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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난(受難)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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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4
최서해
1
受 難[수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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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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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아주머니의 팽팽한 소리가 부엌으로부터 총알같이 굴러 나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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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러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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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마루에서 대답하는 것은 아저씨의 굵은 목소리였다.
 
6
“당신은 남의 괴로움은 조금치도 생각지 않는구료 ? 그애는 어디 갔소 ? 저 장작이나 좀 패라고 일루구료……. 할멈이 바쁜데 언제 그것까지 할 새가 있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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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머니의 목소리는 순탄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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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꼬집어뜯는 듯한 목소리는 종하의 마음을 따끔따금 찔렀다. 학기 시험 준비에 골똘하였던 그는 입맛을 쩍쩍 다시고 들었던 영어 사전을 책상위에 심술궂게 던지면서 일어섰다.
 
9
“얘 종하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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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하가 마루방 문을 열고 건넌방에서 나오려는데 마루에서 무엇인지 하고 있던 아저씨는 종하를 보더니 부르다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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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뭘 하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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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쳐다본다. 종하는 시험 준비하는 것을 번연히 아는 아저씨가 “너 뭘 하니 ?” 하고 묻는 것이 야속도 하고 미웁기도 하였다. 그는 쳐다보는 아저씨의 흐뭇한 시선을 피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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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안 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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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풀기 없이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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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안 하면서 왜 들어앉았니 ? 저 장작 좀 쪼겨라……. 학교 갔다 오면 집일도 좀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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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하는 아무 대답도 없이 마루 밑에서 도끼를 꺼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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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쓰기가 거북하던 도끼도 여러 번 익으니까 겨누는 대로 들어가 맞는다. 그는 도끼날이 장작개비에 내려지자 마자 굵은 장작개비가 떵떵 뻐그러지는 것이 상쾌하였다. 결이 뒤틀려서 못생긴 나무나 만나면 그야말로 어려운 산술 문제 풀기보다도 땀나는 일이지만 결이나 바르고 잘마른 나무는 도끼가 내려지기 무섭게 갈라진다. 그는 그렇게 아저씨와 아주머니의 머리를 갈랐으면 더욱 시원할 것 같았다.
 
18
처음 서울 와서 중등 학교에 입학할 때는 종하의 가슴에 흐르는 것은 기쁨 뿐이었다. 시골 구석에서 겨우 소학교를 마친 그는 그대로 시골 구석에서 농사나 ── 그것도 아버지와 같이 남의 땅을 갈아나 주고 한평생 입이나 속이지 않으면 다행이거니 믿었던 것이다. 그런 것이 무슨 바람이 불었던지 아저씨가 시골에 다니러 왔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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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공부할 생각이 있거든 서울로 가자. 우리 집에 가 먹으면서 공부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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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종하의 마음을 흔들었다. 그 말을 듣고 기뻐한 것은 종하뿐이 아니었다. 종하의 집 식구들은 다 기뻐하였다. 면소 서기만 보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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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종하는 언제나 저런 벼슬을 하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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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부러워하는 그 아버지의 기쁨은 컸다. 아들이 서울 공부만 하고 오면 큰 벼슬을 꼭 하여 가지고 돌아올 줄로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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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종하를 데리고 왔소 ! 집에서 손심부름이나 시키면서 공부나 시킵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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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는 서울 와서 아주머니에게 이런 말로 종하를 소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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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일주일이 못 되어서 어떤 고등 보통 학교에 입학하였다. 그것도 아저씨의 주선으로 시험도 형식상으로 치는 둥 마는 둥 하고 입학이 되었다. 종하는 기뻤다. 으리으리하는 서울의 천지는 그를 위해서 생긴 것 같았다. 그는 아저씨의 은혜가 크다고 생각하였다. 그 아저씨를 위하여서는 목숨이라도 바치리라고 혼자 감격하였다. 그렇던 아저씨의 머리를 지금은 눈앞에 놓인 장작개비처럼 도끼로 갈라 놓았으면 위 속에 괴이는 유음이 내릴 것 같다. 참말 시원할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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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손심부름 손심부름 하더니 무슨놈의 손심부름이 그 모양인지 어떻게 고된지 견딜 수 없다. 그것도 일학기 때에는 덜하더니 여름 방학때부터 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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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에 집에는 가서 뭐 하게……. 집에서 심부름이나 하면서 영어나 산술 강습이나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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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하는 여름 방학에 고향으로 가지 못하였다. 고향 가서 서울 이야기도 하고 동무들에게 자기의 모양을 보이고도 싶었으나 아저씨의 명령을 거역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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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여름 동안 한 것은 일밖에 없었다. 아저씨는 매일 회사에 출근하니까 낮에는 집에 없었다. 아저씨의 그림자가 집에서 스러지면 아주머니의 푸닥거리는 더욱 심하게 종하의 마음을 흔들었다. 그는 할멈과 같이 빨래까지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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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정신 있소……. 사내 자식이 빨래가 무슨 빨래란 말이오……. 얘 그만두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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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아저씨의 반대가 상당하였으나 아저씨는 끝끝내 반대를 못 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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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이는 늘 저래. 누가 그 애가 미워서 그러는 줄 아오 ? 집에 손이 없으니까 그러지……. 별꼴 다 보겠네……. 할멈이 저 많은 빨래를 혼자 빨자구 해 보구려. 오늘 저녁은 누가 짓고……. 여편네들 일에 사내가 무슨 간섭이요.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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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머니의 말에 아저씨의 모가지는 움칠하여졌다. 종하는 아저씨가 불쌍도 하고 바보 같기도 하더니 이제는 미웠다. 사내 자식이 할 말도 못하고 여편네에게 쥐여서 사는 것이 미웠다. 따라서 아주머니도 그의 호감을 살 수 없었다. 그가 만일 그런 아내를 얻는다면 홍두깨나 방망이로 꿍꿍 울리든지 그렇지 않으면 쫓아내든지 양단간에 요정을 지은 지 오랬을 것이라고 여러 번 생각하였다. 아저씨 내외가 그 모양이니까 금년에 여섯살 되는 순이(아저씨 딸)와 할멈까지도 그를 멸시하였다.
 
34
그는 늘 바늘방석에 앉은 듯하였다. 그는 그만 뿌리치고 이 집을 나서려고 여러 번 혼자 맹서맹서하면서도 못 나갔다. 나가는 날이면 공부는 다한 날이다. 공부를 버리고 집에 돌아가서 땅이나 파다가 한세상을 보내기는 너무도 슬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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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애는 야학이나 다니도록 하고 낮에는 집에서 일이나 보라고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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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어젯밤에 안방에서 아주머니가 아저씨를 보고 하던 말이 오늘 종일 가슴에 걸려서 그것이 알 수 없는 울분과 원한으로 변하였다.
 
37
세상은 너무도 야속하였다. 차라리 남의 집 ── 아무 걸리는 데도 없는 남남 사이면 덜 분하기나 할 것이다. 그런 분을 참으면서 끈짓끈짓 붙어있는 자기가 더럽기도 하였다. 그리고 공부는 해서 무엇에 쓰나 하는 생각까지 치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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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 그만하고 물이나 좀 길어 오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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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아주머니의 소리는 듣는 둥 마는 둥 그저 도끼질을 하였다.
 
40
“얘 귀가 먹었니 ? 입이 붙었니 ?”
 
41
아주머니는 팩 쏘았다. 종하의 가슴에서는 커다란 불덩어리가 뭉클하고 돌았다. 모든 것을 부숴버리고 이 집 문밖으로 뛰어나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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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부르르 떨리는 몸을 진정하면서 들었던 도끼를 마루 밑에다가 들이 팽개를 쳤다.
 
43
그것을 본 아주머니는,
 
44
“왜 골은 났니 ?”
 
45
하고 못마땅하다는 듯이 이마를 찌푸렸다.
【원문】수난(受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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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서해(崔曙海) [저자]
 
  # 학생(잡지) [출처]
 
  1929년 [발표]
 
  소설(小說)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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