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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金)과 문학(文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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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2
채만식
금광사업을 하고 실패하며 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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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금]과 文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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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의 약속을 누차 실기(失期)해 오던 중 이번 2월호에도 부득불 한번 더 미급(未及)이 되게 되어 마침 상경했던 길이라 재서(載瑞) 형을 만나 변명이야 핑계야를 두루 앉아서 늘어놓았더니, 우선 그러면 이런거라도…… 하고 그저 맡기는 게 곧 표제한 바의 「금과 문학」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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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언이폐지하면, 아직 남이 안 쓰는 금광소설(金鑛小說이랄 것)을 썼으니 좌우간 거기에 대하여 무엇이고 화제가 없지 않겠은즉 그 이야기를 쓰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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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닌게아니라 작품이 잘 되고 못 되고 한 것은 차치하고, 최근 어쨌거나 금광세계를 중심 내용으로 한 장편(『금의 정열』) 하나를 쓰기는 썼고, 또 연전에도 중편 『정거장 근처』에서 역시 사금광(砂金鑛) 이야기를 취급한 일이 있었고 하여, 민촌(民村)의 「신개지(新開地)」로 더불어 이 고장에서는 아무렇든 처음 가는 시험인 것만은 사실인 성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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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것을 금광소설까지 쓸 정도이면 작히 그 세계에 몸소 들어가 생활적인 체험을 했으련 함인지 소위 감성과 지각이 범상치 않다는 종족인 한 사람의 문학인으로서 그와 같이 일찍이 전인미도(前人未到)의 역(域)이요, 모든 인정풍속에 특수한 바가 있을 그 금광세계엘 참여한 이상 반드시 심상치 않게 보고 느끼고 한 것이 있으리라 하여, 직접 독자의 앞에 끌어 내세우고는 소설가의 금광 종사 기담(奇譚)을 공개시키자는 저널리즘의 선량한 일종 악취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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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신기하고 예외적인 것에 흥미를 가지는 것이 일반 세태인정이란다면, 소설 『금의 정열』의 작자를 붙잡아 내다가 한바탕 ‘금과 문학’을 이야기시키고…… 미상불 심심친 않을 노릇일 법도 하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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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서, 제(題) 한가지만은 자못 그럴 듯한 무엇이 없는 게 아니나, 불행 내가 지닌 바 그 방면에 관한 재료란 것이 지극히 평범하고도 또한 풍부하지가 못하여 모처럼 좋은 제목을 가지고도 별반 신통한 이야기는 나와질 것 같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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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되, 결코 무슨 미리 발뺌이나 겸손붙이가 아니라 사실이요 진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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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십여 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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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인근(方仁根) ․ 춘원(春園) 그분들이 주재하던 초기의 『조선문단(朝鮮文壇)』지에 모르핀 중독자의 이야기를 내용으로 한 단편 「불효자식」을 발표했더니, 동지(同誌)의 합평회 석상에서 동인(東仁)이 “……모르핀 중독자를 매우 치밀하게 그렸는데 혹시 작자 자신이 아편쟁이가 아닌지 모르겠다……”고 평한 대문을 보고서 혼자 그만 질색을 한 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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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순전한 관찰(觀察)에 외했던 것임을 물론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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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장편 『탁류』에 미두(米豆)하는 장면이 있는데, 언제 그런 것까지 다해보았느냐고, 역시 체험인 양하여 묻던 친구가 더러 있었으나, 또한 관찰과 설명을 듣고서 배웠을 따름이지 한번도 직접 미두를 한 적은 평생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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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의 금광도 위지왈(謂之曰) 금광을 한답시면서 제법 부산나케 돌아다니기는 했으나, 미두며 아편 마찬가지로 족히 체험이라고 내세울 것은 별반 없다고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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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의 옛 선비 축들은 가죽신을 신고 논을 둘러보러 나가는 게 고작이요, 제 손으로 모 한 포기 꽂는 법이라곤 없으면서도 어엿이 농사를 짓습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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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명색 금광을 했다는 것도 하릴없이 그 본이어서, 손수 흙을 파올려 금을 캔다거나 정과 망치를 쥐고 돌을 깨트린다거나 하기는커녕 현장에서 벗어붙이고 인부 감독조차 한번도 못 해본 천하 알량스런 금광꾼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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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반거충이의 데데한 금광꾼이긴 했으면서, 그러나 남 누구만 못지않게 피가 나도록 안타까운 실패는 겪어야 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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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째와 네째 두 가형이 다같이 사금광 개발의 작업에 대하여 능란한 경력을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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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무리 기술을 지녔기로소니 자본과 광구(鑛區)를 가지지 못한 이상 백년을 가도 남의 일터의 헛배나 부른, 월급쟁이요 덕대에 지나지 못하는 신분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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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년간, 그리하여 김제(金堤)니 천안(天安)이니 하는 유수한 사금지대로 돌아다니면서 겨우 현장감독이며 평(坪)떼기 청부를 하는 걸로 어렵사리 생활을 부지해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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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면서 늘 주소(晝宵)로 놓지 못하는 한가지 대망은 인심 좋은 광주(鑛主)라도 만나 어떻게 해서든지 조그맣게 분광(分鑛)을 한 자리 얻어 모작을 부치든지 누구 연상(連上)을 구하여 단돈 천 원이라도 내 밑천을 좀 장만하도록 되었으면 하는 것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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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수월할 듯하면서도 도저히 성취의 기회가 와주지를 않았고, 작년 봄까지의 최근 또다시 3년 동안은 꾸준 그 희망을 품은 채 청주의 남택광(藍澤鑛)에서 보링 작업을 맡아 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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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던 끝에, 작년 여름엔 마침내 적년(積年)의 숙망을 이루어 그 광구 가운데서 가장 금분(金分)이 좋은 자리로 이삼천 평 가량 분광권을 얻게 되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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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금선(採金船)을 댈 광구인만큼 더구나 부광(富鑛)지대를 갖다가 함부로 분광을 줄 이치가 없는 것이었으나 3년을 하루같이 그 까달스런 보링 작업에 종사를 하여 광의 성적을 내준 데 대한 치하의 선물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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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당 두 돈 이상 닷 돈이니 일곱 돈이니 한 냥이니 하는 금이 빤히 들여다 보는 듯 묻힌 자리를 분광을 얻었은즉 반생(半生) 소원의 반은 득달(得達)을 한 셈인데 나머지 반이 약 2천 원 정도의 자본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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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하찮은 것 같아도 그들로서는 어디 가서 2천 원의 자본을 끌어다 댈 반연이라곤 전혀 없는 터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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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소 그때에야 나는 사정을 알았고, 하니 몇몇 동기간의 혹은 팔자를 고치다시피 할는지도 모르는 기회인 것을 차마 귀허(歸虛)하라고 그냥 보고 있을 수는 도저히 없는 노릇, 그래 되다가 못될값에 일어서서 주선을 해보지 않고는 못할 형편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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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여름부터 시작하여 가을 ․ 겨울 넉 달 동안 그야말로 발분망식(發憤忘食)하고 각지로 돌아다닌 것이 죄다 낭패를 했었고, 그러다가 11월이 지나서야 우연히 소오(小梧)의 원조를 입어 겨우 작업을 시작하게까지 되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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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결과는 내가 자본을 구하러 애쓰고 다닌 것은 오히려 약과요, 가형들이며 심지어 그 귀골(貴骨) 소오까지 때마침 엄동의 혹한을 무릅쓰고 현장작업을 계속한 보람도 없이 본새있게 강목을 치고 말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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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해가 5천 원 이상이었고 전부가 소오의 넉넉치도 못한 출금(出金)이었으니, 차라리 내 돈이 있었다가 손을 본 몇곱이나 민망한 노릇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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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죽하면 그 뒤로 범 1년 동안 그다지도 가깝던 소오를, 면목이 없어 차마 찾아가지를 못했더라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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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이번 상경했던 길에 가까스로 둘러보았더니, 도리어 범연치 않으냐고 톡톡히 지천을 했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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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에서 그렇듯 실패한 금광을 해본 것이 그 방면에 대한 약간의 지식을 억을 기회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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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金)의 정열』에서 울궈먹은 보링이니 채금석이니 기타 사금광에 관한 것은 십중팔구까지 그 소득이었고, 뿐만 아니라 ‘철 있는 풍경’이니 ‘백골동원(白骨動員)’이니 하는 에피소드는 말하자면 직접 우리 자신의 사건이라고도 할 수가 있는 것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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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의 정열』보다 앞서 『정거장 근처』는 그중 사금 채굴장면에 한해 참으로 한심한 것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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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럭저럭 사오 년 전 어느 해 늦은 가을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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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 일로 광주엘 갔더니 친우 남주(南周)가 부근 비아(飛鴉)란 곳의 자기 소유 사금광으로 데리고 가서, 때마침 시굴작업을 하고 있는 현장을 자상하게 구경을 시켜 주었고, 그것이 생후 비로소 처음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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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방도 잊히지 않지만, 물 마른 방죽 변두리께를 조그맣게 한 평 가량 육칠 척은 됨직하게 파고서 바닥의 자갈 섞인 흙을 물을 끼얹어 가면서 씻어가지고 다시 함지로 이는데 노오란 금싸래기가 오붓하니 처지는 양이 어떻게도 신기한지 몰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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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극히 간단한 견학을 토대삼아 가지고는 대규모의 사금 채굴작업이 전개되는 장면을 작품 『정거장 근처』에서 어엿이 취급을 했더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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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에 해작(該作)의 스크랩을 가지고 대대적으로 수정은 했다지만 출판할 기회는 미처 없었고, 아뭏든 시방쯤 독자 누가 들고 나서서 뺨이라도 한 대 때린다고 하더라도 곱다시 맞아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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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금에 대해서는 어쨌든 시방은 겨우 면무식은 한 셈이지만 석금(石金)은 아직도 깜깜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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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의 정열』에서 취급한 석금 채굴의 장면은 그리하여 부득이 집필 직전 부랴부랴 임곡(林谷)엘 내려가 남주(南周)의 용진(聳珍) 금광에서 이틀 동안 작품에 관한 필요한 부분만 견학을 한 임시 속성의 단편지식이지 결코 체계가 있는 연구나 습득은 아니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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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거기 나오는 광부들의 숙어는 어느 저서에서 익힌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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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소 막장꾼이 되어 정과 망치를 둘러메고 굴 안에 들어가 바위를 뚫는다든가 덕대 노릇을 한다든가, 하다못해 광주로서 경영자가 된다든가 하여 체험을 쌓는 것까지는 몰라도, 단지 문학의 소재를 삼기 위해 그 세계의 풍도(風度)랄지 인정이랄지 생활이랄지를 관찰 이해만 하재도 삼사 개월 내지 반 년은 산에 머물러 있어야 하니 그게 졸연한 노릇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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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리가 항용 보통적인 어떤 테마를 가지고 그를 발전시키기 위하여 현실을, 가령 병원이라든지 의사라든지 농촌이라든지 직공이라든지 상점이라든지에서 ‘생활’을 취해 오듯이, 그러한 소용일 경우이면 전문적인 장시일의 연구가 아니라도 웬만큼 금광이나 혹은 광부의 생활을 취급하기엔 별로 곤란할 것이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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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거장 근처』나 또는 민촌(民村)의 「신개지(新開地)」가 그러한 것이어서, 이 두 작품은 다같이 본격적인 금광소설 즉 금광을 테마로 한 것이 아니라 달리 일반적인 중심 테마가 있어 가지고 그를 발전시키기 위하여 우리의 주위에 산재한 현실 가운데 하나인 사금광의 ‘생활’을 잠시 에피소드로써 취해온 데 지나지 못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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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삼년 이래 금값은 연해 꼬리를 물고 겅중겅중 올라, 시방은 매돈쭝 14원 50전인데 만일 거기다가 증산장려금까지 가산을 한다면 17,8원이 넉넉 잡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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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적극적인 산금(産金) 증산정책과 아울러 이 폭발적인 금가고(金價高)는 문자 그대로 조선천지를 황금광시대로 화하게 했고, 그것이 나아가서는 한 중대한 역사적 기능까지에 지양(止揚)이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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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그는 드리껴서의 미두(米豆)만큼이나 마물성(魔物性)을 휘두르면서 그러나 조선사람의 부력(富力)의 계산단위를 족히 10배는 올렸다는 데에 세기적인 의의를 가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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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로 다니면서 보면, 웬만한 사람으로 금광이나 몇 구역 출원(出願)해 두지 않은 사람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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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에 한번 들여놓으면 여관의 유숙인 가운데 열에 아홉까지가 금광업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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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 원이니 100만 원이니 하는 흥정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죄다가 금광의 매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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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는 메스를 집어던지고, 변호사는 법복을 벗어던지고 금광에로 금광에로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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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이 영문도 모르고서 105원을 들여 광을 출원(出願)하는가 하면 현직의 교원이 광석을 들고 분석소엘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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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커며 건달이며 난봉이 광산도면을 한 짐씩 안고 구석구석에서 수군거리는 것쯤은 유로 셀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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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덕에 소설쟁이도 금광을 하자고 덤벼보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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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아뭏든지 금광광시대(金鑛狂詩代)는 날로 그 광도(狂度)가 강화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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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하나의 시정적인 상식임은 틀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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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상식의 배후에는 도저히 깔 볼 수 없는 상식 이상의 것이 엄연히 존재하여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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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의 정열』은 애초의 의도가 실로 이 상식의 배후에 있는 그 무엇을 찾아보쟀던 것이나 그에 뚜렷이 드러나지 않았으니 결국 실패를 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60
실지로 금광에 종사하던 이야기 가운데 차라리 심심치 않은 화제가 없지 않은데, 첫머리에서 딴 소리를 늘어놓느라고 그럭저럭 종이를 낭비하고 부득이 이만큼서 끝을 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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