이 있고, 황제 황후의 사용하던 기구가 있다. 건물이 의외에 협소하고 내부도 간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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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전 앞에 있는 국회의사당 앞 동상은 비스마르크의 영자(英姿: 영웅적 모습)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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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근교에 베르사유 궁전이 있는 것과 같이 베를린 근교에 포츠담 이궁(離宮)이 있다. 포츠담은 브란덴부르크주 수부다. 하헬호상에 높이 놓인 빌헬름교를 건너 빌헬름 1세의 동상과 양측은 8기 프러시아 군인 동상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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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츠담 시가지는 궁륭(穹窿)의 성당이 많고, 퇴락한 기분이 충만하였다. 공동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다시 구경차로 나설 때 프리드리히 대왕 당시 1일에 1차씩 올려 백성의 인심을 수습하던 종소리가 높이 울려 나온다. 공원 정문을 들어서니 좌우에는 동상이 군대와 같이 정열해 있고, 때는 마침 강설(降雪) 후라 은세계를 이루었고 충신 열사의 초상에는 목판을 가리어서 볼 수 없었다. 문학자 음악가들의 기념상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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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릉(丘陵) 정상에 건설된 프리드리히 왕의 설계, 산수우스 이궁에 이르렀다. 이 궁은 무릇 180년 전 건물로 규모라든지 내부 장식이 프랑스 베르사유에 비할 바 아니나 방마다 색채와 장식이 달랐다. 공작칸(孔雀間), 호박칸(琥珀間), 베드칸이 있다. 왕 자신이 철학가요 미술가로 박식하여 건물 내외부의 설계를 다 하였단다. 이 이궁에는 특히 여자 출입을 엄금하고, 왕은 독서에 몰두하였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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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에는 왕이 사랑하던 개의 묘가 있고, 풍차 집이 하나 남아 있으니 이 궁을 건축할 때 이 풍차 집을 헐려니까 풍차 주인이 애걸하며, “이것으로 가족이 살아가노라”하므로 왕은 허락한 그것이 지금까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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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마르크 박물관, 구(舊) 박물관, 신(新) 박물관, 국민 화당(畵堂), 프리드리히 기념박물관을 보았으나 특별한 것이 없었고, 오직 전 2자(前二者)에는 고 기물(古器物) 조각이 많고, 후 2자(後二者)에는 회화가 많았으며, 프리드리히 기념박물관에 루벤스, 반 다이크, 티티안의 그림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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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구시가를 구경 갔었다. 니콜라이 당시 궁전이었던 조그마한 집과 낮은 인가, 좁은 도로는 과연 금일의 독일 문명에 비교 않을 수 없다. 프리드리히 빌헬름 궁전은 빌헬름 1세 궁전으로 실내에 금은 보석을 많이 진열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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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 유명한 음악회에 구경 갔었다. 연주는 베토벤과 바그너 작곡인데 악단에는 수백 군중이 나와 관현곡을 합주하니 관객의 마음은 서늘해지고 몸은 충천에 떠오르는 감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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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가 가까우니 처처에서 소나무, 참나무를 꺾어다 팔고 있다. 이날 저녁에 베를린서 제일 큰 중앙 회당으로 구경을 갔었다. 당내(堂內)에 장식한 크리스마스 트리, 남녀 코러스의 청아한 찬미 소리에 싸인 몸은 행복스러웠다. 이날은 정월을 겸한 축일이라 증여물(贈與物)이 심하고 식탁은 성연(盛宴)을 베풀고, 술을 서로 권하며 흥껏 논다. 주인 여인은 죽은 남편 생각을 하고 운다. 인정은 동서양이 다를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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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은 1년 중 마지막 가는 날이라 하여 유럽 각국에서는 크게 기념을 한다. 식탁에 성찬을 차려 놓고 늘어 앉았다가 밤 12시를 치면 축배를 나누며 동시에 각 예배당에서는 종소리가 나고 유리창으로는 색종이를 던져 이 집창에서 저 집 창까지 걸치도록 하고 누구에게 대하여서든지 신년 축하를 한다. 그러한 뒤에 모두 길로 나가서 춤을 추든지 카페에서 차를 먹든지 이상한 모자, 괴이한 의복을 입고 왔다갔다 하는 자, 허리라도 부러질 듯이 깔깔 웃는 여자, 남자가 여자를 쫓아다니며 입맞추려면(이날 밤은 누구에게든지 입맞출 수가 있다) 여자는 꼬챙이로 찌르는 소리를 하며 쫓겨 달아나는 광경, 대혼잡을 이루며 도로에는 사람이 빽빽하게 왕래하고 길바닥은 갖은 색종이 가루가 발에 채인다. 이렇게 이날 밤을 길가에서 새우는 것이 유럽 각국의 풍속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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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사진관에도 가 보았으나 오페라 구경을 갔었다. 마침 「카르멘」 오페라가 있어서 기뻤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오페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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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인은 이상주의고 충실 친절하며 강한 명예심이 있고, 원기 있는 활동성이 있으며, 견인불발(堅忍不拔)의 의사와 조직적 계획적 성질이 있고, 자기 희생의 염(念)이 있고, 강한 의무의 염과 복종심이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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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4일에 독일을 떠나 파리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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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일 오전 10시 36분에 가르 상 나잘에서 출발하여 오후 1시에 디프에 내렸다. 도버 해협을 건너 연락선으로 5시 10분에 뉴 헤븐, 즉 영국 땅에 내렸다. 입국하기가 매우 까다로운 것 같아서 여행권 및 행리 조사가 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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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를 타고 6시 43분에 빅토리아 정거장에 도착하였다. 거기는 이미 와있던 부군과 Y군이 출영하여 매우 반가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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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지에 눈이 뜨이는 것이 2층으로 된 전차와 붉은 버스였다. 건물은 얕고 가벼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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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건물은 퇴락한 회색 연와(煉瓦) 집이 많고, 고도시인 만치 정돈이 되지 아니하여 집은 되는 대로 아무렇게나 꾹꾹 박아 논 것 같았다. 시가는 각각 그 계급을 따라, 상업 중심부, 정치 중심부, 공업 혹 농업, 또는 부자 혹 빈자의 중심부로 구별해 있다. 도로는 전부 캐나다에서 가져온 토목으로 깔고, 시내에는 전차가 없고, 시외에만 있으며 2층 버스는 무수히 왕래하고, 지하철도도 있다. 시민 7백만명, 주택은 모두 별장식이요, 정원 없는 집이 없다. 식민지에서 뺏아온 것으로 시가지 시설이 모두 풍부하다. 처처에 공동 변소는 지하실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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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은 전부 돈 덩어리다. 도로만 남겨 놓고 잔디며 화초의 배양은 규모가 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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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원은 런던 중앙에서 조금 서북에 있다. 버킹검 궁전 부근 광장에 연속한 그린 파크와 피커딜리가(街)를 걸쳐 상접하고, 반대 방향으로 켄싱턴 가든에 연(連)했다. 화(樺), 곡(檞), 산수거(山水欅) 등이 많이 있고 그 아래는 전부 잔디에서 남녀청년들은 서로 끼고 드러누워 전경(全景)이 마치 누에 잠자는 것 같다. 통행인은 별로 놀라는 일도 없이 너는 너요, 나는 나라는 태도로 지나가고 만다. 일요일에는 유명한 야외 연설이 있으니 청중은 평정(平靜)하여 이지(理智)로 비판은 하나 감정으로 흥분은 되지 아니한다. 공원에 왔다는 감보다 시외 촌에 온 감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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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 가든은 세계적으로 손꼽는 공원이다. 자연 그대로 두어 놓고 꾸며 놓았다. 세계에서 제일 크고 좋다는 식물원이 있으니 온실에는 무성하게 배양한 거대한 파초, 종려 등이 있으며 로즈 가든에서는 향기가 뿜어 나오고 힘차게 자란 녹음방초며 깎은 머리 같은 수풀, 모두가 풍부한 맛이 돈다. 이 공원은 조지 3세가 모 귀족의 정원을 사가지고 그것을 후에 이궁을 삼은 것인데 일영(日英) 박람회 때 유물로 일본 5층탑이 보인다. 이 공원 근처에 대리석의 높은 탑이 있으니 여기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시인, 화가, 법률가, 조각가 등의 조각이 있고, 이름이 쓰여 있다. 우리 일행 3인(부군, Y, 나)은 2층 버스를 타고 런던의 중앙지인 다우닝 크로스를 지나 중국 반점(飯店)에서 저녁을 먹으며 피곤한 다리를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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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든은 하이드 파크와 인접하여 옛날에는 귀족 공원이었었다. 고목이 울창하고 동물원, 제실(帝室) 식물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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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파크는 버킹검 궁전 전면에 있어 규모가 작으나 처처에 광장이 많다. 영국왕실 이궁의 적(跡)으로 광대하고 유수(幽邃)한 공원이다. 학교 아동을 데리고 와서 야외 교수를 하는 것, 정구 혹 야구 등의 시합이 있다. 여자 순사가 이리저리 다니며 순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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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근대화를 진열해 놓았는데 로얄 아카데미에서 입상한 그림을 모은 것이다. 인상파적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아 프랑스에 비하면 1세기쯤 뒤떨어진 감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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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뮤지엄은 여황(女皇) 및 황서(皇婿)의 위세, 여덕(餘德)을 기념하기 위하여 건설한 것이다. 소품이 많았으며 주의할 것은 풍경화의 시조로 프랑스 19세기 인상파에게 대 영향을 끼치고 미술사상 저명한 지위를 가지고 있는 컨스타블의 작품이다. 광선과 방향과 구도와 색채가 활기 있었다. 컨스타블의 그림을 카피하기 위하여 수차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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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뮤지엄은 170년 전에 한스슬론 경(卿)의 소장품을 사서 국유로 만든 것이 기초가 되어 이집트, 그리스, 로마, 일본, 중국 물건을 많이 수집하여 있다. 특히 그리스 조각이 많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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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화랑은 프랑스 루브르 미술관 만치 크다. 역대의 이탈리아 미술이 많고, 현대 각국의 작품을 많이 수집하여 있다. 그 중에는 라파엘의 「마돈나」, 렘브란트의 「노파」, 다 빈치의 「암굴 중의 처녀」, 반 다이크의 「두건의 노인」 「산오스다드의 화학자」, 티티안의 「삼림중(中) 희롱」, 고야의 「처녀」도 있고 그레코의 「초상화」, 틴토레토의 그림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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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회화 중 초상화를 세계적으로 인정한다. 초상화가 약 3천 점 있었는데 모두 세밀히 그린 것이다. 영국 박물관은 진열 방법과 이용 방법이 교묘하며 풍부한 표본과 수집에는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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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민스터에는 유명한 의회당과 성당이 있다. 이 성당에는 역대 황제와 거인들의 묘로 충만하였다. 그 중에는 셰익스피어의 묘도 있다. 또 여기서 역대 황제 대관식을 거(擧)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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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스 강 밑을 뚫은 터널을 지나 그리니치 천문대를 찾아갔다. 지구 영도(零度)가 영국, 즉 그리니치 천문대로부터 지나갔다. 정문 전에 표준 시계가 걸려 있고, 각 별을 보아 시간을 맞추는 큰 망원경이 있어 베개를 베고 드러누워 보도록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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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궁은 런던 서방 약 20마일 되는 높은 구상(丘上 : 언덕 위)에 있는 건물로 전부 석조(石造)요, 14세기 건물인데 전방은 템스 강 상류를 격하여 있다. 원래 성당이었었고, 여왕 빅토리아가 난 곳이란다. 문을 들어서면 여왕을 기념하기 위하여 지은 예배당과 성(聖) 조지 예배당이 있으며 나폴레옹 1세의 침실도 있다. 또 여기서 각국 황제가 숙박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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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군이 하기 강습회에 참석하기 위하여 옥스퍼드를 찾아갔다. 옥스퍼드는 고학문의 도시인 만치 건물이 퇴락하고, 그리스, 로마식 건물인 성당이 처처에 보인다. 하여간 따뜻한 시가지로 인상이 되었다. 캠브리지는 가보지 아니하였으나 이 두 학교는 보트, 연극, 음악을 잘 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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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있는 집 주인 과부 부인이 구세군 신자이므로 이 집에는 대좌(大佐), 중좌(中佐)가 있고, 출입하는 사람들도 구세군 사원(士員)들이 많았다. 그러므로 자연 주일 날 그들을 따라 구세군 본영을 구경하게 되었다. 구세군은 영국에서 처음 1863년에 부스 대장이 군인제(軍人制)로 만든 것이다. 물론 포교가 목적이나 사회사업도 많이 한다. 병원도 있거니와 타락한 여자들의 낳은 사생아를 위하여 고아원이 있다. 여기 간사로 일본인 야마무로 군페이(山室軍平)씨의 영양이 있어 심방한 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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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인은 과언(寡言) 침착하고 고상하며 자제력이 많다. 규칙적이고 강한 의사와 활동력이 있으며, 강고한 의지와 분투적 정신을 가지고 외부에 대하여 자기를 긍정하고, 타인에게 굴복하는 것을 즐겨하지 아니하며 공리공상(空理空想)을 즐기지 아니하고 언제든지 실제적 이익, 그것도 자기 이익뿐 아니라 공공의 이익을 중하게 안다. 영국인은 수집욕(蒐集慾)이 많아서 유시(幼時)부터 대개 세계 우표 및 금전을 모은다. 또 권련(卷煙) 갑 속에 각지(各地) 사진이 한 장씩 있는데 이것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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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에는 걸인이 많아 처처에 인촌(燐寸)을 가지고 섰는 자, 악기를 가진 자, 인도(人道)에 앉아 지면에 색촉(色觸)으로 셰익스피어의 시, 조류 등을 쓰고 그려 행인에게 보이고 돈을 달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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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에는 주장(酒場)이 많은데 객의 반수는 여자의 출입이 많다.
68
런던 명물은 짙은 농무(濃霧)이니 백주에도 캄캄하여 전차 통행이 정지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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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미술관 앞에 영웅 넬슨의 동상이 충천에 높이 서 있으며 광장 좌우에는 해군성, 외무성, 내무성, 인도성(印度省), 상공무성, 육군성, 대장성(大藏省), 농업국, 수산국, 지방정무국이 있으며 경시청 입구에는 위의(威儀)를 정숙하게 한 기마 순사가 왕래를 감시하고 있는 것이 일 위관(一偉觀)이며, 총리대신 관저는 10이라고 하면 누구나 다 안단다. 옥스퍼드 스트리트가 유일한 광장이며 건물은 모두 매연으로 고색 창연하다. 프록 코우트에 실크 해트로 가는 사람의 대개는 주식 취인점(柱式取引店) 외교원, 런던 시장 관저에 출입하는 소위 젠틀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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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즈 강은 청류(淸流)를 예상하였더니 탁류, 흑색 물에는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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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런던 체류할 동안, 영어를 배우기 위하여 여선생 하나를 정했다. 방금 60여 세 된 처녀로 어느 소학교 교사요, 독신생활을 해 가는 가장 원기있는 좋은 할머니였다. 팽크허스트 여자 참정권 운동자 연맹회 회원이요, 당시 시위운동 때 간부였었다. 지금도 여자의 권리 주창만 내노면 열심이다. 그는 이런 말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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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좋은 의복을 입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을 절조(節調)하여 은행에 저금을 하라. 이는 여자의 권리를 찾는 제1조목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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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말이 늘 잊히지 아니하고 영국 여자들의 선각(先覺)에 존경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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