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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과 고적이 보잘것없기로 조선서 첫째 가는 전라북도······에서도 더 욱 아무것도 없는 임피(臨陂)가 내 고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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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도 궁벽하고 보잘것이 없든지 임피 산다고 하면 임피가 어디냐 고 묻는 이가 하고많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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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뿐인가요. 피(披)자를 파(坡)자나 파(波)자로 언뜻 보고 ‘임파’라 고 하는 이도 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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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두름한 야산과 죽 퍼진 들 밖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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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경강(萬頃江)과 금강(錦江)이 바로 가깝지만 연안에 역시 그럼직한 풍경이나 역사의 자국이 박힌 정자(亭子) 하나도 없고 기괴한 바위 하 나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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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도 놀라지 마시오. 임피팔경(臨陂八景)이 있으니 ! 왈(曰) 장 제유서(長堤柳絮) 왈 신창면구(新倉眠鷗)니 왈 보촌모종(寶村暮鍾)이니 왈 한림단풍(翰林丹楓)이니 왈 용지낙안(龍池落雁이니 왈 서호귀범(西 湖歸帆)이니 왈 오성낙조(五聖落潮)니 왈 금성반륜(金城半輪)이니······ 이 터무니없는 팔경 가운데 그래도 내가 보고 그럼직하다고 여긴 것 은 아마 오성낙조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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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옹색하니까 그대로 내세우는 것이 진짬 풍경으로 내세우기로 들 면 차마 못할 노릇입니다. 대자연이 강원도에 금강산을 빚어놓으면서 천리(千里)가 다 못 격(隔)한 임피에 겨우 오성낙조 하나를 끼쳐주다니 너무 야속한 일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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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가서 지내던 한해 여름 동무 두 사람과 한가지로 오성산(五聖山) 을 향하여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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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두시 가량 떠나 산 밑 절에 다다르니 놀며 놀며 온 것이 아직도 여섯시 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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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에서 해가 지기 한 시간 앞을 남겨놓고 산을 올라 꼭대기에 올라서 서 낙조가 보이기에는 조금 동안이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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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으로 바라보면 개미집 같은 임피읍과 남산(南山)을 넘어 그야말로 일망무제한 김만경평야가 만경강의 좁다란 띠를 띠고 바라보입니다. 이 평야가 다다른 곳은 그림 속의 병풍같이 암암한 전주·남원 등지의 봉만 (峰巒)들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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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으로는 충남 일판이 눈에 들어옵니다. 더욱이 한산(寒山) · 서천(舒 川)은 거짓말을 조금만 보탠다면 농가에서 저녁을 먹는 보리밥 그릇에 쌀이 몇 알 섞였는지 보일 만큼 바로 발 아래로 내려다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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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는 서쪽으로 군산 앞에서 입이 확 퍼진 금강의 강 어귀가 망망 한 바다처럼 내려다보입니다. 오성낙조의 파노라마는 여기서 벌어집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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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어가는 붉은 햇덩이가 한치 한치 기울어지다가 문든 강면일대는 장 려한 황금 굽이로 변하여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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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같이 온세상이 통틀어 “금 ! 금 !” 하고 금에 주린 비명을 지르 는 날, 그런 사람들에게 이것이나마 보여주었으면 저으기 시장기라도 면할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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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조를 별로 많이 구경하지 못한 나에게는 그것이 세상 제일가는 진(眞)것인 듯만 싶어 미상불 퍽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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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몇분 전까지도 고요(원경으로)하던 수면에서 보기에도 찬란한 싯누런 황금파도가 굼실굼실 뛰놀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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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 아니한 별유천지(別有天地)에 온 듯이나 싶어 황홀한 정신으로 바라보고 있는 동안에 금파(金波)는 더욱더욱 혼란스러워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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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다가 해가 점점 기울어져 감에 큼파도 조금씩 조금씩 고요하여지고 일몰이 되고 나서는 아슴푸레한 잿빛 막이 강 위로 덮이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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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변사가 계속되는 것이 겨우 삼십 분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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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안이 짧은 만큼 신기한 품은 더하였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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