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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사이에 흔히 원동공화국(遠東共和國)이라 불렸으나, 엄밀히 말하면 ‘부리아트 몽고자치공화국’의 수도인 우진스크에서 사흘 동안 묵은 후 우리 일행 10여인은 마침내 목적의 땅 이르쿠츠크를 향하여 떠나게 되었다. 결국은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에서 열리고 만 우리의 대회는 아직 그때까지도 이르쿠츠크에서 열릴 예정으로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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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를 종점으로 하는 시베리아 횡단의 북행열차가 우진스크를 떠나는 전날 밤, 우리 일행은 이 소도시의 정거장 ─ 음산하고 어두컴컴한 낡은 차량의 행렬 속으로 숨어 들어갔다. 그리하여 화차들 사이에 있는 어떤 헌 차 간에 자리를 차지하고 하룻밤을 새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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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어리고 약한 당시의 러시아 세력으로는 원동의 도시에 맘대로 도량하는 각국의 스파이 떼에 대하여 적극적 탄압의 정책을 취하느니보다는 소극적으로 주의 깊은 자위의 방법을 더 현명한 정책으로 선택케 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극동 각 민족의 대표를 추천하는데 있어서도 가급적 신중한 비밀주의를 채용하였다. 우리 일행이 떠나는 전날 밤 정거장의 낡은 차량 속에 숨어 새인 것도 이튿날 아침의 출발을 극비밀리에 숨기려는 그곳 동무들의 세심한 주의의 결과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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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러 역부 대신 우리를 차간으로 안내한 러시아 동무가 준비해 가지고 온 초에 불을 켜니 어른거리는 누런 광선의 희미한 조명이 그려내는 차실 한복판의 광경은 자못 황량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의자의 쿠션은 다 떨어져서 밑바닥의 나무가 보기 싫게 노출되어 있고 천장에는 거미줄까지 보였다. 마루판에는 물론 두꺼운 먼지가 우리의 발자국을 번듯하게 새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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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이 먼지를 툭툭 털며 한복판에 모여 앉아 자리를 잡고 나니 곧 저녁식사가 시작되었다. 우리보다 훨씬 뒤떨어져서 들어온 다른 러시아 동무가 검은 나무토막을 하나 가슴에 안는 듯이 하고 들어오더니 가지고 온 도끼로 패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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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스토브에 땔나무인 줄만 알았더니 그것은 의외에도 검정 빵이었다. 밀가루뿐만 아니라 지푸라기 가루까지도 다분히 섞인 이 검정 빵을 워낙 오래 묵힌데다가 추위에 꽝꽝 얼어서 나무 패듯이 도끼로 찍기 전에는 도저히 쪼개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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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검정 빵 외에 연어알과 무엇인지 이름 모를 소금에 절인 생선이 우리에게 급여된 저녁음식의 전부였다. 물론 차도 있었으나 때 묻은 양철 찻잔과 짚이나 삶은 물 같은 누루텁텁한 찻물 빛은 그다지 식욕을 끄는 것은 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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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고기밖에 먹지 않는 몽고 동무들은 물론 조선 동부들도 모두 이 심히 살풍경한 반찬에는 손도 대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연어 알 조금하고 검정 빵을 찻물에 충분히 축인 것을 조금 먹어 보았다. 내가 먹는 바람에 다른 동무들도 차물을 마시기 시작하였다. 각사탕도 오직 한 개씩밖에는 차례가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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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럭저럭 저녁밥의 흉내를 내고 나니 이 뜻밖에 황량한 저녁식사는 우리들 일동의 활발한 이야기꺼리가 되었다. 내일도 모레도 여행하는 동안에 때마다의 식사가 늘 이러면 어떨까 하는 불안이 누구의 말 틈에도 새어 보이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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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물론 당시 러시아를 전국적으로 휩쓸고 지나간 저 대기근의 뒤를 이은 극도의 식량결핍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또 그 조악한 식량에 의하여서도 능히 역사가 그들의 어깨 위에 얹어주는 모든 짐을 하나로 거절하지 않고 씩씩하게 지어나가는 이 땅의 새로운 민중 정신의 감화력이 우리의 이따위 불안 같은 것은 오직 웃음거리에 지나지 못한 것임을 잘 알게 하여 주었던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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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가 다 타서 불이 꺼지니 우리는 캄캄한 빈 차간에서 눈을 감게 되었다. 난방장치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차실은 영하 30도의 외기(外氣)나 다름없는 추위였다. 우리는 노천의 야영에 쓰였던 침구를 꺼내어 잠자리를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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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를 찌르는 듯한 추위에 몇 번이나 고달픈 잠을 중단 당하면서도 이 한 밤을 빈 찻간에 새이고 나니 이튿날 이른 아침 사빠이칼현의 치타를 떠난 모스크바행의 광궤(廣軌)열차가 바퀴소리도 우렁차게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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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새 열차로 옮긴 우리는 이제야 좀 안도의 숨을 쉴 수 있었다. 보통의 난방장치도 있었고 더구나 단싱과 나는 특별히 2등 차실에 초대를 받았다. 식료품도 역시 검정 빵은 검정 빵이었으나 도끼 없이 먹을 수 있는 것이었으며, 시베리아 특유의 칼바스 사탕 고기 등이 차실에 준비되어 있는 것을 보았을 때는 더욱이 안심의 기쁨이 가슴속에 숨어드는 것을 어쩔 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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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는 우진스크를 떠난 지 몇 시간이 못 되어 원동공화국의 국경을 이루고 있는 세렌가의 강을 건너게 되었다. 국경인만큼 공화국의 헌병들이 찻간에 들어와 여객과 화물을 검사하였으나 우리들에게는 별로 말도 묻지 않았다. 이 강을 건너고 나니 객차 내의 분위기는 훨씬 밝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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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긴장했던 여객들은 안도의 숨을 쉰 듯이 적으나마 도중의 정거장마다 플랫폼에 나서려 지껄이기도 하고 3분이나 4분의 짧은 정차 시간을 이용하여 산보도 하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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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사람들의 특색의 하나는 그들이 무던히 산보를 즐겨하는 점일 것이다. 트로이카 삽스크에서 우란스크에서 숨이 입술과 수염에 하얗게 얼어붙을 듯한 무서운 추위에도 기어코 거리를 산보하고야 마는 러시아 사람들을 보고 이제 다시 겨우 2~3분의 짧은 정차 시간을 기어코 플랫폼 산보에 보내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 그들을 볼 때에 나는 일종의 경탄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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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울한 북극 겨울의 황혼이 어슬어슬 땅을 덮기 시작할 즈음 우리는 여객들의 ‘바이칼’ ‘바이칼’ 하는 환호소리에 멀리 차창 밖으로 마치 바다의 원경처럼 아득히 보이기 시작한 유명함 바이칼호수를 바라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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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도 아 바이칼!하고 거반 무의미하게 남들의 탄성에 화하였다. 그것은 호수라기보다도 완연히 그대로 바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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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날이 거의 어두워 갈 때가 되어서 우리의 시각은 이 호수가 가지고 있는 이름 높은 매력에 마음껏 도취할 수는 없었으나 그래도 단조한 구릉의 권태로운 연속과 살풍경한 스텝의 황량에 또는 음울한 밀림의 위안 없는 침묵 속에 오랜 여행을 계속해 온 우리에게는 이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와 같은 호수가 주는 광활한 전망과 오직 물만이 가지고 있는 저 일종 특별한 자유롭고도 보드라운 감정은 확실히 고맙고도 희한한 선물임에 틀림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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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는 마침 결빙기에 들어서 육지 가까운 부분에는 벌써 얼음이 수면을 덮고 또 이 호수에 흘러드는 30여 하천이 고산과 심곡에서 싣고 온 얼음덩어리는 이곳저곳 떠돌아다니며 호수의 결빙을 도와주고 있었다. 그리하여 끊임없이 오르는 물김은 결빙기 특유의 자욱한 안개가 되어 이 호수의 전망을 극히 아득하고 좁은 것으로 만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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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칼이 가지고 있는 그 한없는 매력을 조금이라도 바로 볼 수 있었던 것은 기차가 온밤을 이 호수를 끼고 돌아 그 이튿날 아침 대안의 지점에 도달하였을 적이다. 대안의 어떤 자그마한 정거장에 머문 기차는 이곳에서 연료의 장작나무를 싣기 위하여 약 30분만 정차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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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는 극동에서 모스크바까지의 여행에 불과 일주일밖에는 안 걸리나, 그때만 하더라도 적어도 그 황폐의 시기를 마쳤을 뿐인 그때에는 극도의 연료 공황으로 기차는 모두 석탄 대신에 장작을 때면서 운전을 하였다. 삼림지대에 차를 세워놓고 도끼를 든 운전수 차장들이 생나무를 찍어다가 기관을 때어가면서 기차의 운전을 계속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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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삼십분 정거 시간의 심심풀이를 겸하여 장작나무를 기관실에 싣는데 같이 모여들어 조력하기로 하였다. 서늘한 아침 공기는 기차의 동요에 완전치 못한 수면이 남겨놓은 텁텁한 기분을 한꺼번에 머릿속에서 씻어버리고 노동의 상쾌한 흥분이 우리의 여행에 시달린 파리한 뺨에 보기 좋은 홍조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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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껄이고 떠들며 한참 동안이나 나무를 싣고 나서 우리는 정거장 구내의 한 모퉁이에 높이 쌓인 재목 위에 기대기도 하고 앉기도 해서 제멋대로의 자세를 취하여 오른편 가까이 수려 광활한 바이칼의 가경을 말도 없이 제가끔 깊은 감탄과 유열에 잠기면서 마음껏 향락하였던 것이다. 실로 가슴이 열리는 듯한 유쾌하고 시원스러운 조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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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바다라는 것을 보지 못하고 단조하고 우울한 대륙 풍경 속에 질식할 듯한 우수의 압박을 무의식 중에 느끼면서 긴 여행을 하여 온 우리의 눈앞에 이제 아무런 예고도 없이 돌연히 나타나, 그 광활한 푸른 가슴을 겨울 아침의 젊은 태양 아래 마음껏 벌려놓고 우리를 맞아주는 이 바이칼호수는 마치 넓은 바다나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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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푸른 호수 수면에는 잔물결이 아침 미풍에 춤추고, 둥실둥실 떠돌아 다니는 얼음덩이는 그것이 이 자유롭고 유쾌하게 몸부림치고 춤추고 아양을 부리는 보드라운 수면을 무감각하고 침묵한 한 장의 얼음판으로 변하게 할 것이라고는 도저히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 경쾌하게 물결 사이에 부동하며 태양의 반사에 이따금 다시없이 고운 광선의 희롱을 시험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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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돛을 단 어선의 미혹은 벌써 이 호수를 차지하기 시작한 겨울 앞에 그림자를 숨긴지 오래 되었으나 그래도 하얀 갈매기의 나지막한 보드라운 울음소리는 그 펄럭펄럭 떠도는 흰 날개의 깨끗한 빛과 아울러 고단한 나그네의 감회를 정답게 어루만져 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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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인상 깊은 소역은 오제르나야 정거장이었다. 이 소역을 떠난 기차는 바이칼호수에서 흘러 나오는 앙가라 강에 연하여 굴러갔다. 이곳의 기차 연선에서 우리를 놀라게 한 조망은 부근의 농촌에 사는 동포들의 형상이었다. 다 쓰러질 듯한 시베리아식 농가에서 물동이를 이고 조선옷을 입은 부인네가 가까이 있는 우물로 물을 길러 가는 것을 보았을 때에는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당장 뛰어나가 붙들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이날 오후에 기차는 마침내 대망의 도시 이르쿠츠크에 다다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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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르쿠츠크 역에는 기차가 닿기 전부터 벌써 먼저 가 있는 조선 동무들과 이곳에 있는 러시아 동무 , 중국 동무들이 환영을 나와 있었다. 성대한 환영 모임이 역두(驛頭)에서 있은 다음, 우리 일행 중 조선 동무들만은 몽고 동무들과 갈려서 우리를 위하여 준비되어 있는 숙소를 향해 자동차를 몰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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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대표와 조선 대표의 공동 합숙소로 지정된 그 집은 2층 양옥이었다. 이곳에서 비로소 다 함께 모이게 된 30여 명의 조선 동무들 사이에는 밤이 깊은 줄도 모르고 이야기꽃이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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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튿날 아침 이곳에 있는 코민테른 원동부장 슈마스키를 방문하여 대회의 개최를 재촉하는 일방, 바쁘게 대회에 대한 우리의 준비를 시작하였다. 각 분과위원회를 구성하여 조선운동의 각반 정세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이 그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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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준비에 망살되어서 (바쁘게) 보낸 이르쿠츠크의 며칠 동안 기억에 강렬하게 새겨둘 만한 인상 깊은 일은 아무것도 없었던지 이 도시에 대한 나의 기억은 극히 아득하다. 다만 그 동안 지내온 다른 도시에 비하여 훨씬 번화하였다는 기억과 직업적 가극단이 있어서 하룻밤 구경을 한 기억이 있을 뿐이며, 이 도시 부근으로 흐르는 하천이 모두 바이칼호수의 맑은 물을 닮아 지극히 투명하였다는 것, 또 시가에서 만나는 러시아 여인들이 특별히 어여뻐서 그들의 아름다움이 모두 바이칼의 고운 물 탓이라는 동무의 설명에 감심하였던 것 등이 떠오르는 단편적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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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르쿠츠크에 도착한 지 며칠 안 되어서 나는 다른 동무들과 함께 세상에 나서 처음으로, 그리고 아마도 이후에도 나의 일생을 통하여 다시없을 일이겠지마는 재판관 노릇을 하게 되었다. 사건은 조선의 운동사에 유명한 저 소위 흑하사변에 관련된 반동분자의 처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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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하사변 이후 연해주와 북만주 일대에 있는 조선의 무장단을 모조리 이르쿠츠크에 불러들여 1개 사단으로 조직해 놓은 《고려 XX(독립)군단》에서 열린 이 군법회의에 재판장은 저 유명한 의병대장 홍범도. 우리들 조선 대표단의 일단은 배심원 자격으로 배석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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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창기의 조선운동사상에 일대 오점을 남겨놓은 이 소위 흑하사변은 그 후 오랫동안 조선의 민중운동을 망쳐온 저 파벌투쟁의 선구였으며, 또 가장 부끄러운 표현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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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소위 상해파의 영향 아래 있던 군단의 일단이 동만주에서 북만주로 몰려와 흑하지방에 이미 결집되어 있던 소위 이르쿠츠크파 영향하의 무장단과 합작되었던 것이 분파적 갈등과 충돌로 인하여 다시금 분리하고 탈주를 계획한 것이 이 잔인한 분파투쟁의 도화선이 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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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뒤를 추격한 흑하군단은 이 탈주대를 모조리 원대로 복귀시킨 다음 교묘한 수단으로 일제히 무장해제를 시킬 계획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계획을 실행하려고 이른 아침 상해파 군대의 진영에 갔을 적에는 벌써 참호를 파고 응전 준비를 튼튼히 한 그 상해파군이 총부리를 이쪽으로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하간 정통적 지위만은 보장하고 있던 이르쿠츠크파는 마침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러시아 정규의 적위군을 청해다가 이들을 강제로 무장해제 시키고 말았다. 물론 유순하게 무기를 버리는 자 보다도 완강하게 대항하는 자와 탈주를 꾀하는 자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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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백명의 피가 흐르고 고귀한 목숨이 동지 간의 암투에 의미 없이 낭비되고 말았던 것이다. 우리 앞에서 재판을 받은 수십 명은 반항하거나 또는 탈주를 계획한 상해파 군단의 사람들이었다. 먼 지방에의 유형(流刑) 몇 해 동안의 징역 또는 단순한 징계처분 등 각종 처벌이 오랫동안 감옥에 갇혀 있는 그들에게 각각 정해진 운명이었다. 이 재판은 말할 수 없이 안타까운 애석의 정과 암담한 우울로 나의 마음을 몹시 누른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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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을 마친 며칠 후 나는 이곳 XXX(독립군) 군단에 가서 중국 각지에 우리 운동 상황의 보고연설을 한 후 장교들의 초대를 받아 그들과 저녁 식사를 같이 하고 밤늦게 집으로 돌아왔다. 사관후보생 두 사람이 안개 낀 밤거리를 합숙소까지 바래다주었다. 나는 아까 장교들과 고조되고 흥분된 담화 그 내용이 모두 멀리 떠나온 XXXXXXXXX, 또 그 땅에 사는 형제들의 아픈 고통에 관한 그 모든 담화의 감격에도 불구하고 전날에 있었던 재판에서 느낀 우울한 기분을 억제하기가 매우 곤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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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하순 한창 바쁘게 대회준비에 분주하고 있던 우리에게 뜻밖의 명령이 내렸다. 그것은 이곳 이르쿠츠크에서 열릴 예정이던 원동피압박민족 대표자 대회를 모스크바에서 열겠으니 모스크바로 오라는 것이었다. 원래 11월의 워싱턴회의에 대항하여 열려고 계획되었던 것이 기왕 시일이 늦어지고 했으니 모스크바까지 이 극동 대표자들을 초청하여 건설기에 들어선 새 러시아의 발랄한 공기를 충분히 호흡케 하려는 기쁜 소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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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 레닌이 살고 있는 곳, 신흥 러시아의 XXX지도자들을 눈앞에 볼 수 있는 모스크바! 우리는 뛰는 가슴을 누르면서 행리(짐가방)를 다시금 수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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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민테른 원동부장 슈마스키의 지도 하에 우리 일행은 모스크바에의 길을 떠났다 일 이상 걸리는 . 10 차중의 시간을 우리는 대회 준비에 이용하기로 하고, 이르쿠츠크에서 구성한 분과위원회 별로 차실을 배비하였다. 슈마스키와 그의 역원과 나와 그 외 몇 동지는 1등실에 총사무소를 차리고, 전체 회의는 식사시간 이후의 식당차를 이용하였다. 10여일나마의 이 여행을 통하여 매일 밤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나면 우리는 반드시 회의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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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러시아의 중앙을 남북으로 꿰인 우랄대산맥은 거대한 테이블 형의 고원을 형성하여 우리의 앞길에 가로 누워 있었다. 기차가 이 고원의 경사를 올라 갈 때에는 전후에 기관차를 달았다.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고 해도 기차의 속력은 실로 미미하여 안타까울 정도였다. 이 우랄산맥을 지나니 연선에 보이는 촌락과 도읍에는 훨씬 농후한 구라파색이 지배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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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정거장마다 눈에 띄는 것은 이 광대한 나라를 한가지로 뒤덥고 있는 처참한 빈궁과 결핍의 상태였다. 역사의 새로운 궤도 위에 이제야 그 XXXX 운명을 태워놓기는 하였으나, 또 무한한 발전의 가능성과 경탄할 비약의 약속이 이제야 그들의 시야 앞에 뚜렷이 전망되기 시작하기는 하였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전에 우뚝 서서 그들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는 대기근의 검은 그림자는 이 위대한 인민 러시아 민중에게 확실히 참을 수 없는 고난과 시련인 것을 창밖에 발견하는 하찮은 광경까지도 충분히 엿보여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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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의 어떤 자그마한 정거장에 차가 머물기만 하면 커다란 양철 우유통을 든 주린 농부가 손님을 구하러 다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우유 한 통을 거진 그 커다란 우유 통에 지지 않을 만큼 큰 지폐 뭉텅이와 바꿔 가슴에 안은 채로 플랫폼에 쓰러지는 늙은 농부를 목도한 일도 있었다. 그는 그렇게 주렸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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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의 가격을 극도로 끌어내려서 화폐의 완전한 절멸을 기하려던 당시의 경제정책으로 말미암은 화폐의 저락(低落)은 이 불쌍한 농부의 가슴에 그가 그렇게도 미워하고 그리워하던 그의 원수이며 그의 구세주이던 1백 루블 지폐를 한 아름 가득히 안아 보게 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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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것이 오직 이 늙은 농부의 곤란 많은 생애가 얻을 수 있었던 최후의 선물인줄 알아서는 안 된다. 이제야 그의 자손 앞에 전개되기 시작한 저 광휘 있는 새 역사가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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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주대전과 함께 이 광대한 국토를 휩쓸기 시작한 저 비할 데 없이 심각한 파괴와 황폐의 폭풍은 아직도 그 여세를 거두지 않고 있었다. 전쟁의 뒤를 이은 혁명, 그 뒤를 이은 극도로 험악한 전시 공산주의시대, 그리고 전국적인 대흉작이 밀어닥친 (襲來[습래]) 것이었다. 차르의 전제 하에 그렇지 않아도 극도로 피폐하였던 민중생활을 8~9년간이나 계속된 이 극도의 암흑기가 얼마나 가차 없이 짓밟았을까 상상만 하여도 가슴 아픈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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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의 민중은 이 역사의 시련을 XXXXXX 겪은 것이었다. 중세기적 야만에의 후퇴도 문명 일반의 암흑화도 이 나라를 덮지는 못하였다. 그리하여 보다 높은 발전 단계로 그들은 그들의 생활체제를 끌어올리는 데 훌륭하게 성공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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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모스크바까지의 이 긴 여행을 통하여 눈에 아프게 보이는 모든 민중의 고통과 궁핍을 볼 때마다 이 XXXXXX 곤란의 짐을 묵묵히 둥에 지고 역사의 고개를 걸어 넘어가는 러시아 민중의 XXXXXX 자태와 그들의 XXXXXX 지도자들의 XXXXXX 노력 앞에 머리 숙이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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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러시아 인민의 영웅적 노력은 그들의 극도의 금욕생활에도 나타나고 있었다. 지극히 엄중한 금주 ․ 금연이 일반적으로 실행된 것도 그 한 가지 예일 것이다. 더구나 민중을 지도하는 당 멤버에게는 금주는 범할 수 없는 금제였다. 만일 술 취한 것이 발견되면 그 자리에서 총살을 당하여도 항의할 권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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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실은 기차는 대기근의 광포한 파괴와 살육의 물결이 휩쓸고 지나간 자취의 황폐를 승객의 눈앞에 한없이 전개시키면서 모스크바에로의 길을 달음박질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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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을 기차 속에서 맞은 우리 일행이 러시아의 심장 모스크바에 다다른 것은 나의 기억이 틀림없다면 대정 11년(1921년) 1월 7일 아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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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기차가 정거장에 들어서기 전에 벌써 성대한 환영을 예기하여 환영에 대한 답사연설을 할 사람까지도 선출하여 놓았다. 선거의 결과는 결국 내가 이 중임을 맡게 되었었다. 기차가 멀리 현저한 그 반동양적 양식에 의하여 벌써 우리의 주의와 호기심을 끌기 시작한 모스크바의 시가를 바라보며 정거장 가까이 갔을 때부터 모여든 수만의 군중이 환호하는 만세소리가 우렁차게 들려와 벌써 포도주처럼 우리의 피를 끓게 하여 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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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로 상상도 못할 굉장한 환영이었다. 군악대를 앞세운 일대의 군대 각 조직과 기관의 수많은 대표들과 노동자 ․ 시민 ․ 학생 등 모든 계층의 민중이 넓은 광장과 플랫폼을 그야말로 입추의 여지없이 뒤덮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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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극동의 피부 빛 다른 동지들이 온다는 것이 이 군중 대부분의 호기심을 자극한 모양이었다. 악수의 비가 한창 우리를 습격하고 나서 환영 나온 각 기관과 조직 대표들의 환영연설이 시작되었다. 소비에트 각 기관의 대표가 10여명, 모스크바에 체재하고 있는 코민테른 각국 지부의 대표자가 역시 그만한 수효로 그들이 번갈아가면서 한 사람 한 사람 임시로 꾸며 놓은 연단 위에 올라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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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열렬한 환영사가 끝난 다음 나는 이 거의 영광에 가까운 환영에 대한 우리들의 마음속으로의 감사와 기쁨을 전하기 위하여 연단에 올랐다. 정거장이 무너질 듯한 박수와 환호가 좀 진정된 틈을 타서 나는 영어로 우리들의 답사를 말하기 시작하였다. 말을 다 마치고 났을 때에는 영하 30도의 추위였으나 나는 전신에 상쾌한 땀이 촉촉이 젖은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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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중이 헤어지고 각 기관과 조직의 대표들도 차차 돌아가기 시작하였다. 우리들도 마중 나온 자동차에 몸을 싣고 우리 숙사로 미리 정해진 곳을 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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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정시대의 희랍교(그리스정교)신학교 제3기숙사가 우리의 합숙소였다. 이 숙사 외에 호텔 룩스에 사무소를 둔 우리는 시가 구경도 할 겨를 없이 즉시 대회준비를 계속하였다. 우선 신임장 조사위원회가 구성되었다. 코민테른 위원 한 사람과 각 민족대표 한 사람씩으로 구성된 이 위원회의 기능은 모여온 대표자들의 자격을 심사하는 일이었다. 아직 완성되지 못하였던 각종 보고서는 그 완성을 서두르지 않으면 안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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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투슈카 모스크바’ 곧 ‘어머니 모스크바’ 의 이름을 일찍이 러시아 인민이 바친 이 옛 도시는 전 구라파에도 비할 데 없는 그 대규모의 하얀 벽과 울긋푸릇한 지붕이 즐비한 사이에 우뚝우뚝 솟아 있는 가지가지 양식의 교회, 사원건축의 이상스럽게도 농후한 반동양적 특색에 의하여 처음 보는 순간부터 나에게 최대의 친밀과 매력을 느끼게 하는 것이었다. 확실히 장엄하고 아름다운 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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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를 모르는 자는 미(美)를 모르는 자’라고 한 러시아 속담도 결코 공허한 과장은 아니었다. 나는 이따금 토론과 집회에 시달린 머리를 쉬려고 거리를 산보할 적마다 하얀 벽의 웅장한 건축 그늘에 서서 높이 우러러 뵈는 황금색의 원정(圓頂:둥근 꼭대기)이나 또는 십자가에 찬연히 희롱하는 아침 태양과 저녁 황혼에 몇 번이나 감탄사를 내뱉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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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를 앞둔 며칠 전 어느 날 나는 이 도시 제일의 대극장에서 거행된 어떤 식전(式典)에 참가하였다. 외몽고공화국 정부에서 소비에트의 적위군에게 보낸 군기를 받는 식전이었다. 내가 회장 안으로 들어갔을 때에는 벌써 3층, 4충의 갤러리(관중석)까지도 꽉 차 있었다. 거의 1만에 가까운 이 대군중을 앞에 보고 정면 중앙의 무대 위에 수십 명의 적위군 장교를 거느리고 나선 위풍당당한 장군이 말로만 듣던 트로츠키, 그 사람이란 것을 안내해 준 동무에게 들었을 적에는 벌써 식전을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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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몽공화국 내무총장에게서 군기를 받아든 트로츠키는 반쯤 뒤로 돌아서서 군기를 장교 중의 한 사람에게 전하면서 날카롭고 굳세고 우렁찬 목소리로 간단히 짧은 연설을 하였다. 그것이 외몽공화국에서 보낸 이 군기를 받는 적위군의 광영과 사명을 고조하는 훈시라는 것을 안내한 동무는 영어로 나에게 알려주었다. 이 짧은 훈화를 마치자 그는 그대로 정면의 대중을 향하여 약 3시간이나 되는 웅변을 토하는 것이었다. 그 너무도 열렬하고 고조된 어조로 보아 나는 처음에 그것이 역시 5분이나 10분의 촌철살인적인 선동연설일 것으로 생각하였던 것이 그대로 꼭 같은 힘과 열과 고조된 흥분이 조금도 식어짐 없이 30분, 1시간, 2시간 계속되어 가는 것을 눈앞에 보았을 때 나는 마치 무슨 기적이나 보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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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말을 모르는 나는 이야기의 내용은 하나도 모르면서도 그의 우렁찬 목소리, 그 열렬한 성음의 억양, 흥분된 제스처가 자아내는 일종의 고조된 분위기 속에서 아지 못하는 사이에 휩쓸려 들어가 다른 대중과 함께 열광을 나눌 수 있었다. 나는 그렇게 훌륭한 웅변은 처음 들었다. 대중들은 손뼉을 치고 소리를 지르고 발을 구르면서 그야말로 사자처럼 포효하는 이 거인 앞에 미친 듯이 흥분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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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6척이나 될 듯한 거대한 체구, 새카맣고 풍부한 머리털, 커다란 눈과 높은 코, 깊게 새겨진 입이 모두 한곳에 모여들어 만들어진 강렬하고 급격한 표정은 누구에 비할 수 없으리만치 우렁차고 날카롭고 굳센 성음의 좋은 특색과 함께 보기 드문 위대한 웅변가의 소질을 보증한 것을 나는 관찰할 수 있었다. 나에게 통역을 약속한 같이 간 동무도 연설에 취하여 연설이 다 마칠 때까지 한 마디도 번역해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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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합이 해산된 후 숙사로 돌아오는 길에야 그는 연설 내용을 말해 주었다. 지난 지 얼마 안 되는 워싱턴회의의 비판, 가까운 장래에 제네바에서 열릴 경제회의에의 전망 등이 그 연설의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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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후에 반하는 여러 가지 행동을 취할 때마다 이날의 기억을 상기하면서 이 위대한 인물을 잃은 것을 안타까워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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