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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리오옹」과 부성애·기타 (발자크 연구 노트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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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10.
김남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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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오옹」과 부성애·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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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자크 연구 노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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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노레·드·발자크는 「인간희곡총서문(人間戱曲總序文)」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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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란서 사회가 역사가가 되고, 나 자신이 그의 비서로 근무하는 것으로 충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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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말하고 있다. 나는 발자크의 대수해(大樹海)를 향하여 탐색의 길을 떠나면서, 그를 모방하여 다음과 같이 말해보는 것을 기쁨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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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희곡」이 교사가 되고, 나는 하나의 작은 소학동(小學童)이 되는 것으로 충분하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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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발자크에 대한 전체적인 이해는 「인간희곡」의 대수해(大樹海)를 섭렵한 뒤에 가능할 것이며, 그에 대한 완전한 비판적 섭취는 오랜 뒷날에 이루어질 것이다. 이 노트는 그의 유일한 기초가 될 것을 희망하고 쓰여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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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오 옹(翁)」은 1834년 9월에 완성되었다. 서른 여섯 살 때의 작품이다. 파리 일류 살롱에 자주 출입하여 영국의 명문출신 뷔스콩티 부인과 각별한 우정을 맺던 시기이며, 타방(他方) 그의 일생에 있어 가장 커다란 영향과 관련을 가진 앙스카 부인과도 쥬네브에서 만났던 해에 쓰여진 작품이다. 이 해에 「절대의 탐구」, 「삼십중년여(三十中年女)」와 중편 「랑제공작 부인」의 3권과 「고리오 옹」이 상재(上梓)되었다. 「인간희곡」이 1829년의 「부르봉 왕당(王黨)」과 「결혼생리학」에서 비롯한다 하여도, 그의 전사업을 「인간희곡」이라 명명코자 착안하고, 비로소 조직적인 계획을 세운 것은 1836년이었고, 「인간희곡총서문(人間戱曲總序文)」을 초(草)한 것은 1842년 7월이었다. 그러므로 「고리오 옹」은 그가 문필사업을 시작한 당초에 생각하였던 ‘수세기에 걸친 연속소설’에서 스코트적 역사소설의 개념을 극복하고, 점차 18세기의 종국(終局)과 19세기의 초두(初頭)에 국한된 불란서 사회의 ‘인간희곡’을 제작하려는 의도가 성숙되어가던 과정에 쓰여진 작품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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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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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초두(初頭)에 있어서의 자본주의의 발전은, 낭만주의라고 하는 반동예술의 발생의 사회적 근거가 되었다. 이러한 귀족적인 반동예술이 발생할 만큼 당시의 사회는 특이하였으나, 19세기 초두(初頭) 30년 말에 벌써 낭만주의는 쇠미(衰微)의 과정에 들어가고 있었다. 19세기의 말엽으로부터 19세기 초두(初頭)에 이르는 사회경제상태는, 구라파 제국에 있어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이미 봉건적 사회질서를 파괴해 버리고 있는 시기에 속한다. 이러한 제 과정은 나라와 민족을 따라 독자의 상모(相貌)를 띠고 있어서, 이의 반영인 낭만주의 문학의 성쇠도 나라와 민족을 따라 각양(各樣)의 차이를 정(呈)함에 이르러, 낭만주의 문학 검토의 지난(至難)하고 복잡함을 생각케 하고 있는데, 이곳에서는 물론 그것을 하고 있을 자리도 아니고, 테느, 브란데스를 위시하여, 최근 20세기의 문학연구가들의 제 노력이 이의 연구에서 아름다운 성과를 거두고 있음을 참고로 들어둠에 그치려 한다. 특히 라브링 같은 이의 「낭만주의심정」은 심정(心情)의 점검(點檢)에서 흥미 있는 성과를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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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문학현상의 토대가 되는 당시의 사회적 경제상태를 건성건성 점묘하여 보아도, 영국에 있어서는 절대왕제가 타파되고, 봉건적 잔재인 지주귀족에게 최후의 타격을 줄만한 산업혁명이 발발되어, 그 결화로 가내수공업의 파괴, 임은(賃銀)노동자, 산업예비군이 무수히 가두에 범람하여 사회적으로 비상한 혼란에 빠져있었다. 불란서에 있어서는 18세기 중엽이래, 인구의 증가, 상업자본의 발달과 아울러 공업, 농업의 대경영이 증가하였으나, 그 결과 근대노동자의 산출과 타방(他方), 수공업, 소경영농업에 종사하던 인구층에서 많은 실업자를 내었다.(1777년 전불국(全佛國)에는 120만의 걸인이 있었고, 파리 주민 65만 중 15만이 직공과 임은(賃銀)노동자였다. 불란서 대혁명의 뒤를 이어 구 부르봉 왕조의 복벽(復辟운동, 1830년 7월 혁명, 등등은 낭만주의의 쇠망과 발자크 이해에 중대한 관련이 있다 할 것이다. 독일은 30년 전쟁 이후 계속되는 무수한 전쟁에 의하여 사회는 곤비(困憊)의 극에 달하여 있었다. ‘백마를 탄 세계정신’, 나포레옹이 봉건적 지배를 일소하기는 했으나, 신성동맹의 반동이 추종하였다. 자기의 속하는 계층이 쇠멸(衰滅)될 운명 하에서 현실의 방향을 인식치 못한 곳에, 영불(英佛)의 귀족적 낭만주의자가 흥성하고 또는 혹은 쇠망하였다. 이러한 가운데서 스탕달과 발자크의 리얼리즘은 탄생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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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란서적 명석성(明晰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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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란서적 명석성(明晰性)이 무엇이냐 하는 것을 검토하고자 하지는 아니한다. 왕왕히 사람들은 발자크의 가운데서 불란서적 명석성(明晰性)의 각도에서는 검토키 힘든 어떠한 이질적인 것을 발견한다고 말하여 왔는데, 「고리오翁[옹]」뿐만이 아니라, 그의 전 작품을 통하여 이것은 근거 없는 낭설이 아닌가 하는 이의를 제기함에 이 항목을 설치한 목적이 있다. 명석성(明晰性), 그 자체의 공과나 그런 것은 이곳에 문제가 되지 아니한다. 등장인물이 수천에 이르는 방대(尨大)하고 거창한 소설의 수해(樹海)가, 그러나 하나의 명석성(明晰性)에 있어서 관통되어 있다는 것을 말함에 그치려 한다. 물론 불란서의 모랄리스트나 최근의 작가들이 가지는 것을 동양(同樣)의 명석성(明晰性)이 아닐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성격적 전형의 창조의 부면(部面)에 나타난 것과, 환경묘사의 확실성과 근대 사회생활의 전 조직을 흐르고 있는 원천의 해명에 있어, 그가 언제나 화폐의 위력을 궁극의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등은 발자크적이라고도 할 만한 불란서적 명석성(明晰性)의 하나의 타입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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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성애와 「리어왕」과 「고리오 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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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오 옹」의 주제는 부성애라는 것이 일부에 있어 정설처럼 되어 있다. 이리하여 그의 작품 「으제니·그란데」가 인색과 탐욕을 주제로 하여 몰리에르의 「수전노」와 비견되는 일방(一方), 「고리오 옹」은 왕왕히 세익스피어의 「리어王[왕]」에 비교되어 부성애의 성전으로 취급을 받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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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발자크는 고리오를 ‘부성애의 기독(基督)’으로 설정하였고, 사옹(沙翁)의 「리어왕」이 톨스토이의 악매(惡罵)에 가까운 가혹한 비평에 의하여 지탄 당한 제 결함을, 소설적인 산문정신에 의하여 충분히 극복한 것을 우리는 「고리오 옹」에서 볼 수 있다.(나는 반드시 「리어왕」평가에 있어서 톨스토이의 폭론(暴論)에 가담하는 자는 아니나, 극적 자위의 우심(尤甚)에 의하여 소설가로서는 견딜 수 없는 수많은 사태를 빚어내고 있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을 지금 솔직하게 고백하여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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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어왕」은 주지하는 바와 같이 장녀, 차녀의 극악한 불효와 3녀의 효성을 가지고 극을 꾸민 것인데, 그렇기 때문에, 성격의 창조에 있어서는 눈에 띄게 작위적이고 모순된 행위가 대단히 많다. 이에 대하여 「고리오 옹」은 두 딸이 전부 불효이고 둘째딸의 연인인 라스티냐크라는 청년이 리어왕의 3녀(코딜리어)와 해당하는 인물로서 설정되었는데, 이 부급애(父急愛)와 불효의 배후에, 언제나 화폐의 위력과, 당시의 귀족사회나 시민상류계급의 허영에 찬 풍속생활 - 사교계의 면밀한 묘사가 있어서, 우리는 비로소 말자크의 특이성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리어왕」에 있어서 영토욕, 지배욕, 등등의 봉건적인 것이 불효의 계기를 만들고 있었던 것이 「고리오 옹」에 와서는 그것이 화폐로 되었다는 것을 주목하려 한다.) 「리어왕」의 황야를 헤매는 처참하고 장엄한 장면은, 후자에 있어서는 두 딸에게 버림을 받고 임종을 당하는 최후의 결말에 해당할 것이나, 이 두 장면만을 비교하면 확실히 사옹(沙翁)의 극적 위대성을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하고(何故)냐 하면 고리오의 운명(殞命)은 그의 아름다운 매력과 독특한 색채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감상적인 색조가 농후한 것이 사실임으로써이다. 여하(如何)튼 양자를 비교 영구해 보면, 하나는 드라마를 통하여 자기의 예술을 만세(萬歲)의 반석 위에 건립하였고, 하나는 로만의 건설을 통하여 리얼리즘 문학의 승리를 확실화하였는데, 부성애를 싸고도는 갈등과 투쟁의 상모(相貌)가 각각 역사성을 준엄하게 폭로하고 있다는 것이 공통된 감탄을 자아낸다. 뿐만 아니라, 두 예술가가 하나는 극을, 하나는 소설을 들고나섰다는 것부터 장르사적 견지에서 볼 때에 벌써 하나의 역사성을 현현(顯現)하고 있지는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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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양자의 비교연구에 있어서 기술적인 흥미를 느끼게 하는 것은, 부성애를 표상화하기 위하여 각기, 여하(如何)한 사건을 설정하였는가 하는 점인데, 지면관계도 있고 하여 상세히 비교 인용하기를 피하거니와, 두 아버지가 배반한 딸들을 저주하고 천지를 향하여 노호(怒號)할 때에, 그들의 입으로부터 뱉어지는 독백을 검토하고, 그곳으로부터 한 등 올라서서 극의 구성법과 소설의 그것을 살펴보고 최후의 두 예술가의 구상력(이것은 예술가의 이상과 전 역량을 폭로하는 궁극의 것이다.)을 평가해 보면 얻을 바 많을 것을 기록하여 두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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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일반화된 정설처럼 부성애가 과연 「고리오 옹」의 주제인가 하는데는 약간의 이론(異論)을 세우고자 한다. 확실히 이 소설은 부성애를 가운데 놓고 얼크러져 나갔고, 노부(老父) 고리오가 주역을 맡아 치르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 소설의 테마는 좀 더 복잡한 데 있지는 아니한가. 나는 다음에 으제느·드·라스티냐크라는 청년을 중심으로 하여 이 소설의 실제상의 주제에 대하여 언급해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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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와 인물의 성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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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에 나오는 인물로써 나의 눈에 가장 영롱하게 비치는 것은, 늙은 고리오 영감 외에 보트랭이라는 정한(精悍)한 불사신(Trompe - la - Mort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의 탈옥수와, 사교계의 여왕인 드·보세앙 자작부인과, <메종·보케트>라는 하숙옥(下宿屋)의 여주인공 보케트 부인과 그 중에서도 시골서 올라온 22세의 법률학생 라스티냐크 등인데, 이 최후의 학생은 가장 아름답게 묘파(描破)되고 창조된 인물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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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시골 출신으로 파리에서 법률공부를 하고 고리오에게 동정하고 있는 이 스물 두살의 청년은, 그러나 사교계에 진출하여 장래의 성공을 꿈꾸는 당시에 있어서의 대표적인 불란서의 청년이었다. 재능도 충분히 있지마는 그것도 그다지 위대한 것은 되지 못하였고, 매일같이 바라보는 모든 일에 감동되고 유혹되어 부와 명예에 사로잡히고 그럴수록 욕망은 커가고 늘어가서 그가 가지고 있던 순정은 나날이 좀먹어갔다. 그가 그의 먼 일가뻘이 되는 사교계의 여왕 보세앙 부인을 찾아갔을 때에 그 부인은 이렇게 성공의 비결을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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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거장마다 바꾸어타고 갈아타는 역마(驛馬)처럼 세상의 남녀를 생각하세요. 그렇게 하면 그대가 희망하는 가장 높은 곳에 도달할 것입니다. …… 이 세상이란 기만하는 사람과 교활한 자의 집단이란 것을 알게될 거예요. 남에게 기만을 당하는 사람도 되지 말고, 교활한 자들과 어꺠를 결지도 마세요. —이리하여 파리 사교생활에 현혹된 청년은 드디어 이런 생각을 품음에 이른다. —그는 있는 그대로 이 세상을 관망하여 부한 자에겐 법률과 도덕이 무효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성공이 이 세상의 최후의 수단이란 것을 발견하였다. 성공은 미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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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사교계에 적극적으로 진출하기엔 준비금이 필요하였다. 그것을 가난한 시골의 어머니와 누이에게 청구하면서 그는 아직 여러 번 주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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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최후까지 주저하였으나, “나는 성공해야 한다”고 부르짖으며 편지를 넣었다고 발자크는 기록하고 있다. 그는 아직도 성공을 위한 수단에 있어서 선악을 혼동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그때에 동숙(同宿)인 괴인물 보트랭에게서 다시 이런 교훈을 듣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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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종하는가 반항하는가 양자(兩者)중의 기일(其一)을 택하라! ……인간이 뭉켜도는 가운데, 대포의 탄환처럼 돌입하던가, 페스트의 균처럼 침윤하던가 해야 한다. 정직이란 아무 꼬에도 쓸모가 없는 물건이다. ……맛나는 음식을 먹기 위해서 손을 더럽히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 중요한 건 그 더럽힌 손을 깨끗이 씻는 걸 잊지 않는데 있다. 이곳에 현대의 도덕의 전부가 있는 게다. 원리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부여된 상태가 있을 뿐이다 .비범한 자란 이 상태의 변화에 적응하면서 그것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유도하는 자를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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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청년은 보트랭이 권하는 악행에 가담하기를 노염과 함께 거부하였다. 그의 순정은 아직 그의 가슴 어디엔가 남아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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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의 사교계의 입문에서 고리오의 차녀 —악랄한 은행가 눗칭겡의 아내, 델핀느와 알게 되고 그와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을 때, 청년은 파리 상류계급의 추행(醜行)과 위선에 비로소 눈이 떴다. 그는 ‘세상의 습관이라던가 법률이라던가, 패덕(敗德)을 은폐하고 있는 장벽에 불과하다는 것을 이해한다. 위선이 도처에 날개를 뻗치고 있다. 위엄에도 우정에도, 연애에도, 친절에도, 연민에도, 결혼에도 위선이 있다.’(브란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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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는 이 세계가 커다란 이녕(泥濘의 대해처럼 생각되었다. 발을 잠시동안 담그기만 하여도 목덜미까지 빠져버리는 이해(泥海)처럼 생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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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라스티냐크는 이 지옥을 완전히 이해하고 이 가운데서 자기의 위치를 잡음에 이르러, 다시 사회의 최고위에까지 올라가려고 생각한다. 이 청년은 발자크의 딴 작품 「추피(麤皮)」「환멸」등에 다시 나오는데, 그는 그곳에서 국무대신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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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오 옹」의 실제상의 테마는 이 청년 라스티냐크의 행동과 관찰을 통해서 파리 사교생활의 이면(裡面)을 묘파(描破)하는 곳에 있었다고 보는 것이 상술한 경개(梗槪)로써 이미 명백해진 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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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청년 외에 보트랭이라는 가명을 쓰고 이 하숙옥(下宿屋)에 들어있는 괴인물, 탈옥수 작크·코랑의 성격과 행동과 독설은 희대의 걸품(傑品)이라 말할 수 있을 것으로, 특히 그가 경관에게 체포되는 장면은 지극히 아름답다. 그때의 그의 모양을 발자크는 이렇게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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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그는 단순한 일개의 인간이 아니도, 야만이면서 논리를 가지고 있고 영맹(獰猛)하면서 동시에 은근한 사람, 즉 퇴폐한 국민 전체의 전형성을 나타내고 있었다. 단 하나 후회의 마음만을 제외한 모든 인간감정을 표현한 하나의 처참한 시로 화해 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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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의 사교계의 여왕 드·보세앙 부인이 실연과 파멸을 통하여 묘파(描된 파리 상류계급의 破) 현란한 생활과 그 이면(裡面)에 숨어있는 비극, 다시 고리오의 두 딸을 통하여 보여준 시민계급(부르주아)와 귀족계급의 관계 등은 작자의 치밀한 관찰안(觀察眼)을 나타냄에 충분하였다. 두 딸은, 부는 가졌으나 귀족사회를 통행할 패스포트인 신분은 갖지 못하였다. 장녀는 다행히 귀족에게 출가하였으나 차녀는 은행가에게 시집간 관계로 일류급의 야회(夜會)에는 초대를 받지 못한다. 동기간의 사이도 시기에 차 있고, 차녀의 보세앙 부인 저(邸) 출입은 다년간의 숙망(宿望)이였다. 그러므로 차녀 델핀느는 라스티냐크의 주선으로 보세앙 부인 주최의 야회(夜會)에 초대를 받았을 때, 제 아버지의 위독임에 불구하고 야회(夜會)에로 마차를 달린다. 두 딸의 성격에 대하여 브란데스는 그의 주저(主著)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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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차녀) 악녀도 타락한 여자도 아니었다. 오직 사회의 각양각색의 모순이 그의 성격을 구성하고 있었다. 발자크는 세익스피어의 코딜리어와 같은 순결한 인물을 창조할 수는 없었다. 고귀와 숭고는 그의 영역엔 속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리이간이나 고네리아(「리어왕」의 장녀와 차녀로, 말하자면 불효한 딸)와 같은 인물을, 이 고명한 영국의 극시인보다도 훨신 더 정밀하게 묘사하였고, 이것에 훨씬 더 많은 현실미를 부여할 수가 있었다. 이러한 제인물 외에도 〈메종·보케트〉라는 하숙의 동숙인(同宿人), 그의 여주인공 등 어느 인물이나 모두 인상적이고 조각처럼 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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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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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단초(端初)는 기교적 구성을 꾀하지 않고, 하숙옥(下宿屋)이 있는 파리의 일항계(一巷界)의 치밀한 묘사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작자의 디테일의 극명한 묘사에 대하여는 논자에 따라 이론(異論)이 구구하지만, 「고리오 옹」에서도 그는 우선, 하숙의 주위에서, 경내에 들어가 정원을 관찰하고, 외관을 바라보며, 창문의 수에서, 그 색조, 차양, 바람벽에 붙은 티끌 하나 빼놓지 않고 세밀히 그리면서, 현관을 통하여 옥내로 들어가서, 다시 식당, 주인의 방, 하숙방, 장식, 소도구를 하나하나 근기(根氣)있게 그리고 있다. 이것이 끝나면 동숙인(同宿人)의 소개다. 인물 소개도 결코 사건이나 장면의 전개를 쫓아서 시행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하나 장부를 펼쳐 보이듯 한다. 이것이 끝난 다음에야 작자는 비로소 사건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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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사건으로 들어가서 주요한 인물을 끌고 나가게 되면, 작자의 구성력이란 비상하다. 알지 못하는 동안에, 하나하나 쌓아 올라가는 그의 수완이 얼마나 비범한가는 구성력이 빈약한 조선의 작가에겐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것 같아. 소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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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숙옥(下宿屋), 2. 두 개의 심방(尋訪), 3. 사교계 진출, 4. 불사신, 5. 두 딸, 6. 옹(翁)의 사(死),로 짜여져 있는데. 불사신의 (4)에 이르러 모든 사건이 합쳐서 마루턱을 넘으며 점차 종국(終局)으로 인도되고 있는 것은 찬탄함을 마지않게 한다. 여태껏 준비하였던 성격과 사건의 복선이 함께 뒤엉키면서 각기 특이한 개성을 발휘하여 제 가끔의 운명을 쫓아가는 양은 웅장한 감상까지 품게 한다. 시험삼아 (4)와 (5)에서 절정에 이르는 사건을 등장순서대로 뽑아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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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불사신’이란 별명을 받는 보트랭의 파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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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빅토리누의 동생의 흉사(凶死)와 그의 상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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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하숙의 돌연한 불행 - 네 개의 방이 돌연히 비고, 18인의 하숙인이 겨우 열 사람으로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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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드·보세앙 부인의 실연과 이경(離京)과 파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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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두 딸의 파멸의 곡절과 옹(翁)의 사(死)
 
 
46
이러한 사건이 한꺼번에 높은 고개를 성난 말처럼 몰아쳐 올라가다가, 점점 풀어져서 종국을 이루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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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구성과 구상력에 대하여는 다시 고(稿)를 달리 하려니와, 「고리오 옹」1편으로서도 넉넉히 그의 골격을 상상함에 족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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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평론』창간호, 1939년 10월)
【원문】「고리오옹」과 부성애·기타 (발자크 연구 노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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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1년 11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