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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화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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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8
백신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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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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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갑자기 피서지 예찬(避暑地禮讚)을 쓰라는 명령을 받고 가만히 생각하니 어찌된 셈인지 나는 오늘까지 피서(避暑)란 명목으로 어디를 가 본 기억이 없는 듯하다. 본래정신(本來精神) 없는 사람이라. 혹 실념중(失念中)이나 아닌가 하여 집안 사람들에게 물어 봤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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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참외 버러지라 여름철에는 꼭 집 안에서 옷 끈 풀어놓고 그저 참외만 먹어대느라고 어디를 갈 여가(餘暇)가 있어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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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는 대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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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나는 정말로 아무데도 피서를 가 보지 못한 것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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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어떻게 피서지 예찬(避暑地禮讚)을 쓸 수 있으랴마는 그래도 어떻게 써야 될 사정(事情)이니 한 곳을 골라잡아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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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朝鮮)땅이비록 적을지나 대금강산(大金剛山)을 비롯하여 팔경팔승(八景八勝)이며 그 외(外)에도 수(數)없이 명승지지(名勝之地)가 있으니 이 중(中)에서 한 곳을 들어 예찬(禮讚)을 하려면 오죽이나 아름답고 피서지(避暑地)에 적절(適切)할 명구(名句)가 많으리요마는 하필 나는 별승경(勝景)으로는 이름을 날리지 못한 동화사(桐華寺)를 치켜들고 나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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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유(理由)는 내가 멀지 않은 전일(前日)에 피서(避暑)는 아닐지나 그 비슷한 걸음을 하였던 곳인 까닭이요, 또 더움을 물리시는데도 동적(動的)인 해빈(海濱)이나, 아름답지 못한 미남미녀군(美男美女群)이 주래(住來)하는 명승지(名勝地)의 번잡(煩雜)한 곳들보다도 차라리 정적(靜的)인 양기(凉氣)에 아담스럽게 더움을 잊어버리기를 좋아하는 우리 가정여인(家庭女人)들의 유(流)에 따르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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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이 동화사(桐華寺)란 어떠한 곳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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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아는 사람은 잘 알지니 대구(大邱)에서 동북(東北)으로 사리(四理)를 격(隔)한 팔공산중(八公山中)에 있으니 조선삼십일대본사중(朝鮮三十一大本寺中) 중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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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무슨 무슨 명목(名目)이 많으나 그런 것은 다 ─ 그만두고 위병(胃病)에 특효(特效)가 있는 약천(藥泉)이 있다. 이 약수(藥水)는 말이 약수(藥水)이나 실상 사 ‘은이다’ 보다 더 맛이 있어 암만 마셔도 자꾸 마시고 싶은 감로이라 위병환자(胃病患者)에게는 다시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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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절(寺)이란 부처님의 영지(靈之)이니 더러운 속인(俗人)들이 유흥(遊興)삼아 피서(避暑)하려는 피서지(避暑地)로 말씀하기 죄(罪) 될 터이나 백사(百事) 만사(萬事) 모두 세상이란 말붙이기에 달린 것이니 염열지옥(炎熱地獄)의 중생(衆生)들을 한여름 동안이나마 선경(仙境)으로 제도(濟渡)해 주시는 곳이라면 그리 큰 죄(罪)는 안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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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안심(安心)하고 다음을 써야겠다는 미래(未來) 장작개비처럼 성 없는 나인지라 남들이 한번 읽고 쫓아가 보게 할만치 예찬(禮讚)은 할 줄 모르리니 그저 내가 가보던 그때 이야기나 적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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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지(出發地)를 알기 쉽게 대구(大邱)에서 시작(始作)한다면 승합자동차(乘合自動車)·마차등편(馬車等便)이 있기는 하나 그것보다 일금 사 원야(一金四圓也)만 주면 택시 한 대가 대절(貸切)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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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론(莫論)하더라도 피서(避暑)쯤 가는 사람들이니 불쾌(不快)하거나 노(怒)여워하고 싶지는 않을터이니 될 수 있는대로 도착(到着)되는 목적지(目的地)도 목적지(目的地)려니와 그까지 가는 도중(道中)부터도 유쾌(愉快)하고 웃음이 나고 즐거워야 하는 것이니 먼저 동화사(桐華寺)가는 길거리로 부터 시작(始作)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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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내가 동화사(桐華寺)로 구경가던 그때는 동행(同行)이 다 같은 여인(女人) 두 사람과 나, 셋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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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로 대구를 떠나 동촌(東村)을 거쳐 비행경(飛行境)을 안고 돈 후, 멀리 구름이 걸려 있는 군봉(群峰)을 향(向)하야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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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좁고 요철이 많아서 평탄(平坦)한 포장도로(鋪裝道路)보다 운치가 배가(倍加)라 아무리 웃기 싫어도 웃음이 나오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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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산모퉁이 저 산모퉁이를 뒤지듯 감돌아 돌다가 한 곳에 다다라 미련 있는 택시를 내려 초목이 우거진 아리랑 고개 같은 산고개를 올라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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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서부터 반 리나 남았으니 죽장망혜가 아니더라도 우수(右手)로 섭의이상(攝衣而上)하고 좌수(左手)에 제휴(提携) 판치케 - 쓰 하여 고무신으로 행지(行之)하여도 그리 격에 떨어지지 않을 만하게 길의 고저가 심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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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길 좌우로 우거진 그림자에 축여진 길바닥은 몇 백 리 이렇게만 뻗어 있다면 걸어가기 괴롭지 않을 듯, 뜨거운 도로 위를 걷던 발바닥이 환희에 흥분이나 할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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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아주 낭만적으로 일보 일보로 길바닥의 축축한 맛을 아껴 가며 또한 굽이 감돌아 허리 굽은 장송하에 비껴 서서 좌우를 바라보면 건너편 묘한 석벽들에는 간간이 청송이요 그 앞에는 백석청암의 계곡이 맑고도 잔잔히 흐르고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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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깊이 녹수천만엽(綠樹千萬葉) 정갈함 속으로 좁고 길게 굽이굽이 숨긴 길로는 은은히 종소리 새어 올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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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운 길을 어느덧 다 지나고 산문에 당도하여 아무 대찰이나 별 차이 없는 본사를 돌아 대웅전에 절한 후 극락암으로 건너가 안을 들여다보면 기둥과 벽상에 써 붙인 글들이 그 속 깊은 본뜻이야 알 리 없는 속객에게도 금방 무슨 오(悟)하는 바가 있는 듯하게 하여 그까짓 더위쯤이야 티끌만한 문제거리도 안 되게 하니 이만하여도 피서가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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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극락암은 그 이름과 같이 이 산중에서는 제일 시원하여 극락인 듯싶지마는 그래도 초록은 동색이라고 우리가 막 다다른 곳은 여승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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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사에서 고개 하나 넘어서면 벌써 저 나무 사이로 보이는 것이 여승암이라 말없이 들어서니 제일 먼저 눈에 와 밝히는 것은 대문 맞은 편의 기둥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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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中靜夜獨坐無言(산중정야독좌무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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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고 써 붙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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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전에 재배한 후 사중(寺中)에서도 승명이 높으신 박수좌의 안내로 열어 젖힌 소루(小樓)에 딸린 일방(一房)에서 예거 좌정하니 그 곳이 여승암이요 또 맑고도 고요한 수좌의 얼굴이라 우리는 병 속에서 있다가 수층에 놓여온 고기처럼 마음과 동작까지 자유롭고 편안하여 무척 무관하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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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자의 전후좌우는 청송과 잡목이 멋있게 엉키어 그 번음 아래는 청풍이 놀고 있는 듯 방향을 희롱하고 어디에서 오는지 홈대를 타고 떨어지는 맑은 물소리와 즐거운 조제성(鳥啼聲)의 양미(凉味)는 박수좌의 그윽한 설법과 함께 염열지옥의 죄인들을 선경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녹아들게 하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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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고 보니 사람이 피서를 하는지 여름이 피인을 하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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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이 암자에는 있기가 싫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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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달아났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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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천은 극락암자에서 제일 가까우나 아무데서라도 멀지 않으니 단지 몸뚱아리가 더위를 잊고 서늘할 뿐 아니라 마음까지 위장까지 속속대로 시원하게 청정이 되니 비록 화려한 승경은 없을지나 대구 근방에 뜻 있는 인사는 동화사로 가서 한 여름 동안이나 마음과 몸을 남김없이 청정하게 할지니라.
【원문】동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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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신애(白信愛) [저자]
 
  1937년 [발표]
 
  수필(隨筆)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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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1년 11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