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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잃어진 소리 (산창만화(山窓漫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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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3월
김상용
生活(생활)의 片想[편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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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진 소리(山窓漫話[산창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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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겐 조흔지 그른지 모르나 심심하면 일수 三角山[삼각산]에 올으는 야릇한 버릇이 있다. 갑갑한 때는 갑갑한 맛에 올으고 시원한 때는 시원한 맛에 올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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白雲臺[백운대] 정수리에 올라 압가슴을 풀어헷치고 서서 太古寺[태고사] 쪽으로 오는 바람을 마저가며 그야말로 산도 곱고, 풀도 곱고, 들도 마을도 고은 원근 경치를 바라보는 것이, 무한이 쾌한 까닭이다. 취한 듯 한참 바라보고 있으면 사람의 마음이란 왜 그런지 경을 있는대로 한아름에 덤석 앉고십은 턱없는 욕심이 날 때가 있다. 그래 혹 거미다리 같은 두 팔을 버리고 “아, 나의 아름다운 강산이어” 하야 본다. 그러나 적은 봉 하난들 그 품에 들리가 있는가? 혼자 제 적은 것을 웃어바리고 말밧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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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못됨 마음 ─ 조혼 경만 보면 ‘내 강산’‘내 경치’하는 욕심 사나운 마음은 삼각산을 나려와서도 종종 대가리를 내여민다. 삼각산 정수리같은 俗[속]을 떠난데서야 좀 ‘내 강산, 내 경치’ 한댓자 뺨 마질 근심은 없지마는, ‘李之田[이지전]’,‘金之沓[깁지답]’ 하고 片土[편토]에 상투제비가 나는 속세에 와서 함부로 ‘내것’소리를 하다가는 필경 신세에 좃치 못 할 줄도 안다. 번연이 알면서도, 버릇이란 야릇해서, 종래 놀 줄을 모르니 큰 근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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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버릇 못 놋는 이약이 하나를 하야 볼ㅅ가. 내 집앞에 근백년된 솔 數百株[수백주]가 있는데 그 웃줄웃줄 선 모양이 꽤 좃컷다. 한데, 나는 번적하면 이 솔들을 ‘내솔’, ‘내 亭子[정자]’라 한다. 달 밝은 가을밤이나, 바람 서늘한 녀름저녁 갓흔 때면 막대를 끌고 제曰[왈] 無愁翁格[무수옹격]으로 솔사이를 거닐며 “오 ─ 내 솔의 아름다움이어 ─” “내 솔에 빗최는 달빗의 고음, 내 솔을 싯는 바람의 맑음이어 ─ ”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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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뿐인가, 맘 맛는 친구라도 오면 “내 솔을 보게”하며 생판 남의 솔을 무슨 염친지 ‘내솔’이라 가라천다. 친구도 제것 아닌 것을 뻰뻰하게 ‘내것, 내것’하는 것이 우수워서 조롱삼아 “언제 삿나?” 하고 무를 때가 잇것다. 그런 조롱의 말까지 들었스니 수굿하고 잇스면 좃켓는데 시퉁그러저서 “이거 무스겟 소리 하노” 하는 듯한 빗으로 나 혼자의 개똥철학 ‘솔ㅅ덕론’(독자는 論[논]아니면 못 사는 이 세상에 添[첨] 일론한 필자의 공을 아라 주실런지)을 내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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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 솔엔 딴 주인이 ─ 있다. 누군지는 모르나 돈내고 버힐 권리 파갈 권리 다 사라진 주인이 분명이 있다. 그런 주인이 싯퍼럿케 잇스니 나는 괭이나 낫을 들고 그 솔들을 엇지할 수는 물론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 가지를 새드는 달빗 보는 것 쯤이야, 돈 안 냇기로 엇더냐? 그 닙을 싯는 바람 소리를 듯는 것쯤, 그 그늘에 안자 쉬는 것 쯤이야 엇더냐? 물론 관게치 안타고 나는 말한다. 그래 나는 기탄없시 그 가지를 새드는 달빗을 보고, 그 닙을 싯는 바람소리를 돗고, 그 가지와 닙의 덥허주는 그늘아래 앉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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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그 솔들의 덕을 누가 만히 닙는가 생각해보자, 돈내고 권리나 사두엇다가 일년후나 오년후에 파거나 버혀서 紙錢ㅅ張[장]이나 얻어먹는 소위 그 주인된다는 사람인가? 또는 아츰 저녁으로 보고 듯고 앉고 하야 때 없시 위안과 새 힘을 얻는 나인가? 이럿케 뭇는다. 그러면 친구는 의례히 “그야 자네가 더 닙지” 하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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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 그러니 말일세”하고 논점이 여기 잇다는 듯이 나는 “이 세상 속된 눈으로 보면야, 나는 저 솔과 아모 관계가 없는 사람일 것일세. 그러나 조물옹의 눈으로 보면 그 솔의 덕을 닙고, 덕을 닙는 이 만치 그 솔들을 사랑하는 내가 가장 그 솔과 관계가 깁흘 것이 아닌가. 따라, 내가 그 솔들의 주인이 될 것이 아닌가” 하야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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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철학이 장차 학계와 사회에 얻던 충동을 줄른지를 모른다. 그러나 나 혼자만은 이 學理[학리]를 기초로 간단한 致富術[치부술]을 발견하얏고 그 術[술]을 응용하야 日又日[일우일] 부의 축적에 골몰하다. 그 술이란 쉽게 말하면 “남(이 ‘남’중에는 銀行頭取[은행두취], 회사사장들이 가장 많타) 조와하는 것 버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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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조아 할 줄 모르는 것을 조아하자” 하는 것이다. 즉, 누구나 松風籮月[송풍나월]이 얻덧소 하면 “나도 조아하오”“나도 사랑하오” 하지만은 기실 돈냥에나 눈이 노랏치, 실상으로 이런 것 조아할 줄을 모르는 틈을 타서 달, 솔, 구름, 바람, 시냇물, 새소리 속에 잠긴 미와 부를 거더보자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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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나는 밥 한술, 집 한간, 이불땍이 하나만 있으면 足之足[족지족]으로 명월의 부, 청풍의 부, 화조의 부를 거더못는다. 무한이 있는 月[월]이 明[명], 風[풍]의 淸[청], 花鳥[화조]의 미라, 그득이 마음에 싸아놋코 이 ‘싸임’ 만음을 내심에 자랑할 때가 있다. 혹, 날이 땃뜻하면 해든 마루끗헤 안자, 내마음 곡간에 싸인 부를 헤여보기도 하것다. 그럴때면 의례히 ‘내집의 樂[낙]의 만음’이 내 첫손구락에 꼽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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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집의 낙을 드러 자랑하랴면, 한이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晝而繼夜[주이계야] 하는 그 낙을 일일이 들량이면 사실 한이 있을 수가 없다. 昌慶苑[창경원]압 궤도 우에 구는 전차의 낙도 있고, 牛耳洞[우이동] 통로로 드나드는 자동차의 낙도 있다. 두부장사의 ‘두부사령’곡, 파장사의 ‘파사령’ 곡, 내집, 남의 집 애놈들의 ‘으아’곡, ‘아아’곡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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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런 것들은 다 속된 악사의 속된 곡이라 자랑할 맛이 적다 하더래도 봄이면 싹트는 곡, 꼿 웃는 곡, 봉접의 나래치는 가락, 녀름이면 녹음 속 꾀꼬리 소리, 석양에 매암이 소리, 밤중만 소낙비 오는 소리, 가을이면 뜰압헤 낙엽소리, 월하에 기럭이 소리, 그리고 겨울이면 솔ㅅ새에 바람ㅅ소리, 창밧게 눈덧는 소리, 이런 온갓 仙樂[선락]을, 李杜[이두]라 시로 어이하며, 蘇張[소장]이라 말로 어이하리. 다만 친히 이 仙曲[선곡]들을 드러보신 이면 다소 그 진경을 아실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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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악사들에겐 오고가는 절계가 잇서 때가 오면 오는 줄 모르게 와서 제 맛흔 낙을 아뢰다가 때가 가면 간단 인사 한마듸 었시 슬몃이 가바리고 만다. 지금은 뜰압헤 눈이 있는 겨을, 꼿도 없다. 닙도 없다. 나뵈와 별들도 어느 등걸속에 숨엇는지 보이지를 아니하고 밤이면 기릭이 소리 끗친 하날에 찬 달만이 밝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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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은 가는 것, 철은 밧귀는 것이라 철 밧귀면 녜 갓던 악사라 아니 올배 아닌 줄을 버년이 알것만은, 그 새가 밧바, 나는 그들을 몹시 그리워 한다. 엇던 ─ 맛치 지금 갓흔 ─ 때에는 목을 노아 불러보고 십을 만치 그들이 그립게 생각된다. 그리운 중에도 지난 느진 가을에 간 귀띄람이가 그럽다. 귀뚜람이가 그럽다면 “밋친사람” 할 이도 있을 것이오, 고리삭은 修身[수신]선생쯤은 눈을 둥그럿케 뜯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리운 정이야 그들이 무에란다고 안 그리워질 리가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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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뛰람이는 우리 여러 악사 중에 기실 즑어준 낙을 아뢰여주는 악사는 아니다. 닙 덧는 장장추야를 밤새것 ‘졸졸’ 우러, 없는 한 있는 한을 다 자아내는, 말하자면 나를 울리는, 나를 괴롭히는 악사다. 나 뿐이 아니라, 고금을 물론하고 다른 이에게도 그럿케 들렷고 또한 들리기에 시로, 노래로, 그 우름 듯는 斷腸懷[단장회]를 그렷고 또한 그리는 것이 아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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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울리고 괴롭히면 울리고 괴롭힐사록, 왜 그런지는 모르나, 그가 더욱 그립게 생각된다. 그 울음이 있으면 반갑ㅅ고, 그 소리가 끈치면 섭섭하야진다. 그래, 이 악사가 울다 갈 때면 나는 갓가온 친구나 왓다 가는 것 갓흔 애수를 깨닷게 된다. 더욱 지난 가을에 그를 작별하던 내마음은 말할 수 없슬 만치 섭섭하얏던 것이니 말하던 김에 그 광경을 이약이하면 이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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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월이 잡아들자 때 되면 오는 귀뚜람이는 나 자는 방 아궁녚에 와 이 해도 귀똘거리기를 시작하얏던 것이다. 녜듯던 애조띈 ‘졸졸’ 성! 나는 녜갓치 가슴에 열말 ‘슯흡’를 앉고 그밤 그밤의 이 ‘졸졸’성을 드럿섯다. 그려는 동안에 칠월이 가고, 팔월도 느저, 뜯압헤 오동닙이 덧게 되엿다. 그동안도 우리 귀또리는 여전이 귀똘거렷스련 만은 오랜동안에는 혹 ‘우는지 안우는지’도 모르고 그대로 자바린 밤도 있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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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다가 어느 날 밤인가, 하여간 ‘우리솔 정자’에 바람이 “솨 ─ 솨” 불든 날 밤, 나는 세시쯤 되야 잠이 문듯 깨엿섯다. 솔을 흔들던 바람은 내 창을 두다리다 우이동 편으론지 가바리고, 그 뒤에 ‘죽엄’갓흔 적막이 밀려왓다. 이럴 때엔 의례히 나 자는 편 벽을 격하야 우리 귀또리의 ‘귀또롱’이 들려와야 한다. 그 소리 없시는 맛치 건저주지 안은 물귀신 모양으로 지옥갓흔 적막의 바다에서 내 혼은 헤여나지를 못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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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나는 귀를 기우리고 내 혼을 구해낼 그 소리를 긔다린다. 긔다려도 아모 소리가 없다. 1분이 가고, 2분이 지낫다. 그래도 아모 소리가 없다. 5분, 7분, 아 ─, 아즉도 사방은 고요할 뿐이다. 바람이 또 한떼 “위 ─” 지나가고 더 둣터운 적막이 몰려왓다. “이 귀또리가 어데를 갓슬가” “왜 울지를 안을ㅅ가?”하는 초조한 마음이 난다. 8분, 9분, “죽엇는가? 또는 어데론지 가바렷는가?” 당장에 등불을 켜들고 나아가 삿삿치 차자보랴는 생각이 난다. 어데로 갓스면 발자욱을 차자 간 곳까지 따라가 보고, 죽엇스면 시톄라도 차자내고 십다. 10분 ─ 그래도 아모 소리가 없다. 나는 맛츰내 내 ‘그래도 그래도’ 하던 희망의 줄이 끈허진 줄을 알고 “아 ─ 과연 가바렷다. 가지 안앗스면 죽어 바렷다!” 하얏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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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맥풀린 말을 햇슬 바로 그때이다. “가르르” 하는 한마듸ㅅ 소리가 벽을 뚤고 들려오지를 안앗겟는가? 아 ─ 그 긔다리고 긔다리던 반가운 ‘가르르’가 분명이 내 耳膜[이막]을 울렷던 것이다. 가바렷거나 죽은 줄만 알앗던 내 가수의 궈닉은 소리가 분명이 내 방 공기을 울렷던 것이다. 그때 내 마음엔 미물인 궈또리도 없고, 사람인 나도 없섯다. 다만 반가운 친구가 있고, 반가운 친구가 반가운 친구의 긔다리던 음성듯는 환희가 있엇슬 뿐이다. 연해 “가르르”“가르르” 세 마듸를 한다. 오 ─ 반갑던 그 기억! 그러나 그 ‘가르르’가 전에 듯던 ‘가르르’가 아니엇다. 전에 듯던 씩씩하고 댕글댕글하던 ‘가르르’가 아니엇다. 그 ‘가르르’는 맛치 병든 사람의 ‘음성’같은 기진맥진한 ‘가르르’이엇다. 그럿케 약한 ‘가르르’도 더할 힘이 없는지, 네번재 소리가 들려오고는 그 뒤가 없다. 다시 적막이 밀려 오고 적막한 10분이 지나가고, 그리고 다시 약한 4, 5차의 ‘가르르’가 들려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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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가니 궈뚜람이도 늙는다. 궈뚜람이도 늙으니 그 소리가 약하야 지지를 안는가. 세월은 내일도 갈것이니 늙은 귀또리를 어엿비 녁이는 나도 늙을 것이오, 세월은 백년, 천년후도 갈것이니 ‘내솔’‘내 정자’하든 그 솔들도 늙을 것이다. 솔도 늙고 사람도 늙으니 산과 바다라 아니 늙는다 뉘 장담하리? 산과 바다도 늙을 듯하니, 천지 그도 늙을 하고, 천지 그도 늙을 듯하니, 천지가 한 늙는 날, 영원한 적막만이 남아 있을 듯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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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날 밤 세번ㅅ재 우는 것을 듯고 그후는 잠이 드러바렷던 것이다. 그 잇흔날, 내 가수의 소리는 더 미약하야 젓섯다. 다음날은 좀더, 그 다음 날은 그보다 좀더 약해지다가, 닷새ㅅ밤재에는 그 실낫 갓흔 소리조차 맛츰내 끈허지고 말앗다. 그후 날마다 귀또리 소리없는 쓸쓸한 밤이 왓다. 그리자 밤나무닙도 덧고 눈날리는 겨울이 왓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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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임의 석달전 이약이다. 발서 삼각산에 덥혓던 눈도 거의 녹앗스니, 未久[미구]에 봄이 오고 봄 간뒤 녀름도 올것이다. 그리노라면 가을도 올것 이오 가을이 오면 다시 나 잇는 방 아궁 녑헤서 귀또리 소리도 들려올 것이다. 그러나 지난 겨울에 울다간 귀또리는 다시 올 수가 없으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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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梨花[이화]」 3호, 1931년 3월 4일)
【원문】잃어진 소리 (산창만화(山窓漫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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