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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2
계용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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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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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중(雨中)에 미안하나, 좀 급히 와 달라는 벗의 부름을 받고 연두 끝에 우산을 벗긴다는 것이 어둠 속에 그만 제비 둥지에 손이 닿았던 모양이다. 둥지 안에서 알을 품던 제비가 파드득 날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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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척도 분별할 수 없는 새까만 이 밤중에 더구나 비까지 내리는 이 밤중에 어디로 날아 났을까, 꽤 그놈이 다시 제 둥지를 찾아 들어올까, 둥지 틀 자리까지 손수 만들어 주고 고이고이 새끼를 쳐 내가기를 바라던 내 마음은 자못 불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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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으려던 우산을 나는 다시 내려놓고 방안으로 얼른 들어가 램프불을 밖으로 내다가 번쩍 들어 둥지를 비춰 주었다. 그러니까 어디를 갔던 겐지 획 하고 제비가 어둠 속으로 불빛을 좇아 재빠르게 날려 들어온다. 그러나 연두 끝에 바짝 다가 틀어 놓은 둥지에까지 자유롭게 내려 붙기에는 아직도 불이 어두운 모양이었다. 둥지를 배앵뱅 싸고 돌면서도 올라붙지를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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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그 옆 처마대에 올라앉아서 자던 수놈이 목을 넌지시 빼고 좀 더 바짝 날아 들어오라는 듯이 재재거리며 부른다. 그러나 암놈은 붙으려다 붙으려다 못 붙고 기진하여 다시 처마 밖으로 벗어나 지붕으로 날러 나가 앉는다. 그리고는 숨을 태이는 양, 깃을 늘이고 한참이나 앉았더니 또 처마 밑으로 날아 들어와 아까 모양으로 둥지에 붙으려고 애를 쓴다. 그러나 소망을 못 이룬다. 두 번 세 번 이렇게 들락날락 거듭하기를 칠팔차나 하던 제비는 깃까지 함북이 비에 젖어 나는 것조차 둔하여져서 둥지의 주위에도 날아오르지를 못하고 토방과 처마 끝의 반 중동에서 오르락내리락 헤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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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정상은 내가 보기에도 딱하니, 처마 끝에 앉아 있는 수놈이야 오죽할 것인가, 둥지에까지는 못 올라붙어도 여기에나 올라오라는 듯이 수놈은 한편 쪽으로 몸을 앉은걸음으로 비켜 가며 자꾸 재재거린다. 허나, 그 암놈은 기운이 다 빠진 듯이 거기에까지도 오르지 못하고 토방 위에 떨어지듯이 그만 내려앉고 만다. 고추장빛 턱 아래 털이 몹시도 불룩거리는 것을 보면 어지간히 숨이 찬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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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이나 이것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수놈은 자리를 잡지 못하고 처마대를 왔다갔다하며 안타까워하더니 그만 참을 수 없는 듯이 푸드득 날아 내려와 자꾸 올라가자고 위로 날아올랐다가 토방 위에 내려앉았다가 하며 어쩔 줄을 몰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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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놈도 수놈의 그 뜻을 아는지 푸드득 같이 날아오른다. 그러나 역시 둥지에 붙지를 못한다. 아니, 그 수놈까지도 암놈과 같이 붙으려다 붙으려다 붙지 못하고 토방 위로 내려앉고 만다. 그리하여 두 놈이 다 올라붙지를 못하고 번갈아 오르락내리락하더니 필야엔 암놈이 먼저 올라붙는다. 그러나 이제 또 수놈이 처음 암놈 모양으로 올라붙지를 못하고 한참식이나 태수를 하다가는 힘이 빠져 떨어지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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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이번엔 암놈이 또 둥지 속에서 고개를 갸웃거리며 처음 그 수놈 모양으로 안타까워하다 못해 수놈 따라 또 좇아 내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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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불을 들고 장시간 이것을 바라보고 섰던 나는 그 제비 부부의 아름다운 마음씨에 자못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생사를 같이하려는 그 높은 정신에 나는 내 마음의 온갖 것을 빼앗기고 어서 두놈이 다 같이 처마대로 올라붙어 그 높은 희생적인 정신에 위안을 주고 싶었다. 그러나 암놈이 붙으면 수놈이 못 붙고, 수놈이 붙으면 그 적엔 암놈이 또 못 붙고 오르락내리락 안타깝다. 급기야 그 두 놈이 다 제 자리에 올라붙기까지에는 내 누이동생까지 불러내다가 쌍불을 받아 비추어 주었을 때로, 그 동안이 아마 한 시간은 나마 걸렸으리라고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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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서야 나는 급하게 부르는 벗에게 미안함을 느꼈으나, 그것보담 오히려 무슨 커다란 무엇을 얻은 듯이 마음은 흡족한 것이 있었다. 만일 벗이 꾸짖는다 하더라도 할 말이 있는 것 같고, 그리고 설혹 벗이 내 마음을 비웃는다 하더라도 나는 거기에 스스로 만족할 것 같은 느낌이 조금도 벗에 대한 신의에 미안할 것 같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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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지〕《청색지(靑色紙)》(1929.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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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단행본〕*『상아탑』(우생출판사, 1955)
【원문】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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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용묵(桂鎔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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