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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동주의 정신적 소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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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9.16
고석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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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의 정신적 소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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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캄캄한 시간 속에서 무한내전(內戰)을 피할 수 없을 때 의식은 한층 절대적 반항에 가까운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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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 D. Renevil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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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1940년에서 45년에 걸친 우리문학의 가장 암흑기에 마련된 것이다. 전 50여편의 유고시는 거의 표백적인 인간 상태와 무잡(無雜)한 상실을 비쳐내던 말세적 공백에 있어서 불후한 명맥을 감당하는 유일한 <정신군(精神群)>이었었다. <두려움>을 청산하기 위한 내면의식과 이메이지의 이채로운 확산, 그리고 심미적 응결과 우주에의 영원한 손짓은 그의 28년 생애를 지지한 실존이었으며 겨레의 피비린 반기에 묻힌대로 그 암살된 시간 위에 종식하는 날까지 그의 <정신의 극지>로 말없이 옮아가며 불붙는 사명에서 떠나지 않았던 것이다. <부재자>에 대한 위협이 암흑적 영역으로 문을 열었을 때, 거기서 윤동주는 무한행렬(行列)의 한 사람이 되어 지변(地邊)도 변화도 없는 거리를 눈과 입과 귀를 막고 그대로 걸었다. 영원의 해결이란 절대의 소산(消散)이란 이미 부정 이전에 있어야만 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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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그에게 아름다운 잔을 바쳤으며 비정의 합창을 그에게 불러준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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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윤동주는 처음 <시종>에 대한 회의에서 자기도주를 발견하였다. 1939년에 적은 글 가운데에 “차라리 성벽 위에 펼친 하늘을 쳐다 보는 편이 더 통쾌하다. 눈은 하늘과 성벽 경계선을 따라 자꾸 달리는 것인데 이 성벽이란 현대로서 캄푸라지한 옛 금성(禁城)이다. ……이제 다만 한 가닥 희망은 이 성벽이 끊어지는 곳이다”라는 부분이 있다. 세계적 외연 속에 하나의 궤적을 그리며 달리는 무한직선을 발견하였을때 그의 모든 생동을 은폐한 <옛 금성(禁城)>은 무한직선의 피안에서 끝내 열리지 않는 것이였다. 무한 직선은 회귀의 원을 그리고 원의 <붕괴적 양상>이란 바랄 수 없는 것이어도 푸른 하늘의 매혹을 그는 단념치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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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마도 진실한 세기의 계절을 따라 하늘만 보이는 울타리 안으로 뒤쳐 역사같은 포지션을 지켜야 합니다.” 세계는 하나의 정경으로써 시종(始終)의 의미를 통일하고, 원의 동일적 배회(同一的徘徊) 위에 더 나갈 수 없는 거리의 절망에 저립한 것이였다. 모든 외연적 관람에서 퇴영한 그는 일찌기 “당신은 나를 영원히 쫓아 버리는 것이 정직할 것이요”라든가 “세기의 초점인 듯 초조한” 탄생의 비극에서 부정정신의 해소를 은근히 바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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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전면으로 비쳐 오는 체념의 빛깔을 엷게한 것이며 오히려 순밀(純密)한 수용적 감성의 대립을 면할 수 없게 하였는가. 그가 바라본 세계 양상이 정경적이었을 때 하늘과 땅, 우주의 전야(全野)는 일층 추상적인 아름다움으로 설정된 것이었다. 따라서 세계는 <정경적(情景的) 허무>의 대명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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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금에서 맑은 강물이 흐르고 맑은 강물 속에는 사랑처럼 슬픈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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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의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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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만 인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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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전등에 비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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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몸에 둘 셋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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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졌다 작아졌다. (「거리에서」의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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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에 씌어진 20여편의 동요와 더불어 이 소박한 서정의 관조는 비실재에 대한 황홀과 투시로서 더욱 미화된 하나의 정경이였다. 그리고 그러한 정경의 중심에서 그는 언제나 자기 스스로의 조응과 영상을 반사해 내는 직관의 추출을 게을리지 않았던 것이다. 여기에 있어서 시간이란 다만 미래적 기점에서 파악되는 연달은 흐름이였다. 영원한 유동의식이 미화의 표현이였다. 아니 세계의 판단이였다. 시종적 회의에서 비롯한 윤동주의 미래적 세계상이란 <아름다움>과 연합한 <정경의식>이였음을 새삼 알게 되는 것이다. 서정은 부정정신의 해소를 목적한 것이다. 허무의 기억적 요청을 점점 해소치 않는 것으로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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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윤동주의 정신 속에 내재된 허무적 정경의식 또는 아름다움을 생각하는 경우, 그러한 의식은 하나의 중추적 발현이 아니었던가를 다시금 반문하는 것이다. 의식은 하나의 중추적 발현이 아니었던가를 다시금 반문하는 것이다. 의식은 대체로 체험에 있어서의 총파악의 집결을 뜻하는 것이므로 모든 공간과 시간의 초한계(超限界)에서 말하자면, 비형태적 지속 속에서 이루워진 것이며 존재와의 조우에서 어떤 분열된 의미를 더욱 더 촉진하는 것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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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전제가 가능할진데 윤동주의 <그윽한 유무(幽霧)>란 어디까지나 자기의 침식을 방임하였던 하나의 상태로부터의 반향을 뜻하는 것이며 가장 아름답게 침식되는 생명의 소모에서 느껴지는 이상적 부감(腑瞰)은 그대로의 한 정경이며 어딘지 <병의 의식>에서 발현된 것이였다. 따라서 정경은 병의 의식에서 영사된 전체라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며, 이 병이란 신음보다 피로에 가까운, 혼탁치 않으며 선명일색의 <성내서는 안될 병>이었으며 그의 회복을 다만 파멸적으로 기도하는 불가지한 이상(異狀)을 말하는 것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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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구나무 그늘로 얼굴을 가리고 병원 뒷뜰에 누워 젊은 여자가 흰옷 아래로 하얀 다리를 드러내 놓고 일광욕을 한다. 한나절이 기울도록 가슴을 앓는다는 이 여자를 찾아 오는 나비 한 마리도 없다. 슬프지도 않은 살구 나무 가지에는 바람조차 없다. 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 처음으로 이곳에 찾아왔다. 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나한테는 병이 없다고 한다. 이 지나친 시련, 이 지나친 피로 나는 성내서는 안된다.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깃을 여미고 화단에서 금잔화 한 포기를 따 가슴에 꼽고 병실 안으로 사라진다. 나는 그 여자의 건강이 아니 내 건강도 속히 회복하기를 바라며 그가 누웠던 자리에 누워 본다. (「병원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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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표적 시를 통하여 우리는 그가 찾아간 병원이 얼마나 한적한, 정지된 공간이였는가를 “슬프지도 않은 살구 나무 가지에는 바람조차 없다”에서 짐작할 수 있으며 무한 가책에 시들어가는 자기 건강을 위하여 앓는 자리로만 옮아 눕는 그의 파멸적 회복을, 더 나아가선 “나한테는 병이 없다”는 바로 그러한 병을 의식하였을때의 그의 불가지적 동의를 어찌 회의적 감동으로만 받아 들일 것인가. 그에게 있어서 병이 존재치 않는다는 정신의 이중적 부정은 존재치 않는 병을 더 확실히 존재케하는 불가지적 동의의 실재를 밝힐 수 있는 커다란 증거이다. 이리하여 부재자는 존재하는 것이며 주재자에 대한 <혼약적시종(昏約的侍從)>을 그가 각오한 것이다. 전적(全的) 부재자에 그는 동일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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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많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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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자는 밤」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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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어둠 속에서 배태되고 이 어둠 속에서 생장하여 아직도 이 어둠 속에 그대로 생존하나 보다” 부재자에 대한 혼약적 시종! 그에게 있어서 색명의 인접은 진실로 밤이 돌아오는 그때였다. 치열한 밤의 물결에 휩싸여지는 때, 소리없는 비상과 교응을 그는 얼마나 완전히 지각한 것인가. 그러한 가감적(可感的) 전개는 그러한 지속적 공간은…… 밤은 한 상태이며 부재자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었다. 이리하여 윤동주는 밤의 향도(嚮道)를 전폭으로 수태한 최초의 시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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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창을 열어 공기를 바꾸어 들여야 할텐데 밖을 가만히 내다보아야 방안과 같이 어두워 꼭 세상같은데 비를 맞고 오던 길이 그대로 비 속에 젖어있사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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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와 보는 밤」의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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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과 방 속이 어두운 포옹에 일치하였을 때 그의 행적은 미래 이상으로 그를 괴롭힌다. 낮의 연장을 피하며 밤을 영접하는데도 투명한 심령은 최초로 돌아갈 것을 한사코 시도하며 자기 추방을 엿보는 <안>의 절규를 그는 숨기지 못했다. “오로지 밤은 나의 도전의 호적(好敵)이면 그만이다.” 울분을 씻을 바 없는 이 순간이 격리된 우주에의 비상을 위해 수없는 시늉을 계속하는 동안 <꼭 세상같은> 지속적 공간만은 차츰 그의 위치와 대립해 나가는 것이며, 치밀어 오는 방의 용도를 응시하면 할수록 이 시간에는 부재자의 존재가 더 또렷한 것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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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 나를 부르는 것이 누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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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랑잎 잎파리 푸르러 나오는 그늘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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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아직 여기 호흡이 남아 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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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도 손들어 보지 못한 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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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들어 표할 하늘도 없는 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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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 내 한몸 둘 하늘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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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부르는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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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마치고 내 죽는날 아침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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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럽지도 않은 가랑잎이 떨어질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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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부르지 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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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시간」의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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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비탄은 자기 호흡을 느끼는 것과 어떤 비약을 폐기하지 못하는 내부의 저항이 수없는 충동에서 자꾸 도주하는 것이다. 밤의 의식은 이리하여 어깨를 짚고 숨결을 다투는 부재자의 캄캄한 미로에서 공포의 열렬한 추방과 같이 훤히 번져가는 것이였다. 의식의 형성은 의식의 조준에서 깊은 심연을 그에게 내면화시켰으니 <누구>는 하나의 실재로서 충분히 점유되는 반대로 무엇이 그와의 교전을 피할 수 있게 하며 그와의 충동을 버리는 것이었던가. 자기 생명의 처소를 지적하여 부재자에의 무저항적 저항을 위하는 대신 부재자는 생명의 시간적 연장을 감시하기 위한 제요망을 나타내고 모순과 함께 한청년의 인내는 이때부터 스스로의 죽음을 예상케 되었다. <서럽지도 않은>은 아침에 선선히 그는 부재자 앞에 자기를 양도할 것을 다짐한 것이다. 갈등은 이리하여 절정에서 그의 허리에 검은 비단을 돌리게 하고 강경히 포박된 그의 압력은 시의 새로운 형상을 지배한 것이였다. 부재자의 닫힌 자세! 이때부터 그의 시편에는 <상(喪)의 빛깔>이 일반으로 치돋는 것이였고 모든 진전은 그와의 결탁에서 이루워졌으며 그 자신의 파멸적 회복은 점점 광록(鑛綠)의 바탕으로 삭아지는 것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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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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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옷을 입히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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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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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옷을 입히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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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한 침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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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런히 잠을 재우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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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이 올 때까지」의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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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 그는 죽음과 삶을 흑백으로 나눈 끝에 그 두 가지를 한 자리에 눕힐 수 있는 생사 공액(共軛)의 자의식을 확신한 것이다. 가지런히 자는 두 사이를 흰옷입은 채 자기는 어떻게 보면 방황하고 파수를 보고 웃고, 울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러한 밤은 너무나 지루한 흐름이었던 것이다. “아무도 없고 정적만이 군데군데 흰 물결에 푹 젖었다.” 부재자에 대한 혼약적 시종이 자기를 배리하는 최후까지 그의 위장없는 비극성은 무서운 틈입(闖入)의 시간과 체결(締結)에서 생명의 초려(焦慮)를 밖으로 자꾸 뿌려 던지는 것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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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오래 기르던 여윈 독수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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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서 뜯어 먹어라 시름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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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살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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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위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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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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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메테우스의 신화는 최고조의 분열과 침식을 오히려 유일한 존재적 감정으로 전하는 것이다.<바람이 불어> <슬픈 족속> <한온계> 등을 아울러서 상(喪)의 표현이라 할 것 같으면 <태초의 아침> <십자가> <사랑의 전당> 등은 그가 바라던 신화적 <이적>을 노래한 것이었다. “극단과 극단 사이에도 애정이 관통할 수 있다는 기적적 표본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의 허무적 분신(扮身)을 그리고 그러한 운명의 바다로 향하여 윤동주는 서서히 떠나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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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의 시에는 밤의 천체적 심미를 그림 이상으로 복사하고 있다. 초기의 시상(詩想)들이 순환적 자연과의 관조에서 출발하여 마침내 하늘의 경이와 심미를 상징한 것은 일층 승화된 「순수근저」에로 그의 정경이 옮아간 뒤였다. 인간 윤동주에 있어서 밤은 우주와의 교류이며, 부재자와의 응시이며, 대화의 연속이었다. 그는 대부분의 시를 이러한 밤의 인상과 의식의 주변에서 결정한 것이니 그것은 그에게 내재한 투명 의식이 암흑적 정경 속에서도 충만한 까닭이었다. 이들은 앞에서와 같이 그의 전작품에 불가결한 이면(二面)을 각기 형성하면서 전자가 환원적 귀의의 희망이였던 것과 후자의 기반적(羈絆的) 귀속의 절망을 서로 융합케 하는 심오한 조화로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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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 대립은 끝없는 밤의 흐름 속에서 그를 높이 싼 전면적 우주와 그를 둘러싼 부재자의 영상과의 이중 경험으로서 헤아릴 수 없는 <심연>의 개재(介在)를 또한 제시한 것이였다. 심연은 우주, 즉 본래의 자연과 부재자, 즉 의식의 자연과의 절충에서 말하자면 소산(消散)과 응고, 투명과 암영의 중간에서 그에게 동일적 배회를 지속시킨 것이다. 심미적 우주에 반하여 위협적 부재자의 인식은 점점 유동하는 심연의 층적에서 이상한 포용 상태를 이루는 것이였다. 세계의 지침은 그 방향으로 존립할 수 없는 변화의 피안에서 마지막 유괴를 목 놓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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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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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다 못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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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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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밤이 남은 까닭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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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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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헤는 밤」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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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하늘은 드높고 가을 하늘의 별 바다는 찬란한 영연(靈筵)과도 같다. 저마다 혹성들은 닿을 수 없는 거리에서 그들의 좌숙(座宿)을 지키며 무한의 향연을 베풀고 있는 것이다. 이름도 없는 그들을 다 헤일 듯한 욕망이란 최초에의 미련과 귀의의 슬픔으로 몇 번이나 두절된 것인데 길지 않는 밤의 종단(終端)을 그는 점점 두려워 하는 것이였다. <아침이 오고> <내일밤이 남고> <청춘이 다하지 않는 까닭>이란 아침의 공포와 내일밤의 기대와 내 청춘의 생명감이 하나의 파약으로 어쩔 수 없이 끌려 가는 상태에의 거부였다. 마지막 고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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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성좌의 의의는 무수한 형상의 반짝임과 무수한 거리의 연결을 잃지 않는 초월적 율동으로 무한격간(無限隔間)에 울려 올 뿐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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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하나의 추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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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하나에 사랑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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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하나에 쓸쓸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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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하나에 동경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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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하나에 시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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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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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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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회상에는 모두가 기억의 노예로 남은 것들이며, 겸손히 사라진 운명의 얼굴들이며, 양지의 동물들이며, 전원과 신비에 울고 간 고독한 시인들의 이름이며, 가장 헌신적 애정이었던 어머님의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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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슬히 멀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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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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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형하고 무성(無聲)한 율동을 인식함에 있어서 목숨의 상적(傷跡)이란, 불사의 따뜻한 손짓이란…… 천체에의 심미는 끝내 결별의 조응이었다. 가장 신랄한 운명의 절선이었다. 그리고 영토의 울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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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는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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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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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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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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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자 묻힌 언덕우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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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처럼 풀이 무성할게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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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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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두 절은 훨씬 뒤에 다시 구상된 것으로 전하여지는데 이와같은 감흥적 최후는 이제 심미가 심미 자체로 소멸하여 버릴 수 없는 것과 같이 영원의 회귀를 비는 우주적 신념에 거의 근접한 것이었다. 시 「별 헤는 밤」은 언어적 음악과 회화적 구현에 있어서 가장 완벽한 작품의 하나다. 현해탄을 건너 가는 마지막 전야는 이렇게 아득한 절명의 예운(豫云)이였으며 순정의 발로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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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여행의 울음은 <인간투영>의 비장한 손짓과 정신 조국에의 결사이며, 영원적 해후를 목적하는 피묻은 <개시>를 고별하는 것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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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는 살았다. 무명(無明) 지역의 탄생에서 무명 지역의 죽음으로……. 그러나 그가 떠나간 정신의 극지는 얼마나 먼 피안에서 자꾸 멀어져 간 것인가. 영원히 고갈된 눈으로 바라보면 <황혼은 바다가 되어> 아니 세계는 바다가 되어 불 붙는 것인데 까맣게 저무는 것인데 또다른 고향은 여기에서도 보이지 않는 깃발로 흔드는 것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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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에 돌아온 날 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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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백골이 따라와 한방에 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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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둔 방은 우주로 통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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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선가 소리처럼 바람이 불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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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에 곱게 풍화작용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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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골을 드려다 보며
95
눈물짓는 것이 내가 우는 것인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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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골이 우는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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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혼이 우는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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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조높은 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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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을 새워 어둠을 짖는다.
100
어둠을 짖는 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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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쫓는 것일께다.
 
102
가자 가자
103
쫓기우는 사람처럼
104
백골몰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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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에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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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고향」의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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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정경의 <동지섣달에도 꽃과 같은 어름아래서> 그는 부재자와의 동반을 영원히 파악한 것이며 저 절정의 공백으로 저 회귀원의 붕괴적 양상으로 소리없이 스쳐가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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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錚錚)한 야적(夜寂)은 무한시공에의 길을 여는데 어찌하여 <백골>은 따라와 함께 우는 것이며 또 밖에서 <지조 높은 개가 어둠을 짖는> 것인가. 끝내 트여올 새벽을 동주는 믿었던가. 어느 세상의 여명을 그는 믿었던가. 그리하여 아름다운 고향의 문은 열리는 것인가. 무엇이 한 인간의 실재를 지속케 하였으며 그의 <처열(凄烈)한 이유>를 시로서 적게 하였는가. 세기의 공백지대에 떨어져 간 28년의 피묻은 자욱은 그 어느날 불명한 <신전>에서 아름다운 꽃으로 새로 필 것이었다.
 
109
윤동주 그는 희박적 우주에의 부단한 대결로 말미암아 끝내 제명된 젊은 수인(囚人)이다. 우리들은 아무런 체계도 수립도 없이 무한행렬을 기피하지 않았던, 그의 무자비한 내전을 어떤 정신적 의미에서 이야기할 더 많은 자리를 사양치 말 것이다. 나는 단숨에 적어 버린 나의 소모가 더욱 충실한 앞날에 이르기를 몇 번이나 생각하며 이 장의 끝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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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극 1953. 9. 16.》
【원문】윤동주의 정신적 소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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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석규(高錫圭)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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