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S 여러분! 반갑습니다.    [로그인]
키워드 :
한글 
◈ 위대(偉大)한 아버지 감화(感化) ◈
카탈로그   본문  
1943.1
채만식
1
偉大[위대]한 아버지 感化[감화]
2
── 아들이 사관학교에 입학하던 날 돌아간 池東善[지동선] 씨
 
 
3
전주 부내에서도 남쪽 변두리로 훨씬 떨어져 多佳川(다가천)이 맑게 흐르는 多佳山(다가산) 아래로 고(故) 지인태(池麟泰) 대위의 유가족인 그 백씨 池鳳泰(지봉태) 씨 댁이 있었다. 지대위는 스물두 살에 전사를 하고 결혼도 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유가족은 한 분 어머님과 백씨 되는 지봉태 씨가 전주에서 살고 또 중씨 한 분이 충남 江景(강경)서 살고 있을 뿐이다.
 
4
지봉태 씨 댁은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시멘트 개와의 훌륭하지도 으리으리하지도 아니한 집이었다. 그러나 대문기둥 높이‘쮸꼰호마레노우찌(忠魂譽[충혼여]れの家[가])’라고 붙은 한 조각의 문패로 하여 그 문전은 세상의 어떠한 고루거각보다도 환히 잘 빛나고 있고 찾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머리가 숙게 하였다. 안내로 동행한 전라북도 사회과 안에 있는 군인원호회의 아꺄야마(明山) 씨와 함께 명함을 들여보내면서 온 뜻을 고한 즉 지봉태씨는 잠깐 밖에 나갔고 자당은 며칠 전에 강경의 작은자제한테를 가고 아니계시다 하고, 지봉태 씨의 부인이 몸소 나와 우리를 영접하여 주었다. 부인의 인도로 우선 후원에 정결하게 꾸민 고 대위의 영실에 나아가 배례를 드린 후 별실에서 부인에게 그 시숙 생전시의 이야기며 소년시절의 그때부터도 벌써 남께 뛰어남이 많던 여러가지 일화를 듣고 있는 중에 주인 지봉태씨가 돌아왔다.(그 지봉태 씨를 만나고 보니 나와는 실상 스스럽지 아니한 구면이어서 일변 반가움이 더하였다)
 
 
5
고 지인태 대위(전사할 때는 중위)는 육군사관학교(육사)를 나온 조선 청년 중에서 맨 처음으로 된 항공장교였으며, 동시에 그가 전사한 ‘노몬한’ 사건은 물론이요 지나사변과 대동아전쟁을 통하여 조선청년으로는 맨 처음으로 군국에 한몸을 바쳐 호국의 영령이 된 것이었다. 내명년의 징병제도 실시에 따라 조선청년도 누구나 한가지로 제국군인이 될 의무와 자랑을 가지게 되었다. 또 시방도 지원병으로 이미 제국군인의 영광스런 지위에 오른 사람이 많고, 그중에서 더러는 전선에 나아가 용맹히 싸우고 있는 이도 적지 아니한 것이다. 이러한 후진들을 위하여 조선청년으로서 그와 같이 맨 처음으로 군국에 목숨을 바친 고 지인태 대위의 충성과 용맹이야말로 한 커다란 의의를 가지는 것이라 할 것이다.
 
6
지대위는 이미 세상이 아는 바와 같이 소화 14년 7월 2일 ‘노몬한’ 사건 당시 외몽고의 쌍패자(桑貝子) 부근에서 단기(單機)로써 적 소련군의 기지 를 폭격하던 중 십여 기나 되는 적기를 만나 호젓한 단기임을 겁하지 아니하고 과감스럽게도 그를 맞아 싸우다가 불행히도 그만 전투를 더 계속할 수도, 우리 편의 기지로 돌아올 수도 없게쯤 되자 제국군인답게 그는 애기(愛機)와 더불어 적군의 진지로 대고 자폭을 하여 귀신도 울릴 장렬한 전사를 하였던 것이다. 그때 그 나이 겨우 이십이 세였었다.
 
 
7
이와같이 지대위를 제국군인으로 길러내고 제국군인으로서 부끄럽지 아니한 전사를 하여 국가를 위하여 힘겨운 주춧돌이 되었으며, 그 이름이 정국(靖國)의 신역(神域)에서 천추에 빛나도록 한 데는 대위의 선친 지동선(池東善) 노인의 감화와 힘이 컸음을 잊을 수가 없다. 지동선 노인은 본시 부안(扶安)에서 엄격한 유학자의 가정에 태어났었으면서도 일찌기 개화사상에 눈을 떠 머리를 깎는다, 서울로 올라와 신학문을 배운다 하던 시대의 선각자였을 뿐 아니라 뻐젓한 ‘군국의 아버지’ 랄 수 있는 이였다. 지노인은 집안사람들이나 친구들더러 늘 하는 말이 “우리 조선 사람도 멀지 않아 제국 군인으로 나설 때가 올 테니 인제 두고 보라” 고, 또 “우리 막낭동이 인태는 기어코 군인으로 내보내서 한바탕 나라일을 하고 이름을 떨치게 할 테라” 고 하여 왔었다.
 
8
말뿐 아니라 지노인은 지인태 소년이 열소리 하기 전부터 교련책이며 목총(木銃)을 사다가는 손수 가르치는 흉내를 내기까지 하였다니 놀라운 열성이 아닐 수 없었다. 이런 ‘군국의 아버지’ 의 감화는 일찍부터 나타나 지인태 소년은 보통학교에 다니기 전부터 벌써 나는 자라서 군인이 될 테라고 노래부르듯 하였고, 그가 군산(群山)중학에 들어간 것도 장차 육군사관학교에 들 목적으로 그리한 것이었었다.
 
9
지인태 소년은 군산중학 4년을 수료한 성적으로 육군사관학교 입학시험에 보기 좋게 합격이 되었었는데, 바로 그날이 소화 9년 3월 28일이었다. 부친 지동선 노인이 병으로 강경(江景)의 어떤 병원에 입원하여 병세가 매우 침중해서 그야말로 명재경각인데, 이상히도 운명이 되지 아니하고서 하루 또 하루 생명은 가느다랗게 이어나가고 있었다. 그러자 지봉태 씨가 마침내 한 장의 전보를 쥐고 들어와 “아버님, 인태가 육군사관학교에 합격이 되었다고 전보가 시방 왔읍니다.” 한즉 여지껏 정신을 차리지 못하던 지노인이 별안간 빙그머니 웃으면서 “오냐 잘했다.” 그러고는 조용히 숨이 지던 것이었었다. 그리하여 ‘군국의 아버지’ 는 커다란 기쁨을 안고서야 지하로 돌아갔었다.
 
10
지봉태 씨의 가족적인 환대를 받으면서 고 용사에 관한 여러가지 그칠 줄 모르는 이야기에 밤 깊은 줄을 모르다가 밤 열시 차시간이 임박하여서야 ‘쮸꼰호마레노우찌’ 를 물러나와서 서울로 회정을 하였다.
 
 
11
<每日新報[매일신보] 1943.1.18>
【원문】위대(偉大)한 아버지 감화(感化)
▣ 커뮤니티 (참여∙의견)
내메모
여러분의 댓글이 지식지도를 만듭니다. 글쓰기
〔수필〕
▪ 분류 : 근/현대 수필
▪ 최근 3개월 조회수 : 8
- 전체 순위 : 5040 위 (4 등급)
- 분류 순위 : 1040 위 / 1794 작품
지식지도 보기
내서재 추천 : 0
▣ 함께 읽은 작품
(최근일주일간)
▣ 참조 지식지도
▣ 기본 정보
◈ 기본
 
  채만식(蔡萬植) [저자]
 
  매일 신보(每日申報) [출처]
 
  1943년 [발표]
 
  수필(隨筆) [분류]
 
◈ 참조
 
  # 지인태
 
▣ 참조 정보 (쪽별)
백과 참조
목록 참조
외부 참조

  지식놀이터 :: 원문/전문 > 문학 > 한국문학 > 근/현대 수필 카탈로그   본문   한글 
◈ 위대(偉大)한 아버지 감화(感化) ◈
©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2년 05월 0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