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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달새 곡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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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6
백신애
1
종달새 곡보
 
 
2
‘종달새’라는 제목(題目)의 수필(隨筆)을 쓰라는 명령(命令)을 받자 나는 미소(微笑)를 금(禁)치 못하였었다.
 
3
왜냐하면 이 제목(題目)으로 글을 쓰기에는 아주 적절(適切)한 곳에 살고 있는 나이기 때문이니 편집씨(編輯氏)가 언제든지 요렇게 나에게 쓰기 쉬운 글만 쓰라고 하면 참 좋겠다고 느꼈던 까닭이었다.
 
4
“그 까짓 것, 십여분(十餘分)이면 넉넉 쓸 것이니.”
 
5
하는 만만한 생각으로 그대로 돌아보지 않고 다른 일만 하다가보니 아차! 내일(來日)이 기일(期日)이로구나, 잠깐 써서 보내자, 하고 원고지(原稿紙)를 펴 놓고 앉으니 창(窓) 바로 밖에서 어떻게 종달새들이 요란스럽게 우짖어 재끼는지 그 소리에만 자꾸 주의(注意)가 끌어 펜은 한자도 그려내지 못한 나이다.
 
6
비비 ─ 삑삑 ─ 비 조글조글
 
7
이윽고 원고지(原稿紙)를 내려다보니 전판 비자(字), 삑자(字), 조자(字), 글자(字)만 수백자(數百字) 질서(秩序)없이 느려 쓰여 있다. 아마 종달새의 노래 소리를 그대로 받아 쓴 것인가보다…….
 
8
“에 ─ 라 집어치워라, 어떻게 그대로 그려낼 수 있나?”
 
9
하고 펜을 후다닥 집어던지고 잘 할 줄도 모르는 ‘만도린’을 내려안고 창 옆에 가 덜커덕 하고 비스듬히 앉았다.
 
10
창(窓)밖은 화창(和暢)한 햇빛에, 야들야들한 보리밭 광야(廣野)는 아지랑이가 아질아질 아롱아롱, 고들고들, 눈이 어지럽게 알랑거리고, 바람은 남의 목덜미를 가만히 부드러운 나래같이 살 ─ 짝 스쳐 두기도 하고,
 
11
들판의 이곳저곳으로 동리 어린 계집애들의 나물 캐는 무리가 앉았다 섰다, 버들 강아지는 소리 없는 장난을 하고, 동리집 살구꽃은 웃을락 말락……. 이 중에서 종달새는 푸른 공중(空中) 높이 높이, 나래를 까불이 아가씨처럼 팔락거리며 형형각성(形形各聲)으로
 
12
“비비 ― 쪽 조글조글…….”
 
13
이라고 야단들이다. 나는 부시는 두 눈을 쪼그려 공중(空中)만 노려보며 만도린의 줄을 골라 ‘핑 ─’ 한번 울려본 후, 자! 한 곡조 울려볼까! 하였으나 이때 내 심금(心琴)은 알지 못할 음곡(音曲)을 울리고 있었다. 따르 ― 르, 달알달르르 ─. 내 손가락은 심금(心琴)에 맞추어 제멋대로 줄을 집는다. 아무리 ○○한 음악가(音樂家)가 듣더라도 알지 못할 내 심금(心琴)에서 흘러나오는 음곡(音曲)이다.
 
14
“비비 ― 비 삑 ― 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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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어린 아기 종달새가 노래를 배우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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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 ― 삐 ― 조글조글…….”
 
17
아마 어른 종달새의 열심히 가르치는 소리인가 한다. 나의 만도린도 점점 흥에 겨워한다. 나는 작곡가(作曲家)의 작곡(作曲)의 삼매경(三昧境)을 스스로 느끼며, 줄 없는 거문고를 소리 없이 집는 것과 대구(對句)가 되어 혼자 즐기며 우지지는 종달새 노래에 반첩(伴妾)을 하듯 ‘따르르 딸알딸르르…….’
 
18
자꾸 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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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작곡법(作曲法)이나 배웠으면 종달새곡(曲)이나 하나 지었을 것을.”
 
20
나는 한탄하며 종달새 우지지는 봄의 야경(野景)을 조금이라도 그럴듯한 ○(寫[사])를 할 줄 모르는 나의 연필(鉛筆)을 안타까워 하였다.
 
21
새벽 자리 속에서부터 저녁 해질 때까지 몸에 배이도록 (明[명])○ 그대로의 종달새의 노래를 듣고 있는 나인지라 처음 종달새를 쓰라고 명령(命令)을 받고 만만스럽게 생각하던 것과는 반대로 한 마디의 미문(美文)도 나오지 않는 것이 우습다면 우습다. 그러나 다 ─ 만
 
22
“비 ― 비 ─ 쪽조글 조글조글 쪼옥 ─.”
 
23
이 노래 소리 들으면 내 마음 즐겁고 즐겁기만 하다.
 
 
24
─ 《여성》(1937. 6).
【원문】종달새 곡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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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달새 곡보 [제목]
 
  백신애(白信愛) [저자]
 
  여성(女性) [출처]
 
  1937년 [발표]
 
  수필(隨筆)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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