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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生[인생]이 一場[일장]의 헛된 꿈이라” 슬픈 노래로 부르지 말라… ― 롱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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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星座[성좌]에 십자로에서 대담히도 이러한 ‘생의 철리’를 獅子吼[사자후]하고 시장거리 거리에, 장미송이를 뿌렷엇다. 나는 지금 너무나 씩씩하든 그의 철혈의 심정을 부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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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虎[호])으로 알고 獵夫[엽부]가 시위우의 살(矢[시])을 노앗을 때, 시위를 떠나 달린 살은 굳은 바위를 뚤엇엇다. 한다. 신념은 마침내 못하는 것이 없다. 수령길이라도 ‘신념의 발’은 마마 반석의 固[고]로 걸어갈 수가 잇을게다. 그 근원이 우둔에 잇건, 예지에 잇건을 구태어 물어 무엇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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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밤은 할 수 없는 가을인 밤이엇다. 밤이 맑앗엇고, 쌀쌀할 만치 밤이 서늘햇엇고 하늘에 별이 참 만핫엇고, 별들이 어찌나 내게 가까운지 몰랏엇다. 바람이 좀 산들거려, 나무닢엔 소리가 잇엇다. 이밤에 내 뜰에서도 이 철의 감상인 귀똘이가 울엇엇다. 똑 한 놈이 컴컴한 뜰 한 구석에서 유난히 잘 울어주든 것을 생각한다. 반디ㅅ불같이 내 청각에 그 소리는 밝앗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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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무슨 ‘쇼―펜하우어’의 五味子湯[오미자탕]을 음미한다거나 ‘가비라’왕자의 得覺[득각]의 오뇌를 발효시키려 한다거나 하는 분외의 자부에서가 아니라 하여튼 창틀에 몸을 의지한 채 한참이나 잠이 안들고―혹 못들고―귀똘이의 울음소리를 듣고 잇엇다. 아츰이 되어 금속성의 햇볓이 섬돌 우에 잇엇다. 자연 나는 지난 밤 한 놈의 귀똘이가 울던 뜰구석을 바라본 것이다. 화초포기에 이슬이 매쳐 잇다. 귀똘이는 아니 운다. 화초포기를 뒤진대도 귀똘이가 무얼 잇겟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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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밤 유난이도 잘 울든 귀똘이는 그저 하로의 가을밤을 그것도 이상하게 내 뜰 한구석에 와서 울다 간 것이라 나는 그저 그러케 생각해 버린다. 지난 밤엔 분명히 들린, 그러나 지금엔 분명히 아니 들리는 귀또리소리! 현실이란 무엇? 또 꿈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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淑[숙]은 5일 전 일말의 연기로 스러젓다. 남같이 배호고 남같이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고 살아보랴 끔즉이도 애를 쓰든 그는 지금에 조고만한 상자에 담긴 한줌의 재로 변해 納骨室[납골실] 아마 어느 음암한 層架[층가]두에 언처 잇으리라. 7년 전 그가 날새게도 필기장우에 펜을 달리든 일을 나는 기억한다 그의 두 눈은 . 희망에 빛낫엇다. 또 그는 일주일 전까지도 그의 스승에게 그의 친구에게 그의 격거온 고생 설음을 말하고 다시 이러나면 쓰라린 채로 생의 길을 걸어보겟노라 하지 안헛는가? 그러나 지금 그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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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은 이 시초가 아련한 만치 그 깬 뒤의 공허도 그저 아련하다. 북소리가 끗치면, 그 뒤의 적막은 더 크듯, 현실의 꿈은 깬 뒤 그 공허가 더 크도다. 이 아츰, 또 다시 한 수의 〈루바이얕〉을 읽어 보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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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뜨자 천 송이 꽃이 피는 곳, 저 보오 천 송이 꽃이 덜엇오. 첫녀름 薔薇[장미]의 철이 지나면, 꽃은 덧나니 英雄[영웅]도 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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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머스·하―디’는 명상속에 인생의 암흑을 응시한 시인이다. 그는 인생의 숙명을 그렷다. 운명의 심술구진 作戱[작희]를 人意[인의]가 어찌 못 할 때 우리는 그 비극에 오열할 뿐이다. ‘하―디’는 이런 것을 그렷다. 하―디의 작품에서 우리는 여러 불상한 인물을 찾는다. 더욱 숙명에 철궤에서 우는 수다의 여성, 그들의 생애에 대해 우리는 허공을 향하고 주먹을 두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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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스’를 보라, 또 ‘앨리스’는 어떠한가? 그들은 明敏[명민]하엿다. 덕이 잇엇다. 유순하고, 달같이 둥글기까지 안햇는가? 그들은 기어코 복됏어야 할 여성들이다. 그들은 세상에 대해 선의 밖에 가저본 것이 없엇다. 침묵과 인고속에 약한 몸에 나려지는 쇄챗죽을 울엇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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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들의 생은 너무 고달팟다. 검은 旗[기]발이 감옥 첨루우에 날린 때, 살인녀의 죄목을 입고 ‘테스’는 絞首臺上[교수대상]의 이슬이 되엇다. 달려든 애욕의 풍랑을 피하랴 피하랴 백방으로 ‘치’를 돌려도 ‘앨리스’는 기어코 最愛[최애]의 그사람을 일코 동생의 애통하는 영을 구치 못하엿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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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솔직하게 우리가 이해치 못할 망막한 피안을 인식할 것이 아닐까. 우리 의도의 연당은 몇 평이나 되는지 그 의도를 조소하는 ‘大意圖[대의도]’의 영해는 너머나 아득하게 천외에 浩浩[호호]하다. 대의도는 그저 운명의 줄을 작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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淑[숙]의 생도 그러하엿을 뿐이라 한다. 나는 그의 생이 그저 숙명적이엇든 것인 밖에 달리 이해할 도리가 없다. 숙의 생을 적는 것이 차라리 부지러운 짓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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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은 산골에서 낫엇다. 여름이면 강냉이와 감자와 비탈 채마밭에 자라고 밤에 부엉이가 우는 그러한 산골이엇다. 아즉 어렷을 때 숙은 남다른 비극 속에 먼저 아버지를 뒤니어 어머니를 일헛엇다 한다. 薔花[장화]에 紅蓮[홍련]이가 잇듯 숙에겐 여동생 하나가 남엇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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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애에 내쳐진 두 고아를 거두어 줄 뿐으론 숙의 임종을 지켜준 당시도 이미 60을 넘은 홀할머니가 게섯을 뿐이다. 이 홀할머니 손에 숙과 숙의 동생은 귀엽게, 그러나 설업게 길렷엇다. 어찌어찌 숙은 보통학교를 맛치고 耶蘇敎[야소교]에서 심령의 안위를 얻엇엇다. 숙은 拔群[발군]의 총명이 잇엇다. 이 총명 덕에 H여고를 맛칠 수 잇엇고, 이에 E전문학교로 배움의 길을 찾게 되엇다. 부족한 채 내가 6년간 그의 스승이 되엇든 것도 이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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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색햇든 숙의 집―아니 숙의 몸은 모든 學資[학자]를 공화간 남에게 빌 밖에 없엇다. 이런 경우에 맛보는 심령의 괴로움을 경험한 이는 알 것이다. 숙은 한껏 괴로웟다. 그러나 맵고 명랑한 기질의 숙은 그저 웃고 학업을 맛젓엇다. 이제는 숙의 전도에 빛나는 희망이 잇엇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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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을 나와 숙은 몇 해의 교원생활, 모교의 사무원, 마지막으로 某[모]여성 기관의 간사직을 지냇엇다. 그는 절약에 절약을 더하엿다. 전차탈 길을 것고 끼니를 걸른 적까지 잇엇다 하다. Y사무실에 다닐 때 점심때면 무엇인지 제혼자 도라앉어 먹는 체 해서 그 끼니를 넘기드란 말을 나는 숙의 어느 선배에게서 들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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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은 얼마 못되는 수입에서 기여코 얼마간에 저축을 하엿다. 이야말로 피와 땀의 모딤이든 것이다. 숙은 마침내 혼인을 하고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나아 일반부녀의 길을 밟앗다. 잠시나마 그는 여성으로 갖는 어떤 만족감을 가젓엇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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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숙에겐 복이 없엇다. 차차로 숙에겐 경제적 궁핍이 오고 慘感[참감]이 오고 건강의 쇠퇴가 왓엇다. 한때 개랴는 희망의 하늘엔 다시 검은 구름이 덮이든 것이다. 초조할스록 숙의 병은 더 하엿다. 살아보겟다는 의욕은 강하나 초ㅅ불은 바람앞에 흔들리고 잇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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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참감뒤에는 아이가 마자 병들고 숙이 戶庭出入[호정출입]을 겨우 할 때 부군마저 자리에 누어 인사를 차리지 못하엿다. 돌봐주든 친척도 그의 옆을 떠나고 심부름할 사람도 이 집을 시려하엿다. 숙은 군소리만 하는 남편을 옆방에 그리고 숨지는 己出[기출]을 품에 안고 이틀밤을 세웟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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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후 남편은 치료차로 향리로 가고 숙 혼자서 돌바주는 이 하나 없이 횡한 집에 남아잇엇다. 숙은 이런 사정을 아모에게도 알리랴 하지 아니하엿다. 숙은 이때 死[사]를 결심햇엇다 한다. 그의 조모가 어찌어찌 이 소식을 듣고 달려오기 전 삼일간 숙은 기동도 못하고 혼자 굶은 채 이 집을 지켯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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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후 숙은 길이 세상을 떠낫다. 긴 가을밤, 나는 가엽슨 숙의 일생을 슬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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權顯[권현]의 빛남, 勢力[세력]의 자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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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亞日報[동아일보]」, 1937년 9월 11,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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