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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부(夫婦)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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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10.
최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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夫 婦(부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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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던 당년 여름이었읍니다. 다방골 어떤 학생 하숙에서 두어 달이나 지낸 두 내외는 동소문안 어떤 집 사랑채를 세로 얻어 가지고 이사를 하였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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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내외간 살림인데 가난까지 겸하여 놓으니 세간이라고는 잔약한 서방님의 어깨에 올려 놓아도 그리 겨웁지는 않을 만하였읍니다. 그런 세간이건마는 되지도 못한 체면을 보노라고 짐꾼을 불러서 지어 가지고 갔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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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집 사랑채는 말이 사랑채지 실상은 왼채집이나 다름없었읍니다. 방은 하나이나 간 반이 되고 벽장까지 있으니 그만하면 신혼지초에 신정이 미흡한 젊은 내외의 용슬(容膝)은 넉넉하였읍니다. 부엌은 말로 반 칸이지 사실로는 반의 반 칸이나 되겠으나 다행히 아씨의 몸집이 뚱뚱보가 아니니까 그것도 부족될 것은 없고 툇마루까지 넓적해서 저녁 후에 내외가 나앉아서 낙산 위에 떠오르는 달을 바라보면서 소근소근 이야기하기에도 십상 알맞았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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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걱정이 있었읍니다. 걱정이란 원래 상서롭지 못한 것이라 하나만 돼도 뭐한데 두 가지나 되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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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째——방 하나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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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둘째——뒷간 가까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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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가지는 아닌게 아니라 걱정이었읍니다. 첫째 걱정은 서방님보다도 아씨가 먼저 하게 되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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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손님이나 오시면 나는 어떻게 하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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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고 보니 아씨의 걱정은 아씨로서는 큰 걱정이었읍니다. 남녀유별의 사상이 머리로부터 발끝까지 들어찬 아씨로서는 반드시 제의(提議)치 아니치 못 할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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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를 가든지 사람이란 제 앞부터 먼저 생각하는 것인가 봅니다. 만일 반대로 서방님을 찾는 손님보다 아씨를 찾는 손님이 많았다면 아씨의 제의를 서방님이 먼저 하였을는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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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걱정 있나! 손님이 오거던 당신은 저리로 들어가지!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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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님은 이렇게 대답하고 웃으면서 벽장을 가리키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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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그머니 그리로 어떻게 들어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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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씨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어이가 없는지 다시 흥 하고 웃어 버렸읍니다. 그러나 그 문제는 당면한 큰 문제는 아니었읍니다. 아직 손님이 들이밀리는 것도 아니니깐 그렇게 걱정하다가 흐지부지해 버렸으나 변소가 가까운 것은 딱 막다다른 큰 문제이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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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소의 위치는 바로 툇마루 귀퉁이로 돌아가면 방 웃목 벽에 붙었읍니다. 거기밖에는 변소를 지을 수 없이 된 것은 워낙 마당이 고양이의 이마빡만도 못하니까 변소는커녕 십 전짜리 나뭇단도 거둬 들이기 어려웠읍니다. 그렇게 설비가 불충분한 변소가 바로 곁에 있으니까 비가 오고 침침칠야 같은 때에는 해롭지 않으나 냄새가 어떻게 나는지 장장 여름날에 견딜 수가 없었읍니다. 냄새만 날 뿐이 아니라 벽 하나 사이를 두니까 뒤 보는 소리는 한 방안에서 들리는 것 같았읍니다. 그것도 내외간만 있는 때면 무슨 허물이있겠읍니까마는 손님이나 있는 때면 피차에 괴로왔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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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 생각 저리 생각한 끝에 ‘아이젤’ 을 사다가 뿌리기로 내외가 결의하였읍니다. 그렇게 ‘아이젤’ 을 뿌리니까 강렬한 약 냄새에 똥 냄새는 새어버렸으나 소리가 들리는 것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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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울면서 겨자 먹기로 소리나는 것은 참을 수밖에 없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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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도 처음에는 고통이더니 그럭저럭 지내고 보니 며칠 뒤부터는 괜찮았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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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서방님은 동대문 밖 어떤 약국에 매어 있어서 아침 아홉시 전에 집을 나서 약국에 갔다가는 오후 다섯시나 여섯시면 돌아왔읍니다. 어떤 날은 좀 늦기는 하였으나 방종치는 않았읍니다. 지금은 한 달이면 집에서 지은 저녁 밥을 먹는 적이 보름이 되나 마나 하고 밤 열 두시 넘어서 돌아가기가 예상사이지만 그때에는 늦어도 일곱시나 여덟시 전에는 꼭 돌아가서 아씨의 상긋거리는 얼굴을 보고야만 견디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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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돌아가서 된장찌개에 좁쌀 섞은 밥일망정 두 내외는 마주 앉아서 진수성찬같이 맛나게 먹고는 성균관 앞 잔솔밭에 나가서 산보도 하고 마당 담 밑에 심은 꽃에 물도 주었읍니다. 꽃이라야 별 꽃이 아니요, 분꽃과 봉사꽃과 나팔꽃인데 그것은 아씨가 이웃집에 가서 얻어다 심은 것이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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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내외는 이렇게 아무 걱정도 없이 한 보름 동안은 편히 지내었읍니다. 그러다가 또 한 가지 걱정이 생기게 되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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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쥐가 들레게 된 것이었읍니다. 이사한 뒤로 쥐라고는 그림자도 없었는데 한 보름 뒤부터 천정 속에서 우루루 우루루하고 달리는 소리가 들렸읍니다. 방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이놈들이 마라톤 경주를 연습하는지는 모르나 이리 달리고 저리 달리고 하는 것은 금시에 지붕이 우수수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읍니다. 그러다가도 어떤 때는 싸우는지 서로 찍짹하면서 바로 화용도 연극이나 연습하는 듯한 기분을 주었읍니다. 또 어떤 때에는 반자지를 싸극싸극 긁어서 듣기에도 퍽 애처로왔읍니다. 아씨의 말을 들으면 낮에도 방안에서 인기척만 없으면 그 모양으로 저희끼리 찢고 까불고 줄달음을 치었읍니다. 아마 그놈들은 천정 속이 컴컴하니까 밤중인 줄만 아는 것입니다. 서방님은 째듯이 밟은 세상에 못 나다니는 놈들의 신세를 가긍스럽게 생각하였읍니다. 그러라 가긍한 신세들이라고 용서할 수는 없었읍니다. 쥐로 말미암아 받게 되는 그네의 귀찮은 마음은 미적지근히 일어나는 동정의 마음을 삼키고도 남음이 있었읍니다. 여느 때에도 귀찮지만 제일 잠잘 때에 성이 가셔서 견딜 수가 없었읍니다. 어떻게 요란스러운지 잠을 들 수가 없고 또 가까스로 들었던 잠도 잠결에 들리는 무슨 소리에 놀라 깨면 그것은 쥐들의 들레는 소리였읍니다. 낮에도 쥐소리가 나면 무섭다고 응석 비슷이 짜증을 들먹들먹 내는 아씨는 밤이면 서방님을 꼼짝 못하게 하였읍니다. 쥐소리까지 귀찮은데 이렇게 불법 감금까지 당하게 되니까 쥐에게 대한 서방님의 증오는 십분은 못 되어도 칠분은 넉넉히 되었읍니다. 그리고 아씨가 잠자다가도 쥐소리에 깜짝 놀라서 두군거리는 가슴을 만지는 것을 보면 서방님 가슴은 뜨끔하였읍니다. 몸 비지 않은 아내가 그렇게 놀라는 것은 남편으로서 견딜 수 없었읍니다. 동태(動胎)나 되면 그야말로 속으로 곯게 되는 판이다 하고 그는 혼자 씩 웃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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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아내와 같이 서해(鼠害) 방지책을 강구하였읍니다. 어떻게 해야 신출귀몰한 계책이 될까 하고 운주(運籌)를 마지않았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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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반자지 속에서 쥐의 연극이 벌어지면 소리도 질러 보고 반자지를 둥둥 울려도 보았으나 그것도 울릴 그때뿐이지 조금만 있으면 제 도로무익이 되고 말았읍니다. 쉴새 없이 소리를 지르고 쉴새 없이 반자지를 울려야 하겠으니 누가 할 일 제치어 놓고 밤잠도 못 자고 그것만 전문으로 합니까. 그러니까 그것은 소용 없는 수고라고 내외간은 단념하였읍니다. 그러지 않으면 쥐덫을 놓는 것이 좋기는 한데 여느 데와 달라서 천정 속이니까 쥐덫을 놓으려면 반자지를 칼로 도려야 하겠으니 남이 애써 발라 놓은 반자지를 함부로 도린다는 것은 너무도 심약한 서방님으로서는 미안한 일이라 그도 저도 말고 가장 안전하고도 손쉬운 계책으로써 서군(鼠軍)을 퇴치코자 하였읍니다. 두서너 시간의 연구는 그럴 듯한 효과를 내었읍니다. 무엇보담도 자장(子將)을 모셔 오기로 하였읍니다. 이것은 서방님의 제의였읍니다. 다시 말하면 쥐에게는 장수라고 할 만한 고양이를 모셔 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서방님의 제의에 아씨는 이의를 제출하였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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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난 싫여요! 음식 그릇에 주둥이를 박으면 어떻게 해요,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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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씨는 고양이와는 금대 업원이나 진 듯이 발발 뛰었읍니다. 그러나 서방님은 아주 서방님인 체하는 어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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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얼 짐승도 주리면 못된 짓을 하지만 잘만 먹이면, 음식에 덤비지 않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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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말하였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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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이는 늘 저래! 잘 먹여 보시구려! 배가 부르면 쥐도 안 잡는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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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씨의 말은 꼭 바른 말이었읍니다. 그러나 남녀 동등은 입으로 부르짖으면서도 머리 끝까지 들이찬 우월감(優越感)이 급질처럼 간간이 발작하는 서방님으로서는 좀처림 아씨에게 지〔負〕려고 하지 않았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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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잘 먹인다니까 용미봉탕이나 먹이는 줄 알우? 쥐 잡아 먹인다는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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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님의 어조는 점잖아졌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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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 쥐는 제(고양이)가 잡아먹는 것이지 누가 잡아 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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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하여 이론 투쟁은 벌어졌읍니다. 그러나 아씨의 정당한 이론을 서방님의 괴변으로써는 도저히 이길 수 없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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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잡아먹는 것이 아닌가? 하여튼 고기(쥐고기라도)는 먹는 것이니 그렇게 먹으면야 음식 그릇에 주둥이를 박을 리가 있나? 한 마리 얻어다 둡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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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서방님도 빌붙을 수밖에 없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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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여요! 음식 그릇에 덤벙거리지 않아도 고앙이 털을 먹으면 황달병이 든대요. 그런 걸 어떻게 사람의 집에 붙여 둔단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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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씨는 여전히 버티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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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따 별소리가 다 많으이! 나는 어려서 고양이를 이불 속에 넣고만 잤어도 황달병은 고사하고 흑달병도 들지 않았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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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님의 말이었읍니다. 그 소리를 들은 아씨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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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그 망칙두 해라! 누가 고양이하고 잠을 잔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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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면서 서방님을 할끔 가로보았읍니다. 서방님의 눈에는 그것도 귀엽게 보였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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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그러지 말고 우리 당분간만 얻어다 둡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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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려나 생각대로 하시구료! 누가 말립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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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씨의 승낙은 참말인가? 이때 아씨와 서방님 사이에 벽(壁)도 좋고 휘장도 좋으니 아무것이나 가리어 있어서 아씨의 시무룩해지는 표정과 조금 빼죽하는 입술이며 원망스레 던지는 눈살을 서방님이 보지 못하고 그 소리만 들었다면 아씨의 승낙은 참말이라고 믿었을는지도 모를 것입니다. 아니 소리만 들어도 그 기운 없이 거의 절망에 가까운 여운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면 기연가 미연가 해서 마음이 울적할 터인데 하물며 그 모든 표정까지 보았음에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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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님은 그만 주춤하였읍니다. 아씨의 일빈일소(一嚬一笑)는 그처럼 서방님의 마음을 지배하였읍니다. 사실 말이지 아씨의 원망적 승낙은 끈적거리는 거미줄같이 서방님의 마음을 휘휘칭칭 얽었읍니다. 그는 이러기도 어렵고 저러기도 어려웠읍니다. 눈을 딱 감고 제 주장대로 나가자니 어리고 귀여운 아내의 이상한 힘은 그것을 허락지 않았고 아내의 주장대로 좇아가자니 쥐가 귀찮다는 것보다도 그 머릿속 어느 구석에 뿌리박혀서 무의식적으로 발작하는 대장부의 기개가 허락지 않았읍니다. 서방님의 가슴은 갑갑하였읍니다. 갑갑한 가슴에는 일종의 사랑의 질투 비슷한 불쾌한 감정이 떠올랐읍니다. 혼자 그 가슴을 만지기에는 너무도 고적하였읍니다. 그는 무의식중에서 일종의 위안을 구치 아니치 못하였읍니다. 아씨를 건드리는 것도 그의 갑갑한 가슴을 푸는 무엇이 되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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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그렇게 좋잖아 할 거야 무엇 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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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님은 좀 비웃는 어조로 말하였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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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좋잖아 해요! 글쎄 맘대로 하시라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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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씨의 심기는 그저 피지 않았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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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것 봐! 저렇게 말하니깐 두루 듣는 사람 귀에 거슬리지! 그래 당신이 좋아서 하는 말이오? 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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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누가 뭐래요? 고양이는 지금이라두 가서 얻어 오시구려? 누가 하지 말랬나베! 생각대로 하시구려, 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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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고래 지르는 소리도 아니요 어린애의 코고는 소리처럼 고르륵거리는 아씨의 소리는 날카로운 송곳 끝처럼 서방님의 신경을 찔렀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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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거 왜 저 모양이야! 응! 글쎄 좋두룩 말해도 좋을 것을 상을 찡기고 그 꼴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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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님의 소리는 떨렸읍니다. 그는 참말 분이 났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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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호! 괜히 성을 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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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 아니요 응석도 아닌 아씨의 태도에 서방님은 더욱 분개하였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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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엣참 기맥힐 노릇 다 보겠네! 그렇게 내 말이라면 듣기가 싫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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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애매한 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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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씨는 코를 훌쩍 들이마시면서 마루로 나갔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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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구름이 뭉게뭉게 오르는 푸른 하늘 한 귀퉁이로부터 소리 없이 흘러 내리는 황혼빛은 이 집에도 찾아들었읍니다. 건너펀 집 뜰에 우거진 포플라 나뭇잎 그늘에서는 어제와 같이 참새 소리가 요란히 흘러내렸읍니다. 햇발을 받지 않은 서늘한 바람이 앞담을 넘어서 아씨의 붉은 뺨을 스치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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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에 젖은 소리를 남기고 밖으로 나가는 아씨의 뒷모양을 본 서방님의 가슴은 애틋한 감정에 자지러질 듯하였읍니다. 또 혼자 앉아 있으니까 싱겁기도 짝이 없으며 재롱이 참싸움 된 것을 생각하니 우습기도 하였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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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긴 왜 울어! 응 혼자 울기가 쓸쓸하면 내가 부축을 하지! 어디 같이 울어 봅시다. 흥 어이구 설어라! 응흑! 가만 있자 눈물이 안 나오니 이를 어쩌누! 옳지 이렇게 눈에다 침칠을 하고……. 아이고! 설어라!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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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히…… 흐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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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씨도 따라 웃었습니다.
 
 
67
검은 구름이 스러진 두 남녀의 가슴속을 비추어 주는 달빛은 한껏 맑았읍니다. 이날 밤의 두 내외는 첫날밤같이 정다웁고도 수저워졌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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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놈의 쥐가 또 설레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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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밥을 맛나게 먹고 나서 신문을 들었던 서방님은 천정을 쳐다보았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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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놈을 어떻게 잡아 없애누!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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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씨도 전깃불에 윤나는 눈을 천정으로 돌렸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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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어서 퇴치를 해야만 말이지 그대로 두었다가는 내외간 강화 조약은 또 깨지기도 쉬우니……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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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응 또 그런 소리!”
 
74
천정에 주었던 아씨의 시선은 서방님의 시선과 부딪쳐서 구들 위에 떨어졌읍니다. 그 응석 절반의 부드러운 시선이 몸을 스칠 때 서방님은 이양의 유쾌를 느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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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 이──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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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또 쥐가 들레는지라 서방님은 소리를 치면서 손뼉을 쳤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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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레는 쥐소리는 뚝 그치고 손뼉의 여운에 그리 높지 못한 천정은 즈르릉 소리를 내면서 떨었읍니다.
 
78
“고양이〔描〕를 얻어 오면 반자지 속에 있는 쥐를 어떻게 잡나?”
 
79
“고양이 소리만 들어두 도망칠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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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님은 보기나 한 듯이 말하였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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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고양이 소리 내 볼까.”
 
82
하면서 아씨는 부끄러운 듯이 몸짓을 하더니─
 
83
“앙웅! 앙웅! 호호.”
 
84
하고 질렀읍니다.
 
85
“그게 어디 고양이 소리오? 그건 고양이 사촌의 소리어! 양웅 야앙으웅! 하하하 이게 정말루 고양이 소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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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그건 고양이 팔촌의 소리어! 이렇게 해야지!”
 
87
하고 아씨는 모지와 식지로 코를 꼭 쥐더니,
 
88
“양옹!”
 
89
하고 소리를 질렀읍니다. 날카롭게 나오는 좀 코먹은 그 소리는 고양이귀에는 어떨는지 사람의 귀로서는 분간하기 어려울 만치 천연하였읍니다.
 
90
“어디? 양옹!”
 
91
서방님도 코를 쥐고 소리를 질렀으나 그건 둔탁해서 항아리를 지고 울리는 애녀석의 콧소리 같았읍니다.
 
92
“해해 양옹! 이렇게 해요!”
 
93
아씨는 의기양양하였읍니다. 그러나 문제의 요점은 쥐가 그 소리를 고양이 소리로 듣겠느냐 말겠느냐 하는 것이었읍니다.
 
94
그럭저럭 밤은 깊었읍니다. 그 사이에는 사람의 소리가 나니까 그랬는지 쥐소리가 없었읍니다. 그러나 내외가 자리에 들어서 조용하게 되니까 쥐는 또 들렜읍니다.
 
95
“양옹!”
 
96
아씨는 남편을 가만히 있으라고 손짓을 하면서 고양이 소리를 쳤읍니다. 그러나 쥐는 여전히 들렜읍니다.
 
97
“양옹! 양옹양옹!”
 
98
하고 아씨는 깨득깨득 웃었읍니다. 쥐소리는 잠깐 그치었다가 또 나기 시작하였읍니다.
 
99
“양…….”
 
100
아씨가 또 소리를 내려니까 서방님은,
 
101
“여보 그만두오. 다 글렀세다!”
 
102
하고 시골 사투리를 흉내내서 빈정거렸읍니다.
 
103
“말씀 마서요! 쥐가 사람의 말을 곧잘 안대요!”
 
104
“휴 알구 말구 여부 있나! 속잖는데야 어떻게 하오! 허.”
 
105
하고 서방님은 벌떡 일어나더니 반자지를 주먹으로 꽝 울리면서,
 
106
“이게 제일이야!”
 
107
하고 하하 웃었읍니다.
 
 
108
한바탕 몹시 스친 소낙비는 찌는 듯한 더위를 몰아갔읍니다. 이렁이렁한 화가마 속 같은 천지는 말쑥한 새옷을 입은 듯이 보였읍니다. 맑은 볕을 받은 건너편 집 뜰 안에 우거진 포플라 잎은 맑은 하늘 아래 스쳐가는 서늘한 바람에 아씨의 눈동자같이 윤기 있게 파득거렸읍니다.
 
109
비가 개이니 서방님의 우산 걱정을 하던 아씨는 산삭이 가까와서 똥똥한 배를 가지고 마루에 나와서 외지를 담고 있었읍니다. 그는 호주머니칼로써 외통을 세로 재미나게 싹싹 오리고 거기에다 갖은 양념을 쏟아 넣다가 귓결에 들리는 무슨 소리에 머리를 들어 보니 앞 담 위에 고양이가 올라앉아서 겁이 잔뜩 난 눈으로 아씨를 바라보고 있었읍니다. 굴뚝에서 빠져나온 듯이 윤기 없는 검은 털이며 바짝 말라서 비린 냄새가 날 듯한 꼬락서니며 노란 눈자위에 지남침처럼 세로 가늘게 놓인 눈동자를 볼 때 아씨는 본능적으로 칼잡은 주먹을 어깨 너머로 둘러메면서,
 
110
“조놈의 고양이!”
 
111
하고 부르짖지 아니치 못하였읍니다. 그 바람에 비틀비틀 쓰러질 듯이 보이는 고양이는 날쌔게 담 너머로 달아났읍니다. 고양이가 달아나자 아씨는 고양이 쫓은 것을 후회하였읍니다. 어제 저녁 기억이 그의 머리를 쳤던 것입니다. 무의식중에서 의식적으로 발작하는 자기의 힘을 보이는 동시에 서방님의 웃는 얼굴을 보고 싶은 욕망에 그는 그저 있지 못하였읍니다. 그는 담던 외지 그릇을 버려 두고 다시 고양이를 찾아서 손짝만한 쪽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읍니다. 그러나 고양이는 보이지 않았읍니다. 그는 좀 안타까운 가슴을 안고 도로 들어와서 외지를 손질하면서 은근히 고양이 오기를 기다렸읍니다. 어느 때에는 그렇게 잘 오던 고양이가 정작 기다리니까 오지 않았읍니다. 그는 기다리다 못해서 마루 귀퉁이에 있는 북어 대가리를 집어다가 담 위의 기왓장에 놓았읍니다. 아씨로서는 그것이 고양이를 유인하는 유일무이의 계책이었읍니다. 그러나 고양이는 오지 않았읍니다.
 
112
그럭저럭하는 동안에 넘어가는 햇발은 좁은 마당에 그늘을 남기고 먼 동편에 두어 조각 피어 오른 수묵 같은 구름장에 불그레한 선을 돌렸읍니다.
 
113
이것저것 다 잊어버리고 부엌에 들어가서 저녁쌀을 떠가지고 나오던 아씨의 무심한 눈에는 고양이의 그림자가 비취었읍니다. 아씨는 들고 나오던 쌀바가지를 마루에 놓고 고양이를 정답게 불렀읍니다. 그러나 만나는 때마다 매정스럽게 굴던 아씨의 이 불시의 친절을 고양이는 의심이 잔뜩 어린 눈으로 보았읍니다. 아씨는 접시에 밥을 떠다가 마루에 놓고 그것을 가리키면서까지 불러 보았으나 고양이는 슬금슬금 꽁무니를 뽑았읍니다. 아씨는 가슴이 조였읍니다. 그는 고양이를 잡을 양으로 마루 아래 내려서자 마자 고양이는 또 도망을 쳤읍니다.
 
114
“배라먹을 놈의 고양이! 오라니깐 제가 젠 체하고…….”
 
115
아씨는 성이 잔뜩 났지만 그래도 붙잡아 볼까 해서 밖으로 나갔읍니다. 어제까지도 그 고양이만 얼씬하면 때려죽일 듯이 덤비던 아씨가 오늘은 이렇게 그 고양이를 모셔 들이지 못해서 애씁니다.
 
 
116
밖에 나가서도 잡지 못한 아씨는 이웃집 어린애에게 돈 오 전을 주고 그 고양이를 잡아다가 비끄러매 놓고 밥도 주고 장조림 고기도 주었읍니다. 그렇게 비끄러 매다가 아씨는 고양이 발톱에 손등을 할퀴였으나 용케 참았읍니다. 옛날 같으면 참을 일입니까? 그러나 남편에게 자기의 성의를 보이고 싶은 욕망(그것이 그의 의식에는 뚜렷이 나타나지 않았다 하더라도)과 또 그로 말미암아 보게 될 남편의 웃는 얼굴을 생각하는 유쾌는 그보다 더한 괴로움이라도 참을 수 있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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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밤 따라 서방님은 땅거미 들어서 대문 안에 들어섰읍니다. 일각이 삼추같이 기다리는 아씨는 성이 잔뜩 났었으나 서방님의 손에 들었던 것을 받아서 전등불이 휘황한 방바닥에 터치어 놓는 때 아씨의 눈에서는 웃음이 흐르지 않을 수 없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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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서방님은 약국일로 뚝섬 갔다가 들어오는 길에 배오개장에 들러서 아씨가 즐기는 도야지 고기 한 근, 복숭아 열 다섯 개, 사과 열 개, 소금에 절인 병치 한 마리를 사가지고 왔읍니다.
 
119
“응 저건 웬 고양이오?”
 
120
눈결에 웃목에 누운 고양이를 본 서방님은 아씨를 보면서 반가운 낯빛을 지었읍니다. 처음에는 비끄러맨 줄을 벗어나려고 야단야단하던 고양이도 하는 수 없다고 단념하였는지 접시에 담아 놓은 밥을 먹고는 웃목에 가만히 누워 있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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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집에 들어온 것을 잡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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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씨의 목소리는 여느 때보다도 생기가 있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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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여보 당신 참 용쿠려! 응 저것 손등알라 저 모양이 되었구려. 허 우리 마누라가 오늘은 더 이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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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
 
125
아씨의 웃음은 만족에 빛났읍니다.
 
126
“어── 배가 고파! 저녁 좀 주우! 당신은 저 도야지 고기를 구워 먹지…….”
 
127
“인제 누가 그걸 구워요! 내일 아침에 먹지!”
 
128
“아무려나 생각대로……. 저 고양이 고기 좀 주오…….”
 
129
두 내외는 저녁 후에 고양이를 쓰다듬어 주었읍니다. 고양이도 처음과는
 
130
딴판으로 가르릉가르릉 하면서 사람의 손길이 가도 가만히 있었읍니다.
 
131
“고양이는 기쁘면 저렇게 코를 곤대요!”
 
132
“누가 그래? 고양이가 그럽디까? 하하! 그런데 어째 이놈이 울잖어! 응 울어야 쥐가 안 나오지!”
 
133
“처음에는 몹시 울었다오!”
 
134
여름밤은 어느새 열시가 되었읍니다. 내외가 자리에 들어서 한참 조용하니까 천정 속의 화용도극은 또 벌어졌읍니다. 웃목에 누웠던 고양이는 몸을 송구리면서 귀를 쫑긋거렸읍니다. 버스럭거리는 소리와 찍짹하는 소리가 몹시 나니까 고양이는 일어나서 걸음을 내이다가 비끄러맨 줄이 걸치니까 그는 몸짓을 하면서 “양웅” 하였읍니다. 쥐소리는 잠깐 그치었읍니다.
 
135
“여보! 인제는 저것 끌러 주세요!”
 
136
서방님은 아씨의 말대로 고양이가 나갈까 보아서 반쯤 열어 놓았던 미닫이를 닫고 비끄러맨 줄을 끌러 주었읍니다.
 
137
쥐가 또 달음박질을 쳤읍니다. 고양이는 또 몸을 송구리고 천정을 쳐다 보았읍니다.
 
 
138
아주 평범한 태도로 반자지를 쳐다보던 고양이는 미닫이 앞으로 가더니 내어보내 달라는 듯이 사람을 보고 미닫이를 보면서 “양웅” 하고 소리를 질렀읍니다. 대한(大旱)에 운예(雲霓)같이 바라던 고양이의 소리가 떨어지는 때 부부의 마음은 신기롭고도 기뻤읍니다.
 
139
“조놈의 고양이 나갈라구!”
 
140
아씨는 속삭였읍니다.
 
141
“울어라! 또 울어!”
 
142
서방님은 고양이를 보면서 머리질을 하였으나 고양이는 저를 해롭게나 굴지 않나 하는 눈으로 몸을 송구리고 앉아서 사람의 눈치만 봅니다. 한참이나 그러다가 그는 발톱으로 창호지를 긁으면서 또 울었읍니다.
 
143
쥐는 그저 들렜읍니다.
 
144
서방님은 기다리다 못해 고양이를 붙잡아다가 배지를 꼬집으면서,
 
145
“이놈 울어라!”
 
146
하니까 고양이는 괴로운지 눈이 둥그래서 “양옹” 하고 몹시 소리를 치면서 서방님의 손을 할퀴고 물었읍니다.
 
147
“이크! 요놈 봐라!”
 
148
서방님은 얼결에 고양이를 방바닥에 둘러메뜨렸읍니다.
 
149
“양웅!”
 
150
방바닥에 여윈 몸을 몹시 부딪힌 고양이는 독이 잔뜩 오른 소리를 치면서 날쌔게 몸을 뒤치더니 머리로 미닫이 창호지를 냅다 박아서 뚫고 번개처럼 도망하였읍니다.
 
151
“엑 망할 놈의 고양이.”
 
152
서방님은 발갛게 펏발이 드러나는 손등을 만졌읍니다.
 
153
“그것 봐요! 나도 어떻게 아프던지…….”
 
154
당신도 겪어 보았으니 내가 아팠던 것을 알리라 하는 어조로 아씨는 뇌이면서 서방님의 손을 만졌읍니다.
 
155
그 사이에 쥐소리는 그치었읍니다.
 
156
내외간은 이야기 끝에 잠이 들렸는데 부엌에서 덜꺽하더니 뒤이어 짝근하고 무엇인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읍니다. 소스라쳐 눈을 뜬 서방님은 미닫이를 번쩍 열었읍니다. 미닫이를 열은 그는,
 
157
“저놈의 고양이!”
 
158
하고 소리를 치면서 마루로 나섰읍니다. 그윽한 그믐달 빛에 보이는 고양이의 그림자는 화살처럼 담 너머로 스러졌읍니다.
 
159
성냥불을 그어 든 서방님의 뒤를 따라 아씨도 부엌으로 들어갔습니다.
 
160
“아이 이를 어째?”
 
161
아씨가 일전 야시에 가서 사온 유리 꽃대접이 시렁에서 굴러 솥뚜껑 위에 떨어져서 천조각 만조각이 되었읍니다. 서방님이 다시 그어 비추는 성냥불 빛에 비췬 아씨의 낯빛은 파랗게 질렸읍니다.
 
162
“응 저놈의 고양이! 저 배라먹을 놈의 고양이, 고기를 채갔네! 응 저 놈의 고양이!”
 
163
아씨는 거의 히스테리칼하여져서 뇌이었읍니다.
 
164
“고긴 어떻게 두었길래 그 모양이아!”
 
165
서방님의 목소리도 떨렸읍니다. 없는 돈으로 애써 사다가 고양이의 진지로 드린 것을 생각하니 분하기도 하였읍니다. 이때 그의 눈앞에 고양이만 보였더면 담박 때려죽였을 것입니다.
 
166
“두긴 어떻게 두어요! 저기 얹고 저 소쿠리로 덮어 두었지요!”
 
167
“그러면 부엌문이나 닫아 두지 말이지!”
 
168
“부엌문을 닫아 두면 음식이 상한다구 하시구두!”
 
169
서방님은 말이 막혔읍니다. 자기가 한 말이 있으니까 그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없었읍니다.
 
 
170
그러나 사람은 대개 자기의 허물을 알면서도 변명을 하려고 합니다.
 
171
“그저 저 모양이지! 끝끝이 말대답이지!”
 
172
“나만 글타지! 그것 봐요! 아예 첨부터 고양이를 집안에 들이지 않았더면 이런 변 없었을 걸 가지구…….”
 
173
“그놈이 제 발로 들어왔지 누가 부엌에다 두었었나!”
 
174
이치에 안 닿는──신식말로 하면 참말 비과학적(非科學的)인 부부의 싸움은 어두컴컴한 부엌 속에서 벌어졌읍니다.
 
175
“예전에도 그럽디까? 괜히 집안에 들여놓고 으윽거리니까 그러지!”
 
176
“뭣? 고양이는 누가 들였는데……. 제가 잡아 비끄러매 놓고는……. 흥.”
 
177
“압다! 억설은 정치게……. 자기가 얻어 온다구 하구서는…….”
 
178
하고 아씨는 밖으로 나갔읍니다. 서방님도 그 소리에는 어이없는 자기를 웃지 않을 수 없었으나 웃는 것은 대장부의 기개에 치욕 같아서 입술을 악물고 툇마루로 나왔읍니다.
 
179
고요한 깊은 밤 창백하고도 은은한 달빛은 툇마루를 유정스럽게 비취었는데 지나가는 바람에 처마끝 유리 풍경이 조심스럽게 쟁그렁거렸읍니다.
 
180
툇마루 기둥에 기대어 서서 이지러진 그믐달을 쳐다보는 발가벗은〔裸體〕 아씨의 곡선미(曲線美)는 명공(名工)의 신수(神手)에서 떨어진 석고 조각같이 보였읍니다.
 
181
그저 보아도 아름다울 그 조각은 창백한 달 아래 은은한 마루 기둥에 시름없이 비스듬 기대어 세워 놓고 보니 한 개의 위대한 예술품을 이루었읍니다. 서방님의 가슴은 감격에 넘쳤읍니다. 자기의 아내는 고전(古典)에 나오는 여신처럼 신성스럽고도 아름다우며 대리석같이 쌀쌀한 듯하고도 저처럼 은은하고도 부드러운 사람이었던가 하는 감정이 그의 피를 끓일 때 그는 그로도 모르게 아내의 허리를 안았읍니다.
 
182
“이건 왜 이래요!”
 
183
매정스러운 아내의 팔뚝이 가슴을 쌀쌀히 칠 때 그 가슴은 황홀하게 두근거렸읍니다. 위대하던 그 예술품은 한 개의 얄미운 인간이었읍니다. 호화로운 꿈 뒤에 닥치어오는 서방님의 엷은 원한과 엷은 애수와 엷은 고독과 무료한 마음은 하소할 곳이 없었읍니다. 그 모든 감정은 한데 엉키어서 일종의 악감을 나았읍니다.
 
184
“앗따 그리두 싫소? 사람이!”
 
185
“……”
 
186
“싫으면 다른 놈 허구 살지!”
 
187
“아이 망칙해라!”
 
188
아씨는 그만 홑이불을 뒤집어쓰고 드러누웠읍니다. 서방님은 열적다 할까 안타깝다 할까 분하다 할까 무어라 형용키 어려운 정에 지배되어서 아씨를 멀거니 내려다보는데 속없는 쥐들은 또 찍짹하고 들렜읍니다.
 
189
“이런 망한 놈 쥐!”
 
190
하고 서방님은 제 분에 못 이겨서 몸을 솟으면서 주먹으로 반자지를 땅 구멍을 뚫어 놓고는 다시 잡아채니까 겹겹이 발랐던 종이는 시원스럽게 찢어져서 사람 하나 드나들 만한 구멍을 내놓고는 공중에 늘어져서 너울거렸읍니다. 반자지 속으로 나오는 먼지와 흙덩어리는 좁은 방안에 좍 흩어져서 아씨의 살결같이 하얗던 홑이불은 금시에 먼지투성이가 되었읍니다.
 
191
“엇따 할 데 없어 분풀이를 겟다(반자지) 하시우!”
 
192
아씨는 토끼처럼 깡충 뛰어나와 앉았읍니다.
 
193
해놓고 생각하니 서방님도 무류하였읍니다. 더구나 그 찢어진 구멍을 바를 것을 생각하니 후회도 났읍니다. 자기가 아내의 앞에서 찢고 자기가 아내의 앞에서 발라야 할 것을 생각하니 더욱 무류타 할까 뉘웁다 할까…… 하는 감정에 그의 가슴에는 유음(溜飮)이 들어차는 것 같았읍니다.
 
 
194
밤새에 길몽(吉夢)을 얻은 내외간은 여전히 정답게 아침밥을 먹었읍니다. 어젯밤에 찢어 놓은 반자지를 아씨가 먼저 일어나서 핀으로 반자살에 얽어 놓을 때 좀 뭣하던 마음도 인제는 씻은 듯하였읍니다. 다만 어젯밤에 애써 사들고 온 고기가 밥상에 오르지 못하게 된 것만은 내외가 함께 유감으로 여겼읍니다.
 
195
이날 오후 약국에서 돌아온 서방님은 가지고 온 유리를 천정에 붙이고 찢어진 데를 발랐읍니다. 그리고 유리 붙인 옆에 주먹이 드나들 만한 구멍을 뚫어 놓았읍니다. 영문을 모르는 아씨가 그것을 물으니까 서방님은 이렇게 대답하였읍니다. ──
 
196
“유리를 붙인 것은 반자 속이 낮에도 훤하라는 것이요 구멍 뚫은 것은 밤이면 그리로 전등을 넣어서 유리 위에 놓으면 두 나라(방안과 천정 속)가 다 밝아지니까 그렇게 되면 쥐란 놈의 그림자도 어른거리지 않는다구. 김군이 가르쳐 줍디다.”
 
197
참말 그날 밤부터 (실상은 어젯밤부터) 쥐소리가 끊어졌읍니다. 다만 전등을 천정 속에 넣는 때 천정 구멍이 적어서 전등갓을 뽑아 놓게 된 것은 미관상(美觀上) 유감이었읍니다.
 
198
하루 지나고 이틀 사흘이 지나도록 쥐소리는 없었읍니다. 있을 때에는 귀찮더니 있다가 없은 후에는 어쩐지 심심한 것도 같았읍니다. 장장한 여름 날을 집에서 혼자 지내게 된 아씨에게는 그 소리도 귀찮은 대로 한 파적(破寂)은 되었던 것입니다.
 
199
“여보 이 앞 반찬 가게에서 기르는 그 백쥐〔白鼠〕 보았소? 고 바퀴 굴리는 것…….”
 
200
“우리두 그걸 한 마리 사다 기릅시다. 응!”
 
201
“길러 볼까?”
 
202
서방님도 거기는 흥미가 바싹 났던 모양이외다.
 
203
차면 물러앉고 더우면 다가드는 사람의 마음을 누가 추측인들 하겠읍니까? 어제까지는 쥐를 못 먹어 하더니 오늘은 돈을 내고 사기로 동의합니다.
 
204
그러나 쥐를 사지는 않았읍니다. 그렇게 어름어름하는 사이에 또 며칠은 지나갔읍니다.
 
205
어떤 날 오전 때 약국에서 돌아오게 되었읍니다. 그가 대문 안에 들어서려니까 마루에 앉았던 아내는 무슨 은근한 일이나 있다는 듯이 손짓 눈짓을 맞추어 하면서──
 
206
“가만히 들어오셔요! 저놈 봐요! 조놈 조놈! 가만히 들어오시라니까! 인제 도망해 버렸어요!”
 
207
하고 아쉬운 듯한 어조로 말하면서 저편 뒷간으로 돌아가는 데 있는 하수도 구멍을 보았읍니다. 서방님은 어찐 영문을 모르고 눈이 둥그래서,
 
208
“뭐야! 응 무엔데 그래 ?”
 
209
하고 하수구를 보니까 하수구 어구에는 밥알이 허옇게 흩어져 있었읍니다.
 
210
“쥐란 놈이 나왔어요! 쪼고만 새끼 쥐인데 고놈이 꼬리를 졸졸 끌고 나오는 게 재밌어요.”
 
211
하고 아씨는 감칠맛이 나게 말하였읍니다.
 
212
“그런데 저건 웬 밥이야!”
 
213
“응 그놈 나오라구 흩어 놓았지!”
 
214
그 소리에 서방님은 아내를 보았읍니다. 아직 쌀 고생을 못 한 아내가 다시금 보였던 것입니다.
 
 
215
“우리 집에두 허 생원(許生員) 한 분 생겼군! 흥.”
 
216
아씨를 다시 보던 서방님은 이렇게 뇌이고 코웃음을 치면서 방으로 들어갔읍니다.
 
217
“여보!”
 
218
“응.”
 
219
방에 들어가서 두루막을 벗고 수건으로 땀을 씻던 서방님은 썩 나직이 부르는 아씨의 소리와는 반대로 크게 대답하였읍니다.
 
220
“큰 소리 내지 마세요! 저것 봐요! 조놈.”
 
221
아씨는 입끝에 흐를락 말락 하는 소리로 이렇게 속삭이고는 무엇이 기쁜지 깨득깨득 웃었읍니다. 목을 늘여서 내다보던 서방님은,
 
222
“가만 있어. 저놈을 잡어!”
 
223
하면서 툇침을 집으려고 하였읍니다.
 
224
“그래 두셔요!”
 
225
하고 아씨는 손질하다가,
 
226
“조놈 또 도망친다. 아이 그래 두셔요! 그건 왜 잡어요.”
 
227
하고 방으로 들어 갔읍니다.
 
228
조금 뒤에 쥐 그림자는 또 하수구 어구에 나타났읍니다. 햇닭 알만한 놈인데 꼬리는 몸길이의 갑절은 될 듯하였읍니다. 늙기도 전에 하얗게 센 수염을 종긋거리면서 대강이를 요리 기웃 조리 기웃하고 톡 불거진 두 눈을 똘똘 굴리더니 등을 꼬부장해 가지고 쪼르르 나와서 아씨가 흩어놓은 밥알을 앞발로 집어먹었읍니다.
 
229
“조 까불이 봐! 깍정이! 누가 저를 잡나! 저리두 까불거리구 겁을 낸담! 호.”
 
230
아씨의 눈동자는 쥐의 일동일정을 놓지 않고 지키었읍니다. 머리를 나란히 하고 앉은 서방님도 빙그레 웃었읍니다. 그렇게 까불거리던 쥐는 누가 기침도 하지 않았는지 갑자기 몸을 송그리고 머리를 들어 눈을 두어 번이나 굴리더니 쏜살같이 하수구 속으로 들어갔읍니다.
 
231
“오! 저놈을 보았구나!”
 
232
마당에서 쥐그림자가 사라지자 눈을 돌리는 서방님은 대문쪽 툇마루에 잇다른 담 위를 바라보았읍니다.
 
233
“조놈의 고양이!”
 
234
“가만 있어!”
 
235
서방님은 아씨를 말리면서 툇침을 집더니,
 
236
“이놈!”
 
237
하고 던졌읍니다.
 
238
“양웅!”
 
239
던진 툇침은 담 위에 떨어지자 마자 다시 담 안으로 퉁겨 떨어질 때 고양이도 곤두넘이를 하여 그 담 아래 마루 귀퉁이에 놓은 밥상 위에 떨어졌다가 다시 곤두넘이를 하여 도로 그 담을 넘어 뛰어 달아났읍니다. 그 바람에 상 위에 벌려 놓았던 사발 하나와 공기 두 개가 부서졌읍니다.
 
240
“에그머니 조 배라먹을 놈의 고양이”
 
241
뛰어나간 아씨는 낯빛이 흑이 되었읍니다. 서방님은 좋지 못한 표정으로 산산이 부서진 그릇 조각을 보았읍니다. 툇침에 맞은 고양이가 괴로운 고함을 치면서 곤두넘이를 할 때 만족히 받았던 개선 장군의 유쾌는 부서지는 그릇 소리에 산산이 부서졌읍니다. 그는 그 순간 툇침 던진 것을 후회하였으나 그 후회는 일순간도 못 되어서 다시 고양이에게 대한 악감으로 변하였읍니다.
 
242
“그저 쫓는 것을 그랬어!”
 
243
아씨는 후회하면서 부서진 그릇 조각을 맞붙여 보았읍니다. 물끄러미 섰던 서방님은 분기가 돌았던 얼굴에 어이없는 웃음을 지으면서,
 
244
“흥 그놈(고양이)의 뱃속은 시언하렷다! 만사가 다 그런 게야! 남은 죽어도 저만 좋으면 좋겠다. 허허.”
 
245
하고 그는 자기의 행동을 비웃는 듯이 웃었읍니다. 그러나 아씨는 그 소리의 뜻을 이해치 못하였읍니다.
 
 
246
극구광음은 며칠이라는 층계를 밟았읍니다. 그 며칠의 틈바구니에 끼었던 말복과 입추도 물론 지나갔읍니다.
 
247
하수구 구멍으로 드나드는 쥐는 여전히 아씨의 실낱 같은 자선심의 혜택을 입었읍니다. 그런데 요즘 와서는 그 구멍으로 강아지만한 쥐가 이따금 나왔다가는 사람의 그림자만 얼씬하면 그림자도 보기 어렵게 도망하였읍니다. 그리고 부엌 쌀독 속에서도 쥐 발자리와 쥐똥을 발견하게 되었읍니다. 어떤 때에는 벽장 속에서도 무슨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읍니다. 그러나 그 자취는 아씨나 서방님의 마음을 흔들기에는 아직도 미미한 존재이었읍니다.
 
248
하루는 서방님이 일찍 집으로 돌아오니까 아씨는 성이 잔뜩 나서 빨래 방망이를 들고 하수구 앞에서 혼자 푸닥거리를 놓았읍니다.
 
249
“왜 그러오! 응…… 저것 미치잖었나? 흐흐흐.”
 
250
“그 망한 놈의 쥐 같으니라구…… 지금 호박 나물을 저 접시에 담어서 마루에 놓고 이웃집에 갔다 오니까 저 모양을 맨들어 놓았답니다. 저렇게 짓밟고 먹고 똥까지 싸놓았어요! 망한 놈의 쥐! 저를 이뿌다구 하니까 도레 앙갚음을 하겠지! 이놈을 때려 잡어야지……”
 
251
“누가 이뿌다구 하랬나? 그럼 쥐가 그렇지 어째…… 그래 지금 쥐 잡우? 흥 이제 쥐가 나오리다. 기대리고 서 계시우. 하하.”
 
252
서방님은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읍니다.
 
253
“여──보 이리 올라와요! 참 당신 같으면 세상에 무슨 걱정이 있겠소! 흐흐.”
 
254
서방님은 철얼는 아내가 귀엽기도 하면서도 민망하기도 하고 요랬다 조랬다 하는 것이 얄밉기도 하였읍니다.
 
255
“여보! 글쎄 올라와요! 저녁이나 일찍 지어 먹구 활동사진 구경이나 갑시다.”
 
256
아씨는 기뻤읍니다. 월급이라고 몇 푼 안 되는 것을 받아서 쌀값이니 나무 값이니 반찬값이니 제하고 나면 전찻값도 남지 않아서 전차 탈 때도 못타는 살림이라 구경 한 번 가려면 벼르고별러도 한 달에 한 번 되나 마나 합니다.
 
257
낙산 머리를 붉게 물들인 저녁 햇발이 스러지기도 전에 저녁을 먹고 나서 아씨는 갈아입을 옷을 끄집어내려고 벽장 속에 들어가서 옷상자를 뒤졌읍니다.
 
258
“에그 이를 어째.”
 
259
아씨는 이렇게 소리를 한마더 지르더니 다시는 소리를 더 못 지르고 낯빛이 핼쓱이 변하였읍니다.
 
260
“왜 그러우 ?”
 
261
누워서 담배를 피우던 서방님은 무슨 대단치도 않은 일에 또 저러누 하는 눈으로 아씨를 쳐다보았읍니다.
 
262
“여보 이를 어쩌오!”
 
263
한참 만에 아씨는 울 듯이 말하고 벽장에서 내려오더니 들고 내려온 모시 치마를 방바닥에 펼치어놓으면서 힘없이 주저앉았읍니다.
 
264
“응 쥐란 놈의 장난이로군!”
 
265
치마를 보던 서방님은 일어나 앉았읍니다. 치마는 가운데로 두 폭이나 쥐가 쏠아서 구멍은 벌레 먹은 나뭇잎 모양으로 불규칙하게 뚫어졌읍니다.
 
266
“어디 또 봐!”
 
267
하고 서방님은 벽장으로 들어가더니,
 
268
“허 이것 큰일났군!”
 
269
하였읍니다. 쥐는 치마만 쏠지 않았읍니다. 서방님의 다듬은 모시 두루막을 쏠고 아씨의 고이까지 쏠았읍니다.
 
 
270
화가 잔뜩 난 서방님은 벽장을 빨끈 뒤집었읍니다. 구석구석이 쥐똥이었읍니다. 그리고 단오에 사 준 아씨의 마른 신도 구석에 둔 것을 쏠아서 신 코가 뚫어졌읍니다. 서방님은 주먹을 부르르 떨었읍니다. 봄에 간신히 모시 한 필을 바꾸어서 지은 치마와 두루막을 그 꼴을 만들어놓고도 마른 신까지 그 모양을 해놓았으니 생각할수륵 분하였읍니다. 그러나 그 분은 풀 데가 없었읍니다. 분풀이할 데가 없으니 더욱 분하였읍니다. 극도로 오르는 분은 분풀이할 대상을 얻지 못하니까 그만 일종의 불만으로 변하였읍니다. 사지에 힘없이 벽장에서 내려선 채 물끄러미 서서 전신에 뼈가 빠진 듯이 앉아 있는 아내를 보던 서방님의 가슴은 다시 찌르르 저렸읍니다. 치마, 두루막, 마른 신──돈으로 환산한다면 십여 원 내외가 되나 마나 한 그 손해 때문에 아까까지도 화락한 봄웃음이 흐르던 이 나라(방안)에 말할 수 없이 괴롭고 쓸쓸한 절망의 침묵이 흐르는 것을 깨달을 때 그는 너무도 보잘것없는 자기 생활의 처참을 다시금 느끼지 아니치 못하였읍니다. 동시에 그는 하룻 밤에 수백 수천 원이라는 큰 돈(자기로서는 일생에 만져도 못 볼 돈)을 술과 계집으로 탕진하면서도 유쾌히 웃는 사람들을 생각지 아니치 못하였읍니다.
 
271
“세상은 이리도 고르지 못한가?”
 
272
그는 이를 갈면서 아내의 어깨에 다시 눈을 던졌읍니다. 철없이 팔랑대던 어린 아내의 어린 맛조차 이해의 앞에서는 서리〔霜〕를 맞는 것을 보니 가슴이 더욱 찢겼읍니다. 그는 무딘 칼로 찢는 듯한 가슴을 은근히 누르면서,
 
273
“여보! 그까짓 놈의 것 또 지어 입지 걱정 있소! 인제 그렇게 된 것을 어떻게 하오! 자 어서 걷어치우고 구경 갑시다!”
 
274
하면서 아내의 앞으로 갔읍니다.
 
275
“그러니까 반닫이 하나 사 달라니까?”
 
276
아씨의 말에 서방님의 가슴은 뒤집혔읍니다. 당장 입에 쓸어넣을 쌀이 없어서 껄덕거리는 줄을 알면서도 그런 소리를 톡톡 쏘는 것이 야속하기도 하였으나 그는 꾹 참아라 하고,
 
277
“암 여부 있소! 이번에 돈 생기면 반닫이만 사줄라구! 삼층 양옥에 자개 장롱 화류 장롱에 피아노 풍금 다 사지! 하하.”
 
278
하고 얼렘이를 쳤읍니다.
 
279
내외가 극장문에 들어선 때는 벌써 사진이 시작된 뒤었읍니다. 유난히 빛나는 문간 전등에 비취이는 아내의 때겨운 모시 치마를 볼 때 서방님은 주위의 모든 사람들에게서 멸시를 받는 듯이 부끄러우면서도 분하고 또 아내가 더욱 가긍히 보였읍니다. 서방님은 아씨와 같이 걸음을 바삐하여서 윗층으로 올라갔읍니다.
 
280
“스크린에 나오는 남배우들이 잘 생겼다”고 아씨가 칭찬하는 때마다 서방님은 일종의 엷은 시기를 느끼면서도 동시에 자기도 그런 배우가 되어서 여러 여자들 찬사를 받았으면 하는 공상도 없지 않았읍니다.
 
281
필름 돌아가는 소리가 마지막의 여운을 남기자 마자 껐던 전등들은 환히 켜지었읍니다.
 
 
282
새로 나올 사진을 기다리는 관중들은 전등이 켜지니 수선스럽게 떠들었읍니다.
 
283
서편 부인석은 오늘도 만원이었읍니다. 유난히 빛나는 전깃불에 비취인 부인석은 일세의 부귀의 상징같이 보였읍니다. 사내들은 안 보는 체하면서도 그리로만 시선을 보내면서 저희끼리 웃고 손가락질하고 수근거렸읍니다.
 
284
비단과 금붙이와 보석과 기름과 분과 향수로 꾸민 그 화석(化石)들은 서방님의 눈에도 싫지는 않았읍니다. 그 속에서도 그 온갖 장식의 혜택을 입지 못한 몇 사람은 행여 그림자라도 보일세라는 듯이 그 빛나는 화석 틈에 찍혀 눌려서 눈도 바로 거듭 뜨지 못하고 있었읍니다. 그것을 본 서방님은 찌르르하는 가슴을 만지면서 곁에 앉은 아씨를 보았읍니다. 부인석 한 귀퉁이에 찍혀 눌린 그 여자들의 그림자나 아씨의 그림자나 틀릴 것 없었읍니다. 아씨의 처지가 그 여자들의 처지요 그 여자들의 처지가 아씨의 처지였읍니다. 그는 일종의 모욕을 느꼈읍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경계선(境界線)은 돈으로 말미암아 나뉘는구나 하고 생각할 때 그는 못 견디도록 분하였읍니다. 그 반짝거리는 보석의 빛과 그 금장식한 이빨 사이로 흘러 내리는 웃음은 자기네의 처지를 비웃는 것 같았읍니다.
 
285
이때 호각 소리와 같이 극장은 암흑 세계가 되고 영사막은 다시 밝아졌읍니다. 서방님은 살 세상을 만난 듯이 숨을 후유 내쉬었읍니다. 그러나 암흑 세계에서 숨을 내쉬게 되는 그는 자기의 비겁을 비웃지 않을 수 없었읍니다.
 
286
오늘은 여느 때보다 한 이삼십 분 일찌기 파하였읍니다. 두 내외는 서늘한 바람을 쏘이면서 야시로 나왔읍니다. 야시로 나온 그네는 전차를 타지 말고 걸어가기로 하고 삼십 전 남은 것으로 '쥐통'하고 수박 한 통을 샀읍니다. 가벼운 쥐통은 아씨가 들고 무거운 수박은 서방님이 들고 타박타박 박석 고개를 넘어갔읍니다.
 
287
“여보 당신은 가을에 무엇을 입우? 다듬은 두루막이 저 모양이 되었으니……. 생각할수록 원통해요!”
 
288
아씨의 목소리는 떨렸읍니다. 실상 아씨는 그 생각이 가끔가끔 가슴을 흔들어서 구경도 잘 못하였읍니다. 서방님도 그 체증은 그저 내리지 않았으나,
 
289
“무얼 가을에 지어 입지! 당신이 당장 입을 것 없는 것이 걱정이지 내야 아직…….”
 
290
하면서 아내가 안심하기를 원하였읍니다.
 
291
“난 괜찮어요! 당신은 나당기는 이가 옷 없으니 걱정이지……. 내야 나당기니 걱정요? 인제는 괴로와 당기기도 싫여요……, 호!”
 
292
아씨는 자기로도 무심코 말해놓고는 부끄러운 듯이 웃었읍니다.
 
293
“참말 내가 잊었구려! 전차 타는 걸 그랬지!”
 
294
산삭이 가까와 온 아내를 돌아볼 때 서방님은 후회하지 않을 수 없었읍니다.
 
295
“어디 돈 있세요?”
 
296
아씨는 인정 있게 뇌였읍니다.
 
297
“쥐통이나 수박이나……”
 
298
말을 끄집어내다가 수박이 먹고 싶다고 한 아내가 미안히 여길까 보아서 말끝을 돌렸읍니다. ──
 
299
“아니 쥐통을 사지 말 걸 그랬지.”
 
300
“그만 예산은 나도 한다오. 해!”
 
301
아내는 상긋 웃었으나 서방님의 가슴은 그저 쓰리었읍니다.
 
 
302
사흘 뒤였읍니다.
 
303
밤이 깊어서 아씨는 고요히 잠이 들고 서방님은 자리에 누워서 책을 보고 있는데 벽장 속에서 용수철 퉁기는 소리가 나자 뒤이어 찍찍 하는 쥐울음 소리가 들렸읍니다. 서방님은 벌거벗은 채 벌떡 일어나서 벽장문을 열었읍니다.
 
304
“이놈!”
 
305
서방님은 만족한 웃음을 웃으면서 쥐통을 끄집어내었읍니다.
 
306
“에구머니 크기도 하네!”
 
307
어느새 눈을 뜬 아씨는 이렇게 부르짖으면서 몸을 송그렸읍니다.
 
308
“굉장히 큰데! 이놈 죽어 봐라!”
 
309
서방님은 쥐통을 마루에 내놓고 전등을 마루에 내걸었읍니다.
 
310
“여보 이놈 죽는 것을 좀 보우! 응 요놈아 우리 마누라 치마를 버려주었겠다!”
 
311
“죽이지 마셔요!”
 
312
아씨는 무섭다고 그저 나오지 않았읍니다.
 
313
“앗따 대자대비두 한지고! 요놈.”
 
314
그는 부적가락으로 통 속에 든 쥐를 찔렀읍니다. 쥐는 찍 하면서 부젓가락을 물더니 몸을 빼쳐서 나가려고 철망 구멍으로 머리를 내밀었읍니다.
 
315
그러다 솔디손 구멍으로 그 큰 대강이가 들어갈 리 없었읍니다.
 
316
“요놈이 아주 그래도 살겠다구!”
 
317
하면서 그는 부젓가락을 다시 뽑아서 들이질렀읍니다. 사정없는 쇠끝은 쥐의 등을 뚫고 마루에 박혔읍니다. 쥐는 길다란 꼬리를 안으로 휘여 들이면서 온몸을 비틀었읍니다. 입을 딱 벌리면서 몸을 비트는 쥐는 다시 소리를 찍찍 치면서 부젓가락을 물려고 하였읍니다.
 
318
“이놈!”
 
319
만면에 독기가 오른 서방님은 이를 악물고 독한 웃음을 웃으면서 다시 왼편 손에 잡았던 부젓가락으로 불거진 쥐의 눈을 찔렀읍니다. 잔인성은 점점 폭발이 되어서 더 심한 수단을 요구하였읍니다. 이때 아씨가 만일 서방님을 보았더면 그 얼굴에서 인간의 표정이라고는 털끝만치도 찾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320
최후의 힘을 다하여 버둑거리는 쥐는 새로 들어오는 창이 눈을 뚫고 뇌를 무찌르는 때 한마디 슬픈 소리를 남기고 본능적으로 몸을 틀더니 그만 아무 소리도 없이 검붉은 피만 흘렸읍니다.
 
321
서방님의 흥분도 인제는 좀 진정되었읍니다. 그는,
 
322
“여보 이것 좀 봐요!”
 
323
하면서 쥐통을 들더니,
 
324
“엑 이 피 봐!”
 
325
하고 소리를 질렀읍니다. 쥐통을 놓았던 마루 바닥은 검붉은 선지피에 물들었읍니다.
 
326
“버려요! 죽이지 말라니깐두루…… 당신이 살생(殺生)을 하면 좋잖대요! 이 뒷집 ××아버지는 닭도 죽이지 않는다는데…….”
 
327
아내는 원망스럽게 말하였읍니다.
 
328
그 소리를 들은 서방님의 가슴은 뜨끔하였읍니다. 임신 중에 부부가 살생하면 어린애에게 해롭다는 것은 누누이 들었던 것입니다.
 
329
“원 별소리 다 많지.”
 
330
그는 속으로 이렇게 부인하면서도 어린 머리에 깊이 박았던 인과 관념(因果觀念)은 잊을래야 잊어지지 않았읍니다. 그의 누이가 병신 애를 낳았을 제 그의 매부가 살생(한 번 개를 잡은 일이 있었다)한 탓이라고 이웃집 사람들이 이야기하던 것까지 생각났읍니다.
 
 
331
“흥! 백정 자식은 다 병신 되었게!”
 
332
서방님은 이렇게 뇌이면서 소극적(消極的) 안심을 하려고 하였으나 응보설(應報說)은 염두에서 떠나지 않았읍니다.
 
333
그는 공연한 짓을 했다고 혼자 후회도 하면서 통 속에서 끄집어낸 쥐의 꼬리를 잡았다가 호열자나 전염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로 부젓가락에 뀌여다 문 밖에 버렸읍니다. 버리고 들어와서 신문지로 마루의 피를 닦았으나 비린 냄새가 코를 찌르고 그 피가 입으로 흘러 들어가는 것 같아서 오장이 뒤집혔읍니다. 신문지에 묻은 피가 손에 묻는 것은 더욱 애처러웠읍니다. 거기도 호열자 균이나 있으면 하는 생각에 어쩐지 견딜 수 없었읍니다. 그는 마루 닦은 신문지를 문밖에 멀리 버리고 들어와서 자기 손으로 물그릇을 잡기가 의심이 나서 아내를 불러 물을 떠 가지고 마루를 씻었읍니다. 손도 비누로다 말끔히 씻었읍니다. 그러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다시 물에다 뒷간에 뿌리던 아이젤을 타 가지고 마루를 닦았읍니다.
 
 
334
며칠 뒤였읍니다.
 
335
식전에 아씨는 배가 아프다고 뒷간에 갔다 들어오면서,
 
336
“여보! 어째 아래서 핏방울이 들어요!”
 
337
하기에 그는,
 
338
“응 언제부터 그랴?”
 
339
하고 물었읍니다.
 
340
“지금 그래요! 당신이 쥐를 피를 내이고 죽여서 그런가 봐! 집안에서 피를 내면 그런다는데.”
 
341
“원 별소리! 백정의 여편네도 똑똑한 애만 낳데! 김군(그는 백정의 아들)을 보구려.”
 
342
“그건(백정) 팔자에 타고난 업이니까.”
 
343
“여보 말 말우. 팔자에 타고난 업이 어디 있담! 흥 허허 기맥힐 소릴 다 듣겠다!”
 
344
서방님은 이렇게 호언장담을 하면서도 그 마음 한 귀퉁이가 묵직하였읍니다. 암만 생각해야 얼토당토않은 이론이지만 미신이 들어찬 구조선의 말기에 나서 그 분위기 속에서 굳어진 그의 감정은 철저치 못한 그의 과학 사상을 때로 흔들었읍니다.
 
345
그의 눈앞에는 부젓가락에 찔리어서 피를 흘리고 죽던 쥐가 떠올랐읍니다. 모든 감정이 순평한 지금에는 그 환상이나마 몸서리를 치지 않고는 볼 수 없었읍니다. 뒤이어 아내의 뱃속에 있는 태아가 상상되었읍니다. 나중에는 태아가 쥐인지? 쥐가 태아인지? 피투성이 된 한 개의 생물(生物)이 그의 앞에 나타났읍니다. 그는 그 환상을 보지 않으려고 하였으나 보지 않으려면 않으려고 할수록 끈직끈직 따라왔읍니다.
 
346
그는 벌떡 일어나서 밖으로 나갔읍니다. 이때 그의 머리를 언뜻 치는 생각이 있었읍니다.
 
347
“남의 목숨을 빼앗음으로써 자기의 생(生)을 더 충실히한다면 그것이 도리어 생의 법칙이라 하여 감히 행하고도 후회치 않지만 남의 생명을 빼앗았음으로써 자기의 생명에 손실이 있다면 그때에는 그것을 불인(不仁)이라 느끼고 후회하는 것이 이 세상 사람의 도덕이 아닌가? 선악의 비판이 그렇게 갈리고 인과율이 또한 그렇게 서는 것이 아닌가? 오오 모든 것은 이해(利害)에 지배되는 구나!”
 
348
하고 느끼는 때 이제까지 가졌던 그의 인생관은 변하였읍니다.
 
349
“언제나 고른 세상이 오누?”
 
350
아침볕을 받은 그의 눈에는 이 세상이 활동사진처럼 다시 한번 보이었읍니다.
【원문】부부(夫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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